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었다. 그의 작품 중에 두번째로 접한 책이다. 처음은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된 작품 《노인과 바다》를 통해 만났다. 그의 후반기 작품을 먼저 읽고 나서 그의 초기작인 책을 읽었다. 한참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만났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두 작품은 상당히 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면 다른 작가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름은 그의 작품보다 더 유명하다. 극적인 삶을 살았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느낌을 준 두 작품 때문에 그의 다른 작품들이 더 궁금해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에 대한 궁금점도 늘어만 간다.

 

문학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서 읽히지만, 때로는 그 시대와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문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는 듯 하다.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고 나서 재미있게는 읽었지만 왜 이 책이 그렇게 찬사를 받는지 알지 못했다. 작품 해설과 다른 책들을 통해 1920년대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비문화에 대해 알고 나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배경적 지식이 없으면 충분한 감동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배경지식이 아니라 소설 그 자체만을 읽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배경 지식이 중요함을 느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읽고, 다음에는 배경지식을 찾고 다시 곱씹어보는 형식으로 읽게 되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역시 1920년대 미국 소설이다. 당시의 젊은이들을 'Lost Generation' 이라고 칭한다. 과거에서 부터 이어져왔던 많은 사상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목적을 상실했고, 그저 술이나 마시고, 소비문화에 젖어 들어갔다.

 

이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라고 하면

"1920년대 미국인들이 프랑스 파리로 와서 그곳의 문화를 즐기고, 술을 마시고, 이성간에는 최근 유행하는 some을 탄다. 그러다가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기로 하고 그곳에서 다시 술 마시고 낚시하고 투우를 즐기는 이야기" 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당시의 배경을 모르면 이렇게 거칠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책의 내용보다는 주요등장인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잠시 그들을 소개한다.

 

제이크 반즈
- 소설 속에서 '나'로 등장하는 화자이다. 1차 세계대전 때의 부상으로 성불구가 되어버린 미국인 신문기자


레이디 애슐리 브렛
- 전쟁 중 특별지원 간호사가 된 영국의 귀족 부인, 제이크 반즈를 사랑하게 되지만 제이크 반즈의 성불구로 육체적인 사랑은 하지 못한다. 후에는 마이크와 결혼을 약속하기도 하고, 로버트 콘과 관계를 맺기도 하며, 어린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와도 사랑에 빠진다.

 

로버트 콘

- 대학시절에는 미들급 챔피언, 대학 졸업후 첫번째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 셋이 생겼다. 부유한 아내는 다른 남자와 만나게 되면서 나가고 후에 프랜시스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미국에서 유럽으로 한다. 그때 2년 동안 파리에 머물었는데 이 시기에 장편소설을 쓴 작가이다. 후에 브렛을 좋아하게 된다

 

빌 고턴

- 제이크 반즈의 친구로 작가로 어느 정도 성공을 하여 돈을 벌었다. 여행 차 반즈를 만나고 그와 스페인 여행에 동행한다.

 

마이크 캠벨

- 브렛과 결혼을 하려는 사내로 사업을 하다가 파산을 하게 된다.

 

페드로 로메로

- 스페인의 젊은 투우사로 다른 투우사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으며 브렛이 나중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그들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자주 들르는 커피숍과 바에서 그들은 어떤 옷차림과 자세로 있었을까? 당시 거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궁금했다. 책을 읽고 나서 당시의 모습을 잠깐 찾아보기도 했다. 특히 작품 속의 브렛이 궁금했다. 어떤 패션의 여성이었을까? 책에는 그녀에 대한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p40

소매 없는 스웨터에 트위드 치마를 입고 머리는 사내아이처럼 빗질하여 뒤로 넘기고 있었다. 이런 유행은 하나같이 그녀가 처음 시작한 것이었다. 경기용 요트의 동체 같은 미끈한 곡선미를 지닌 몸매에 그런 스웨터를 입으니 곡선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트위드 치마에 소매없는 스웨터는 아니지만 당시 미국의 패션을 알아 볼 수 있는 사진을 잠깐 찾아보았다.


▲ 1920년대의 미국 패션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파리에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한다. 그들이 여행을 갔던 스페인의 산 페르민 축제는 어떠했을까? 궁금했다. 다른 나라의 축제 소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던 그 장면이 그려진다. 아마 1920년대도 지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책 속으로 돌아가서 팜플로나의 소몰이 축제 현장에 들어가본다. 그리고 나서 근처 바에서 압생트도 한 잔 해본다.

 


 

 

▲ 스페인 산 페르민 축제

 

책을 읽다가 책 속의 상황이 너무 부럽고 나 역시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적어둔 부분이 있다. 빌과 제이크가 낚시를 하다가 샘물에 담가놓은 포도주와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장면인데, 나중에 한 번 시원한 계곡이나 개울에 와인을 시원하게 해서 친구들과 함께 먹어 보련다.

 

p186

나는 샘물로 걸어가서 포도주 두 병을 꺼냈다. 병은 차가웠다. 나무 있는 데로 돌아오는 중에 술병에 이슬이 맺혔다. 나는 신문지 위에 도시락을 놓고 포도주 한 병은 마개를 따고 나머지 한 병은 나무에 기대 세워 두었다. 빌은  손을 닦으면서 올라왔는데 그의 광주리가 고사리로 불룩해져 있었다.

"어디 그 병 좀 봐." 그가 말했다. 그는 코르크 마개를 뽑은 뒤 병을 기울여 마셨다. "어휴! 두 눈이 다 짜릿해지는걸."

"어디 한 번 마셔 볼까."

포도주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왠지 녹슨 쇠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렇게 형편없는 포도주는 아니야." 빌이 말했다.

"차가워서 그런 거지." 내가 말했다.

우리는 조그마한 점심 꾸러미를 풀었다.

"닭고기군."

"삶은 달걀도 있어."

"소금은?"

 

책을 읽고 나서 뒷부분에 나오는 <작품해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은 Lost Generation 이지만 무조건적으로 방황하는 것이 아닌 희망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콘, 브렛, 마이크의 경우는 욕망과 알코올에 빠져있지만 제이크와 빌은 자신들의 중심을 잡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브렛이 투우사 청년 로메로를 보내주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p367

"난 이제 서른넷이야. 어린애들을 망치는 그런 화냥년이 될 생각은 없어."

 

투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거세된 소가 나오는데 거세된 소는 다른 소의 공격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직접 다른 소를 공격하지 않고 사나워진 소를 달랜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런 생소한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거세한 소와 성불구가 된 화자 제이크 반즈가 계속 무엇인가 연결고리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등장인물들은 제이크 반즈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때로는 친하게, 때로는 서로 반목을 하면서 지낸다. 그리고 항상 그 중간에 제이크 반즈가 있다. 이렇게 읽고 나서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지니 곱씹을 거리가 많이 생긴다. 이래서 잠시 떨어져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p204

"여간 재미있지 않지. 한 번에 한 마리씩 우리에서 내보내는데, 놈들이 울타리에 들어가면 거세한 수소들을 같이 넣어 서로 싸우지 않게 하는 거야. 황소들이 거세한 소들을 향해 덤벼들지만 거세한 소들은 마치 노처녀처럼 놈들 주위를 빙빙 돌면서 달랜단 말이야." 내가 말했다.

"거세한 소들을 떠받지 않아?"

"떠받지. 어떤 때는 곧바로 달려가 죽이는 일도 있어."

"그럼 거세한 소들은 아무 반항도 못한단 말이야?"

"못해. 그저 친구가 되려고 할 뿐이지."

"뭣 때문에 그 안에 넣어 두는 거야?"

"황소들을 달래서 돌담을 들이받아 뿔을 부러뜨리거나, 또는 서로 떠받아 죽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지."

 

마지막으로 내용을 정리하려고 책을 다시 한 번 훑어보는데 다음에는 이 작품에서 이 친구들이 바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술이 어떤게 나오는지도 한 번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배경이 술을 먹는 장면이라 어떤 술들이 나오나 한 번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이제 문학을 읽을 때 조금 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읽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건, 장소, 시간, 문화를 연결하고 눈으로 활자를 읽고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모든 감각의 촉수를 바짝 세우고 읽어야 겠다. 예전에 읽었던 《노인과 바다》도 다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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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그날 처음으로 내 얼굴과 마주한다. 반쯤 감긴 눈에 눈곱이 끼어 있고, 머리카락은 나뭇잎들이 햇빛을 찾아 뻗어가듯이 사방팔방으로 솟구쳐 있다. 급하게 씻고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로션을 바른 다음 거울을 다시 바라본다. 나름 하루의 시작이니 얼굴에 신경을 써야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에 마주했던 거울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묻는다. "넌 누구냐?" 하루 종일 컴퓨터를 바라 보아 오른쪽 눈의 가장자리가 붉게 충혈되어 있고, 푸석푸석해진 피부에 각질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침에 바른 로션의 효과는 과연 얼마나 갈까?

하루 두번 씩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이게 내 얼굴인가?  많이 변했다. 예전 사진들과 동일인물인가 싶기도 하고, 안경에 눌린 콧대의 번질거림이 어색하기도 하다. 라색 수술을 할까 하다가도 워렌 버핏, 빌게이츠가 안경을 쓰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한다. 거울을 보며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서 찾아낸다. 그저 피부 나이라도 천천히 먹기를 바란다. 이왕 늙어가는 거 보기 좋고 품격있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신체적 젊음을 잃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사람을 지구 밖으로 보내고 유전자지도를 완성해 나가도 아직까지는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곳이 있긴 하다. 바로 소설 속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기도 한 번으로 다른 무엇이 당신 대신 늙어간다면 기도를 하겠는가?
기도를 할지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소설 속에도 공짜는 없으니까.

p47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도리언 그레이는 여전히 자신의 초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렇게 중얼거렸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점점 늙어가며 끔찍하고 흉측해지겠지. 하지만 이 그림은 항상 젊음을 간직하고 있을 테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6월, 바로 오늘의 모습 그대로이겠지. 정반대라면 좋으련만! 내가 항상 젊음을 간직하고,  이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늙어간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바칠 텐데!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바치지 못할 게 없지! 내 영혼이라도 바칠거야!"

오늘 소개할 책인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한 대목입니다.
훌륭한 화가인 배질 홀워드는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알게 된 후 그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얻습니다. 도리언이 배질의 모델이 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온 날에 그는 쾌락주의적인 인생관을 깊게 가지고 있는 배질의 친구인 헨리 워튼 경을 만나고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깊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이 만난 날 배질은 도리언의 훌륭한 초상화를 완성한다. 초상화를 본 세 사람은 작품에 감동을 하고 도리언은 작품 속 자신에 감탄하고 변하지 않는 젊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합니다. 베질은 초상화를 도리언에게 건네 주고 도리언은 그것을 자신의 집에 걸어 둡니다.

어느 날, 도리언은 싸구려 연극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시빌 베인을 만나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예술적인 연기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하지요. 하지만 배질과 헨리에게 그녀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극장을 찾은 날, 그녀는 형편없는 연기를 선보이고 도리언은 시빌 베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헤어지자 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도리언을 만나고 진정한 사랑과 삶을 알았다고, 극중 인물들의 연기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도리언이 사랑하게 된 예술적인 연기가 도리언을 사랑하게 되면서 변하게 된 것이죠. 그녀는 도리언에게 자신이 잘못했다고 간청하지만 도리언은 그녀를 내치고 떠나버립니다.

다음 날 헨리는 자신이 너무 했나 싶어 그녀에게 잘못과 사랑을 구하는 편지를 씁니다. 하지만 헨리가 놀랄 만한 소식을 가지고 옵니다.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헨리는 그 소식을 이야기하고 별 일 아니라고 그녀는 도리언으로 인해 진정한 삶을 살았다며, 그 삶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도리언은 그를 따라 파티를 갑니다. 그의 삶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파티에서 돌아온 도리언은 초상화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림의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됩니다.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자신이 아닌 그림의 외모를 변하게 만든다는 것을. 도리언은 그 후, 점점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듯이 유미주의에 빠져들고, 작중 헨리의 영향으로 쾌락으로 짙게 물듭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아파하죠. 그의 감춰진 초상화는 점점 더 흉측하게 변해만 갑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환상 소실입니다. 소재 자체도 그리스신화나 판타지 소설에 등장할 만 합니다. 소재는 이렇게 허구적이지만, 내용 속에서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19세기 초반 영국의 사회상을 보여주고,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적인 요소들이 드러납니다. 도리언, 배질, 헨리를 통해서 오스카 와일드 자신을 표현해냅니다. 그 속에서 배질과 헨리가 도덕과 쾌락으로 갈등하는 모습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합니다.

"나이 마흔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 그들의 삶이 드러난다는 말이겠죠. 사람들의 얼굴은 그들의 삶의 조각조각들이 켜켜이 쌓여 올려지면서 나타납니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10년 후의 제 모습은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질문을 해봅니다.
"기도 한 번으로 내가 늙어가는 대신 다른 무언가가 대신 늙어간다면 그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제가 사는 대로 얼굴에 반영되면서 늙어가고 싶습니다. 이해인 수녀, 법륜 스님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샛길로 빠져 봅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거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태어나자 마자 고통받는 어린 아이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타인의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가족을 떠나는 이들의 삶은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운명으로 미루어두어야 할까?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나 혹은 우리 가족이 아니니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는 우연으로 닥칠 수 있습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내일을 잘 모릅니다. 그렇다고 허무주의로 빠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면서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게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용서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리언처럼 추하게 변한 자신의 초상화를 숨기려 애쓰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 거울 속의 제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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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공상과학 소설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상을 철저하게 풍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약 80여 전에 쓰인 작품이라기 하기엔 너무나 현실성이 있어보이는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과 지금의 현실에도 반영시킬 수 있는 공상과학소설이자 풍자소설이라는 점이다.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던 소설과 영화가 있다. 소설은 얼마 전에 읽은 조지 오웰의 <1984>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이다. 두 소설과 영화는 맥락을 같이 한다. 하나의 체제, 사회가 있고, 이것은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철저한 규칙과 통제하에 운영되어 진다. 처음에 그런 사회와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힘이 들고 많은 갈등이 있었겠지만 어느덧 정착이 되고 세대가 거듭될 수록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집에서 채집용 큰 통에 달팽이를 키운다. 큰 달팽이들은 다른 곳에 있다가 왔으니 변화에 대해 감지를 했을 것이다. 얼마 후 달팽이들의 알에서 새끼 달팽이가 태어났다. 아마도 그 새끼 달팽이에게는 그 좁은 공간이 하나의 세계로 인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나타는 어떤 물체(사람의 손)은 하나의 신이 되어 먹이를 주고 물을 뿌려주는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누군가에 의해 사람들의 삶은 통제되어 진다. 어쩌면 태어날때부터...

<멋진 신세계>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계급이 정해집니다. 마치 음식을 만들 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듯이 각 계급에 따라 투여되는 것이 다르고 이에 따라 몸집의 크기에서 부터 지적역량에 이르기까지 다르게 태어납니다. 엡실론 계급, 감마 계급, 델타 계급, 알파 계급이 이렇게 다른 계급들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철저하게 조건반사적 교육이 진행되어 집니다. 뜨거운 곳에서 일하게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는 뜨거움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이는 나치 시대의 우생학과 어린 아이에게 세뇌교육을 시키는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다.


<1984>에서는 곳곳에 붙어 있는 텔레스크린과 곳곳에 숨겨지 있는 사상경찰관에 의해 사람들이 철저하게 감시 당한다. <설국열차>에서도 열차의 뒷칸으로 갈수록 계급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바퀴벌레로 만든 묵을 식량으로 삼고 있다.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철저하게 나뉘어진 모습, 그들만의 규칙과 통제로  나뉘어진 계급대로 영원히 그 사회가 돌아가기를 바라는 강자, 지배자들의 논리가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베어난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이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를 통제하고 개인의 주체성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얼마 전에 읽은 <커피는 원래 쓰다>에서 아랍에서 처음 유행한 커피하우스는 술탄 왕조에 의해 금지되었었다고 한다. 이유는 사람들이 그곳에 보여서 사회, 정치이야기를 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정치개혁에 대한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커피가 사람들을 생각하게 각성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강자와 지배자들에게 가장 큰 적은 약자와 피지배자들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그것을 바꾸어보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처음 들어온 계기 중에 하나가 전두환 시절에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정치계에서 큰 이슈를 덮기 위해서 연예인 관련 대형 스캔들을 터뜨린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려고 할 때, 자극적이고 생각하지 않고 관심을 확 끌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대로 그곳에 매몰되어 버리는 법이다. TV같은 경우도 어쩔 때는 멍하니 보고 있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아무런 개인의 노력없이 시선을 고정해서 생각을 없게 만들기에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광고는 나도 모르게 세뇌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지만, 절대로 획일성에 빠져버려서는 안된다. 한 예로 명품 가방을 만드는 나라가 아닌 소비하는 나라인 우리나라는 수십, 수백만원에 이르는 가방이 국민 가방이라는 말이 돌기도 한다. 예전에 배낭 여행할 때 프랑스의 루이비통 매장을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공사를 한다는 안내가 한국말로 씌어져있고 직원 중 상당 수가 한국인이거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명품 가방 소비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이들이 걸어 놓은 덫에 생각하지도 않고 빠지지를 않기를 바란다. 여러 이유를 고려해서 선택은 할 수 있지만, 항상 '생각'이라는 필터는 항상 한 번쯤은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멋진 신세계>로 돌아가 본다. 작품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시험관에서 태어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이들의 세계로 온 야만인이 '멋진 신세계'의 총통이 나눈 대화가 등장한다.


p305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추슬렀다.

"마음대로 하게"하고 그가 말했다.


작중 야만인은 불편함을 원한다. 유토피아를 가장하는 이들이 사는 디스토피아에서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경우에는 '소마'라는 알 약을 먹는다. 어렸을 때 드래곤볼 만화를 보면 선두콩 한 알만 먹어도 일주일이 배고프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정말 이런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음식이라는 것은 힘든 노동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해줄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사랑과 정성을 담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약속을 잡을 때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한다. 여기서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저 허기를 달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유대를 확인해고 함께 살아가는 힘을 서로에게 불어넣어주는 것들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전원주택을 원하면서 불편함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전원주택의 경우 잠깐 밖에 나와 신발을 신고 걸을 수도 있는 법이고, 겨울에 따뜻하게 하고 반팔을 입는 것이 아니라 추우면 내복을 입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원 주택에 살면서 아파트의 혜택도 원한다. 


우리는 어쩌면 사회와 체제가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런 노력없이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매체가 아닌 자신이 직접 노력을 기울이는 창작활동과 독서활동 거기에 이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듯 하다. 어떤 갈등을 겪게 될 경우에는 불편하더라도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잘못됐다고 판단될때까지는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두 아들을 키운다. '뭐 하지 마라. 뭐 하지 마라'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한 번 말하고 나서 아이들이 정말 항상 다 고치고 내 말을 따른 다면 어쩌면 그게 더 나에게 걱정일지 모른다. 내 아이들이 후에 커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살기를 원하듯이 나 역시 이 사회에 매몰되어 있지 않으면서 나만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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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브리아 마르케스(1927.03.06~2014.04.17)는 지난 4월에 타계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다. 당시 우리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믿기지 않는 참사로 다른 것들에는 암묵적 합의 하에 침묵했다. 이때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누구인지 몰랐다. <백년의 고독>이라는 작품은 제목을 몇 번 들었던 기억은 있었지만 접하지 못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할 때 선정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끌리는 제목으로 <백년의 고독>을 손에 잡았다.


처음에는 책과 작가의 배경적인 지식은 알지 못했다. 이게 내가 읽는 방식이다. 읽으면서 궁금한 사항이라던가 사건들이 어떤게 있는지 읽으면서 하나씩 찾아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계속 읽어나가도 되는 건지 나 자신에게 의심스러웠다. 작중 등장하는 수많은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사람이 어떤 아우렐리아노인지 그의 부모는 누군인지 책의 첫 페이지에 있는 가족관계도를 수시로 들춰보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게 <백년의 고독>에서 느낄 수 있는 오묘한 매력이다.


마르케스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현대예술 사조의 선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콜롬비아의 역사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콜롬비아 내전인 '1000일 전쟁'에서의 자유파와 보수파의 갈등과 '바나나농장 학살 사건'은 소설 속의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콜롬비아 바나나농장 학살 사건


1928년 12월 6일 콜롬비아 산타마리아 근처 시에나가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이다. 바나나농장에서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요구하면서 노동조합이 벌인 한달 간의 파업을 끝내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가 군대를 보내 진압하기로 결정한 뒤,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최소 47명에서 최대 2000명)이 군당국의 발포에 의해 살해됨.
당시 바나나 회사였던 '돌 푸드 컴퍼니'는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를 압박했고, 콜롬비아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당시 파업의 일환으로 시에네가 시 광장에서 열리는 예배에 참석한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이다.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윤회와 마술적 사실주의




약 100여 년 동안 한 집안에 7대에 걸쳐서 마치 과거의 조상들이 살아난 듯이 비슷한 성향의 자손들이 조상들의 삶을 마치 윤회하듯이 살아가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가족 내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아르까디오', '아우렐리아노' 라는 이름은 반복해서 이름에 포함된다.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체구가 좋고 과격했으며, 충동적이고 모험적이었다. 반면에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차가워보이는 얇은 입술을 갖고 태어난 명민하고 은둔적인 성격을 보였다.


<백년의 고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마술적 사실주의'다. 이번을 계기로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마술적 사실주의는 사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라고 한다. 이 책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돼지 꼬리 달린 아이' 가 어쩌면 대표적인 하나의 소재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사촌 간인 우르술란과 호세 아르까디오는 근친상간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자신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서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아무도 닿지 않는 곳에서 '마꼰도'라는 마을을 세운다. 그렇게 한 가족의 역사는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대를 거듭해서 6대 째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와 그의 이모인 아마란따 우르슬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나면서 한 집안은 몰락해 간다. 그리고 그 예언은 전해져내려오는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문서에 담겨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미녀 레메디오스가 하늘로 승천한다거나, 레베카가 흙은 먹고, 마꼰도에 처음 온 집시들이 가지고 온 하늘을 나는 양탄자 등 일반적이지 않은 정말 마술적인 요소들이 자주 등장한다. <백년의 고독>은 분명 콜롬비아의 역사와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이야기 속에서 사실적으로 나타내지만, 그 방법으로는 환상적이고 허구적이고 마술적인 요소를 가득 담아 표현해내고 있다.


20세기의 세르반테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백년의 고독>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두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소설 예술의 극치인 동시에 소설의 시대에 보내는 작별 인사"


마르케스가 <백년의 고독>과 같은 신비한 매력을 가진 책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떠어져 외할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과 함께 살아왔던 시절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 바로 그들의 고향이었으며, 외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전쟁터에서의 모험담과 콜롬비아의 역사는 작중 아우렐리아노 대령에 영향을 미쳤고, 외할머니와 집안 여자들이 들려준 신기한 이야기 또한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발판이 되었다.


마르케스는그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가장 좋은 출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내 앞에서 나눈 다화들이다" 라고 회고했다고 한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


<백년의 고독>의 2편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그 이전에 윤회하듯 반복되던 모든 것이 결말로 수렴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읽은 많은 소설들은 분명 현실에서 있을 듯한 소재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때로는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이고 때로는 허무한 표현 방식 속에서 그대로 현실을 표현해냈고 민중들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세익스피어라고 칭해지는 세르반테스에 비유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얼마 전에 신문컬럼 <조용호의 문학노트>에서 본 글귀가 눈에 띄었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서서히 현실은 내면화하면서 밑바닥에서부터 인간들을 위로하는 치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마르케스 역시, 조국 콜롬비아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 속에서 아파하는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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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을 맺다. 


이번에도 그동안 제목만 알고 있었던 책을 찾아 읽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에 몇 일 동안 푹 빠져 있었다. 글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잔잔하게 남아있다. 근래에 읽었던 책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힌다. 책을 읽자 마자 얼마 후 부터 '아! 드디어 만났구나' 하고 느끼는 보물들이 있는데 <달과 6펜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특히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건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하마터면 뒷부분을 먼저 읽어버릴 뻔했다. 

 

<달과 6펜스>는 등장인물 스트릭랜드를 통해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배경이 있는지 모르고 읽은 책이어서 즐거움은 배가 된다. 실제 인물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와 다른 장르와 연결해주는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에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를 자연스럽게 시에 대해 이야기듯이 <달과 6펜스> 역시 작품 속 스트릭랜드이자 실제 인물인 폴 고갱을 통해서 미술에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해준다.


예전부터 그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저 관련 책을 읽는 것으로는 흥미가 생기지 않아 쉽게 포기하곤 했다. 이번에는 뜻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책읽기를 마치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찾아 폴 고갱 이후 반 고흐를 만나게 해주었다. 이 소중한 인연이 차곡차곡 조금씩 쌓아지기를 내심 바랄 뿐이다.


이야기 속으로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을 증권 중개인 일을 하던 부유한 사십대 남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홀로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는 가난한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한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더크 스트로브는 그를 지원지만 스트릭랜드는 그에게 냉소적이었으며 그의 아내 블란치 마저 자살에 이르게 한다. 그는 오직 자신의 그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과는 다른 게 있는 듯 했다. 


그는 문명의 땅을 뒤로 하고 남태평양의 외딴 섬인 타히티로 떠난다. 타히티라는 원시의 섬에서 그가 생각하는 낙원을 만나고 그림에 열중하고 아타라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문등병에 걸리고 심지어 눈이 멀기까지 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의 집안에 신비로운 그림을 그린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폴 고갱의 삶을 그대로 재현해두고 있지는 않지만 거의 유사한 삶을 살았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한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을 표현해준다. 분명히 자신 밖에 모르는 차디찬 냉소가 깊게 베어나지만, 그 열정이라는게 자연스럽게 다른 부정적 요소를 가려준다. 나 엮시 읽는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일에 빠져든 그가 부럽기도 했다.


작가 서머싯 몸은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왜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고, 이야기의 중간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가 전환된다. 어쩌면 친절하지 않고 부연조차 없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툭 던져 놓으니 확실한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더 극적인 표현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묘미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손에서 놓지못하고 한 번에 읽은 기억이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1인칭 관찰자시점으로 내가 개츠비를 궁금해하고 서로 인연이 닿아가면서 그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가는 묘미가 있었다. <달과 6펜스> 역시 소설 속 작가인 내가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이야기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효과적인 것 같다.

어떤 이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절묘한 조화가 훌륭하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 정도를 찾을 수 있지는 못해서 아쉽다.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저도 모르게 손이 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책들은 읽고 나면 개운하게 숨을 내쉬며 책을 덮을 수 있다. 읽는 동안 긴장한 것을 놓는 숨이며 아쉬움의 표현이다.


폴 고갱의 작품 속으로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 고갱에 대해 표현한 부분을 찾아 보았다.


P551

타히티 섬에서 가져온 그의 작품들을 대했을 때 그의 옛 친구들조차 당황스러워 했다. 그 그림들은 너무 야만적이고 미개해보였다. 그것은 바로 고갱이 원하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야만적'인 색채와 소묘만이 타히티에 머물면서 감탄했던 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이들을 올바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중략)

그러나 고갱이 아주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낯설고 이국적인 것은 단지 작품의 주제만이 아니다. 그는 원주민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토착민 장인들의 수법을 연구하고 때로는 자신의 작품 속에 그들의 것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그린 원주민의 초상을 그러한 '원시'미술과 조화시키려 애썼다. 그래서 그는 형태의 윤곽을 단순화하고 넓은 색면에 강렬한 색채를 거침없이 구사했다.  세잔과 달리 그는 단순화된 형태와 색체의 구성으로  인해 혹시 그의 작품이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연의 아이들이 지닌 순수한 강렬함을 그리는 데 도음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수세기에 걸쳐 씨름해온 유럽 미술의 문제들을 기꺼이 무시해버렸다.


솔직하과 단순함을 이룩하려는 그의 목표가 항상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향한 그의 열의는 새로운 조화를 이룩하려는 세잔이나 새로움을 전달하려는 고흐의 열의만큼 여정적이고 진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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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에 대하여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읽을 책은 많이 있지만 손에 책이 잘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읽을 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서점에 직접 서문과 맺음말을 읽어보기도 하고 소설이 아닐 경우에는 목차도 한 번 훑어본다. 온라인서점을 이용할 때는 먼저 읽은 사람들의 서평을 읽거나 관련 소개자료를 읽어본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기 위해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노력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때로는 그냥 사전조사없이 읽지 않은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 선택하는게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있는 제목은 다 알고있지만 정작 읽어보지않은 작품들이다. 

책을 처음 읽을 때부터 고전에 대해서 읽어본 적이 없고, 세계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는게 항상 신경이 쓰였다. 책의 내용 중에는 다른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마치 원천기술처럼 책에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온 작품들이 있다. 이런 책들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는 있다.


처음에는 '저걸 내가 읽을 수 있을까?'  부담감때문에 망설여졌다. 아직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부담감에 비해서는 내용이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왜 이게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거지하고 의아해할 때도 종종 있다. 어떤 책들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소설','현대 100대 영문소설'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왜 이책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까? 하는 궁금점도 생기기도 한다. 아직 나는 좋은 작품을 볼 줄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도 많다.


세계문학전집은 책의 말미에 항상 '작품해설'에 대해서 약간의 페이지를 소비한다. 책을 읽고 나서 '작품해설'을 읽다보면 '아~!' 이런 숨은 의미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할 때도 있고, '이런 당시의 사회적배경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된다. 내가 의아심이 들었던 책들을 보면 보통 내가 그 나라의 그 시대의 상황을 몰라서 작품이 내재하고 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내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하나는 오늘 소개할 <위대한 개츠비>이다.

처음에는 그저 소설의 내용만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미국이라는 장소적 배경과 192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도 특별히 염두해두지 않았다. 단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갔다. 그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때는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소설>,<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BBC 선정 꼭 읽어야 할 책>, <옵저버 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정도로 뽑힐 만한 것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작품의 배경을 모르는 채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


책의 뒷부분의 '작품해설' 부분을 읽기 전에 느꼈던 이 소설의 느낌이다. 

일단 대단히 흥미롭다. 읽을수록 너무 궁금했다. 과연 '개츠비'라는 베일에 쌓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부터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아마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닉 캐러웨이가 개츠비와 주변 인물에 대해서 관찰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이야기 전개를 더 흥미롭게 한 듯 하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생각한 건, 낭만주의자 개츠비이다. 아마 이 작품 내재하고 있는 다른 요소들을 제외하더라도 단순히 첫사랑 데이지만을 바라보는 개츠비의 사랑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개츠비는 첫사랑 데이지를 찾기위해 항상 호화 파티를 한다. 그 파티에는 초대받은 사람도 있지만 소개받지 않은 이들도 많이 온다. 개츠비가 파티를 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의 첫사랑 데이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결국은 데이지를 만나게 된다. 만남 자체도 흥미롭다. 개츠비의 마지막도 상당히 문학적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자동차사고로 머틀윌슨은 죽게 하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자기가 가져간다. 그리고 운명적인 죽음도 맞게 된다.


개츠비는 낭만주의자다. 자신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지만 사랑을 지켜나가는 낭만주의자다.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은 사랑이야기이다. 데이지가 보이는 모습에서는 개츠비에 대한 사랑이 별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처음으로 그의 저택에 데리고 와서 집을 구경시켜준다. 집 구경을 하던 중에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는 장면이 있다.


P134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그녀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묻혀 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셔츠가 좋은거야 개츠비가 좋은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곳에서는 그저 개츠비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하지만 게츠비가 죽은 후 얼굴도 보이지 않는 데이지를 생각하면 아마 그리움의 표현은 아닌 거 같다.

초반부터 개츠비에 대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진행해나가고 개츠비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모습과 생각치 않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구성 이것만으로 인상깊게 읽은 작품이다.


'작품해설'을 읽고 난 후의 <위대한 개츠비>


192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고 한다. 재즈와 찰스턴 춤과 자동차가 상징하는 1920년대가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있다. 192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이다. 미국은 당시 전쟁에 대한 본토에 대한 피해가 없었기에 그 어떤 시기보다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러한 경제 성장에는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따라다닌다.


P260

톰 뷰캐넌과 개츠비가 타고 다니는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 개츠비가 주말마다 벌이는 사치스러운 파티와 마치 '불빛을 쫓는 부나비처럼' 환락과 쾌락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톰과 데이지가 보여 주는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와 무책임은 바로 전쟁이 끝난 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던 이 무렵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시간적 배경 못지 않게 공간적 배경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P261

작품에 등장하는 이스트애그와 웨스트애그의 대조는 미국 동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의 차이를 보여 주기도 한다. 동부와 중서부의 대조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퇴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동부 사람들은 물질적 부와 세련미와 교양을 갖추고 있지만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있으며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행동 양식을 보인다. 한편 닉 캐러웨이가 대변하는 중서부 지방 사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할망정 아직 타락하지 않은 도덕적 순수성과 청교도주의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중략> 

동부의 물질적 가치관과 중서부의 정신적 가치관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으며, 제이개츠비의 파멸은 바로 이러한 충돌이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분명히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 대해서 알고나서 책을 읽어내려갔다면 다른 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920년대 미국 동부의 모습은 나에게는 익숙하게 생각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일단 나와 상관성이 많지 않아서 관심이 덜 간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치하 있었으며 고급 승용차, 재즈, 파티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나와는 공감대 형성이 잘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재미있게는 읽었으나 훌륭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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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들을 보면 보통 가장자리 위 아래쪽이 접혀 있다.

접혀있는 부분이 많고 적음에 따라 내가 몇 번에 걸쳐서 그 책들을 읽어내려갔는지 알 수가 있다.

책의 아랫 부분은 책을 읽다가 중간에 멈추고 다음에 읽어야 할 때 접어둔다. 여기까지 읽었다는 표식이다.

반대로 윗부분은 읽다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해 접은 부분이다. 보통은 연필이나 볼펜으로 표시를 해두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 표시해두는 방법이다.


<롤리타>의 경우에는 아랫 부분이 여러 군데 접혀 있다. 길게는 100여 페이지에서 짧게는 2,3장에 이르기까지 접혀있는 폭도 가지각색이다. 이 의미는 읽는데 어떤 상황때문에 계속 끊겼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아주 조금 시간이 있어도 그것을 읽기 위해 책을 펼쳤다는 표시이다.


문학동네에서 내놓은 <롤리타>는 작년 초부터 읽기를 망설였던 책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눈에는 자주 띄었지만 왠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아마 눈에 잘 띈 것은 책 표지 디자인부터 눈길을 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표지는 문학동네에서 네이버를 통해 해당 표지 이벤트를 진행해서 선정된 것으로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제목과 '한 남자와 소녀와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짐작하고 있던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처음에 어느 정도 읽어내려갔는데 불편했다. 최근에 국내에서도 자주 불거지는 아동성폭력에 대한 뉴스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고 머릿속에 잠시 박범신의 <은교>도 스쳐 지나갔다.

과연 문학은 어떤 소재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재의 제약이 없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해보았다. 


이런 논란은 책이 출간될 때 부터 불거졌다. 1955년 유럽과 미국에서는 <롤리타>에 대해서 '판매금지'조치가 이루어졌고 송아성애자의 판타지를 그린 포르노그래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불과 3년 후인 1958년 뉴욕에서 출간되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영어소설로 꼽힐 정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타임, 르몽드, 모던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소설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게 되었다.


<롤리타>가 이런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은 내용보다는 글 속에 표현되는 은유와 비유의 향연 속에 빠지는 매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자극적인 소재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은유와 상징 속에서 헤매는 내 모습이었다. 헤맸다는 것은 우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심리와 자극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경외감과 함께 때로는 너무나 많은 은유, 비유, 상징 속에서 지쳐 짧고 사실적인 표현이 있는 글들을 읽고 쉽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롤리타>는 처음 문장부터 아주 훌륭하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읽은 글들 중에서 가장 멋진 도입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이런 책은 정말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으나 내 영어실력이 아쉬울 뿐이다. 나중에 한 번은 사전을 찾아보고 한 번쯤 시도는 해보고 싶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롤리타>를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이 난 것이 있다.
위에도 이미 이야기했지만, 소재의 자유로움 속에서 느껴지는 다소의 불편함과 은유와 상징으로 언어의 무한함을 느끼게 해주는 표현력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예술작품에 대해 내려지는 심의에 관해서이다.


이미 앞의 두 사항에 대해서는 설명했고 심의에 관련된 내용은 <롤리타>와는 어쩌면 다소 연관성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읽는 내내 심의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떠올랐다.


작년에 읽은 책 중에 만화책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보지 말아야 할 성애장면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2013년 7월 25일에 간행물윤리 심의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로 결정되었다.


여기서 성애장면이라는 것은 아주 일부 나와있으며 내용의 전개상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최근에 TV에 등장하는 걸그룹들보다 덜 야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들이 자살한 아버지를 대신해 고백해내는 아버지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삶은 스페인내전을 겪고 아나키스트로서 삶을 살고자 했으나 결국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살게되는 개인의 삶이자 역사를 보여주는 이 만화를 단지 몇 장면에 불과한 것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낙인찍어버렸다. 결국 나중에 심의에 통과했으나 다른 훌륭한 문학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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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다른 책들을 읽다보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자주 등장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20대, 30대, 40대 이렇게 세 번 읽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데미안] 에서 느끼는 것이 다르다고~.
또 어떤 젊은 청년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데미안]을 읽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깊이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러니 어찌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첫째는 너무나 궁금했다. 두번째는 고등학교 때 데미안을 처음 읽었다는 다른 이의 글을 읽고 나는 벌써 서른한 살 인데 하면서 서둘렀던 것이다. 한 3일에 걸쳐서 출퇴근 지하철, 버스에서 읽었는데, 책의 분량은 얼마되지 않는데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았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을 읽기 전에, [싯다르타]를 읽었는데 자아성찰을 하고, 내면을 바라보는 자세는 두 작품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데미안은 무언가 조금 더 신비스러운 분위기였다고 표현해야 할까? 무언가 수수께끼 속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안타까웠던 점은, 내가 이 책을 너무나 기대하고 읽었는지 아니면 아직 내 내공이 부족해서 책 속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지 나에게 무언가 다가오는 것은 있었지만, 큰 기대에 비해서는 다시 아쉬운 감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쟁이 발생해서 싱클레어가 부상당하는 그런 내용 전개가 전체적인 내면을 찾아떠나는 주요 흐름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작가가 전쟁 중에 쓴 작품이기 때문일 수 있고, 반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싶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무언가 다른 마무리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아쉬움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내 삶에 대해서 나와 다시 한 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도 같았다. 조금 더 사유해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마음 속 깊이 내 모습과 마주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p75
어떤 짐승이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하지. 그게 전부야. 네가 알고 싶었던 일도 정확하게 그래.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자세히 바라봐. 그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네가 더 잘 알게 돼.

p84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통찰이 갑자기 신성한 그림자처럼 나를 뒤덮었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얼마나 깊이 거대한 사유의 영원한 흐름에 관여되어 있는가를 보고 갑자기 느끼게 되자 두려움과 경외심이 나를 압도했다. 그 통찰은 즐겁지 않았다. 그 통찰은 가혹했다. 맛이 떫었다. 그 안에는 일말의 책임의식이, 이제는 어린애일 수 없다는, 홀로 서 있다는 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p84
네가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생각한다는 걸 알았어. 하지만 그렇다면, 넌 네가 생각했던 것을 결코 그대로 완전히 다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거야. 그런데 그건 좋지 않아. 생각이란, 우리가 그걸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p115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p123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42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그리고 우리 몸이 진화의 계보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훨씬 더 멀리까지, 자신 안에 지니고 잇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일찍이 인간 영혼들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지. 그리스인들이나 중국인들에게서든 아프리카 토인에게서든 일찍이 존재했던 모든 신과 악마, 모두가 우리들 속에 함께 있어. 거기 있는 거야.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 인류가 멸종하고,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상당한 재능을 지닌 어린아이 하나만 남는다면, 이 아이는 사물들의 전체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야. 그애가 신이 되어 수호신, 낙원, 계율과 금기, 신약과 구약, 모든 것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 거야.

p147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더러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지. 그런 나무람을 그만두어야 하네. 불을 들여다보게, 구름을 바라보게.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질랑 말도록,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님 혹은 그 어떤 하느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야. 그런 물음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 그런 물음들 때문에 인도로 올라서는 것이며 화석이 되어가는 거지.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압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압락사스는 자네 생각 그 어느 것에도, 자네 꿈 그 어느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p152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사물들이지. 우리가 우리들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그들은 바깥에 있는 물상들만 현실로 생각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들 자신의 세계가 전혀 발언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한 번 다른 것을 알면,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겠다는 선택이란 없어져 버리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쉬워. 우리들의 길은 어렵고. 우리 함께 가보세.

p171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p196
우리가 의무이자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이런 것이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그것이 가져올 어느 것에나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발견할 만큼 우리들 누구든 그토록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그토록 완전히 따르며 기꺼이 살리라는 것.

p197
인류가 가는 길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일 자세였기 때문에, 오로지 그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어.
......
다만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 모든 것 너머로 그들의 종을 건져 새로운 발전 속으로 구해낼 수 있었어. 그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으려는 거야.

p200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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