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이름만으로도 압도한다. 그의 필생의 대작인 <파우스트>는 그의 이름과 제목이 주는 압박감에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 책이다. 그렇게 괴테는 나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멀었다. <파우스트>가 그가 말년에 남긴 대작이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26살의 젊은 나이에 남긴 초기작품이다. 이미 '베르테르 신드롬'이라 하여 심리학적으로 유명하기에 책을 읽지 않았지만 익히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알면서도 당한다고 하던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자연스럽게 매료되고 나 역시 베르테르에 동화되어 사랑하고 안타까워 했다. 그렇게 어려웠던 괴테가 이렇게 감미롭게 다가왔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문 귀족 집안 태생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넉넉한 중산층이었다. 아버지의 각별한 관심과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 속에서 유복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접했다. 8세에 시를 짓고 13세에 첫 시집을 낼 정도로 문학 신동이었다.
1759년 '7년 전쟁'의 결과로 프랑크푸르트에도 프랑스 군대가 들어왔다. 군정관 토랑 백작이 2년쯤 괴테의 집에 머물렀다. 이를 통해 괴테는 프랑스 문학, 미술, 연극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65년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문학과 미술 분야에도 흥미와 소질을 보였다. 1772년 베츨라에 있는 제국 대법원에서 법관 시보로 일하면서 알게 된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졌는데, 이때의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그는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이후 <친화력>, <시와 진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펴내며 활약한다.
1794년 독일 문학계의 또 다른 거장 프리드리히 실러를 만나 우정을 나누며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괴테는 80년이 넘는 생에 동안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그리고 많은 양의 서한을 남겼다. 1831년 필생의 대작 <파우스트>를 탈고하고, 이듬해인 1832년에 자택에서 운명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는 한 행정관을 알게 되고 그에게 초대를 받아서 그의 은둔처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무도회를 열었는데 베르테르도 별 마음이 없는 아가씨와 파트너로 무도회장을 가게 된다. 그리고 무도회에서 운명적인 로테를 만나게 된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맹목적인 사랑이었으며 그의 모든 것이었다. 후에 베르테르는 로테가 알베르트와 결혼한 것을 알게 되고, 로테는 베르테르와 관계에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려 한다. 베르테르는 후에 무력감과 고통 속에 빠져들고 결국은 로테의 남편인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려서 자살을 한다.
한 사람을 위한 숭고한 사랑인가? 그저 맹목적인 사랑인가?
작품 속에는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이 진하게 묻어나는 부분이 많이 등장합니다. 괴테는 1772년 23살의 나이에 베츨라에 있는 제국 대법원에서 법관 시보로 일하면서 알게 된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진 경험을 이 소설로 옮겼다고 합니다. 20대의 맹목적인 사랑과 한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랑에 빠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미 약혼, 결혼한 여자를 사랑하고 어쩔 수 없는 사랑에 대해 결국은 스스로 삶을 마쳤다는 부분입니다. 너무나 사랑해서 주체할 수 없어 가질 수 없어 결국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눕니다. 이렇게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은 슬픔으로 마감을 합니다.
p55
나는 로테의 눈을 찾고 있었는데, 아아, 그녀의 시선은 다른 이들을 향하는 게 아닌가! 오로지 그 눈만을 찾는 나! 나! 나! 우두커니 홀로 선 나에게만 오지 않았네! 내 마음은 몇 번이고 그녀에게 안녕을 고했지만 그녀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네. 마차는 결국 떠났고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네. 떠나가는 마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로테의 머리 장식이 마차 문 밖으로 보였네. 아아!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군. 혹시 나를 보려고? 친구여, 이 불확실함 안에서 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네. 유일한 위안이라면 그녀가 날 뒤돌아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네. 어쩌면 말이지! 좋은 밤 되게. 나야말로 정말 어린애 같지 않은가!
p59
아아, 우연히 내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스치고 식탁 아래서 우리의 발이 닿으면, 내 온몸의 혈관이 요동친다네!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손발을 재빨리 움츠리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또다시 나를 앞으로 잡아끈다네. 모든 감각들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 같다네. 오! 그런 작은 친근감의 행위가 날 얼마나 괴롭히는지 그녀의 순수하고 천진한 영혼은 알지 못한다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 손을 내 손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내게 몸을 밀착하기도 해서 그녀의 천국과도 같은 입김이 내 입술에 닿기라도 할 때면, 정말이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쓰러질 것 같다네. 빌헬름! 만약 언젠가 내가 이 천국을, 이 신뢰를 얻게 되는 날이 온다면! 이보게 자네는 내 말뜻을 이해할 걸세. 아니, 그렇게 타락한 마음이 아니라네. 그저 의지가 약할 뿐이네! 의지가 약할 뿐이야! 그런데 그것이 바로 타락이 아니겠는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출퇴근길, 그리고 자기 전까지 모두 읽었다. 흡입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처음에 베르테르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다시 제3자의 입장으로 전개되는 방식 또한 흥미롭게 다가왔다. 매일 편지를 쓰는 식으로 날짜를 이렇게 표시해 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자연스럽게 내용이 연결되고 중간에 한 번씩 숨을 고를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었다. 20대의 괴테는 충분히 젊은 매력이 흐른다. 이제는 그의 필생의 대작인 <파우스트>를 통해서 70대 노년의 괴테를 만나보고 싶다.
p18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소비하고, 조금이라도 자유가 생기면 불안해지면서 그 시간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네. 오, 인간의 운명이란!
p20
아이들은 스스로가 무엇을, 왜 원하는지 모른다고 학식 있는 선생들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네. 하지만 어른들도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이 땅 위를 거닐면서 자신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네. 또한 확고한 목표를 좇아서 행동하기보다는 비스킷과 케이크, 그리고 자작나무 회초리의 지배를 받고 있어. 누구도 이런 말을 믿고 싶어 하지 않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네.
p34
저는 책 속에서 나의 세계를 재발견할 수 있는 작가가 가장 좋아요. 제 삶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제 가족의 삶처럼 흥미롭고 정이 넘치는 이야기를 묘사하며 이야기를 쓰는 그런 작가 말이에요. 우리의 삶이 낙원 같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행복의 원천인걸요."
p40
나도 두 번이나 뺨을 맞았는데 다른 이들보다 더 세게 때리는 듯해 은근히 기뻐했네.
p42
그 이후로 해와 달과 별은 변함없이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었지만 나는 도무지 낮과 밤을 분간할 수 없었네. 내 주위의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일세.
p49
인생의 한창 좋은 시절 모든 기쁨을 받아들여도 모자랄 젊은 친구들이, 전성기를 망치고 나중에 가서야 그 어리석음을 깨닫고는 소중한 순간들을 보상받는 게 불가능하단 걸 깨달을 때엔 이미 늦어 버린다네.
p55
나는 로테의 눈을 찾고 있었는데, 아아, 그녀의 시선은 다른 이들을 향하는 게 아닌가! 오로지 그 눈만을 찾는 나! 나! 나! 우두커니 홀로 선 나에게만 오지 않았네! 내 마음은 몇 번이고 그녀에게 안녕을 고했지만 그녀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네. 마차는 결국 떠났고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네. 떠나가는 마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로테의 머리 장식이 마차 문 밖으로 보였네. 아아!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군. 혹시 나를 보려고? 친구여, 이 불확실함 안에서 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네. 유일한 위안이라면 그녀가 날 뒤돌아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네. 어쩌면 말이지! 좋은 밤 되게. 나야말로 정말 어린애 같지 않은가!
p59
아아, 우연히 내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스치고 식탁 아래서 우리의 발이 닿으면, 내 온몸의 혈관이 요동친다네!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손발을 재빨리 움츠리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또다시 나를 앞으로 잡아끈다네. 모든 감각들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 같다네. 오! 그런 작은 친근감의 행위가 날 얼마나 괴롭히는지 그녀의 순수하고 천진한 영혼은 알지 못한다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 손을 내 손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내게 몸을 밀착하기도 해서 그녀의 천국과도 같은 입김이 내 입술에 닿기라도 할 때면, 정말이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쓰러질 것 같다네. 빌헬름! 만약 언젠가 내가 이 천국을, 이 신뢰를 얻게 되는 날이 온다면! 이보게 자네는 내 말뜻을 이해할 걸세. 아니, 그렇게 타락한 마음이 아니라네. 그저 의지가 약할 뿐이네! 의지가 약할 뿐이야! 그런데 그것이 바로 타락이 아니겠는가?
p83
인생의 꽃도 그저 환상인 거지! 얼마나 많은 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가! 그중 얼마나 적은 수의 꽃들만이 열매를 맺고 또 그중 얼마나 적은 수의 열매가 무르익을 수 있겠나! 하지만 그렇게 무르익은 열매도 많다네. 오, 친구여! 우리가 그 무르익은 열매를 무시하고 먹지도 않은 채 썩어가게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p98
우리는 곧잘 스스로 부족한 것이 많다고 느끼며, 우리에게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것까지 모두 줘 버리고는 그 어떤 이상적인 만족감까지도 덤으로 준 것 같은 생각이 드네. 이렇게 해서 가장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일세. 사실 이건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존재에 불과하지.
반면에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또 일이 힘들다 하더라도 우리가 일에 매진해 오로지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우리의 걸음이 아무리 느리고 어슬렁대며 갈지자로 걷는다 할지라도 돛과 노를 갖춘 다른 사람들보다 멀리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해지거나 아니면 그들보다 앞서 나아감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자신감과 존재감을 갖게 되는 걸세.
p108
태양은 하얀 눈으로 반짝이는 세상을 뒤로한 채 장엄하게 가라앉고 있습니다. 이젠 거친 폭풍우도 멎었습니다. 나는 새장 속으로 다시 돌아가 스스로를 거두어야 합니다.
p129
나는 가끔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네. 내가 그녀를 이토록 사랑하고 있는데, 나는 오직 그녀만을 진심으로, 이렇게 넘치는 애정으로 마음속 깊이 흠모하고 있는데, 이 세상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p146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라네. 그녀는 나를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네.
p148
로테는 깨닫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신과 나를 파멸시킬 독약을 스스로 준비하고 있다네. 그런데도 나는 그녀가 나의 죽음을 위하여 내미는 술잔을 나는 서슴없이 오히려 즐거워하며 받아 마신다네. 그녀가 나를 자주 아니,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보내는 그 다정한 눈빛, 나도 모르는 사이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표정이나 지어도 그걸 받아 줄 때의 그녀의 배려심, 그리고 내 슬픔에 대한 연민이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빛은 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어제는 내가 떠나려고 하는데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네.
"잘 가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사랑하는 베르테르! 그녀가 나에게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네. 그 말이 내 뼈에 사무쳤다네. 나는 이 말을 수백 번도 더 되뇌어 보았다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도 혼잣말로 중얼댄 끝에 "잘자요, 사랑하는 베르테르!"라는 말이 튀어나왔네. 그러자 나는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워서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네.
p164
베르테르의 마음속에서는 불만과 슬픔이 갈수록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두 감정은 서로 얽히고설켜 그의 존재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고, 그의 정신적 조화는 완전히 깨져 버렸습니다. 마음 속의 흥분과 격정은 그가 가진 본성의 모든 힘을 뒤죽박죽 엉망으로 만들어 버려 가장 최악의 결과를 낳았으며 결국 이 모든 것은 그를 탈진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p174
그러다 검은 구름 속에 가려 있던 달이 얼굴을 내밀자 끝없이 일렁이던 물바다가 내 앞에서 섬뜩하리만치 달빛을 반사하면서 요란하고 무서운 물소리를 울려 대며 흘러갔네. 순간 왠지 모를 전율과 그리움이 나를 엄습했다네! 나는 양팔을 활짝 벌리고 심연을 향해 서서 심호흡을 했다네.
'뛰어내려! 아래로! 저 아래로!'
p176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난 것 같네! 감각이 혼란스럽고 정신이 혼미한 것이 벌써 일주일째라네. 무엇이든 제대로 생각할 수 없고,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네. 그 어디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고, 또 어디에 있다 해도 상관없다네. 난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네. 차라리 떠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싶네.
p177
늘 내 앞에 살아 숨 쉬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운명, 그리고 내 운명을 향한 그녀의 연민은 다 타 버린 내 마음에서 아직도 마지막 남은 눈물을 짜낸다네. 커튼을 걷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모든 것은 그것으로 끝장이야!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주저하고 망설이는가? 커튼 뒤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서? 아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서? 우리가 그 무엇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혼란이고 암흑만 있을 것이라 여기는 게 우리 인간들의 본성이겠지.
p181
"당신은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의도적으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려 한다는 것을 모른다고 할 건가요? 베르테르, 왜 하필이면 저를, 이미 다른 남자의 몸이 된 저 같은 여자를? 저는 두려워요. 정말 두려워요. 저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당신의 그런 소망을 더욱 자극하는 건 아닐까 해서요."
p188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뭐라고 분명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그를 자기 사람으로서 곁에 간직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마음속 깊이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그를 붙잡을 ㅅ ㅜ없으며 붙잡아서도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