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영 작가의 《책만 보는 바보》 에서는 조선 후기 정조시대 박지원의 사랑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백동수와 같은 계급에서 소외받았던 이들이 등장하면서 시대에 대해 고민하며,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며 세상이 변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 《갑신년의 세친구》에서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의 사랑에 그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모여들어 세상의 변화를 꿈꾼다. 이들은 당시 유력한 가문의 자제들인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이었다.


19세기 후반 조선 안팎의 정세는 혼란스러웠고, 기존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변혁의 시기였다. 조선은 서구 열강의 개화의 압력을 받았고, 청나라와 일본이 서구의 문물을 수용하고 변혁의 물결 위에 있을 때 그 흐름에 편승하지 못했다.  당시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은 일본을 방문하면서 선진화된 문물에 빠져들고 조선에도 개혁을 이루기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은 쉽게 그들의 뜻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임오군란(1882년 7월 20일)으로 그동안 참아왔던 백성들은 일어나고 흥선대원군은 다시 정계에 복귀한다. 하지만 또 다시 청군에 의해 납치되고 다시 왕비와 외척인 민씨 집안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다. 당시 중전과 외척들은 청나라를 뒷받침으로 해서 개혁을 원했다. 하지만 김옥균을 비롯한 젊은 이들은 일본의 지원에 힘입어 개혁을 원했던 급진개화파들이었다.


1884년(고종21년) 12월 4일 김옥균과 급진개화파들은 당시 홍영식이 총판로 있던 우정국 청사 완공 기념 연회를 거사의 날짜로 정하고, 청사 옆에서 피어오르는 불을 신호로 해서 집권세력들을 제거하고, 왕과 왕비에게는 난리가 일어났다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보호를 위해서 일본군에게 요청한 지원군으로 개혁을 완성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개혁은 불과 3일 동안에 불과했고, 그들의 개혁인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버렸다. 갑신정변의 개혁주도세력은 개혁의 젊은 혈기는 좋았으나, 일본을 바라본 순진한 생각과 청나라 군사들이 오지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 경운궁에서 군권을 장악하기 전에 왕과 왕비의 거처를 다시 옮기게 하는 등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당시 김옥균은 백성의 힘을 업은 채 시도한 개혁이 아니고, 일본의 군대에 의존한 개혁이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또한 일본의 적극적인 지원만을 믿고 있었던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당시 일본은 단지 장기적인 조선 침략 시나리오의 일환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안남(베트남) 지역을 두고 프랑스와 청나라의 갈등으로 조선에 있던 청군이 안남 지역으로 이동해서 청군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는 개혁세력의 안일함을 드러낸다. 또한 개혁의 주축 세력이 당시 고위 집권 세력의 자제들이었다는 점에서 아래로 부터의 개혁에 대한 뿌리와 힘을 갖지 못한 부르주아적 개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결국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갑신정변의 주요 인물이었던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홍영식은 전하 곁에 끝까지 남아서 성공하지 못한 개혁이지만 그들의 뜻을 전하겠다며 남게 되며, 관군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김옥균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후에 청의 리홍장을 만나기 위해 상하이로 갔을 때 자객의 총에 의해 생을 마감한다. 정변당시 민씨 집안에 원한을 사서 그들이 보낸 자객에 의한 마지막이었다. 1894년 3월 28일이었다.


박영효는 일본에서 서재필, 서광범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고, 1894년 8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갑오년 개혁이 일어나면서 다시 조선으로 와서 그의 뜻을 펼쳐 보기도 한다. 1910년, 조선은 일본에 강제 병합되고 협력한 조선인들에게 일본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이 지급되었는데, 박영효는 후작 지위와 수십만 엔의 상금을 받았다. 또한 산업과 언론, 경제계에서 실속있고 명망있는 지위를 누리며 삶을 보냈다.


갑신정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일본을 우리의 개혁을 위해 먼저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이는 후에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고, 개혁의 주요인물이었던 박영효가 그 병합에 일조를 하면서 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근대적인 개혁의 시발점이라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다. 김옥균이 만든 갑신정변 14개조에는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고, 정령의결과 반포를 기존의 왕이 아닌 대신들의 의결체에서 진행하는 등의 근대적 개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후에 갑오개혁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역사의 연장선의 가장 끝부분에 서 있으며 그것 역시 이렇게 글을 쓰는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필연이던 우연이던 여러 사건들이 모여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한 권 한 권 역사책을 읽어갈수록 깨닫는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개혁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며, 위기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배울 수 있으며, 역사 속의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상황만 다를 뿐 현재에 그대로 재현된다는 점을 다시금 느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쩌면 훗날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급변하는 시대의 중심이며,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분명 개인적인 삶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시대의 흐름을 체감하며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기를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앞으로의 내 역사적 삶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때 의미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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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천명관이 단편집을 발표했다. 그는 벌써 이 문단에 들어온지 1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이 분야는 자신에게 어색하다고 표현한다. 소위 충무로에서 영화 업(業)에 종사하다 불혹의 나이가 되어 문단에 데뷔한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 읽을 때 마다 마치 영화를 한 편 보는 듯 하다. 


처음에 그의 작품 <고래>를 처음 접하고 지금 껏 읽어오던 소설과는 다른 느낌과 장대한 서사에 빠져들었고 항상 다음이 기다려졌다. 이후 출간된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리> 도 단연 천명관의 진가를 드러내며 이야기의 향연을 펼친다. 그는 분명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내가 생각하는 천명관 작가의 매력은 짧지 않은 책 속에서도 서사의 흐름이 끊이지 않으면서 글을 읽는 이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편집이란다. 나는 아직 단편을 읽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장편소설, 대하소설 처럼 서사를 이루는 것을 주로 읽어오다 보니 이상하게 단편은 잘 손에 잡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민음사의 《한국문학단편선1》에서 김유정의 <동백꽃>을 읽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이 단편을 읽으면서 짧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 짧지만 아이만의 순수함과 내면의 묘사도 훌륭할 뿐 더러 당시 시대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해준다. 그 때 '아, 이게 단편을 읽는 재미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천명관의 단편집을 만났다. 8편이 수록된 단편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책의 겉표지 뒷면에 영화감독 장항준이 이 단편집에 대해 남긴 글을 보았다. 8편을 꿰뚫는 표현을 아주 훌륭하게 해준다.


어느 순간 인생이 꼬였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디에서부터 꼬였는지 알 수 없지만, 한번 꼬이기 시작하니까 계속 꼬이는 것도 같은데, 그게 또 어떻게 더 꼬일지 모르니까 불안하지만 궁금하고 재미있고 기대도 하게 된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나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따뜻한 유머를 배웠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한 판 살다 가는 거지." 삶에 지치고 사는 게 막막해도 웃음을 지키려는 그대여, 천명관이 건네는 통쾌한 술 한 잔 받으시라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우리 사회에서 직업적 혹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섬에 사는 사람,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 일용직 노동자, 대리운전기사, 불치병에 걸렸지만 치료비가 없는 이들과 같이 실제 우리 주변에 우리가 만나는 이들이 작품 속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아픔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들을 가만 놓아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꼬여만 간다.  어쩌면 작가 천명관은 이 단편들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작품들이 하나 하나 매력이 있지만, 책을 덮고 나서 기억에 남는 단편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와 <핑크>였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는 제목 그대로 일용직 노동자 경구와 칠면조가 등장한다. 경구는 일용직 노동자로 냉동창고 일을 배정받아 일을 하고 집을 돌아오면서 같이 차에 탄 동생이 집에 가서 먹으라며 칠면조를 건낸다. 꽝꽝 얼은 무거운 칠면조를 들고 식당에 가서 소주 한잔을 먹고, 다시 들고 와서 집으로 향하던 중 빚을 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칠면조는 아이들을 주어야 겠다는 사랑의 표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무서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 칠면조가 등장하는 게 다소 생뚱맞아 보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게 더 매력인지 모른다.


고기는 질기고 소주는 쓰지만, 인생은 그마저도 달달하게 느껴질 만큼 쓰디쓰다.


<핑크>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자의 옷의 색깔이다. 대리운전 전화를 받고 운전을 하러 간다. 차에는 나이대를 알지 못하는 뚱뚱한 어떤 여자가 핑크색 옷을 입고 눈만 나올 정도로 머플러를 하고 있다. 목적지는 어느 저수지였다. 운전을 하면서 그 여자가 점점 궁금해진다. 그러던 중 차 안의 가방에서 갑자기 고양이가 튀어나오기도 하면서 깜짝 놀란다. 트렁크에서는 어떤 이의 시체도 보인다. 이 단편은 이 말로 끝난다.


오래 전 그의 아내가 그렇듯이


왜 고기보다 질기고 소주보다 쓴 인생일까?, 오래 전 그의 아내는 어떠했기에? 

천명관을 짧은 단편들 속에서도 많은 걸 담아놓았다. 특히 이번 단편집은 스릴러의 냄새가 나기도 하며, 우울한 느낌도 나며, 때로는 풋! 하며 웃게 만드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어 200 쪽의 짧은 분량이지만 두터운 향내가 베어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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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지 않은 책에서 우리 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대서사시를 만날 수 있었다.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만수의 가족을 통해서 일제강점기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과 우리의 삶의 단편을 보여주면서 큰 흐름으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만수네 가족들을 간단히 소개해보려한다. 아마 가족을 소개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 읽는 이에 따라 작중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은 그 때의 아련한 생각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김용식 (만수의 할아버지)

- 낙동강 유역에 있는 상산군의 큰 부잣집 삼대독자. 어렸을 때 신식 학문을 배우고, 서울로 가서 고등보통학교, 경성제대 예과에 들어갔다. 예과를 마치고 나서 전공으로 법문학부 철학과를 택했고. 당시 친구들과 독서회를 만들었다. 그 독서회는 해외의 독립운동단체에 협력했다며 일본 경찰에 붙들력 가기도 했다. 후에 집안은 풍파가 일어났다. 후에 빚을 피해서 가족들을 이끌고 '개운리'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다.


만수의 할머니

- 김용식과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아들인 사대독자 충현을 키우며 살아가며 편안한 생활을 하지만, 남편의 독립운동 혐의 이후에 힘든 삶을 살아간다.


김충현 (만수의 아버지)

- 아버지와는 다른 성격이었고, 그래서 아버지와는 항상 갈등을 겪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는 다른 일들에 관심이 많았고 화전민의 딸인 아내와 결혼해서 억척같이 일하며 농사꾼으로 살아간다. 스무살때부터 가장이 되어 3남 2녀의 자식을 두고 살아간다.


백수 (김용식의 첫째 아들)

- 백살까지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태어날 때 부터 영특하게 태어나고 할아버지에게 배우면서 장남으로서 한 기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부터 다른 도시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한다. 후에 우리나라의 최고의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된다. 집에서는 소를 팔아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주고,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 일을 하고 피를 팔기도 한다. 결국에는 월남전에 지원입대를 하고 안타깝게 그곳에서 죽게 된다.


만수

- 태어날 때 부터 힘들게 태어나서 자라면서도 남들보다 늦고 어리숙하게 자라난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굳은 일을 거의 맡아서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와 다니던 회사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투쟁을 하고 자신보다는 가족과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간다. 후에 자신의 친구는 노동운동으로 경찰에 잡혀가고 그와 인연이 있던 진주의 힘든 사정을 봐주다가 결혼을 하고 연탄가스를 마시고 장애가 생긴 동생 명희와 석수의 아들 태석을 키워며 함께 살아간다.


금희 (만수의 큰 누나)

- 어렸을 때는 엄마와 함께 집안 살림을 하면서 살아간다. 시골에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가 당시 열악한 환경의 재봉공장에서 취직을 해서 일하게 된다. 후에 오빠가 사준 재봉틀로 일을 해서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마련해주고, 결혼을 해서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간다. 결혼을 해서 마음놓고 친정을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이 쓰리기만 하다.


명희 (만수의 둘째 누나)

- 어려서 언니와 함께 집안 살림을 하고 후에는 언니를 도와 일을 합니다. 그러다 어느날 저녁에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버린다. 정신연령이 어린 아이가 되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석수 (만수의 남동생)

- 어려서 부터 어리숙한 만수를 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수는 동생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원해준다. 석수는 군대문제 때문에 일단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공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공활을 하면서 영주를 알게 되고 동거를 한다. 영주는 운동권의 핵심 멤버 였고, 석수 역시 그렇게 간주되어 정보기관에 끌려와 고문을 받고 나중에는 정보기관의 편에 서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주는 석수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 태석을 자신의 앞 날을 위해 석수의 형인 만수에게 맡긴다.


옥희 (만수의 막내 여동생)

- 오빠인 만수의 지원으로 국립대를 졸업한다. 야학을 하면서 노동을 운동을 하던 강철원을 만나게 되고, 강철원의 강제적인 겁탈에 의해 임신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후에 오빠의 지원으로 식당을 하게 되고, 식당으로 큰 돈을 번다. 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던 남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이 번 돈으로 예전에 인연이 있는 여자와 외도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태석 (석수의 아들)

- 어려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내적 반항심이 가득한 아이로 커 나간다. 자기 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고, 이로 인해 길러주는 엄마 진주의 말은 듣지하고 반항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 친구들의 집단괴롭힘으로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되고, 자신의 장기 신장을 그의 어머니에게 기증한다는 유서를 남긴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마친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소개만으로 이야기의 얼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이지만 우리와 부모들의 삶을 그린 글이기에 이야기는 자연히 우리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부모님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어른들에게 들었던 사연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옛 방송들의 그림들이 그려진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요사건들과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일제강점기의 모습, 6.25전쟁, 군사정권, 여자들의 방직공장에서의 고된 노동, 우골탑이라고 불리던 대학의 모습, 군사정권에 대한 학생운동, 노동운동, 월남전참전과 DDT에 대한 피해, 군사정권 시대의 고문, 기생충검사, 잡곡혼식, 구속과 억압의 여성들의 삶, 자본가들의 욕심, 노동자들의 투쟁과 절규, 과도한 사교육, 학교폭력


이렇게 하나 하나 만으로도 사연이 깊게 베어있는데 <투명인간>에서는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서사시를 완성시켜준다. 그리고 제목인 <투명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작 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떻게 평범한 이들인데, 그들의 삶에는 아픔과 시련이 그대로 베어 난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삶의 굴곡이라고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작품 속에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은 개인들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무분별한 개발과 그에 따른 물질만능주의 팽배가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투명인간은 어쩌면 이런 사회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소외되고,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힘과 자존감의 상실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분명 개인에게도 이러한 책임은 있지만, 그 배경에 펼쳐져 있는 사회적 모순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어떤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사회적 맥락이라는 틀을 통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투명인간은 개인의 자존감 확보와 불합리한 사회적 원인들의 개선이 있다면 점차 그 투명함은 사라지고 개개인의 독특한 삶으로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바꾸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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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갈수록 궁금한 게 많이 생긴다. 무엇인가 조금 알게 되면 반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무엇이 궁금하고, 내가 속해 있는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서 돌아가는지, 내가 먹고, 자고, 입고하는 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서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또 빠져나가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왜 이렇게 잔인한지, 운명은 존재하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신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삶이란 풀지 못하는 궁금함을 자기 나름대로 풀어나가면서 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과연 나는 어떤 사회 속에서 살고 있을까?

운명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태어난다. 누군가는 복지국가에서 따뜻한 부모 속에서 자라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태어나자 마자 먹을 것이 없는 빈곤한 국가에서 태어나서 가녀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지도 모른다. 이런 불합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세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 뜻대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올바른 삶일까, 아니면 자신은 위험하고 힘들더라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올바른 삶일까.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풀리지 않고 답이 없는 질문을 다시 해 본다.

얼마 전에 <제주4.3을 묻는 너에게>를 읽은 다음에 느낀 감정과 유사하다. 일부러 이런 작품을 찾아 읽은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 손에 잡히게 되었다. 이런 책들이 나를 선택해왔다. 기억하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 뒤돌아보라고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는 작가 한강이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던 분들과 유가족들을 인터뷰하고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들여 내놓은 작품이다. 작품을 쓰는 내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 슬픔은 책에 고스란히 닮겨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고스란히 가슴을 건드린다. 어떻게 이렇게 타자의 아픔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작가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된다.

 

작가는 인터뷰를 하면서 한 유가족에게 글로 써도 되냐고 물어 봤다. 유가족은 말한다.

 

p211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기에 나는 잘 모르는 사건이다. 반대로 불과 50년도 안 된 기간에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내가 알아야 하는 사건이다.

읽는 내내 많이 아팠다. 정말 '잘 써주셨다' 라고 말해드리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글로 풀어낼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슬픔, 분노, 아쉬움, 아픔, 안도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때로는 복합적으로 다가와서 눈이 아프기도 했고 숨을 잠시 멎어가며 한 문장을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기도 했다.

 

p51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작중 정대가 죽고 난 후 영혼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누가 자기를 죽인 것인지. 16살의 중학생이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빨갱이라고 신군부는 국민을 시민을 살상한다. 무장 군인들이 들어오고 탱크가 들어오고, 헬기까지 동원된다. 자신들의 권력쟁취를 위해서 어린 학생들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당시 광주시민이 40만명이었는데 군인들에게 지급된 총알이 80만발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했고 무서웠다.

 

잔인한 1980년 5월은 지나갔지만, 그 이후로는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철저하게 고문당하고 당국은 이들을 북한에 지원하는 빨갱이로 연결시키기 위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낸다. 인권이라는 건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이들은 우선 연행된 학생들과 시민들을 정신적으로 바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려 한다.

 

P118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쳐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죽,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어디 이뿐이랴. 이후 학생들과 시민들은 마치 가슴에 주홍글씨가 찍히듯이 그 이후 취업이나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고 사실 상 온전한 사회생활이 되지 않았으며 시도 때도 없는 경찰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 날의 끔찍한 기억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을 자더라도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경제적 정신적 고갈로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5월 광주에 진압을 시도하던 경찰들이 모두 잔인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들 역시 군대라는 조직에서 상부의 명령을 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다. 쉽지 않다. 상부가 명령을 내리고 책임을 진다. 라고 할 경우 아마 나 역시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중에서는 다친 학생들을 몰래 숨겨둔 공수부대, 발포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의도적으로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진압시 군가를 부를 때 눈물을 흘리며 두 입을 다문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잔인한 5월 광주에서 그나마 조금의 위로가 된 것은 이런 이들도 존재했다는 안도감일지 모른다.

 

다 읽고 나서 프레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생각났다. 나치의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잔인함과 신군부의 광주가 철저하게 겹쳐진다. 작가는 아쉬워하고 불안해한다. 사람에게는 이런 잔인한 유전자가 박혀있어 반복할 수 밖에 없을까. 개척시대의 원주민에 대한 무차별한 학살, 나치의 아우슈비츠, 난징대학살, 제주4.3, 5월 광주는 분명 같은 무엇인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 두려워한다.

 

우리는 분명 이런 일이 일어난 후 잊지 말고 반복하지 말자고 한다.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다같이 말한다. 하지만 그런 동의 속에서도 유사하게 사건은 다시 일어난다. 1980년의 5월의 광주는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도 발생해 버렸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에 대한 대답은 나 역시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 단지 5월 광주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킨 학생들의 가슴 속에 담겨있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한 아직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희망을 기대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P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상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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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북섹션은 신간을 소개받고 책을 구매하는데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매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되면 일간지들에서는 신간을 소개하고 주목되는 책들에 대한 서평이 올려온다. 각 일간지들의 책 소개는 베스트셀러만을 홍보한다는 느낌은 그다지 많이 받지는 않았다. 북섹션 담당자의 안목과 주제별로 소개해주는 구성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신문의 북섹션보다는 독서관련 팟캐스트가 책을 선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지금 매주 청취하는 독서관련 팟캐스트만 해도 5개 정도는 된다.

MBC라디오의 <라디오 북클럽 방현주입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김동진의 빨간책방>, 출판사 창비의 <라디오 책다방>, 출판사 문학동네의 <문학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덧붙여진 것이 서점인 교보문고의 <낭만서점> 이렇게 다섯종류를 즐겨 듣는다.


<낭만서점>은 정이현 작가와 허희 문학평론가가 진행을 한다. 정이현 작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의 책은 아직까지 한 번도 읽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그녀의 책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어떤 책들은 제목만으로 소재만으로 내 관심을 끌어서 쉽게 선택을 했는데 정이현 작가의 책은 지금껏 나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 인연을 팟캐스트가 이어주었다. 목소리를 듣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고, 방송을 들으면서 정이현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껏 그녀가 출간한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 한 권을 선택했다. 바로 <안녕, 내 모든 것>이다.


<안녕, 내 모든 것>은 각자 나름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 친구 세미, 준모, 지혜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미는 복잡한 가정사에 의해서 조부모와 함께 살고, 준모는 틱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틱의 증세는 욕으로 튀어나왔다.

지혜는 부모가 모두 대학교수이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머리 속에 많은 기억이 그녀를 힘들게 한다.

등장인물들은 어린 나이부터 아픔을 가지고 있고 가슴에 하나씩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주어진 상처로 그들은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그저 살아간다.


세상을 살면서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예를 들면 신은 존재하는가? 와 같은 질문입니다. 과연 운명이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도 해본다. 자신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사고로 인해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고, 선하고 착한 사람이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은 태어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장애와 같이 아픔을 가지고 태어나는 친구들도 있다.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안녕, 내 모든 것>의 인물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아픔들을 가진 이들이 제 주변에도 있기에 소설이지만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살면서 힘이 들고 버티고 참아야하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민의 여지가 남아버리는지 옆에서 간접적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세 친구는 언제나 함께할 듯 하지만, 준모는 치료를 위해 덴마크로 가기로 하고 지혜와 세미도 서로 자연스럽게 만남이 쉽지 않게 된다. 이런 세 친구는 서로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새로 이사간 세미의 집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낸다. 그 다음 날 아침, 그곳에서 세미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들은 그들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된다.


P228

할머니에게 비밀을 선물한 댓가로, 우리 셋은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우리만의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는 친구들과 꼭 나누고 싶었는지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비밀은 지켜졌고, 나와 지혜와 준모는 다시 모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다.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인 거였다. 준모도 지혜도 어딘가에 혼자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아무리 우스운 영화를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 원래 다 그런 거라고들 말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


여기서 안녕, 내 모든 것을 중얼거린 이는 세미다. 하지만 아마도 준모와 지혜도 함께 말했을 것이다.  그들의 '내 모든 것'은 아마도 과거 기억일 것이다. 기쁨과 행복보다는 아픔과 상실이 더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반가움에 안녕이 아닌, 떠나 보냄의 안녕일 것이다. 떠나 보냄에 대한 후련함도 있을테지만 아픈 기억이라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는 안녕인 듯 하다. 나는 그 안녕이 너무 아쉽다. 


소설은 처음과 끝은 과거가 아닌 지금의 지혜의 관점에서 시작되고, 이야기의 전개는 세미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세미가 지혜를 찾아온다. 할머니의 무덤을 찾아달라고 하지만 지혜는 결국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지혜가 기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기억하지 못함이 다행이다. 그들이 그렇게 안녕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이 소설은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니, 가슴에 먹먹함이 많이 남는다. 그들의 아픔을 해소하지 못하고 끝내버리는 거 같아서 불편한 마음마저 든다. 서울 강남 배경으로 해서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을 것 같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소설 속 이야기지만 어쩌면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인 듯 해서 쉽게 읽힌거와는 다르게 여운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P88

"학생은 꽃이에요, 절벽에 핀 풀꽃. 잊고 잊히며 살아야 해요.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오래 안고 가지 말아요. 무슨 일이더라도."

잔디밭에서 아무 풀도 짓밟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처럼 여자는 조심조심 말하고 있었다.

"사무쳐도, 아파도, 다 흘려보내요. 내 것이 아닌 듯, 그러면 꺾어지도 밟히지도 않을 거예요."


P100

나는 갤러리아백화점의 쇼핑백 손잡이를 한쪽 손목에 걸고, 다른 쪽으로 고모의 팔짱을 꼈다. 아무리 애써도 영원히 빼지 못할 것처럼 꼭 꼈다.


P143

"준모야, 내가 잘 생각해봤거든. 그런데 한 사람이 죽어간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거잖아. 그렇지?"

"글쎄, 아마도."

"마지막이라는 건, 다시는 못 보는 거잖아. 평생 사랑했던 사람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을."

"........"

"나라면, 마지막 순간에는, 보고 싶은 사람들만 볼 거야.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만."

입안에 시큼한 침이 고였다.

"내가 나타나면 할아버지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실 거야. 한 사람의 마지막 기분을 그렇게 뒤죽박죽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세미야."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면 언제고 나는 부풀어질 공간이 남아 있는 노란 풍선처럼 가슴이 두근 거린다.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응?"

"다음에 너 아주 급할 때, 아무도 없으면 나 한 번 불러라."

나는 가까스로 털어놓았다. 세미가 픽 웃었다.

"네버. 넌 삐삐가 없잖아."

"살 거야."

"언제?"

"오늘."

그녀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바보야, 너 멀리 갈 거 잖아."

"안 갈수도 있어."

그녀가 이번 엔 히히히 소리 내어 웃었다.

"아무튼 바보. 얼른 가. 잘 가."

"넌?"

"난 로비에 좀 앉아 있다가 갈게."


P149

실온에 오래 방치해둔 아이스크림처럼 심장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P174

불행은 틈을 주지 않고 들이닥친다. 해석하거나 납득하려 들 필요는 없다. 해석되지도 납득되지도 않는 것, 그것이 불행이 가진 본성이니까.


P238

튀어나오는 대로 다 붙잡고 싶은데, 손의 속도가 기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손의 속도는, 기억의 속도보다도 말의 속도보다도 느렸다. 그 틈새에 깃든 고요함에 대해 나는 아주 천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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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 홍세화가 이 당시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저자 홍세화는 1972년 대학교 재학 시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다가 1977-1979년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했습니다.. 1979년 다니던 무역지사의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합니다.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2002년에 귀국하게 됩니다.


이 책은 저자 홍세화가 당시 택시운전을 하게 된 계기와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은 경험과 생각 등을 엮어낸 수필입니다.  망명 생활 동안의 그의 내면적인 고뇌가 드러나며 그 속에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똘레랑스] 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똘레랑스]란 무엇일까요? 저자 홍세화가 왜 그토록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부러워했을까요?


p349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입니다. 흔히 말하듯 한국 사회가 '정(情)'이 흐르는 사회라면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정'의 뜻을 다른 나라 말로 옮기기 쉽지 않듯이,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한마디의 우리말로 옮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의 사회적 의미는 애매한 반면, 똘레랑스의 사회적 의미는 명확하답니다. 우리의 '정'은 감성의 표현인 것에 비하여 똘레랑스는 이성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입니다.' 프랑스 사전에는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 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그가 부러워하고 원했던 사회는 바로 차이를 인정하는 똘레랑스의 프랑스 문화였습니다. 차이를 '틀리다'의 개념이 아닌 서로 '다르다'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우리나라가 군사정권의 시대였기에 그 갈증은 목이 타들어가도록 심했을 것입니다. 


20~30년이 지난 우리 사회는 그 차이를 여전히 '틀리다'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틀리다'라는 것은 사람들이 없애거나 고쳐야할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갈등은 이렇게 시작하는 법입니다. 의견과 사상의 차이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이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 의견과 사상이 문제의 대상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틀림'의 대상으로 올려놓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그 '틀림'이라는 이식으로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장과 사상의 논쟁의 시시비비는 따질지 몰라도 그것으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똘레랑스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p138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 주의 주장 또는 사상을 일단 그의 것으로 존중하여 받아들인 다음, 논쟁을 하여 설득하려고 노력하는데 비하여 우리는 나의 잣대로 상대를 보고 그 잣대에 어긋나면 바로 미워하고 증오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는 독자는 곧 이해하게 되겠지만 그 같은 독선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뼈져리게 느끼고 있던 나조차 그 함정에 빠져 베르트랑을 미워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베르트랑과 나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한다.

이렇게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선, 즉 설득하는 사회에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축출하지 않으며 깔보지 않는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않고 대신 까페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말이 많고 말의 수사법이 중요시 했다."


우리는 정(情)이 통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은 어쩌면 우리들이 속한 집단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정이 타인과 타집단에 관통한다면 그것이 감성의 똘레랑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근현대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차이라는 것은 '틀림'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왔고 어쩌면 내면 깊숙히 무의식 속에 아로 새겨져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잃거나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역사는 자연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나와 우리를 위해 타인과 타집단을 인정하지 않게된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그런 아로 새겨진 가슴 아픈 인식을 조금씩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우리 사회로 똘레랑스가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가슴의 생채기가 조금씩 치료되고 사회의 상처가 아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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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4월 25일 ~ 2013년 2월 14일

작년 4월에 1권을 손에 잡고 거의 10개월 만에 완독을 하게 되었다. 정말 대장정이었다.
처음에는 책이 쉽게 잘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5권은 한 달 이내에 읽었으니 그 당시의 내 관심과 독서 패턴과 조금 맞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12권을 손에 내려놓으면서 후련하기도 하고 새로운 대하소설로 넘어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정말 마지막 12권은 숨을 죽이면서 읽어나갔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이 나와야 재미가 있듯이 역시 대하소설 장길산에는 장길산이 등장해야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드는 것 같다.

과연 거사는 어떻게 일어날까?
길산이는 과연 최후에 어떻게 될까?
결국은 최형기와 결투를 하게 될텐데 누가 이길까?
묘옥이와 길산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가 될까?
동료들은 배반한 고달근은 결국 보복을 당하겠지?

이런 질문들을 읽는 내내 하며 궁금해하며 읽어 내려갔다.

이경순, 김선일, 김기, 강말득..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이들이 너무나 쉽게 죽는구나하면서 아쉬워했다.
태어날 때 부터 갈라지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차별받고 설움을 받고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이어서 가뭄에 흉년으로 인해 목숨을 부지할 식량이 없어서 결국 산으로 흘러들어간 이들, 그리고 이들을 따라나선 아낙네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으니 가슴이 뛰고 안타까움이 사무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숙종 시대의 명화적 장길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민들의 삶이었고, 서민보다 못한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분명히 지금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자화상이 보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부자집을 도적질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하는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이고, 그럴 수 있는 사회도 아니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약자가 자수성가해서 강자가 될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약자로 이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지금 사회는 자기가 노력하면 뭐든지 될 수 있는 사회다. 부자들은 그만큼 노력을 해서 돈을 번것이다. 맞는 말이다. 정말 그러한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는 그 하부에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면서 돌아가기도 한다. 길게는 일제시대의 친일파들의 재산이 아직까지도 그 자손들에게 부로 세습이 되고 있다. 기회는 균등하다라고 하지만,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는 부자들과 있는 자들에게 돌아가고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장길산의 최후가 불확실하게 끝나고 그들이 새롭게 삶을 살아갔을 수도 있듯이......
여전히 우리에게는 충분히 살아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찾아서 삶을 살아가고 남들보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었을 때,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고 지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겠다.

많이 배웠다. 장길산을 읽으면서, 삶이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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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11권을 읽고, 마지막 12권을 향하고 있다.
11권 초반부는 여환과 원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전에 약조했던 날짜와 다르게 백성들의 동요와 기상변화로 먼저 거사를 치르려하다가 잘못되어 처형됨으로써 이야기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솔직히 여환과 원향의 죽음이 조금 아쉬웠다. 무엇인가 장길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등장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등장했던 인물이 아닌 거의 후반부 말미에 등장하던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지레짐작이 가기도 하였다.

11권 후반부는 박대근을 중심으로 인삼을 거래하기 위한 준비, 채금하는 터를 찾고 하는 방법, 사전을 만들고 유통하시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존에는 화적패로서, 녹림당으로서 일정하지 않은 이득을 취해 오다가 이제는 무역에도 손을 대고, 거래에도 참여를 하며, 객주를 운영을 하기도 하고, 농사를 짓기도 하면서 점 점 자급자족을 하게 된다. 또한 박대근의 송방을 중심으로 해서 후일 거사를 위한 재물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간다. 이는 유황을 얻어서 화약을 만들고, 화승총을 사용하고, 좋은 필마를 구해서 기동력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초반에 여환과 원향이 처형되면서, 무엇인가 이야기의 말미로 접어들고 클라이막스로 올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는데 박대근의 이야기는 다시 절정 이전에 이야기를 탄탄히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남은 한 권이다. 지금까지 각지의 인물들이 등장을 하고, 각자 맡은 일들을 하는 모습들이 이야기의 여러 군데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인물과 함께 박대근을 중심으로 해서 실제 거사를 위해 필요한 무기 및 말을 조달하기 위한 자금도 얻게 되는 듯하다. 이제는 거사와 토포 만이 마지막 남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궁금하다. 마지막 한 권,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과연 이들은 어떻게 최후를 맞게 될지 궁금하다.
마지막 한 권이 아주 훌륭했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그런 한 권이 되기를 희망한다.

11권을 마치며~

p38
저승에 가면 이승의 모든 연은 하나같이 물거품이 된다구 합니다. 심지어는 모친을 찾아 저승에 찾아간 효자가 천신만고 끝에 그 어미를 잡고 반겨 울어도 모른 척했다지요. 새로 연을 맺고 새로이 부부가 되며 다른 삶을 살아간답니다. 우리 거기 가서 다시 성혼해요. 먼저 전생에는 오누이, 이번 전생에는 겉만 부부, 다음 후생에 속까지 부부, 그리고 아주 먼 후생에는 연리지 한뿌리의 한몸이 되어 없어지지 말아요.

p151
"이 사람 벌써 그런 것부터 생각하네. 이봐, 송도 사람들 가운데 절반 너머가 정월에 집 떠나서 세밑에 돌아오는 이들이오. 그래서 생일 비슷한 아이들이 많다구 그러지 않소."

p154
"내가 이제 앞으로 몇년이나 더 이런 송사를 너희들에게 외우게 될지 모르겠다. 윤덕이는 원행이 처음이라 그러겠지만 송상이 이런 물목과 인원을 동원하여 떠날 제는 반드시 상리가 있게 마련이니라. 이득을 보아 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고, 남은 것은 상고 자신의 건강과 후일을 내다보는 신용을 저바라지 말아야 하는 점이다. 이는 곧 떠나보내면서 돌아온 다음의 일을 다져두는 뜻이라 어찌 깊지 않겠느냐. 한번의 장삿길로 큰 재물을 모아 오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을 상고를 바라는게 아니라 도적질을 바라는 것이야. 그러므로 송방의 장책은 대를 물려서 내려오는 것이니라. 윤덕이도 이젠 행수가 되었으니 좌장에게 자세히 배우도록 하여라. 장책 적는 법과 읽는 법을 먼저 익혀야 자기 상도의 장단처를 반성할 수가 있고, 신용이 귀함을 알 수가 있고, 한푼의 돈이 귀한 것과 땀흘려 버는 보람을 알게 되어 상단의 이를 자기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장책이 정직하고 삿됨이 없어야 부상대고가 되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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