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영 작가의 《책만 보는 바보》 에서는 조선 후기 정조시대 박지원의 사랑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백동수와 같은 계급에서 소외받았던 이들이 등장하면서 시대에 대해 고민하며,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며 세상이 변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 《갑신년의 세친구》에서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의 사랑에 그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모여들어 세상의 변화를 꿈꾼다. 이들은 당시 유력한 가문의 자제들인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이었다.
19세기 후반 조선 안팎의 정세는 혼란스러웠고, 기존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변혁의 시기였다. 조선은 서구 열강의 개화의 압력을 받았고, 청나라와 일본이 서구의 문물을 수용하고 변혁의 물결 위에 있을 때 그 흐름에 편승하지 못했다. 당시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은 일본을 방문하면서 선진화된 문물에 빠져들고 조선에도 개혁을 이루기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은 쉽게 그들의 뜻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임오군란(1882년 7월 20일)으로 그동안 참아왔던 백성들은 일어나고 흥선대원군은 다시 정계에 복귀한다. 하지만 또 다시 청군에 의해 납치되고 다시 왕비와 외척인 민씨 집안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다. 당시 중전과 외척들은 청나라를 뒷받침으로 해서 개혁을 원했다. 하지만 김옥균을 비롯한 젊은 이들은 일본의 지원에 힘입어 개혁을 원했던 급진개화파들이었다.
1884년(고종21년) 12월 4일 김옥균과 급진개화파들은 당시 홍영식이 총판로 있던 우정국 청사 완공 기념 연회를 거사의 날짜로 정하고, 청사 옆에서 피어오르는 불을 신호로 해서 집권세력들을 제거하고, 왕과 왕비에게는 난리가 일어났다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보호를 위해서 일본군에게 요청한 지원군으로 개혁을 완성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개혁은 불과 3일 동안에 불과했고, 그들의 개혁인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버렸다. 갑신정변의 개혁주도세력은 개혁의 젊은 혈기는 좋았으나, 일본을 바라본 순진한 생각과 청나라 군사들이 오지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 경운궁에서 군권을 장악하기 전에 왕과 왕비의 거처를 다시 옮기게 하는 등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당시 김옥균은 백성의 힘을 업은 채 시도한 개혁이 아니고, 일본의 군대에 의존한 개혁이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또한 일본의 적극적인 지원만을 믿고 있었던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당시 일본은 단지 장기적인 조선 침략 시나리오의 일환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안남(베트남) 지역을 두고 프랑스와 청나라의 갈등으로 조선에 있던 청군이 안남 지역으로 이동해서 청군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는 개혁세력의 안일함을 드러낸다. 또한 개혁의 주축 세력이 당시 고위 집권 세력의 자제들이었다는 점에서 아래로 부터의 개혁에 대한 뿌리와 힘을 갖지 못한 부르주아적 개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결국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갑신정변의 주요 인물이었던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홍영식은 전하 곁에 끝까지 남아서 성공하지 못한 개혁이지만 그들의 뜻을 전하겠다며 남게 되며, 관군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김옥균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후에 청의 리홍장을 만나기 위해 상하이로 갔을 때 자객의 총에 의해 생을 마감한다. 정변당시 민씨 집안에 원한을 사서 그들이 보낸 자객에 의한 마지막이었다. 1894년 3월 28일이었다.
박영효는 일본에서 서재필, 서광범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고, 1894년 8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갑오년 개혁이 일어나면서 다시 조선으로 와서 그의 뜻을 펼쳐 보기도 한다. 1910년, 조선은 일본에 강제 병합되고 협력한 조선인들에게 일본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이 지급되었는데, 박영효는 후작 지위와 수십만 엔의 상금을 받았다. 또한 산업과 언론, 경제계에서 실속있고 명망있는 지위를 누리며 삶을 보냈다.
갑신정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일본을 우리의 개혁을 위해 먼저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이는 후에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고, 개혁의 주요인물이었던 박영효가 그 병합에 일조를 하면서 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근대적인 개혁의 시발점이라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다. 김옥균이 만든 갑신정변 14개조에는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고, 정령의결과 반포를 기존의 왕이 아닌 대신들의 의결체에서 진행하는 등의 근대적 개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후에 갑오개혁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역사의 연장선의 가장 끝부분에 서 있으며 그것 역시 이렇게 글을 쓰는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필연이던 우연이던 여러 사건들이 모여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한 권 한 권 역사책을 읽어갈수록 깨닫는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개혁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며, 위기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배울 수 있으며, 역사 속의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상황만 다를 뿐 현재에 그대로 재현된다는 점을 다시금 느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쩌면 훗날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급변하는 시대의 중심이며,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분명 개인적인 삶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시대의 흐름을 체감하며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기를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앞으로의 내 역사적 삶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때 의미있을까 생각해본다.
p20
"여기를 보시지요. 우리 조선은 이리 환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은 지금 밤이랍니다. 이 나라들이 낮이 되면 우리가 밤이 되지요. 실감할 수 없지만 이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넓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청에 들어와 있는 영길리(영국) 왕은 여자입니다. 여기서 보면 대륙 저 끝 섬나라에 불과하지만, 부처의 고향 인도까지도 제 나라로 삼고 저들이 만든 큰 배로 못 가는 데가 없다고 합니다." "미리견(미국)은 왕도 백성들이 뽑는다고 합니다. 목숨이 다하지 않아 번히 살아 있는데도 몇 년 만에 내려오게 하고 다른 사람을 새로 뽑는다는 군요."
p22
젋은 자네들이 할 일이 많네. 특히 그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할 것이네. 우리 조선도 이처럼 둥근 지표면 위에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나
p27
서양 문물을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양인의 것을 배우자는 양무운동이 점점 활발해지는 것 같습니다. 양인의 말을 배우는 학당도 생기고, 양인의 기계를 본떠 만드는 공장도 생기고 있습니다. 양인 기술자가 와서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합니다.
p31
조선의 시간은 종류의 북소리처럼 천천히 흘렀다. 그러나 조선 바깥의 시각은 째깍째깍, 사람의 들숨 날숨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p33
"그것 참 계산 빠른 왜인들답군. 미국 함대가 쏘아 대는 포에 우왕좌왕하던 게 불과 십 년 전 아닌가. 저희 세가 약하면 얼른 화친 조약을 맺고, 이왕 굽힌 바에 더욱 엎드려 상대방의 것을 샅샅이 배우고...... 그 모든 일을 전쟁터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하고 있네그려. 아마 속으로는 장차 상대의 무기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왜인들다운 생각도 하고 있을 게야."
p67
이윽고 왕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네가 일본에 다녀오너라. 공식 사절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은밀히 다녀와야 한다. 가서 일본의 의중을 알아보아라. 과연 조선이 문을 열고 개혁하는 것을 일본이 진정으로 원하는지, 그렇다면 조선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해 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김옥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를 수 없었다. 언젠가 조선 바깥 세상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자신을 믿고 큰일을 맡겨 준 왕의 마음 씀에 가슴이 벅찼다. 당황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여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왕의 말이 이어졌다.
"정식 수신사로 가는 것이 아니니,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을 게다. 때로는 네가 그 자리에서 판단하고 직접 해결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허나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맡기니, 가서 한 번 부딪쳐 보아라."
p70
기차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뒷걸음질치며 멀어져 가는 것은 낯선 나라의 산과 들이 아니라, 이렇듯 놀라운 세상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는 조선의 모습인 것만 같았다.
p75
김옥균과 조선 젊은이들에게도 인상 깊었던 것은 [학문을 권함]이라는 책이었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라는 첫머리부터 놀라웠다. 사람은 타고난 신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문을 하려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갈라진다고도 했다. 후쿠자와는 신분에 관계없이 배우려 한다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학교도 만들었다. 바로 유길준이 다니고 있는 게이오기주쿠였다.
p83
"예전에는 몰랐는데 ...... 여기 있다 가 보니 조선은 숨죽인 듯 고즈넉하기만 하더군요. 도쿄는 사람들과 마차며 인력거들이 바삐 오가고 모습이 날마다 달라지는데, 조선의 초가와 흙담, 고관들이 행차할 때마다 길에 엎드린 백성들의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다들 조선 생각에 가슴이 무거운데, 윤치호는 다부지게 말을 이었다. 얼마 전부터 쓰기 시작한 안경알 너머로 두 눈이 빛났다.
p84
지난번처럼 꾸지람을 듣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오히려 큰 격려를 받고 보니 윤치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른 젊은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앞선 문물에 놀라고 감탄만 했을 뿐, 그 문물이 온 서양의 언어를 직접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 난 소년이 그런 결심을 한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윤치호도 그의 아버지처럼, 가문이나 체면같은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있지 않아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무거운 겨울 솜옷처럼 자신들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거대한 관습의 무게에, 명문 양반가 청년들은 저도 모르게 한 숨을 내쉬었다.
p87
김옥균의 마음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도쿄에 온 지도 어느새 두 달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일본 각계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긴 했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사교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뚜렷한 소임이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개혁을 일본이 진정으로 원하는지, 그렇다면 철도와 도로를 놓을 수 있게 도와주고, 편리한 새 문물로 조정과 백성을 설득할 수 있게 자금을 지원할 의사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본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p97
1882년 7월 30일
p98
"조선에 큰 변란이 일어났습니다. 군사들이 난리를 일으켜 여러 사람이 죽고, 대원군이 다시 대궐로 돌아왔다 합니다. 전하께서는 대원군에게 나랏일을 모두 맡기고 뒤로 물러나셨답니다!"
p105 홍순목 대감 "나라 형편이 이러한데 나랏일 한다는 젊은 것들은 눈을 밖으로만 돌리고 새로운 것을 들여온다. 신식 군대를 만든다. 조정을 뜯어 고친다. 공연히 수선이 피우고 있으니..... 도대체 시찰이다 뭐다 해서 들인 비용만 해도 얼마나 되느냐? 제 백성 굶주리는 것은 모르고 나랏돈을 그렇게 허튼 데다 쓰고 있단 말이냐?"
p109
왕은 직접 나라를 다스리면서 군대도 장악하기 위해 대원군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는 훈련도감과 옛 군영 병사들은 새로 생긴 군영에 편입되긴 했지만, 즉위 초부터 왕의 호위를 맡아 왔던 무위소 출신 병사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나라 살림이 넉넉지 않으니 군영도 궁핍했는데, 왕의 친위군 출신들은 군복과 무기를 제대로 갖추었고 급료도 먼저 받았다. 왕과 대신들 앞에서 절도 있는 동작으로 시범을 보이고 갈채를 받으며 생기는 군인다운 자부심도 그들 몫이었다. 게다가 별기군까지 만들어 높은 보수를 주고 데려온 일본인 교관에게 훈련받게 하니, 옛 군영 출신 장수와 군졸 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자신들에게 지급된 요미에만 모래와 겨가 섞여 있기도 했지만, 그 일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p113
"지금 네가 가는길은 살러 가는 길이 아닐 게다. 허나 말리지는 않으마. 그저 그 길을 같이 가겠다는 게야. 가서, 네 앞에 오는 칼을, 할 수 있으면 내가 받겠다는 것뿐이야. 너 간 꼴을 남아 보는 것도 싫은데, 너 죽은 뒤 저놈들이 짓밟는 꼴까지 보고 싶지는 않구나. 어미한테는 삼돌이 데리고 외가로 가 있으라 일렀다. 우리 부자 목숨 값을 어린 삼돌이라도 누렸으면 좋겠구나."
p114
그들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홍영식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밀린 요미나 제대로 받게 되면 그뿐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는 늙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제까지 조정에서 일하는 동안 자신의 녹봉이 밀린 적은 없었다. 아버지도 그러했고, 기무아문 동료들도 그러했다. 그런데 저 많은 군졸들에게는 왜 그 당연한 일이 무시되고 미뤄져야 했단 말인가. 밀린 급료를 지불하라는 요구가 틀린 일 아니던가? 잘못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데, 저 행렬 속에 나와 동료들은 왜 없는 걸까? 대궐에서 밤을 지새우며 수없이 이야기해온 백성은 저들과 다른 존재였던가. 지금 분노하고 고함지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저들이 바로 이 나라의 백성 아니던가. 뜨거운 피가 도는 청년 홍영식의 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군중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p121
대궐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주저하던 사람들도 막상 문이 열리자 알 수 없는 힘데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몰려갔다. 번뜩이는 눈빛들이 행렬을 이끌었다. 군졸 옷으로 갈아입은 운형궁 사람들이었다. 대궐 지리를 잘 아는 그들은 전각 곳곳으로, 심지어는 내전까지 군중들을 끌고 갔다.
"민겸호가 대궐에 숨어있다. 우리 곡식 빼돌린 민겸호를 찾아라!"
"중전을 끌어내라! 중전이 민씨네를 감싸고 돌아 나라가 이리되었다!"
더 이상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닥치는 대로 휩쓸었다. 감히 대궐까지 침범했으니 이제는 죽이지 않으면 죽을 것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내관들과 궁인들이 여럿 목숨을 잃었고, 관복을 입고 있다 봉변당한 관리들도 많았다. 궐 사람들도 함부로 드나들지 않는 내전에 궁인들의 비명이 가득 찼고, 그들이 흘린 피로 중궁전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하늘에는 뜨거운 해가 이글거리고 대궐 곳곳에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임진년(1592) 왜란 이후 궐이 침범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외적도 아닌 제 나라 백성들이 쳐들어온 것이다. 더구나 외적도 아닌 제 나라 백성들이 쳐들어온 것이다. 더욱 서늘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p123
홀로 남은 왕의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든 일을 대원군과 의논하라는 명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 관직을 내릴 사람들의 명단이 올라왔다.
p124
"전하, 중전마마의 승하를 반포하고, 한시바삐 국상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사옵니다."
p126
"전하, 통리기무아문을 혁파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복구해야 하옵니다."
"으음......"
통리기무아문은 왕이 각별한 애착을 기울여 만든 기구였다. 이제까지 생각하고 준비해 온 것, 나라의 정치와 외교에 대한 왕의 모든 구상, 아끼는 신하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심장이 부서지는 듯했다. 승지는 왕의 눈길을 피했고 왕도 승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리하라, 짧게 일렀다.
p129
사랑 윗목에는 관복이 가지런히 개켜진 채 놓여 있었다. 언제 입궐할지 몰라 내당에서 준비해 둔 것이다. 국상이 선포되었기에 관복도, 관모도, 띠도 모두 흰색이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왕비의 상이 아니라 십여 년간 젊은 그들이 해 온 모든 일에 대한 초상인 듯 해 이를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p130
"두고 보게. 대원군이 권력을 다시 잡긴 했으나 오래가지 못할 것이네. 십 년 세월에 사람도 세상도 얼마나 바뀌었는가? 지금 아래대는 이런 헛 초상이 아니라 줄초상이 나서 난리더군. 상인들이 쌀이며 옷감을 잔뜩 사재기해 나라와 백성이 궁핍해졌다며, 시전 상인들을 수없이 잡아가 베어 버렸다고 하네. 대원군도 이젠 나이가 드셨는지 너무 조급해지셨어. 하긴 같이할 만한 사람은 다 수염 허연 노인들이고 일은 더디기만 하니, 그 성미에 갑갑하실 테지. 그렇다고 십 년 세월도 그처럼 다 베어 버릴 수 있겠는가? 서슬 푸른 그 칼날에 당신이 다치실 것이네."
p131
저희 사람이 여럿 죽고 공사관까지 불탔으니, 일본은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아. 조선의 사죄를 받고 배상도 단단히 얻어내리라 하더군. 제물포항에는 청나라 배도 들어와 있던데 그쪽 분위기도 심상찮아. 이번 일을 트집 잡아 일본이 자칫 조선을 유구처럼 손아귀에 넣으려 하지 안흥ㄹ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데... 청나라는 군대를 데리고 직접 조선에 들어올 생각도 있는 모양이야. 게다가 영국 배와 미국 배도 제물포 근처를 어슬렁거리더군. 이 같은 난국에 빗장 지르는 것밖에 모르는 대원군이 권세를 잡았으니......
p132
그 뒤 조선에서 벌어진 일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하나부사 일본 공사는, 외국인은 허락 없이 도성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조선의 법을 무시하고 병사들을 거느린 채 대궐에까지 들어왔다. 그리고는 군란으로 일본이 입은 피해에 대해 배상금을 지급하라며 무엄하게도 왕 앞에서 으르딱딱거렸다. 게다가 앞으로는 도성 안에 일본 병사들을 주둔시키겠다고 제멋대로 선언했다.
청의 사신 마젠충과 함대 제독 우장칭도 삼천여 명의 병사와 함께 도성 안으로 들어왔다. 이처럼 많은 병력의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온 것은 병자년(1636) 호란 이후 처음이었다. 찾아오는 사신의 문안과 조공을 받으며 점잖게 앉아 있기에는 조선을 둘러싼 상황이 너무나 급박했던 것이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고 다른 나라에 자꾸 눈을 돌리는 젊은 조선 왕도 탐탁지 않았지만,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고집불통 대원군은 더욱 미덥지 않고 위험해 보였다. 조선에 눈독 들이는 일본과 서양에게도, 조선의 청의 속방임을 분명히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청나라는 조선에 고문관을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기로 결정했다.
인사차 우장칭의 막사에 찾아간 대원군은 그 자리에서 청나라 톄진으로 납치당하다시피 끌려가 버리고 말았다. 다시 권력을 잡은지 불과 33일 만의 일이었다.
이어 청나라 군인들은 소란을 일으킨 난병들을 징계한다며, 군졸들이 모여 사는 왕십리와 이태원을 무참하게 공격했다. 청나라의 신식 해양 함대 군사들은 바다 위에서 오래 삭여야만 했던 갑갑증을, 조선 땅에 상륙하여 조선 백성들에게 마음껏 풀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고을 사람 모두가 그 총칼 아래 쓰러져 갔다. 그때 떨쳐나선 길이 살러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던 삼돌이의 할아버지도, 차마 다른 나라 군대에 짓밟히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씅ㄹ 것이다. 도봉소에서 항의하던 김춘영과 그의 늙은 아비도, 대원군을 찾아갔던 가족들도 모두 군란을 주동했다는 죄명으로 붙잡혀 처형당했다. 짓밟히긴 조선 조정도 마찬기지였다.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구대는 그간 조선이 공손이 받들어 모시던 인자한 천자의 군대가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서양 여러 나라들과 똑같이 속국을 통치하는 제국의 침략군으로서 조선에 들어온 것이다.
p136
수선스러운 궁인들뿐 아니라 점잖게 꾸지람을 내리는 상궁과 내관들도 내심 기다리는 사람은, 청국인과 함께 온다는 서양인이었다. 대궐에서 양인을 보는 것도 처음인데, 더구나 왕께서 친히 그를 뵈옵고 큰 벼슬을 내려 나랏일 맡길 것이라 했다. 긴장하고 있기는 편전에 먼저 들어 있는 조선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양인에게 조선 정치를 맡기겠다는 청나라의 조치도 뜻밖이었고, 아무리 청국의 뜻이라 해도 양인이 조정까지 들어오게 된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심하는 대신들도 많았다. 젊은 관리들은 청나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오는 양인이 못마땅하면서도, 그가 먼 바다 건너 서양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에 은근한 호기심이 일었다.
p137
양인의 제 나라 이름은 묄렌도르프였고 목인덕이라는 중국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중국 개항장에서 주로 세관 업무를 맡아 하던 독일의 젊은 외교관이었다. 청나라 외교를 담당하는 북양 대신 리홍장은, 영사 승진에서 번번이 탈락해 실의에 젖어 있던 묄렌도르프를 눈여겨보았다. 자신의 참모가 되지 않겠느냐는 리홍장의 제의에, 묄렌도르프는 망설이지 않고 독일 공관에서 나와 톈진의 리홍장 관저로 들어갔다. 그 뒤 중국을 대신해 조선 정부의 자문관이 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속국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오랜 관례라, 중국인보다는 중국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외국인을 보내는 게 더 나았던 것이다. 그 역할에 이미 리홍장의 관저에 들어와 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만큼 적당한 사람은 없었다.
p139
난리가 일어난 것을 빌미로 군대를 앞세우고 들어온 청나라는, 조선과도 다시 관계 맺기로 마음 먹었다. 그간 중국과 조선은 조선이라는 왕조가 서기 훨씬 전부터도 아비와 아들, 왕과 신하의 나라였다. 굳이 말로 표현하거나 문서를 만들어 주고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새롭게 나타난 서양은 물었다. 조선이 누구의 것이냐고, 청의 것이라면 증명해 보여 달라 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마구 횡포를 부릴 때마다, 서양인들은 무슨 무슨 조약을 들먹이며 문서를 쓰자고 졸랐다. 수 천년 이어져 온 지엄하신 천자의 권위도 문서 한 장만 못했고, 그 어떤 군대나 무기보다도 종이쪽지 한 장의 위력이 더 대단했다. 저들 세계의 '국제법'이라 했다. 그들의 조름에 못 이겨 화압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달려졌다. 함포 소리가 그치고 병사들이 물러나도 종이는 그대로 남아, 군대나 무기보다 더한 힘을 과시했다. 종잇장 하나에 남쪽 항구 샹강(홍콩)을 내어주고, 종잇장 하나에 다시 광저우와 푸저우를 열어 줄 수 밖에 없었다.
p141
금릉위 박영효는 군란으로 입은 피해를 위로하고 사죄하는 수신사로 석 달간 일본에 다녀왔다. 수신사로 가기에는 정일품 부마의 신분이 지나치게 높았으나 기꺼이 응했고, 사절단 대표가 되기에는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가 너무 어렸으나 왕은 특별히 명을 내렸다. 종사관으로 서광범이 수행했고 김옥균도 비공식 수행원으로 함께 갔다. 수신사 일행이 귀국한 뒤에도 김옥균은 조선의 개혁 자금 마련을 위해 일본에 남아 있었다. 박영효가 왕에게 다녀온 보고를 한 것이 엊그제였는데, 피로를 풀 새도 없이 사람들을 집으로 청한 것이다.
p152
허나 대궐로 돌아온 뒤 달라진 왕비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스물서너 살 된 청의 장수 위안스카이가, 왕을 쏘아보며 대놓고 거만하게 구는 것을 왕비도 보았을 것이다. 감히 조선 왕을 청나라의 신하쯤으로 여기고, 황제를 대신해 왔노라 거들먹거리는 청의 관리들에게 어째서 함께 분노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자고, 청이나 일본은 물론 온 세상에 당당한 자주국으로 만들자고 함께 다짐했던 왕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p153
청나라 관리들은,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만 있다면 조선 왕과 조선의 개방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다. 왕비 역시 조선 왕과 조선의 개방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다. 왕비 역시 청나라 장수들의 오만한 태도는 불쾌했고, 왕이 겪고 있는 굴욕에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나랏일을 감정만으로 해 나갈 수는 없었다.
p159
그 무렵 조선의 재정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조정이 지방 수령들을 통제할 능력이 잃은 지는 오래되었고, 지방 관리들의 농간으로 세금이 제대로 들어지 않아 국고는 텅 비었다. 그런데도 나라에서 써야 할 돈은 점점 늘어나니, 결국 상평통보의 다섯 배의 가치를 지니는 당오전을 새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당오전 발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세력은 '목 참판'으로 불리는 묄렌도르프와 민씨 관료들이었다. 그러나 대원군 시절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든 당백전으로 큰 혼란을 겪었기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막 돌아온 김옥균의 반대가 심했다. 자신은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개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있는데 조정에서 내놓은 방안이 고작 화폐를 새로 찍겠다는 것이냐며 김옥균의 실망과 분노는 대단했다.
p175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괜찮았는데 점점 말이 없고 침울해지더니, 영식이 먼저 귀국할 즈음에는 크게 다툰 적도 있습니다. 무작정 나라의 문을 여는 것만이 옳은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미국에서 조선 보빙사 일행은 환영받았지만, 십여 년 전 일본 사절단처럼 진기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황제와 마찬가지인 미국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조선 사신들은 당연히 예를 갖추어 큰 절을 올렸다. 엉거주춤 서 있는 대통령 앞에서, 머리를 바닥에 댄 채 엉덩이를 들고 엎드린 조선 사신들의 그림이 미국 신문에 크게 실렸다. 그림 속의 미국 대통령은 당황하면서도 웃고 있었고, 신문을 보는 사람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조선에서 민영익은 양반에다 귀인이었지만, 그곳에서는 그저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p176
어차피 조선이 문을 열고 변화해 한다면, 무례한 서양보다는 그래도 전통을 알고 사대부 양반을 아는 청나라와 손을 잡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179
왕은 푸트 공사의 부임을 열렬히 환영했다. 서양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었지만, 정식으로 조선에 공사를 파견한 것은 미국이 처음이었고 유일했다. 다른 나라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파견한 공사나 영사로 하여금 조선에 관한 업무도 맡게 했던 것이다. 화려한 말에 비해 아무런 지원이 없는 일본에 지쳐 갈 즈음, 조선에 나타난 미국 공사는 단비처럼 반가운 존재였다. 영국과 전쟁에서 이기고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였다는 미국 역사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왕은 미국인 군사 교관과 정치 고문을 조선에 파견해 달라고 푸트 공사에게 요청했다.
p187
손에는 이번 호 [한성 순보]를 들고 있었다. 박영효가 한성 판윤에서 물러나긴 했으나 신문의 필요성은 다른 관리들도 공감하고 있었기에 지난가을부터 발행된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옥균에게 순보를 내밀며 서광범이 말했다.
베트남에서 청나라와 프랑스의 갈등이 심각해진 것은 봄부터였다. 권력 다툼에서 쫓겨난 안남 왕이 도움을 청하자, 프랑스는 그를 지지하면서 베트남을 자기 보호령으로 삼으려 했다. 조선에서처럼 베트남에서도 종주국 행세를 하던 청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두 나라는 베트남 곳곳에서 충동했고, 청은 전쟁이 확대될 것에 대비해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절반을 빼 이동시켰다.
p188
김옥균과 벗들이 간절히 원하는 조선 독립 자주는 청나라에 기대기로 한 조정 대신들과 민씨 관료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것이기도 했다.
p190
김옥균이 한마디 한마디, 벗들을 둘러보며 힘주어 말했다.
"청에 기운 대신들과 각 군의 영사 들을 단번에 없애고 ,조정과 군대를 우리가 장악해야 하네. 그런 뒤 조정을 우리 사람들로 새로 꾸리고, 일대 개혁을 실시해야지."
p193
"군주께서 근래 우편국을 개설하고 군사 제도를 개편하여 조선의 개명 진보에 열중하는 것을 아시고, 우리 황제께서는 대단히 만족하셨습니다. 특별히 40만 엔을 조선에 되돌리니 부디 그 용도에 쓰기 바란다는 말씀을 본 공사에게 전하라 이르셨습니다."
p194
다케조에 공사는 고서나 뒤적이며 본국에서 한가로이 휴가를 보내던 중 일본 외무성의 긴급한 부름을 받았다. 외무성은 그에게 즉시 조선으로 돌아가, 나머지 배상금 40만 엔을 되돌려 준다는 일본의 뜻을 조선 왕에게 전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청나라에게서 벗어나려는 조선 내 움직임을 적극 지원하라는 은밀한 지령도 내렸다. 다케조에 공사에게조차 뜻밖이었던 이러한 이러한 지시는, 일본 정치를 이끌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와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조선에 나가 있는 정보원들에게서 김옥균과 박영효를 비롯한 조선 젊은이들이 조정을 뒤집고 권력을 잡으려 한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이다.
p198
"일본의 뜻이 진정 그러하다면 시대의 운이 우리를 따르는 것 아니겠나? 청나라 군사들은 안남에 발이 묶여 꼼짝 못 하고, 훼방만 놓던 일본은 마음을 바꾸어 병력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니, 이보다 더 절묘할 수가 있겠는가? 한 목숨 버려서라도 조선의 개혁을 이루겠다는 뜻을 간절히 품었더니, 하늘도 우리를 가상히 여기시나 보네."
홍영식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p201
이 사랑에는 저잣거리 같은 떠들썩함과, 그러면서도 무언가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이 흘렀다.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뜻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함께 하고 있었다. 지위나 가진 것에 상관없이, 고귀한 금릉위에게나 천한 종 운이에게나 똑같이 하나뿐인 목숨, 그것을 하늘에 맡기고 미련도 집착도 놓아 버리기로 한 데서 오는 홀가분함인지도 모른다.
p209
"네 마음은 내가 잘 알겠다. 앞으로의 일에 관해 너를 깊이 믿는 바이니, 기어이 품은 뜻을 한 번 펼쳐 보라."
왕의 말은 은근하면서도 단호했다. 김옥균은 감읍하여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신, 모든 것을 바쳐 기필고 이 나라의 독립 자주를 이루겠사옵니다."
정변 날짜는 사흘 뒤인 12월 4일로 정했다. 홍영식이 총판으로 있는 우정국 청사가 완공되었기에 축하하는 연회를 열고, 각 군 영사들과 대신들을 초대해 일을 벌일 작정이었다. 이인종과 행동대원들이 청사 옆 별궁에 불을 질러 소란이 일어나면, 그 틈에 조선군 영사들과 대신들을 베기로 했다. 그런 뒤 왕을 행궁으로 모시고 가, 새로 꾸린 조정애서 정령을 반포하고 대개혁을 실시할 것이었다.
p217
다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알렌이 나가 보니 푸트 공사의 비서 스커더가 피 묻은 옷을 입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사람이 칼레 찔리는 변이 났으니 급히 우정국으로 와 달라는 전갈을 가져온 것이었다. 변을 당한 사람은 알렌도 잘 알고 있는, 왕비의 조카이자 조선군 우영사 민영익이라 했다.
비서와 함께 급히 가 보니 민영익은 몹시 위급한 상태였다. 예리한 일본도에 귀가 거의 잘려 나간 데다 동맥까지 상했다. 어깨와 등도 길게 베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의식이 없었다. 연회에 참석했던 외국인들이 민영익의 주위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웅성되었고, 잔뜩 화가 난 묄렌도르프는 무어라 끊임없이 떠들어 대고 있었다. 우정국 총판 홍영식과 연회에 참석한 김옥균, 서광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재동 민 독판 댁에서 급히 모셔왔다는 이름난 의원들을 모두 물러나게 한 뒤, 알렌은 민영익을 치려했다. 삼십여 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이었다.
p224
그 말에 윤태준이 발끈해 정전 문 쪽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알겠소. 내 당장 나가 후영 군사들을 데리고 오리라."
그러나 윤태준은 다시는 자신의 군사들을 볼 수 없었다. 정전에서 나와 소중문을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윤경순과 이규완이 입을 틀어막았다. 조선군 후영사 윤태준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들의 칼에 숨이 끊어졌다. 우정국 연회장 밖에서 하짐 못한 일을 경우궁 정전 밖에서 거행한 것이다.
p225
그러나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윤태준도, 그들의 병사도 아닌 정변 행동대원들의 칼날이었다. 소중문 밖에는 조선군의 세 영사가 흘린 검붉은 피가 흥건했다. 하늘에서 차갑게 내려다 보고 있는 달에도 핏빛이 스며들었는지 붉은 기욱이 어려 있었다.
밖에서 경우궁으로 들어오는 대신들은 먼저 명패를 들여보내게 했다. 거절당한 사람들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허락된 대신들은 왕이 계신 정전 근처에 오기도 전에 피 묻은 칼을 먼저 대해야만 했다. 수염이 허연 노대신 민영목은 부릅뜬 눈을 차마 감지 못했다. 이어 중문 안에 들어선 조영하는, 눈 뜬 채 죽어간 민영목을 보고 한마디 외쳐 보기도 전에 같은 운명을 당했다. 뒤늦게 민태호가 굳은 표정으로 명패를 내밀었다. 아들 민영익이 중상을 입은 우정국 연회와 왕의 경우궁 파천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민태호는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왕과 왕비는 물론 궁 안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하고, 그 역시 젊은 행동대원들의 칼에 쓰러져야만 했다.
p228
더욱 놀랍고 두려운 것은, 죽이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 똑똑히 들려오는데도 끝내 유재현을 베게 한 김옥균의 눈짓이었다.
p229
간밤의 혼란과 여러 사람의 죽음을 뒤로하고, 다시 해가 떠오르고 이썽ㅆ다. 찌푸려지는 게 사람의 눈살인지 햇살인지 알 수 없었다. 12월 5일 정변 이틀째다. 여전히 날은 맑았고 내내 얼었던 눈이 이제는 조금씩 녹을 모양이었다.
p230
김옥균이 벌이는 일 자체에도 왕비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각료 명단을 보건대 김옥균의 세력은 크지 않았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요직을 맡은 것도 그러했지만, 과연 이들이 꾸린 조정에 나올까 싶은 이름들도 보였다. 오죽하면 한가한 종친까지 들어 있었다. 세력이 크지 않기에 드넓은 궁궐에서 일을 벌일 수 없었고, 변란이 일어났다는 말로 왕실을 기망하면서 이 작은 별궁으로 끌고 온 것이리라 짐작했다.
'대궐로 돌아가야 한다!'
왕비의 결심은 확고했다. 어느 세력에도 휘둘리지 않을 왕의 권력이 세워질 수만 있다면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들로는 어림도 없었다. 정변 병력조차 일본군에 의지했고, 조선군을 새로이 장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수가 적을수록 성급해지는 법이고, 성급해질수록 과격해지는 법이었다. 장차 수세에 몰리면 무슨 일을 더 벌일지 알 수 없었다. 공연히 어정쩡하게 있다가 왕실도 동조하였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그나마 지금 왕의 권력도 더 위태로워질지 몰랐다.
왕의 불안감도 피어올랐다. 김옥균과 젊은이들의 충심을 모르지 않았지만,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보니 뭔가 허술했다. 큰소리치던 것과 달리 일본군 병력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청나라 진영의 움직임이 궁금했는데 이들도 자세히 알지 못했고, 병력을 움직이지 않으리라 막연히 낙관하는 듯 했다. 감히 왕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유재현을 벤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일개 내관의 입놀림이 두려워 죽이기까지 한 자들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김옥균이라면 준비를 단단히 해 두었으리라 기대했고 암묵적으로나마 허락해 주었는데 실망스러운 면이 자꾸만 보였다. 대궐을 떠나 다른 신하들을 전혀 만나지 못한 채 오로지 이들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왕으로서는 꺼림칙한 노릇이었다.
p233
"그대들 말처럼 청나라 군사가 공격해 온다면, 대궐과 이곳이 무슨 차이가 있겠소? 변을 당하더라도 과인은 차라리 대궐에서 당하겠소."
왕의 뜻은 단호했다. 잠시 생각하다 공사는 선선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궐로 돌아가도록 하지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김옥균은 화가 나 다케조에 공사와 다투었다. 다케조는 큰소리쳤다.
"걱정마시오. 우리 병사만으로도 능히대궐을 방비할 수 있소. 우리가 있는 한 청나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오!"
왕의 뜻이 그러하고 다케조에가 확답까지 했으니 대궐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며칠만이라도 이곳에서 새 정부의 기틀을 닦고 조선군을 장악할 시간을 벌었으면 좋으련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김옥균은 박영효에게 대궐의 정황을 살펴보고 오라 일렀다.
p236
칼을 맞고 쓰러진 민영익의 창백한 모습도 잊히지 않았다. 조선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고 냉정한 민영익에게 실망도 많이 했지만 이렇게 되길 바란 건 아니었다. 정변을 벌인 젊은이들과 민영익은 이삼 년 전만 해도 절친한 사이였다. 그런 벗들끼리 목숨을 노리고 칼을 겨우어야만 하는 조선의 현실이 서글펐다.
난리는 난리인 모양이었다. 문병을 마치고 공사관을 돌아올 때 보니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흉흉한 소문도 거리를 휩쓸었다. 김옥균이 왕을 볼모로 잡고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기려 한다. 왕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왕은 곧 폐위될 것이다. 조선에서는 왜가 득세할 것이다. 화염보다 더 빠른 소문이 도성 안을 온통 활활 태우고 있었다. 백성들은 아예 대궐 안 젊은이들을 일본과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역적 무리로 취급했다. 조선을 당당한 독립 자주 국가로 만들겠다는 김옥균과 젊은이들의 진심은 어디에도 다가갈 곳이 없었다.
p237
청나라에 분노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정변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왜 가닿지 않았을까. 끼리끼리 찾아다니는 걸음은 분주했지만 정작 백성들에게 진심을 알리고 설득하는 데는 소홀했던 게 아닐까. 도성 안 골목마다 괘서라도 붙여 자신들의 뜻을 알렸더라면 대궐 안 젊은이들이 백성들에게 알린것이라고는 조정 각료들이 바뀌었다는 방문 뿐이었다. 벼슬을 탐하는 젊은이들이 일본을 등에 업고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p239
자신들의 포부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 여겨서인지 벅찬 가슴만큼이나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정령의 항목은 수십 가지였다. 특별히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제도를 마련하고, 사람을 보아 벼슬을 택하되 벼슬을 내세워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위로는 김옥균, 홍영식 등과 같은 양반, 아래로는 유대치, 변수 등 중인, 또 박제경과 같은 서자, 사관생도들과 병사들을 포함한 다수 상민들, 또 봉균과 점돌 같은 천한 종들의 바람까지 담긴 것이었다. 그 밖의 백성을 수탈하는 수많은 종목의 조세를 줄이고 환곡 부담도 줄이기로 했다.
p249
홍영식은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자네들 이야기가 맞네. 훗날을 위해 다들 떠나야 하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은 남아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어났으며 무엇을 하려 했는가를 알려야 하네. 비록 우리들의 일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리 뜻 만큼은 훗날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네. 전하를 두고 다 떠나 버린다면 우리의 진심을 누가 믿어 주겠는가? 나는 끝까지 전하를 따르겠네."
p257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김옥균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일본의 병력을 무턱대고 믿은 것도, 청나라 군사가 움직이지 않으리라 낙관한 것도 가슴을 칠 만큼 어리석은 일이었다. 정변을 준비하면서 모든 정황을 엄격하게 헤아리고 대처하려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강렬한 소망이 이성을 압도해 버렸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의 어려움도 한몫했을 것이나 핑계였다. 소망이 이성을 휘어잡고 결과를 낙관하게만 만든다면 환상에 불과하거능, 십 년 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수많은 목숨들과 바꾼 뒤에애 다가온 깨달음은 비통했고, 현실은 가혹하기만 했다. 조선에서는 정변 전보다 청의 세력이 강해졌고, 특히 오만한 젊은 장수 위안스카이의 독주는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었다. 나라의 개혁을 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왕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김옥균과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지낸 생활도 치욕적이었다. 갑신년 조선 정변으로 일본이 잃은 것은 없었다. 또다시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 냈고,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 권리를 청나라와 동등하게 갖게 되었다.
p258
견디다 못한 서재필과 서광범, 박영효는 이듬해 일본에서 다시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보아 주는 사람도 없는 데다가 차마 막일을 할 수 없었던 금릉위 박영효는 결국 일본으로 되돌아 왔다.
p263
그즈음 김옥균에게 가까이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장사를 크게 하고 있다는 이일직이었다. 본디 학문하던 양반이나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일본과 청나라를 왕래하며 약재와 쌀을 판다고 했다. 조선의 젊은 망명객들에게 자주 밥과 술을 사 주고 넌지시 용돈을 쥐여 준 적도 많았다.고루하고 꽉 막힌 조선 조정을 함께 욕하고 갑신년 정변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얇은 입술에 눈웃음이 헤픈 데다 상대방의 말에 지나치게 맞장구를 치는 것이 어딘가 미덥지 않은 면도 있었다. 김옥균이 도쿄로 돌아오자 그를 암살하려는 움직임도 다시 시작되었는데, 특히 정변 때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은 민씨 집안의 원한이 대단했다. 이일직은 그들이 보낸 자였다.
p266
탕! 탕! 탕!
상하이 항구 부근의 여관 뚱허 양행에서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관 손님도 드물어 한적한 데다 나른한 오후라,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가 무시무시한 총소리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한창인 봄날, 꽃이 터지듯 공원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로만 여겼다. 그러나 얼굴과 가슴과 어깨에 총을 맞고 2층 객실에서 피 흘리며 숨을 거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옥균이었다. 리홍장과 만날 준비를 하며 보던 [자치통감]을 손에 든 채였다. 열린 객실 문밖에는 김옥균을 향해 겨눈 총을 채 내리지 않은 홍종우가 서 있었다. 리볼버 권총 총구에서 나는 화약 연기가 매캐했다. 1894년 3월 28일, 함께 고베 항을 출발하여 상하이에 도착한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p275
1894년 8월, 박영효와 조선 망명객들은 그리던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상하이에서 김옥균이 홍종우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지 불과 다섯 달 뒤였다.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김옥균은 목숨까지 걸었지만, 이들의 귀국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힘으로 거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듬해 갑오년에는, 먼저 쓰러져 간 벗들 대신 살아남은 자로서 개혁에 관한 포부를 한번 펴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1910년, 조선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었다. 협력한 조선인들에게는 일본 귀족의 작위가 내려졌고 은사금도 지급되었다. 선왕의 부마이자 일본 통치의 협조해 온 박영효에게도 후작 지위와 수십만 엔의 상금이 내려졌다. 그 뒤로 박영효는 산업과 언론, 경제계의 실속 있고 명망 있는 지위를 두루 거치며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p277
[민족개조론]을 실은 잡지사 [개벽]은 성난 조선 청년들의 습격을 받았고, 이광수도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그 뒤로 이광수에게는 뛰어난 문필가라는 칭송과 민족의 배신자라는 원망이 함께 따라다녔다. 모든 일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이고ㄴㅇ수의 생각은 지금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지만, 박영효가 자신을 한동아리로 생각하고 은근하게 구는 것은 왠지 불쾌했다.
작가 천명관이 단편집을 발표했다. 그는 벌써 이 문단에 들어온지 1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이 분야는 자신에게 어색하다고 표현한다. 소위 충무로에서 영화 업(業)에 종사하다 불혹의 나이가 되어 문단에 데뷔한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 읽을 때 마다 마치 영화를 한 편 보는 듯 하다.
처음에 그의 작품 <고래>를 처음 접하고 지금 껏 읽어오던 소설과는 다른 느낌과 장대한 서사에 빠져들었고 항상 다음이 기다려졌다. 이후 출간된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리> 도 단연 천명관의 진가를 드러내며 이야기의 향연을 펼친다. 그는 분명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내가 생각하는 천명관 작가의 매력은 짧지 않은 책 속에서도 서사의 흐름이 끊이지 않으면서 글을 읽는 이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편집이란다. 나는 아직 단편을 읽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장편소설, 대하소설 처럼 서사를 이루는 것을 주로 읽어오다 보니 이상하게 단편은 잘 손에 잡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민음사의 《한국문학단편선1》에서 김유정의 <동백꽃>을 읽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이 단편을 읽으면서 짧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 짧지만 아이만의 순수함과 내면의 묘사도 훌륭할 뿐 더러 당시 시대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해준다. 그 때 '아, 이게 단편을 읽는 재미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천명관의 단편집을 만났다. 8편이 수록된 단편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책의 겉표지 뒷면에 영화감독 장항준이 이 단편집에 대해 남긴 글을 보았다. 8편을 꿰뚫는 표현을 아주 훌륭하게 해준다.
어느 순간 인생이 꼬였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디에서부터 꼬였는지 알 수 없지만, 한번 꼬이기 시작하니까 계속 꼬이는 것도 같은데, 그게 또 어떻게 더 꼬일지 모르니까 불안하지만 궁금하고 재미있고 기대도 하게 된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나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따뜻한 유머를 배웠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한 판 살다 가는 거지." 삶에 지치고 사는 게 막막해도 웃음을 지키려는 그대여, 천명관이 건네는 통쾌한 술 한 잔 받으시라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우리 사회에서 직업적 혹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섬에 사는 사람,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 일용직 노동자, 대리운전기사, 불치병에 걸렸지만 치료비가 없는 이들과 같이 실제 우리 주변에 우리가 만나는 이들이 작품 속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아픔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들을 가만 놓아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꼬여만 간다. 어쩌면 작가 천명관은 이 단편들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작품들이 하나 하나 매력이 있지만, 책을 덮고 나서 기억에 남는 단편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와 <핑크>였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는 제목 그대로 일용직 노동자 경구와 칠면조가 등장한다. 경구는 일용직 노동자로 냉동창고 일을 배정받아 일을 하고 집을 돌아오면서 같이 차에 탄 동생이 집에 가서 먹으라며 칠면조를 건낸다. 꽝꽝 얼은 무거운 칠면조를 들고 식당에 가서 소주 한잔을 먹고, 다시 들고 와서 집으로 향하던 중 빚을 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칠면조는 아이들을 주어야 겠다는 사랑의 표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무서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 칠면조가 등장하는 게 다소 생뚱맞아 보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게 더 매력인지 모른다.
고기는 질기고 소주는 쓰지만, 인생은 그마저도 달달하게 느껴질 만큼 쓰디쓰다.
<핑크>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자의 옷의 색깔이다. 대리운전 전화를 받고 운전을 하러 간다. 차에는 나이대를 알지 못하는 뚱뚱한 어떤 여자가 핑크색 옷을 입고 눈만 나올 정도로 머플러를 하고 있다. 목적지는 어느 저수지였다. 운전을 하면서 그 여자가 점점 궁금해진다. 그러던 중 차 안의 가방에서 갑자기 고양이가 튀어나오기도 하면서 깜짝 놀란다. 트렁크에서는 어떤 이의 시체도 보인다. 이 단편은 이 말로 끝난다.
오래 전 그의 아내가 그렇듯이
왜 고기보다 질기고 소주보다 쓴 인생일까?, 오래 전 그의 아내는 어떠했기에?
천명관을 짧은 단편들 속에서도 많은 걸 담아놓았다. 특히 이번 단편집은 스릴러의 냄새가 나기도 하며, 우울한 느낌도 나며, 때로는 풋! 하며 웃게 만드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어 200 쪽의 짧은 분량이지만 두터운 향내가 베어나는 책이다.
p16
낚시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몇해 전부터였다. 동행도 없이 언제나 혼자였다. 물고기를 잡는 것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물가에 홀로 앉아 어둠속에서 빛나는 야광찌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좋았다. 축축한 밤의 공기와 그 속에서 피우는 담배맛도 좋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앉아 물 위에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사라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기분도 근사했고 우산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그 아래에서 마시는 소주 한잔의 맛도 좋았다.
p102
그래, 나도 어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데 가서 며칠 동안 잠만 자다 와도 좋겠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조용한 빌라 같은 데서 빳빳하게 풀 먹인 시트를 몸에 감고, '방해하지 마시오' 패찰을 문 앞에 걸어놓고, 휴대전화도 꺼놓고, 술도 안 마시고, 꿈도 없이 저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어린애처럼 베개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p110
고기는 질기고 소주는 쓰지만, 인생은 그마저도 달달하게 느껴질 만큼 쓰디쓰다.
p116
그날 새벽, 경구는 전철역 앞에 있는 인력사무소에 나가 냉동창고 일자리를 하나 얻었다. 소개비 빼고 일당 칠만 이천원, 그다지 마음이 내키진 않았지만 공방이든 하스리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인력시장에서 귀한 건 일자리고 흔한 건 사람이니까. 도대체 그 많은 인간들이 다 어디서 기어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부턴가 얼굴이 시커먼 동남아 출신들까지 한데 뒤섞여 이젠 인력시장이 아니라 인종시장이 되었다.
p120
육체노동자들은 목소리가 크다.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다. 술집을 가든 당구장을 가든 제일 큰 소리로 떠드는 이들은 노가다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늘 시끄러운 공사판에서 일하느라 소리를 지르는 게 습관이 되어서이다. 또한 아무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p123
경구는 고등학교 다닐 때 역도를 했다. 키가 크지 않았지만 다부진 어깨에 뼈가 굵어 제 몸무게의 두배쯤 되는 역기를 어렵지 않게 들었다. 그러다 허리에 문제가 생겨 운동을 그만두었는데 이렇게 평생 무거운 것을 들며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앞으로 들어야 할 짐도 많이 남아 있었다. 도대체 그 무게는 얼마나 되는 걸까?
두껍지 않은 책에서 우리 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대서사시를 만날 수 있었다.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만수의 가족을 통해서 일제강점기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과 우리의 삶의 단편을 보여주면서 큰 흐름으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만수네 가족들을 간단히 소개해보려한다. 아마 가족을 소개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 읽는 이에 따라 작중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은 그 때의 아련한 생각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김용식 (만수의 할아버지)
- 낙동강 유역에 있는 상산군의 큰 부잣집 삼대독자. 어렸을 때 신식 학문을 배우고, 서울로 가서 고등보통학교, 경성제대 예과에 들어갔다. 예과를 마치고 나서 전공으로 법문학부 철학과를 택했고. 당시 친구들과 독서회를 만들었다. 그 독서회는 해외의 독립운동단체에 협력했다며 일본 경찰에 붙들력 가기도 했다. 후에 집안은 풍파가 일어났다. 후에 빚을 피해서 가족들을 이끌고 '개운리'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다.
만수의 할머니
- 김용식과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아들인 사대독자 충현을 키우며 살아가며 편안한 생활을 하지만, 남편의 독립운동 혐의 이후에 힘든 삶을 살아간다.
김충현 (만수의 아버지)
- 아버지와는 다른 성격이었고, 그래서 아버지와는 항상 갈등을 겪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는 다른 일들에 관심이 많았고 화전민의 딸인 아내와 결혼해서 억척같이 일하며 농사꾼으로 살아간다. 스무살때부터 가장이 되어 3남 2녀의 자식을 두고 살아간다.
백수 (김용식의 첫째 아들)
- 백살까지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태어날 때 부터 영특하게 태어나고 할아버지에게 배우면서 장남으로서 한 기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부터 다른 도시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한다. 후에 우리나라의 최고의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된다. 집에서는 소를 팔아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주고,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 일을 하고 피를 팔기도 한다. 결국에는 월남전에 지원입대를 하고 안타깝게 그곳에서 죽게 된다.
만수
- 태어날 때 부터 힘들게 태어나서 자라면서도 남들보다 늦고 어리숙하게 자라난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굳은 일을 거의 맡아서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와 다니던 회사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투쟁을 하고 자신보다는 가족과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간다. 후에 자신의 친구는 노동운동으로 경찰에 잡혀가고 그와 인연이 있던 진주의 힘든 사정을 봐주다가 결혼을 하고 연탄가스를 마시고 장애가 생긴 동생 명희와 석수의 아들 태석을 키워며 함께 살아간다.
금희 (만수의 큰 누나)
- 어렸을 때는 엄마와 함께 집안 살림을 하면서 살아간다. 시골에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가 당시 열악한 환경의 재봉공장에서 취직을 해서 일하게 된다. 후에 오빠가 사준 재봉틀로 일을 해서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마련해주고, 결혼을 해서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간다. 결혼을 해서 마음놓고 친정을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이 쓰리기만 하다.
명희 (만수의 둘째 누나)
- 어려서 언니와 함께 집안 살림을 하고 후에는 언니를 도와 일을 합니다. 그러다 어느날 저녁에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버린다. 정신연령이 어린 아이가 되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석수 (만수의 남동생)
- 어려서 부터 어리숙한 만수를 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수는 동생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원해준다. 석수는 군대문제 때문에 일단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공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공활을 하면서 영주를 알게 되고 동거를 한다. 영주는 운동권의 핵심 멤버 였고, 석수 역시 그렇게 간주되어 정보기관에 끌려와 고문을 받고 나중에는 정보기관의 편에 서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주는 석수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 태석을 자신의 앞 날을 위해 석수의 형인 만수에게 맡긴다.
옥희 (만수의 막내 여동생)
- 오빠인 만수의 지원으로 국립대를 졸업한다. 야학을 하면서 노동을 운동을 하던 강철원을 만나게 되고, 강철원의 강제적인 겁탈에 의해 임신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후에 오빠의 지원으로 식당을 하게 되고, 식당으로 큰 돈을 번다. 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던 남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이 번 돈으로 예전에 인연이 있는 여자와 외도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태석 (석수의 아들)
- 어려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내적 반항심이 가득한 아이로 커 나간다. 자기 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고, 이로 인해 길러주는 엄마 진주의 말은 듣지하고 반항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 친구들의 집단괴롭힘으로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되고, 자신의 장기 신장을 그의 어머니에게 기증한다는 유서를 남긴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마친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소개만으로 이야기의 얼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이지만 우리와 부모들의 삶을 그린 글이기에 이야기는 자연히 우리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부모님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어른들에게 들었던 사연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옛 방송들의 그림들이 그려진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요사건들과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일제강점기의 모습, 6.25전쟁, 군사정권, 여자들의 방직공장에서의 고된 노동, 우골탑이라고 불리던 대학의 모습, 군사정권에 대한 학생운동, 노동운동, 월남전참전과 DDT에 대한 피해, 군사정권 시대의 고문, 기생충검사, 잡곡혼식, 구속과 억압의 여성들의 삶, 자본가들의 욕심, 노동자들의 투쟁과 절규, 과도한 사교육, 학교폭력
이렇게 하나 하나 만으로도 사연이 깊게 베어있는데 <투명인간>에서는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서사시를 완성시켜준다. 그리고 제목인 <투명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작 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떻게 평범한 이들인데, 그들의 삶에는 아픔과 시련이 그대로 베어 난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삶의 굴곡이라고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작품 속에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은 개인들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무분별한 개발과 그에 따른 물질만능주의 팽배가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투명인간은 어쩌면 이런 사회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소외되고,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힘과 자존감의 상실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분명 개인에게도 이러한 책임은 있지만, 그 배경에 펼쳐져 있는 사회적 모순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어떤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사회적 맥락이라는 틀을 통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투명인간은 개인의 자존감 확보와 불합리한 사회적 원인들의 개선이 있다면 점차 그 투명함은 사라지고 개개인의 독특한 삶으로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바꾸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찌 하랴!
P13
그때는 또 아이들 잡아먹는 전염병은 얼마나 많았는지. 큰마마(천연두) 돌면 태반이 죽었고 살아난다 해도 평생 얽은 얼굴로 사는 사람이 동네에도 수두룩했다. 작은마마(수두)만 해도 동네서 한 애가 걸리면 금방 그 또래 애들이 다 걸려가지고 앓고 백일해, 감기, 소아마비, 천식, 뭐 해서 애들 낳으면 한 절반은 죽었다. 아기가 돌도 못 넘기고 죽으면 아비가 거적때기로 싸서 지게에 지고 산비탈로 가서는 산짐승 못 먹게 나무 위에 올려놓고 오곤 했다. 밤붕에 으앙으앙 하고 꼭 늑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흥우흥 부엉이 우는 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들리면 나무에 포대기로 걸려 있던 애 중 하나가 황천을 건너가기 직전에 되살아 온 거다. 그런 식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애들이 있던 시절이다. 그러니 돌 지날 때까지 살아 있으면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 아이가 죽고 다음 아이가 금방 태어나면 먼저 죽은 아이의 호적을 그대로 이어받게 해서 아이들 나이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일이 예사였다. 내 배 아프게 하고 나온 아이 중에 아기 때 황천에 제일 가까이 갔다온 애가 만수였다.
P25
만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이 늦었고 매사에 이해가 더뎠다. 잘 모르면 질문을 하라고 했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어려운 문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질문하는 사람도 배우지만 대답하는 사람도 배운다.
P40
만수야, 너는 아직 재주가 다 드러나지 않은 망아지, 덜 벼려진 칼과 같구나.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가지만 돈 끼호떼의 로시난 떼처럼 비루먹고 약한 말도 열흘을 부지런히 가면 천리를 간다고 했다. 또 천리마의 꼬랑지에 붙어 있는 쇠파리 또한 천리를 간단다. 네가 하룰 천리를 가는 명마가 아니라고 실망하지 마라. 뭐든지 잘 보고 기술을 배워 하루하루 열심히 하면 너는 전기기사, 시계 수리공, 운전기사 등등의 기술자가 될 수 있다. 구두닦이, 지게꾼도 열심히만 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했으니 너는 귀를 크게 열고 입은 꼭 다물고 네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P49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같은 콩으로 담근 장이라도 엄마가 담근 간장, 된장, 고추장은 온 마을에서 맛있기로 소문났다. 우리가 캐간 나물을 그 장으로 무치거나 고추장 발라 굽거나 된장을 넣어 국으로 끓이거나 간장, 고추장을 넣어 장아찌를 만들거나 해서 반찬으로 먹으면 어떤 부잣집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게 맛있었다. 김장을 할 때 우리 집은 무를 넣은 독을 땅에 여럿 묻었다. 동치미가 아니라 짠지였다. 무를 깨끗이 씻고 소금 간을 했을 뿐인데 그게 잘 익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한겨울 밤에 그 무를 쫑쫑 채 썰어 양푼에 담고 밥에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벼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으면 어떤 고생도 같이 견뎌나갈 만한 것처럼 생각되곤 했다. 처마 밑 그늘에 매달아 겨울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하며 잘 마른 무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끓인 국은 겨울 저녁의 추위를 달래주었다. 김치를 잘게 썰고 참기름에 살짝 볶은 뒤 남은 밥을 넣고 끓인 뜨끈한 김치죽은 겨울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별미였다.
P108
갑자기 할머니가 작은누나의 등짝을 떠밀어 앞으로 나가게 했다.
- 여기 둘째손녀 명희가 불을 냈소. 부지깽이를 들고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붙었소.
거짓말, 거짓말
- 이리 나오라고 하시오.
P137
서울에도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학교 안에도 학교 밖 거리에도 공터에도 도로변에도. 식목일에 많이 심었던 아카시아 나무는 어린 싹도 먹지만 꽃이 제일 먹기 좋았다. 아이들은 생으로 꽃을 먹기도 했는데 꿀이 있어서 달콤했다. 절반 정도 핀 꽃이 향이 제일 좋았고 다 피면 향이 사라졌다.
P139
그들은 모두 나처럼 60번대 번호를 받은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보다 좀더 일찍 시골서 전학 온 아이들이었는데 벌써 표준말을 썼다. 생소한 단어로 만들어진 욕을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또박또박 쏴붙이니 머리털이 곤두서고 살이 떨릴 만큼 무서웠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물자 표준말을 배우는 게 더 어려워졌다. 알고 보니 시골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표정도 없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 평상에 누워 있거나 걷거나 쓰레기를 뒤지거나 길바닥에서 뭔가를 늘어놓고 노는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말이 없었다. 아침마다 군대처럼 제복을 입고 줄을 지어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청년과 처녀들 역시 몸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언제든 잡아먹힐 수 있는 가축이나 물고기 떼처럼 무기력해 보였다.
P164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산다. 나에게 서울은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좁아터진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복닥거리면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데가 서울이었다. 없는 놈들끼리 더 훔치고 못살수록 더 싸우고 서로 안된 처지에 서로를 욕하고 아프고 주리고 외롭고 힘들게 살았다. 서울은 무식한 내게도 너무도 노골적으로 느껴지도록 '물질이 주인인 세상'이었다.
고향에서는 농사일을 해서 몸이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술을 마셨는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오로지 술 마시는 게 일이 되어 술은 점점 더 늘었다. 내 나름대로는 덜 마시기 위해 술심부름시킬 때 소주를 한병씩만 사오게 했는데 다음 날 술이 깼을 때 몇번이나 술심부름을 시켰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P241
인간은 두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고문을 경험해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뇌리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불온한 가치관과 불순한 관념이 들어 있는 머릿속의 신경세포를 속속들이 씻어내고 인간성 자체를 개조하는 과정을 겪어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남에 의해 완전히 해체되었다 다시 재조립된 자신을 받아들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P271
거울에 비친 백발의 노파가 나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속상했다.
P304
문제는 연탄이었다. 방의 호수별로 구역을 표시하고 들여놓은 연탄을 쌓아놨는데 슬그머니 한두장씩 없어지는 일이 잦으니까 매일 숫자를 세어보게 되고 서로를 감시하면서 신경전을 별여야 했다. 그러니 가난하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끼리 싸울 일이 더 많은 거였다. 그 연탄을 우리에게 팔아먹고 돈 많이 벌고 세금 많이 걷고 영원히 부와 권력을 물려주고 물려받을 인간들하고 싸울 생각은 하지도 않고,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인간들끼리 머리 뜯고 대가리 깨지고 피 흘리며 싸우고 또 싸우는 것이었다. 그래도 서로 없이 산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정이 들어서 명절에는 서로 떡도 주고받고 어떤 집, 아니 같은 집에 사는 아이가 맞고 오기라도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같이 복수를 해주곤 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데서 늦게까지 놀고 있는 애가 있으면 귀때기를 붙들어다가 데려다주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갈수록 궁금한 게 많이 생긴다. 무엇인가 조금 알게 되면 반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무엇이 궁금하고, 내가 속해 있는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서 돌아가는지, 내가 먹고, 자고, 입고하는 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서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또 빠져나가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왜 이렇게 잔인한지, 운명은 존재하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신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삶이란 풀지 못하는 궁금함을 자기 나름대로 풀어나가면서 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과연 나는 어떤 사회 속에서 살고 있을까?
운명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태어난다. 누군가는 복지국가에서 따뜻한 부모 속에서 자라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태어나자 마자 먹을 것이 없는 빈곤한 국가에서 태어나서 가녀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지도 모른다. 이런 불합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세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 뜻대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올바른 삶일까, 아니면 자신은 위험하고 힘들더라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올바른 삶일까.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풀리지 않고 답이 없는 질문을 다시 해 본다.
얼마 전에 <제주4.3을 묻는 너에게>를 읽은 다음에 느낀 감정과 유사하다. 일부러 이런 작품을 찾아 읽은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 손에 잡히게 되었다. 이런 책들이 나를 선택해왔다. 기억하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 뒤돌아보라고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는 작가 한강이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던 분들과 유가족들을 인터뷰하고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들여 내놓은 작품이다. 작품을 쓰는 내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 슬픔은 책에 고스란히 닮겨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고스란히 가슴을 건드린다. 어떻게 이렇게 타자의 아픔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작가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된다.
작가는 인터뷰를 하면서 한 유가족에게 글로 써도 되냐고 물어 봤다. 유가족은 말한다.
p211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기에 나는 잘 모르는 사건이다. 반대로 불과 50년도 안 된 기간에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내가 알아야 하는 사건이다.
읽는 내내 많이 아팠다. 정말 '잘 써주셨다' 라고 말해드리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글로 풀어낼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슬픔, 분노, 아쉬움, 아픔, 안도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때로는 복합적으로 다가와서 눈이 아프기도 했고 숨을 잠시 멎어가며 한 문장을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기도 했다.
p51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작중 정대가 죽고 난 후 영혼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누가 자기를 죽인 것인지. 16살의 중학생이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빨갱이라고 신군부는 국민을 시민을 살상한다. 무장 군인들이 들어오고 탱크가 들어오고, 헬기까지 동원된다. 자신들의 권력쟁취를 위해서 어린 학생들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당시 광주시민이 40만명이었는데 군인들에게 지급된 총알이 80만발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했고 무서웠다.
잔인한 1980년 5월은 지나갔지만, 그 이후로는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철저하게 고문당하고 당국은 이들을 북한에 지원하는 빨갱이로 연결시키기 위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낸다. 인권이라는 건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이들은 우선 연행된 학생들과 시민들을 정신적으로 바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려 한다.
P118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쳐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죽,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어디 이뿐이랴. 이후 학생들과 시민들은 마치 가슴에 주홍글씨가 찍히듯이 그 이후 취업이나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고 사실 상 온전한 사회생활이 되지 않았으며 시도 때도 없는 경찰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 날의 끔찍한 기억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을 자더라도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경제적 정신적 고갈로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5월 광주에 진압을 시도하던 경찰들이 모두 잔인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들 역시 군대라는 조직에서 상부의 명령을 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다. 쉽지 않다. 상부가 명령을 내리고 책임을 진다. 라고 할 경우 아마 나 역시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중에서는 다친 학생들을 몰래 숨겨둔 공수부대, 발포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의도적으로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진압시 군가를 부를 때 눈물을 흘리며 두 입을 다문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잔인한 5월 광주에서 그나마 조금의 위로가 된 것은 이런 이들도 존재했다는 안도감일지 모른다.
다 읽고 나서 프레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생각났다. 나치의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잔인함과 신군부의 광주가 철저하게 겹쳐진다. 작가는 아쉬워하고 불안해한다. 사람에게는 이런 잔인한 유전자가 박혀있어 반복할 수 밖에 없을까. 개척시대의 원주민에 대한 무차별한 학살, 나치의 아우슈비츠, 난징대학살, 제주4.3, 5월 광주는 분명 같은 무엇인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 두려워한다.
우리는 분명 이런 일이 일어난 후 잊지 말고 반복하지 말자고 한다.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다같이 말한다. 하지만 그런 동의 속에서도 유사하게 사건은 다시 일어난다. 1980년의 5월의 광주는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도 발생해 버렸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에 대한 대답은 나 역시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 단지 5월 광주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킨 학생들의 가슴 속에 담겨있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한 아직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희망을 기대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P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상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되면 일간지들에서는 신간을 소개하고 주목되는 책들에 대한 서평이 올려온다. 각 일간지들의 책 소개는 베스트셀러만을 홍보한다는 느낌은 그다지 많이 받지는 않았다. 북섹션 담당자의 안목과 주제별로 소개해주는 구성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신문의 북섹션보다는 독서관련 팟캐스트가 책을 선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지금 매주 청취하는 독서관련 팟캐스트만 해도 5개 정도는 된다.
MBC라디오의 <라디오 북클럽 방현주입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김동진의 빨간책방>, 출판사 창비의 <라디오 책다방>, 출판사 문학동네의 <문학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덧붙여진 것이 서점인 교보문고의 <낭만서점> 이렇게 다섯종류를 즐겨 듣는다.
<낭만서점>은 정이현 작가와 허희 문학평론가가 진행을 한다. 정이현 작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의 책은 아직까지 한 번도 읽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그녀의 책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어떤 책들은 제목만으로 소재만으로 내 관심을 끌어서 쉽게 선택을 했는데 정이현 작가의 책은 지금껏 나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 인연을 팟캐스트가 이어주었다. 목소리를 듣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고, 방송을 들으면서 정이현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껏 그녀가 출간한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 한 권을 선택했다. 바로 <안녕, 내 모든 것>이다.
<안녕, 내 모든 것>은 각자 나름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 친구 세미, 준모, 지혜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미는 복잡한 가정사에 의해서 조부모와 함께 살고, 준모는 틱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틱의 증세는 욕으로 튀어나왔다.
지혜는 부모가 모두 대학교수이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머리 속에 많은 기억이 그녀를 힘들게 한다.
등장인물들은 어린 나이부터 아픔을 가지고 있고 가슴에 하나씩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주어진 상처로 그들은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그저 살아간다.
세상을 살면서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예를 들면 신은 존재하는가? 와 같은 질문입니다. 과연 운명이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도 해본다. 자신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사고로 인해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고, 선하고 착한 사람이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은 태어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장애와 같이 아픔을 가지고 태어나는 친구들도 있다.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안녕, 내 모든 것>의 인물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아픔들을 가진 이들이 제 주변에도 있기에 소설이지만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살면서 힘이 들고 버티고 참아야하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민의 여지가 남아버리는지 옆에서 간접적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세 친구는 언제나 함께할 듯 하지만, 준모는 치료를 위해 덴마크로 가기로 하고 지혜와 세미도 서로 자연스럽게 만남이 쉽지 않게 된다. 이런 세 친구는 서로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새로 이사간 세미의 집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낸다. 그 다음 날 아침, 그곳에서 세미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들은 그들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된다.
P228
할머니에게 비밀을 선물한 댓가로, 우리 셋은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우리만의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는 친구들과 꼭 나누고 싶었는지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비밀은 지켜졌고, 나와 지혜와 준모는 다시 모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다.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인 거였다. 준모도 지혜도 어딘가에 혼자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아무리 우스운 영화를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 원래 다 그런 거라고들 말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
여기서 안녕, 내 모든 것을 중얼거린 이는 세미다. 하지만 아마도 준모와 지혜도 함께 말했을 것이다. 그들의 '내 모든 것'은 아마도 과거 기억일 것이다. 기쁨과 행복보다는 아픔과 상실이 더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반가움에 안녕이 아닌, 떠나 보냄의 안녕일 것이다. 떠나 보냄에 대한 후련함도 있을테지만 아픈 기억이라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는 안녕인 듯 하다. 나는 그 안녕이 너무 아쉽다.
소설은 처음과 끝은 과거가 아닌 지금의 지혜의 관점에서 시작되고, 이야기의 전개는 세미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세미가 지혜를 찾아온다. 할머니의 무덤을 찾아달라고 하지만 지혜는 결국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지혜가 기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기억하지 못함이 다행이다. 그들이 그렇게 안녕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이 소설은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니, 가슴에 먹먹함이 많이 남는다. 그들의 아픔을 해소하지 못하고 끝내버리는 거 같아서 불편한 마음마저 든다. 서울 강남 배경으로 해서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을 것 같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소설 속 이야기지만 어쩌면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인 듯 해서 쉽게 읽힌거와는 다르게 여운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P88
"학생은 꽃이에요, 절벽에 핀 풀꽃. 잊고 잊히며 살아야 해요.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오래 안고 가지 말아요. 무슨 일이더라도."
잔디밭에서 아무 풀도 짓밟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처럼 여자는 조심조심 말하고 있었다.
"사무쳐도, 아파도, 다 흘려보내요. 내 것이 아닌 듯, 그러면 꺾어지도 밟히지도 않을 거예요."
P100
나는 갤러리아백화점의 쇼핑백 손잡이를 한쪽 손목에 걸고, 다른 쪽으로 고모의 팔짱을 꼈다. 아무리 애써도 영원히 빼지 못할 것처럼 꼭 꼈다.
P143
"준모야, 내가 잘 생각해봤거든. 그런데 한 사람이 죽어간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거잖아. 그렇지?"
"글쎄, 아마도."
"마지막이라는 건, 다시는 못 보는 거잖아. 평생 사랑했던 사람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을."
"........"
"나라면, 마지막 순간에는, 보고 싶은 사람들만 볼 거야.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만."
입안에 시큼한 침이 고였다.
"내가 나타나면 할아버지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실 거야. 한 사람의 마지막 기분을 그렇게 뒤죽박죽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세미야."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면 언제고 나는 부풀어질 공간이 남아 있는 노란 풍선처럼 가슴이 두근 거린다.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응?"
"다음에 너 아주 급할 때, 아무도 없으면 나 한 번 불러라."
나는 가까스로 털어놓았다. 세미가 픽 웃었다.
"네버. 넌 삐삐가 없잖아."
"살 거야."
"언제?"
"오늘."
그녀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바보야, 너 멀리 갈 거 잖아."
"안 갈수도 있어."
그녀가 이번 엔 히히히 소리 내어 웃었다.
"아무튼 바보. 얼른 가. 잘 가."
"넌?"
"난 로비에 좀 앉아 있다가 갈게."
P149
실온에 오래 방치해둔 아이스크림처럼 심장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P174
불행은 틈을 주지 않고 들이닥친다. 해석하거나 납득하려 들 필요는 없다. 해석되지도 납득되지도 않는 것, 그것이 불행이 가진 본성이니까.
P238
튀어나오는 대로 다 붙잡고 싶은데, 손의 속도가 기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손의 속도는, 기억의 속도보다도 말의 속도보다도 느렸다. 그 틈새에 깃든 고요함에 대해 나는 아주 천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 홍세화가 이 당시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저자 홍세화는 1972년 대학교 재학 시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다가 1977-1979년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했습니다.. 1979년 다니던 무역지사의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합니다.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2002년에 귀국하게 됩니다.
이 책은 저자 홍세화가 당시 택시운전을 하게 된 계기와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은 경험과 생각 등을 엮어낸 수필입니다. 망명 생활 동안의 그의 내면적인 고뇌가 드러나며 그 속에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똘레랑스] 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똘레랑스]란 무엇일까요? 저자 홍세화가 왜 그토록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부러워했을까요?
p349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입니다. 흔히 말하듯 한국 사회가 '정(情)'이 흐르는 사회라면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정'의 뜻을 다른 나라 말로 옮기기 쉽지 않듯이,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한마디의 우리말로 옮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의 사회적 의미는 애매한 반면, 똘레랑스의 사회적 의미는 명확하답니다. 우리의 '정'은 감성의 표현인 것에 비하여 똘레랑스는 이성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입니다.' 프랑스 사전에는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 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그가 부러워하고 원했던 사회는 바로 차이를 인정하는 똘레랑스의 프랑스 문화였습니다. 차이를 '틀리다'의 개념이 아닌 서로 '다르다'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우리나라가 군사정권의 시대였기에 그 갈증은 목이 타들어가도록 심했을 것입니다.
20~30년이 지난 우리 사회는 그 차이를 여전히 '틀리다'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틀리다'라는 것은 사람들이 없애거나 고쳐야할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갈등은 이렇게 시작하는 법입니다. 의견과 사상의 차이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이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 의견과 사상이 문제의 대상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틀림'의 대상으로 올려놓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그 '틀림'이라는 이식으로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장과 사상의 논쟁의 시시비비는 따질지 몰라도 그것으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똘레랑스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p138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 주의 주장 또는 사상을 일단 그의 것으로 존중하여 받아들인 다음, 논쟁을 하여 설득하려고 노력하는데 비하여 우리는 나의 잣대로 상대를 보고 그 잣대에 어긋나면 바로 미워하고 증오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는 독자는 곧 이해하게 되겠지만 그 같은 독선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뼈져리게 느끼고 있던 나조차 그 함정에 빠져 베르트랑을 미워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베르트랑과 나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한다.
이렇게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선, 즉 설득하는 사회에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축출하지 않으며 깔보지 않는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않고 대신 까페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말이 많고 말의 수사법이 중요시 했다."
우리는 정(情)이 통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은 어쩌면 우리들이 속한 집단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정이 타인과 타집단에 관통한다면 그것이 감성의 똘레랑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근현대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차이라는 것은 '틀림'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왔고 어쩌면 내면 깊숙히 무의식 속에 아로 새겨져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잃거나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역사는 자연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나와 우리를 위해 타인과 타집단을 인정하지 않게된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그런 아로 새겨진 가슴 아픈 인식을 조금씩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우리 사회로 똘레랑스가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가슴의 생채기가 조금씩 치료되고 사회의 상처가 아물었으면 합니다.
작년 4월에 1권을 손에 잡고 거의 10개월 만에 완독을 하게 되었다. 정말 대장정이었다. 처음에는 책이 쉽게 잘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5권은 한 달 이내에 읽었으니 그 당시의 내 관심과 독서 패턴과 조금 맞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12권을 손에 내려놓으면서 후련하기도 하고 새로운 대하소설로 넘어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정말 마지막 12권은 숨을 죽이면서 읽어나갔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이 나와야 재미가 있듯이 역시 대하소설 장길산에는 장길산이 등장해야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드는 것 같다.
과연 거사는 어떻게 일어날까? 길산이는 과연 최후에 어떻게 될까? 결국은 최형기와 결투를 하게 될텐데 누가 이길까? 묘옥이와 길산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가 될까? 동료들은 배반한 고달근은 결국 보복을 당하겠지?
이런 질문들을 읽는 내내 하며 궁금해하며 읽어 내려갔다.
이경순, 김선일, 김기, 강말득..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이들이 너무나 쉽게 죽는구나하면서 아쉬워했다. 태어날 때 부터 갈라지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차별받고 설움을 받고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이어서 가뭄에 흉년으로 인해 목숨을 부지할 식량이 없어서 결국 산으로 흘러들어간 이들, 그리고 이들을 따라나선 아낙네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으니 가슴이 뛰고 안타까움이 사무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숙종 시대의 명화적 장길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민들의 삶이었고, 서민보다 못한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분명히 지금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자화상이 보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부자집을 도적질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하는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이고, 그럴 수 있는 사회도 아니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약자가 자수성가해서 강자가 될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약자로 이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지금 사회는 자기가 노력하면 뭐든지 될 수 있는 사회다. 부자들은 그만큼 노력을 해서 돈을 번것이다. 맞는 말이다. 정말 그러한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는 그 하부에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면서 돌아가기도 한다. 길게는 일제시대의 친일파들의 재산이 아직까지도 그 자손들에게 부로 세습이 되고 있다. 기회는 균등하다라고 하지만,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는 부자들과 있는 자들에게 돌아가고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장길산의 최후가 불확실하게 끝나고 그들이 새롭게 삶을 살아갔을 수도 있듯이...... 여전히 우리에게는 충분히 살아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찾아서 삶을 살아가고 남들보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었을 때,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고 지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겠다.
장길산 11권을 읽고, 마지막 12권을 향하고 있다. 11권 초반부는 여환과 원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전에 약조했던 날짜와 다르게 백성들의 동요와 기상변화로 먼저 거사를 치르려하다가 잘못되어 처형됨으로써 이야기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솔직히 여환과 원향의 죽음이 조금 아쉬웠다. 무엇인가 장길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등장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등장했던 인물이 아닌 거의 후반부 말미에 등장하던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지레짐작이 가기도 하였다.
11권 후반부는 박대근을 중심으로 인삼을 거래하기 위한 준비, 채금하는 터를 찾고 하는 방법, 사전을 만들고 유통하시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존에는 화적패로서, 녹림당으로서 일정하지 않은 이득을 취해 오다가 이제는 무역에도 손을 대고, 거래에도 참여를 하며, 객주를 운영을 하기도 하고, 농사를 짓기도 하면서 점 점 자급자족을 하게 된다. 또한 박대근의 송방을 중심으로 해서 후일 거사를 위한 재물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간다. 이는 유황을 얻어서 화약을 만들고, 화승총을 사용하고, 좋은 필마를 구해서 기동력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초반에 여환과 원향이 처형되면서, 무엇인가 이야기의 말미로 접어들고 클라이막스로 올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는데 박대근의 이야기는 다시 절정 이전에 이야기를 탄탄히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남은 한 권이다. 지금까지 각지의 인물들이 등장을 하고, 각자 맡은 일들을 하는 모습들이 이야기의 여러 군데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인물과 함께 박대근을 중심으로 해서 실제 거사를 위해 필요한 무기 및 말을 조달하기 위한 자금도 얻게 되는 듯하다. 이제는 거사와 토포 만이 마지막 남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궁금하다. 마지막 한 권,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과연 이들은 어떻게 최후를 맞게 될지 궁금하다. 마지막 한 권이 아주 훌륭했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그런 한 권이 되기를 희망한다.
11권을 마치며~
p38 저승에 가면 이승의 모든 연은 하나같이 물거품이 된다구 합니다. 심지어는 모친을 찾아 저승에 찾아간 효자가 천신만고 끝에 그 어미를 잡고 반겨 울어도 모른 척했다지요. 새로 연을 맺고 새로이 부부가 되며 다른 삶을 살아간답니다. 우리 거기 가서 다시 성혼해요. 먼저 전생에는 오누이, 이번 전생에는 겉만 부부, 다음 후생에 속까지 부부, 그리고 아주 먼 후생에는 연리지 한뿌리의 한몸이 되어 없어지지 말아요.
p151 "이 사람 벌써 그런 것부터 생각하네. 이봐, 송도 사람들 가운데 절반 너머가 정월에 집 떠나서 세밑에 돌아오는 이들이오. 그래서 생일 비슷한 아이들이 많다구 그러지 않소."
p154 "내가 이제 앞으로 몇년이나 더 이런 송사를 너희들에게 외우게 될지 모르겠다. 윤덕이는 원행이 처음이라 그러겠지만 송상이 이런 물목과 인원을 동원하여 떠날 제는 반드시 상리가 있게 마련이니라. 이득을 보아 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고, 남은 것은 상고 자신의 건강과 후일을 내다보는 신용을 저바라지 말아야 하는 점이다. 이는 곧 떠나보내면서 돌아온 다음의 일을 다져두는 뜻이라 어찌 깊지 않겠느냐. 한번의 장삿길로 큰 재물을 모아 오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을 상고를 바라는게 아니라 도적질을 바라는 것이야. 그러므로 송방의 장책은 대를 물려서 내려오는 것이니라. 윤덕이도 이젠 행수가 되었으니 좌장에게 자세히 배우도록 하여라. 장책 적는 법과 읽는 법을 먼저 익혀야 자기 상도의 장단처를 반성할 수가 있고, 신용이 귀함을 알 수가 있고, 한푼의 돈이 귀한 것과 땀흘려 버는 보람을 알게 되어 상단의 이를 자기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장책이 정직하고 삿됨이 없어야 부상대고가 되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