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의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 에린 헨슨 <아닌 것> (류시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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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만나라

 - 구본형,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中

 

나에게는 스승이 있어

늘 물어보았어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러면 보여주었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 않아

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윽한 달빛 아래 앉으셨지

스승은 명령하지 않아

사람마다 다르니

이건 되고 저건 안 돼라고 말하지 않아

제자가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따금 말을 하지

여기에 암초가 있고 저 너머엔 해협이 있다

여긴 바닥이 깊으니 냅다 달려라

이 넓고 넓은 곳은 외로움이니

물결과 이야기하고 

홀로 고기를 잡아먹고

햇빛에 심장을 그을려야

망망대해를 지날 수 있다

두려워 마라

스승은 연꽃처럼 웃고

암시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뻔한 삶은 삶이 아니고

싱싱한 모험만이 살아 있게 하니

결국

나의 삶이었고

못 견디게 아름다웟다 할 것이니

네 길을 가라

네 길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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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위한 잠언   - 막스 에르만

 

 

세상의 소음과 서두름 속에서도 평온하게,

침묵에 깃든 평화를 기억하며 걸어가십시오.

스스로 비겁해지지 않는 선에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십시오.

당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만을 낮고 분명하게 말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지루하고 예의 없는 사람조차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과장되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은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영혼에 작은 상처를 남깁니다.

만일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당신은 초라해지고 가치 없게 여겨질 겁니다.

어느 곳에나 당신보다 낫거나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계획한 일에 열정을 다하되

그 끝보다 만들어지는 여정을 즐기십시오.

 

당신의 겸손과 선함이 유지되도록 마음을 보살피십시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하는 진리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보물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세상은 호시탐탐 속임수로 가득하고

그것이 당신의 귀한 미덕을 잃어버리게 할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를 돋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이 되십시오.

중요한 것은, 사랑에 너무 집착하지도 너무 냉소하지도 마십시오.

푸른 풀잎처럼 사랑은 무미건조하고 덧없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입니다.

 

노인의 충고를 친절하게 받아들이고

젊은이의 어설픈 말에도 기품 있게 대하십시오.

갑작스런 불행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힘을 키우십시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어두운 상상력으로 자신을

괴롭히지는 마십시오.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나옵니다.

몸을 단련하되,

무엇보다 당신 자신과 친하게 지내십시오.

 

당신은 우주의 자식입니다.

하나의 나무나 하나의 별과 같습니다.

당신은 여기 있어야 할 존재입니다.

이를 당신이 알든지 모르든지

의심의 여지없이 우주의 시간들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거기에 신이 평화를 깃들게 할 것입니다.

수고와 열망과, 시끄러운 삶의 혼란 속에서도

당신의 영혼에 평화가 흐르게 하십시오.

 

부끄럽고 힘들고 깨어진 꿈들 속에서도

세상은 아직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부디, 즐겁게 사십시오.

행복하려고 노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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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페스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4년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흔히들 '실존주의 철학의 입문서'라 말하는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난 후에 '실존주의'라는 철학과 '카뮈'라는 작가, 그리고 그가 태어난 '알제리'라는 지역적 배경이 궁금해서 한 동안 관련된 책과 영화들을 찾아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페스트』를 그가 말하는 부조리에 '반항'하는 작품 세계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그 철학을 표현하기 위한 소설이라 생각했습니다. 

 

동일한 작품을 2020년 7월 4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확진자 10,963,552명, 사망자 524,261명이 발생한 현 시점에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부조리를 찾아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저항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너무나 명확한 부조리가 모든 사람 앞에 펼쳐져버렸습니다. 마치 한 번 어떻게 그 부조리에 맞서는지 지켜보겠다고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는 듯 합니다.

 

새로 읽은 『페스트』를 읽고 난 후에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어쩌면 르포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오랑이라는 도시의 봉쇄, 도청을 제외한 시설들은 환자 수용을 위한 시설로 변경되고, 쏟아지는 시체를 처리하기 위한 각종 수단과 장례절차 등은 마치 최근 전세계적으로 들려오는 뉴스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소설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삶들이 들어옵니다. 이번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납니다. 의사로서 페스트와 직접 그리고 끝날 때까지 헌신하는 '리유', 어릴 적 다른 죄수의 사형선고를 경험하며 삶에 대한 부조리를 느끼며 자신만의 목적을 찾아내고 보건대를 스스로 조직하는 '타루', 신문기자로 처음 도시 봉쇄 이후 도시를 탈출하기 위한 많은 시도를 하지만 결국 생각을 바꾸고 보건대에 참여하는 '랑베르', 페스트의 창궐으로 오히려 자신의 죄를 숨기며 살아가는 '코타르', 서기이자 보건대에 참여하고 한 여자를 사랑하며 그녀를 위한 편지를 쓰기위해 고민했던 '그랑' 등이 소설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타루'의 아버지는 재판관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 남자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타루'가 보면서 심한 내적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 장면을 카뮈가 『이방인』의 '뫼르소' 재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뫼르소'도 그 재판에 대한 부조리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던 '타루'도 다른 방식으로 부조리를 느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지금 몸소 전염병의 한 가운데에서 그 모든 것들을 경험하면서 이 소설을 읽다보니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습니다. 바로 오랑의 봉쇄가 풀리고, 기차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민음사 p384)
그들은 모두 서로를 꼭 껴안고 자기들 밖의 세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이, 겉으로는 페스트에 승리한 듯한 얼굴로, 모든 비참함을 잊어버린 채, 그리고 역시 같은 기차를 타고 왔지만 아무도 마중 나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그 오랜 동안의 무소식이 그들 마음속에 빚어 놓았던 두려움을 현실로 확인해야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잊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 잊힌 사람들, 이제 동반자라고는 아주 생상한 고통밖에는 없게 된 사람들, 또 그 순간 사라져 간 사람의 추억밖에는 매달릴 곳이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서, 이별의 슬픔은 절정에 달했다. 이름도 없는 구덩이에 허망하게 묻혀 버렸거나, 또는 잿더미 속에서 녹아 없어진 사람과 더불어 모든 기쁨을 잃어버린 어머니들, 배우자들, 애인들에게 페스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 장면은 다시 이렇게 되뇌어봐도 다시 너무나 아픕니다. 페스트는 끝나더라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모든 게 변해버린 사람도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가족을 만나고 위의 글 대로 모든 비참함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쩌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나는 게 그 사람이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연민과 그 아픔 만은 간직하려고 합니다. '리유'와 '타루' 처럼 헌신하는 삶은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랑베르'처럼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그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도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리유'와 '랑베르'의 대화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민음사 p216)

"옳은 말씀이에요, 랑베르. 절대로 옳은 말씀이에요.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 하시려는 일에서 마음을 돌려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일이 내 생각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라 여겨지니까요. 그러나 역시 이것만은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하고 랑베르는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관련 포스트]

2016/07/14 - [◆ 독후활동_서평/□ 소설,수필,시] - 『페스트』 그리고 알베르 카뮈

2016/09/04 - [◆ 책, 작가, 시, 글, etc/◇ 작가] - 알베르 카뮈, 부조리로 세상을 말하다.

2016/12/21 - [◆ 독후활동_서평/□ 소설,수필,시] - 아직 너무 젊은데, 『카뮈의 마지막 날들』을 읽고

2017/01/21 - [◆ 영화_시작 한 번/□ 영화 남기기] - '알제리 전투', 낯설지만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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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연속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 무슨 일이 갑자기 벌어질 수도 있다라는 암시들이 계속해서 나를 거드렸다. 그 긴장감은 흡입력으로 다가왔고,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장 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부터 시작은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작된다. 그리고 어쩌면 자극적일지도 모르는 소재로 궁금증을 증폭시켰고, 그런 것들을 어쩌면 즐기고 있는 나 같은 독자를 마구 휘둘렀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읽기를 시작하면서, 이 책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생각은 책의 2/3 지점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두 형제인 '기현'과 '우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갈등과 뜻하지 않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어느 순간 '어머니'의 시점으로 그리고 또 다시 '아버지'의 시점으로, 다시 '기현'이 바라보는 '우현'의 시점으로 변해가며 '사랑'이라는, 어쩌면 '삶'이라는 것의 숭고함과 깊은 성찰까지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나서는 머릿속으로 두 가지가 잔상으로 진하게 남았다. 

하나는 책의 제목 <식물들의 사생활> 처럼 작품의 주요 장소인 남천의 모습이었다. 야자나무와 그 숲, 바다를 품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 머릿 속으로 그려졌다. 어쩌면 살짝 두려워 보이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신비한 공간인 모습. 사실 나는 평소에 이 세상의 주인은 어쩌면 '인간'이 아니라 '나무'라고 생각한 적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은연 중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들이 비록 움직이지 못하지만 모든 곳의 생명의 근원에는 '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여전히 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작품의 전반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모습이 무엇보다 강하게 남는다.


(p216) 내 꿈의 마지막은 신비스럽고 경이롭고 기모해요. 밤이면, 그들이 벌판에서 만나 별을 보며 끝없이 사랑을 맹세했던 그 밤이 오면, 두 그루의 나무는 놀랄 만큼 민첩하게 움직여요. 온 감각과 에너지가 뿌리로 집중해요. 뿌리는 쏜살같이 빠르게 바다 밑으로 뻗어나가요. 나무의 뿌리는 바다 밑을 가로질러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음질쳐요. 바다 밑은 달려온 두 나무의 뿌리는 바다 한가운데서 만나 서로 엉켜요. 나무의 뿌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처럼 부드럽게 뻗어 상대방을 애무하고 끌어안아요. 애무는 부드럽고 포옹은 뜨거워요. 무슨 꿈이 이럴까요? 꿈이 너무 선명해요. 현실처럼 또렷하고 구체적이기까지 해요. 꿈은 꾸는데 내 얼굴을 진짜로 누군가 만지는 것 같았어요. 그녀가 나였을까요? 왜 이렇게 이상한 꿈을 꾼 걸까요?"


(p250)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고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숲의 어둠 속으로 꽃처럼 떨어졌다. "내가 품에 안자 우현이는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흘리게 내버려두었다. 눈물이 그를 정화하기를 기대했다. 그의 슬픔과 고통과 갈망이 눈물과 함께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를...... 눈물이 잦아들자 우현이 말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내 품에 안겨서 그 말을 되풀이 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나는 말했줬다. 너는 이미 나무다. 나무를 꿈꾸는 사람은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고,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이미 나무인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 나는 아버지가 진심으로 형을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책의 마지막 후반부에 보이는 가족들의 저녁 식사자리이다. 가족 서로 간에 사랑도 없이, 마치 가족으로 이루어졌으니 어쩔 수 없이 사는 것 같은 모습과는 다르게 그 침묵 속에는 그들만의 사랑이 있었다. 어쩌면 그 어떤 가족보다 숭고한 사랑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랑에도 어쩌면 조금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사소한 노력에 어쩌면 '기현'은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현'의 모습에서 계속해서 기현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고, '우현'의 모습에서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결되면서 각자의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바라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누군가 책의 한 장면만을 뽑아 달라하면 나는 단연 이 부분을 선택할 것이다. 이 한 줄을 읽었을 때 머릿 속이 쿵 했고, 가슴 속이 저려왔다. 숨 멎은 듯 읽고 있는 내가 그 순간 긴 숨을 토해냈다. 


(p221) 나는 그녀를 남천, 야자나무가 서 있는 절벽 위의 그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귀로 마무리한다. 


(p276) 사랑에 대한 성찰은, 그것이 최상의 수준으로 이루어질 때,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성찰은 오늘날처럼 삶이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강화될수록 더 심오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0년대가 시작된 첫 해에 출간된 이승우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무게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조건이 변하지 않았거나 더 악화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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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생텍쥐페리를 생각하면 누구나 『어린왕자』를 먼저 떠올린다. 동화같은 이야기와 부드러운 문체를 떠올리며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그의 다른 책 『야간비행』을 손에 잡았다. '이 책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새로운 작가를 만나듯이 책 속으로 다가간다.


『야간비행』은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가득찬 밤 하늘 속에서 처음으로 항공우편 수송을 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무엇보다 엄격한 기준과 규칙을 가지고 항공우편사업을 관리하는 카리스마 있지만 인간미가 없는 '리비에르'와 감독관으로서의 역할과 인간적인 모습에서 갈등을 하는 '로비노', 항공우편 수송을 담당하며 야간비행의 위험과 도전을 몸소 겪는 '파비앵' 와 같은 조종사들이 등장한다.

그 속에서, 항공우편사업의 지속성과 조종사들의 안전을 위한 '리비에르'만의 리더십에 관한 내용과 밤 하늘 속에서 벌어지는 불확실성 속에서 항공우편기를 조종하는 파비앵의 비행에 대해서 생동감있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야간비행』을 읽은 후에 가장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은 '올바른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리더십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이다. 만약, '리더십'에 관련된 경영서적을 읽었다면 이렇게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것이다. 소설 속의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게되는 리더십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려 한다.


작품 속의 인물 '리비에르'는 감독관, 정비사, 조종사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야간비행이라는 위험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안전이다. 그와 함께 수송수단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기를 원한다.


(p57) '나는 정당한가 부당한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엄격하게 굴면 사고는 줄어든다. 책임이란 개인에게 있지 않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적용되지 못하는 막연한 힘과 같다. 내가 정말 정당하게 군다면, 야간비행은 매번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리비에르 역시 내적갈등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태도와 생각이 옳은 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쓰여진 배경이 1930년대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모습이 그 당시에는 이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리더십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최근에는 직급 파괴, 소통, 자유로운 토론 등으로 문화가 변해가면서 리더의 모습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카리스마 중심의 리더십이 필요한 부분도 존재한다.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부분, 급박한 마감일자가 정해진 프로젝트,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 영역 등에서는 여전히 전체적인 통찰력을 가진 리더의 모습과 신속한 판단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반면, 고객에 대한 대응과 창의력이 필요한 업무 등에서는 자유로운 소통문화, 개인의 의사존중, 토론 문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 더 요구되어 지기도 한다.


이러한 업무의 환경적인 요인과 리더 및 팀원들의 개인적인 성향 부분등이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리더십이 나타날 수 있다. 옳고 그름으로 나누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부분은 그 속에서 '인간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냉철하고 위급하다고 하더라도, 일정이 촉박하더라도 그 여건 속에서도 '사람'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 부분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모든 일의 토대이고, 리더십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리더는 외로운 자리일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자리이다. 힘들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것은 '인간미', '따뜻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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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를 만나다,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노벨문학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후보군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사람들이 예상하는 후보에게는 일부러 수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에는 음악가인 '밥 딜런'이 수상하면서 많은 이슈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 이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수상은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많은 독자들과 작가, 평론가 들에게 인정을 받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해 "그의 소설에는 위대한 정서적인 힘이 있다." 며 "소설을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우리의 환상적 감각 아래에 있는 심연을 발견했다." 고 밝혔다고 한다.


2016년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 작품을 통해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맨부커상은 우리에게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가즈오 이시구로 역시 이 상을 수상했다. 그는 1989년에 발표한  『남아 있는 나날』을 통해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작품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의 원작이기도 하다. 오늘은 소설 속 이야기를 소개한다.




■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허망함, 그래도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남아 있는 나날』 은 1956년 여름, 영국의 한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의 집사로 평생을 살아온 스티븐스가 그의 삶에서 첫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집사의 역할로서 저택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보러간다는 마음과 동시에 젊은 날 떠나보냈던 켄턴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지금까지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기도 하며 지나간 사랑을 깨닫기도 한다.


스티븐슨의 직업은 '집사'이다. 소설의 대부분은 스티븐슨의 '집사'라는 직업의 사명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달링컨 경을 모시면서 그의 저택을 관리하는 일에 삶을 바칩니다. 그 중에서도 달링턴 홀에서 개최될 회담을 위해 방문하는 귀한 손님들을 위한 접대와 연회준비는 단연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스티븐슨은 그가 모시는 달링턴 경이 영국과 그 당시 유럽의 정치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를 위해 집사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어쩌면 자신 또한 그런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한다고 생각을 했지요.


달링턴 홀에서 개최되는 회담의 내용은 제1차 세계대전 후 1919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연합국과 독일이 맺은 조약, 바로 독일에 대한 각종 조치가 취해졌던 베르사유 조약에 대해서 논의할 예정이었습니다. 달링턴 경은 베르사유 조약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앗으며 한 나라를 계속해서 단죄하는 것은 영국의 신사적인 모습은 아니며, 또한 전 세계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회담을 진행을 한 것이지요.


그 회담이 진행되는 연회 중에 스티븐슨의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저택 내에서 삶을 뒤로 합니다. 그의 아버지 또한 한 때는 그와 같은 집사였었고, 나이가 드신 후에 스티븐슨이 모셔와서 달링턴 홀에서 하인과 같은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는 순간 마저도 그는 옆에 있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 또한 이해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연회에서 집사인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지금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실거라 생각했다. 결국 그 연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집사로서의 경력에서도 중요한 한 획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집사라는 직업에 헌신했다.


(p143)

"조의를 표하네, 스티븐슨. 부친께서 심한 뇌졸증을 일으키셨어.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통이 크지는 않으셨을 거야. 자네뿐 아니라 그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네."

"감사합니다, 박사님."

"난 그만 가 봐야겠네. 뒷일은 자네가 수습하겠지?"

"그럼요, 박사님. 그런데 지금 아래층에 아주 특별한 신사분께서 박사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급한가?"

"한시바삐 박사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나는 메러디스 박사를 모시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당구장으로 안내한 다음 서둘러 흡연실로 돌아갔다. 연회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고 있었다.


내가 마셜 씨나 레인 씨 같은 우리 세대의 '위대한' 집사들과 같은 반열에 낄 만큼 훌륭하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하긴, 엉뚱한 관용을 베풀어 그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1923년의 회담, 특히 그 마지막 날 밤이 내 직업상의 발전에 전환점이 되었다는 말은 순전히 내 나름의 소박한 기준에서 하는 이야기란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날 밤 내게 붙어 다닌 중압감을 고려한다면, 내가 그날 마셜 씨 같은 사람의 '품위' 혹은 내 부친의 그것을 약간 보여주었다고 감히 말한다. 해도 지나친 자기 착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내가 왜 그 점을 부인해야 하는가? 지금도 그날 저녁을 생각할 때면, 함께 떠오르는 가슴 아픈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뿌듯한 성취감에 젖어 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가 모시던 달링턴 경은 나치에서 이용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가 그렇게 헌신했던 사람이 영국인에게는 가장 적대적이었던 독일 나치를 지지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받쳐 왔습니다.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그동안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합니다.


예전에 어떤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남자는 평생 한 가지 일을 했습니다. 공장에서 제품이 지나갈 때 어떤 레버를 내리는 작업 공정을 진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평생 일을 하고 퇴직을 하게 되죠. 그런데 그가 그 직장을 떠나갈 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레버를 통해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그동안 계속 고장이 나서 작동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수십년을 일한 그곳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허망 했을까요? 그래도 그 일을 하면서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을 텐데 한 순간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죠.


하지만 스티븐슨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달링턴 경이 독일 나치를 지지하는 일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해서 평생 헌신을 받친 것처럼 그의 삶이 한 순간에 변해 버렸습니다.  이 책의 뒷 부분에는 번역가인 김남주 씨가 적어놓은 작품 해설이 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적어봅니다.


(p306)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성실하게 일상을 반복함으로써 악을 돕고 악에 이용당하는 범인들의 삶, 그 소름끼치는 관성의 폐해에 대해 말한다. 600만여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데 앞장선 전범 아이히만은 도착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지닌 괴물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고 근면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였다면, 아이히만은 좋은 아버지, 자상한 남편, 성실한 직업인이었다.


계급과 편견과 차별에 길들여져 있었던 근대인의 조건은 고려해야 겠지만, 결국 인간은 자신의 더듬이로 길을 가고 그 여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여행 첫 날 주인의 포드를 몰던 스티븐스는 왠지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며 회상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당연한 지각력은 정작 그의 삶에서는 안타깝게도 억압되어 있다. 집사의 품위에 앞서 존중되어야 했던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대한 성찰은 없는 것이다. 잡사의 정신, 집사의 역할, 집사의 품위는 입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사로와 행위는 본연적인 것임을 그는 인식하지 못했다.



이 책의 말미에는 스티븐슨과 한 남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스티븐슨은 그의 과거의 허망함에 내적으로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그 남자가 말합니다.


(p300)

"이 봐요, 형씨.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소만, 만약 나한테 묻는다면 이런 태도는 정말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알겠어요? 만날 그렇게 뒤만 돌아보어선 안됩니다. 우울해지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요, 이제 당신은 예전만큼 일을 해낼 수 없어요. 하지만 그건 우리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사람은 때가 되면 쉬어야 하는 법이오. 나를 봐요, 퇴직한 그날부터 종달새처럼 즐겁게 지낸답니다. 그래요, 우리 둘 다 피 끓는 청춘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하는 거요." 

그러고 나서 그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무엇보다도 돌이킬 수 없는 허망함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겠지요.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항상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이 허망함을 간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이후의 자세가 중요한 법입니다. 반성할 것이 있다면 반성하고, 깊이 고민을 해서 지난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이 책의 제목 처럼 남아있는 나날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우리의 삶은 지속되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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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노벨문학상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습니다. 작년에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올해도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도박가들은 무라카미 하루키, 파올로 코엘료, 밀란 쿤데라, 응구기 와 티옹오, 조이스 캐롤 오츠 등을 손꼽았었죠. 그런데 노벨문학상 당일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의외의 인물에 놀라워하는 동시에 작년과는 다르게 그래도 받을 만한 작가가 받았구나 하는 공감대가 생겨난 거 같습니다. 그 만큼 가즈오 이시구로는 조금씩 독자들과 작가들 사이에서 살며시 그러나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과 함께 그의 작품들이 하나 둘 베스트셀러로 올라서기 시작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부분의 책들을 출판한 민음사는 아마도 환호를 지르며 회식 자리를 가지지 않았을까요. ^^

반갑게도 최근에 하나 둘 생겨나는 중고서점들에서도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은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역시 타오를 때 한 번에 타오르는 대한민국입니다. 다행히 제 책꽂이에는 그의 책이 두 권이나 꽂혀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가 제 이름을 새긴 책도장까지 박혀서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3년 전인가 민음사 북클럽 회원으로 등록을 할 때 책을 선정할 수 있어서 선택한 책들이었습니다. 읽지 않고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지금을 기다렸나 봅니다. 역시 책은 나와 인연이 다을 때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봅니다.


3년 동안 간직만 해 두었던 책을 작가의 수상 소식과 함께 한 달이 안 되어서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권위'에 대한 내면의 복종이었을까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기 전에 읽었더라면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 같은 부분이 하나 하나 다 의미가 있어보이는 느낌을 받으면서 읽었습니다. 역시 노벨상을 받을 만 하구나. 역시 노벨상을 받는 작가의 작품은 다르구나. 어쩔 수 없는 편견에 빠지고, 권위의 늪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의 작품은 상당히 인상 깊었으니까요.



그 중 오늘은 그의 대표작이자 제 서재에 있는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나를 보내지 마』를 소개드립니다.

회사에서 누군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그래서 내용을 잠깐 설명해 줬죠.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어, 그거 영화로 나온 얘기 아니야?"  이 책이 영국에서 출간된 시기는 2005년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시기는 2009년 이었네요. 그리고 영화가 국내에 개봉한 시기는 2011년 이네요. 조금 늦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에서 태어나 4살에 영국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성장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영국에서 출간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타임>은 이 작품을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돌아왔습니다. 이제야 소설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지금까지 읽어왔던 소설과는 다릅니다. 소설의 소재 자체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낯설지는 않습니다. 이미 여러 경로로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봄직한 이야기거든요.

소설은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서 복제된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한 줄로 표현하면 마치 공상과학과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수 도 있겠네요. 하지만 너무나도 인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로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였다고 생각됩니다.

작품 속의 화자였던 캐시와 그의 친구인 토미와 루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배경은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입니다. 기숙학교에서는 분기 별로 교환회가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학생들이 만들어온 유화, 소묘, 도예품, 시 등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잘 만들어진 것들은 '마담'이라는 어떤 인물에 의해서 학교 밖으로 나가게 되죠.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들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일반 사람들처럼 담담하게 표현해나갑니다. 마치 실제 캐시, 토미, 루스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죠. 하지만 중간 중간에 그들이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암시하는, 아니면 더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헤일셤의 학생들은 암묵적 동의하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p114) 연못가에서 대화를 나눈 지 1~2주 후에 루시 선생님의 영어 수업 시간에 일어난 사건의 예를 들 수 있다. 어떤 시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 어쩌다가 2차 대전 때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마자애 하나가 수용소를 둘러싼 담장에 전류가 흐르고 있었는지 묻자, 누군가가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은 정말이지 기묘한 느낌일 것이라고, 언제라도 담장에 손만 대면 자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심각한 의도에서 한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그 말을 상당히 재미있게 생각했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일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간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모두들 전류가 흐르는 담장을 만지는 흉내를 내며 소리를 질러 댔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줄곧 루시 선생님을 관찰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아주 잠깐 어떤 희미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을 추스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헤일셤의 담장에 전기선이 둘러져 있지 않은 건 다행이지. 그랬다면 때때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어조는 아주 나직했고, 아이들은 줄곧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므로, 그 말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을 거야."라는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가 어디서 벌어진 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그 점을 묻지 않았다. 우리는 시에 대한 토론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학교를 나온 후에 간병인이 되고 기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진정으로 사랑을 한다면 기증을 3년 유예 시킬 수 있다는 소문' 에 의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렇게 캐미와 토미는 그 유예를 시켜준다는 '마담'이라는 조재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마담과 그들이 헤일셤에 있었을 때 교장선생님으로 있던 에밀리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일반인을 구분할지 모르겠으나 일반인을 위해서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복제인간 중에서도 아주 혜택을 받아오며 성장해왔습니다. 에밀리 선생님과 마담이라 불리던 사람이 복제 인간의 휴머니즘과 그들도 역시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며 만든 학교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들이 어린 시절 교환회에 제출했던 작품들은 에밀리 선생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제 인간들이 단순히 장기를 주기위한 그런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헤일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은 마치 가축이 사육이 되듯이 그렇게 복제인간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난 캐시의 시각으로 이야기는 진행되며, 마지막에 에밀리 선생님과 마담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가 하나 둘 드러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닝데일 사건을 통해서 그들의 노력은 흔적을 감추게되죠.


(p361) "줄곧 말씀하시는 모닝데일 사건이라는 게 뭔가요. 에밀리 선생님? 그것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알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음 너희가 그 사건을 알아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사건은 상당히 재능을 갖고 자기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가던 제임스 모닝데일이라는 과학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벽지에서 자기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지. 그런 곳에서라면 관심이 덜 쏠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가 하려던 건 좀 더 강화된 특질을 가진 아이를 얻는 거였어. 지성이나 운동 능력 같은 면에서 우수한 아이 말이야. 물론 이제까지도 그 비슷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모닝데일이란 사람은 이전의 이런 연구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밀어붙였지. 그러다가 법의 범위를 넘어서고 말았단다. 물론 그건 우리의 경우와는 상관이 없지. 조금 전에 말한대로 그건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그게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냈지 . 그 사건은 사람들에게 줄곧 가지고 있던 공포를 환기시켰단다. 너희 같은 학생들을 만들어 내는 기증 프로그램에 대한 공포 말이다. 혹시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의 후손이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게된다며? 그들이 우리 일반인보다 우수하다는 게 증명된다면? 오, 안 돼, 그 생각은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어. 그들은 뒷걸음질 쳤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간과 장기기증을 위한 인간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탁월하게 휴머니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처럼,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반대로, 다들 그들의 운명을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묘한 경계와 긴장감을 작가는 마치 줄타기를 하듯이 작품의 마지막까지 끌고 나갑니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암시하게 만드는 사소한 에피소드를 숨겨두고, 따뜻한 인간애의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다시 그의 작품의 제목으로 돌아갑니다.  

Never Let Me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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