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책을 넘기기가 아쉽고 아까웠다.

고미카와 준페이의 <인간의 조건> 마지막 여섯 번째 책을 아껴가면서 읽었다. 대하소설이지만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서 한 번 읽다보면 금방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남은 페이지 수가 줄어들수록 안타까웠다. 다른 책들은 읽다보면 얼마나 더 읽으면 다 읽겠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된다. 이 책은 그 반대다. 책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서 아쉬움으로 한장 한장 넘긴다.


<인간의 조건>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단연 인상적이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 내 인생의 책을 뽑는다면 아마 이 책에서 삶의 변곡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자신에게서 받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자기 만의 대답은 있어야한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여기서 첫번째 생각이라는 단어가 바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끊임없는 자기 질문이다. 그런 질문과 생각이 없다면 결국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이 변해가게 된다. 불확실한 환경과 개인적인 생각, 관점과 다른 방향으로 세상이 변해가도 삶을 이끄는 축은 흔들리지 않는, 아니 흔들리더라도 결국 다시 자신만의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개인마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은 가치관 바로, 그들의 삶을 이끄는 삶의 축인 셈이다.


때로는 자신의 살고자 하는 방향과 다르게 삶이 흘러갈지 모른다. 때로는 자신의 사상과 신념과 배치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로는 자신이 믿는 무엇인가에게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는, 생각과 배치되는, 살고자하는 방향과 다르게 흐르는 어떤 무엇과 끊임없이 맞서야 하는게 우리의 삶일지 모른다.


우리는 보통 '행복한 삶'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행복을 사람들마다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그 행복이라는 감정과 시간은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 행복은 그저 온전히 자기 스스로 즐기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과 삶의 축이 흔들리는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는 작든 크든 삶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갈등과 일상이 행복이라는 감정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과 맞설 수 있고 즐길 수 있는게 아마 더 중요한 듯 하다.


누군가 나에게  "주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조건들을 지켜나가면서 살아야 해." 라고 말해 줄 수 있다. 이게 6권이나 되는 이 책의 짧은 줄임이다. 이런 줄임으로는 알 수 없다. 그 감정을 그 여운을...... 분명히 말하려고 하는 점은 동일하나 책을 읽어가면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갈등 속에서 주인공 가지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서 나 역시 어떤 판단과 결정의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나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질문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가지와 같은 갈등이라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과연 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순간적인 상황에 나 역시 죽을 듯이 힘들지만, 자신의 삶의 축인 인간다움으로 가지는 주변인을 보살피는데 내가 만약 그런 순간이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간단히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해본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가지는 제2차세계대전이면서 대동아전쟁 당시에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군수회사에 취직을 한다. 가지는 일본의 전쟁에 대해서 반대하고 군국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비판을 지니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자국과의 이념과도 갈등을 이룬다.  하지만 당시 군대에 가지않는 소집면제 특권을 받기 위해 노무관리자의 역할로 만주에 있는 라오후링 광업소로 아내 미치코와 간다. 당시 그 광업소의 일본이 잡아온 중국인 포로들의 대우에 대해 가지는 분노하고 어떤 사건으로 인해 관리자들과 갈등이 생기고 결국은 가지는 군에 징집되게 된다. 징집된 이후에도 가지에는 군대라는 조직의 불합리와 항상 맞선다. 후임병이지만 고참병과 간부와도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다움에 배치되는 점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대항한다. 그러한 도중에 일본은 패망하고 전쟁이 벌어졌던 그곳에서 미치코를 향해 간다. 그런 도중에 소련군, 일본인, 만주인과 많은 갈등에 접하게 되는데, 매번 가지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결국은 소련군에 의해 포로가 되고 그곳에서 그가 믿는 사회주의에 대한 또 다른 실망을 갖기도 한다. 다시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고 미치코를 향해간다.


전쟁이 끝나고 미치코를 향해서 만주로 가면서 가지는 많은 일본병사와 당시 만주에 사는 일본인을 만난다. 때로는 그들과 같이 소련군과 만주인을 피해도망가는데 굶주림에 지친 이들은 누군가는 자신의 아내를, 누군가는 부모를, 자식을 버리고 홀로 삶을 위해 발을 서두른다.


과연 삶의 기로에 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연히 지금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라고 반문하겠지만 극한에서도 당당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주인공 가지는 라오후링 수용소에서 노무관리자로 일할 때 중국인 포로의 인간다운 삶을 조금이라도 보장해주기 위해서 광산 소장과 다른 이들과 갈등을 겪고 심지어 무력을 사용하는 군인과도 마찰을 일으킨다. 아내인 미치코와 그저 조용히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항상 결국은 남을 위한 결정을 내린다.


가끔 뉴스기사를 보면 지하철승차하는 곳에 모르는 사람이 떨어졌는데 망설임 없이 들어가서 구해주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재 속에서 모르는 사람을 구조하고 때로는 삶을 마치기도 한다. 일제시대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이런 선택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사랑하는 부모님, 아내, 자식이 있는데 타인을 위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할 것인가?


앞으로 삶의 이정표, 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은 이러한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기본 방향에 대해서 이 책에서 배웠다. 나 역시 그 인간의 조건을 끝까지 지키며 살려고 한다.


옮긴이 김대환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을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인간다운 인간을 보기 힘든 사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살 수 없는 사회,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지배당하고 핍박받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또 우리 자식에게는 적어도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도리를 지키며 인간답게 살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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