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몰랐었다. 가끔 이유없이 제목에 끌려 세계문학접집 중 몇 권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눈에 들었다. 어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번 <인간실격>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파격적이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왔다. 소설 속에는 따뜻함이 없다. 읽는 내내 침울하고 취해있고 무기력하고 안타까웠다. <인간실격> 제목 그대로 주인공 요조가 '인간 실격자'가 되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책을 읽고 나서 '다자이 오사무'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작가에 대한 소개가 <인간실격>의 내용이었다. 이건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작가의 자전적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소설 속 요조의 삶 속에서는 희망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과연 어떻게 저렇게 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작가가 그랬다. 아마 다자이 오사무의 유일한 삶에서의 탈출구가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자 소설 속 요조의 삶은 어떠했을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군 카나기무라에서 대지주 쓰시마 가문의 11남매 중 10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유모, 숙모, 보모의 손에 자라면서 정서불안을 얻게 된다.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해 귀족원 의원에 올랐던 지방 유지인 아버지로 인해 가문에 대한 경멸을 느끼면서도 유복한 환경을 누리며 독립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순적 태도에 내적 불화를 겪게 된다.


그는 학창시절 전교 1등을 차지하는 우등생이었으며 프랑스 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겨으로 도쿄제국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했으니 금세 흥미를 잃고 제적당한다. 대신에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좌익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요ㅗ)는 술과 마약에 빠져 여자들과의 문란한 사생활에 자주 구설에 올랐다. 대학 시절에는 술집 종업원 출신 내연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하다가 혼자 살아남게 되면서 자살방조 혐의를 받고 기소유예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후에는 동거녀의 외도에 충격을 받아 시도했던 자살 역시 실패하게 된다. 자신과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점차 염세주의자가 되어갔고 약물중독에도 벗어나지 못해서 강제 수용되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며 4번의 자살시도를 거듭했던 그는 1948년 6월 13일, 도쿄 미타캉의 타마강 상수원지에서 내연녀와 함께 투신자살하여 39살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글로써 무엇인가를 표현하면 글쓴이가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속의 깊은 내면의 부끄럽고 챙피하고 치욕스러운 것을 다 뱉어내어 표현해버리면 응어리진 것들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자이 오사무의 삶의 유일한 탈출구도 글 쓰는게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비관적인 현실인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무의미함을 표현하는 글귀가 많이 눈에 띈다.


P36

나한테는 재난 덩어리가 열 개 있는데, 그중 한 개라도 이웃 사람이 짊어지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충분히 치명타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일도 있습니다.


P62

저 백치 창녀들 품 안에서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었던 느낌하고는 또 완전히 다르게 이 사기범의 아내하고 보낸 하룻밤은 저한테는 행복하고 (이런 엄청난 말을 아무 주저없이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이 수기 전체에서 두 번 다시 없을 것입니다.) 해방된 밤이었습니다.


P82

저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했지만 '우정'이라는 것을 한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었고 (호리키처럼 놀 때만 어울리는 친구는 별도로 하고) 모든 교제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어서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느라 오히려 기진맥진해지곤 했습니다.


남의 집 대문은 저한테는 저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문 이상으로 으스스했고 그 문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용 같은 비린내 나는 짐승이 꿈틀거리는 기척을,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느꼈던 것입니다.


P134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요조(남성이지만 자꾸 여성이 떠오르게 된다.) 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가면을 쓴 인격인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세상 사람들 모두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지만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페르소나로 부터 얻게되는 피로함과 고통을 덜게 합니다. 하지만 요조에게, 다자이 오사무에게는 그게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 실격>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인간 실격자'라고 했지만 요조 자신에게, 다자이 오사무 자신에게 아쉬움이 남고 위로를 해주고 싶어하는 듯 하다.


P138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인간실격>은 어쩌면 삶이 힘든 사람, 처절하게 아픔을 겪는 사람이 읽으면 오히려 치유가 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픔을 겪는 이에게는 그저 행복만을 내세우는 위로보다는 읽을수록 아프고 안타까운 이런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질문을 하고 아픔을 모두 드러내고 다시 치료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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