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내일이 되면 갑자기 그는 내일도 같을 것이고

모레도, 다른 날들도 모두 같으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발견으로 그의 가슴은 녹아내리는 것이다.

(중략)

그런 생각들을 견디지 못해 사람은 자살을 하게 된다.

혹은 젊은 사람이라면 글을 쓴다"

 

- 알베르 카뮈 -

 

 

사람들은 자신 만의 삶을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카뮈가 말하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삶의 반복' 에 대처하는 나름의 처방을 가지고 있다.

만약,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반드시 찾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본래 외롭다고 하지만,

무언가로 자신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로 하여금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람들마다 받아들여지는 삶의 무게는 다르기에,

아쉽게도 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술에 빠져 들기도 하고,

누적되는 삶의 피로에 허우적되기도 한다.

 

다행히 나는 그 방법을 한 가지는 찾은 것 같다.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 '있을 수 없는 일을 상상할 수 있는 재미'

'한참 동안 마음 졸이다, 긴 한 숨을 내 쉴 수 있는 감정의 경험'

'혼자 한 없이 외로워져서 눈물을 흘리다 조그만 위로에 위로 받을 수 있는 약한 감정'

나에게 이런 삶의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는 것은 '소설', 바로 '이야기' 다.



 

소설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지만,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소설을 쓸 때 작가는 분명히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작품 속에 등장시킬 인물들에게 각자 어울리는 성격을 만들어주고,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숨은 요소들을 배치했을 것이다.

그런 작가들이 숨겨놓은 것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속에서 이야기의 재미 뿐만 아니라,

그렇게 숨겨진 보물을 하나씩 찾아내듯 '소설' 을 읽을 수 있다면,

작은 방에서 '책 한 권' 읽는 재미로 남 부럽지 않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 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2980.01.05 움베르트 에코


'소설' 에 대해서 그 기법과 형식들을 한 번 쯤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라면,

쉽게 몰입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러던 중에 '정여울' 작가의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최근에 『공부할 권리』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글을 이끌어 가는 감성에 매료되어서,

이 분의 책이라면 기꺼이 선택해도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여울의 문학멘토링』

제목이 '문학멘토링'이다. 딱딱하지 않다.

작가는 '문학'을 정말 좋아하고, 자기가 발견한 것들을

후배들에게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듯 하다.

문학의 미로를 헤치는 18개의 열쇠를 준비하고,

하나씩 독자들에게 설명해준다.

말하는 이도 즐겁고, 듣는 이도 즐거운 대화같이 들린다.

각각의 열쇠에 해당하는 소설의 한 부분을 소개시켜준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의 경우는 궁금해져서

별도의 목록으로 정리를 하기도 하고,

읽어 본 책의 구절이면, 입가에 미소가 생기면서 반가움이 앞선다.

 

정여울 작가가 소개해주는 문학의 미로를 헤치는 18개의 열쇠는

지금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열쇠이기에 잘 보관해 둔다.


01. 패러디 - 고전은 왜 끊임없이 패러디되는가?

02. 시점 - 여섯 살 옥희의 눈에 비친 세상

03. 의인화 - 인간의 탈을 쓴 동물

04. 은유 - 하늘의 별이 튀밥 같다고?

05. 상징 - 그들은 왜 걸핏하면 방앗간을 찾을까?

06. 아이러니 - 어쩐지 너무 운수가 좋다 했더니

07. 알레고리 - 소인국은 그저 소인국이 아니다

08. 트릭스터 - 방자, 골룸, 동키, 큐피드의 공통점은?

09. 안타고니스트 - 저 녀석만 없으면 주인공이 행복할 텐데

10. 시간 - 또 기억 상실증

11. 공간 - 그곳이 평사리여야만 하는 이유

12. 음식 - 어떻게 먹을 것인가, 누구에게 먹일 것인가?

13. 판타지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까닭은?

14. 트라우마 - 견딜 수 없는 슬픔의 역할

15. 통과의례 - 영웅은 왜 과도한 시련을 겪는가?

16. 정체성 - 위대한 '가출'의 주인공들

17. 대재앙 - 세상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18. 사랑 - 사랑의 혁명적 힘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라는 작품이다.

아직 초반부를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조금씩 주변을 둘러볼 예정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을 보고 있어서

전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지금은 제인 에어가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부터,

외숙모와 외사촌들에게 심한 구박을 받는 것 부터 나온다.

과연 제인 에어는 이런 통과의례를 잘 겪어낼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제인 에어의 시선을 통해서 바라보는 이야기를,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시선으로 돌려보기도 한다.

새롭다. 신선하다. 소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문학을 조금 더 파고 들어야 겠다.

갑자기 서재에 꽂혀 있는,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라는 책이 생각난다.

소설을 쓰는 법에 대해서 나온 책인데,

이 책을 만날 시기를 만났다.

앞에 몇 페이지만 들춰보고 고이 꽂혀있는 책인데

이제는 내가 조금 더 볼 수 있도록,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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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사회문제, 철학, 역사, 경제, 정치,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문학이란 삶에 관한 것입니다. 그 점은 다른 학문과 같습니다. 철학이나 경제, 역사 모두는 삶을 기초로 논리를 세우고 제도를 만들며 진실을, 혹은 사실을 기록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든 학문은 삶이 현장이며, 삶은 모든 학문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삶의 총괄적인 것을 다루어야 하는 문학은 어떠한 부분, 어떠한 분야도 수용해야 하지만 그 것은 실체가 아니며 사실도 아니라는 점, 그러면서도 진실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해서 소설을 창작이라 한다는 것을 먼저 말해 두고자 한다.


- 박경리,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中



문학은 삶의 총괄적인 것을 다뤄야 합니다. 하지만 실체도 사실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진실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문학 중에 특히 소설을 좋아합니다. 여러 소설을 읽다 보면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갑니다.

허구라는 그 속에서 허구적이지 않은 삶들을 살아갑니다. 이런 인물들의 삶을 천천히 지켜봅니다.

그러다 보면 감수성이 생겨납니다. 그들의 삶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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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게 많았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생각을 하며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궁금증이 하나씩 생겼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그의 작품에 놀라고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나온 그의 책들을 모두 읽어보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작가의 전작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은 게 무라카미 하루키와 박범신 두 명이 지금까지의 전부인 듯 하다.

 

지금까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은 작품들의 작가를 열거해 보면 김진명, 황석영, 정유정, 천명관, 황정은, 김민규, 조정래, 박범신 정도였다. 물론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아직은 만날 계기가 되지 않아서 접하지 못한 것은 너무 많아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박범신 작가의 작품이 너무 진하게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본성의 미세한 지점까지 파고드는 부분은 너무 예리해서 아프기도 하다. 사람들이 누구나 알지만 표현할 수 없는 그것들을 어쩌면 그는 과감히 표현할 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금》을 읽으면서는 몇 번이나 혼자 책을 읽으며 눈물을 떨구었는지 모른다. 그냥 많이 아프고 쓰렸다.

그는 개인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하며 그들의 내면  속에 떨어진 작은 나뭇잎 하나의 자그마한 움직임도 민감하게 잡아낸다.

 

p198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에서

 

런 박범신 작가가 좋아졌다. 그리고 그의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제목은 《산다는 것은》 이다. 

<존재의 안부를 묻는 일곱 가지 방법>이라는 부제를 담고 있는 그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 박범신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이 다소는 풀리는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삶, 산 그 중에서도 히말라야를 사랑하는 삶, 항상 젊은 낙지, 문어(?) 한마리를 가슴 속에 안고 사는 삶, 봄꽃에 홀로 기뻐하며 소주 한 잔을 하는 그의 삶이 글을 통해 다가왔다.

 

p68

그러나 젊은 날, 자기 지향을 오지게 쫓아갈 수 있는 동력은 안정감보다 필연적으로 불균형하게 드러나는 내적 분열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나는 아직 수정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매사 상대적인 관계로써 안정감을 확보한 '젊은 그들' 보다 여전히 내부적 불균형 때문에 불편하게 살고 있는 '늙은' 내가 오히려 덜 권태롭고 덜 외롭기 때문이다.

 

p172

불타는 사랑이 없다면 누가 평생 남들 자는 시간에 홀로 깨어 앉아 원고지와 한사코 마주앉아 있겠는가. 밤새워 원고를 쓰고 난 아침에 아내는 곧잘 '당신 일하는 데 혼자 자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럴 때 내 대답은 이렇다. "미안하기로 치면 내가 미안하네. 왜냐하면 당신 재워놓고 밤새 내 주인공과 뻐근하게 연애하고 있었거든."

 

그는 무엇보다도 뼛 속까지 작가이다. 그가 절필선언을 하고 글을 쓰지 않았던 시절이 그는 편했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밤새워 원고를 쓰며 주인공과 뻐근하게 연애를 한다는 그는 분명 이별의 슬픔에 만나지 못하는 아픔에 많이 울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이제는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이 사회의 어른에게 깊은 조언을 받는 느낌을 받았다. 

 

노새를 보며 슬퍼하고 봄꽃을 보고 너무 기뻐하던 그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날 선 예리함을 드러내며 사람들이 말하기 망설여하는 것에서도 작가답게 글로써 담아낸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의 글은 아마도 우리들의 진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너무 드러내버리니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p210

우리는 감성과 이성의 편차가 심한 민족이다.

 

심장엔 노무현의 '지향'을 두고 머리로는 이명박의 실용적인 '보따리'를 넘보면서 양다리를 걸친 것이 누구인가. 자신의 가슴이 하는 말을 자심의 손이 알아듣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그를 버린 것이 누군인가. 그는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고 했지만 고백하건대, 우리는 남아서 미워하지 않을 수 없고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미워하는 것으로 양다리를 걸쳤던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원망하는 것으로 나의 명목적인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지키지 못한 것은 용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감성과 이성을 각각 딴 주머니에 넣어두고 시치미를 뚝 떼고 마는 우리의 부정직한 이중성, 혹은 과실을 핑계로 한 비겁한 삶의 전략에 그 연유가 있다. 혹시 나는, 우리는 우리 짐을 대신 짊어지게 할 '짐
꾼'을 잃어 지금 울고 있지는 않는가

 

 

 아직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네 편의 작품 《소금》,《은교》, 《촐라체》,《산다는 것은》을 만나면서 이미 많은 것을 배운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소설 속마다 가슴 아픈 사연이 등장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기꺼이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는 느낌을 항상 받아 온다. 나 역시 삶이라는 것은 기쁘건, 아프건, 한 번쯤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산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며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인 동시에,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한다.

 

p174

사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예컨대, 어떤 이는 직장 일에 에너지의 50퍼센트를 쓰고, 가정생활에 30퍼센트를 쓰고, 취미 활동에 20퍼센트를 쓴다. 그는 직장에서도 쉬엄쉬엄 좀 심심하게 일하고 가정에서도 대충대충 오직 습관에 의존해 산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과적으로는 100퍼세트의 에너지를 쓰고 100이라는 인생을 산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이는 직장 일에 에너지의 100퍼센트를 쓰고 가정 생활에서 100퍼센트, 또 취미 활동에 100퍼센트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 이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며, 따라서 삶의 정체성을 뜨겁게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300퍼센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놀라운 산술로 보면 결국 그도 100퍼센트의 에너지로 100의 인생을 살 뿐이다.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연애다. 전자의 인생엔 연애가 깃들어 있지 않으므로 혹 외형적인 성공을 거둔다 해도 권태롭지만, 후자의 스타일은 일상에 늘 연애의 본성이 깃들어 있으므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심심할 겨를이 없다. 연애를 동반한 삶은 최소한 쓸쓸하지 않다. 그는 불황 때문에 좌절하지 않으며 환경을 핑계로 도덕성을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연애는 희망이고 도덕이고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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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을 맺다. 


이번에도 그동안 제목만 알고 있었던 책을 찾아 읽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에 몇 일 동안 푹 빠져 있었다. 글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잔잔하게 남아있다. 근래에 읽었던 책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힌다. 책을 읽자 마자 얼마 후 부터 '아! 드디어 만났구나' 하고 느끼는 보물들이 있는데 <달과 6펜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특히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건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하마터면 뒷부분을 먼저 읽어버릴 뻔했다. 

 

<달과 6펜스>는 등장인물 스트릭랜드를 통해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배경이 있는지 모르고 읽은 책이어서 즐거움은 배가 된다. 실제 인물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와 다른 장르와 연결해주는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에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를 자연스럽게 시에 대해 이야기듯이 <달과 6펜스> 역시 작품 속 스트릭랜드이자 실제 인물인 폴 고갱을 통해서 미술에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해준다.


예전부터 그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저 관련 책을 읽는 것으로는 흥미가 생기지 않아 쉽게 포기하곤 했다. 이번에는 뜻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책읽기를 마치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찾아 폴 고갱 이후 반 고흐를 만나게 해주었다. 이 소중한 인연이 차곡차곡 조금씩 쌓아지기를 내심 바랄 뿐이다.


이야기 속으로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을 증권 중개인 일을 하던 부유한 사십대 남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홀로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는 가난한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한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더크 스트로브는 그를 지원지만 스트릭랜드는 그에게 냉소적이었으며 그의 아내 블란치 마저 자살에 이르게 한다. 그는 오직 자신의 그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과는 다른 게 있는 듯 했다. 


그는 문명의 땅을 뒤로 하고 남태평양의 외딴 섬인 타히티로 떠난다. 타히티라는 원시의 섬에서 그가 생각하는 낙원을 만나고 그림에 열중하고 아타라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문등병에 걸리고 심지어 눈이 멀기까지 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의 집안에 신비로운 그림을 그린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폴 고갱의 삶을 그대로 재현해두고 있지는 않지만 거의 유사한 삶을 살았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한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을 표현해준다. 분명히 자신 밖에 모르는 차디찬 냉소가 깊게 베어나지만, 그 열정이라는게 자연스럽게 다른 부정적 요소를 가려준다. 나 엮시 읽는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일에 빠져든 그가 부럽기도 했다.


작가 서머싯 몸은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왜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고, 이야기의 중간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가 전환된다. 어쩌면 친절하지 않고 부연조차 없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툭 던져 놓으니 확실한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더 극적인 표현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묘미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손에서 놓지못하고 한 번에 읽은 기억이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1인칭 관찰자시점으로 내가 개츠비를 궁금해하고 서로 인연이 닿아가면서 그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가는 묘미가 있었다. <달과 6펜스> 역시 소설 속 작가인 내가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이야기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효과적인 것 같다.

어떤 이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절묘한 조화가 훌륭하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 정도를 찾을 수 있지는 못해서 아쉽다.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저도 모르게 손이 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책들은 읽고 나면 개운하게 숨을 내쉬며 책을 덮을 수 있다. 읽는 동안 긴장한 것을 놓는 숨이며 아쉬움의 표현이다.


폴 고갱의 작품 속으로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 고갱에 대해 표현한 부분을 찾아 보았다.


P551

타히티 섬에서 가져온 그의 작품들을 대했을 때 그의 옛 친구들조차 당황스러워 했다. 그 그림들은 너무 야만적이고 미개해보였다. 그것은 바로 고갱이 원하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야만적'인 색채와 소묘만이 타히티에 머물면서 감탄했던 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이들을 올바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중략)

그러나 고갱이 아주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낯설고 이국적인 것은 단지 작품의 주제만이 아니다. 그는 원주민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토착민 장인들의 수법을 연구하고 때로는 자신의 작품 속에 그들의 것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그린 원주민의 초상을 그러한 '원시'미술과 조화시키려 애썼다. 그래서 그는 형태의 윤곽을 단순화하고 넓은 색면에 강렬한 색채를 거침없이 구사했다.  세잔과 달리 그는 단순화된 형태와 색체의 구성으로  인해 혹시 그의 작품이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연의 아이들이 지닌 순수한 강렬함을 그리는 데 도음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수세기에 걸쳐 씨름해온 유럽 미술의 문제들을 기꺼이 무시해버렸다.


솔직하과 단순함을 이룩하려는 그의 목표가 항상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향한 그의 열의는 새로운 조화를 이룩하려는 세잔이나 새로움을 전달하려는 고흐의 열의만큼 여정적이고 진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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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오늘은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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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마다 알고 있습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라, 꽃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내밀라.

몸을 던지고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 헤르만 헤세(1877~1962) '봄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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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나무


나이 든 나무는

바람에 너무 많이 흔들려보아서

덜 흔들린다.


- 장태평(1949~) '나이 든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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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욕이 들어있었던 책이다. 거의 일관된 하나의 욕이다. '씨발'이다. 

다 읽고 나니 그 말이 빠지면 절대 안된다. 이 작품에서 '씨발'이 빠지면 읽은 후에 절반의 여운은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쉽게 표현할 수 없었던 소재인 듯 하다. 주된 흐름은 가정 내에서의 가정폭력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이게 가정에 국한된 폭력이 아님을 알아가게 된다. 결국은 모든 폭력에 대해서 작가는 말하고 있다.



책의 중간 중간에 작가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마 그대는 이걸 읽고 있던 내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어디까지 왔나' 과연 그 어디는 어디인가? 책을 덮고 나서도 확실히는 모르겠다. 내가 어디까지 가야했는지를······

글을 정리하면서 생각한 건, 과연 작가가 말하는 폭력에 대해서 이해를 했느냐? 그 폭력에 당신은 개입되지 않았느냐? 방관하지는 않았느냐? 하고 되묻는거 같아서 불편하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화자는 앨리시어이다. 앨리시어는 동생과 함께 어머니에게 학대받고 아버지는 그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한 대를 더 걸쳐서 올라가면 앨리시어와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의 폭력 속에 살아왔고 그녀의 어머니는 폭력에 무관심한 듯 하다.


P42

그녀는 그보다 어머니가 궁금하다. 어머니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왜 내다보지도 않았을까. 왜 나를 들여보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죽고 싶을 정도로 나는 씨발 추웠는데 왜 나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얼굴로 자고 있나. 식구들이 저녁으로 먹고 남긴 수제비 냄새와 낡은 이불깃과 잠든 인간들의 냄새가 섞인 따뜻한 공기속에서 아주 조용하게 씨발 년이 발아한다. 씨발 년은 아버지 곁에서 편안하게 잠든 어머니를 내려다본다. (중략)

그녀가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일 때는 평화롭고 행복할 때다. 기생들과 즐기고 놀다 돌아온 가장이 신문지에 싸서 가져온 쇠고기나 꿩고기로 고깃국을 끓여 식구들이 모두 앉아 그것을 먹을 때다. 그녀는 배부르고 평온하다.

포스트 씨발 년을 탄생시킨 씨발 년이다.


앨리시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는 그녀에게 폭력을 가한 그녀의 아버지와 무관심한 어머니로부터 발아했다는 표현을 한다. 폭력의 되물림이다. 안타깝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정말 현실이 아닐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서툴다. 심지어 상대방이 폭력으로 느끼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다. 작가 황정은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표현하기 쉽지 않은 표현을 뱉어낸다. 그런데 당하는 당사자들은 혹여나 부모라도 그 당시에는 그랬을 거다라는 나 역시 뱉기 힘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폭력


앨리시어의 동생은 소위 학교에서 왕따를 받는 그런 학생인 듯 하다.  가정에서 어머니에게 폭력을 당한 동생은 학교에서도 폭력과 따돌림에서 자유롭지 않다. 학교폭력


p87

너는 병신이 아니라고 엘리시어가 대답한다.

너더러 병신이라고 말하는 새끼가 있다면 그 새끼가 나쁜 거고 진정 병신인 거다. 앨리시어의 동생이 그걸 듣고 고객를 끄덕인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에서는 어쩌면 국가에 대한 불신과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 국가 역시 폭력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게 한다. 앨리시어와 친구 고미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것을 보고 구청으로 갑니다. 무엇을 물어보려 했느냐. 그건 바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를 때려도 되는가? 였다. 소설 속의 화자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국가에 공권력에 호소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앨리시어가 처음 찾아간 구청의 복지과에서 가정폭력에 대해서 상담하는 곳이 아니고 행정업무를 보는 것이라며, 사설기관의 전화번호를 가르쳐준다. 국가는 외면했다. 다시 사설기관을 찾아간다. 사설기관 왈, 부모를 데리고 오란다. 그리고 예약을 하고 오란다. 이런 정말 '씨발이 발아한다.' 국가폭력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앨리시어의 동생은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내쳐지고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작가는 또 묻고 묻는다. 처음처럼......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앨리시어는 갤럭시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말을 한다.


P63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앨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앨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갤럭시는 좆같다.

앨리시어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갤럭시란 엘리시어에게도 아무것도 아니다.


한 개인의 고통은 그 개인만이 알 수 있다. 그 고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갤럭시 속에서의 개인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듯이 타인의 무관심 또한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 그리고 친구 고미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외면해버린다. 

앨리시어 같은 이는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가깝게 존재하고 우리가 아는 어떤 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라는 질문은 이제 그들의 고통을 얼마나 알게 됐는가하고 계속 질문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덧붙이기>

황정은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다. 162쪽 밖에 되지 않는 두껍지 않은 책인데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서사위주의 형식보다는 등장인물의 내면에서의 움직임이 주된 이야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듯 하다. 익숙하지 않아 쉽지는 않았으나 그러기에 더 남는다. 황정은 작가의 책을 더 읽어봐야 겠다. 색깔이 있는 것 같아서 궁금하다. 어떤 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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