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아내가 둘째 아들을 출산했다. 새벽2시경 산부인과에서 아내는 첫째 때와는 다르게 거친 숨소리와 비명 소리 가 들려왔다. 그런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오만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병원의 창문 밖으로 붉은 십자가가 보였다. 일부러 그곳에 세웠냐는 듯이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창문에 바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 홀로 기도드렸다. 아내가 건강하기를, 아이가 건강하기를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아 기도드렸다.
 
 솔직히 결혼을 하고 기독교를 믿는 처가의 영향으로 몇 번 교회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성적인 생각과 습관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기독교의 신앙을 믿지 못하고 있고, 교회도 잘 다니지 않는다. 그런 내가 그때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나 보다. 그만큼 천주교, 기독교는 지금 현재 보편적으로 우리 사회에 스며들었고, 많은 이들의 신앙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사회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다.
 
 150년 전, 조선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과히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주교가 처음에 조선에 들어왔을 때는 종교의 개념이 아닌 학문의 하나였다. 바로 서학, 서쪽에서 온 학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서학과 함께 천주교가 종교로서 사회에 퍼지면서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태워버리는 일들이 발생한다. 부모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인의예지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에게는 바로 그 정치이념, 왕권과 사대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수백년을 이어온 기득권 세력의 위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이러한 사상, 종교를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에 따르는 고통과 핍박을 피할 수 없었다. 조선의 천주교 도입 초반을 보여주는 '흑산'은 이 시대의 천주교인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정약용의 가족들이 있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황사영이 바로 그 박해의 폭풍 속에 있었다. 정약용은 이들 중에서는 천주교와는 그나마 가장 밀접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들의 말로는 편치 않았다. 황사영은 여섯 토막으로 정약종은 두 토막으로 처형되었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정약종과 황사영은 후에 성인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천주학에 깊이 빠져있었으며, 그 당시 기득권, 주류에서 소외되었던
 많은 백성들은 그들 개개인을 인정해주는 이 학문, 종교에 점점 더 관심이 높아져 갔으며, 그것은 신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에 반대에는 조정에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
 김훈의 역사소설은 칼의노래, 현의노래, 남한산성, 흑산처럼 당시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인간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준다. 역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묘사할 때도,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묘사는 화려하고 다양한 형용사와 부사는 들어가지 않는다. 단지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듯하는 문체는 그 어떤 꾸밈을 능가하고 눈 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듯 해서 읽는 내내 감탄하고, 글에 빠져들곤 한다.
 
포스트잇을 들고 책을 읽어가다 보니 어느덧 책의 옆에는 수십장의 포스트잇이 옆으로 드러났다. 이글들도 몇일 뒤에 기억 속에 사라질거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쉽다.
 
< "울음은 질겼다. 몸의 깊은 곳이 흔들리면서 울음이 퍼져 나왔다. 앞선 울음이 아직 울어지지 않은 울음을 이끌어냈고
잦아드는 울음이 한 굽이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울음은 추슬러지지 않았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하늘색과 물색이 같아서 배는 허공으로 뜬 듯했다.">

이런 글을 쓰는 그의 감성과 섬세함이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정약용의 가족들의 고향인 마재의 두물머리를 나타내는 글은 몇 번을 곱씹어서 읽었다.
  
황사영의 처가 동네 마재는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나온 북한강과 충주,여주,이천의 넓은 
들을 지나온 남한강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음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마재의 농경지는 물가에 바싹 닿아 있었다. 수면과 농경지가 턱이 지지않아서 아이들도 동이로 밭에 강물을 퍼 나를 수 있었다.  북한강 물은 차갑고 남한강 물은 따스해서 두물머리 마재에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었다.  해가 떠올라 안개가 걷히면 강은 돌연 빛났고 젖은 산봉우리에 윤기가 흘렀다.  하남 쪽 검단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산협을 굽이치며 다가오는 두 줄기 물길이 푸른 띠처럼 보였다.  서울 도성 쪽으로 향하는 큰 물은 산을 돌아나가면서 보이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저쪽 물길에 도성은 펼쳐져 있었다

특별한 미사여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묘사보다 뛰어나고 힘있게 다가온다.
이렇게 역사에 대해서 그동안 보편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다르게 접근하는 것에 마음에 들었고 오랜만에 김훈의 그 필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잘 다려진 한 첩의 보약을 먹은 듯이 든든하다.
  
이제 내가 보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신중하려고 한다. 아침 출근길의 싸늘함을 몸으로 기꺼이 맞으려 한다. 피곤해서 시려워 붉게  충혈된 눈을 느껴보려 한다. 이렇게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조금 더 느끼고 기꺼이 글로 뱉어보고 싶다.


p10
정약전은 육신으로 태어난 생명을 저주했지만 고통은 맹렬히도 생명을 증거하고 있었다.

p15
정약종은 위관의 심문에 이끌리지 않았다. 정약종은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스스로 진술했고, 그 이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매를 불렀고 다시 침묵으로 매에 대답했다.

p18
그 캄캄한 단절은 신의 부재 증명이었지만, 다시 캄캄하게 뒤집히는 고통이 생명을 증거하는 사태는 신의 존재 증명인 듯도 했다.

p43
길은 늘 앞으로 뻗어 있어서 지나온 길들은 쉽게 잊혔지만, 돌아올 때는 지나온 길이 앞으로 뻗었고, 갈 때 앞으로 뻗어 있던 길이 다시 잊혔다. 길은 늘 그 위를 걸음으로 디뎌서 가는 사람의 것이었고 가는 동안만의 것이어서 가고 나면 길의 기억은 가물거려서 돌이켜 생각하기 어려웠다.

p49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하늘색과 물색이 같아서 배는 허공으로 뜬 듯했다.

p60
마음이 세상의 근본이며, 세상의 동력이어서, 시간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 못하며, 마음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p62
황사영의 처가 동네 마재는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나온 북한강과 충주,여주,이천의 넓은 들을 지나온 남한강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음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마재의 농경지는 물가에 바싹 닿아 있었다. 수면과 농경지가 턱이 지지않아서 아이들도 동이로 밭에 강물을 퍼 나를 수 있었다. 북한강 물은 차갑고 남한강 물은 따스해서 두물머리 마재에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었다. 해가 떠올라 안개가 걷히면 강은 돌연 빛났고 젖은 산봉우리에 윤기가 흘렀다. 하남 쪽 검단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산협을 굽이치며 다가오는 두 줄기 물길이 푸른 띠처럼 보였다. 서울 도성 쪽으로 향하는 큰 물은 산을 돌아나가면서 보이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저쪽 물길에 도성은 펼쳐져 있었다.

p68
정약현은 책을 읽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았고, 붓을 들어서 글을 쓰는 일을 되도록 삼갔다. 정약현은 말을 많이 해서 남을 가르치지 않았고, 스스로 알게 되는 자득의 길을 인도했고, 인도에 따라오지 못하는 후학들은 거두지 않았다.

p73
박차돌의 아비는 솔가해서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었다. 마을은 오목하고 잘록했다. 산비탈로 둘러싸여서 마을 이름이 소쿠리마을이었다. 해가 일찍 저물었고 밤은 새카매서 눈이 멀 지경이었다.

p117
세상을 직접 대하라고 [소학]에서 배웠습니다.

p127
가마우지는 절벽 끝에서 물 위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수면 위로 내리꽂혔다. 가마우지는 물속으로 들어가서 먹이를 쫓았다. 물가에서 바라보던 창대는 숨을 헤아렸다. 창대가 깊은 숨을 열 번 들이쉬고 내쉬자, 가마우지는 물속에서 날아올랐다. 가마우지 주둥이에서 물고기가 퍼덕거렸다. 가마우지는 절벽 꼭대기에 내려앉아서 발로 물고기를 누르고 대가리부터 쪼아 먹었다. 물고기가 온몸을 뒤틀며 진저리를 쳤다.

p133
뼈는 돋아나지 않았다. 뼈는 붙지 않았고 움트지 않았다. 부러진 뼈는 너덜거리다가 떨어져나갔다. 떨어져나간 자리에서 피고름이 흘러서 감옥 바닥의 멍석을 적셨다. 피고름에 구더기가 슬었고 빈대가 꼬였다. 구더기가 파리가 되어서 상처의 진물을 빨았다.

p141
약종이 사학의 죄를 끌어안고 먼저 죽어서 약용은 풀려나기가 수월한 것이었다. 약용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약용은 자신이 약종의 죽음에 기대고 있음을 알았다.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알게 되었다. 정약전은 약용의 배교에 힘입어서 함께 풀려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약전도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알게 되었다. 정약전은 약종과 약용으로부터 비켜 서 있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죽은 약종과 황사영의 일을 평생 입에 담지 않았다. 그들은 형틀에서 헤어졌다. 정약종은 참수되었고 황사영은 능지처참이었다. 집행은 느리게 진행되었다. 정약종의 사체는 두 토막이었고 황사영은 여섯 토막이었다.

p143
강가 고을들의 수령과 찰방, 진장들은 관노들끼리 짝을 붙여서 노비의 자식을 생산해냈다. 대체로 임진강을 사이에 놓고 씨가 좋은 남종과 자리가 좋은 여종을 주고받거나 강남 쪽에서 길쌈 잘하는 여종은 강 북쪽 마을에서 참게 잘 잡는 남종과 바꾸는 방식이었다. 흥정이 쉽게 풀리지 않을 때는 나이 든 남종 한 명에 말 한 마리나 염소 두 마리를 얹어서 젊은 여종 한 명과 바꾸기도 했는데, 젊은 여종은 팔려오면 바로 교접을 붙여서 새끼를 베게 했다. 자식을 낳고 나서 젖이 잘 도는 여종이나 미색이 뛰어난 계집종은 늙은 남종 서넛과 맞바꾸었다. 젖 잘 나오는 여종은 팔려간 상전집 아이가 두 돌이 지나 젖을 때면 몸값이 반으로 떨어져서 전의 상전한테로 다시 팔려왔다.

p166
억지로 키우려고 공들이지 말고 스스로 되도록 공들여야 한다. 키워서 길러내는 것은 스스로 됨만 못하다.

p185
창대는 섬에서 태어나서, 서너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고요히 들여다보아서 사물의 속을 아는 자였다.

p196
바람이 불어서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 장팔수는 집 근처 야산을 돌면서 딸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는 어린 소나무를 뽑아버렸다. 소나무가 자라면 무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장팔수뿐 아니라, 다른 어부들도 뱃일이 없는 날에는 어린 소나무를 뿌리째 캐내서 아궁이에 던졌다. 사람들은 그 일을 서로 말하지 않으면서 다들 알고 있었다.

p200
목마른 자가 저절로 물을 찾듯이 정약종에게 새날은 저절로 스며들었다. 정약전이 멈칫거리면서 배교하고 세속으로 돌아갈 때도 정약종은 애초에 정약전에게서 인도받은 그 길을 끝까지 걸어서 서소문 사형장으로 갔다.

p208
백성을 꾸짖을 때는 앓는 아이에게 약을 먹이듯 해야 하며 백성을 교화할 때는 가는비에 옷이 젖듯이 해야 하며 꾸짖거나 가르치거나 간에 콩을 볶듯이 해서는 안된다.

p245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온 가니는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다가 반년이 가까우면 뒤집고, 뒤집어서 배를 밀고, 밀다가 기고, 기다가 앉고, 앉았다가 일어서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한 걸음씩 걸어갈 것이었다.

p281
흑산을 버리겠다는 장팔수 앞에서 흘린 것과 똑같은 눈물을, 창대는 흑산에 남겠다는 정약전 앞에서 흘렸다. 울음은 억눌려서 울어지지 않았다. 어깨고 고요히 흔들렸다.

p297
순매는 그 내장들을 들여다보면서 물고기 세상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낯선 곳이겠거니 여겼다. 한 줌의 내장과 한 뼘의 지느러미를 작동시켜서 바다를 건너가고, 잡아먹고 달아나고, 알을 낳고 정액을 뿌려서 번식하는 물고기들의 사는 짓거리가 순매는 눈물겨웠다.

p310
모든 간절한 것들은 몸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 때 황사영은 알았다.

p311
울은은 질겼다. 몸의 깊은 곳이 흔들리면서 울음이 퍼져 나왔다. 앞선 울음이 아직 울어지지 않은 울음을 이끌어냈고 잦아드는 울음이 한 굽이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울음은 추슬러지지 않았다.

p339
-창대야, 숭어 피부는 무늬는 왜 저러하냐?
-숭어가 헤엄쳐가면서 부딪친 물살의 무늬일 것입니다. 그 피부 밑의 살의 무늬와 결도 그와 같습니다.

p341
갈치는 큰 칼과 같다. 큰 놈의 길이는 아홉 자에 이른다. 아가리를 벌리면 날카로운 이빨이 줄지어 있다. 갈치는 서서 헤엄치고 서서 잔다. 갈치는 꼬리지느러미가 가늘어서 물을 휘젖지 못한다. 갈치의 등지느러미는 대가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이어져 있다. 갈치는 이 등지느러미와 몸통 전체를 물결처럼 움직여서 서서 이동하낟. 갈치는 아래턱이 위턱보다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이빨이 드러난다. 어부들이 물리기 쉽다. 물리면 독이 있다. 갈치는 온몸이 칼처럼 번쩍거리고 만지면 은빛 가루가 묻는다.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을 쉰다. 물고기 아가미는 빳빳한 참빛과 같다. 물고기는 입으로 들이마신 물을 아가미로 걸러내며 숨을 쉰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속에 잠겨서도 바다를 건너간다.

p381
물고기들은 작은 내장을 작동시켜서 원양을 건너갔고 섬으로 다가왔다. 물고기들은 몸으로 파도를 헤쳐나간 무늬를 푸른 등 위에 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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