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 보았다. 우리 문학계의 큰 별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 책은 처음 접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녀가 떠난 지 4주기에 맞춰 초기 산문집을 다시 재편집한 것이다. 7권으로 구성된 산문집인데 그 중에 제목이 와닿는 책을 먼저 읽어 보았다. 5번째 산문집인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이다.


최근에는 일부러 산문을 읽는다. 글을 쓰는 데 너무 딱딱하고 건조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보통 자신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름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산문을 찾아 읽으려고 하고 있다. 나 역시 상투적인 표현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내가 경험한 진짜 내 삶을 토대로 글을 써내려가고 그 속에서 의미를 얻어내고 싶었다.


작가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곧잘 웃으셨는지 잘 모르지만 책의 작가 소개에 등장하는 사진과 함께 여러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글에도 사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도 일상을 통해서 담담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우선은 이해와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전제로 그런 부분을 끌어내려 한다는 인식을 많이 받았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시점의 글들이 많이 보인다. 30년 전의 글의 모음인 것이다. 그런데 그 때의 일상이라는 것도 지금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나 보다. 시점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을 감춘다면 지금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어색함이 하나 없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건가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가족', '아이', '자연', '집'

이런 소재가 산문 속에 자주 드러난다. 이 밖에도 우리의 일상의 많은 부분은 담담히 말하고 있다. 내가 위의 네 단어를 끄집어 낸 이유는 나 역시 위에 대한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하였고,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지만 나는 많은 부분에서 표리부동하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마음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데, 컨디션에 따라서 화를 내지 않아도 될 것에 화를 낸다. 항상 닭장 같은 아파트 말고 주택에 살고 싶다고 말하고, 내 주변에 있는 나무들 이름을 알아야겠다고 말도 하고 때로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도 했지만 정작 집안에 있는 화분 속에서 자라는 화초들의 이름 조차 지금 알지 못한다.


항상 마음 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와 다짐 뿐이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보면 아무 것도 하나 한 것이 없다. 아내한테 말한다. '나 뭐 할거야' 그러면 대답이 돌아온다. '하고 나서 얘기해요~!' 라고.


점점 느껴가는 것이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이 들다는 것과 그렇게 살아가는 일상이 삶이다라는 생각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키워야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고 했다. 우리의 일상도 아는 만큼 보일 뿐이다. 꽃이 피지 않아도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아야 어떤 나무는 여름, 가을, 겨울에는 이렇구나 알게 된다. 단순한 건물의 구조도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생각하게 되고,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이 사회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평범한 데, 그래서 특별하다. 그 '평범', '일상'의 무게가 오늘따라 묵직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의 마지막 산문은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이다.

책을 이제 다 읽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았다.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일부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는 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게 '시'의 힘인가 보다. 라고 다시금 느꼈다.

시의 의미를 정확히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첫 부분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정말 큰 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사소한 것에만 홀로 분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운전을 하면서 앞에 차가 끼어들면 경적을 올리고 혼자 화를 냈다. 음식점에 가서 서비스가 좋지 않으면 분개한다. 조금이라도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분개했다. 그런데 정작 분개해야 할 때 한 번이라도 동조해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분명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다시 배운다. 다음 번에 사소한 일에 내가 화를 내려고 한다면 그 때 이 시를 다시 떠올릴 것이다.


박완서의 산문집이 고맙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산문집이 7권이라고 하니 나머지가 궁금하고 고마울 뿐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1965.11.4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장서로 가로 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 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씩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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