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성과나 경쟁에서는 반드시 승리자를 가려내려 하는 이 시대가 만들어 낸 본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레 승리자가 생기면 패배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생겨난 패배자들은 결코 승리자들보다 부족한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세상이 만들어낸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렇게 만들어 졌을 뿐이다.


<위대한 패배자>의 작가인 볼프 슈나이더 이 책의 나가는 말에서 승리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사를 가만히 지켜보면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일수록, 혹독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일수록 정상에 좀더 쉽게 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백과사전에 이름이 실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거칠고 비정하고 역겨운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작가는 정치,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인물들 속에서 각기 다른 패배의 모습을 찾아내어 그 사례를 아주 흥미롭게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위대한 실패자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며 실패에 대한 새로운 가치인식을 심어주는 지도 모른다.


또한, 각기 다른 시대와 국가들 속의 인물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만들며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 속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두 인물 체 게바라와 앨런 튜링을 소개한다.



◇ 열대 우림의 피투성이 구세주 체 게바라 (1928~1967)


체 게바라는 자유주의적 좌파 성향의 건축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크 독재 체제를 피해 망명한 정치인들을 집에 받아들였는데 어린 체 게바라에게는 인상적인 기억이었다.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24살의 나이에 일상에서 떠나기로 마음 먹고 의사 보조, 웨이터, 부두 노동자, 말 사육사, 사진사 등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떠돌아 다닌다.


1955년 체 게바라는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로 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유격대원을 모집하던 카스트로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고, 80명의 유격대원으로 1956년 12월 2일 쿠바 해안에 상륙한다. 하지만 쿠바 병사에 발각되어 쫓겨다니고 18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죽게 된다. 18명은 산으로 들어가 2년 동안 끈질기게 정부군에 대항하고 이후 카스트로는 야당세력을 모으는 데 성공하고 농민들로 부터 신뢰를 받게 되었으며 혁명군의 신병 모집도 늘어났다.


'혁명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던 그는 노선이탈자, 밀고자, 탈영 계획자의 머리에 총을 직접 쏘며 사형을 집행을 할 정도로 엄격하고 가혹했다. 1951년 1월 1일 마침내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망가고 3일 뒤 카스트로가 유격대원을 이끌고 쿠바의 아바나에 입성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게바라는 쿠바 시민으로 선포되고 혁명 후 중앙은행장, 그리고 산업부장관에 임명된다.


체 게바라는 권력층이 되었지만 철저한 금육과 절제의 생활태도를 견지하고 상류층의 특권은 포기했다. 1965년 안주하는 삶과 관료주의적 강압에 염증을 느낀 그는 모든 관직을 버리고 다른 나라에도 쿠바의 혁명을 수출하겠다는 마음으로 콩고와 볼리비아로 향한다. 1967년 10월 8일 볼리비아에서 혁명군으로 활동하다 라이게라 마을 근처에서 적의 매복에 걸린다. 그에게 총을 겨눈 병사에게 말한다.

"쏘지 마라! 나는 체 게바라다.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전 세계 인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미제국주의에 대한 진실과 쿠바에서 벌어진 혁명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그러한 사실을 안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의 정치고문단과 CIA와 협의 한 후에 대외적으로는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발표하고 비밀리에 처형한다.


사후에 그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인기가 치솟았다. 1969년에 그의 삶을 담은 오마 샤리프 주연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수많은 전기가 쏟아져나왔다. 1997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는 체 게바라학 과목이 개설되었으며, 같은 해 볼리비아의 폐쇄된 활주로에서 발견된 그의 유골은 쿠바로 보내져 산타클라라에 사원이 만들어졌다.


그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만 간직했던 일들을 그가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으며 이 세계에 비해 선한 모든 사람은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어떤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고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무모할 정도로 돌진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서는 철저히 패배했지만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고 죽어서는 승자가 되었던 패배자였다.


◇ 영국의 승리를 도운 무명인 앨런 튜링 (1912~1954)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그 누구보다 영국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은 바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하지만 이 사실은 그가 영국 법정과 정부의 수모에 못 이겨 자살한 지 20년 만인 1974년까지 묻혀있었다.


전쟁 중 연합군은 수수께끼라는 뜻을 지닌 독일 암호기 에니그마의 암호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니그마는 타자기처럼 사용되는 암호기로 타자기 안에 미리 설치해둔 회전체 덕분에 입력한 철자 대신 다른 철자가 타이핑되어 나오는 방식이었다. 후에는 회전체가 여덟개나 되었고 회전체의 위치도 날마다 바뀌면서 24시간 안에 풀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다.

당시 영국 암호해독반에 참여한 앨런 튜링은 1940년 '폭탄'이라 불리는 암호 해독 기계를 처음 고안하고 점점 조합의 수를 줄여가며 해독작업을 진행해나갔다. 1943년 3월 1일부터 20일 사이에는 수학자들에 대한 영국정보의 압력이 점점 커져갔다. 독일잠수함들은 2~3주 사이에 무려 108척의 선박을 침몰시켰고 전함들도 21척을 파괴시켰다. 반면에 적의 잠수함은 불과 1척 밖에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1943년 3월 21일부터 전세가 역전되었다. 튜링의 암호해독반은 독일의 암호를 한 시간안에 해독했으며 나중에는 단 몇 분으로 줄였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튜링과 그의 동료들은 암호학교를 나서기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튜링은 1948년까지 국립물리학연구소에서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로 일했다 당시 에니악보다 뛰어난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자청하고 실제 1948년 에니악보다 연산 속도가 훨씬 능가하는 '파일럿 모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맨체스터 대학의 컴퓨터 연구소 부소장에 임명되고 인공지능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인간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관점에서 실험을 제안했고 이것은 지금도 전문가 그룹에서 유명한 '튜링테스트'였다.


그러나 1951년 이후 그는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 동성애자 였던 튜링은 열아홉 살 청년과 우연히 만나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당시에 처벌 대상이었다. 이에 영국정부는 그를 컴퓨터 연구소 부소장에서 해임시키고 1년 동안 강제 치료를 받게 한다. 그리고 불과 얼마 후 1954년 6월 7일 마흔 둘도 채 되지 않은 그는 사과에 독약을 주사한 뒤 동화 속 백설공주처럼 사과를 깨물고 삶을 마무리한다.


후에 영국 정부에 허가를 받은 프레더릭 윌리엄 윈터보섬이 1974년 <울트라의 비밀>을 통해 당시 암호해독반의 이야기를 했고 앨런 튜링이 세상에 다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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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는 한 이상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조종사에게 양을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맞추지 못하는 그의 보아뱀 그림도 이해한다. 소년은 자신이 사는 작은 별(B612)에 사랑하는 장미를 남겨두고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온 어린 왕자였다.

 

어린왕자는 여행을 시작하고 일곱번째로 지구에 도착한다.

그동안 거친 별은,

첫번째, 모든 별을 다스린다는 임금

두번째, 자기가 가장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허영쟁이

세번째, 술고래가 술을 마시고 있는 행성

네번째, 상인이 있는 별

다섯번째, 아주 작은 별에서 가로등 하나를 점등하는 점등인이 있는 곳

여섯번째, 서재에만 앉아 있으면서 지리학을 한다는 늙은 학자

그리고 드디어 지구에 도착한다.

지구에 처음 도착해서 만난 것은 나중에 자신의 별에 가고 싶을 때 오라고 한 노란 뱀, 자기가 하는 말을 반복하는 높은 산의 메아리, 정원의 수많은 꽃, 그리고 역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찾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어린왕자는 사막에서 여우를 만난다.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면서 '길들인다'라는 말을 통해 수많은 일상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작은 꽃을 생각하게 된다.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이런 점을 배웠다면 조종사는 어린왕자에게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배운다.

 

추락한 지 8일 째 되는 날 어린왕자와 조종사는 샘을 찾아 나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늘에 별들이 보이는 데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 자신과 함께 길들여진 꽃이 있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어린왕자가 떠나면 조정사에게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한다. 그 중에 하나의 별에서 어린왕자가 웃고 있을 거라고. 그러면 어느 별에 있는지 모르니 모든 별이 웃는다고 생각할거라 한다. 


▶ 주요장면소개


하나.

p116

"비밀 하나를 알려 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안녕, 잘 가."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네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겉에 보이는 화려함만을 쫓는 우리의 세태에 일침을 놓는 듯 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면의 깊은 부분이고 평범하고 사소하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p108

"그런데 말이야. '길들인다.' 라는 게 뭐야?"


"그래. 지금 너는 나에게 수많은 아이와 다름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 않아. 난 네가 필요하지 않고, 물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지. 나도 너에게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


"이제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가 돼. 나에게는 꽃 한 송이가 있는데...... 난 그 꽃에게 길든 것 같아."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여 달라고 부탁한다. 이는 필요한 물건을 사듯이 쉽게 친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현대사회는 마치 숫자로 삶이 좌지우지 된다. 나의 등수는 몇 등인가?, 몇 점짜리인가?, 얼마나 버는가?, 얼만큼 큰집에 사는가? 등이 행복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이런 척도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화려하고 비싸지 않으면 자신이 초라해지고 자존감은 떨어진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자신이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다.

'길들인다'는 말은 이러한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세태와 인간소외현상 극복을 위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철학적인 언어와 같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일곱번째로 오게 되었다. 그가 지구에 오기 전에 만난 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어른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각각의 별들의 특징이 바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를 상징한다. 과연 우리는 그 중 하나에 해당 하지 않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는 지금 어떻게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지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가족들과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고 있는가?

친구들과 곱씹어 이야기할 수 있는 사연을 만들고 있을까?

나 혼자 외로울 때 생각나는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갈 때마다 우리는 여우가 알려주는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사랑할 수 있는, 경험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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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함의 다르게 보기

 

우리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일상은 반복되는 '날마다, 늘, 항상' 이라는 뜻입니다. 변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면 우리의 생각 역시 변화 없는 일상, 바로 '날마다, 늘, 항상'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세상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다른 무언가를 찾음으로써 발전하고 변화해 왔습니다. 당연함을, 익숙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가끔 한 번씩은 의도적으로 다르게 삐딱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든 제임스 다이슨은 '다른 환경, 낯선 환경, 새로운 환경' 에 대해서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거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책이 그 한 방법인 듯 합니다.

 

p94

날개 없는 선풍기가 있지요.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입니다. 이걸 최초로 만든 영국 발명가 제임스 다이슨은 자신의 작업실에 이런 글을 붙여 놓는다고 하지요.

'The first electronic fan was developed in 1882. All chop and no change for 127 years.'

'최초의 전기 선풍기는 1882년에 만들어졌으나 127년간 누구도 '촙촙' 소리를 내는 선풍기를 다르게 바꾸진 못했다.'는 뜻이지요.

 

 

◆ de + sign + er (상식파괴자)

 

'이노 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익숙함의 다르게 보기'를 이렇게 멋진 말로 표현합니다. de + sign + er

 

사람을 만나 보면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축적된 역량과 경험으로 충분한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자신만의 생각 바로 고정관념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모르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둘러쌓여 있을 겁니다. 단지 내가 둘려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서 탈피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감각과 이성을 갖추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p105

'이노 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입니다. '다르게 보는 걸 즐기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영어 단어 design조차 다르게 볼 줄 압니다. Design은 de와 sign의 조합이라는 것.  de는 '파괴하다(destruct)'의 접두어 de이고, sign은 도로의 교통표지나 비상구 표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의 상징, 즉 고정관념이나 통념이나 상식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de + sign은 '상식을 파괴한다'는 뜻을 지닌 것이지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뜻인 거지요. 그럼 디자이너, 즉 designer의 뜻은?

맞습니다. '상식 파괴자' 또는 '창조적인 사람' 입니다.

 

 

◆ designer(상식파괴자)의 도구는 Book

 

상식파괴자는 무엇으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작가는 그 무기로 Book 그 중에서도 인문학을 꼽습니다.

 

문학은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고, 역사는 '비판적 사고력', 철학은 '합리적 사고력'을 키워줍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문학에 매력을 많이 느낍니다.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표창원 소장의 프로파일링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는데, 프로파일링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배우지만,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문학 작품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범죄자이 심리를 잘 표현해 준다고 합니다.

 

문학 특히 소설은 허구라고 하지만, 그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직업, 행동양식, 생각패턴 등은 실제 누군가에게 존재하는 혹은 존재할 것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은 소설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저마다의 한 편의 영화를 머리속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 새로운 경험이 상식파괴자의 귀중한 자산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p144

인문학은 일반적으로 문사철로도 좁혀지지요. 문사철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고요. 문학은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고, 역사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주며, 철학은 '합리적 사고력'을 키워줍니다. 창조적 상상력, 비판적 사고력, 합리적 사고력을 통해 증진되고 완성되는 창의력, 진리, 자유, 정의, 평등, 사랑, 공정, 관용 등 위대한 가치는 인류의 창조적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하나로 응축하면 'Beauty'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 Just Do It! , Ready ~ Action!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신에게 매일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제발,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정말 간절합니다. 하지만 신은 답답한 나머지 한 마디 합니다. '제발, 복권을 사거라!'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바로 Action, 실행력입니다. 사람들은 분명히 어떤 것을 이루어낼 역량과 자질이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Choice를 잘하지 못하고 Action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 진리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시작이 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저 저지르고 보는 겁니다. 무책임하긴 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내용에 어울리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최종훈 교수의 인생교훈이 생각납니다.

 

 

 

지금 무엇인가를 망설인다면 Just Do It 하시기 바랍니다. Ready ~ Action!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조언을 저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아쉬움이 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은 이민규의 <실행이 답이다>가 이를 위해서 읽어볼만 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번 다시 들추어 보아야겠습니다.

 

p112

아인슈타인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박사님은 어떤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까?"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고 하는 군요.

"저는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호기심을 '실행에 옮기는' 능력이 뛰어날 뿐입니다."

 

◆ 온전한 내 삶을 살기

 

말은 좋지만 우리는 쉽게 Just Do It!, Action! 하지 못합니다. 혹여나 내가 하는 일이 잘 못 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난처해지지 않을까? 두려움에 망설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행복, 책에 나오는 '좋은 운명' 만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면서 행복하게 살 수 만은 없습니다. 좋은 운명 만을 영위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쓰라린 아픔에 목 메어 울어 보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에 한 숨 짓기도 하고, 복잡한 갈등 상황에서 혼자 깊이 고민해보기도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제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온전한 삶을 살 준비가 된다면, 그때는 기꺼이 Just Do It!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온전한 삶을 살 준비가 되었다면  Ready 되었네요. ~ 그저 Action이 남았을 뿐입니다.

 

p253

장영희 교수를 그리워하면서 그의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대학 2학년 때 스스로에게 했다는 다짐의 글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읽을 때마다 긍정의 힘과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구절이어서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미국인>은 앞부분에서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하는 문장이 있다. 나는 그 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할것이다, 라고."

 

 

오늘은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아쉬워서, 그동안 많이 망설여서, 그동안 많이 후회해서 이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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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을 맺다. 


이번에도 그동안 제목만 알고 있었던 책을 찾아 읽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에 몇 일 동안 푹 빠져 있었다. 글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잔잔하게 남아있다. 근래에 읽었던 책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힌다. 책을 읽자 마자 얼마 후 부터 '아! 드디어 만났구나' 하고 느끼는 보물들이 있는데 <달과 6펜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특히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건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하마터면 뒷부분을 먼저 읽어버릴 뻔했다. 

 

<달과 6펜스>는 등장인물 스트릭랜드를 통해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배경이 있는지 모르고 읽은 책이어서 즐거움은 배가 된다. 실제 인물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와 다른 장르와 연결해주는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에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를 자연스럽게 시에 대해 이야기듯이 <달과 6펜스> 역시 작품 속 스트릭랜드이자 실제 인물인 폴 고갱을 통해서 미술에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해준다.


예전부터 그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저 관련 책을 읽는 것으로는 흥미가 생기지 않아 쉽게 포기하곤 했다. 이번에는 뜻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책읽기를 마치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찾아 폴 고갱 이후 반 고흐를 만나게 해주었다. 이 소중한 인연이 차곡차곡 조금씩 쌓아지기를 내심 바랄 뿐이다.


이야기 속으로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을 증권 중개인 일을 하던 부유한 사십대 남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홀로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는 가난한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한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더크 스트로브는 그를 지원지만 스트릭랜드는 그에게 냉소적이었으며 그의 아내 블란치 마저 자살에 이르게 한다. 그는 오직 자신의 그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과는 다른 게 있는 듯 했다. 


그는 문명의 땅을 뒤로 하고 남태평양의 외딴 섬인 타히티로 떠난다. 타히티라는 원시의 섬에서 그가 생각하는 낙원을 만나고 그림에 열중하고 아타라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문등병에 걸리고 심지어 눈이 멀기까지 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의 집안에 신비로운 그림을 그린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폴 고갱의 삶을 그대로 재현해두고 있지는 않지만 거의 유사한 삶을 살았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한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을 표현해준다. 분명히 자신 밖에 모르는 차디찬 냉소가 깊게 베어나지만, 그 열정이라는게 자연스럽게 다른 부정적 요소를 가려준다. 나 엮시 읽는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일에 빠져든 그가 부럽기도 했다.


작가 서머싯 몸은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왜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고, 이야기의 중간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가 전환된다. 어쩌면 친절하지 않고 부연조차 없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툭 던져 놓으니 확실한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더 극적인 표현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묘미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손에서 놓지못하고 한 번에 읽은 기억이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1인칭 관찰자시점으로 내가 개츠비를 궁금해하고 서로 인연이 닿아가면서 그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가는 묘미가 있었다. <달과 6펜스> 역시 소설 속 작가인 내가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이야기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효과적인 것 같다.

어떤 이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절묘한 조화가 훌륭하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 정도를 찾을 수 있지는 못해서 아쉽다.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저도 모르게 손이 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책들은 읽고 나면 개운하게 숨을 내쉬며 책을 덮을 수 있다. 읽는 동안 긴장한 것을 놓는 숨이며 아쉬움의 표현이다.


폴 고갱의 작품 속으로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 고갱에 대해 표현한 부분을 찾아 보았다.


P551

타히티 섬에서 가져온 그의 작품들을 대했을 때 그의 옛 친구들조차 당황스러워 했다. 그 그림들은 너무 야만적이고 미개해보였다. 그것은 바로 고갱이 원하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야만적'인 색채와 소묘만이 타히티에 머물면서 감탄했던 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이들을 올바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중략)

그러나 고갱이 아주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낯설고 이국적인 것은 단지 작품의 주제만이 아니다. 그는 원주민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토착민 장인들의 수법을 연구하고 때로는 자신의 작품 속에 그들의 것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그린 원주민의 초상을 그러한 '원시'미술과 조화시키려 애썼다. 그래서 그는 형태의 윤곽을 단순화하고 넓은 색면에 강렬한 색채를 거침없이 구사했다.  세잔과 달리 그는 단순화된 형태와 색체의 구성으로  인해 혹시 그의 작품이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연의 아이들이 지닌 순수한 강렬함을 그리는 데 도음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수세기에 걸쳐 씨름해온 유럽 미술의 문제들을 기꺼이 무시해버렸다.


솔직하과 단순함을 이룩하려는 그의 목표가 항상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향한 그의 열의는 새로운 조화를 이룩하려는 세잔이나 새로움을 전달하려는 고흐의 열의만큼 여정적이고 진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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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매력있는 작업이다. 종이에 연필로 쓰던, 이렇게 블로그에 자판을 통해서 적든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쾌감이 있다.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신기하지 않은가? 어떤 이들이 글을 쓴다면 그들이 직접 그어내린 글자 획의 수가 같을지라도 자판으로 두드린 횟수가 비슷할지라도 각기 내뱉는 글은 천차만별로 존재하게 된다. 어떤 글은 세상을 움직이고 사람의 생명을 이어준다. 반면에 어떤 글은 불편하고 기분나쁘고 조악하기까지 하다. 글은 바로 글쓴이의 생각과 사상 삶이 담기게 된다.


<대통령의 글쓰기>에서도 글과 말이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글은 곧 사람이다. 때로는 내가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괜히 한 번 아는 체 해본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나 자신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경우도 있다. 결국은 이런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듯이 그런 글 또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비록 글을 많이 써보지는 못했으나, 분명히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내는 것과 단순히 꾸며내거나 생각해서 쓰는 글은 많은 차이가 있다. 경험한 일은 그때의 기억과 추억이 남아있고, 뇌리에 남아있는 오감이 있다. 그래서 당시의 이성적인 판단과 감성적인 자극이 고스란히 글에 담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글에는 한계가 있다. <라이어>에서 처럼 한 번 거짓말을 하다보면 그것이 진짜인 척 하기 위해 거짓말이 계속 덧붙여지듯이 어느 순간에는 글에도 군더더기가 계속 붙어버리게 된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이 책의 제목처럼 자신의 직간접적인 경험과 내면을 깊숙히 찾아보는 것이 진실하고 진정한 글이 나오는 길이다. 이런 글이 결국 읽는 이에게 고스란히 감동이 전해진다.

글쓰기의 기본은 자신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것이 준비되어 있으면 된다고 생각된다.


항상 기본이 있으면 그 토대 위에 차곡차곡 쌓여져서 일정한 선에 도달하게 된다. 

글쓰기에는 어떤 것을 차곡차곡 쌓아올릴까?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언급된 내용 중에 살짝 체크해 둔 부분을 살펴보려고 한다.


글쓰기재료 수집


P78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말한다.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같으며,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연장통을 잘 갖춰놓아야 한다." 내게 포털사이트는 훌륭한 연장통이다. 연장통을 쓰는 요령은 이렇다.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클릭한다. 우측 상단에 '검색'을 클릭한다. '뉴스 상세검색'을 클릭한다. 검색어를 입력하고 하단에 '칼럼'을 클릭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을 검색하면 이에 관한 통계나 사례등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해당 칼럼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제목에서만'을 클릭하면 된다. 지금도 글을 쓸 때 이 방법을 쓴다.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해 쓸 말이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자주 이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자료를 완벽하게 찾아놓고 글을 쓰기보다는 쓰면서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P221

관심있는 만큼 보이고, 알면 사랑한다고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2년 동안 관찰한 결과, 소설 <개미>를 썼다. 주변 사람과 사물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열심히 관찰하면 된다.


P216

글을 잘 쓰기는 잘 듣기로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스스로 중심만 잡을 수 있으면 많이 들을수록 좋다. 잘 들어야 말을 잘할 수 있고, 말을 잘해야 잘 쓸 수 있다.


글쓰기재료는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한 주제에 대해서 표현한다고 꼭 그것과 관련된 어휘 혹은 글귀만 사용되는게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글쓰기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런 재료들을 찾아야 한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기에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간접경험을 꾸준히 해야 한다. 어떤 매체라도 좋지만 글로 된 매체를 끊임없이 살펴보는게  효과적일 것 같다. 


쉽게 읽히는 글


P178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나오는 이 대목은 새겨들을 만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엄숙히 맹세하기 바란다. '생리현상을 해결했다'고 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똥을 싸다'는 말이 독자들에게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변을 보았다'고 써도 좋다.


P178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고 한 헤밍웨이의 말은 확실히 맞다.


글쓰기를 조금씩 하다보니 정말 어려운게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다. 글쓰기의 목적은 글쓴이의 욕구일 수도 있으나 읽는이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글은 정말 쉬운 단어와 글귀로 이루졌으나 다루는 내용의 무게를 결코 낮추지는 않는다. 어떤 글들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붙지만, 단순하게 특별한 수식어 없이 내용만을 담백하게 전하는데도 감춰진 수식어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글들도 있다. 아직은 쉽게 쓰는 법을 나 역시 알지 못하지만 앞으로 가장 염두해두고 생각해볼 부분이다.



요약


P158

2005년 10월 <한겨레>에 이런 기사가 났다. 독일 동방정책의 설계자 에곤 바르와의 대담이었다. "독일은 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대해 면밀히 검토했는데, 그것을 정리한 것만도 2,000쪽에 달했고, 이것을 요약하여 27쪽으로 만들고, 다시 1쪽 반으로 요약한 문서로 만들었으며, 이것이 1989년 동구권 변혁의 밑거름이 되었다. <2005년 10월 3일 한겨레>


예전에 어떤 글쓰기 책을 보았는데 긴 글을 적어두고 1,000자 내로 줄이기, 다시 500자로 줄이기, 100자로 줄이기, 글의 제목 만들기 식으로 요약하는게 있었다. 정말 글자수가 적어질 수록 힘들다. 어느 순간부터 형용사와 부사를 빼야 한다. 그게 쉽지 않다. 주어와 서술어로 줄이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전달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똑같은 표현을 나타내는 단어도 많이 있는데 아는 단어도 한정되어 있다보니 결국은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버린다. 항상 생각해보자. 글에 군더더기가 없는지, 핵심이 무엇인지, 내가 분명히 말하려는게 무엇인지, 글을 읽는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 분명히 알아가면서 그 중심을 찾아내자. <THE ONE PAGE PROPOSAL>도 이런 연습하기에 효과적일 듯 하다.


퇴고


보통 글을 다 쓰면 '아 다 썼다.' 하고 끝내버린다. 이건 다 쓴게 아니다. 글을 다 쓰고 나서 퇴고를 하고 살펴보고 수정하고 다시 읽어보고 이런 일을 여러 번 반복해본 후에 글을 다썼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게 힘들다. 글을 마무리했다는 끝마침의 기분때문인지 결국 마지막이 소홀해진다. 오타도 생기기도 하고 나중에 읽어보면 단락간에 이어지지도 않고, 전체 흐름과 상관없는 내용이 들어가있기도 하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하는지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나온 퇴고의 방법을 보고 항상 염두해두어야 겠다.


<시작보다 중요한 퇴고>

1.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는 게 맞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주제의 적절성 여부다.

2. 두 번째 주안점은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주제가 잘 부각됐나? 즉 청중이나 독자가 어느 게 주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가

 - 주제를 뒷받침하는 소재는 충분하고 적절한가

 - 주제의 명료함을 가리는 장황한 수사는 없는가

 -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 많지는 않은가

3. 세 번째는 글의 전개에 무리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는가

 - 서론, 본론, 결론의 서술이라면 이들 간의 안배는 균형감 있게 되어 있는가

 - 단락 구분과 단락 분량은 적절한가

 - 단락과 단락 사이에 연결은 매끄러운가

 - 전반적인 흐름에서 통일성을 깨트리는 단락은 없는가

 - 단락 순서를 바꾸면 더 나아지는 것은 없는가

4. 네 번째는 내용상의 보완이다.

 - 빼도 상관없는 군더더기는 없는가

 - 빠트린 내용은 없는가

 - 앞과 뒤가 서로 상충하는 내용은 없는가

 - 분량은 맞는가

5. 다섯 번째는 표현상의 문제다

 - 다르게 바꿨을 때 더 적절한 단어는 없는가

 - 불필요한 중복은 없는가

 - 불확실한 표현은 없는가

 - 진부한 표현은 없는가

 - 비문은 없는가

 - 짧게 끊을 데는 없는가 

6. 여섯 번째는 오류 찾기다.

 - 외래어 표기 등 맞춤법과 띄어쓰기 오류는 없는가

 - 숫자, 이름, 연도 등 사실관계 오류는 없는가

 - 쉼표, 물음표, 가운뎃점 등 부호는 정확한가

 - 한자나 영어는 틀린 게 없는가

 - 표절 시비 우려는 없는가

 - 날씨, 종합주가지수와 같은 유동적인 내용의 변동은 없는가

7. 일곱 번째는 독자나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들이다.

 - 지겹다고 하지 않을까

 - 수다스럽다고 짜증내지 않을까

 - 왜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을까

 -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을까

 - 재미, 감동, 지식 등 무슨 유익을 얻을까

 - 시작에서 흥미를 보일까

 - 결론에서 여운이 남을까

 - 글이 리듬을 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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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 돈키호테


블로그 [위버멘쉬, 조르바를 꿈꾸다.]의 메인 화면의 이미지는 바로 비야누님의 [그건, 사랑이었네] 책의 겉표지이다.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1년 가량을 조금 힘든 회사생활을 하고, 여유가 생겼을 때 손에 잡았던 책이었다. 출간 된지 1년 6개월이 지나서 잡은 책이었다. 어찌보면 그냥 비야누님의 수필일 뿐인데 이 책 한 권이 어쩌면 내 인생을 바뀌게 되었다. 라고 표현될 정도로 나를 변화 시켰다.

책에 관한 말 중에 "사람이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있다. 바로 책과 사람과의 인연은 어쩌면 그냥 읽는 사람의 의지가 아닌 책과의  말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사랑이었네]는 그렇게 나와는 깊은 인연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지난 주말에 서재의 책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가끔 서재에서 그동안 내가 사들였던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혼자 뿌듯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서 한 권 한 권 책들이 보게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건, 사랑이었네]를 잡게 되었다.

무언가 나에게 초심이 필요한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이 책은 바로 내가 [1년에 100권 읽기]를 하게 한 계기를 만들어준 소중한 책이었고 이 블로그에 기록한 첫번째 책이기에 다른 어떤 책보다 의미있게 다가왔다.

책의 한 챕터였던 "1년에 백 권 읽기 운동 본부"를 다시 읽어 보고 그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한 번 기억해내려 했다.
나름 2년 정도가 지난 이 시점에 책 읽는 습관을 나름 만들게 된 내 자신에 조금은 칭찬을 하기도 하고, 비야 누님이 고등학교 때 부터 습관을 만들어온 100권 책 읽기가 서른살에 겨우 습관으로 만든 것에 대해 조금은 조바심을 느끼기도 했다.

책에서 말하듯이, 세상은 너무나 훌륭한 책은 많은데 우리의 삶은 너무나 한정된 시간이기에 그 소중한 책을 다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인 듯 하다.

부끄러웠던 점은, 이렇게 의미깊은 책이라고 하면서 비야 누님이 추천한 24권 책 중에서 읽은 책이 겨우 두세권 밖에 되지 않았고 독서 습관도 너무 편협하다는 점이다. 다시 한 번 이렇게 배우면서 조금씩 더 생각의 폭을 넓혀가야 겠다.

비야누님이 추천하는 24권의 책을 보자...... 가능한 한 빨리 읽어버려야 겠다.


<종교/영성 분야>
1. 단순한 기쁨 - 피에르 신부 저
2. 진리의 말씀 법구경 - 법정 역
3. 청바지를 입은 부처 - 수미 런던 편
4. 이슬람교 - 발터 M. 바이스 저
5.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 피트 그리그 저
6. 의식혁명 - 데이비드 호킨스 저

<구호/개발 분야>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저
2. 빈곤의 종말 - 제프리 삭스 저
3.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 다나카 유 외 저
4. 개발 협력을 위한 한의 이니셔티브 - 권해룡 저
5.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 루츠 판 다이크 저
6.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 무하마드 유누스 저

<읽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원하면 좋은 교양서>
1.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저
2.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2 - 이덕일 저
3. 책만 보는 바보 - 안소영 저
4.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저
5.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저)
6. 살아 있음이 행복해지는 희망 편지 (김선규 외 저)

<누구나 한 번은 읽었으면 하는 고전>
1. 행복의 정복 - 버트런트 러셀 저, 사회평론
2.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저
3.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4. 열하일기 상,하 - 박지원 저, 그린비
5. 황진이 - 홍석중 저
6.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 루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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