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을 음양으로 구분하면, 봄과 여름은 성장하고 발산하는 기운이 강하기에 양이고, 가을과 겨울은 수렴하고 응축하는 기운이 강하기에 음이다. 음양이 나오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오행(五行)이다. 우주의 질료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로 이루어진 오행은 2,000년 역사의 동양 문화에서 이어내려온 핵심 개념으로 삶의 다양한 분야와 연계되어 왔다. 사계절과 환절기를 오행과 결부시키면 어떻게 될까?
봄은 목, 여름은 화에 배속되고, 가을은 금, 겨울은 수에 배속된다. 그리고 토는 계절을 매개하는 환절기에 속한다. 고정되지 않고, 순환한다는 관점에서 음양과 오행은 크게 다르지 않다.
1. 목(木)
오행의 첫 번째 기운은 '목'(木)이다. 목은 사계절 중 '봄'에 해당한다. 인간의 삶에서는 유아기에서 10대 초반의 소년기이다. 목(木)의 키워드는 '성장' 또는 '순수한 호기심'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은 목의 성질 중 일부이다. 나무는 쑥쑥 하늘높이 자란다. 물론 넝쿨처럼 옆으로 자라는 나무도 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의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나무의 성질이나 나무가 있는 풍경을 떠올리기보다는 지표면에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상승의 기운을 상상하길 권한다.
목(木)과 목(木)이 만나면, 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하나의 땅에 두 나무가 있으면 서로 경쟁하면서 성장한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서로에 대한 경쟁심이 생겨난다. 원국 안에 목(木)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내면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롭기 어렵다. 시기와 질투심은 목(木)이 많은 이들의 아름답지 못한 특징이기도 하다.
목(木)의 성질은 일단 직진이다. 이들은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현실의 장애물을 피하기보다는 정면 돌파한다. 집 밖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 늘 아이들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길 건너편에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가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도로에 차들이 지나가는 것도 살피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친구만 바라보고 직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 보이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무조건 직진한다. 이게 바로 목(木)의 성질이다.
또한 목(木)은 유교의 덕목 중 측은지심의 '인(仁)'을 상징한다. 목의 기운이 적당한 사람은 타인에게 친근함과 편안함을 준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는 목(木)은 자존감이 있다.
2. 화(火)
화(火)는 불을 떠올리면 된다. 화(火)는 따스한 봄기운의 양에서 뜨거운 여름의 양으로 가는 기운이다. 불이라는 게 뭐냐면,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화(火)는 청년의 힘이다. 많은 고려와 배려가 존재하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확 일어나는 기운이다.
화(火)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때문에 과거를 떠올리는 기억력이 뛰어나지 않다. 과거에 얽매이는 사람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불은 지나간 일은 불과 며칠 전이라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현재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불의 기운은 순간적인 반동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경상도는 오래전부터 조선시대에는 남인들이 많았으며, 해당 이후 이곳에서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한 시민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해 발생한 대구인민항쟁에서 부마항쟁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현실을 뒤엎는 전복의 사건들이 발생했다.
목(木)과 달리 화(火)와 화(火)가 만나면 더 커진다. 그래서 화(火)가 화(火)를 만나면, 순간적인 동지애 또는 부화뇌동이 이루어진다.
3. 토(土)
토(土)는 시기적으로 보면 환절기이다. 땅이 없으면 모든 것은 존립할 수 없다. 우주를 구성하는 것이 목, 화, 토, 금, 수 오행이라고 하지만, 사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토(土)의 성분이다. 불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물은 흘러가면 없어지지만, 땅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인간의 삶으로 비유하면, 토(土)는 안정성이 높은 40대 중년이다. 토(土)의 안정성은 하늘 위로 상승을 추구하는 불안정한 목(木)과 만날 때 부딪친다. 토(土)가 토(土) 답게 살지 못하고, 목(木)의 기운을 강요당함으로써 토(土)의 기운이 무력해질 수 있다.
토(土)는 중화의 기운이다. 토(土)의 기운이 강한 사람은 정세를 관망하려고만 한다. 정말 움직여야 할 때 잘 안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움직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도가 토(土)의 기운이 강한 지역이다. 충청도는 인구가 적고 면적도 좁지만,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스스로 어떤 결과를 내지는 못해도, 자신이 가담하는 쪽이 승리하는 법을 잘 안다. 이게 40대의 지혜다. 또한 충청도는 예전부터 권력의 중심이었다.
토(土)가 토(土)를 만나면, 서로 무덤덤하여 외관상으로 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고수들은 쉽게 칼을 뽑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처럼 칼을 뽑지 않는 것은 칼을 뽑았다간 내가 죽을 확률이 높기도 하고, 다른 이유로는 역시 또 하나의 중앙인 상대에 대한 경외심이 있기 때문이다.
4. 금(金)
금(金)은 50대 장년의 기운이다. 천명을 알고, 규칙을 안다. 자신만의 원칙과 법칙이 있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세상을 사는 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하면 추한 거다. 그 나이에 훌륭하게 사는 법은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훌륭한 대접을 받게 된다. 만일 열 지갑이 없다면 입을 다무는 게 좋다. 계절에 맞는 옷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나이에 맞는 말이 있다.
오행 중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금(金)은 토(土)와 닮았다. 형태가 견고하고 변형 가능성이 적다는 점은 오행 중에서 금(金)이 최고다. 금(金)이 형태가 변하는 건 용광로에서 뜨거운 불에 의해 녹는 경우 뿐이다. 그 형태가 유지되는 것이 다른 오행 중 가장 강하다.
금(金)은 사계절 중 가을에 해당한다. 봄과 여름의 양에서 가을과 겨울의 음으로 변하는, 음의 기운이 커지는 시기이다.
금(金)과 금(金)이 만나면, 의기투합해서 금속의 빛깔이 더욱더 반짝이는 특성이 있다. 창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옆에 창이 하나 더 오면 아군이 생긴 것이다. 둘은 서로 의기투합한다. 화(火)와 금(金)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화(火)가 화(火)를 만나면 서로 기뻐하고, 금(金)과 금(金)이 만나면 의리가 발동된다. 하지만 금(金)과 금(金)은 화(火)처럼 합쳐지진 않지만, 적과 아군이 나뉘는, 피아를 식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우리 편이라 판단되면 최고의 아군이 되어 동료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며 싸우고, 적이 되면 적과 나, 둘 중의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
5. 수(水)
수(水)는 물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면, 물과 가까운 곳에서 물처럼 살아야 한다. 물은 기체인 수증기, 고체인 얼음, 액체인 물처럼 세 가지 형질이 있다. 물은 그 틀에 맞게 변신을 한다. 형태가 정해지지 않아서 담기는 용기의 모양이 따라 그 모양이 결정된다. 물은 자신의 형태를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의 상징이었다.
수(水)는 밤과 겨울, 북방의 기운이므로 생명을 잉태하려는 기운이다. 인간의 본능적인 성, 에로티시즘의 상징이기도 하다. 수(水)가 많은 사람들은 성에 대한 관심이 발달한 경우가 많다.
수(水)가 수(水)를 만나면,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10년 사귄 친구처럼 잘 어울린다. 수(水)의 가장 큰 특징이다. 금(金)과 금(金)의 만남은 이성적인 판단이 개입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나에게 뭐가 이익이 될까?' 그에 비해 화(火)와 화(火)의 만남은 '감성적인 결합'이다. 돕기로 결정한 이상,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그에 비해 수(水)와 수(水)의 만남은 '본능적인 결합'이다.
- 출처: 명리 운명을 읽다 (강헌/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