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서점에 들렸다. 책을 좋아하고 서점에 가는 것을 즐기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에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서점이라는 간판을 보면 반갑고 신기할 정도로 동네에서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면 대형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서점으로 가야한다. 

그러다보니 서점을 가려고 가기 보다는 다른 일로 쇼핑몰에 갔다가 서점으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도 역시 서점을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의 서점 나들이에 가족들은 모두 한 권의 책을 손에 잡았다.


아내는 요리 코너를 한참 서성이다 샐러드 요리책을 한 권 골랐다.

첫째 아이는 요새 한창 빠져있는 『마법천자문』 5권을 손에 꼭 쥐었다. 

이 책을 몰랐을 때는 도대체 이 책이 뭔데 항상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오나 궁금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천자문을 손오공이 나오는 만화로 표현한 책이었다. 

둘째 아이는 한 때 대형마트 주변 교통을 마비시키기도 했던 '터닝메카드' 스티커들이 가득찬 『터닝메카드 스티커북』을 보며 웃음짓는다. 막내 아이는 그저 좋다고, 서점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져보기 바쁘다.


나 역시 서점을 그냥 나서기가 아쉬워 예전부터 읽으려고 정리해둔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선택한 책이 예전에 다른 블로그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다.


▲ 몽마르트에 있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조각상 

사진출처 : 블로그 (현실과 이상사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는 총 다섯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 생존 시간 카드

  ◎ 속담

  ◎ 칠십리 장화

  ◎ 천국에 간 집달리



단편집을 읽으면서 마르셀 에메의 글에 매료되었다. 

근래에 읽은 단편집 중에 몇 권을 뽑으라면  체호프의 『체호프 단편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마르셀 에메의 단편도 다음에는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단편집으로 뽑을 것 같다.



■ 당신은 한 달에 몇 일을 살 수 있을까요?


다섯 편의 단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소설은 『생존 시간 카드』 였다.


항간에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새로운 배급제에 관한 소문이다.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대처하고 노동계급의 수익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비생산적인 소비자들, 이를테면 노인, 퇴직자, 금리생활자, 실업자, 기타 다른 군입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라는 것이다. (P39)


당연한 얘기지만 그 법령의 취지는 쓸모없는 사람들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생존 시간을 줄이자는 것뿐이다. 말레프루아가 설명하기를, 쓸모없는 사람들은 한 달을 다 사는 게 아니라 그 무용성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해놓고 다달이 그 일수만큼만 살게 될 거라고 했다. 그들에게 발급될 생존 시간 카드는 벌써 인쇄되어 있는 듯하다. (P40)


자기 생존 시간 배급표를 팔겠다는 그의 제안은 나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식인귀나 사람을 공물로 받았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듬거리며 반대의 뜻을 밝히고 그의 배급표를 거절했다. 그 대신에 아무런 대가 없이 그에게 약간의 돈을 주었다. (중략) 나는 도저히 그를 설득할 수 없어서 결국 배급표 한 장을 받고야 말았다.


아주 큰 부자인 바데 씨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그는 6월 30일에서 7월 1일 사이에 무려 1천9백67일, 즉 5년하고도 4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P70)


지금껏 접한 어떤 소설에서도 접하지 못한 소재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이 소설을 소개하고 싶었다.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해서 정부에서는 사람들의 유용성에 따라서 한 달에 몇일을 살 수 있는지를 정해둔 생존시간카드를 배급한다. 어떤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사람들마다 생존시간 카드가 배급되고 작가인 소설 속의 화자는 한 달 중 15일 살 수 있는 생존카드를 받는다.


시작부터 불편하다. 여기서는 구분이 명확하다. 사람들의 유용성으로 생존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선정한 유용성의 기준으로 사람들이 서열화 되어지고, 구분되어진다. 

그리고 생존카드는 거래가 되어지고, 형편이 어려운 노동계급들은 얼마 안되는 생존시간 조차 살기가 힘들어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카드를 판다. 그리고 구매자는 그만큼 한달 동안에 살 수 있는 시간이 연장된다. 

소재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환상 소설 같지만, 작가는 분명히 무언가를 꼬집어서 비틀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마르셀 에메의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1940년대 프랑스이다. 그 당시의 프랑스의 어떤 모습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76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모습은 어떠한가? 라고 자문해 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생존 시간 카드라는 유형적인 것은 배급받지는 않았으나, 분명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서 그 카드를 무형으로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하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어떤 이가 만약 한 달 중 18일을 살 수 있다면, 그 달의 18일 자정이 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 달의 1일이 되면 전 달에 사라졌던 장소로 돌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라지는 순간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에 사라져버리고, 누군가 침실에서 사라진다.

다음 달의 1일이 되면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가고 있고, 누군가의 침실에서는 장소를 잘 못 맞춘 여러 명의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  프랑스 문학의 희귀한 보석, 마르셀 에메 Marcel Ayme


▲ 마르셀 에메 (1902년 3월 29일, 프랑스 - 1967년 10월 14일)


작가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실제로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큰 눈에 짙게 위로 솟은 눈썹, 눈썹과 조화를 이루는 듯한 귀가 눈에 띈다. 왼쪽 입고리가 살짝 올라가며 주름진 입가에는 장난기가 가득해 보인다.

내가 접한 그의 소설은 짧은 단편 5편이 수록된 이 한 권의 책에 불과하다.

하지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마르셀 에메 만의 독특한 색깔과 기발한 상상력이 눈에 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익살스럽지만 날카로운 일침도 놓치지 않는 모습 또한 인상 깊다.

왜 프랑스 문단에서 '희귀한 보석' 이라는 표현을 그에게 선사했는지 짧게나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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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김중혁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몇 번을 언급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그 전에는 '커트 보니것' 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작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관심으로 이어진다.


'커트 보니것'이라는 이름을 온라인서점에서 찾아보니 여러 권이 나왔다. 그 중에서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그의 회고록으로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회고록으로 살짝 워밍업을 해보고, 작품을 찾아나가도록 해야겠다.

우선 낯설은 작가이기에 책의 날개에 적혀 있는 작가 소개부터 차근차근 읽어본다.



<커트 보니것>


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1922년 11월 11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인 건축가 커트 보니것 시니어와 이디스 보니것 사이에서 태어났고, 2007년 4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블랙 유머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로, 리처드 브라우티건,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학과 미술에 재능이 뛰어난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가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유머감각을 키웠다. 청년기에는 코넬 대학, 테네시 대학 등을 오가며 공학자와 작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다 1943년 2차 대전 막바지에 징집된다.

전선에서 낙오하여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그곳에서는 히로시마 원폭에 버금가는 인류 최대의 학살극이 벌어진다. 연합군이 사흘 밤난으로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를 용광로로 만들고, 십삼만 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했던 이 체험을 통해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난다.


『나라 없는 사람』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소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 짧은 글 속에서는 인권, 반전, 환경, 유머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문체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내용은 진지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유머와 비유등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든다. 동시에 쉽지만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다. 독특한 문체다.

나는 이런 글이 너무나 좋다. 첫 몇 장을 읽자마자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 모습에는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커트 보니것은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냈다.


권력은 여전히 거칠고 난폭한 억측가들의 손에 있다. 그들은 지식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그 억측가들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값비싼 졸업장과 함께 모든 지식과 교양을 내팽개쳤다. 그중에는 심지어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의 졸업장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골적인 억측이 이렇게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부탁하건대 여러분은 그러지 말아달라. 하지만 우울한 사실이 있다. 만일 여러분이 계속 교육을 통해 얻은 광대한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때문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억측가들이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억측해보건대 열 배 정도는 될 것이다. (p87)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보다 신뢰도가 낮다는 정치인을 생각할 때 드는 생각이다. 

분명히 능력있고 자신의 본분을 아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일부 인물들은 도무지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행동을 한다.

누가 봐도 저건 아닌데 라고 생각되는 것을 서슴치 않고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은 옆에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아마 그들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의 위트와 통찰은 여러 군데에서 드러난다.


이 지구와 "빌어먹을 인간"을 창조한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의심이 든다면 조간신문을 읽어보라. 어떤 신문이든 상관없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


"우리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가지고 온갖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독성물질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죽이고 있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네. 우리가 미쳤다는 증거 아닌가? 내 생각에, 지국의 면역체계는 AIDS,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그러니까 그 멍청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 기억한?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구절은 식인 행위를 말하는 거라네. 잡아먹을 게 얼마나 많은가? 그래. 지구는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것 같아." (p119)


책의 중간 중간에는 이렇게 그가 남긴 삽화들도 등장한다. 이 삽화는 몇 개는 작은 액자를 해서 간직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커트 보니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휴머니스트적이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

책의 뒷 표지를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던 보니것이 약속을 깨뜨리게 해주셔서 - 스터즈 터클(작가, 방송인)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 <뉴욕타임즈> 북 리뷰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이 표현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에세이 하나에 작가 보니것에 매료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의 작품 중에 몇 번 들어 본 게 『제5도살장』인데 절판이 되어서 구하기가 힘이 든다. 늦지 않게 이 책이 재출간되거나 어디서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보니것의 한 마디로 마치겠다.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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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 보았다. 우리 문학계의 큰 별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 책은 처음 접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녀가 떠난 지 4주기에 맞춰 초기 산문집을 다시 재편집한 것이다. 7권으로 구성된 산문집인데 그 중에 제목이 와닿는 책을 먼저 읽어 보았다. 5번째 산문집인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이다.


최근에는 일부러 산문을 읽는다. 글을 쓰는 데 너무 딱딱하고 건조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보통 자신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름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산문을 찾아 읽으려고 하고 있다. 나 역시 상투적인 표현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내가 경험한 진짜 내 삶을 토대로 글을 써내려가고 그 속에서 의미를 얻어내고 싶었다.


작가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곧잘 웃으셨는지 잘 모르지만 책의 작가 소개에 등장하는 사진과 함께 여러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글에도 사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도 일상을 통해서 담담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우선은 이해와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전제로 그런 부분을 끌어내려 한다는 인식을 많이 받았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시점의 글들이 많이 보인다. 30년 전의 글의 모음인 것이다. 그런데 그 때의 일상이라는 것도 지금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나 보다. 시점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을 감춘다면 지금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어색함이 하나 없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건가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가족', '아이', '자연', '집'

이런 소재가 산문 속에 자주 드러난다. 이 밖에도 우리의 일상의 많은 부분은 담담히 말하고 있다. 내가 위의 네 단어를 끄집어 낸 이유는 나 역시 위에 대한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하였고,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지만 나는 많은 부분에서 표리부동하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마음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데, 컨디션에 따라서 화를 내지 않아도 될 것에 화를 낸다. 항상 닭장 같은 아파트 말고 주택에 살고 싶다고 말하고, 내 주변에 있는 나무들 이름을 알아야겠다고 말도 하고 때로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도 했지만 정작 집안에 있는 화분 속에서 자라는 화초들의 이름 조차 지금 알지 못한다.


항상 마음 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와 다짐 뿐이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보면 아무 것도 하나 한 것이 없다. 아내한테 말한다. '나 뭐 할거야' 그러면 대답이 돌아온다. '하고 나서 얘기해요~!' 라고.


점점 느껴가는 것이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이 들다는 것과 그렇게 살아가는 일상이 삶이다라는 생각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키워야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고 했다. 우리의 일상도 아는 만큼 보일 뿐이다. 꽃이 피지 않아도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아야 어떤 나무는 여름, 가을, 겨울에는 이렇구나 알게 된다. 단순한 건물의 구조도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생각하게 되고,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이 사회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평범한 데, 그래서 특별하다. 그 '평범', '일상'의 무게가 오늘따라 묵직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의 마지막 산문은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이다.

책을 이제 다 읽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았다.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일부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는 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게 '시'의 힘인가 보다. 라고 다시금 느꼈다.

시의 의미를 정확히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첫 부분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정말 큰 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사소한 것에만 홀로 분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운전을 하면서 앞에 차가 끼어들면 경적을 올리고 혼자 화를 냈다. 음식점에 가서 서비스가 좋지 않으면 분개한다. 조금이라도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분개했다. 그런데 정작 분개해야 할 때 한 번이라도 동조해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분명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다시 배운다. 다음 번에 사소한 일에 내가 화를 내려고 한다면 그 때 이 시를 다시 떠올릴 것이다.


박완서의 산문집이 고맙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산문집이 7권이라고 하니 나머지가 궁금하고 고마울 뿐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1965.11.4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장서로 가로 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 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씩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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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시대로부터 따돌림당했으니 고산자(孤山子)요.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그뜻이 드높았으니 고산자(高山子)요.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 산을 닮고 싶어했으니, 그는 고산자(古山子)라고도 했다.

그의 이름이 김정호(金正浩)라고 했다.


《고산자》 라는 제목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박범신 작가의 책을 한 권 한 권 찾으면서 제목과 간단한 소개글을 읽어보았다.  《고산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을 '대동여지도'를 남긴 김정호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와 소설을 좋아하기에 망설임없이 손에 잡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글을 남기면서 알게 되었다. '고산자'는 바로 김정호의 호였다. 


김정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잠시 찾아보았는데, 그의 생애와 후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으며, 생몰년도 또한 알 수 없었다. 다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의 지도 판각을 도왔다고 한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알려지지 않은 삶이 작가 박범신의 눈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기록되지 않은 그의 삶은 이렇게 역으로 이야기를 통해서 찾아가게 된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는 1864년(고종1)인 것으로 보아 그는 순조, 헌종, 철종 대에 거친 사람으로 추정된다.


작가는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 냈을까. 소설 속으로 들어가본다.


고산자의 아버지는 홍경래의 난 때 지원대에 들어오면 전정, 군정, 환곡과 같은 세금을 면해준다는 현감의 거짓약속에 산속으로 들어간다. 후에 아버지와 함께 떠난 사람들은 추위와 식량이 없고, 산을 빠져나오는 길을 찾지 못해서 산속에서 죽게 된다. 그 때 그의 아버지의 손에는 관에서 준 잘못된 지도 한 장이 있었다. 당시 지도는 관에서만 소유하고 있었는데 고산자는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지도가 아닌 자기네와 같은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지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구니가 된 묘허와의 인연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야기는 역시 <대동여지도>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지면서, 그 배경은 홍경래의 난, 조선후기의 세도정치, 천주교와 서학의 배척과 같은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사건들이 서로 이어져 나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영토문제를 빼놓지 않는다.


우선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보통 지도를 만들 때는 지지를 함께 만든다는 것이다. 


p14

지지는 지도에 다 토달 수 없는, 이를테면 각 고을의 연혁 관원 고읍 풍속 호구 봉산 진보 영진 등 수많은 정보들을 편목별로 구분해 기록한 책이다. 지도가 있으면 그에 따른 지지가 있어야 산하와 사람살이가 입체성을 갖추는 것이니, 지도와 지지는 언제나 한통속으로 맺어져야만 피차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번 대동여지도의 판각이 끝나고 나면 당연지사 대동지지 편찬에 곧 착수할 터이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영토문제는 독도, 대마도, 간도 지역이다. 

특히, 독도에 관련된 이야기가 길게 나오는데 그 이유는 대동여지도에는 독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독도에 관한 소식을 듣다 보면, 일본의 고지도에서 독도가 조선의 땅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말을 듣곤 한다. 반대로 일본은 조선의 대표적인 지도인 대동여지도에는 독도(우산도)가 없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p202

대동여지도는 아래위와 좌우로 접는 분첩절첩식이다.

전 국토를 남북으로 백이십 리 간격, 스물두 첩으로 나누고 한첩을 다시 동서 팔십 리 간격으로 나누어, 접으면 하나의 서책이 되도록 고안하고, 때에 따라선 그 서책에서도 필요한 첩과 절을 빼내어 간편히 휴대할 수 있게 한 것은, 지도의 효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울릉도는 열다서번째 첩의 가장 오른쪽 절로 배치된바, 만약 우산도를 새기려면 울릉도에서 우산도가 이백 리는 안 된다고 쳐도 최소한 팔십리 간격의 절이 두 세 개가 더 필요해진다. 그중에서도 두 절은 바다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축척을 무시하고 다른 지도들이 그렇듯 울릉도에 바짝붙여서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새기는 것도 불편하거니와, 아무것도 없는 빈 목판을 끼워맞춰 지도를 찍어내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더구나 우산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다. 대동여지도를 그릴 때 그의 뜻은 지도로써 사람살이를 이롭게 하자는 것에 두었으니 목판본으로 제작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모든 작은 섬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새겨놓을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럴 필요성도 없다. 필사본과는 사정이 이렇게 다르다. 대동여지도도는 펼쳐놓으면 동서로 대략 스물두 척이 넘는다. 판각 자체의 어려움 때문에 , 그가 스스로 그렸던 동여도에 수록된 지명을 대동여지도에서 오히려 오천여 곳이나 뺀 것도 그렇거니와, 그러저러한 제작과정의 어려움이나 효용성 때문에 우산도를 뺀 것이다.


고지도를 보면 정말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정확하지 않고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자기들이 사는 곳이 비대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를 보면 지금처럼 위성이나 하늘에서 바라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유사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실제 김정호는 벗들을 통해서 관의 지도를 볼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지도가 나올 수 있었음은 아마도 평생을 오로지 우리 강토와 산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의 구도적인 삶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에 마포나루에서 고산자가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그가 떠난 후,

"어떤 이는 그가 일찍이 남몰래 보아둔 옛산에 들어가 푸른 정기에 기대 살아 백 살이 넘고도 젊은이처럼 먹고, 일하고, 자주 환하게 웃었다 한다."

그의 마지막 삶이 정말 이랬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그의 혼이 망가져가는 산하, 강토를 지켜주기를 바랄뿐이다.



 박범신 작가의 다른 책 


▶ 촐라채                 http://zorbanoverman.tistory.com/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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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항상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에 오르는 작가이다. 노벨문학상을 타고 안 타고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작품은 출간 전부터 이미 예약이 이루어지고, 출간됨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출판사들이 경쟁하며 판권을 얻으려는 몇 안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한 때는 오래되었던 것 같다.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누나의 방 책꽂이에 있던 《상실의 시대》를 한 참 동안이나 보아왔다. 물론 겉표지의 제목만 보아왔을 뿐이다. 언젠가는 한 번 읽어 볼까 잠시 들춰보기도 했지만 20쪽도 채 못 넘기고 다시 닫기를 여러번 반복했던 것 같다. 그 때 이미 질려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은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전히 《상실의 시대》는 읽어야 하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책이다.


실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1Q84》가 처음이었고, 제목이 유난히 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다음이었고, 이번에 글을 쓰게 된 《여자 없는 남자들》이 내가 만난  세번째 책이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 불과 세 편을 접해서 인지 몰라도 나는 아직 하루키를 잘 모르겠다.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는 작가이며,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글을 써내려가는지 짐작도 잘 가지 않는다.


워낙 두터운 독자와 하루키 매니아라고 할 정도의 이들도 많이 있고, 그에 대한 작품 해설 및 작품관에 대해 표현한 책도 눈에 많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책들은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나오는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개만을 읽었을 뿐 다른 정보는 일부러 피했다. 조금씩 그의 책들을 읽어가면서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사상과 세계관을 알아보고 싶은 궁금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접한 세 권의 책을 통해 느낀 점이라면, '신비함'과 약간의 '영롱함(?), 몽롱함(?)' 이라고 해야 하는 표현들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면 사람들의 깊이 숨어있는 욕망을 끄집어 내어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 역시 그의 이름을 믿고 처음 책을 읽었지만 그의 작품들을 찾아 읽으려 하는 이유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다.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면 궁금하고 수수께끼 같고, 책에 손을 떼기가 쉽지 않다. 이게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최근작인 《여자 없는 남자들》은 그의 단편집이다. 총7편이 소개되었다. 그동안 장편만을 읽어오다가 얼마 전부터 단편의 매력을 알아가고, 여러 작가들의 단편들을 찾아 보기도 하는 중에 만났다. 7편의 작품은 모두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바라보는 여자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그리고 성적인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편 중 특히 <드라이브 마이 카>와 <독립기관> 이라는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처음에 수록되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부터 이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궁금함을 유발했으며, 발을 더 깊이 들어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독립기관>은 사랑없이 그저 여자들만을 만나오던 한 남자가 결국 상사병으로 죽게되는 이야기인데 짧은 단편이지만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은 짙은 인상을 남겼다. 처음에 제목을 보았을 때 독립기관이 어떤 한 단체를 말하는 것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에게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장기와 같은 하나의 독립기관이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이 동작하는 그런 기관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로 하루키의 다른 작품을 주문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다음에 읽을 작품이다. 그의 최신작들을 먼저 보고 다시 그의 예전 작품으로 돌아가서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키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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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책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글이다.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편안하다. 이런 저런 분야의 책을 읽다가 이따금 한 번씩 이렇게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기분전환이 되고 내가 하는 책읽기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 볼 시간을 준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할 거 같은지 대략 짐작은 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다시 궁금해진다.


책을 읽고 나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고, 언제 어디서 책을 읽기를 즐기고 있을까? 


잠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 어떤 분야를 읽고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관심이 생기는 분야가 생기고 그 관심의 폭이 점점 넓어짐을 접하게 된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쓰는 자기개발서 같은 책을 읽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책 읽기를 위해서는 재미가 중요하기에 재미있다는 소설책을 찾아서 읽었다. 어느 순간 소설에 빠져들었고,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소설들, 바로 세계문학전집을 한 권씩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이다. 특히 소설 중에서 사회를 반영하는 내가 없었던 공간과 시간에 대해 알려주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는 한 때,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생각만 있었을 뿐, 별다른 관심을 갖거나 노력은 하지 않았었다.

지금도 역사는 항상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다. 올해 목표가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개괄하는 정도의 독서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구입하고 정리하려 하는데 몸이 안 따르고 다른데 자꾸 관심이 간다. 그래도 목표는 올해 조선시대 역사에 대해서 개괄해 보고자 하고, 항상 책이 나올 때마다 기다리는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의 책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려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고려시대도 한 번 도전해보아야 겠다. 일단 조선시대부터라도 제대로 읽어보자.


최근에 부쩍 관심이 가지고 있는 부분은 미술이다. 얼마 전에 동대문디자이플라자에서 진행중인 간송문화전에 다녀왔는데 고려청자의 신비한 색채와 신육복의 화첩과 추사 김정희의 서화 등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번이 직접 찾아서 간 두번째 전시작품관람이다. 앞으로 이런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보는 감동은 컴퓨터로 책으로 보는 그 이상의 아우라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책들과 다른 여러 책들을 찾아보고 읽는 중이다. 읽을 수록 재미있다. 아마도 이쪽은 더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

나중에는 고려청자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공부해보려 한다.


서양미술에는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계기로 고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갱과 흥미롭게 연관된 고흐를 알게되어 고갱, 고흐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이것을 기반으로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작품도 찾아보고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보려 한다. 나중에는 곰 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한 번 완독해야 겠다. 지금은 거의 사전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항상 기반이 되는 것은 인문/사회이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직접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다루게 되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자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위해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관심이 가는 분야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쉽지가 않다. 철학인데 그 진입장벽이 나에게 좀 높은 듯 하다. 최근에는 입문서 정도라고 하는 피노키오의 철학을 찾아 읽고 있는데 심오한 철학의 세계가 언제쯤 나를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걷기, 건축, 클래식, 글쓰기, 교육관련, 여행, 인테리어 등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고 한다. 

이런 관심이 불과 2~3년 만에 생긴 것이니 아마 2~3년에는 조금의 발전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길 바란다.



◆ 책 읽는 시간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점 한가지는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다는 점이다.

예전에 약속한 사람이 늦게 오면 전화를 몇 번 해보고, '어느까지 왔느냐?'고 확인하고 했는데, 이제는 덕분에 관대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방에는 적어도 2권 정도의 책과 볼펜 한자루는 항상 들어가 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나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게 불편하다. 눈의 피로도 심한거 같고 그게 오히려 나에게는 더 좋은 듯하다.


굳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을 꼽으라면 역시 세상이 조용한 새벽시간이다.

예전부터 나는 밤 늦게 자거나 시험기간에 밤을 지새우거나 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이들의 영향도 있지만 빨리 잠드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새벽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아무도 없는 듯이 조용한 새벽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점심시간의 20~30분 정도의 독서도 맥을 잘 이어주는 연결의 시간이 되어준다.



◆ 책 읽는 공간


어느 기사에선가 '남자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여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이 선호하는 공간에서 소진되었던 힘과 기운을 천천히 채워주워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일을 살게 해 준다.

아내는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내 방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그동안 방책을 세워야겠다.

쇼파에 앉아서 양 벽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을 바라보면 무언가 뿌듯하고, 여러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가 된다.

커피는 집에서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라 잔잔한 노래, 시원한 물 한 잔, 땅콩, 호두같은 것 한 접시, 볼펜 한 자루, 책 한 권이면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어린 두 아들을 위해서는 쉽게 즐길 수 없는 사치아닌 사치가 되긴 했으나 가끔 누려보기도 한다. 


지하철과 버스도 훌륭한 장소다.

아침에 버스 속에서 밤 사이 달콤하고 황홀한 꿈을 잇기 위한 유혹을 벗어난다면 훌륭한 장소가 된다.

항상 짓눌려 출근하는 서울 지하철이나 출근길 만원버스에는 다소 힘들기는 하겠지만 이동 중 대중교통은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된다.

책을 읽을 때 주변 사람들의 대화나 전화통화는 방해가 되지만 지하철, 버스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엔진소리, 정차소리, 사람들의 숨소리와 발걸음은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내어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와 좋아하는 공간, 시간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는 언제 어디서든 상관이 없는 듯 하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점점 다양한 분야로의 관심 확장과 끊임없는 호기심의 유지와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책 속 구절을 소개한다



P67

루치우스 세네카는 “인간은 항상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듯 행동한다.” 고 지적했지만 바쁜 시간 중에도 한가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짬을 내고 틈을 내고 멍하니 흘려보내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책을 읽을 시간을 얻을 수 있다.


P77

책은 영원히 남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펴낼 수 엇ㅂ는 것이다. 말처럼 내뱉고 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아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읽힐 것이라는 생각은 책을 쓰는 사람에게 책임감을 갖게 한다.


P78

청년이라면 자기 자신과 가족과 사회와 세계와 자연과 우주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던지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이냐에 앞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P82

장년의 독서는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에 머무를 수 없다. 장년의 독서는 그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체험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깊게 심화시켜 그 문제들에 대한 자기 나름의 체계적 답변을 마련하는 독서가 되어야 한다.


P84

청춘의 독서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한 불타는 독서라면, 중년의 독서는 내면적 성숙을 위한 고요한 독서가 될 것이다.


P87

공자나 아인슈타인 같은 지적 업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고, 그만큼 유명하게 되는 것도 삶의 보람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업적을 남기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유명하게 되는 것보다, 그런 목적 이전에 오로지 앎 자체, 진리 자체에 정열을 갖고 자신의 지적 세계를 가능한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능력, 분수, 처지에 따라 자신의 지적 세계를 넓혀간다면 그만큼 그의 세계는 확대되고 그만큼 그의 삶은 깊고, 그만큼 그의 삶은 풍부하게 된다. 설사 내일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송장이 되더라도 그 순간까지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알아가는 기쁨, 그 보람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91

독서의 근본적 목표는 인간의 변화에 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나 자신의 내적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바에야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뒤나 아무런 변화가 없이 똑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 것인가?


P126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서관이나 친구들을 통해 책을 빌려 보기도 하지만 언젠가 돌려줄 생각에 부담이 되고 책에 마음대로 줄을 긋거나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다른 데 쓸 돈을 아껴서 필요한 책과 읽고 싶은 책 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호기심이 또 다른 호기심을 낳고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꾸 책을 사게 된다. 한계를 모르는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독서열은 계속 책을 사들이게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한권 두권 늘어나는 책은 점점 서재의 수용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P137

안동에 가면 퇴계 이황이 글을 읽고 가르치던 도산서원이 있고 퇴계가 앉아서 글을 읽던 돗자리가 원형 그대로 깔려 있고 퇴계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광수나 이상이나 김수영의 서재는 아예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얼마 전에는 최남선이 살던 집이 완전 철거되면서 우리나라 근대 지성사와 문학사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버렸다.


P176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도 있다.


P179

“신촌 기차역에서 일산으로 가는 기차는 왕복 1시간 20분이 걸렸다. 캔커피 하나, 책 두 권을 들고 매주 기차역으로 간 적이 있었다. 역 근처 서점에서 신간 한 권, 잡지 한 권 사는 기분을 늘 상쾌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리기 싫어진다.”


P192

파리 만이 아니라 서울 거리에도 길을 걸어가면서 책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걸어가면서 책을 읽어도 넘어지거나 어디에 부딪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책의 여신이 책에 빠진 사람을 보호하는 모양이다.


P196

영국에서는 서점을 bookshop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bookstore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서점(書店)과 더불어 서관(書館), 서림(書林)등의 한자어가 함께 쓰였다. 당시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은 박문서관과 한남서림이었다. 서점, 서관, 서림 가운데 ‘책의 숲’이라는 뜻을 담은 서림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데 ‘책 파는 상점’을 뜻하는 서점이 점점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대현 서점들이 서점 대신 ‘글의 창고’라는 뜻을 담은 문고(文庫)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가장 눈에 띄는 보기다. 1970년대 서울에서 가장 컸던 서점은 종로서적이었다. 그것에서 종로3가 쪽으로 조금 떨어져 양우당이라는 서점도 있었고, 신문로 쪽에는 범한서적이라는 서점도 있었다. 범한서적이나 종로서적은 서점이면서 출판사도 겸하도 있었다. 그래서 서점이라는 칭호 대신 서적이라는 간판을 달았던 모양이다.


P198

<근대의 책 읽기>의 저자인 국문학자 천정환은 이렇게 토로했다.


서점에 가는 일이 두렵다. 서점에서 수많은 책 사이에 서 있는 일은 고통 그 자체이다. 서점에 가지 않은 얼마 동안 책들이 쏟아져나와 있다.  그 책들을 들추고 있노라면 내 게으름과 무식함이 발가벗는 것 같다.


P206

오늘날에도 센 강변에는 약 80여 개의 부키니스트 중고책 서점이 오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부키니스들의 초록색 철제상자는 파리 시 소유로, 파리 시가 심사를 거쳐 서적상에게 영구 임대한다. 그 대신 서적상은 책 판매수익의 5퍼센트를 파리 시에 납부해야 한다. 서적상이 사망하면 자동 상속은 안 되지만 가족들이 승계를 신청할 수 있다. 서적상들은 개인 연결망을 통해 장서가들이 사망하고 난 뒤 인수하거나 고물상을 통해 사들인 책을, 먼지를 털고 바라믕ㄹ 쏘인 다음 작가별로 시대별로 분류하여 초록상자 속에 진열한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 각 서적상들의 전공 분야를 알 수 있다. 정치가나 연예인 들의 전기물을 모아놓은 상자가 있는가 하면, 1차대전과 2차대전을 중심으로 전쟁에 관한 책을 모아놓은 상자도 있다. 그 밖에도 중고서적상의 취향에 따라 20세기 문학, 예술사, 종교사, 왕실의 역사, 파리 여행기나 관광안내, 영화 등 고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의 책들이 상자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다. 책 전체를 셀로판지로 싸고 오른쪽 위에 매직펜으로 가겨을 써놓기도 하며 때로 강변의 둑 위에 책을 올려놓기도 한다.


P233

책 속의 문장에 눈길이 닿으면 냉동되어 있던 생각의 얼음들이 녹아 따뜻해지면서 생각의 아지랑이를 무럭무럭 피어나게 한다.


도서관에는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표명하는 책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책들은 들리지 않는 소리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P236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도서관에 소장된 책의 입장이 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무덤이 되느냐 보물이 되느냐,

내가 말을 하느냐 침묵을 지키느냐는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친구여, 욕구 없이는 부디 들어오지 마라.


도서관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원전 280년경에 북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였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거대한 도서관 이야기다. 당시 지중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주의적 이상을 지식의 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건립한 이 도서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재에 있던 장서를 그대로 가져와 소장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책을 모아서 무려 70만 권의 장서를 소장한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이었다. 


아테네와 로마가 인문학의 중심이라면 알렉사드리아는 자연과학이 강했다. 아르키메데스와 유클리드가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들은 아마 이 도서관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런 유명한 학자들만이 아니라 클레오파트라도 그곳에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도서관은 여러 번에 걸친 전쟁으로 수난을 겪다가 기원전 48년 카이사르가 일으킨 전쟁의 와중에 불타 재가 되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2004년 그 자리에 다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1974년 유네스코가 인류문화의 상징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세계 최대의 도서관을 건립하자는 제아능ㄹ 한 지 30년이 지나, 드디어 그 도서관이 완공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도서관이 부활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에는 중동의 산유국들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도서관은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도서관의 서가에 처음 꽂힌 두 권의 책은 코란과 성서였다.


P241

도서관 서가의 수많은 책들은 19세기 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던 멜빌 듀이가 1876년에 창안한 십진분류법에 따라 총류, 철학사상, 사회과학, 자연과학, 어학, 문학, 예술, 역사 등으로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다.


P244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동과 서, 옛것과 새것을 두루 찾아 읽었으며 그것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 청년 시절을 보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립도서관의 참고 열람실에서 이루어진 책읽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목죄었지만 날마다 책을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뎌냈다. 훗날 시인이자 평론가가 된 장석주의 회고담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에게는 도서관이 대학이고 대학원이었다.


P263

모든 책은 의무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기로 되어 있어서 정식으로 출판된 책은 어떤 책이든 다 찾아볼 수 있다.


P267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저자들에게 수액을 전달하는 장소


P285

얼굴의 형태는 태어날 때 결정되지만 얼굴의 분위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따라 달라진다. 스무 살까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얼굴로 통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행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 조금씩 그 사람의 삶이 얼굴 표정 속에 반영된다. 인생을 피상적으로 함부로 막산 사람의 얼굴 표정과 진지하게 삶의 의미와 깊이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발자크의 말대로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 용모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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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은 작년 말에 읽은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이후로 두 번째다.

보통은 이야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서사를 좋아한다. 보통 소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빠져버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정말 나에게 맞는 짝을 만났을 때이다. 그런 책들은 내일로 넘기기가 힘들다. 시간이 늦어도 읽어서 끝장을 봐야 한다. 


산문에서는 그런 종류의 감동은 덜하다. 그런데 산문집을 접하면서 산문 만의 매력을 새롭게 느껴가는 중이다. 서사와는 다른 간결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산문은 글쓰기 연습에도 훌륭한 선생님이 된다. 길지 않은 글에서 어떻게 도입부분을 표현했는지, 하고자 하는 말을 어떤 식으로 전개했는지, 글을 어떻게 마무리지었는지 살펴보기 좋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지금껏 거의 책을 내놓지 않은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 문화운동가이자 우리 시대 대표적 인문학자인 도정일의 글이다. 지금껏 신문 칼럼이나 대담 형식의 책에서만 잠깐 만날 수 있었던 분이기에 이 책은 더 반갑다. 어떤 인터뷰를 보니 이제는 좀 더 늦기 전에 그동안 미루어왔던 글을 정리해보려고 한다고 들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2006년 대학에서 퇴임했으나 2010년 다시 대학으로 복귀해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으로 학부 교양교육을 쇄신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궁금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무엇인지.


네이버의 기획물에 우리 시대의 멘토 '도정일'편에 소개된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인가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첫째는 '인간다움'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사랍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것에 따른 응답을 하고자 하는 사람, 인간성에 대해서 늘 생각하는 사람이 후마니타스죠.


둘째로는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문명을 만들어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어떤 문명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문명은 기술이나 과학만으로 만들 수 없거든요. 종교도 필요하고 예술도 필요한 거죠. 인간이 무엇을 위해 문명을 만들었을까? 현대문명은 무엇을 위해서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문명의 목적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문명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잘못된 것을 반성하며 문명의 방향이 옳게 갈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이 바로 후마니타스입니다. 요약하자면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문명을 만들고 성찰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죠.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크게 4부에 걸쳐서 91개의 산문이 실려있다. 91개의 산문에는 정말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밑줄지고 단락을 지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별도로 정리한 것만 해도 20장이 넘게 된다.

특히,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은 인문학에 관련된 주제, 독서와 도서관에 대한 생각,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 부분이었다.


인간의 삶이 우연성의 개입을 완벽하게 차단할 방법은 없다. 엉뚱한 때에 엉뚱한 곳에 잘못 배달된 소포처럼 시대를 잘못 만나고 장소를 잘못 만나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지 모른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태어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결정한 사항도, 선택한 사안도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 때문에 삶에 대한 나의 책임, 당신의 책임, 우리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탄생은 내가 결정한 바 없고 선택한 바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탄생 이후의 우리 삶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이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생각하는 게 인문학적 사유의 첫번째 과제라는 말의 의미다. 물론 그 과제에 포함되는 것이 어찌 운의 문제뿐이겠는가마는             -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


아무도 정답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인문학적 기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다른 사람 아닌 '내'가 내 손으로 찾아야 한다. 그 질문들에 '나만이' 응답할 수 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지고 조선 팔도에 아무리 문자를 날려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고 찾을 수 없다. 기성의 해답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질문의 위대한 중요성이다. 왜 응답해야 하는가? 인간에 대한 기본 질문에 내가 어떤 식으로건 나의 해답을 내놓지 않으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를 당당히 말할 수 없고 내 존재의 정당성("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과 내 삶의 문법("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기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는 동물이며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확보하고자 하는 동물이다. 이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 조건이다.       -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이런 글들이 산문 곳곳에 흩어져 있다. 같은 글이더라도 소설처럼 배경을 묘사하고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많은 부분을 소요하는 것 대신에 이런 농축되고 함축적인 표현들이 산문에는 가득하다. 책을 읽을 때는 생각보다는 읽는 거 위주였던 거 같다. 읽은 것을 정리할 때는 생각이 많이 뒤따랐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산문 한 편을 읽고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그 주제에 대해서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위의 내용처럼 쉽사리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삶을 살면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답을 찾을 수 없는 궁금증일지도 모른다.

위에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에서도 표현했듯이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간다. 어떤 이는 평생 건강하고 넉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어떤 이는 평생 불행에 불행이 겹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선하게 살아오던 사람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태어날때 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무차별하게 죽는다.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선악의 심판이 없는 듯 하다. 궁금하다. 과연 운명이란 것이 존재한가? 라는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대답없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인문학을, 철학을 더 공부해볼 시기인 듯도 하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지만 결코 쓰잘데없지 않다. 그저 너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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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욕이 들어있었던 책이다. 거의 일관된 하나의 욕이다. '씨발'이다. 

다 읽고 나니 그 말이 빠지면 절대 안된다. 이 작품에서 '씨발'이 빠지면 읽은 후에 절반의 여운은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쉽게 표현할 수 없었던 소재인 듯 하다. 주된 흐름은 가정 내에서의 가정폭력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이게 가정에 국한된 폭력이 아님을 알아가게 된다. 결국은 모든 폭력에 대해서 작가는 말하고 있다.



책의 중간 중간에 작가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마 그대는 이걸 읽고 있던 내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어디까지 왔나' 과연 그 어디는 어디인가? 책을 덮고 나서도 확실히는 모르겠다. 내가 어디까지 가야했는지를······

글을 정리하면서 생각한 건, 과연 작가가 말하는 폭력에 대해서 이해를 했느냐? 그 폭력에 당신은 개입되지 않았느냐? 방관하지는 않았느냐? 하고 되묻는거 같아서 불편하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화자는 앨리시어이다. 앨리시어는 동생과 함께 어머니에게 학대받고 아버지는 그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한 대를 더 걸쳐서 올라가면 앨리시어와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의 폭력 속에 살아왔고 그녀의 어머니는 폭력에 무관심한 듯 하다.


P42

그녀는 그보다 어머니가 궁금하다. 어머니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왜 내다보지도 않았을까. 왜 나를 들여보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죽고 싶을 정도로 나는 씨발 추웠는데 왜 나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얼굴로 자고 있나. 식구들이 저녁으로 먹고 남긴 수제비 냄새와 낡은 이불깃과 잠든 인간들의 냄새가 섞인 따뜻한 공기속에서 아주 조용하게 씨발 년이 발아한다. 씨발 년은 아버지 곁에서 편안하게 잠든 어머니를 내려다본다. (중략)

그녀가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일 때는 평화롭고 행복할 때다. 기생들과 즐기고 놀다 돌아온 가장이 신문지에 싸서 가져온 쇠고기나 꿩고기로 고깃국을 끓여 식구들이 모두 앉아 그것을 먹을 때다. 그녀는 배부르고 평온하다.

포스트 씨발 년을 탄생시킨 씨발 년이다.


앨리시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는 그녀에게 폭력을 가한 그녀의 아버지와 무관심한 어머니로부터 발아했다는 표현을 한다. 폭력의 되물림이다. 안타깝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정말 현실이 아닐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서툴다. 심지어 상대방이 폭력으로 느끼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다. 작가 황정은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표현하기 쉽지 않은 표현을 뱉어낸다. 그런데 당하는 당사자들은 혹여나 부모라도 그 당시에는 그랬을 거다라는 나 역시 뱉기 힘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폭력


앨리시어의 동생은 소위 학교에서 왕따를 받는 그런 학생인 듯 하다.  가정에서 어머니에게 폭력을 당한 동생은 학교에서도 폭력과 따돌림에서 자유롭지 않다. 학교폭력


p87

너는 병신이 아니라고 엘리시어가 대답한다.

너더러 병신이라고 말하는 새끼가 있다면 그 새끼가 나쁜 거고 진정 병신인 거다. 앨리시어의 동생이 그걸 듣고 고객를 끄덕인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에서는 어쩌면 국가에 대한 불신과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 국가 역시 폭력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게 한다. 앨리시어와 친구 고미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것을 보고 구청으로 갑니다. 무엇을 물어보려 했느냐. 그건 바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를 때려도 되는가? 였다. 소설 속의 화자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국가에 공권력에 호소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앨리시어가 처음 찾아간 구청의 복지과에서 가정폭력에 대해서 상담하는 곳이 아니고 행정업무를 보는 것이라며, 사설기관의 전화번호를 가르쳐준다. 국가는 외면했다. 다시 사설기관을 찾아간다. 사설기관 왈, 부모를 데리고 오란다. 그리고 예약을 하고 오란다. 이런 정말 '씨발이 발아한다.' 국가폭력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앨리시어의 동생은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내쳐지고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작가는 또 묻고 묻는다. 처음처럼......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앨리시어는 갤럭시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말을 한다.


P63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앨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앨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갤럭시는 좆같다.

앨리시어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갤럭시란 엘리시어에게도 아무것도 아니다.


한 개인의 고통은 그 개인만이 알 수 있다. 그 고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갤럭시 속에서의 개인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듯이 타인의 무관심 또한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 그리고 친구 고미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외면해버린다. 

앨리시어 같은 이는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가깝게 존재하고 우리가 아는 어떤 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라는 질문은 이제 그들의 고통을 얼마나 알게 됐는가하고 계속 질문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덧붙이기>

황정은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다. 162쪽 밖에 되지 않는 두껍지 않은 책인데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서사위주의 형식보다는 등장인물의 내면에서의 움직임이 주된 이야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듯 하다. 익숙하지 않아 쉽지는 않았으나 그러기에 더 남는다. 황정은 작가의 책을 더 읽어봐야 겠다. 색깔이 있는 것 같아서 궁금하다. 어떤 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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