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선생이다> 라는 소중한 책을 만났다. 

지난해인 2013년에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던 책이다 .그만큼 내용면에서는 여러 독자들에 의해 증명이 된 셈이다. 작년 말에 구매하고 조금씩 한 편 한 편 읽다가 덮어두었었는데 다시 읽고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그 끌림이 처음에 접했을 때 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 끌림은 바로 글 속에서 보이는 '통찰력'이다. 내가 원하는 글쓰기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사회적, 역사적사건과 이슈가 연결되는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일상 속을 파헤치는 통찰력있는 글쓰기' 이다.

저자인 문학평론가인 고려대 불문과 교수인 황현산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소함에서 그 의미를 발견해낸다. 하지만 이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쓴소리도 아낌이 없다.


용산참사, 4대강 개발, 강정해군기지 건설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과 일제 강점기 및 군사독재 시절의 아픈 기억 속에서 잊지말아야 할 점들에 대해서 넌지시 우리에게 알려준다. 

또한, 문학평론가이기에 시, 소설 등과 같은 예술에 대해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언어'에 대한 깊은 관심도 보여준다.


<밤은 선생이다.>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동시에 나로서는 가늠하기 힘든 깊은 성찰이 글 속에서 베어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소주제인 [협객은 날아가고 벼는 익는다]에는 '늙은 농부는 벼 크는 소리가 들린다는데, 그러고 보면 농부야말로 눈먼 무사 따위에 비할 수 없는 강호의 협객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야 말로 마치 강호의 협객처럼 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쓰는 소재와 구성의 다양함은 물론 짧은 글 임에도 불구하고 길고도 강한 여운을 남겨준다.


많은 글귀에 별표와 네모 상자를 해두고 줄을 그었다. 그 중에 의미있게 다가온 몇 구절을 적어본다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가름된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귀를 만날 때면 내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된다.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는 어구는 그야말로 내 가슴을 후벼파는 기분이었다. 평생 한 번 살기에 의미가 있는 우리의 삶에서 세상과 사람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동시에 사소한 관심과 경험을 소중히하는 것에서 그 무관심을 극복하며 삶을 풍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에게 질문해본다. '내가 지닌 현재의 폭은 얼마나 넓은가?' 

대답하기 어렵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조금씩 더 삶을 알아가면서 사소함에서 그 의미를 찾고 조금씩  현재의 폭을 넓히고 싶을 뿐이다. 현재의 폭이 넓어지면 언젠가는 통찰력 또한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폭력에 대한 관심> p115

이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을 일반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쳐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스는 것이 폭력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160킬로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윤리는 기억이다> p204

시는 기억술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 시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왕성했던 생명과 순결했던 마은을, 좌절과 패배와 분노의 감정을, 마음이 고양된 순간에 품었던 희망을, 내내 기억하고 현재의 순간에 용솟음쳐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 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


<당신의 사소한 사정> p176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잇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고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밀한 시간> p280

"핸드폰을 24시간 들고 다닌다는 것은 누가 자기를 부르든 24시간 대기하고 있겠다는 말이 아닌가. 옛날 노비의 신분이었던 사람들이야 주인이 부르면 지체없이 달려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대기를 해야 하는 팔자였지만, 이 민주주의 시대에 자진해서 노비가 되려 하다니 이해할 수 없구나."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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