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골든디스크 대상 아이유 수상소감 풀버전

 

"제가 1년 전쯤에도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 인사를 전했었는데, 올해도 이렇게 또 큰 상을 받게 돼서 너무 한 해 마무리가 잘 되는 것 같아서 너무 기쁘고요. 이 곡 한곡을 만드는데 사실 생각보다 많은 분의 손을 거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들 한 분 한 분이 다 이 소식을 듣고 다 지금 저처럼 기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주변에 참 인복이 많아서 멋지고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요. 영감이라는 말을 좀 부끄러워하긴 하지만 그런 좋은 분들에게 참 영감을 많이 받아서 음악 생활을 많이 도움을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Celebrity'라는 곡은 자기의 개성 때문에 사랑도 많이 받고, 미움도 많이 받는 제 친구에게 "너는 별난 사람이 아니라 별 같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작사를 시작하게 됐었습니다.

 

쓰다 보니깐 이게 제 이야기 같기도 하고 또 스스로라는 이유로 미움받고 사랑받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공을 들여서 작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감을 줬던 그 친구에게도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고 너무 너무 멋진 친구인데 앞으로도 제 인생에서 좋은 영감을 많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년 한 해가 저한테 좀 뜻깊은 한해여서 20대를 담는다는 느낌으로 음악 활동을 바쁘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또 저의 10년을 지켜봐 주신 팬분들이게 제가 가장 진솔하게 감사 인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해서 그렇게 했는데 이렇게 다 들어주시고, 오래 사랑해주시고, 상까지 주셔서 정말 20대를 덕분에 잘 닫은 느낌이고요. 

 

연말에 생각을 좀 많이 했었는데 10년 동안 참 뭐랄까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순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근데 항상 넘어지는 건 나 때문이었고, 일어섰던 건 남 덕분이었던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른 남들, 저 말고 다른 분들께 정말 너무너무 감사한 그런 만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는데요.

 

제가 넘어져 있을 때 항상 일으켜주시고 힘주셨던 제 주변 분들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유애나, 가족분들, 이담엔터테인먼트와 아이유 팀에게 모든 영광 돌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또 시작될 30대에는 과거의 저랑 경쟁한다기보다는, 또 지금의 저로 새로운 모습으로 또 다르게 열심히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앞으로도 많이 미워하고 또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게 다 제 동력입니다. 10년 또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이직을 한 후에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침체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평소와 다르게 점점 불만의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려는 것 보다 어떻게 하면 피해갈 수 있을까, 누군가가 도움을 줄 수 없는가 하는 쪽으로 피해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실패를 할 때가 있고, 또는 쓰러질 때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이번에는 열흘 동안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스스로 닫혀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하고,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하나라도 조금 더 실천을 해보면서 극복해나가는 수 밖에 없다. 아마 올 한 해도 일적으로는 분명히 수많은 고민과 스트레스가 밀려올 것이다. 온전히 받아낼 생각이다.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배우고 다시 시작해보자. 그러면 될 거다. 

 

나의 사십대는 분명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 쉽게 굽히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일어나고, 반복해서 시도해보리라. 그 도전과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풀어내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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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물컵 표면에 물이 왜 생길까요?



이제 본격적인 여름입니다.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에 '폭염주의보' 라는 글귀로 자주 메세지가 들어옵니다. 자연스럽게 시원한 얼음물이 생각나고, 냉장고에 있는 수박이 생각납니다. 회사에서는 얼음이 가득 들은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십니다.

그런데 조금 마시고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스아메리카노 컵 표면과 컵 아래 바닥에도 물이 고입니다.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그 물을 어디서 생겨난 거지? 플라스틱 표면을 뚫고 물이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이런 비슷한 현상은 다른 곳에서도 눈에 띕니다. 에어컨을 켜게 되면 물이 생깁니다. 그리고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꼈을 겁니다. 갑자기 안경에 김이 서리는 현상 이런 것들이 다 똑같은 원인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선 정답부터 찾고 갑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결로 현상' 때문입니다.

차가운 물은 주변보다 온도가 낮습니다. 그리고 컵 밖의 공기는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깥에 있던 수증기가 차가운 물이 들어있는 물컵의 표면에 붙으면서 물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표면에 생기는 물은 공기 중에 들어있던 것입니다. 유난히 물이 많이 생기는 곳은 그만큼 그곳의 습도가 높다는 뜻입니다.


안경에 김이 서리는 것도 같은 현상이라고 했죠. 안경을 낀 사람이 겨울철에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 안경에 김이 확 서립니다. 추운 곳에 있던 안경렌즈가 따뜻한 곳에 들어오면서 실내 공기에 있던 수증기가 차가운 렌즈에 닿으면서 김이 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경에 김이 빠르게 사라지는 이유는 모든 물체들은 접촉하면서 열에너지를 교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빨리 서린 김을 제거하려면 따뜻한 곳에 놓거나 체온으로 닦아 주면 됩니다.


조금 더 제 주변에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져야 겠습니다.

궁금증을 갖고, 관찰을 하고, 원인을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지식을 쌓아가고, 지혜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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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나나의 날파리, 도대체 너는 어디서 나타났니?


이제 여름의 문 앞에 서 있다. 점점 포근하다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따뜻하다를 넘어서 덥다라는 느낌이 오고 말았습니다.

이런 여름에는 땀으로 끈적해지는 살갗에 찝찝해지고, 집에는 파리,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어제도 한 방 물렸네요.

그리고 내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 놈의 출현도 조금씩 잦아집니다. 그 놈은 바로 '날파리' 입니다.

아이들에게 간단하지만 포만감을 줄 수 있는 간식 '바나나' 는 먹고 나서 식탁에 올려 놓으면 어느새 날파리가 생겨납니다.

분명히 집에는 날파리가 없었는데 도대체 이놈은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입니다. 날파리 그게 바나나에서 나오나?

 

궁금증이 생기고 나서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이런 날파리 하나 어디서 생겼나 궁금했던 게 일이 커집니다.

제가 생각했던  '날파리가 바나나에서 나오나?' 라는 생각은 찾아보니 자연발생설로 소개가 되고 있네요.

 

자연 발생설은 기원전으로 올라갑니다. 기원전 4세기경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을 토대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곤충이나 진드기가 부모가 아닌 쓰레기, 땀, 흙탕물에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우나 장어는 흙탕물에서 자연 발생한다고 생각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황당무계한 실험도 있었습니다.

17세기에 벨기에의 화학자 반 헬몬트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합니다.

 

1. 밀가루 낱알과 땀으로 더러워진 셔츠에 기름과 우유를 적셔서

2. 항아리에 넣고 창고에 방치하면

3. 쥐가 자연 발생한다.

 

과연 쥐가 나왔을까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1861년에 파스퇴르는 중요한 실험하나를 합니다. 파스퇴르는 과학자입니다.

한 포털의 지식인 서비스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더라구요. "파스퇴르는 사람입니까? 우유입니까?

아마도 어린 학생들일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당연히 사람이죠.

파스퇴르가 진행한 실험은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 사진출처 : https://goo.gl/tFFUpa

 

위의 그림을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861년 파스퇴르가 공기 중에 떠도는 미생물이 적절한 환경의 액체를 통해 증식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실험입니다.

S자목 플라스크에 액체(육즙)를 담아두면 공기는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미생물의 포아는 목부분에서 더 이상 진입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확인을 해보니 액체(육즙)에는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은 겁니다. 반면에 백조목을 제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플라스크 안으로 미생물의 포아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확인해보니 미생물이 증식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미생물의 자연발생설은 사라지게 됩니다.

 

날파리(보통 초파리나 하루살이 같은 작은 벌레)는 바나나에서 직접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날파리가 분명 저절로 생길거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놈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를 잘 모르겠거든요.

 

날파리는 보통 외부에서 들어옵니다. 그리고 과일 껍질이나 음식물쓰레기 같은 곳에 알을 낳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은 부패한 당질의 유기물질을 먹고 삽니다. 그래서 포도나 바나나 같은 당질이 많이 포함된 과일에 유난히도 꼬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름에 유난히 꼬이는 이유는 보통 15도 이상에서만 활동이 가능하고 알을 까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이 있나봅니다. 벌레를 퇴치하는 회사인 CESCO 홈페이지에 초파리가 왜 생기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입니다.

 


▲ 출처 : 세스코 홈페이지, (http://www.cesco.co.kr)

 

외부를 통해서 집으로 들어온 날파리들은 일주일 정도가 되면 약 500개의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파리가 부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4시간이라고 합니다. 헉!

그렇다면 날파리 친구들 4마리가 사이좋게 저희 집에 들어왔다면, 일주일 뒤에 500 X 4 = 2000개의 알을 낳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놈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생존한다면 일주일 뒤에는 다시 2000 X 500 = 1,000,000 마리가 됩니다. (제가 아무런 다른 과학적 이유없이 산수로 짐작한 겁니다. ) 불과 4마리가 놀러와서 보름 만에 백만 마리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러니 사람들이 자연발생이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날파리가 싫으시다구요? 정답은 하나네요. '청소는 깨끗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면 혼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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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9시 즈음에 퇴근을 했습니다. 날씨도 선선하고 조금 걷고 싶어서 한 시간 정도되는 거리를 걸었습니다.

귀에는 이어폰으로 팟캐스트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를 듣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거리에는 인도와 함께 자전거 도로가 같이 있었습니다. 이어폰을 들으면서 별 생각을 안하고 있을 때 자전거가 갑자기 제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저는 몸을 움찔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옆에서 사람이 저를 앞지르면서 확 나아갈때도 순간 깜짝놀랐습니다. 사람이 있다는 인지를 하고 있지 못해서 였습니다. 그 순간에도 저는 몸이 순식간에 움츠려들고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왜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깜짝 놀라거나 무서운 생각이 들 때는 몸이 움츠려들고, 시선은 자동적으로 그 쪽으로 향합니다. 제가 하는 행동이 어떤 이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가 궁금하네요. 저도 모르게 순식간에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여기 저기 찾아보고, 간단하게 정리해 봅니다.


우선 제가 깜짝 놀라고 무서운 생각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뇌의 한 부분인 '편도체'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무서운 경험을 하거나 깜짝 놀랄 때 뇌의 '편도체'에 신호가 전달이 됩니다. '편도체'는 우리 뇌에서 공포를 담당하는 영역입니다. 낯선 상황에 있거나 불안감이 올라갈 때 사람들은 '편도체'의 영향을 받아서 낯선 상황에 적응을 할지, 그곳을 피할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편도체는 인간 뿐만아니라 포유류는 모두 가지고 있는 뇌의 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공포를 느끼는 역할을 하는 편도체가 손상을 입게 되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쥐의 편도체를 손상을 시켰더니, 쥐가 고양이를 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포를 느끼는 부분이 사라졌기 때문에 고양이를 봐도 겁을 먹지 않습니다.


겁을 먹지 않는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편도체에 대한 연구 중 다른 사례를 보면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초등학생들을 조사해본 결과 이들의 편도체 크기가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포나 불안감을 느낄 경우에는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뀐다고 하네요. 집으로 오는 길에 듣던 팟캐스트의 주제는 '싸이코패스' 였습니다. 팟캐스트의 진행자 중 한 명은 싸이코패스가 편도체가 손상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싸이코패스'는 자신들도 제대로 공포와 두려움을 알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도 동일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럼 깜짝 놀람, 두려움, 공포와 함께 동반되는 자동반사적으로 옴츠리는 행동,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순간의 한기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뇌의 한 부분인 '편도체'가 두려움, 공포를 인식을 했으면 우리 몸은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 중에 두려움을 느낄 때 관여하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됩니다. 교감 신경은 보통 화가나거나 두렵울 때 활성화되는 신경으로 위급한 상황일 때 대처하는 기능을 합니다.  


▲ 그림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렇다면 제가 궁금했던 게 조금은 풀리는 거 같습니다.

자전거가 갑자기 제 옆을 지나갔을 때, 사람이 뒤에서 올 줄 몰랐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나를 지나갈 때 움찔하고 긴장했었던 이유는 교감신경이 활성화 되어서 였습니다. 즉, 그 순간 근육이 수축되고 혈관이 수축되면서 순간 체온이 낮아진 것입니다. 또한 식은 땀을 흘리고 땀이 증발하면서 열을 흡수해서 우리가 움찔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 심장 박동수의 증가, 동공 확대, 항문과 방광의 조임근의 수축 등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몸을 움찔하고 순간적으로 움츠리는 이유도 이렇게 과학적이고 인체 신비적인 부분이 숨어 있었습니다.


퇴근 길에 갑자기 생각났던 궁금증이었습니다. 그 궁금점을 해결하면서 '뇌'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 신체적인 현상, 시각적으로 보이는 무언가에 대해서 이렇게 풀어가는 장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이제 궁금한 것을 더 찾아내고 해결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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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감정 : '사랑'  B조르바



오늘 아침에는 걸어서 출근을 해볼까? 

1시간 정도의 거리를 퇴근 시간에는 몇 번 걸어보았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는 아침에는 처음 걸어 본다.

거리는 버스에서 보아오던 출근 길과는 사뭇 다르다.

자전거 도로에는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등교 시간이 9시로 바뀌면서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한 시간을 걸어가면서, 저절로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간다.

회사에 거의 다다랐을 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손에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걸어 간다.

장미꽃은 다듬어지지 않았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학교 가는 길에 빨간 장미를 보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각나서, 바쁘게 한 송이를 꺾어가는 듯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젊음과 풋풋함이 그리워지고, 부럽기도 하다.




최근에 강신주의 『감정 수업』 처럼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출근 길에 본 빨간 장미 한 송이에서 '사랑' 이라는 단어로 이어졌다.


사랑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남녀 간의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하나였는데 지금과 마찬가지로 서로 자존심을 세우고 다투어서 제우스가 나눌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서로를 더 찾아 헤매이는 듯 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익숙해지기 오래 전부터 이미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전에 어디선가, 어쩌면 전생에서, 또는 꿈에서 만났던 것 같기도 하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원래 우리와 하나였다가 떨어져나간 우리의 "반쪽"이기 때문에 이런 익숙한 느낌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태초에 모든 인간은 등과 옆구리가 둘에, 손과 다리가 넷, 하나의 머리에 두 얼굴이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자웅동체 였다. 이 자웅동체들은 워낙 막강하고 자존심도 강해서 제우스는 이들을 남자와 여자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모든 남자와 여자는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간 반쪽과의 결합을 원하게 되었다.   


 - 알랭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어릴 때 만난 반쪽(반쪽은 정말 반쪽인지 아닌지 찾기가 쉽지 않다.) 과는 많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사랑을 한다.

그래서 소중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래서 잊지 못한다.

하지만, '어리다'는 표현보다는 '젊다'라는 표현이 입에 달라붙는 시기가 오면,

사랑이라는 표현이 조금 다르게 다가오게 되고,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서는 배워야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의 능동적 성격은, 준다고 하는 요소 외에도, 언제나 모든 사랑의 형태에 공통된 어떤 기본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다.

(중략)

만일 사랑의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은 아니다. 존경은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이와 같이 존경은 착취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존경은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존경하려면 그를 잘 '알지'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보호와 책임은 지식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면 맹목일 것이다. 지식은 관심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허할 것이다. 지식에는 여러 층이 있다. 사랑의 한 측면인 지식은 주변에 머물지 않고 핵심으로 파고드는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을 그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이다. 나의 취향에 맞게 고치려는 것이 아니고,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된다.

잘못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요소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1개월 간 데이트 폭력 집중신고기간 중에 무려 1,279건의 피해가 접수되었다. 

이 중 61.9%는 폭행 및 상해, 17.4%는 감금, 협박, 5.4%는 성폭력으로 신고가 되었으며 심지어 2건은 살인 및 살인미수 였다.


캠페인의 표어는 '너는 사랑이라 부르고 나는 폭력이라 부른다' 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은 찾아 볼 수 없다. 

데이트 폭력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고, 우리는 말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책 제목 그대로, 이제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한 번 쯤 생각해보자.

태어날 때 부터 우리는 자식으로서 부모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어느 덧 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부모가 되었다.

부모 자식 사이에는 과연 어떤 사랑의 자세가 필요할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끔 "아빠(엄마) 인생은 아빠(엄마)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야" , "내 인생에 상관하지 마" 같은 대사가 튀어 나온다.

이 말은 너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인생이 자식의 인생이 되기는 싶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자식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삶은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완전히 변해 버린다. 

세상의 중심은 아이들을 향하고, 그들의 삶은 조금씩 우선 순위가 밀려간다.

어느 순간 내가 아버지가 된 다음에야 알았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태어날 때 부터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당신들에게도 엄마, 아빠라고 부르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꿈을 품고, 사랑을 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이가 무엇인가를 했기에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이미 기쁘다고 전해야 한다. 이상적인 모델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그 대신 내 눈앞에 있는 아이에게서 출발해야 한다.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을 기준으로 현실 속의 아이를 보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기준으로 삼고 현실 속의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쁨이다. 그 아이의 어떤 모습이라도 좋게 보인다. 바로 그런 느낌을 아이에게 말로 전해주는 것이 용기를 주는 것이다.


"나이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아이가 몇 살이든 대등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해요. 아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듯 칭찬하는 건 아예 그만두세요."


- 기시미 이치로,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中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육아에 대한 일이 항상 고민이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니 아이를 대해야 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아들러는 말한다. 나이와는 관계가 없다고. 아이가 몇 살이든 대등하다고 한다.

이 구절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닿고 반성을 했던 부분이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내 자식이더라도 개인적인 인격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버지라고 강요하고, 내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님을 내가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재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진짜' 사랑이다.


남녀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더 나아가 타자에 대한 사랑.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본능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본능에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조금 더 대화하고, 조금 더 배워야 겠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로 '내 안의 감정 : 사랑' 편의 문을 닫습니다.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사랑이 다른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이 커지기 시작하면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주고 싶은 충동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야 하네.'


사랑이라고 불리는 그것

두 사람의 것이라고 보이는 그것은 사실

홀로 따로따로 있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전개되어

마침내는 완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이 오직

자기 감정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자기를 연마하는 일과가 되네'


서로에게 부담스런 짐이 되지 않으며

그 공간과 거리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두 사람이 겪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혼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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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바쁘면 바쁠수록 무엇보다 여유를 찾아야 하고, 시간이 없으면 없을 수록 시간을 만들어서 자기만의 즐거움을 단 몇 분이라도 누려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을 하나씩 되새겨보면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나 조직의 보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일에 대해서 성급하지 않다. 그들은 항상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마음은 분명히 바쁘다는 것을 알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심지어 평온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들이 성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성급해서 일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루의 시간은 곰곰이 곱씹어 보면 우리는 하루 종일 일을 한다고 실제로 어떤 일을 실질적으로 해내는 시간은 그중에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8시간이라는 업무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8시간 동안 계속 집중해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분명 그런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기는 힘들다. 8시간동안 느슨하게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하는 시간의 적어도 10%, 많게는 30% 가량은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결을 해야하는가? 등을 생각하면서 머릿속에서 정리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일을 풀어야 하는지 실마리가 생긴다. 그리고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도움을 청할 때는 반드시 자기가 생각했던 방식과 풀리지 않는 점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머릿 속에서 나만의 가상 시나리오가 그려져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내 일이 아니지만 나와 엮여있는데 이해가 전혀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감이라도 잡아야 한다. 용어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그림을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내가 일을 할 때 스스로 답답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몇 자 끄적였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쓴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건 아무리 일이 바쁘고, 자기 시간이 없더라도 억지로라도 자기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별다른 취미는 없다. 그런데 읽고 쓰는 건 좋아한다. 그리고 피곤하더라도 짧은 어떤 글을 쓰면 나름의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됨을 느낀다. 무언가 머릿속에 고여있던 생각들을 글로 쏟아내고 그 날의 일들을 글로 뱉어내면 개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루의 지친 피로가 풀린다. 


누군가는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른 이들은 운동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의 틈새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 일이 바빠서 늦게 끝나고 바로 잠이 들어야 한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어야 한다. 이건 분명 정신적으로 지치게 하는 것을 막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경에 의해 스스로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시간을 쫓기는 사람들, 기꺼이 시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 아프지 않다. 그래야 아깝지 않다. 그래야 삶이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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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노자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관련된 책도 여러 권 사서 읽었다.

그리고 조금 더 노장사상에 대해서 깊이 알려고 장자와 관련된 책도 한 권 샀지만,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책꽂이에 고이 꽂혀 있었다. 그때는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책이라는 게 신기하게도 똑같은 내용이고, 읽는 이도 변함이 없지만, 어느 시점에 읽느냐에 따라서 가슴 저림의 강도가 제각각이다. 어제 갑자기 이 '장자'가 눈에 들었고, 처음에 잘 읽히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기 시작했다. 지금이 이 책을 읽을 때인가 보다.


아직 책의 반 정도도 읽지 않았지만,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어서 지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남겨두고 싶었다. 여전히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막 쏟아내야 겠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현재 현암사에서 출판한 『장자』를 읽고 있는데, 어떤 한 가지가 생각이 났다.

'현상과 사건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그것에서 발견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하찮은 무언가가 다른 이에게는 삶을, 세상을 바꿀 어마어마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용도를 정해서 만들어서 당연히 그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하면 전혀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현상과 사건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해소될 때 까지 파고 들고, 그 궁금증을 끊임없이 파생시키고 결국 모든 것으로 확장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통찰력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내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도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다르게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변기가 미술작품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다른 하나 혁신적인 자기 변화다. 장자에서 유명한 이야기인 호접몽을 잠깐 적어본다.


어느 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엇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자와 나비 사이의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변화'라 한다.


여기에 대한 해석본이다. 

여기서 우선 주목할 것은, 앞에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꿈이 꿈인 것을 꿈이라고 깨달았다는 것은 그 꿈에서 깨어났다는 뜻이다. 지금 그 꿈에서 깨어난 상태를 다시 꿈꾸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이른바 그 깸에서 다시 한 번 깨어났다는 뜻이다. 이렇게 깸에서 깨어나는 것이 큰 깨어남, 대각이라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장자는 대각한 사람이다.


장주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주가 된다. 변혁을 하고 그 변혁 속에서 다시 변혁을 한다. 깨어나면서 그 깨어남에 갇혀있었던 상태에서 다시 깨어난다. 장주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주가 되는 제약이 없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만 자연스럽다.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을 그냥 초월해버리니 그래서인지 숨막힘이 없다.


장자의 첫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북쪽 깊은 바다' 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이라 하였습니다. 그 등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번 기운을 모아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몇 천리가 되는 큰 물고기가 있다. 그런데 그런 물고기가 다시 몇 천리의 새로 변한다. 이 책에서는 이 부분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이 마음에 든다.

거대하고 그지없는 물고기나 붕새도 본래는 알이었다. 그렇게 큰 것들도 조그만 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모두 이런 씨알을 품고 있다. 우리 속에 있는 이런 무한한 가능성을 자각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제 다시 생각을 정리해봐야 겠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은 동일하다. 하지만 개개인이 어떤 시각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궁금해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물어야하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금의 처지에 대해서 불만족스럽다고 한탄하고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 나비가 장주가 되고 장주가 다시 나비가 되고, 거대한 물고기 곤이 거대한 새 붕으로 변하듯이 어떤 사정때문에 우리가 변화할 수 없는 것이 없다. 항상 모든 일을 할 때 나오는 제약은 던져버려라. 과감히 나비로 날아가고, 과감히 붕으로 변하면 된다.


정말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때로는 이런 게 필요할 때가 있다. 변하지 못할 것은 없다. 생각이 바뀌면 된다. 

그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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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그렇게 책만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책은 수단일 뿐인데, 읽는 것에 너무 치우쳐져서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이 빼앗겨 왔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이렇게 내가 살아가면서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머리에서만 머무르고 만족하는 것이 아닌 삶 속으로 깊숙하게 스며들게 만들고 싶다.


오늘 생각하고 싶은 건 '갈등'에 대해서다.

최근 들어 갑자가 '욱!' 하는 게 늘어났다.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스스로 분노 조절을 하지 못했다. 분노할 일도 아니었는데, 내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불만족스러운 게 많았나보다. 무엇인가 불안했나 보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와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갈등이 풀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해보았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물음이었다. 갈등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일이 발생한 후에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다. 나도 갈등 해결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 나에게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욱!' 하고 튀어나가는 것 보다 평소에 조금은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야 겠다.


나는 그 방법을 두 가지로 생각한다. 이 두가지는 단지 나열되는 두 가지가 아니고 항상 붙어야 있어야 한다. 바로 '침묵과 대화'이다. 어쩌면 정반대의 단어의 조합인데 이것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갈등 해결 방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거슬리는 무언가에 대해서는 '욱!' 하고 입에서 좋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보통 갈등, 싸움의 원인은 바로 생각하지 않고 감정으로 튀어나온 그 첫 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게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감정이 앞서서 툭 나오기 쉽지만, 힘들지만 노력해야 하는 게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 바로 반응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게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침묵하자. 옛 말에도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선 감정에서 이성으로 넘어오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 간격은 상당히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대부분 갈등이 심해지는 경우가 바로 이 간격을 버티지 못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이때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옳은지, 내가 하려는 행동이 이 갈등을 해결하게 하는 것인지, 지금의 행동이 과연 내가 바라는 것인지, 지금 행동하고 나면 바로 후회하지는 않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참아내고, 생각을 하자. 그리고 정리하자. 그렇게 감정에서 이성으로 현명하게 전환하자. 이 부분은 더 큰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내 행동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다음은 갈등의 해결이다.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결국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감정을 건드린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하고, 갈등이 생긴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럴 때는 자기의 의견이 맞다고 고집하는 것이 아닌,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너의 의견에 대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이런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때도 분명히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해준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서, 토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자 갈등의 배경이기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염두해두어야 한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분명히 명심해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갈등이 생긴 이유는 분명이 우리들 간의 더 나은 방향을 위해서라는 점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갈등을 위한 갈등이 아닌 서로를 위한 갈등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갈등이 없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게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발생했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고, 다음에는 똑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되새길 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갈등은 해소되어야 한다. 

나와 우리를 위해서...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잃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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