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관리의 모습을 한 유령이 나타납니다. 유령은 사람들이 걸치고 있는 '외투'를 벗겨가죠. 사람들은 그가 국에 근무하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임을 알아봅니다.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모든 사건은 제목 그대로 <외투>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아카키 아카키비치는 정서 업무를 맡고 있는 9급 문관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무에는 충실했지만, 존재감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죠.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날 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아서 페테르부르크의 추운 겨울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해 재봉사인 페트로비치를 찾아가 수선을 부탁합니다. 하지만 너무 낡아 수선조차 힘들어서 새롭게 외투를 맞추게 되죠.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는 최대한 돈을 아껴서 외투를 살 돈을 마련하려 합니다. 눈물겹습니다.
저녁마다 마시던 차를 끊고, 저녁마다 켜던 촛불도 켜지 않고,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주인 여자의 방으로 가서 그녀가 켜놓은 촛불 밑에서 하기로 했다. 길을 걸을 때는 구두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가능한 한 가볍고 조심스럽게 거의 발끝으로 돌과 판석을 밟고, 속옷이 빨리 해지지 않도록 세탁부에게 가능하면 속옷 빨래를 덜 맡기고, 집에 돌아오면 매번 속옷을 벗고 아주 오래됐지만 잘 보관해온 목면 실내복만 걸치기로 했다. (p33)
새로운 외투를 걸친 날은 아마 아카키 아카키비치 생애에서 가장 장엄한 날이었을 겁니다. 새 외투를 입고 국으로 출근을 합니다. 동료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파티에도 참석하게 됩니다.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진열장의 여자그림을 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여자를 뒤따라 갈까하는 충동도 생깁니다. 외투 하나에 자신감이 생겼나봅니다.
그런데 밤 늦은 시간, 광장에서 강도를 만나고 외투를 빼앗깁니다. 누군가에는 단순한 외투일 뿐이지만 아카키 아카키비치에게는 어쩌면 삶의 목표일지도 모르는 그런 '외투'였습니다. 이제 외투를 찾아 나섭니다. 처음에는 강도를 당한 광장 끝에 있던 입초 근무 경관에게 찾아가지만 날이 밝으면 파출소장을 찾아가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찰서장을 찾아가라고 하지요. 그래서 경찰서장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경찰서장은 아카키 아카키비치가 그 시간에 무엇을 했으며 불법적인 장소를 이용했는지 여부를 조사합니다. 아카키 아카키비치의 동료 관리들은 직접 고관을 찾아가라고 조언합니다.
이 고관은 전에는 별 볼일 없다가 최근에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그는 원래 착한 사람으로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고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관이라는 지위는 그를 혼란 속에 빠뜨렸죠. 그는 자신보다 직위가 낮은 사람들에게는 "엄격, 엄격 또 엄격"이라는 말을 되풀이 했고, 그의 말에는 보통 세 문장 "어떻게 감히 이럴 수 있소?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소? 누가 앞에 있는지 알고나 있소?" 이 들어있었습니다.
아카키 아카키비치는 고관을 만납니다. 고관은 다른 관리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자신을 찾아온 아카키 아카키비치에게 언성을 높여 말합니다.
"당신이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아오?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나 아오? 당신은 알고 있소? 알고 있느냐고? 내가 당신에게 묻고 있잖소." (p57)
아카키 아카키비치는 완전히 넋이 나가 비틀거렸고 온몸이 떨려 서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입을 벌린채 길을 잃고 눈보라 속을 걷다가 편도선이 붓게 되고 몇 일을 앓다가 안타깝게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몇 일 후 매장이 되고 그의 유품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가 맡고 있던 국의 정서 업무도 어느새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됩니다. 그는 흔적도 없이 세상 속에서 사라집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카키 아카키비치와 고관 모두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우리에게 둘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거 같아서 불편합니다. 자신의 차, 옷, 가방이 마치 자신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경계를 긋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의 윗사람과 동료들에게는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거침없는 폭력과 무분별한 권위의식을 세우려하는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제 '외투'는 어떤게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제 삶의 목적이 '외투'를 쫓는 것으로 그쳐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됩니다.
제 '감투'는 어떤게 있을까요? 저도 모르게 가해지는 폭력이 있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p10
이 관리의 성은 바시마치킨이었다. 명칭만 봐도 이 성은 바시마크(목이 짧은 장화)에서 유래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에, 어떻게 바시마크에서 유래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심지어 처남까지도 바시마치킨 사람들은 모두 장화를 신고 다녔고, 일 년에 세 번 정도만 밑창을 갈았다. 이 관리의 이름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였다.
늙은 산모가 말했다. "아마도 이 아이의 운명인가봐요. 그렇다면 차라리 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게 낫겠어요. 아버지 이름이 아카키였으니 아들 이름도 아카키로 해요." 이렇게 해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란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러시아인의 성명은 이름, 부칭, 성으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에 아카키는 이름, 아카키예비치는 부칭인데 이는 아카키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p12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대머리에 제복을 입고, 이미 관리가 될 준비를 완전히 한 채로 세상에 태어났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누가 서류를 갖다놓았는지, 그 사람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지 살피지도 않고 그저 서류만 바라보며 일을 맡곤 했다.
p14
단지 농담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하거나 사람들이 팔꿈치를 밀치며 일을 방해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 그런데 그의 말과 목소리에는 이상한 무언가가 있었고, 강한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최근에 국에 들어온 한 젊은이는 다른 동료들을 따라 그를 조롱하려다 마치 뭔가에 찔리기라도 한 듯 갑자기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그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았고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떤 이상한 힘 때문인지 그는 지금껏 점잖은 사교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알고 지내던 동료들과도 멀어졌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가장 즐거운 순간에, 이마가 벗어진 작달막한 관리가 가슴을 지르는 듯한 목소리로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 젊은이의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말 속에서 "나는 당신의 형제요"라는 또다른 말이 울렸다. 그러면 이 가엾은 젊은이는 한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고, 그후 평생 동안 인간에게 비인간적인 면이 얼마나 많은지, 세련되고 교양있는 사교계 사람들에게조차, 오 하느님, 사교계에서 고결하고 정직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에게조차 무례한 면이 얼마나 많이 숨어 있는지를 보면서 여러 번 몸서리를 쳤다.
p15
그는 몇몇 글자를 특별히 좋아했는데, 그 글자들을 발견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고 슬쩍 웃음을 짓기도 하고, 눈을 깜박이기도 하고, 입술을 움찔거리기도 했다. 그가 펜으로 무슨 글자를 쓰는지 그의 얼굴에서 모두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p17
그는 사람들이 창문으로 온갖 쓰레기를 버리는 바로 그 순간에 창문 밑을 지나가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이 때문에 그의 모자 위에는 늘 참외나 수박 껍질 같은 잡동사니가 얹혀 있었다.
p19
페테르부르크에는 연봉 사백 루블이나 그 정도 급료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강력한 적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북쪽의 한파다.
p20
길에서 꽁꽁 얼어붙은 모든 직무 능력과 재능이 녹을 때까지 현관 수위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다.
p21
실제로 그 외투의 모양이 기이하기도 했다. 옷깃을 잘라내 외투의 다른 부분에 덧대느라 외투 깃이 해마다 점점 줄어든 것이다.
이 재봉사(페트로비치)에 대해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소설에서는 모든 인물의 성격을 철저하게 묘사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여기서 페트로비치를 살펴보기로 하자.
p23
페트로비치가 화를 내는 바로 그 순간에 도착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는 페트로비치가 술에 취해 약간 허세를 부릴 때, 혹은 그의 아내 표현대로 "애꾸눈 악마가 술에 푹 절었을 때" 뭔가 주문하기를 좋아했다. 그런 상태일 때면 페트로비치는 대개 아주 즐겁게 양보하고 가격에 합의했으며, 매번 인사를 하고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사실 그러고 나면 그의 아내는 찾아와 남편이라는 작자가 술에 취해 헐값에 일을 맡았다고 징징댔다.
페트로비치가 하나뿐인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p24
"그게 뭐죠?" 이렇게 말하는 동시에 페트로비치는 외눈으로 옷깃부터 소매, 등, 옷자락, 단춧구멍까지 그의 제복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 모든 것이 원래 그의 일이기 때문에 그에겐 아주 익숙했다. 이게 바로 재봉사의 습관이다. 그가 사람들을 만나면 맨 처음 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옷을 살펴보는 일이다.
페트로비치는 실내복 같은 외투를 집어 우선 책상 위에 펴놓고 오랫동안 살펴보다 고개를 젓더니 창 쪽으로 한 손을 뻗어 어떤 장군의 초상화가 그려진 둥근 담배값을 집었다. 손가락으로 하도 만져서 얼굴이 그려진 자리가 뚫어졌고, 그 구멍에 네모난 종잇조각을 붙여놓아서 어떤 장군인지 알 수 없었다.
p26
"어쩔 수가 없어요. 양복지가 완전히 삭았어요. 추운 겨울이 오면 양말로는 보온이 안 될 테니 이걸로 각반이나 만들어 쓰는 게 좋을 겁니다.
p28
거리로 나온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이런. "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그러고 나서 잠시 침묵하다 덧붙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어. 정말이지 이렇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어."
p32
여자재봉사에게 셔츠 세벌과 출판되는 글에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속옷도 두 벌 주문해야 했다.
우선 독자는 돈의 절반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일 루블을 쓸 때마다 뚜껑에 돈을 넣는 구멍이 뚫린, 열쇠로 잠근 작은 상자에 동화 반 코페이카를 넣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반년에 한 번씩 그는 모인 동전의 총액을 세어보고 그것을 은화로 바꾸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고, 몇 년 동안 쌓인 총액이 사십 루블이 넘었다. 이렇게 절반은 수중에 있었다.
p33
저녁마다 마시던 차를 끊고, 저녁마다 켜던 촛불도 켜지 않고,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주인 여자의 방으로 가서 그녀가 켜놓은 촛불 밑에서 하기로 했다. 길을 걸을 때는 구두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가능한 한 가볍고 조심스럽게 거의 발끝으로 돌과 판석을 밟고, 속옷이 빨리 해지지 않도록 세탁부에게 가능하면 속옷 빨래를 덜 맡기고, 집에 돌아오면 매번 속옷을 벗고 아주 오래됐지만 잘 보관해온 목면 실내복만 걸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엔 그런 절약하는 생활에 적응하기가 조금 어려웠지만, 어쩐지 차츰 익숙해졌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심지어 저녁마다 굶는 게 완전히 습관이 되었다. 그 대신에 그는 앞으로 생길 외투를 늘 마음속에 그리며 정신적인 양식을 섭취했다. 이때부터 그는 존재 자체가 어쩐지 더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 같았고, 어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고, 혼자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어떤 인생의 반려가 그와 함께 인생길을 가기로 동의한 것 같았다. 이 인생의 반려는 다름 아닌 두툼하게 솜을 두고 닳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바로 그 외투였다.
p34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고 외투가 완성될 날이 마침내 오리라고 생각하며 그는 언제나 만족해서 돌아왔다. 일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예상외로 국장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보너스로 사십 루블이나 사십오 루블이 아니라 육십 루블을 주기로 결정했다. 국장이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새 외투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감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일이 그렇게 풀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여윳돈 이십류블이 갑자기 생긴 것이다. 이 덕분에 일의 진행이 빨라졌다. 두 세달 정도를 더 굶주른 끝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정말로 팔십 루블을 얼추 모았다. 평소에 늘 평온하던 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p35
정확히 무슨 요일인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페트로비치가 마침내 외투를 가져온 그날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생애에서 가장 장엄한 날이었을 것이다.
p37
페트로비치는 그의 뒤를 따라 거리에 서서 멀어져가는 외투를 다시 한번 오랫동안 바라보았고, 일부러 샛길로 들어가 굽은 골목을 따라 아카키를 앞질러 가서 다시 거리로 달려 나와 반대쪽에서, 그러니까 정면에서 자신이 만든 외투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p42
그는 환하게 불을 밝힌 가게의 유리 진열장 앞에 멈춰 서서, 장화를 벗고 미끈한 다리 한쪽을 다 드러낸 아름다운 여자가 그려진 그림을 호기심있게 바라보았다. 그림 속 여자의 등 뒤로, 구레나룻에 입술 밑에는 작은 삼각 수염을 멋지게 기른 어떤 남자가 다른 방문에서 머리를내밀고 있었다.
p46
몸 전체를 이상하게 움직이며 번개처럼 휙 지나간 어떤 여자를 왠지 모르게 갑자기 뒤쫓아 가려고 했다.
p47
그의 심장이 뭔가 안 좋은 일을 예감이라도 한 듯, 그는 어떤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광장으로 들어섰다.
광장 끝까지 다 왔는지 보려고 눈을 뜨자. 뜻밖에도 바로 앞에 콧수염이 난 어떤 사람들이 서 있는게 보였다. 그는 도대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건 내 외투야!" 그들 중 하나가 그의 멱살을 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사람 살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바로 그 순간 다른 사람이 관리의 머리통만 한 주먹을 그의 입에 들이대며 "소리만 쳐봐!"하고 말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외투가 벗겨지고 무릎에 발길질을 당해 눈 위에 벌렁 나자빠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p50
조금이라도 남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그가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서장은 외투 강탈 사건을 어쩐지 매우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사건의 본질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왜 그렇게 늦게 귀가했는지,어떤 지저분한 곳에 들른 것은 아닌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완전히 당황했고, 외투 사건이 적절한 절차를 밟게 될지 어떨지 알지도 못한 채 서장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p51
이 고관은 최근에야 중요한 인물이 되었고, 그 전에는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어쨌든 그 고관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신의 중요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출근할 때 부하 직원들이 계단에서 자신을 맞이하도록 했고, 감히 그 누구도 자기를 직접 찾아오지 못하게 했으며, 모든 것이 엄격한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했다. 즉, 14급 관리는 12급 관리에게, 12급 관리는 9급 관리나 적당한 다른 문관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식으로 절차를 거쳐야만 자기에게 보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성스러운 러시아에는 이미 모든 것을 모방하는 병이 퍼져 모두가 상관을 약 올리면서 서툴게 흉내 냈다. 심지어 어떤 9급 관리는 조그만 부서의 책임자가 되자마자 즉시 칸막이를 치고 자신의 특별한 방을 만들어 '집무실'이라 부르고, 문 앞에 붉은 옷깃에 금실을 단 일종의 안내원을 세워놓고 방문객이 올 때마다 문을 열어주게 했다고 한다. 그 '집무실'은 평범한 책상 하나를 겨우 들여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고관'의 행동방식과 습관은 확고하고 위풍당당했지만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의 행동방식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엄격성이었다. 그는 보통 '엄격, 엄격, 또 엄격'이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마지막단어를 말할 때는 상대방의 얼굴을 아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곤 했다.
p53
그가 부하직원들에게 건네는 평범한 말에도 엄격함이 배어 있었고, 말은 거의 세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떻게 감히 이럴 수 있소?" 그는 원래 마음이 착한 사람으로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고 친절했으나, 고관이라는 지위가 그를 완전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고관이 된 후로 그는 어쩐지 혼란에 빠져 길을 잃더니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기와 지위가 같은 사람들과 있을 때,그는 꽤 괜ㅊ낳고 아주 점잖은 사람이었으며 여러 면에서 전혀 어리석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보다 한 직급이라도 낮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임에서는 아주 졸렬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도 딱했고, 그 자신조차 시간을 좀더 재밌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움을 느낄 정도였다.
p54
고관은 오래전에 관직을 떠나 시골에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들을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는지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p55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겸손한 모습과 낡은 제복을 본 고관은 갑자기 그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현재의 자리와 고관직을 받기 일주일 전부터 방에서 혼자 거울 앞에 서서 일부러 연습하여 익힌 단속적이고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
고관은 왠지 모르게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그런 태도가 허물없이 구는 것처럼 느껴졌다.
p57
"당신이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아오?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나 아오? 당신은 알고 있소? 알고 있느냐고? 내가 당신에게 묻고 있잖소."
p59
다만 두서없는 말과 생각이 하나같이 똑같은 외투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마침내 가련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숨을 거두었다. 그의 방법도, 그의 물건들도 봉인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상속자가 없었고, 둘째, 유산이라야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위 깃털 펜 한 묶음, 관청에서 사용하는 백지 한 뭉치, 양말 세 켤레, 바지에서 떨어진 단추 두 세개, 그리고 이미 독자가 알고 있는 실내복 같은 낡은 외투가 전부였다.
이 모든 것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백건대,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조차 이것엔 관심이 없다.
p60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없는 페테르부르크는 마치 원래붜 그런 사람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변함이 없었다. 어느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애정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존재, 심지어 흔한 파리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핀에 꽅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자연관찰자의 주의조차 끌지 못한 존재가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 것이다. 동료 관리들의 조소를 묵묵히 견뎌낸 그 존재는 어떤 특별한 일도 없이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런 존재에게도, 비록 생이 끝나기 직전이었지만 외투의 모습을 한 명랑한 손님이 갑자기 나타나 짧은 순간이나마 가련한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황제나 세계의 지배자에게도 닥치기 마련인 불행이 잔인하게 그를 덮쳤다. 그가 죽은지 며칠이 지나 즉각 출두하라는 명령서를 가지고 국에서 경비 한 사람이 그의 아파트를 찾아왔다. 그러나 경비는 별 소득 없이 돌아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더는 출근할 수 없다고 보고해야 했다. "어째서?" 라는 질문에 겨ㅓㅇ비는 "그게, 그는 이미 죽었고 나흘 전에 매장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국에서도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날 훨씬 키가 큰 새 관리가 이미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곧은 필체가 아닌 훨씬 비스듬하고 삐딱한 필체로 정서를 하기 시작했다.
p62
그가 죽고 나서 며칠 동안 소란스러운 삶을 살 운명이었음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고, 우리의 슬픈 이야기는 예기치 않게 환상적인 결말을 맺게 된다.
p65
경관이 오른쪽 콧구명을 손가락으로 막고 왼쪽 콧구멍으로 코담배 반 줌을 들이마시기도 전에, 유령이 재채기를 하도 세게 하는 바람에 담배 가루가 날려 세 경관의 눈에 들어갔다. 그들이 주먹으로 눈을 비비는 사이 유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