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었다. 그의 작품 중에 두번째로 접한 책이다. 처음은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된 작품 《노인과 바다》를 통해 만났다. 그의 후반기 작품을 먼저 읽고 나서 그의 초기작인 책을 읽었다. 한참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만났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두 작품은 상당히 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면 다른 작가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름은 그의 작품보다 더 유명하다. 극적인 삶을 살았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느낌을 준 두 작품 때문에 그의 다른 작품들이 더 궁금해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에 대한 궁금점도 늘어만 간다.

 

문학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서 읽히지만, 때로는 그 시대와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문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는 듯 하다.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고 나서 재미있게는 읽었지만 왜 이 책이 그렇게 찬사를 받는지 알지 못했다. 작품 해설과 다른 책들을 통해 1920년대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비문화에 대해 알고 나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배경적 지식이 없으면 충분한 감동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배경지식이 아니라 소설 그 자체만을 읽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배경 지식이 중요함을 느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읽고, 다음에는 배경지식을 찾고 다시 곱씹어보는 형식으로 읽게 되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역시 1920년대 미국 소설이다. 당시의 젊은이들을 'Lost Generation' 이라고 칭한다. 과거에서 부터 이어져왔던 많은 사상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목적을 상실했고, 그저 술이나 마시고, 소비문화에 젖어 들어갔다.

 

이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라고 하면

"1920년대 미국인들이 프랑스 파리로 와서 그곳의 문화를 즐기고, 술을 마시고, 이성간에는 최근 유행하는 some을 탄다. 그러다가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기로 하고 그곳에서 다시 술 마시고 낚시하고 투우를 즐기는 이야기" 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당시의 배경을 모르면 이렇게 거칠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책의 내용보다는 주요등장인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잠시 그들을 소개한다.

 

제이크 반즈
- 소설 속에서 '나'로 등장하는 화자이다. 1차 세계대전 때의 부상으로 성불구가 되어버린 미국인 신문기자


레이디 애슐리 브렛
- 전쟁 중 특별지원 간호사가 된 영국의 귀족 부인, 제이크 반즈를 사랑하게 되지만 제이크 반즈의 성불구로 육체적인 사랑은 하지 못한다. 후에는 마이크와 결혼을 약속하기도 하고, 로버트 콘과 관계를 맺기도 하며, 어린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와도 사랑에 빠진다.

 

로버트 콘

- 대학시절에는 미들급 챔피언, 대학 졸업후 첫번째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 셋이 생겼다. 부유한 아내는 다른 남자와 만나게 되면서 나가고 후에 프랜시스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미국에서 유럽으로 한다. 그때 2년 동안 파리에 머물었는데 이 시기에 장편소설을 쓴 작가이다. 후에 브렛을 좋아하게 된다

 

빌 고턴

- 제이크 반즈의 친구로 작가로 어느 정도 성공을 하여 돈을 벌었다. 여행 차 반즈를 만나고 그와 스페인 여행에 동행한다.

 

마이크 캠벨

- 브렛과 결혼을 하려는 사내로 사업을 하다가 파산을 하게 된다.

 

페드로 로메로

- 스페인의 젊은 투우사로 다른 투우사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으며 브렛이 나중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그들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자주 들르는 커피숍과 바에서 그들은 어떤 옷차림과 자세로 있었을까? 당시 거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궁금했다. 책을 읽고 나서 당시의 모습을 잠깐 찾아보기도 했다. 특히 작품 속의 브렛이 궁금했다. 어떤 패션의 여성이었을까? 책에는 그녀에 대한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p40

소매 없는 스웨터에 트위드 치마를 입고 머리는 사내아이처럼 빗질하여 뒤로 넘기고 있었다. 이런 유행은 하나같이 그녀가 처음 시작한 것이었다. 경기용 요트의 동체 같은 미끈한 곡선미를 지닌 몸매에 그런 스웨터를 입으니 곡선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트위드 치마에 소매없는 스웨터는 아니지만 당시 미국의 패션을 알아 볼 수 있는 사진을 잠깐 찾아보았다.


▲ 1920년대의 미국 패션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파리에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한다. 그들이 여행을 갔던 스페인의 산 페르민 축제는 어떠했을까? 궁금했다. 다른 나라의 축제 소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던 그 장면이 그려진다. 아마 1920년대도 지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책 속으로 돌아가서 팜플로나의 소몰이 축제 현장에 들어가본다. 그리고 나서 근처 바에서 압생트도 한 잔 해본다.

 


 

 

▲ 스페인 산 페르민 축제

 

책을 읽다가 책 속의 상황이 너무 부럽고 나 역시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적어둔 부분이 있다. 빌과 제이크가 낚시를 하다가 샘물에 담가놓은 포도주와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장면인데, 나중에 한 번 시원한 계곡이나 개울에 와인을 시원하게 해서 친구들과 함께 먹어 보련다.

 

p186

나는 샘물로 걸어가서 포도주 두 병을 꺼냈다. 병은 차가웠다. 나무 있는 데로 돌아오는 중에 술병에 이슬이 맺혔다. 나는 신문지 위에 도시락을 놓고 포도주 한 병은 마개를 따고 나머지 한 병은 나무에 기대 세워 두었다. 빌은  손을 닦으면서 올라왔는데 그의 광주리가 고사리로 불룩해져 있었다.

"어디 그 병 좀 봐." 그가 말했다. 그는 코르크 마개를 뽑은 뒤 병을 기울여 마셨다. "어휴! 두 눈이 다 짜릿해지는걸."

"어디 한 번 마셔 볼까."

포도주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왠지 녹슨 쇠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렇게 형편없는 포도주는 아니야." 빌이 말했다.

"차가워서 그런 거지." 내가 말했다.

우리는 조그마한 점심 꾸러미를 풀었다.

"닭고기군."

"삶은 달걀도 있어."

"소금은?"

 

책을 읽고 나서 뒷부분에 나오는 <작품해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은 Lost Generation 이지만 무조건적으로 방황하는 것이 아닌 희망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콘, 브렛, 마이크의 경우는 욕망과 알코올에 빠져있지만 제이크와 빌은 자신들의 중심을 잡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브렛이 투우사 청년 로메로를 보내주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p367

"난 이제 서른넷이야. 어린애들을 망치는 그런 화냥년이 될 생각은 없어."

 

투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거세된 소가 나오는데 거세된 소는 다른 소의 공격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직접 다른 소를 공격하지 않고 사나워진 소를 달랜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런 생소한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거세한 소와 성불구가 된 화자 제이크 반즈가 계속 무엇인가 연결고리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등장인물들은 제이크 반즈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때로는 친하게, 때로는 서로 반목을 하면서 지낸다. 그리고 항상 그 중간에 제이크 반즈가 있다. 이렇게 읽고 나서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지니 곱씹을 거리가 많이 생긴다. 이래서 잠시 떨어져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p204

"여간 재미있지 않지. 한 번에 한 마리씩 우리에서 내보내는데, 놈들이 울타리에 들어가면 거세한 수소들을 같이 넣어 서로 싸우지 않게 하는 거야. 황소들이 거세한 소들을 향해 덤벼들지만 거세한 소들은 마치 노처녀처럼 놈들 주위를 빙빙 돌면서 달랜단 말이야." 내가 말했다.

"거세한 소들을 떠받지 않아?"

"떠받지. 어떤 때는 곧바로 달려가 죽이는 일도 있어."

"그럼 거세한 소들은 아무 반항도 못한단 말이야?"

"못해. 그저 친구가 되려고 할 뿐이지."

"뭣 때문에 그 안에 넣어 두는 거야?"

"황소들을 달래서 돌담을 들이받아 뿔을 부러뜨리거나, 또는 서로 떠받아 죽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지."

 

마지막으로 내용을 정리하려고 책을 다시 한 번 훑어보는데 다음에는 이 작품에서 이 친구들이 바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술이 어떤게 나오는지도 한 번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배경이 술을 먹는 장면이라 어떤 술들이 나오나 한 번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이제 문학을 읽을 때 조금 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읽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건, 장소, 시간, 문화를 연결하고 눈으로 활자를 읽고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모든 감각의 촉수를 바짝 세우고 읽어야 겠다. 예전에 읽었던 《노인과 바다》도 다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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