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갈수록 궁금한 게 많이 생긴다. 무엇인가 조금 알게 되면 반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무엇이 궁금하고, 내가 속해 있는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서 돌아가는지, 내가 먹고, 자고, 입고하는 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서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또 빠져나가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왜 이렇게 잔인한지, 운명은 존재하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신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삶이란 풀지 못하는 궁금함을 자기 나름대로 풀어나가면서 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과연 나는 어떤 사회 속에서 살고 있을까?

운명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태어난다. 누군가는 복지국가에서 따뜻한 부모 속에서 자라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태어나자 마자 먹을 것이 없는 빈곤한 국가에서 태어나서 가녀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지도 모른다. 이런 불합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세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 뜻대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올바른 삶일까, 아니면 자신은 위험하고 힘들더라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올바른 삶일까.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풀리지 않고 답이 없는 질문을 다시 해 본다.

얼마 전에 <제주4.3을 묻는 너에게>를 읽은 다음에 느낀 감정과 유사하다. 일부러 이런 작품을 찾아 읽은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 손에 잡히게 되었다. 이런 책들이 나를 선택해왔다. 기억하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 뒤돌아보라고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는 작가 한강이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던 분들과 유가족들을 인터뷰하고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들여 내놓은 작품이다. 작품을 쓰는 내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 슬픔은 책에 고스란히 닮겨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고스란히 가슴을 건드린다. 어떻게 이렇게 타자의 아픔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작가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된다.

 

작가는 인터뷰를 하면서 한 유가족에게 글로 써도 되냐고 물어 봤다. 유가족은 말한다.

 

p211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기에 나는 잘 모르는 사건이다. 반대로 불과 50년도 안 된 기간에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내가 알아야 하는 사건이다.

읽는 내내 많이 아팠다. 정말 '잘 써주셨다' 라고 말해드리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글로 풀어낼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슬픔, 분노, 아쉬움, 아픔, 안도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때로는 복합적으로 다가와서 눈이 아프기도 했고 숨을 잠시 멎어가며 한 문장을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기도 했다.

 

p51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작중 정대가 죽고 난 후 영혼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누가 자기를 죽인 것인지. 16살의 중학생이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빨갱이라고 신군부는 국민을 시민을 살상한다. 무장 군인들이 들어오고 탱크가 들어오고, 헬기까지 동원된다. 자신들의 권력쟁취를 위해서 어린 학생들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당시 광주시민이 40만명이었는데 군인들에게 지급된 총알이 80만발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했고 무서웠다.

 

잔인한 1980년 5월은 지나갔지만, 그 이후로는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철저하게 고문당하고 당국은 이들을 북한에 지원하는 빨갱이로 연결시키기 위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낸다. 인권이라는 건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이들은 우선 연행된 학생들과 시민들을 정신적으로 바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려 한다.

 

P118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쳐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죽,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어디 이뿐이랴. 이후 학생들과 시민들은 마치 가슴에 주홍글씨가 찍히듯이 그 이후 취업이나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고 사실 상 온전한 사회생활이 되지 않았으며 시도 때도 없는 경찰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 날의 끔찍한 기억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을 자더라도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경제적 정신적 고갈로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5월 광주에 진압을 시도하던 경찰들이 모두 잔인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들 역시 군대라는 조직에서 상부의 명령을 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다. 쉽지 않다. 상부가 명령을 내리고 책임을 진다. 라고 할 경우 아마 나 역시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중에서는 다친 학생들을 몰래 숨겨둔 공수부대, 발포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의도적으로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진압시 군가를 부를 때 눈물을 흘리며 두 입을 다문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잔인한 5월 광주에서 그나마 조금의 위로가 된 것은 이런 이들도 존재했다는 안도감일지 모른다.

 

다 읽고 나서 프레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생각났다. 나치의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잔인함과 신군부의 광주가 철저하게 겹쳐진다. 작가는 아쉬워하고 불안해한다. 사람에게는 이런 잔인한 유전자가 박혀있어 반복할 수 밖에 없을까. 개척시대의 원주민에 대한 무차별한 학살, 나치의 아우슈비츠, 난징대학살, 제주4.3, 5월 광주는 분명 같은 무엇인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 두려워한다.

 

우리는 분명 이런 일이 일어난 후 잊지 말고 반복하지 말자고 한다.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다같이 말한다. 하지만 그런 동의 속에서도 유사하게 사건은 다시 일어난다. 1980년의 5월의 광주는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도 발생해 버렸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에 대한 대답은 나 역시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 단지 5월 광주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킨 학생들의 가슴 속에 담겨있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한 아직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희망을 기대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P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상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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