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한 권 출간 하고 싶습니다." 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저 입니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책의 맛을 알았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면서 책들을 꾸역꾸역 읽기도 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어려서부터 문학소년, 문학소녀로 초등학교, 중학교 부터 많은 책들을 읽어서 그들의 삶과 글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나도 조금만 더 일찍 책에 빠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약 이라는 것이 없지만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때부터라도 책을 읽고, 차근 차근 기록을 남겼으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작가' 라는 단어는 저한테는 조금 크게 다가옵니다. 때로는 '작가' 라는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서 제가 그들의 작품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비판적으로 읽어야할 필요성이 있을 때에도 제가 만든 그들의 권위에 스스로 무릎을 꿇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한 동경은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럴 때 위안이 되는 책들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바로 저와 같은 직장인들이 출간한 책들입니다. 전업작가가 아닌, 그들의 밥벌이는 따로 있는 사람들, 저와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책을 출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책의 내용과 함께 그 책들만의 독특한 개성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기 바쁩니다. 그리고 나도 마흔 살이 될 때는 한 권의 책을 출간해야지 하는 다짐을 다시 해보기도 합니다.
성수선 작가의 『밑줄 긋는 여자』에서 제가 하고 싶은 글쓰기의 한 단면을 보았습니다. CJ, LG, 삼성정밀화학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과 그녀가 읽은 책의 한 단락을 끈으로 이어주면서 자연스러운 독서에세이가 펼쳐집니다. 이 책의 매력은 성수선 작가가 해외영업을 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그녀가 직장생활 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적절하게 잡아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색하지 않게 책의 메세지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녀의 필력이 느껴집니다.
'나는 일상생활에 특별한 게 없어서 글을 쓸 내용이 별로 없어!'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들을 보면 그들의 삶은 무언가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아서 내심 질투와 시샘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수선 작가는 일상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자기만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서 제 메모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내 생활의 에피소드를 적어보았습니다.
'오늘은 가장 더운날, 그런데 에어컨 고장, 그리고 누진세는?' , '텃밭에 키우던 토마토 농사 접은 날' , '아이들과 함께 한 서해 갯벌 체험', '짭짤이 토마토와 어상천 수박과 같은 과일들' 이라는 단어들을 적어 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제 경험과 다른 분야를 자연스럽게 이어서 '생활의 쫄깃쫄깃함'을 적어 볼까 합니다.
생활의 쫄깃쫄깃함이 바쁘게 서두르는 출근길이 아니길 바라면서, 이제 씻고 출근해야 겠네요.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1999
『돈가스의 탄생』, 오카다 데쓰, 2006
『장미도둑』, 아사다 지로, 2002
『안토니 가우디』, 손세관, 2004
『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1996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럼』, 박민규, 2003
『괜찮다. 다 괜찮다.』 공지영, 지승호, 2008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2008
『군주론』, 마키아 벨리, 까치출판사, 2003
『나의 이력서』, 피터드러커, 2006
『딜리셔스 샌드위치』, 유병률, 2008
『남한산성』, 김훈, 2007
『달인』, 조지 레오나르드, 2007
『감독, 열정을 말하다』 지승호, 2006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최혁 2009
『엘레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1999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 센트 반 고흐, 2005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이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2003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이유명호, 2004
『불안』, 알랭 드 보통, 2005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에너 퀸들런, 2001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로 작가 은희경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가던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접하고 나니,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녀가 점점 궁금해졌습니다.
토요일 오후, 회사를 마치고 집 앞 도서관에 갔습니다. 가끔씩 어떤 책을 읽을지 정하지 않고, 도서관을 둘러보는데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역사' 쪽에서 책을 몇 권 선택하고, '영미문학' 쪽에서 책 한 권, 그리고 한국문학 쪽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은희경' 이라는 이름 석 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현대소설 시리즈에 있는 그녀의 작품 『빈처』 였습니다.
영어 제목은 『Poor Man's wife』 네요. 의자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응시하는 작가의 표정이 상당히 인상적인 표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책을 쇼파에 누워서 읽고 있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컴퓨터에서 만화를 보고 있고, 막내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아내는 주방에서 삼계탕을 끓인 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책을 조금씩 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단편 소설을 읽으면서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내 생각이 번뜩했고, 누워서 읽던 몸을 다시 바로 세웠습니다. 어쩌면 대단히 일상적인 부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부분을 건드려서 그런지 몰라도 상당히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설은 어느 날 내가 아내의 일기장을 보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6월 17일
나는 독신이다. 직장에 다니는데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 시 정도까지 근무한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이다.
이 시간에 난 읽고 쓰고 음악 듣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외출은 안 되지만.
나는 생각한다. 아니 두 아이의 엄마이고, 남편도 있는 사람이 독신이라니? 하지만 아내의 일기를 읽다 보면 알게 됩니다. 아내는 독신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남편은 매일 저녁 술에 취해 들어오고, 집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아내는 그런 자신을 독신으로 표현한 것이죠.
9월 16일
나는 왜 이렇게 쉬운 여자인가.
새벽에 파고 드는 그이를 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면서 사는 게 다 안쓰럽기만 하였다. 아침에 그이는 다정하다. 일찍 들어올게, 하더니 정말로 일찍 들어왔다. 나는 그만 감격해서, 저는 당신이 얼마든지 주무르고 어를 수 있는 여자여요, 하듯이 다소곳해져 갖고 그이를 맞았다. 그런데 그이는 다시 나간다. 나는 왜 이렇게 쉬운 여자인가. 그이에게 나는 왜 이렇게 하찮은가. 열한 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않는데 오늘만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난다기보다 모욕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렇다, 이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먼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오랜 만에 집에 빨리 들어온 소설 속의 나는 친구의 전화에 또 다시 술집으로 나갑니다. 아내는 남편이 빨리 들어왔다고 조금은 들떠 있습니다. 무엇을 해줄까 하는 생각뿐이죠. 그런데 남편은 다시 집을 나섭니다.
이런 아내는 남편을 보면 평소에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내는 아이를 낳기 이전의 모습은 많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에는 몸이 움직입니다. 힘이 들어도 자기 몸 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합니다.
아내는 그렇게 그녀의 담담한 삶의 일기를 적어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 역시 아내의 일기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내가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런 아내의 잠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죠. 많이 변한 아내의 모습이 보입니다.
소설의 마지막입니다.
나는 손에 펴 들고 있던 그녀의 일기장을 가만히 덮어준다.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다.
비록 모양틀 안에서 똑같은 얼음으로 얼려진다 해도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
작품 속에는 나와 아내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남편과 아내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허구의 문학인 소설이지만, 허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저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거 같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제 생각, 이런 행복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 속에서 다른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하는 모습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평범' 이라는 단어로 말하지만, 그 평범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가족 안에서도 모든 걸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겠습니다. 아내의 마음과 생각을 조금 더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조금 더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많이 다릅니다. 그 다름을 존중하고, 그 다름을 조금 더 관심있게 바라봐야 겠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니까요.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더구나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솜씨를 완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 (p86)
배움을 위해서라면 나이 어린 자식에게 배우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학구적 자세가 그것이다. 남 앞에 머리 숙이고 배운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자신이 직접 수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아버지는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내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아마 예수가 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사례가 이와 비슷한 일일 것이다. (p125)
"물리학 전체에 대해, 그리고 이와 연결해 개별과목에 대해 그것이 담고 있는 핵심적 내용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고 그 잠정적 결론을 자기 언어로 서술하라. 그리고 학습이 진행되는 대로 이것에 대한 수정, 보완을 수행해 나가되 그 핵심은 반드시 유지하라. 이렇게 할 경우 설혹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핵심은 항상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학점관리를 해나갈 수 있다." (p159)
책 한 권만 잘 읽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120퍼센트 이해하라고 했다. 여기서 120퍼센트라는 것은 저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20퍼센트까지 더 얹어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학습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후 내 학습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p161)
더 이상 역사는 열정만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지성만으로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목숨을 아끼지 않을 열정과 함께 역사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그 일을 감당할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성을 함양시켜 왓는가? 그리고 이것을 통해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가? 아직도 그는 내 속에서 부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그의 얼굴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외치고 있다. 나를 부활 시켜라. (p184)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나는 무슨 학문을 하겠다. 어떠한 문제를 풀어보겠다 하고 생각한 뒤 학문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연한 흥미에 따라 학문을 시작하고 보니 자기가 하고 있는 학문의 내용이 점점 명확하지고 또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문제도 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계획을 미리 하고 싶어도 학문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으면 계획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학문을 해나가면서 물음을 던지는 일 자체가 이미 학문에 크게 한 걸음 들어 선 것이다. (p203)
- 장회익, 『공부도둑』 中 -
책 한 모금을 건지려 서재의 책을 뒤적이다가, 오래 전에 읽은 장회익 선생의 『공부 도둑』을 손에 잡았다. 예전에 읽고 형광펜으로 줄이 쳐진 부분 만을 골라서 읽어보았다. 한 모금만 마시려는 게 나도 모르게 금새 빠져버려서 여러 부분을 다시 발췌해서 남겨 본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시기가 늦은 것은 없다' 라는 점을 나 자신에게 다시 상기시킨다. 그리고 '배우기 위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두려고 한다. 앞으로 살면서 스스로 수 많은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항상 배우는 자세, 겸손한 자세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가슴 속에, 그리고 뇌리에 새겨두자.
그리고 어떤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하던지 간에, 무언가 깊이 파고들어갈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양적인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양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전체적인 윤곽과 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이 하는 공부에 대해서 감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틀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하루 하루 조금씩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 틀렸던 부분을 고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파고 들어 가자.
배움에는 늦은 시기가 없다.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고, 제대로 배워서 내 것을 만들고, 제대로 배워서 올바르게 행동하자.
지식 만을 쌓아가는 배움이 아닌 지혜와 삶을 쌓아가는 배움, 함께 나눌 수 있는 배움을 위해서 다시 한 번 공부하자.~^^
지금까지 리뷰를 책에 관련해서 해 왔다. 그런데 이제부터 조금씩 나의 관심 영역을 확장해보려 한다. 여러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조금 더 복합적인 이해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기르고 싶다. 영화는 영화만의 특성이 있다. 직접 배우들이 등장인물들로 빙의되어 연기를 하고, 카메라의 다양한 기법이 동원된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씩 쌓아가고, 우선은 단순한 감상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바탕으로 영화 리뷰를 시작해 보려 한다.
그리고 첫 영화 리뷰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이다. 주요 출연진으로는 황정민(서도철 役), 유아인(조태오 役), 오달수(오팀장 役), 유해진(최상무 役)이 있다. 충무로의 보증수표 황정민, 떠오르는 신예 유아인, 주연급 조연 오달수, 유해진의 등장 만으로 이미 재미는 보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은 2015년 8월 5일 개봉된 영화로 거의 1년이 지나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리뷰를 쓰려고 보니, 이 영화의 모티브는 2010년에 있었던 최철원(SK최태원 회장 사촌동생) M&M 대표이사의 야구방망이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는 자신의 회사가 다른 회사로 흡수합병되는 과정에서 해고되었다. 해고 사유는 합병 과정에서 화물노조 가입을 탈퇴하고 앞으로도 가입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피해자는 당시 SK본사 앞에서 1인 차량 시위를 벌였는데 회사가 탱크로리를 인수해주겠다고 해서 사무실에 따라 갔다가 사장으로부터 엄청난 구타를 당한다. 당시 최철원은 야구방망이 1대당 100만원이라 했으며, 나중에 살려달라고 하자 대당 300만원으로 구타를 했다고 한다.
다시 이 이야기를 상기하니 너무나 화가 난다. 당시 그 피해자는 한 집안의 가장인데, 그런 폭력을 당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피해자의 무너져내린 자존감을 생각하면 가해자인 최철원의 죄를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사회 지도층들의 모습을 여전히 언론을 통해서 보게 된다.
얼마 전에는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이 3년 동안 61명의 운전기사를 바꾸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수행기사 행동 매뉴얼을 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
그는 도대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을 하는 것 일까? 궁금하다. 요즘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행운으로 저런 것들이 자신에게는 용납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런 사람이 한 기업의 리더라고 생각하니 더 치가 떨린다.
최근에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사건이 있다. 바로 이건희 삼성회장의 성매매 관련 뉴스타파 보도이다. 내가 이 동영상에서 문제라고 생각되는 점은 성매매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없앨 수 없는 사회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영상에는 어떤 사람이 여자들을 관리하고, 샤워실에 갈 때는 두 명이 부축을 하고..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한다. 그리고 성매매 장소로 지목된 한 곳은 現 삼성SDS 김인 고문 명의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한 사람의 성적 욕망 충족을 위한 것이라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다.
▲ 뉴스타파 동영상 中
그리고 수 많은 사람을 분노케 했던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이 있었다. '민중은 개 돼지',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와 같은 발언을 토해낸 사람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는 고위공무원이란 말인가? 분명히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술을 먹었다. 영화 대사를 따라 했다 하지만, 누구나 알 것이다. 마음 속의 진심이 나온 것이다. 마지막에는 죽을 죄를 지었다 라고 말을 한다. 한심하다. 안타까울 뿐이다. 정신차리라. 개 돼지 무서운 것을 알겠느냐
서양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ege)' 라는 말이 있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를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의 빌 게이츠, 워렌 버픽의 기부, 젊지만 사회적으로 올바른 길을 가려 하는 마크 주커버그 등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토양이 너무나 부럽다. 아직 우리 나라의 갈 길이 멀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분명히 우리 나라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실천하는 많은 기업가들과 고위직 공무원들이 있을 것이다. 부디 이런 분들의 이름을 먹칠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지금 크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 나중에 훌륭한 우리나라 기업가에 대한 위인전을 읽어주고 싶다.
부디 그런 분들이 되어주시길 바랄 뿐이다.
처음 영화 리뷰의 형식은 자유롭다. 그냥 생각이 끌고 가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본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유아인' 이라는 배우였다. 다른 배우들은 이미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그 진가를 보았다.
그런데 서른 살에 저런 연기를 쏟아내는 '유아인'에 대해서 깊이 매료되었다. 그의 모습은 영화제에서 남들과 다른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는 부분, 무언가 자기 만의 세상을 사는 사람 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는 그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이 점점 기다려지고, 한국 영화를 이끌어 갈 재목이 되어주길 바란다.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돈키호테》의 내용이다.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말이지만 나는 이것이 젊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무모하리만치 크고 높은 꿈 그리고 거기에 온몸을 던져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 바로 젊음의 본질이자 특권이다. 이 눈부신 젊음의 특권을 그냥 놓아 버리겠다는 말인가, 여러분.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 中 -
다시 한 번 돈키호테에 나온 저 문구를 적어봅니다.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이 글귀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립니다.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고, 일상에 매몰되어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 따가운 회초리를 드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한 때, 제 블로그의 메인 글귀였던 체게베라의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으론 불가능한 꿈을 꾸자' 라는 문장도 생각이 납니다.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의 책을 잡고 '책 한 모금'의 내용을 찾았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의미가 깊은 책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수필 한 권 이겠지만, 저에게는 삶을 흔들어준 책입니다.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후에 삶에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년 전의 그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불안하네요. 다시 한 번 붙잡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글귀를 되새겨 가면서 생각 없이 살아가는 시간을 잡아야 겠습니다. 앞으로의 5년 한 번 더 기대해보겠습니다. 한 번 더 꿈꿔봐야 겠네요. 5년 후의 제 모습에 만족할 수 있게 살아가려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입니다.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에 '폭염주의보' 라는 글귀로 자주 메세지가 들어옵니다. 자연스럽게 시원한 얼음물이 생각나고, 냉장고에 있는 수박이 생각납니다. 회사에서는 얼음이 가득 들은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십니다.
그런데 조금 마시고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스아메리카노 컵 표면과 컵 아래 바닥에도 물이 고입니다.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그 물을 어디서 생겨난 거지? 플라스틱 표면을 뚫고 물이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이런 비슷한 현상은 다른 곳에서도 눈에 띕니다. 에어컨을 켜게 되면 물이 생깁니다. 그리고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꼈을 겁니다. 갑자기 안경에 김이 서리는 현상 이런 것들이 다 똑같은 원인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선 정답부터 찾고 갑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결로 현상' 때문입니다.
차가운 물은 주변보다 온도가 낮습니다. 그리고 컵 밖의 공기는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깥에 있던 수증기가 차가운 물이 들어있는 물컵의 표면에 붙으면서 물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표면에 생기는 물은 공기 중에 들어있던 것입니다. 유난히 물이 많이 생기는 곳은 그만큼 그곳의 습도가 높다는 뜻입니다.
안경에 김이 서리는 것도 같은 현상이라고 했죠. 안경을 낀 사람이 겨울철에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 안경에 김이 확 서립니다. 추운 곳에 있던 안경렌즈가 따뜻한 곳에 들어오면서 실내 공기에 있던 수증기가 차가운 렌즈에 닿으면서 김이 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경에 김이 빠르게 사라지는 이유는 모든 물체들은 접촉하면서 열에너지를 교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빨리 서린 김을 제거하려면 따뜻한 곳에 놓거나 체온으로 닦아 주면 됩니다.
조금 더 제 주변에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져야 겠습니다.
궁금증을 갖고, 관찰을 하고, 원인을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지식을 쌓아가고, 지혜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국내소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국내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어가면서 좋아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정유정, 김훈, 조정래, 황석영, 한강, 김중혁, 박민규, 천명관, 박범신, 김훈, 최인호, 김연수, 공지영 작가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작품을 만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연이 안 닿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안타까웠던 인연 중에 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은희경' 작가입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지만 처음으로 작품을 만나게 되었네요.
은희경 작가는 얼마 전에 『중국식 룰렛』라는 소설집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만난 작품은 2006년 출간된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라는 작품입니다. 총 7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하루에 한 작품씩 읽었습니다. 단편 소설의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지게 되었지요.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작품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거 같습니다. 하나는 여자들을 소재로 하고 여자들의 심리를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은희경 작가의 표현력입니다. 처음 접하는 그녀의 글에 포스트잇으로 좋은 문구에 붙이기 바빴습니다.
오늘은 소설 속의 내용은 접어둘 생각입니다. 그것보다 '여자' 라는 단어에 대해서 남자의 입장에서 조금 생각해 봅니다.
제 주변의 여자들을 생각해봅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두 명은 당연히 엄마와 아내입니다. 과연 내가 그녀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들었습니다.
엄마는 그저 '엄마' 였습니다. 여자로서의 엄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생각을 해 본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라는 호칭을 얻기 전 부터 엄마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꿈꿨던 여자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이구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알게 됩니다. 엄마가 '엄마'라는 호칭을 얻으면서 '여자'로서 많은 것을 희생했겠구나! 가슴 속에 여전히 묵혀있는 아쉬움이 많겠구나!
오랫동안 만나오고 함께 살고 있는 아내를 과연 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자와 여자는 너무나 다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의 '사람' 이라는 단어는 아마 여자를 가리킬 것이라 추측해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 만의 생각과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 보면 남편과 있을 때는 행복해보이지만 실제 아내의 마음은 텅 비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걸 모릅니다. 소설 속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남자 분들은 여자의 마음을 배울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작가의 표현력이었습니다. 서사의 관점으로 소설을 읽는 편인데 은희경 작가의 소설 속에서는 중간 중간 눈에 드는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가족이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아프게 깨물면 아프게 물린다. 그렇다고 가볍게 물었다가는 자칫 서로를 놓칠 수도 있다. 너무 세게 물면 - 끊겨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듯이.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中, p34>
골목에서 한 떼의 술꾼들이 삶은 밤에서 나오는 밤벌레처럼 비틀거리며 기어나왔다. - <여름은 길지 않았다 中 , p241>
여대 앞 골목에서는 누군가 마대에서 담아와서 쏟아놓은 것처럼 발랄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51>
그때 그녀가 젓고 있던 커피가 작은 물살을 이룰 만큼 동요를 일으키며 좀 거칠다 싶게 문이 열렸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56>
이런 문장들을 만나면서, 혼자 상상을 합니다. 정말 삶은 밤의 밤벌레가 생각납니다. 그 벌레가 술 취한 사람이라 생각해 봅니다. 재미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마대 자루를 쏟아냅니다. 발랄한 젊은 이들이 서로 웃으면서 쏟아져 나오네요. 이래서 작가는 작가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오랜만에 저에게는 새로운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에 좋은 작품이 워낙 많으니, 당분간은 소설읽는 재미가 생겨나겠네요.
다음은 그녀의 대표작인 『새의 선물』 로 은희경 작가를 만나 볼 생각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p34
가족이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아프게 깨물면 아프게 물린다. 그렇다고 가볍게 물었다가는 자칫 서로를 놓칠 수도 있다. 너무 세게 물면 - 끊겨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듯이.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中>
p45
그녀가 더브(dove)콤플렉스에 대해 말해주었다. 비둘기 암컷은 수컷한테 그렇게 헌신적이래. 그런데 일찍 죽는단다. 자기도 사랑받고 싶었는데 주기만 하니까 허기 때문에 속병이 든 거지. 사람도 그래. 내가 주는 만큼 사실은 받고 싶은 거야. 그러니 한쪽에서 계속 받기만 하는 건 상대를 죽이는 짓이야. 인연을 맺는다는 건 참 끔찍하지 않니?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中>
p52
요새는 돌아가신 어머니 말씀이 종종 생각나. 인공 때도 숨는 장소를 어머니한테 말하고 간 사람은 살았는데 마누라한테 알려주고 간 사람은 다 죽었다고 했거든. 우리 아버지가 여름에 찬 돌을 잘못 베고 낮잠을 주무시다가 입이 돌아간 적 있었대. 근데 참기는 참아도 정말 꼴보기 싫더란다. 눈도 돌리기 싫더라지. 앞으로 같이 못 살 것만 같아서 도망이라도 쳐야지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말야, 침을 맞고 감쪽같이 나으니까 도로 정이 솟더라지 않냐.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中>
p105
아무튼 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살아 있는 편이 천배는 더 좋겠지만 죽어버렸으니 어떡해. 그냥 죽은 너를 사랑할 수 밖에, 네가 죽었다고 해서 갑자기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될 리도도 없잖아. 이미 생겨난 것인데 그 사랑이 어디로 사라지겠어. 어릴 때 난로 위의 주전자를 한나절씩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는 말을 너한테 했던가? 기운차게 치솟던 하얀 김이 점점 흩어져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서운했어. 어디로 간 걸까? 그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공기 중에 다른 형태로 떠 있다는 사실을 자연시간에 배우고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지. 죽음이란 삶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바뀐 것일 뿐 사라진 것은 아니야. 죽은 너를 사랑하는 일이 조금 외롭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두렵지 않아. 두려운 건 너를 잊는 일이야. 너를 잊게 되면 사랑을 잃는 거니까. 한 사람의 생에서 사랑이란 단 한 번뿐인 거잖아. -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中 >
p241
골목에서 한 떼의 술꾼들이 삶은 밤에서 나오는 밤벌레처럼 비틀거리며 기어나왔다.
- <여름은 길지 않았다 中 >
p244
나무가 갑자기 흔들리면 아는 사람이 먼 곳에서 방금 죽은 거란다. 작별인사를 한 뒤에 떠나려고 혼령이 잠깐 가지에 앉았다 가는 거지. - <여름은 길지 않았다 中 >
p251
여대 앞 골목에서는 누군가 마대에서 담아와서 쏟아놓은 것처럼 발랄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56
그때 그녀가 젓고 있던 커피가 작은 물살을 이룰 만큼 동요를 일으키며 좀 거칠다 싶게 문이 열렸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64
남편이 갖고 있는 커다란 종이상자 속에 구색으로 갖춰진 작고 예쁜 조개껍질 같았다. 조개껍질을 열어보면 그녀라는 존재는 텅비어 있을지도 모른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67
"나는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고 공부도 중간 정도였어요. 생긴 것도 그저 그렇고, 뭐든지 그저 그렇게 살아왔죠. 불만은 없었어요. 뭐가 되고 싶다든지 뭘 갖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 없이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며 살아온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을 알게 되면서부터 깨달았어요. 나에게는 꿈이 없다는 것을, 이루어지고 아니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워요. 꿈이 있는 사람은 뭐랄까. 살아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뭔지 몰라도 그 사람이 꼭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한 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고픕니다. 이게 비소설을 읽다가 소설로 돌아오는 저의 주기입니다. 이야기가 고플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소설, 무엇을 읽을 지 망설일 때 찾게 되는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한 번 뒤적여 봅니다. 역시 예전에 사놓고 읽지 않은 게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제 주린 감성을 채워준 책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였습니다. 예전에 사 놓고는 그렇게 손에 안 잡히던 책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았나 봅니다. 이번에는 다르네요.
알베르 카뮈(1913 ~ 1960)의 책은 『이방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로 시작하는 『이방인』은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코트의 깃을 세우고 짧게 문 담배와 무언가를 살짝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잡힌 두 줄의 이마 주름의 사진을 보면 이 작가에게 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소설도 궁금하지만, 이름부터 작가스러운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집니다.
카뮈의 『페스트』는 그의 나이 35살(1947년 作)에 지은 작품입니다. 지금의 제 나이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그렇게 손에 안 잡히던 것이 잡혔나보네요 라고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어 봅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어느 한 마을에 페스트가 발생해서 사라지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우선 책의 뒷 표지에 적힌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 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 당국이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자 무방비 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의사로서 사명을 다하려는 리유와 부당한 죽음을 거부하려는 미지의인물 타루, 우연히 오랑에 체류 중이던 신문기자 랑베르 등은 공포와 불의가 절정에 달한 도시에서 페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이 재앙을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보고 신의 뜻에 따르자고 설교하는 신부 파늘루, 모두가 고통에 빠진 상황에서 오히려 세상에 소속감을 느끼는 코타르도 있다. 페스트는 쉽사리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보건대 사람들은 새로운 혈청의 실험 대상이었던 어린아이가 죽어 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
카뮈의 소설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두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카뮈는 살아 생전에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제 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경험했습니다. 바로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기존의 진리, 제도를 파괴하고 합리주의에 대한 한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와 삶의 태도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문이 생겨나게 됩니다. 카뮈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부조리',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으로 대답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세상을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와 다르게 비합리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는 의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곧 부조리로 인식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한 부조리에 대해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반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조리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해서 무의미한 삶이라고 느껴지더라도 진리를 바라며, 행복을 바라는 욕구를 가지고 나가라는 것이 카뮈의 행동적 휴머니즘입니다.
'행동적 휴머니즘'은 『페스트』에서도 등장인물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럼요" 그는 말했다. "아마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나는 필요한 정도의 자존심 밖에는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p170)
그래서 늦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비 속에서도, 매일같이 한밤중이면 승객 없는 전동차의 괴상한 행렬이 바다 위 저 중턱으로 덜거덕거리면서 지나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시민들도 마친내는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순찰대가 임해 도로에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흔히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파도치는 바다를 굽어보며 솟아 나온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전동차가 지나갈 때면 유람차 안에 꽃을 던지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전동차가 꽃과 시체를 싣고 여름밤 속을 더한층 심하게 흔들리며 달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p234)
등장인물 그 중에서도 의사인 리유는 의사라는 자신의 사명감과 다른 이유없이 자신 앞에 있는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도 타루는 보건대를 스스로 조직합니다. 그리고 페스트가 심해져 사람들이 장례 절차도 없이 땅에 묻히기 위해 수송되어 질 때 사람들은 전동차에 꽃을 던집니다. 먼저 떠나는 이에 대한 인간애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각자 나름대로 반항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알베르 카뮈 (1913~1960)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밝힌 작가
- 1957년이 밝힌 노벨상 수상 사유
지금까지 제가 만난 두 작품 『이방인』, 『페스트』를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인간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번쯤은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깊이있게 파고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심연을 바라보기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가봐야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쯤 진지하게 나 자신을, 인간을 바라보고 싶은 분들에게 카뮈의 작품을 권합니다.
(p55)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휴머니스트들이었다. 즉 그들은 재앙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업을 계속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래라든가 장소이동 이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해 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p64) '그런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야.' 그는 페스트가 체질이 허약한 사람들은 가만히 놓아두고 특히 건장한 사람들을 쓰러뜨린다는 기록을 읽은 생각이 났다. 그리하여 그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리유는 그랑에게서 어떤 자그마한 신비의 한구석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p72) 그렇지만 리샤르는 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병 자체가 저절로 멈추지 않는 한 법률에 규정도니 중대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자면 그 병이 페스트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확증이 절대적이지 않은 이상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것 등을 지적함으로써 사태를 요약하려는 생각이었다.
(p79) 그랑은 그 담배 가게 여주인이 있는 데서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 한참 신바람이 나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그 여자가 알제에서 한창 떠들썩하던 당시의 어떤 체포 사건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어떤 상사의 젊은 사무원이 바닷가에서 한 아랍인을 죽인 사건이었다.
(p150) 설교가 있은 지 얼마 안 가서 더위가 시작되었다. 6월 말이 된 것이다. 그 설교가 있던 날을 인상 깊게 만들어 주었던 철늦은 비가 내린 다음 날, 여름이 대번에 하늘과 집 위에서 폭발했다. 먼저 뜨거운 강풍이 일더니 하루 종일 불어 대며 벽돌을 모조리 말려 놓았다. 해가 제자리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더위와 햇빛의 끝임없는 물결이 하루 종일 시가에 넘쳐 흘렀다. 아케이드로 된 거리와 아파트를 제외하고, 이 도시 안에서 눈부신 햇빛의 반사 속에 놓여 있지 않은 곳이란 하나도 없었다. 태양은 우리 시민들을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뒤쫓아 가서, 어디든 멈추어 서기만 하면 후려치는 것이었다. 그 첫 더위가 매주 칠백에 가까운 숫자를 기록하는 희생자 수의 급상승과 일치했기 때문에 우리 시는 일종의 절망에 사로잡혔다.
(p154) 그는 또한 자기가 즐겨 관찰하는 인물들의 묘사도 계속했다. 우리는 고양이와 장난을 하는 그 작달만한 늙은이도 역시 비극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거기서 알게 되었다. 과연 어느 날 총알들이 가래침같이 날아가서 고양이들 대부분을 죽였고, 질겁한 나머지 고양이들도 그 거리를 떠나고 말았다. 바로 그날, 그 작달만한 늙은이는 습관대로 제 시간이 되자 발코니에 나타났는데, 적이 놀라는 눈치를 보이더니 몸을 굽히고 길 저 끝까지 골고루 살펴보고 하는 수 없다는 듯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는 손으로 발코니의 철망을 툭툭 두드려 보았다. 그는 또 좀 기다리다가 종잇조각을 조금 찢어서 뿌렸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간, 얼마 후에는 갑자기 화가 치민 ㅗㄴ놀림으로 창문을 쾅 닫으면서 집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뒤 며칠 동안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그 키 작은 늙은이의 얼굴에는 슬픔과 혼란의 기색이 점점 더 뚜렷이 엿보이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타루는 매일처럼 나타나던 그 늙은이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창문들은 충분히 짐작이 가는 슬픔 속에 굳게 닫혀 있었다. '페스트 기간 중에는 고양이에게 침을 뱉지 말 것' 이것이 타루의 수첩에 적힌 기록의 결론이었다.
(p170) "그럼요." 그는 말했다. "아마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나는 필요한 정도의 자존심밖에는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p172) 그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 드렸나요. 선생님?" 대답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가난입니다."
(p186) 그런데 페스트가 절정에 이르고 그 재앙이 이 도시를 공격해 완전히 삼켜 버리려고 있는 힘을 다 모으는 동안의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꼭 적어 둘 것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가령 랑베르 같은 마지막으로 남은 개개인들이 그들의 행복을 되찾고자 하는 그들 자신의 몫을 페스트로부터 구해 내기 위해서 기울인 절망적이고도 단조롭고 꾸준한 노력들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위협하는 굴욕을 거부하려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었으며, 또 비록 그 거부가 표면적으로 다른 거부만큼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서술자의 의견으로는 그것도 그것대로의 의의가 충분히 있고, 또 그 나름의 허영과 심지어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대로나마 그 당시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자랑스럽게 깃들었던 그 무엇을 증명해 주기도 했다고 믿을 수 있다.
(p216) "옳은 말씀이에요, 랑베르. 절대로 옳은 말씀이에요.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 하시려는 일에서 마음을 돌려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일이 내 생각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라 여겨지니까요.그러나 역시 이것만은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하고 랑베르는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하고 랑베르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어떤 것이 내 직분인지를 모르겠어요. 아마 내가 사랑을 택한 것은 정말 잘못일지도 모르겠군요"
리유는 그를 마주 보았다.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랑베르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분께서는 아마 그런 모든 일에서 조금도 손해 보실 것이 없을 겁니다. 유리한 편에 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니까요?"
리유는 자기 잔을 비웠다.
"자."하고 그가 말했다. "우리에겐 할 일이 있어서요." 그가 나갔다.
타루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나가려는 순간에 막 생각이 난 듯이 신문기자에게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리유의 부인이 여기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요양소에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랑베르는 뜻밖이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타루는 이미 나가 버렸다.
이튿날 꼭두새벽에 랑베르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 도시를 떠날 방도를 찾을 때 까지 함께 일하도록 허락해 주시겠어요?"
잠시 저쪽 수화기에서 침묵이 흐르더니 이윽고, "좋아요. 랑베르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들려왔다.
(p224) 페스트라고 하는 저 꼭대기 지점에서 내려다보면 형무소장에서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유죄 선고를 받은 처지였으니, 아마 사상 처음으로 감옥 안에 절대적인 정의가 이루어진 셈이었다.
(p228) 그런데 초기에 우리의 장례식의 특색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신속성이었다. 모든 형식은 간소화되었으며, 일반적인 경향으로 볼 때 장례식은 폐지되었다. 환자들은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었으며 밤샘 의식은 금지되었으므로, 결국 저녁나절에 죽은 사람은 송장이 되어 혼자 밤을 넘기고, 낮에 죽은 사람은 지체 없이 매장되었다. 물론 가족에게 통보는 하지만, 알려 봤댔자 대부분의 경우 그 가족도 만약 병자 곁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예방 격리를 당하고 있었던 터라 발이 묶여 있었다. 가족이 그 고인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은 지정된 시각, 즉 시체의 염이 끝나고 입관되어 묘지로 떠나려는 시각에나 와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p233)
8월에 접어들자, 사실상 페스트가 통계 그래프의 꼭대기 평행선상에서 요지부동으로 기승을 부리면서 누적한 희생자들의 수는 이 시의 조그만 묘지가 제공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초과하고 있었다. 담 한 쪽을 헐고 시체들을 위해 그 옆 터를 넓혀 놓았다 해도 소용이 없어서 이내 다른 방도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밤에 매장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것은 확실히 여러 가지 번거로운 고려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구급차에는 점점 더 많은 시체를 포개어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변두리 지대에서는 등화관제 시간 이후에도 볼 수 있는, 규칙을 위반하며 밤늦게 다니는 산책객들은, 때때로 광채 없는 사이렌 소리를 울려 대며 밤의 후미진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길쭉한 백색의 구급차들을 만나곤 했다. 시신들은 서둘러서 구덩이 속에 내던져졌다. 아직 완전히 구덩이 속으로 쏟아져 들어 가기도 전에 벌써 삽에 퍼 담긴 석회가 시체의 얼굴을 짓이겼고, 이어서 이제는 더욱더 깊게 파인 구덩이 속에, 이름 없는 흙이 그 위를 덮어 버리는 것이다.
(p234)
그래서 늦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비 속에서도, 매일같이 한밤중이면 승객 없는 전동차의 괴상한 행렬이 바다 위 저 중턱으로 덜거덕거리면서 지나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시민들도 마친내는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순찰대가 임해 도로에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흔히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파도치는 바다를 굽어보며 솟아 나온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전동차가 지나갈 때면 유람차 안에 꽃을 던지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전동차가 꽃과 시체를 싣고 여름밤 속을 더한층 심하게 흔들리며 달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p236)
아니다. 페스트는 그 병이 유행하던 초기에 의사 리유를 성가시게 따라다녔던, 그처럼 사람을 흥분시키는 굉장한 이미지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페스트는 무엇보다도 용의주도하고 빈틈없으며 그 기능이 순조로운 하나의 행정사무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마디 삽입해서 말하자면, 아무것도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 서술자는 객관성이라는 것을 고집해 왔던 것이다. 서술자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기본적ㅇ딘 필요성에 관한 것들 이외에 예술적인 효과를 위해서 무엇이건 덧붙이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객관성 자체가 서술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요구한다. 즉, 그 시기의 커다란 고통, 가장 심각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고통은 바로 생이별의 감정이었으며 페스트의 그 단계에 나타나는 생이별의 감정에 대해 새로운 기록을 남겨 놓는 것이 양심적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당시에 있어서 고통 자체는 그것의 비장감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p239)
페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현재의 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p242)
결국 그 별거당한 사람들은, 초기에 그들을 보호해 주었던 그 야릇한 특권을 읽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사랑의 에고이즘과 거기서 얻는 혜택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적어도 이제는 사태가 명백해졌고, 재앙은 모든 사람에게 다 관계가 있는 것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가 시의 문에서 울리는 총소리며, 우리들의 삶 또는 죽음에 박자를 맞추어 주는 고무도장 소리의 한가운데서, 화재와 카드, 공포와 수속 절차 속에서, 굴욕적이면서도 대장에 등록된 죽음과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무시무시한 화장터의 연기와 구급차의 한가한 사이렌 소리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 어처구니없는 재회와 평화의 시간을 똑같이 기다리면서 똑같은 유배의 빵으로 요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우리들의 사랑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건만, 단지 그것은 무용지물이어서, 지니고 다니기에만 무거울 뿐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생기를 잃어, 마치 범죄나 유죄판결과도 같은 불모의 존재였다. 그 사랑은 이미 미래가 없는 인내에 불과했고 좌절된 기대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런 점에서 볼 때, 시민들 중 어떤 사람들의 태도는 시내 곳곳의 식료품 가게 앞에서 줄을 선 그 긴 행렬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끝이 없는, 동시에 환상도 없는 똑같은 체념이었고 똑같은 참을성이었다. 다만 생이별에 관해서는 그 금정을 천배 이상의 단위로 확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생이별은 또 하나의 굶주림이긴 하지만 그것은 모든 것으 ㄹ다 집어 삼켜 버리는 굶주림이니 말이다.
(p280)
리유는 가끔가다가, 딱히 그럴 필요성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재 자기의 무력한 부동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린애의 맥을 짚어 보곤 했는데, 눈을 감으면 그 요란한 맥박이 자기 자신의 동요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고통 받는 어린애와 함 몸이 된 것을 느꼈으며, 아직 몸이 성한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그 애를 지탱해 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일치되었다가도 두 사람의 심장 고동은 다시 엇갈려 어린애는 그만 그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이었고, 그러면 그는 그 가느다란 손목을 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P312)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역시 그들을 거기서 끌어내기 위한 운동이나 계획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생각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끌어내는 일에 급급해서, 끌어내야 할 사람에 대해서는 잊고 마는 것이다. 그것도 역시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결국에 가서는, 비록 불행의 막바지에 이른 경우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을 정말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을 정말로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어느 순간에도 결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살림 걱정도 안 하고, 날아다니는 파리도 안 보이고, 밥도 안 먹고, 가려움도 안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P329)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 것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살마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그러나 페스트 환자 노릇을 그만하려고 애쓰는 며쳧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그들을 해방해 줄 것 같지 않은 극도의 피로를 체험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P345)
"됐어요." 하고 그는 말하는 것이었다. "그놈들이 다시 나와요."
"누가요?"
"쥐 말이에요, 쥐!"
지난 4월 이후로 죽은 쥐는 단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다시 시작된다는 건가요?"하고 타루는 리유에게 물었다.
노인은 손을 비비고 있었다.
"놈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꼭 봐야 한다니까요! 정말 기분이 만점이죠."
그는 살아 있는 쥐 두 마리가 거리로 난 문으로 해서 자기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웃 사람들의 말로는, 그들 집에서도 그놈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서까래 위에서 몇 달을 두고 잊고 살았던 바스락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리유는 매주 초에 실시되는 총괄적 통계의 발표를 기다렸다. 통게는 병세의 후퇴를 표시하고 있었다.
(P379)
아무도 단죄할 권리를 인간에게 주지 않았던 타루, 그러면서도 누구도 남을 단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희생자가 때로는 사형 집행인 노릇을 하게 됨을 알고 있었던 타루는 분열과 모순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며, 희망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 사실 리유는 그런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P383)
페스트가 몇 달 동안이나 계속됨으로써 추상이 되어 버렸던 사랑이나 애정이 그것의 구체적 실현 매체인 육체적인 존재와 맞닥뜨리는 순간을 랑베르는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P384)
그들은 모두 서로를 꼭 껴안고 자기들 밖의 세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이, 겉으로는 페스트에 승리한 듯한 얼굴로, 모든 비참함을 잊어버린 채, 그리고 역시 같은 기차를 타고 왔지만 아무도 마중 나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그 오랜 동안의 무소식이 그들 마음속에 빚어 놓았던 두려움을 현실로 확인해야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잊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 잊힌 사람들, 이제 동반자라고는 아주 생생한 고통밖에 는 없게 된 살마들, 또 그 순간 사라져 간 사람의 추억 밖ㄴ에는 매달릴 것이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정이 전혀달라서, 이별의 슬픔은 절정에 달했다. 이름도 없는 구덩이에 허망하게 묻혀 버렸거나, 또는 잿더미 속에서 녹아 없어진 사람과 더불어 모든 기쁨을 잃어버린 어머니들, 배우자들, 애인들에게 페스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