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고픕니다. 이게 비소설을 읽다가 소설로 돌아오는 저의 주기입니다. 이야기가 고플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소설, 무엇을 읽을 지 망설일 때 찾게 되는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한 번 뒤적여 봅니다. 역시 예전에 사놓고 읽지 않은 게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제 주린 감성을 채워준 책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였습니다. 예전에 사 놓고는 그렇게 손에 안 잡히던 책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았나 봅니다. 이번에는 다르네요.


알베르 카뮈(1913 ~ 1960)의 책은 『이방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로 시작하는 『이방인』은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코트의 깃을 세우고 짧게 문 담배와 무언가를 살짝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잡힌 두 줄의 이마 주름의 사진을 보면 이 작가에게 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소설도 궁금하지만, 이름부터 작가스러운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집니다.




카뮈의 『페스트』는 그의 나이 35살(1947년 作)에 지은 작품입니다. 지금의 제 나이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그렇게 손에 안 잡히던 것이 잡혔나보네요 라고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어 봅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어느 한 마을에 페스트가 발생해서 사라지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우선 책의 뒷 표지에 적힌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 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 당국이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자 무방비 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의사로서 사명을 다하려는 리유와 부당한 죽음을 거부하려는 미지의인물 타루, 우연히 오랑에 체류 중이던 신문기자 랑베르 등은 공포와 불의가 절정에 달한 도시에서 페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이 재앙을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보고 신의 뜻에 따르자고 설교하는 신부 파늘루, 모두가 고통에 빠진 상황에서 오히려 세상에 소속감을 느끼는 코타르도 있다. 페스트는 쉽사리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보건대 사람들은 새로운 혈청의 실험 대상이었던 어린아이가 죽어 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


카뮈의 소설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두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카뮈는 살아 생전에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제 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경험했습니다. 바로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기존의 진리, 제도를 파괴하고 합리주의에 대한 한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와 삶의 태도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문이 생겨나게 됩니다. 카뮈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부조리',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으로 대답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세상을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와 다르게 비합리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는 의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곧 부조리로 인식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한 부조리에 대해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반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조리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해서 무의미한 삶이라고 느껴지더라도 진리를 바라며, 행복을 바라는 욕구를 가지고 나가라는 것이 카뮈의 행동적 휴머니즘입니다.


'행동적 휴머니즘'은 『페스트』에서도 등장인물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럼요" 그는 말했다. "아마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나는 필요한 정도의 자존심 밖에는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p170)


그래서 늦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비 속에서도, 매일같이 한밤중이면 승객 없는 전동차의 괴상한 행렬이 바다 위 저 중턱으로 덜거덕거리면서 지나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시민들도 마친내는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순찰대가 임해 도로에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흔히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파도치는 바다를 굽어보며 솟아 나온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전동차가 지나갈 때면 유람차 안에 꽃을 던지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전동차가 꽃과 시체를 싣고 여름밤 속을 더한층 심하게 흔들리며 달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p234)


등장인물 그 중에서도 의사인 리유는 의사라는 자신의 사명감과 다른 이유없이 자신 앞에 있는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도 타루는 보건대를 스스로 조직합니다. 그리고 페스트가 심해져 사람들이 장례 절차도 없이 땅에 묻히기 위해 수송되어 질 때 사람들은 전동차에 꽃을 던집니다. 먼저 떠나는 이에 대한 인간애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각자 나름대로 반항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알베르 카뮈 (1913~1960)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밝힌 작가 


- 1957년이 밝힌 노벨상 수상 사유



지금까지 제가 만난 두 작품 『이방인』, 『페스트』를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인간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번쯤은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깊이있게 파고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심연을 바라보기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가봐야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쯤 진지하게 나 자신을, 인간을 바라보고 싶은 분들에게 카뮈의 작품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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