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문제 삼는 상황은 바로 이것이다. "타국에서 발생한 재앙을 구경하는 것은 지난 1세기하고도 반세기 동안 오늘날의 언론인과 같다고 알려진 전문적인 직업여행자들이 촘촘하게 쌓아 올린 본질적으로 현대적인 경험이다. 오늘날 우리는 거실에서도 전쟁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 이른바 '뉴스'는 비참한 모습을 시청자들의 눈에 내던져 동정심이나 격분, 그도 아니면 찬성 같은 반응을 자아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분쟁과 폭력을 대서특필하기 마련이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인간의 죽음은 산 자들이 거실에서 누리는 최대의 사치 중 하나이다. 죽음이 매일매일 재생산되어 과잉축적이 빚어지는 전쟁조차도 미디어를 통해 중계되면 스펙터클이 된다. 미디어를 통해 중계되는 죽음이 본질적으로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믿고 있기에, 우리는 죽음의 축적을 보고도 무덤덤하다. 그게 관음증이다. 관음증적 응시는 응시의 대상과 자신과의 연루를 알지 못한다. 텔레비전을 통해 죽음을 보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는 이렇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 있다. 나는 아직 죽지 않는다."


- 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 中 -



뉴스에서는 연일 사건 사고가 보도된다.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테러,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폭행, 살인도 벌어진다. 뿐만 아니라 한 때는 연인이고, 친구였던 사람에 의해서도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이런 수많은 사건 사고에 대해서 우리는 더이상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분명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어떤 죽음보다도 살짝 까진 내 손이 더 심각하게 다가올 뿐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우리의 모습을 작가 노명우는 '관음증'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소개한다. 

텔레비전은 보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에는  이런 내면의 소리가 있을 거라 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 있다. 나는 아직 죽지 않는다."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해낼 힘과 의지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내면의 소리를 잠자코 듣고만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관음증을 벗어나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졌던 그 죽은 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입장이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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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 - 3점 / 5점)


머리를 식혀야 했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방식대로 책을 선택한다. 

시작부터 자기개발서를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누구나 아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가끔 한 번씩 읽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하지 않는 행동들이 결코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다른 블로그에 방문해서 알게 된 책이다. 사실 『인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제목에 혹 해서 읽게 되었다.


우선 이 책에서만 알 수 있었던 어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이 점이 아쉽다.

그래도 괜찮았던 점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는 사례들을 적절히 보여주었고, 중간 중간에 '~에 대해서' 몇 가지씩 꼭지로 짚어 주는 부분도 괜찮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와 배우 조진웅의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았다.

두 분 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현 JTBC 사장이자 JTBC 뉴스룸을 이끄는 손석희는 10년 전에 대학 강연에서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누군가 정치에 관심이 없느냐고 물어봤다. 손석희의 대답은 훌륭했으며, 자신의 소신을 여전히 잘 지켜내고 있으시다. 그의 대답은 "저는 정치인이 언론인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어서 그걸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언론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었다. 사실 꼭 이렇게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이런 늬앙스였다.


배우 조진웅은 대세 배우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출연하는 것 마다 새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가 하는 연기와 일상 생활에 드러내는 말 한마디에서도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겁지 않다. 이것이 그의 힘이다.


이 인터뷰를 나는 '고수와 고수의 만남'으로 읽었다. 

그리고 고수들에서 느껴지는 공통적인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다. 그들은 재촉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군가를 추궁하지 않는다. 차분하다. 밝은 표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만의 신념이 엿보이고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애서 읽었던 부분이 이 책에서도 소개된다. 목계(木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게 고수구나. 나도 이 경지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장자>의 달생편에 목계(木鷄) 이야기가 나온다. 싸움닭을 만들기로 유명한 기성자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왕의 부름을 받고 싸움닭을 훈련시키게 되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 이제 대충 되었는가? 그러나 그는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한창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이 또 물었다. 대충 되었는가?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의 울음소리나 그림자만 봐도 덮치려고 난리를 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왕이 또 물었다. "아직도 훈련이 덜 되었습니다. 적을 노려보면서도 여전히 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가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열흘이 지났다. "대충 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왕이 궁금하여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기성자는 대답했다. "상대 닭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덤벼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나무로 만든 닭 같습니다. 다른 닭들이 보고는 더 이상 반응이 없자 다들 그냥 가 버립니다. (P181)


고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목계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무엇인가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자랑을 하는 것이고, 어느 정도 안다고 느끼는 사람은 기고만장해진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진짜 고수는 어찌 보면 닭이 나무로 보였던 것 처럼 쉽사리 그들이 먼저 나서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뿐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헐리우드 영화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 대한 소개이다.


▲ 영화 <링컨>의 링컨을 연기했던 대니얼 데이 루이스


 201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링컨을 연기한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돌아갔다. 통상 세 번의 아카데미상을 받는 진기록이다. 그는 영화를 찍기 전 자기가 맡은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뇌성마비 예술가의 삶을 눈물겹게 표현한 영화 <나의 왼발>을 찍을 때는 휠체어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식사나 자리 이동을 모두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했다. 완벽하게 뇌성마비 환자처럼 행동한 것이다. <라스트 모히칸> 촬영 때는 알라바마 오지에서 야영생활을 하며 모히칸처럼 사냥해 잡은 음식만을 먹기도 했다.


처음에 그는 링컨 역을 고사했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아니라면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그만치 8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이를 승낙한 대니얼은 스필버그 감독에게 1년의 시간을 청했다. 링컨을 흉내 내기 위한 시간이 아닌 정말 링컨이 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완전히 동화되어 실제 그 인물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 과정에서 내면의 감정까지 끌어내어 연기한다. 그만큼 매섭게 배역에 몰입한다는 뜻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캐릭터에 빠져들다 보면 정말 그 인물이 돼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럴 때면 문득 그 인물의 목소리가 제 귀에 들려오죠. 환청과는 다른 애깁니다. 그 인물이 저에게 말을 건네는 거죠. 이번에도 마찬기지였습니다. 그 목소리를 제 내면의 귀로 듣고 조금씩 따라 해보는 과정 속에서 링컨의 연기도 탄생했습니다." (P85)


목계(木鷄) 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에 대한 대답은 영화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사례로 짐작할 수 있을 거 같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은 거기에 이르기 까지의 혹독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 경지를 넘어서는 순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평범한 이들에게 힘들어 보이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직관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렇게 어느 경지에 이르러 고수가 되면, 고수들은 고수들을 알아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고수와 고수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융합이 이루어지고, 더 높은 도약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제목처럼 고수(高手)를 만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같은 노력과 사명을 가지고 목계(木鷄)의 경지에 이르는 고수가 되는 게 낫지 않은가!

살면서 한 번쯤 고수(高手)를 경험해 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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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계적으로 세상을 그리는 관행이 심리에 미치는 효과를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통계적으로 세상을 그리는 관행은 개인을 익명의 단위로 바꿔놓고 있으며, 이 익명의 단위들이 모여 대중이 된다. 과학은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개인 대신에 조직의 이름들을 제시하며, 그 정점에서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정치적 현실의 원칙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되면 개인의 도덕적 책임이 불가피하게 국가의 정책으로 대체된다.


개인의 도덕적, 정신적 차이를 인정하기 보다는 공공복지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앞세우려는 분위기가 지배하게 된다. 유일하게 '진짜' 삶인 개인적 삶의 목표와 의미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의 발전에 있지 않고 국가의 정책에 있게 된다.이 국가의 정책은 외부에서 개인들에게 강요되며, 그 목표는 종국적으로 모든 삶이 추구할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현실로 구체화하는 데 있다.


개인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도덕적 결정권을 점점 더 많이 박탈당하고, 그 대신에 하나의 사회적 단위로 통치를 받고 의식주를 제공받고 교육을 받으며 또한 대중에게 쾌락과 만족을 안겨주는 기준에 따라 즐거워하게 된다.


- 칼 구스타프 융,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中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었을 뿐이다.

사회는 개인들에게 개성과 창의성을 요구한다. 역으로 그들은 독특한 개인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회가 원하는 것은 무언가 복잡한 것을 하나의 모델로 만들고 싶어한다. 통계는 그 중 대표적인 것이다. 정규분포는 통계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 중 하나이다.

사회는 가운데 선이 평균이라고 이것을 토대로 모든 걸 진행하려고 한다. 통계로 치면 그렇지만, 결국 개별적으로 보면, 개개인으로 보면 모두 개별적이다. 서로 다르다. 평균 선에 위치한 사람은 단순히 그 사람일 뿐이다. 


내가 진정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내가 타인을 진심으로 개인으로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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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나나의 날파리, 도대체 너는 어디서 나타났니?


이제 여름의 문 앞에 서 있다. 점점 포근하다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따뜻하다를 넘어서 덥다라는 느낌이 오고 말았습니다.

이런 여름에는 땀으로 끈적해지는 살갗에 찝찝해지고, 집에는 파리,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어제도 한 방 물렸네요.

그리고 내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 놈의 출현도 조금씩 잦아집니다. 그 놈은 바로 '날파리' 입니다.

아이들에게 간단하지만 포만감을 줄 수 있는 간식 '바나나' 는 먹고 나서 식탁에 올려 놓으면 어느새 날파리가 생겨납니다.

분명히 집에는 날파리가 없었는데 도대체 이놈은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입니다. 날파리 그게 바나나에서 나오나?

 

궁금증이 생기고 나서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이런 날파리 하나 어디서 생겼나 궁금했던 게 일이 커집니다.

제가 생각했던  '날파리가 바나나에서 나오나?' 라는 생각은 찾아보니 자연발생설로 소개가 되고 있네요.

 

자연 발생설은 기원전으로 올라갑니다. 기원전 4세기경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을 토대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곤충이나 진드기가 부모가 아닌 쓰레기, 땀, 흙탕물에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우나 장어는 흙탕물에서 자연 발생한다고 생각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황당무계한 실험도 있었습니다.

17세기에 벨기에의 화학자 반 헬몬트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합니다.

 

1. 밀가루 낱알과 땀으로 더러워진 셔츠에 기름과 우유를 적셔서

2. 항아리에 넣고 창고에 방치하면

3. 쥐가 자연 발생한다.

 

과연 쥐가 나왔을까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1861년에 파스퇴르는 중요한 실험하나를 합니다. 파스퇴르는 과학자입니다.

한 포털의 지식인 서비스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더라구요. "파스퇴르는 사람입니까? 우유입니까?

아마도 어린 학생들일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당연히 사람이죠.

파스퇴르가 진행한 실험은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 사진출처 : https://goo.gl/tFFUpa

 

위의 그림을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861년 파스퇴르가 공기 중에 떠도는 미생물이 적절한 환경의 액체를 통해 증식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실험입니다.

S자목 플라스크에 액체(육즙)를 담아두면 공기는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미생물의 포아는 목부분에서 더 이상 진입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확인을 해보니 액체(육즙)에는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은 겁니다. 반면에 백조목을 제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플라스크 안으로 미생물의 포아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확인해보니 미생물이 증식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미생물의 자연발생설은 사라지게 됩니다.

 

날파리(보통 초파리나 하루살이 같은 작은 벌레)는 바나나에서 직접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날파리가 분명 저절로 생길거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놈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를 잘 모르겠거든요.

 

날파리는 보통 외부에서 들어옵니다. 그리고 과일 껍질이나 음식물쓰레기 같은 곳에 알을 낳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은 부패한 당질의 유기물질을 먹고 삽니다. 그래서 포도나 바나나 같은 당질이 많이 포함된 과일에 유난히도 꼬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름에 유난히 꼬이는 이유는 보통 15도 이상에서만 활동이 가능하고 알을 까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이 있나봅니다. 벌레를 퇴치하는 회사인 CESCO 홈페이지에 초파리가 왜 생기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입니다.

 


▲ 출처 : 세스코 홈페이지, (http://www.cesco.co.kr)

 

외부를 통해서 집으로 들어온 날파리들은 일주일 정도가 되면 약 500개의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파리가 부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4시간이라고 합니다. 헉!

그렇다면 날파리 친구들 4마리가 사이좋게 저희 집에 들어왔다면, 일주일 뒤에 500 X 4 = 2000개의 알을 낳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놈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생존한다면 일주일 뒤에는 다시 2000 X 500 = 1,000,000 마리가 됩니다. (제가 아무런 다른 과학적 이유없이 산수로 짐작한 겁니다. ) 불과 4마리가 놀러와서 보름 만에 백만 마리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러니 사람들이 자연발생이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날파리가 싫으시다구요? 정답은 하나네요. '청소는 깨끗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면 혼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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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사회문제, 철학, 역사, 경제, 정치,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문학이란 삶에 관한 것입니다. 그 점은 다른 학문과 같습니다. 철학이나 경제, 역사 모두는 삶을 기초로 논리를 세우고 제도를 만들며 진실을, 혹은 사실을 기록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든 학문은 삶이 현장이며, 삶은 모든 학문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삶의 총괄적인 것을 다루어야 하는 문학은 어떠한 부분, 어떠한 분야도 수용해야 하지만 그 것은 실체가 아니며 사실도 아니라는 점, 그러면서도 진실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해서 소설을 창작이라 한다는 것을 먼저 말해 두고자 한다.


- 박경리,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中



문학은 삶의 총괄적인 것을 다뤄야 합니다. 하지만 실체도 사실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진실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문학 중에 특히 소설을 좋아합니다. 여러 소설을 읽다 보면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갑니다.

허구라는 그 속에서 허구적이지 않은 삶들을 살아갑니다. 이런 인물들의 삶을 천천히 지켜봅니다.

그러다 보면 감수성이 생겨납니다. 그들의 삶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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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속의 책을 찾아서 읽어라.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에서 다른 책들을 인용을 하거나 다른 책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책들을 책의 앞쪽이나 메모지에 적어두자. 그리고 그런 책들을 찾아 읽어보자.

다른 방법은 흔히들 메타북이라고 하는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몇 권의 책을 소개해본다.


# 『책은 도끼다』,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 『지식인의 서재』, 『행복한 서재』, 한정원

# 『공부할 권리』, 정여울

#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조우석

# 『이젠 함께 읽기다』, 신기수 外

# 『월경독서』, 목수정




2. 책과 관련된 잡지를 구독하거나 찾아보라.


잡지를 보면 기본적으로 많은 종류의 책이 소개된다.

또한 먼저 읽어본 전문 서평가나 작가들의 소개가 된다. 

이런 잡지들을 읽다보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을 접할 기회가 생겨서 특히 유익하다.


# 『기획회의』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 달에 두 번 출간이 된다.

# 『책 Chaeg』, 책과 문화 예술에 대해 소개하는 잡지, 월간지다.

# 『월간채널예스』, 온라인서점 YES24 에서 발행을 한다. 

    나는 이걸 받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이곳에서 주문을 한다.




3. 작가의 저작을 탐하라. 


어떤 책을 읽다가 감명깊거나 인상적이었다면,

그 저자의 다른 책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간혹 아닐 수도 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책들이 궁금해진다.

한 명씩 좋아하는 작가들을 늘려나가라. 

그들이 궁금해지고, 그들의 책이 궁금해진다.


# 박범신의 『소금』을 읽고

-  『고산자』,『소소한 풍경』,『더러운 책상』,『산다는 것은』,『은교』 를 찾아 읽었다.

#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 『인생』을 읽었다.

# 천명관의 『고래』를 읽고

- 『나의 삼촌 브루스리 1,2』,『고령화 가족』 을 읽었다.

# 이덕일의 『조선의 왕을 말하다』를 읽고

- 『근대를 말하다』,『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회영과 젊은 그들』,『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윤휴와 침묵의 제국』,『사도 세자가 꿈꾼 나라』  를 읽었다.

#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영혼의 미술관』,『뉴스의 시대』,『행복의 건축』을 찾아 읽었다.




4. 책을 추천해주는 다른 매체를 활용하라.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모르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추천해주는 책을 읽어보라.

책은 물꼬를 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만 잘 선택하면 꼬리를 물게 되기 때문이다.

물꼬를 트는 데는 다른 자극이 필요할 때도 있다.


#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 진행 : 이동진, 김중혁, 이다해

#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 창비
- 현재 시즌2를 진행 중, 개인적으로는 시즌1을 더 추천한다.

# tvN, 『비밀독서단』 : 현재는 『비밀독서단2』

- 다양한 책을 선정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는 책 100'을 소개해준다.

# http://sosullist.com/

-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소설리스트를 참고

- 작가들이 소개하는 소설들, 좋은 소설을 만날 수 있다.

# 어플 iinnk 

- 이번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알게 됨

- 그곳 담당자는 영화에 왓챠라면 책에는 잉크라고..

- 만들어진지 얼마 안되고 방문자가 많지 않아서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괜찮음




5. 읽을 책이 생각나지 않으면 세계문학전집 목록을 찾아보라.


나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생각이 안나면

세계문학에 포함되어 있는 책들의 맨 뒷 페이지를 본다.

각 출판사 별로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기 때문에 그 목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민음사>, <문예출판사>, <열린책들> 출판사의 세계문학 목록을 찾아본다.

고전의 경우에는 <책세상>을 추천하고, <범우사>의 한 손에 잡히는 책들도 괜찮다.


이런 책들은 처음에는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한 번만 빠져보길 바란다. 이 책들의 표지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그에 비할 바가 못된다. 사실 읽기 힘든 책이 더 많긴 하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재미와 보람이 있다.




6.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어라. 독서 모임을 가져라.


책은 혼자 읽을 때와 같이 읽을 때는 많이 다르다.

똑같은 책을 일고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내 느낌을 말하고, 상대방이 읽은 내용을 듣다 보면,

단순히 책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크다.

그리고 자기가 모르고 있던 양질의 책들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마 처음에는 엄청 어색할거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너 어제 그 영화봤어?

어제 그 프로그램 봤어? 는 서로 물어봐도 너 그 책 읽어 봤어?는 쉽지가 않다.

무언가 먼저 말하기가 그렇다. 어색하다.  하지만 모임에 적응해 보라.

책 읽는 새로운 재미를 얻게 될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이런 기회가 항상 아쉽다고 핑계를 대본다.




7.  서점에 간다. 그리고 마음가는 책을 선택한다.


이 글은 개인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어서 쓴 글이다.

여러 가지 책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지만 결국 답은 내 맘대로다.

그냥 표지 하나를 보고 끌리는 책이 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직접 서점에 가서 종이를 만져가면서 책의 한 구절을 읽어가면서

마음 가는대로 책을 선택하는 게 답이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 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


- 1980.01.05 움베르트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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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왔습니다. '박웅현 작가의 『다시, 책은 도끼다』 출간' 이라는 제목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관심작가에 대한 신간알리미 서비스를 등록해두었더니 이렇게 관심 작가들의 책이 나올 때 문자를 보내줍니다. 최근에는 정유정, 박웅현, 유시민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이 문자로 날아옵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반가운 문자입니다.


박웅현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고 했을 때, '아, 책 잘 파시는 분이 오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분은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자신의 책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저서에 소개하는 책들까지 독자들이 사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분입니다. 지난 번에 『책은 도끼다』를 읽고 세 권의 책을 주문했는데,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 같습니다.


작가의 서문을 보면 『책은 도끼다』가 독서를 어떻게 해야할까 에 대해서 집중을 했다면, 『다시, 책은 도끼다』는 역시 기존과 마찬가지의 형식이지만 조금 더 개별적인 책들에 집중하면서 내용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읽고 나니 『책은 도끼다 2』라고 해도 좋겠네요. 앞으로 계속 이어서 출간이 되어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1 이제는 시습(時習)이다.



우리에게는 심사, 깊이 생각함이 빠져 있는 듯 합니다. 많이 읽는 게 제일이잖아요. 1년에 100권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심사할 시간이 없죠.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적으로는 많이 읽었을지 몰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책 속의 지식이 진짜 내 것이 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습, 즉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려는 노력입니다. 이 문장을 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양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주관적인 이성으로 내가 책에 담긴 내용은 제대로 이해한다면 소중한 지식이 된다는 사실도요.


예전의 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입니다 .여전히 그 모습 중 많은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박웅현 작가는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어서 읽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으로 읽는 저와는 다릅니다. 그가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라면 저는 차 창 밖으로 지나가는 거리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저는 차 안에서 가끔씩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습(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다)을 하려면 생각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도대체 사유, 사색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지? "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알거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떼고 머릿 속에서도 잠시 떠나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도 써보고, 혼자 멍하니 생각도 해보는 겁니다. 지나간 일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고요. 그냥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나 혼자 산다〉를 보니 '멍 때리기 시합' 도 있네요. 이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마 말은 쉬워보여도 스마트폰에 매몰되어 버린 이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지혜보다 높은 것이 있다, 느끼는 것"  

- 고은


책 속에 보면 '북 스마트', '스트리트 스마트' 라는 말이 나옵니다. 책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랑 실제 경험을 통해서 얻어내는 것입니다. 저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 '책을 읽고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자연의 소중함과 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글을 쓰지만 정작 산을 제대로 찾아가지 않습니다. 허울 뿐입니다. 알맹이가 없어요. 조금씩 경험을 하다보면 알게 됩니다. '북 스마트'도 중요하지만 결코 '스트리트 스마트'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시각적인 것에서 한정된 것에서 촉수가 오감으로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감각이 늘어났다고 그만큼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들 간에 서로 연결되면서 자극과 경험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에게 하는 간절한 충고입니다. "이젠 시습이다."



#2 미성(未成)의 시간 그리고 질문



인생을 직선으로 놓고 봤을 때, 9할은 기존(旣存)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에요. 내가 살고 있는 당대, 내가 타고난 삶의 조검 등 대부분의 것은 기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나머지 1할인데, 그것의 9할은 기성(旣成)입니다. 이미 이루어졌어요. 저는 이제 오십대이고, 남자로 태어났고,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이건 끝난 겁니다. 되돌릴 수 없어요. 이것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이 1할의 1할입니다. 바로 미성(未成)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미성의 시간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1할의 1할이니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미성이 곧 기성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미성이 기성으로 넘어갈 때 후회가 없어야 겠지요. 그러려면 미성의 시간에 집중해야 합니다. 


제 책상 위에 붙어있는 글귀가 하나 있습니다.


나의 탄생은 내가 결정한 바 없고,

선택한 바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탄생 이후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이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생각하는게 

인문학적 사유의 첫번째 과제라는 말의 의미다.

- 『쓰잘 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中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


도정일 선생은 '탄생 이후의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감당은 '마땅히 견디어 냄'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던지 간에, 그리고 지난 과거가 어떠했던지 간에 이미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마땅히 견디어 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미성의 시간에 집중하고 미성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있게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미성의 시간을 어떻게 의미있게 보내야 할까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 얻은 대답은 '질문'이라는 단어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구 중에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과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스스로 질문하지 않게 되면 남들이 정해놓은 길, 남들이 가는 길을 생각없이 따라 가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조금 더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다면 아쉬운 일은 생겨도 후회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자기들만의 독법(讀法)을 찾아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책에서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해봤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박웅현 작가 만의 소설읽는 법입니다. 그는 밀란쿤데라의 『커튼』이라는 책을 읽은 후에 소설을 읽는 재미가 확 달라졌다고 합니다. 


알랭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얘기했죠.

우리는 부정확한 정보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고요.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의 정확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사랑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치통과 그사람의 방귀끼는 습관과 그 사람의 짜증내는 모습, 이 모든 걸 다 알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어요. 부분적인 정보만 가지고 사랑에 빠진 뒤 나머지를 내 상상으로 채워요. 그 상상은 대부분 내 욕망이지요. 그리고 3,4년 후 사귀다 상대가 내 맘대로 안되면 넌 왜 내 바람대로 안되냐고 화를 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원래 그 모양이에요. 이 또한 사랑의 기본적인 속성이죠.


여기서 커튼은 사랑하는 사람의 좋은 면만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커튼을 걷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원래 이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죠. 로맨틱한 상황에 갑자기 배가 아파오고, 나름 잘 보이려고 입은 옷이 너무 꽉 끼어 숨을 참고 신발에 뒷꿈치가 까집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소설에서는 잘 다루지 않아요. 정말 로맨틱하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우리의 삶은 커튼 뒤의 모습이 진짜입니다. 그리고 커튼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을 보여주죠. 

그 한 예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입니다. 소설 속에는 커튼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는 거 같습니다. 궁금합니다. 다음에 읽을 책으로 선정해 두었지요.


이 책의 마지막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소개합니다. 제가 항상 읽고 싶다라고 생각만 하고 있는 책입니다. 쉽사리 읽어봐야 겠다고 결정을 못하는 책이죠. 그런데 박웅현 작가는 말합니다. 자기는 스토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한 편의 시를 읽듯, 한 줄 한 줄 명언을 읽듯 읽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책에서 인상깊었다는 부분을 소개합니다. 그가 소개하는 문장들을 읽어보니 저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글귀를 조금씩 얻어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파우스트』도 재미있게 읽을 날이 생기겠죠.

마지막으로 박웅현 작가가 소개하는 파우스트의 글귀를 소개합니다. 역시 후회없는 책이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친구여, 부득이 그대가 청춘을 필요로 할 때란

전쟁터에서 적들이 그대에게 밀어 닥칠 때,

사랑스럽기 한량없는 소녀들이

전력을 다하여 그대 목을 끌어안고 매달릴 때,

빨리 달리기 경주의 월계관이 멀리

도달하기 어려운 골인 지점으로 눈짓하고 있을 때,

회오리 바람처럼 돌아가는 격렬한 춤을 춘 다음

주연을 베풀어 술 마시며 밤들을을 지새울 때 올시다.


지상의 작은 신이라 자처하는 놈들은 언제나 판에 박은 듯,

천지창조의 그날 그대로 괴상망측하지요

차라리 당신이 하늘의 빛을 비춰주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이 조금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텐데요.

인간은 그걸 이상이라 부르며

어떤 짐승보다 더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데만 쓰고 있어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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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소설 『미국인』은 앞 부분에서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 라고 하는 문장이 있다.


나는 그 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할 것이다


- 이미도, 『똑똑한 식스팩』 中



저 역시 『미국인』 에 등장하는 한 남자와 같습니다.

나쁜 운명을 깨우기가 무섭습니다.

그런데 좋은 운명, 나쁜 운명이라는 것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죠.

저에게 닥쳐오는 좋은 운명(행복), 나쁜 운명(불행) 을 모두 받아들이도록 마음가짐을 가져야 겠습니다.

좋은 운명과 나쁜 운명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결국 하나의 운명이 되고 한 인간의 생이 되겠죠.

위축되지 마십시오. 저도 위축 될 때 마다 한 번 씩 이 글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당당하게 큰 걸음을 잊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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