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국내소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국내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어가면서 좋아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정유정, 김훈, 조정래, 황석영, 한강, 김중혁, 박민규, 천명관, 박범신, 김훈, 최인호, 김연수, 공지영 작가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작품을 만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연이 안 닿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안타까웠던 인연 중에 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은희경' 작가입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지만 처음으로 작품을 만나게 되었네요.
은희경 작가는 얼마 전에 『중국식 룰렛』라는 소설집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만난 작품은 2006년 출간된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라는 작품입니다. 총 7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하루에 한 작품씩 읽었습니다. 단편 소설의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지게 되었지요.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작품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거 같습니다. 하나는 여자들을 소재로 하고 여자들의 심리를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은희경 작가의 표현력입니다. 처음 접하는 그녀의 글에 포스트잇으로 좋은 문구에 붙이기 바빴습니다.
오늘은 소설 속의 내용은 접어둘 생각입니다. 그것보다 '여자' 라는 단어에 대해서 남자의 입장에서 조금 생각해 봅니다.
제 주변의 여자들을 생각해봅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두 명은 당연히 엄마와 아내입니다. 과연 내가 그녀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들었습니다.
엄마는 그저 '엄마' 였습니다. 여자로서의 엄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생각을 해 본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라는 호칭을 얻기 전 부터 엄마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꿈꿨던 여자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이구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알게 됩니다. 엄마가 '엄마'라는 호칭을 얻으면서 '여자'로서 많은 것을 희생했겠구나! 가슴 속에 여전히 묵혀있는 아쉬움이 많겠구나!
오랫동안 만나오고 함께 살고 있는 아내를 과연 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자와 여자는 너무나 다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의 '사람' 이라는 단어는 아마 여자를 가리킬 것이라 추측해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 만의 생각과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 보면 남편과 있을 때는 행복해보이지만 실제 아내의 마음은 텅 비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걸 모릅니다. 소설 속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남자 분들은 여자의 마음을 배울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작가의 표현력이었습니다. 서사의 관점으로 소설을 읽는 편인데 은희경 작가의 소설 속에서는 중간 중간 눈에 드는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가족이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아프게 깨물면 아프게 물린다. 그렇다고 가볍게 물었다가는 자칫 서로를 놓칠 수도 있다. 너무 세게 물면 - 끊겨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듯이.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中, p34>
골목에서 한 떼의 술꾼들이 삶은 밤에서 나오는 밤벌레처럼 비틀거리며 기어나왔다. - <여름은 길지 않았다 中 , p241>
여대 앞 골목에서는 누군가 마대에서 담아와서 쏟아놓은 것처럼 발랄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51>
그때 그녀가 젓고 있던 커피가 작은 물살을 이룰 만큼 동요를 일으키며 좀 거칠다 싶게 문이 열렸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56>
이런 문장들을 만나면서, 혼자 상상을 합니다. 정말 삶은 밤의 밤벌레가 생각납니다. 그 벌레가 술 취한 사람이라 생각해 봅니다. 재미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마대 자루를 쏟아냅니다. 발랄한 젊은 이들이 서로 웃으면서 쏟아져 나오네요. 이래서 작가는 작가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오랜만에 저에게는 새로운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에 좋은 작품이 워낙 많으니, 당분간은 소설읽는 재미가 생겨나겠네요.
다음은 그녀의 대표작인 『새의 선물』 로 은희경 작가를 만나 볼 생각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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