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 에릭슨의 심리치유 수업 - 밀턴 H. 에릭슨 (지은이), 시드니 로젠 (엮은이), 문희경 (옮긴이) / 어크로스

멋진 심세계 - 올더스 헉슬리 (지은이)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 - 오이겐 드레버만 (지은이), 김태희 (옮긴이) / 교양인

일리아드 - 호메로스 (지은이)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지은이)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 카를 구스타프 융 (지은이)., 김세영 (옮긴이) / 부글북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 아이스킬로스 (지은이)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마루야마 겐지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 바다출판사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 마루야마 겐지 (지은이), 고재운 (옮긴이) / 바다출판사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은이)

시민 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은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지그문트 바우만 (지은이), 강지은 (옮긴이) / 동녘

원형과 무의식 - 카를 구스타프 융 (지은이)

라스무스와 방랑자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은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지은이)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지은이)

최초의 인간 - 알베르 카뮈 (지은이)

타인의 고통 - 수잔 손택 (지은이), 이재원 (옮김)

별헤는 밤 - 윤동주 (지은이)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 - 크리슈나무르티 (지은이), 김은지 (옮긴이) / 청어람미디어

내면의 황금 - 로버트 A. 존슨 (지은이), 박종일 (옮긴이) / 인간사랑

큰바위 얼굴 - 너대니얼 호손 (지은이), 고정아 (옮긴이)

마음사전 - 김소연 (지은이) / 마음산책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 장 뤽 낭시 (지은이), 이영선 (옮긴이)

철학자와 하녀 - 고병권 (지은이) / 메디치미디어

척하는 삶 - 이창래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

리어왕 - 셰익스피어 (지은이)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 우치다 타츠루, 오카다 도시오 (지은이) , 김경원 (옮긴이) / 메멘토

나는 길들지 않는다 - 마루야마 겐지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 바다출판사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이반 일리치(지은이), 허택 (옮긴이) / 느린걸음

이반 일리치의 유언 - 이반 일리치, 데이비드 케일리 (지은이), 이한, 서범석 (옮긴이), 박홍규 (감수) / 이파르

인간이해 - 알프레드 아들러 (지은이), 라영균 (옮긴이) / 일빛

내 무의식의 방 - 김서영 (지은이) / 책세상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지은이)

이성과 감성 - 제인 오스틴 (지은이)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정헤신, 진은영 (지은이) / 창비

책도둑 - 마커스 주삭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백년의 지혜 -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 민음인

공산당선언 -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은이), 이진우 (옮긴이) / 책세상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 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은이), 김경원 (옮긴이) / 갈라파고스

열정과 기질 - 하워드 가드너 (지은이), 임재서 (옮긴이) / 북스넛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 루이즈 디살보 (지은이), 정지현 (옮긴이) / 예문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 윌 슈발브 (지은이), 전행선 (옮긴이) / 21세기 북스

관찰의 인문학 -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은이), 박다솜 (옮긴이) / 시드페이퍼

내 그림자가 나를 돕는다 - 데이비드 리코 (지은이), 김하락 (옮긴이) /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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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감정 : '사랑'  B조르바



오늘 아침에는 걸어서 출근을 해볼까? 

1시간 정도의 거리를 퇴근 시간에는 몇 번 걸어보았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는 아침에는 처음 걸어 본다.

거리는 버스에서 보아오던 출근 길과는 사뭇 다르다.

자전거 도로에는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등교 시간이 9시로 바뀌면서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한 시간을 걸어가면서, 저절로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간다.

회사에 거의 다다랐을 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손에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걸어 간다.

장미꽃은 다듬어지지 않았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학교 가는 길에 빨간 장미를 보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각나서, 바쁘게 한 송이를 꺾어가는 듯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젊음과 풋풋함이 그리워지고, 부럽기도 하다.




최근에 강신주의 『감정 수업』 처럼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출근 길에 본 빨간 장미 한 송이에서 '사랑' 이라는 단어로 이어졌다.


사랑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남녀 간의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하나였는데 지금과 마찬가지로 서로 자존심을 세우고 다투어서 제우스가 나눌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서로를 더 찾아 헤매이는 듯 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익숙해지기 오래 전부터 이미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전에 어디선가, 어쩌면 전생에서, 또는 꿈에서 만났던 것 같기도 하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원래 우리와 하나였다가 떨어져나간 우리의 "반쪽"이기 때문에 이런 익숙한 느낌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태초에 모든 인간은 등과 옆구리가 둘에, 손과 다리가 넷, 하나의 머리에 두 얼굴이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자웅동체 였다. 이 자웅동체들은 워낙 막강하고 자존심도 강해서 제우스는 이들을 남자와 여자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모든 남자와 여자는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간 반쪽과의 결합을 원하게 되었다.   


 - 알랭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어릴 때 만난 반쪽(반쪽은 정말 반쪽인지 아닌지 찾기가 쉽지 않다.) 과는 많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사랑을 한다.

그래서 소중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래서 잊지 못한다.

하지만, '어리다'는 표현보다는 '젊다'라는 표현이 입에 달라붙는 시기가 오면,

사랑이라는 표현이 조금 다르게 다가오게 되고,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서는 배워야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의 능동적 성격은, 준다고 하는 요소 외에도, 언제나 모든 사랑의 형태에 공통된 어떤 기본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다.

(중략)

만일 사랑의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은 아니다. 존경은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이와 같이 존경은 착취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존경은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존경하려면 그를 잘 '알지'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보호와 책임은 지식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면 맹목일 것이다. 지식은 관심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허할 것이다. 지식에는 여러 층이 있다. 사랑의 한 측면인 지식은 주변에 머물지 않고 핵심으로 파고드는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을 그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이다. 나의 취향에 맞게 고치려는 것이 아니고,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된다.

잘못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요소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1개월 간 데이트 폭력 집중신고기간 중에 무려 1,279건의 피해가 접수되었다. 

이 중 61.9%는 폭행 및 상해, 17.4%는 감금, 협박, 5.4%는 성폭력으로 신고가 되었으며 심지어 2건은 살인 및 살인미수 였다.


캠페인의 표어는 '너는 사랑이라 부르고 나는 폭력이라 부른다' 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은 찾아 볼 수 없다. 

데이트 폭력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고, 우리는 말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책 제목 그대로, 이제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한 번 쯤 생각해보자.

태어날 때 부터 우리는 자식으로서 부모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어느 덧 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부모가 되었다.

부모 자식 사이에는 과연 어떤 사랑의 자세가 필요할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끔 "아빠(엄마) 인생은 아빠(엄마)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야" , "내 인생에 상관하지 마" 같은 대사가 튀어 나온다.

이 말은 너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인생이 자식의 인생이 되기는 싶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자식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삶은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완전히 변해 버린다. 

세상의 중심은 아이들을 향하고, 그들의 삶은 조금씩 우선 순위가 밀려간다.

어느 순간 내가 아버지가 된 다음에야 알았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태어날 때 부터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당신들에게도 엄마, 아빠라고 부르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꿈을 품고, 사랑을 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이가 무엇인가를 했기에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이미 기쁘다고 전해야 한다. 이상적인 모델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그 대신 내 눈앞에 있는 아이에게서 출발해야 한다.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을 기준으로 현실 속의 아이를 보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기준으로 삼고 현실 속의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쁨이다. 그 아이의 어떤 모습이라도 좋게 보인다. 바로 그런 느낌을 아이에게 말로 전해주는 것이 용기를 주는 것이다.


"나이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아이가 몇 살이든 대등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해요. 아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듯 칭찬하는 건 아예 그만두세요."


- 기시미 이치로,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中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육아에 대한 일이 항상 고민이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니 아이를 대해야 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아들러는 말한다. 나이와는 관계가 없다고. 아이가 몇 살이든 대등하다고 한다.

이 구절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닿고 반성을 했던 부분이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내 자식이더라도 개인적인 인격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버지라고 강요하고, 내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님을 내가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재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진짜' 사랑이다.


남녀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더 나아가 타자에 대한 사랑.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본능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본능에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조금 더 대화하고, 조금 더 배워야 겠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로 '내 안의 감정 : 사랑' 편의 문을 닫습니다.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사랑이 다른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이 커지기 시작하면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주고 싶은 충동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야 하네.'


사랑이라고 불리는 그것

두 사람의 것이라고 보이는 그것은 사실

홀로 따로따로 있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전개되어

마침내는 완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이 오직

자기 감정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자기를 연마하는 일과가 되네'


서로에게 부담스런 짐이 되지 않으며

그 공간과 거리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두 사람이 겪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혼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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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악(惡)은 무엇일까?




온라인 서점에서 문자가 날라왔다. 예전에 예약했던 정유정 작가의 신작 『종의 기원』 이 도착한다고 한다.

보통 책이 출간되기 전에 사전 예약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정유정 작가이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영화로 치자면 누구나 기대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에 이어서 네 번째로 만나는 책이다. 

하나같이 마지막 장까지 스스로 호흡을 관리하면서 읽어야 할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했다.

어찌 그녀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토요일 새벽 3시다. 방금 책의 마지막을 덮은 다음에 서둘러 이렇게 글을 남긴다.

아직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뒷목의 근육이 뻣뻣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소설은 읽고 나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한기가 올라와서 긴 옷으로 서둘러 갈아입었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책을 접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에필로그, 작가의 말을 순서대로 읽었다.

작가의 말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있다.


책을 편 독자들에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는 하나 이야기 자체로서, 혹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부디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 (P383)


아주 힘들게 읽었다. 책의 소재 자체부터 너무나 자극적이다. 

작가 역시 이를 알았을 것이지만, 그렇게 깊숙히 밀고 가면서 진정으로 끄집어 내고 싶은 것이 있었나보다.

소재는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 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불편한 거는 그 살인에는 존속살인이 포함된다.


소설은 사이코패스인 유진의 시선과 아들이 사이코 패스인 걸 알고 살아왔던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서 전개된다.

정유정 작가의 특징이기도 한 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는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어쩌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해버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과감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의 입에는 오르기 조차 망설이는 주제이기에 어쩌면 많이 망설여졌을 테지만,

그러기에 더 과감한 표현이 이어졌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프로파일러 분에게 감사하다는 글을 보니.

유진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서 실제 일어난 사례도 많이 분석해본 듯 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예전에 있었던 존속살해 사회 기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과 몇 일 전에 강남역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살인이 벌어졌다. 

뉴스에는 듣기에도 무서울 정도의 살인 사건이 연일 보도되어 진다.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너무나 잔인하고, 이유가 없고, 반성도 없다. 

세상이 사는 게 점점 무서워지고 있다.


이 소설은 싸이코패스라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부터 인간의 근본적인 악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묻는다.

작가도 프로이트로부터 실마리를 악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P380)


나 역시 내면에는 일상 생활에서는 표출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욕망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상당히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위일 때가 있다.

입 밖으로 내밷기 힘들고 홀로 생각이 스쳐가기도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만이 알고 있기에 내뱉기 힘들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불편하지만 쏘아붙인다.

그래서 많이 불편하고 속이 메스껍기도 하다. 작가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즐겨달라고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했다. 하지만 역시 '정유정' 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유정의 새로운 스릴러를 읽는 내내 움크리고 있었고, 새벽이라 오롯이 들리는 내 숨소리에 긴장이 더했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후유증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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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서점에 들렸다. 책을 좋아하고 서점에 가는 것을 즐기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에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서점이라는 간판을 보면 반갑고 신기할 정도로 동네에서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면 대형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서점으로 가야한다. 

그러다보니 서점을 가려고 가기 보다는 다른 일로 쇼핑몰에 갔다가 서점으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도 역시 서점을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의 서점 나들이에 가족들은 모두 한 권의 책을 손에 잡았다.


아내는 요리 코너를 한참 서성이다 샐러드 요리책을 한 권 골랐다.

첫째 아이는 요새 한창 빠져있는 『마법천자문』 5권을 손에 꼭 쥐었다. 

이 책을 몰랐을 때는 도대체 이 책이 뭔데 항상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오나 궁금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천자문을 손오공이 나오는 만화로 표현한 책이었다. 

둘째 아이는 한 때 대형마트 주변 교통을 마비시키기도 했던 '터닝메카드' 스티커들이 가득찬 『터닝메카드 스티커북』을 보며 웃음짓는다. 막내 아이는 그저 좋다고, 서점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져보기 바쁘다.


나 역시 서점을 그냥 나서기가 아쉬워 예전부터 읽으려고 정리해둔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선택한 책이 예전에 다른 블로그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다.


▲ 몽마르트에 있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조각상 

사진출처 : 블로그 (현실과 이상사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는 총 다섯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 생존 시간 카드

  ◎ 속담

  ◎ 칠십리 장화

  ◎ 천국에 간 집달리



단편집을 읽으면서 마르셀 에메의 글에 매료되었다. 

근래에 읽은 단편집 중에 몇 권을 뽑으라면  체호프의 『체호프 단편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마르셀 에메의 단편도 다음에는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단편집으로 뽑을 것 같다.



■ 당신은 한 달에 몇 일을 살 수 있을까요?


다섯 편의 단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소설은 『생존 시간 카드』 였다.


항간에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새로운 배급제에 관한 소문이다.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대처하고 노동계급의 수익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비생산적인 소비자들, 이를테면 노인, 퇴직자, 금리생활자, 실업자, 기타 다른 군입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라는 것이다. (P39)


당연한 얘기지만 그 법령의 취지는 쓸모없는 사람들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생존 시간을 줄이자는 것뿐이다. 말레프루아가 설명하기를, 쓸모없는 사람들은 한 달을 다 사는 게 아니라 그 무용성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해놓고 다달이 그 일수만큼만 살게 될 거라고 했다. 그들에게 발급될 생존 시간 카드는 벌써 인쇄되어 있는 듯하다. (P40)


자기 생존 시간 배급표를 팔겠다는 그의 제안은 나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식인귀나 사람을 공물로 받았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듬거리며 반대의 뜻을 밝히고 그의 배급표를 거절했다. 그 대신에 아무런 대가 없이 그에게 약간의 돈을 주었다. (중략) 나는 도저히 그를 설득할 수 없어서 결국 배급표 한 장을 받고야 말았다.


아주 큰 부자인 바데 씨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그는 6월 30일에서 7월 1일 사이에 무려 1천9백67일, 즉 5년하고도 4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P70)


지금껏 접한 어떤 소설에서도 접하지 못한 소재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이 소설을 소개하고 싶었다.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해서 정부에서는 사람들의 유용성에 따라서 한 달에 몇일을 살 수 있는지를 정해둔 생존시간카드를 배급한다. 어떤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사람들마다 생존시간 카드가 배급되고 작가인 소설 속의 화자는 한 달 중 15일 살 수 있는 생존카드를 받는다.


시작부터 불편하다. 여기서는 구분이 명확하다. 사람들의 유용성으로 생존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선정한 유용성의 기준으로 사람들이 서열화 되어지고, 구분되어진다. 

그리고 생존카드는 거래가 되어지고, 형편이 어려운 노동계급들은 얼마 안되는 생존시간 조차 살기가 힘들어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카드를 판다. 그리고 구매자는 그만큼 한달 동안에 살 수 있는 시간이 연장된다. 

소재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환상 소설 같지만, 작가는 분명히 무언가를 꼬집어서 비틀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마르셀 에메의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1940년대 프랑스이다. 그 당시의 프랑스의 어떤 모습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76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모습은 어떠한가? 라고 자문해 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생존 시간 카드라는 유형적인 것은 배급받지는 않았으나, 분명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서 그 카드를 무형으로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하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어떤 이가 만약 한 달 중 18일을 살 수 있다면, 그 달의 18일 자정이 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 달의 1일이 되면 전 달에 사라졌던 장소로 돌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라지는 순간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에 사라져버리고, 누군가 침실에서 사라진다.

다음 달의 1일이 되면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가고 있고, 누군가의 침실에서는 장소를 잘 못 맞춘 여러 명의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  프랑스 문학의 희귀한 보석, 마르셀 에메 Marcel Ayme


▲ 마르셀 에메 (1902년 3월 29일, 프랑스 - 1967년 10월 14일)


작가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실제로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큰 눈에 짙게 위로 솟은 눈썹, 눈썹과 조화를 이루는 듯한 귀가 눈에 띈다. 왼쪽 입고리가 살짝 올라가며 주름진 입가에는 장난기가 가득해 보인다.

내가 접한 그의 소설은 짧은 단편 5편이 수록된 이 한 권의 책에 불과하다.

하지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마르셀 에메 만의 독특한 색깔과 기발한 상상력이 눈에 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익살스럽지만 날카로운 일침도 놓치지 않는 모습 또한 인상 깊다.

왜 프랑스 문단에서 '희귀한 보석' 이라는 표현을 그에게 선사했는지 짧게나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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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錦繡)


1. 수를 놓은 직물

2. 아름다운 직물이나 화려한 의복

3. 아름다운 단풍이나 꽃을 비유하는 말

4. 시문, 훌륭한 문장을 비유하는 말

 

 

지금껏 알지 못했던 작가의 책을 읽었습니다. 미야모토 테루라는 일본작가의 『금수』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순전히 제가 신뢰하며 듣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소개되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소설과 비소설을 번갈아가며 소개하는데,

이동진이 직접 선정하는 소설은 아직까지 읽으면서 후회가 없었던 만큼 믿고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송태욱 씨의 역자 후기에도 이 책을 번역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이 『이동진의 빨간책방』 이라고 하니,

하마터면 만나지 못했을 작품을 만나게 해주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금수』 는,

한 때는 부부였지만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이혼하게 되고,

10년 후 우연찮게 한 케이블카에서 만난 아키와 아리마가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이야기입니다.

뜻하지 않는 사건이라 말한 것은 아키의 남편인 아리마가 어느날 한 여관에서 유카코라는 호스티스와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리마의 뜻이 아닌 유카코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으며, 이 사건으로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유카코라는 여자가 누구였는지도 모르는 채, 어떤 일이 벌어져 거기까지 오게 됐는지도 모르는 채 헤어지게 됩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둘에게도 시간이 흘러갑니다.

아키는 모짜르트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의 노부부와 아버지를 통해서 만나게 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선천성 소아마비인 아들 기요타카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아리마와 헤어진 후, 다시 남편에게 마음을 쏟지 못하고 남편과 거리는 멀어집니다. 동양학 조교수인 남편은 한 여제자와로 이어집니다.

아키는 아리마 그리고 새롭게 만난 남편 모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 그리고 몸이 불편한 아이를 처음에는 아리마 탓으로 돌리지만 결국은 자신의 업보라 여기고 초연히 받아들입니다.

 

저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기요타카는 나와 가쓰누마 소이치로 사이에 태어난 아이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기요타카 같은 아이도 낳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탓이다. 아리마 야스아키라는 남자 탓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기요타카라는 가여운 아이를 낳게 한 것이다. 저는 그때 아마 알전구의 희미한 빛 아래서 요괴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p160

 

내 아이는 왜 그런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왜 그 할머니에게는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었는가, 왜 그 사람은 흑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그 사람은 일본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뱀에게는 손발이 없는가, 왜 까마귀는 까맣고 백조는 하얀가, 왜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병에 시달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태어나는가...... 기요타카라는 인간을 낳은 어머니로서 저는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합리한 불공평이나 차별의 진정한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당신의 편지를 보면서 저는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 할머니가 말한 이야기가 일소에 부칠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혹시 진실이라고 한다면...... (p193)

 

아리마는 아키와 헤어진 후 끊임없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우연히 케이블카에서 만나게 된 것도 빚에 쫓겨 헤매이다가 거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싸구려 여관의 어둠 속에 홀로 앉아있고 고양이와 쥐를 보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고양이와 쥐라는 존재가 모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쳐한 처지는 지금의 쥐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이 아키와 유카코 그리고 다른 여자들에게는 고양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물 두 마리가 뒤엉켜 있는 걸 보니 죽이려는 자와 죽임을 당하려는 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다툼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허락한 사이의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고양이는 수십 번이나 쥐를 공중으로 던져 올렸고 쥐가 움직이지 않고 옆으로 쓰러지자 오른쪽으로 굴리고 왼쪽으로 굴리며 너무나도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제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고양이는 쥐의 옆구리를 물어뜯었습니다. 쥐의 몸은 살아 있는 채 조금씩 줄어 갔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히거나 발을 실룩거리고 있던 쥐가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고양이는 다다미 위에 떨어져 있는 쥐의 피를 핥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미 죽은 작은 동물을 계속해서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쥐의 뼈까지 먹어 치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뼈를 으깨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흘러나온 피를 남김없이 핥아먹은 후 앞발로 입 주위를 정성껏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만은 고양이의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쥐의 꼬리만이 다다미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제 안에 이 고양이를 죽여버리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영문을 알 수 없는 증오 같은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쳤던 것입니다. (p138)

 

아리마의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여 가는 거 같습니다. 어느 날, 자기 앞을 지나가는 전철을 보았을 때는 갑자기 자기도 모르는 무언가와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카코에 의해 동반자살이 이루어지려 했을 때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한 그는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렇게 그 역시 고난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역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다가오는 전철을 보았을 때 앗, 전철이 온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다가온다. 이제 곧 내 앞을 맹렬한 속도로 지나갈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심장도 강하고 빨리 뛰기 시작하여 온몸의 피가 쏴 하는 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습니다. 전철은 바로 근처까지 왔습니다. 저는 눈을 꼭 감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전철이 지나가고, 차단기가 올라가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저는 옆에 있는 사람이 타고 있는 자전거 짐칸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랬던 것입니다. 다가오는 전철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나쳐 갈 때 까지의 시간 동안 제 안의 뭔가와 뭔가가 격렬하게 싸웠던 것 같습니다. (p220)

 

두 사람은 10년 동안의 공백을 서로 알아가고,

그 동안 그 공백이 메어지지 않아서 앙금으로 남아 있고,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열네 통의 편지로 채워갑니다.

그리고 채워짐과 동시에 서로 각자의 삶을 새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단순히 단편적인 주요 사건을 표현하자니 단순히 치정에 대한 이야기네 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직접 한 자 한 자 읽다보면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아키와 아리마가 서로 주고 받은 열네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문체 속에서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리고 문장이 상당히 섬세하고, 뱉어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속을 후벼 파기도 합니다.

어쩌면 소설 속의 내용 중에 일부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작가의 글에 힘없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만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 감동이 사그러지는 아쉬움을 달래려 이렇게 또 다시 흔적을 남깁니다.

'미야모토 테루', 저는 또 한 분의 소중한 인연을 만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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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과 올바른 선택을 위한 길 - 자유론을 다시 읽다.


■ WHY ?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원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근본 원인인지 다시 찾아보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한다. 5Why 방법론은 Why를 반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근본 원인을 파헤치는데 사용된다. 이런 방법론의 시작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서 기인한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강의하는 형식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면서 제자들의 생각을 이끌어 냈고, 제자들은 스스로 생각의 골을 깊이 파고 들었다. 그렇게 고대의 철학들이 하나씩 깊이를 더해갔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고 가정, 회사, 기타 사회생활에서 선택을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어떤 때는 여러 대안을 모색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 없이, 순간의 빠른 결정을 해야할 시기도 존재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고,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가슴 한 켠에 약간의 의심쩍은 부분이 남아있을 때가 있다. '아마 이럴 경우는 없겠지?' 라는 유혹의 손길은 쉽게 놓을 수 없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자.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게 미궁에 빠지는 문제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무언가 살짝 꺼림직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잘 되잖아. 이런 잘못된 성공은 경험으로 굳어지고, 결국은 반복되고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게 된다.

방법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어질때까지 질문을, why를 반복해야 한다.

 

■ 문제해결을 위한 토론 그리고 자세

이런 근본 원인을 찾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토론'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내가 잘 모르는데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심사숙고해서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다면, 풀리지 않는 부분이 어디인지 명확히 정해야하고, 그것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렸다면 상대방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확실하게 이해를 했다면 잘못된 자신의 의견을 바꾸어야 한다. 상대방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과 어떤 게 다르고 어떤 것이 같은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렇게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세가 있다. 우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기본전제를 가져가야 한다. 동시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의 의견이라도 그 속에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에 나왔던 이 부분도 말을 해야 할때 항상 염두해 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데이의 [세황금문]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 진가를 높이는 방어전

어떤 일을 진행하다보면 내가 한 것이 잘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보다는 '내가 한 일은 문제가 없어.', '내 의견이 틀리지 않았어' 와 같이 다른 의견에 대해서 반박할 필요가 있을 때가 종종 발생한다. 어떻게 보면 이미 만들어낸 성과에, 이미 정립한 의견에 대해서 수없이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수고스러움과 소모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과정 또한 나름 긍정적인 영향을 이끌어 낸다. 권투선수들을 생각해보자. 챔피언에 올랐다고 끝이 아니다. 항상 도전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도전자를 꺾을 때마다 그 선수의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내 의견이 내 주장이 내가 만들어낸 무언가가 타인들로 부터 신뢰를 얻게 되고, 그것은 개인의 진가를 더해지게 만든다.

 

■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상에서의 선택

타인과 토론을 하고 자기 의견에 대한 근거를 정립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만족되었더라도 문제가 해결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의사결정에는 수없이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정치적인 게임, 사람들의 심리적인 문제, 위계 구조 등이 엮어지면서 단순히 토론을 통해서 넘어 설 수 없는 범위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렇게 세상에는 불확실성, 불합리, 부조리가 존재하기에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들이 의사결정과정에서 새로운 변수로 그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때는 어느 정도의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할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리스크를 자기가 수용할 수 있을때까지는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리스크 수용은 개인과 그 의사결정을 한 조직에게는 크나큰 짐이 되어 버린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고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외에도 사람들마다 나름의 방법론과 전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저에 반드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른 '사람의 중요성' 이다. 올바른 선택과 문제해결을 위해서 토론을 같이 하는 것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람'도 결국은 감정이 존재하는 '사람'이다. 상대를 단순히 어떤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로서의 존재가 아닌 사람으로서 인정하는 마음이 바탕으로 존재해야 진정한 올바른 선택이 이루어질 것이고, 풀리지 않는 문제가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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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출장을 와서 퇴근을 하고 바닷가 답게 회식으로 회센터를 갔다.

이틀 연속으로 먹는 술과 회에 곤욕을 치른 날이었다.

술자리에서 잠깐 밖으로 나와서 회센터 뒤쪽으로 걸어나갔다.

고깃배들이 정박되어 있고 배마다 '○○호' 라고 적혀있다.

어떤 배는 가장의 이름이, 어떤 배는 사랑하는 자식의 이름이,

아니면 고깃배 주인의 긴 고심 끝에 지어진 이름들 일 거라 생각한다. 

하루에 한 컷씩 사진을 찍기로 했으니, 오랜만에 본 배들을 찍어본다.

사진을 찍고 나서 보니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이

마치 불길이 일어나는 것 처럼 보인다.

앞으로 적어도 한 달을 넘게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무언가 답답한 이곳에서 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소소한 장소라도 찾아보고,

의미있는 것들을 조금씩 발견해내면서 하루 하루의 나날을 힘들게 보내지만을 말자.

그래도 지수와 세 아들 재훈, 재인, 재윤이가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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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김중혁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몇 번을 언급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그 전에는 '커트 보니것' 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작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관심으로 이어진다.


'커트 보니것'이라는 이름을 온라인서점에서 찾아보니 여러 권이 나왔다. 그 중에서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그의 회고록으로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회고록으로 살짝 워밍업을 해보고, 작품을 찾아나가도록 해야겠다.

우선 낯설은 작가이기에 책의 날개에 적혀 있는 작가 소개부터 차근차근 읽어본다.



<커트 보니것>


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1922년 11월 11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인 건축가 커트 보니것 시니어와 이디스 보니것 사이에서 태어났고, 2007년 4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블랙 유머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로, 리처드 브라우티건,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학과 미술에 재능이 뛰어난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가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유머감각을 키웠다. 청년기에는 코넬 대학, 테네시 대학 등을 오가며 공학자와 작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다 1943년 2차 대전 막바지에 징집된다.

전선에서 낙오하여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그곳에서는 히로시마 원폭에 버금가는 인류 최대의 학살극이 벌어진다. 연합군이 사흘 밤난으로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를 용광로로 만들고, 십삼만 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했던 이 체험을 통해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난다.


『나라 없는 사람』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소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 짧은 글 속에서는 인권, 반전, 환경, 유머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문체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내용은 진지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유머와 비유등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든다. 동시에 쉽지만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다. 독특한 문체다.

나는 이런 글이 너무나 좋다. 첫 몇 장을 읽자마자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 모습에는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커트 보니것은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냈다.


권력은 여전히 거칠고 난폭한 억측가들의 손에 있다. 그들은 지식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그 억측가들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값비싼 졸업장과 함께 모든 지식과 교양을 내팽개쳤다. 그중에는 심지어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의 졸업장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골적인 억측이 이렇게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부탁하건대 여러분은 그러지 말아달라. 하지만 우울한 사실이 있다. 만일 여러분이 계속 교육을 통해 얻은 광대한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때문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억측가들이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억측해보건대 열 배 정도는 될 것이다. (p87)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보다 신뢰도가 낮다는 정치인을 생각할 때 드는 생각이다. 

분명히 능력있고 자신의 본분을 아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일부 인물들은 도무지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행동을 한다.

누가 봐도 저건 아닌데 라고 생각되는 것을 서슴치 않고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은 옆에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아마 그들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의 위트와 통찰은 여러 군데에서 드러난다.


이 지구와 "빌어먹을 인간"을 창조한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의심이 든다면 조간신문을 읽어보라. 어떤 신문이든 상관없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


"우리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가지고 온갖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독성물질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죽이고 있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네. 우리가 미쳤다는 증거 아닌가? 내 생각에, 지국의 면역체계는 AIDS,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그러니까 그 멍청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 기억한?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구절은 식인 행위를 말하는 거라네. 잡아먹을 게 얼마나 많은가? 그래. 지구는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것 같아." (p119)


책의 중간 중간에는 이렇게 그가 남긴 삽화들도 등장한다. 이 삽화는 몇 개는 작은 액자를 해서 간직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커트 보니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휴머니스트적이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

책의 뒷 표지를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던 보니것이 약속을 깨뜨리게 해주셔서 - 스터즈 터클(작가, 방송인)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 <뉴욕타임즈> 북 리뷰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이 표현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에세이 하나에 작가 보니것에 매료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의 작품 중에 몇 번 들어 본 게 『제5도살장』인데 절판이 되어서 구하기가 힘이 든다. 늦지 않게 이 책이 재출간되거나 어디서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보니것의 한 마디로 마치겠다.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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