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련된 책은 너무나도 많이 나와 있고, 어쩌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무분별하게 소비가 된다.
'행복' 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 특별하지만 일상이 되어버렸고, 추구해야 하지만 꺼리고 싶은 '행복'이 되어 버렸다.
모두들 '행복', '행복' 이라 하다보니 피로해졌고, 그들이 말하는 방식은 거의 유사하다. 그렇기에 더욱더 '행복'에 대해서 말하는 책들은 쉽게 손이 잡히지 않았다.
얼마 전에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읽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 놓았다. 그러면서 언급된 책이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라는 문구를 보고 나서 과연 어떤 근거로 저런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은 '행복'에 관련된 다른 책들과는 달리 개인적 경험과 감성적인 방법의 '행복'이 아닌 과학적인 실험과 근거를 바탕으로 행복을 논한다 했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제목 『행복의 기원』을 만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2천년 동안 사람들에게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내재되어왔다. (삶의 목적 = 행복)
(삶의 목적 = 행복)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공식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본 이 책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삶의 목적을 정의한다. 바로 (삶의 목적 = 생존)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우리가 행복해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새로운 접근이 마음에 든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p64)
다시 행복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생존하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행복은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인가?
우리는 흔히 행복이라고 하면 로또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얻는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물질적인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는 답은 행복과 관련된 것은 '사람'이다. 우리들이 결국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 교수 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p84)
미국 다트머트 대학의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저면한 뇌과학자로 꼽힌다. 최근 그는 자신의 책에서 큰 질문을 하나를 던졌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 (p85)
약 10여 명의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정글을 나와 초원 생활을 하며 집단의 크기는 150명 정도로 커졌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하게 됐다. 이처럼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는 것이 최근 널리 각광받는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의 핵심이다. (p86)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원인은 달라도 기능은 같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다. "너 아직도 TV보니? 당장 나가서 여자친구 붙잡아!" 사회적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다. (p87)
우리의 뇌는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동일하게 받아들인다.
책에서도 언급된 흥미로운 실험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진통제로 많이 먹는 타이레놀을 사회적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먹을 경우 육체적 고통을 겪을 때 완화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고통이라는 우리의 생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요소로 뇌는 그 위협을 먼저 판단해서 전달하고, 그 위협을 막으려 한다.
그런데 대단히 안타까운 견해가 있다.
바로 행복은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만약 행복이 노려글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원래 행복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있다면 어떨까? 가뜩이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게다가 플라스틱수저 라는 말까지 도는 상황에서 행복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면. 갑자기 힘이 쭉 빠지고 나는 행복유전자를 받고 태어났기를 하는 개인적 이기심으로 돌아간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그래도 행복에 있어서 유전적 개입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
학계의 정설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덜 알려진 사실이 바로 행복과 유전의 관계다. DNA가 행복을 완전히 결정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학자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른 통계적 수치지만, 학계의 통상적인 견해는 행복 개인차의 약 50%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p133)
여기서 행복과 관련된 유전적 개입은 '외향성'이라는 특성이다. 외향성 즉, 서은국 교수가 말하는 '사람쟁이'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타인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결국 외향성이 행복을 만드는 구나.
이렇게 또 다시 내향적인 나같은 사람은 또 다시 좌절해야 하는가? 다시 이 책을 덮고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Quiet』로 돌아가야 하는가.
책에서도 내향적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두둔하는 것 같지 않다. 단순히 어색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고 권한다. 보통 책들을 이렇게 얘기하면서 '그래도 유전적인 것을 극복하고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라는 탈출구를 하나 만들어 놓는데 이 책은 이런 말을 남길 뿐이다. 시크하지만 밉지 않다.
P145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한다. 어색함 대 즐거움.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새로운 만남이 주는 즐거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래된 연인과의 데이트를 택하지만, 실제 경험을 측정하면 낯선 이성과 식사한 후의 즐거움이 더 크다. 그러니 내향적인 사람들이여, 어색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볼 필요가 있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책인데 좋은 책을 읽고 리뷰를 하다보니 말하고 싶은 것이 많다. 지금까지 언급된 부분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다.
■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
■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우리의 뇌도 그런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사실
■ 행복은 외향성이라는 유전자를 통해서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다는 사실
이외에 다른 흥미로운 부분이 몇 부분이 더 남아있다.
이 책은 리뷰가 두 번으로 이어져야 겠다.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런 책, 좋은 인연이다.
p27
생존 위협이 커질수록 인간도 본능적인 모습으로 회귀한다. 영양 비축을 위해 칼로리가 높은 초콜릿을 찾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은 자신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p34
우리 조상의 남녀 비율은 1대 1이 아니라 1대 2로 여자 비율이 높다. 인간의 경우, 그나마 일부 일처제라는 제도 덕분에 남녀 간 불균형이 최근 줄어든 것이다. 다른 포유류의 경우, 이 비율이 3(수컷) 대 7(암컷) 정도까지도 기운다. 거의 모든 암컷은 자식을 갖지만, 소수의 수컷만이 유전자를 남겼다는 말이다.
이 성비 불균형 때문에 남녀의 기질 차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여자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지향적 전략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수컷의 경우는 다르다. 어차피 최고가 못되면 짝짓기에서 낙오된다. 매사에 '모 아니면 도' 같은 극단적인 전략을 택할 수 밖에 없다.
p45
인간의 관점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이유와 목적이 있어 보인다. 강물은 바다를 향해 가고, 봄비는 꽃을 피우기 위해 내리는 것 같다. 이처럼 세상만사를 어떤 원인이나 목적, 계획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관점을 철학에서는 '목적론'이라고 한다. 자연의 그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품고 있다는 생각, 이 목적론적 사고의 원조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p47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가령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아빠라는 사실, 또 하나는 목적론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저명한 물리학자 캐롤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에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 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수천 개의 부푼으로 이루어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p51
만 50세가 되던 해,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판한다. 수많은 종의 생명체들이 어떻게 지구에 출현하게 됐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이들의 생존과 소멸이 갈리는지 설명했다.
간략한 요약은 이렇다. 종의 각 개체는 유전적 변이 등에 의해 조금씩 다른 모양과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다. 60억 인구의 생김새와 성격이 서로 다르듯, 이런 특성 중 어떤 것은 특정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적합하고, 어떤 것은 불리하다. 후세에 대물림되는 개인 간의 '매우 사소한 모든 형태의 차이'가 결국 진화의 긴 과정에서 증폭되어 생존 여부를 가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섬의 씨앗이 모두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다고 하자. 이 섬에서 태어나는 참새는 튼튼한 부리를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 이 섬에서는 큰 부리 참새들이 많이 살아남게 되고, 그들의 후손 중에는 '큰 부리 유전자'를 가진 녀석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 과정이 수백, 수천 세대에 걸쳐 지속되면 이 섬은 결국 큰 부리 새들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들을 관찰하며 얻은 영감이다. 간편한 이해를 위해 지극히 단순히시켰지만 이과정이 [종의 기원]에서 설명하고 있는 '자연선택'의 요지다.
p57
위트는 사람이 가진 마음의 '수준'을 나타낸다. 위트는 창의성의 표현이며, 높은 창의성을 가진 사람은 멋진 꼬리를 소유한 '인간 공작새'가 되는 셈이다. 창의성이나 별다른 재주가 없는 수컷에게 남는 옵션은 하나다.
p58
피카소가 남긴 말
"단지 예술가의 작품만을 아는 걸로 부족하다. 그가 언제, 왜, 어떤 이유로 그 작품을 남겼는지 이해해야 한다.
한 연구에서는 남학생들에게 만화 한 장면을 보여주고, 그 밑에 최대한 재미있는 캡션을 붙이도록 했다. 동기 유발을 위해 한 쪽에는 재미있을 수록 더 큰 상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돈조건), 다른 쪽에는 그냥 멋진 여인과 해변을 걷는 상상만을 하게 했다. (연예조건), 각 조건에서 참가자들이 쓴 캡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읽힌 후, 그것이 얼마나 재치있는지 채점하도록 했다.
돈을 통해 동기유발을 시킨 쪽 보다 연애조건에서 나온 생각들이 더 재미있었다. 심리학자들이 이 현상에 붙인 이름은 매우 적절하다 '피카소 효과' 여성들이여, 남자가 왜 그렇게 애써 썰렁한 농담을 하는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p59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했다. 행복을 뭔가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가 모든 인생사가 향하는 최종 종착지로 보았다. 이 철학적 관점이 빚어낸 행복의 모습이 2천 년간 큰 흔들림 없이 유지돼 왔고 이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행복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이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특성은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도구다. 밀러에 의하면, 신체적 특성 뿐만 아니라 고차원의 정신적인 특성도 이 '생존 도구'의 역할을 한다.
p60
드디어 결정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왔다. 행복감 또한 마음의 산물이다. 창의력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생존을 위한 중요한 쓰임새가 있는 것이 아닐까? 행복은 삶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 철학자들의 의견이었지만, 사실은 행복 또한 생존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마치 피카소의 창의성 같은?
p63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감정은 생존에 어떤 도움을 줄까? 다시 말해 인간은 왜, 또 무엇을 위해 행복감을 느낄까?
p64
인간은 행복해지기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p68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쾌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p69
호모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성취? 아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이 된 자들은 이 강렬한 기분을 느끼고 또 느끼기 위해 일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유전자를 퍼뜨리려는 거창한 포부 때문이 아니라, 개가 새우깡을 통해 얻는 쾌감을 인간도 최대한 자주, 많이 느끼기 위해 고기와 이성에 몰두한 것이다. 덕분에 그들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읽고 있는 우리에게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했다.
p71
생명체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 이유도 벌, 신언장, 꽃게와 마찬가지로 생존이다. 당연한 얘기다.
p82
왜 이토록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막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생존, 세상의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
p84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 교수 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짝짓기라는 궁극적인 생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타인이 필요하다. 포유류는 자기 혼자 유전자를 남길 수 없다. 아무리 사냥을 잘해도 짝짓기 상대가 없는 동물은 지구에서 사라졌다. 현대생활은 맹수나 배고품의 위협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여전히 짝짓기는 절대적인 생존과제로 남아 있다.
p85
미국 다트머트 대학의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저면한 뇌과학자로 꼽힌다. 최근 그는 자신의 책에서 큰 질문을 하나를 던졌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
p86
약 10여 명의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정글을 나와 초원 생활을 하며 집단의 크기는 150명 정도로 커졌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하게 됐다. 이처럼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는 것이 최근 널리 각광받는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의 핵심이다.
p87
중요한 점은 이렇게 철저히 사회적인 뇌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일상을 여전히 주도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행복한 사람은 바로 이 고지식한 사회적 뇌를 잘 '이용'하는 자들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의 진화 여정에서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죽음을 뜻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 받았다. 이 '생존 비법 패키지'를 뜯어보면 두 가지 중요한 내용물이 나온다.
하나는 고통의 경험이다.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원인은 달라도 기능은 같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다. "너 아직도 TV보니? 당장 나가서 여자친구 붙잡아!" 사회적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다.
p89
최근 연구들은 두 가지 고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뇌 영상 사진을 보면 신체적, 사회적 고통은 동일한 뇌 부위에서 발생한다. 손이 잘리든, 애인이 떠나든 뇌는 똑같은 곳에서 비상경보를 발동한다. 둘 다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p91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연구자들의 예상대로 매일 타이레놀을 복용한 집단은 통제 집단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사회적 상처를 덜 느꼈다. 마치 두통을 없애주듯, 진통제는 다름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고통도 덜어준다는 것이다. 놀랍지만 가능한 일이다.
고통의 역할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다. 뇌의 입장에서는 그 위협이 신체적인지 사회적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뇌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종류의 '고통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다. 혼자가 되는 것이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다.
위의 조상이 물려준 생존 패키지의 두 번째 내용물은 ,우리의 관심사인 '쾌감'이다. 고통과 같은 부정적 경험이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면, 긍정적 정서의 기능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생명체가 오래 생존하지 못하는 것처럼 쾌감을 상실한 동물 또한 문제가 생긴다.
p92
배고픈 사냥꾼은 눈 앞에 토끼가 나타날 때, 토끼 고기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익어갈 때, 한 입 뜯어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깨알 같은 쾌감들을 흠뻑 느껴야 또 사냥을 나가게 되고, 이렇게 사냥을 나가게 되고, 이렇게 사냥을 꾸준히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탐지기의 쾌감전구는 선별적으로 켜진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분별없이 아무 때나 쾌감 신호가 울린다면 탐지기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래서 회색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때 쾌감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 탐지기의 쾌감 신호는 생존에 절실히 필요한 자원을 취할 때만 선별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며칠 굶주린 배를 채울 때, 꽁꽁 언 몸은 온천물에 담글 때, 이렇게 몸을 보존하는 경험을 할 때 강렬한 쾌감이 발생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했던 또 하나의 절대적 자원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람'이다. 먹는 쾌감을 느껴야 음식을 찾듯 사람이라는 절대적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아주 좋아해야 한다. 타인을 소 닭 보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친구나 연인이 생길리 없다.
이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식욕의 근원은 쾌감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강추'한다는 말이다.
p96
이 작은 무리가 무섭게 번성해 불과 몇 만 년 만에 남극에서 북극까지 지구 구석구석을 정복하고 살고 있다. 몇 만년의 시간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이 짧은 시간에 인간이 지구를 정복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극도의 사회성,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최근 저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지구에서 최고의 생존 성공담을 가진 동물은 개미와 인긴이다. 두 생명체의 공통된 특성은 유별날 정도로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한 개체로서는 그다지 탁월한 능력이 없지만, 서로 돕고 나누고 이용하는 복잡한 사회적 능력 덕분에 두 종은 지구에서 유례가 없는 성공신화를 썼다. 그래서 윌슨은 인간의 지구정복을 '사회적 정복'이라고 표현했다.
p97
칭기즈칸이 좋은 예다. 그가 몽골제국의 깃발을 들고 흑해에서 태평양까지 세상을 정복하며 남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유전자다. 옥스포드 대학의 크리스 타일러-스미스 교수 팀이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인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약 1,600만 명의 남자들이 칭기즈칸의 염색체를 보유하고 있다. 대략 따져보면, 세상 남자 200명 중 하나는 칭기즈칸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극도로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뇌는 온톤 사람 생각뿐이다. 희노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다. 또 일상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70%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회적 경험에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행복감(쾌감)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고까지 생각한다.
p98
행복에 대한 사실 중 중요하고도 확고한 결론은 무엇일까?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나의 짧은 결론은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라는 것이다.
p104
인생의 여러 조건들, 이를테면,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을 다 고려해도 행복의 개인차 중 10~15%정도밖에 예측하지 못한다. 몇 해 전 한국 심리학회에서 체계적으로 조사한 한국인의 행복에 대한 결론도 이와 비슷하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의 차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10%와 관련된 이 조건들을 얻기 위해 인생 90%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p108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
빈곤을 벗어난 사회에서 돈은 더 이상 행복의 키워드가 아니다.
p109
복권 당첨, 새 집, 안정환 골, 짜릿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일도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지만, 기쁨도 시간에 의해 퇴색된다. 이런 빠른 적응 과정 때문에 비교적 최근의 일들만이 현재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p110
감정의 또 다른 특성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UCLA의 알렌 파르두치 교수는 '범위 빈도 이론'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소개했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극단적인 경험을 한 번 겪으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그 후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상위권 성적의 학생이 전교 1등을 한 번 하고 나면, 예전 성적을 다시 받았을 때 실망하게 된다. 고깃국 맛을 한 번 보면 예전의 콩나물국이 왠지 밋밋해지는 것처럼
P111
하지만 초콜릿을 우습세 생각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될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P114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주관적 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외모 뿐만 아니라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과 행복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P117
많은 사람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그래서 항상 '오버'를 한다. 이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저것을 놓치면 너무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P118
미래를 과도하게 염려하고 또 기대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산다. 대다수의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고등학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 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p123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 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행복 연구에서 아직까지도 품고 있는 질문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p133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그래도 행복에 있어서 유전적 개입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
학계의 정설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덜 알려진 사실이 바로 행복과 유전의 관계다. DNA가 행복을 완전히 결정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학자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른 통계적 수치지만, 학계의 통상적인 견해는 행복 개인차의 약 50%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P137
최근 등장하는 행복 지침들은 이런 식으로 행복의 증상을 원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긍정성 또한 행복한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증상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어느 정도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난 기질이다.
P138
유전적 영향에 의해 외향성 수치는 어느 정도 정해지며, 그 외향성의 정도가 개인의 행복수치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P139
외향성이 높은 사람의 특성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는 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외향성이 높을수록 자극을 추구하고, 자기 확신이 높고, 처벌을 피하는 것보다는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둔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찾는 본질적 이유가 자극 추구라는 흥미로운 설명도 있다. 사실 사람만큼 '자극적인 자극'도 없다.
구체적인 이유야 무엇이든 외향성은 한 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그들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경험 시기도 빠르고, 경험 상대도 많다.
P141
외향성이라는 것은 심리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개개인에게 붙여놓은 일종의 명찰일 뿐, 그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 명찰이 붙은 사람들이 가진 독보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사회성이다.
외향성을 과일에 비유한다면, 이 과일은 사회성이라는 즙을 듬뿍 머금고 있다. 외향성과 행복이 깊이 연관된 이유는 사회성이라는 즙 때문이다. 지금부터 과일의 껍데기는 버리고, 이 즙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자. 사회적 경험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식물에 있어 광합성만큼 중요하다.
우선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보내는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의 타고난 기질이 어떻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든,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P145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한다. 어색함 대 즐거움.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새로운 만남이 주는 즐거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래된 연인과의 데이트를 택하지만, 실제 경험을 측정하면 낯선 이성과 식사한 후의 즐거움이 더 크다. 그러니 내향적인 사람들이여, 어색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볼 필요가 있다.
P147
시간도 마찬가지다. 자원봉사들이 높은 행복감을 경험하는 이유도 행복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라는 자원을 현명하게, 즉 타인을 위해 쓰기 때문이다.
왜 친사회적인 행동은 행복감을 유발할까?
한가지 가능성은 남에게 도움을 줄 때 즉각적인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친사회적 행동은 타인과의 결속력을 높여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단기적 관점에서 고기를 나누어 먹는 것은 손해다. 이 손실감을 상쇄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한데, 그것이 즐거움일 수 있다.
P151
왜 사람이 행복에 그토록 중요할까? 뇌의 행복전구가 켜지는 것은 개가 서핑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하다.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 뇌는 설계되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타인과 교류할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역으로, 의무감이나 수단으로써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가장 피곤한 것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역시 사람 때문이다.
가장 빈곤한 인생은 곁에 사람이 없는 인생이다. 그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베인 상처도 잘 아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P155
축구의 팀 특성이 행복에 있어서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행복을 달성하기에 유리한 조건들을 갖춘 문화도 있고, 그렇지 못한 문화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그림을 행복한 기질을 가지고 행복감이 높은 문화에서 태어나는 것이지만, 이것은 코가 더 오똑하면 좋겠다는 여자의 바람 같은 것이다. 아무튼 개인의 행복수준은 외향성 같은 성격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그가 살고 있는 문화도 추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행복의 관계를 살펴보자. 역시 사람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P157
프랑스는 이 사건 후 지단을 영웅으로 대접했다. 그의 박치기 장면을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 프랑스 지성의 상징 퐁피두 박물관 앞에 세워 놓았다. 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 선수들과 함께한 만찬 자리에서도 시라크 대통령은 지단에게 "당신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 그래서 프랑스가 당신을 사랑하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프랑스 축구 선수, 할 만하다. 아니, 무슨 일을 하며 살든 이런 사회가 행복해지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곳이다. 개인의 가치와 감정을 최대한 존중하고 수용하는 문화
P158
행복 연구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국가가 한국과 일본이다. 높은 경제 수준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행복도는 낮기 때문이다. 경제 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여러 중남미 국가들 보다 한국과 일본의 행복감이 낮다. 경제 수준만으로 국가의 행복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신흥 경제국들도 행복 부진 그룹에 포함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소득 수준의 싱가포르는 작년 갤럽에서 조사한 150여 개국 비교 자료에서 가장 정서가 메마른 국가 중 하나로 나타났다. 긍정적 정서, 부정적 정서 모두 조사국 중 가장 낮게 나온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이런 국가들이 가진 문화적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문화적 특성은 왜 개인의 행복감과 충돌하는 것일까?
P161
개인과 집단의 뜻이 정면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핵심적인 차이다.
집단이 개인에게 때로 과도한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문화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이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의 '행복 부진'국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 소득 수준이 높은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도, 사실 상당 부분 돈 때문이 아니라 유복한 국가에서 피어나는 개인주의적 문화 덕분이다. 그래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국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거의 소멸된다. 즉,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역할을 한다.
P162
개인주의 문화의 어떤 점이 개인의 행복 성취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일까? 역으로 집단주의 문화의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우선, 심리적 자유감이다. 자유감이란 사실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보편적으로 지지해주는 문화가 있고, 이렇게 살기 위해 세상과 문을 닫고 기인이 돼야 하는 문화도 있다. 행복이라는 씨앗의 개인의 자유감이 높은 토양에서 쉽게 싹을 틔운다.
P169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쓰지 마라 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p178
자유감의 부족과 과도한 물질주의 등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의 공통 원인은 너무 예민한 타인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유아독존의 삶을 살자는 말이 아니다. 균형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 우리의 무게추는 남들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을 때가 많고, 이 경우 장기적으로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감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올 수 있다.
p180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꿈,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이다. 그래야 사람의 가장 단 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다.
p184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혁명적이다.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p188
행복하기 위해 쾌락주의자가 되자는 말이낙? 다소 그럴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자신을 집단의 일부로 생각할 수록 행복의 쾌락적 부분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