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긴 호흡으로 읽는 장편보다는 하루에 30분이라도 들여서 한 편을 다 읽을 수 있는 단편을 선택하려고 한다. 집에 있는 단편집 중에 골라보니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민음사)이 눈에 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중에는 단연 <무진기행>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다음으로는 <서울 1964년 겨울>이다.

 

<무진기행>은 내용이 기억이 나는데, <서울 1964년 겨울>의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 예전에 <무진기행>은 읽으려고 이 책을 사서 많은 단편 중에 <무진기행>만 골라서 읽고 나머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기억 속에서도 자연스레 지워진 듯 하다.

 

어제 새벽 4시 반에 잠에서 깼다. 다시 눈을 붙일까 생각하다가 조금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방에 들어와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었다. 이 작품을 읽는데 조금은 졸려서 정신이 없었는데, 순식간에 긴장이 됐고 25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을 다 읽었을 때는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오늘 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승옥 작가의 단편은 <무진기행>에서 <서울 1964년 겨울>로 바뀌어 버렸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는 동시에 그림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 저녁에 포장 마차에서 세 남자가 각각 술을 마시고 있다. 아마도 붉은 색 계통의 포장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앞치마를 단단히 동여맨 사장님은 분주하게 안주를 만들고 있을 것이고, 수도가 없어서 큰 드럼통 같은 곳에 물을 기어와서 국물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세 사람은 각자 술을 마시고 있다. 아마도 각자 다른 사연으로 이렇게 술을 마시겠지. 누군가는 단순히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몸만 따뜻하게 하려고 올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깊은 고민 끝에 술이 아니면 해결이 안되어 왔을 수도 있다

 

작품 속에는 김씨 성을 가진 나와 안씨 성을 가진 대학원생과 힘이 빠진 아저씨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각자 마시다가 대화가 통한 나와 대학원생이 한 잔 더 하려고 나서는 순간 힘이 빠진 듯한 아저씨가 함께 하자는 제안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순간 20대 중반 수원역의 포장마차가 생각이 났다. 당시 친구들과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갈 때가 되면 무언가 살짝 아쉬운 감이 있어서 친한 친구 몇 명과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돌뼈나 굴 같은 것을 시켜서 먹곤 했다. 한 번은 친구와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데 옆에 계시던 한 아저씨가 어린 친구들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래도 기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술을 한 잔씩 따라 주시더니 우리가 먹은 술값을 계산하고 안주 하나를 더 주문해주셨다.

 

한 번은 우리보다 10살 정도 많아보이는 두 남자분들이 있었는데,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면서 서로 농담을 던지고 서로 한잔씩 따라주다 보니 이상하게 마치 일행처럼 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그 분들이 같이 한 잔 할 생각이 없냐고 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감자탕 집에 눌러 앉아 술을 먹은 기억도 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힘이 빠진 듯한 아저씨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시작된다. 그날은 아저씨의 아내가 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낸 날이다. 아저씨는 말한다. 아내의 병명은 급성뇌막염이었다고 한다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셩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기증을 하고 그는 4,000원을 받았다고 그리고 오늘 하루 그것을 다 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돈으로 다른 두 사람과 술을 마시고, 귤을 사면서 그 금액은 조금씩 줄어든다. 어쩌면 그 돈은 그 남자의 생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돈은 그들이 화재현장에서 불구경을 하면서 불 속으로 던져버리는데 이때 이미 남자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어가고, 그들은 여관방에 각자 방을 하나씩 잡아서 잠을 잔다.


짧은 글이지만, 그 어떤 장편보다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 왔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냥 이런 글을 써주신 김승옥 작가에게 감사할 뿐이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으면서 무언가 가슴 속에 응어리 진 감정 같은 것이 있고, 그런 것 때문에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진한 감동이 있는데, 부족한 표현력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내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반응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