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단순히 두 종류로 나누어 본다면 거시적인 측면을 바라보는 것과 미시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개인의 생각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전개되는 소설, 수필, 시와 같은 문학은 미시적인 부분입니다. 반면에 역사, 사회, 과학과 같은 분야는 거시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문학은 특히 개인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미세한 개인의 감각을 건드려줍니다. 반면에 세상을 넓은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내가 어느 위치에 있으며, 어떤 환경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 생각함으로써 현재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최근에 인간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입니다.

수렵채집인부터 시작해서 신만이 가능했던 새로운 창조에까지 손을 내밀고 있는 인간, 사피엔스를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솔직히 참신한 주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들은 이미 많은 다른 책에서 접한 내용입니다.

진화론, 세계사, 육식에 반대하는 책, 경제학에 관련된 책등에서 부분적으로 들어왔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강점은 바로 이런 내용들을 사피엔스라는 주제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많은 역사적인 사례를 제시하면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부담스러운 두께의 책이지만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사피엔스』에서는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혁명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약 7만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 그리고 5백년 전에 시작한 과학혁명입니다.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은 낯설지 않지만 인지혁명은 조금 생소합니다. 인지혁명은 사람들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책의 사례를 보면 언어가 없었을 때는 어떤 사냥감이나 채집할 것들을 발견하면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하거나 직접 데리고 가야합니다. 그러다보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사냥감이 도망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언어로 빠르게 위치를 설명해주면 그 전보다는 손쉽게 사냥, 채집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인지혁명 시대의 중요한 점은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확연하게 다른 길을 가게 만들었습니다.


농업혁명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기존의 관점과는 조금 다릅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비교대상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연 세상이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통해서 사람들 개개인은 과연 조금 더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삶으로 변화해갔을까가 궁금합니다. 모두들 현재 만을 살아가기에 어쩌면 영원히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책에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수십, 수백만의 집단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를 문화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문화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바로 '인지부조화'라는 점입니다.


만일 긴장과 분쟁과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가 모든 문화의 향신료라면, 어떤 문화에 속한 인간이든 누구나 상반되는 신념을 지닐 것이며 서로 상충하는 가치에 의해 찢길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되는 핵심적 측면이기 때문에, 별도의 이름까지 있다. '인지 부조화'다. 인지 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지 부조화'의 개념을 더 알아보겠습니다.


어떤 상황에 부딪혔는데 그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이 기존에 철석같이 믿고 있던 생각과 정면으로 모순될 때, 사람들은 합리적인 결론보다는 부조리하지만 자신의 기존 생각에 부합하는 생각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지 부조화의 원리(Cognitive dissonance)'입니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든 그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믿으려 애쓰며, 명백한 판단 착오였어도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개인의 사생활의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결정까지, 인간의 심리를 조종하는 이러한 법칙은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 [네이버 지식 백과]


어쩌면 사람들이 과학과 종료를 모두 믿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인지 부조화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몇가지 더 있었습니다.

하나는 각각의 대륙이 어떻게 발견되어졌으며, 대륙의 발견으로 파생되는 원주민 학살과 경제적 관점으로 이어지는 노예무역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의 잔혹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다른 하나는 동물들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소, 돼지, 양, 닭은 지구상에 인간의 수만큼 필적하는 동물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인간의 먹이를 위해서 길러집니다. 그렇다면 이게 진화론적으로 성공한 것인가? 결국 번식을 많이 했으니 성공한 것인가? 라는 의문제기와 함께 단순히 인간들의 먹이로 전락한 부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워낙 방대한 내용은 다루고 있기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부분이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게 되면 '나(我)'라는 사람 개개인은 정말 전체 인류의 역사의 하나의 점에 불과하고 지구 밖에서 바라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거야 하는 생각도 들게 마련입니다. 동시에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별다를 게 없다고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잔인한 일을 저지른 이들과 같은 인간이기에 지금 내가 하는 평범한 일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비수를 꽂지는 않는지 한 번 쯤 곰곰히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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