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서점에 들렸다. 책을 좋아하고 서점에 가는 것을 즐기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에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서점이라는 간판을 보면 반갑고 신기할 정도로 동네에서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면 대형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서점으로 가야한다. 

그러다보니 서점을 가려고 가기 보다는 다른 일로 쇼핑몰에 갔다가 서점으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도 역시 서점을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의 서점 나들이에 가족들은 모두 한 권의 책을 손에 잡았다.


아내는 요리 코너를 한참 서성이다 샐러드 요리책을 한 권 골랐다.

첫째 아이는 요새 한창 빠져있는 『마법천자문』 5권을 손에 꼭 쥐었다. 

이 책을 몰랐을 때는 도대체 이 책이 뭔데 항상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오나 궁금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천자문을 손오공이 나오는 만화로 표현한 책이었다. 

둘째 아이는 한 때 대형마트 주변 교통을 마비시키기도 했던 '터닝메카드' 스티커들이 가득찬 『터닝메카드 스티커북』을 보며 웃음짓는다. 막내 아이는 그저 좋다고, 서점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져보기 바쁘다.


나 역시 서점을 그냥 나서기가 아쉬워 예전부터 읽으려고 정리해둔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선택한 책이 예전에 다른 블로그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다.


▲ 몽마르트에 있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조각상 

사진출처 : 블로그 (현실과 이상사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는 총 다섯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 생존 시간 카드

  ◎ 속담

  ◎ 칠십리 장화

  ◎ 천국에 간 집달리



단편집을 읽으면서 마르셀 에메의 글에 매료되었다. 

근래에 읽은 단편집 중에 몇 권을 뽑으라면  체호프의 『체호프 단편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마르셀 에메의 단편도 다음에는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단편집으로 뽑을 것 같다.



■ 당신은 한 달에 몇 일을 살 수 있을까요?


다섯 편의 단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소설은 『생존 시간 카드』 였다.


항간에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새로운 배급제에 관한 소문이다.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대처하고 노동계급의 수익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비생산적인 소비자들, 이를테면 노인, 퇴직자, 금리생활자, 실업자, 기타 다른 군입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라는 것이다. (P39)


당연한 얘기지만 그 법령의 취지는 쓸모없는 사람들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생존 시간을 줄이자는 것뿐이다. 말레프루아가 설명하기를, 쓸모없는 사람들은 한 달을 다 사는 게 아니라 그 무용성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해놓고 다달이 그 일수만큼만 살게 될 거라고 했다. 그들에게 발급될 생존 시간 카드는 벌써 인쇄되어 있는 듯하다. (P40)


자기 생존 시간 배급표를 팔겠다는 그의 제안은 나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식인귀나 사람을 공물로 받았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듬거리며 반대의 뜻을 밝히고 그의 배급표를 거절했다. 그 대신에 아무런 대가 없이 그에게 약간의 돈을 주었다. (중략) 나는 도저히 그를 설득할 수 없어서 결국 배급표 한 장을 받고야 말았다.


아주 큰 부자인 바데 씨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그는 6월 30일에서 7월 1일 사이에 무려 1천9백67일, 즉 5년하고도 4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P70)


지금껏 접한 어떤 소설에서도 접하지 못한 소재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이 소설을 소개하고 싶었다.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해서 정부에서는 사람들의 유용성에 따라서 한 달에 몇일을 살 수 있는지를 정해둔 생존시간카드를 배급한다. 어떤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사람들마다 생존시간 카드가 배급되고 작가인 소설 속의 화자는 한 달 중 15일 살 수 있는 생존카드를 받는다.


시작부터 불편하다. 여기서는 구분이 명확하다. 사람들의 유용성으로 생존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선정한 유용성의 기준으로 사람들이 서열화 되어지고, 구분되어진다. 

그리고 생존카드는 거래가 되어지고, 형편이 어려운 노동계급들은 얼마 안되는 생존시간 조차 살기가 힘들어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카드를 판다. 그리고 구매자는 그만큼 한달 동안에 살 수 있는 시간이 연장된다. 

소재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환상 소설 같지만, 작가는 분명히 무언가를 꼬집어서 비틀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마르셀 에메의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1940년대 프랑스이다. 그 당시의 프랑스의 어떤 모습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76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모습은 어떠한가? 라고 자문해 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생존 시간 카드라는 유형적인 것은 배급받지는 않았으나, 분명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서 그 카드를 무형으로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하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어떤 이가 만약 한 달 중 18일을 살 수 있다면, 그 달의 18일 자정이 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 달의 1일이 되면 전 달에 사라졌던 장소로 돌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라지는 순간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에 사라져버리고, 누군가 침실에서 사라진다.

다음 달의 1일이 되면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가고 있고, 누군가의 침실에서는 장소를 잘 못 맞춘 여러 명의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  프랑스 문학의 희귀한 보석, 마르셀 에메 Marcel Ayme


▲ 마르셀 에메 (1902년 3월 29일, 프랑스 - 1967년 10월 14일)


작가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실제로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큰 눈에 짙게 위로 솟은 눈썹, 눈썹과 조화를 이루는 듯한 귀가 눈에 띈다. 왼쪽 입고리가 살짝 올라가며 주름진 입가에는 장난기가 가득해 보인다.

내가 접한 그의 소설은 짧은 단편 5편이 수록된 이 한 권의 책에 불과하다.

하지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마르셀 에메 만의 독특한 색깔과 기발한 상상력이 눈에 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익살스럽지만 날카로운 일침도 놓치지 않는 모습 또한 인상 깊다.

왜 프랑스 문단에서 '희귀한 보석' 이라는 표현을 그에게 선사했는지 짧게나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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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錦繡)


1. 수를 놓은 직물

2. 아름다운 직물이나 화려한 의복

3. 아름다운 단풍이나 꽃을 비유하는 말

4. 시문, 훌륭한 문장을 비유하는 말

 

 

지금껏 알지 못했던 작가의 책을 읽었습니다. 미야모토 테루라는 일본작가의 『금수』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순전히 제가 신뢰하며 듣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소개되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소설과 비소설을 번갈아가며 소개하는데,

이동진이 직접 선정하는 소설은 아직까지 읽으면서 후회가 없었던 만큼 믿고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송태욱 씨의 역자 후기에도 이 책을 번역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이 『이동진의 빨간책방』 이라고 하니,

하마터면 만나지 못했을 작품을 만나게 해주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금수』 는,

한 때는 부부였지만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이혼하게 되고,

10년 후 우연찮게 한 케이블카에서 만난 아키와 아리마가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이야기입니다.

뜻하지 않는 사건이라 말한 것은 아키의 남편인 아리마가 어느날 한 여관에서 유카코라는 호스티스와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리마의 뜻이 아닌 유카코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으며, 이 사건으로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유카코라는 여자가 누구였는지도 모르는 채, 어떤 일이 벌어져 거기까지 오게 됐는지도 모르는 채 헤어지게 됩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둘에게도 시간이 흘러갑니다.

아키는 모짜르트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의 노부부와 아버지를 통해서 만나게 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선천성 소아마비인 아들 기요타카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아리마와 헤어진 후, 다시 남편에게 마음을 쏟지 못하고 남편과 거리는 멀어집니다. 동양학 조교수인 남편은 한 여제자와로 이어집니다.

아키는 아리마 그리고 새롭게 만난 남편 모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 그리고 몸이 불편한 아이를 처음에는 아리마 탓으로 돌리지만 결국은 자신의 업보라 여기고 초연히 받아들입니다.

 

저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기요타카는 나와 가쓰누마 소이치로 사이에 태어난 아이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기요타카 같은 아이도 낳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탓이다. 아리마 야스아키라는 남자 탓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기요타카라는 가여운 아이를 낳게 한 것이다. 저는 그때 아마 알전구의 희미한 빛 아래서 요괴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p160

 

내 아이는 왜 그런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왜 그 할머니에게는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었는가, 왜 그 사람은 흑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그 사람은 일본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뱀에게는 손발이 없는가, 왜 까마귀는 까맣고 백조는 하얀가, 왜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병에 시달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태어나는가...... 기요타카라는 인간을 낳은 어머니로서 저는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합리한 불공평이나 차별의 진정한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당신의 편지를 보면서 저는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 할머니가 말한 이야기가 일소에 부칠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혹시 진실이라고 한다면...... (p193)

 

아리마는 아키와 헤어진 후 끊임없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우연히 케이블카에서 만나게 된 것도 빚에 쫓겨 헤매이다가 거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싸구려 여관의 어둠 속에 홀로 앉아있고 고양이와 쥐를 보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고양이와 쥐라는 존재가 모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쳐한 처지는 지금의 쥐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이 아키와 유카코 그리고 다른 여자들에게는 고양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물 두 마리가 뒤엉켜 있는 걸 보니 죽이려는 자와 죽임을 당하려는 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다툼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허락한 사이의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고양이는 수십 번이나 쥐를 공중으로 던져 올렸고 쥐가 움직이지 않고 옆으로 쓰러지자 오른쪽으로 굴리고 왼쪽으로 굴리며 너무나도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제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고양이는 쥐의 옆구리를 물어뜯었습니다. 쥐의 몸은 살아 있는 채 조금씩 줄어 갔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히거나 발을 실룩거리고 있던 쥐가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고양이는 다다미 위에 떨어져 있는 쥐의 피를 핥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미 죽은 작은 동물을 계속해서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쥐의 뼈까지 먹어 치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뼈를 으깨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흘러나온 피를 남김없이 핥아먹은 후 앞발로 입 주위를 정성껏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만은 고양이의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쥐의 꼬리만이 다다미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제 안에 이 고양이를 죽여버리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영문을 알 수 없는 증오 같은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쳤던 것입니다. (p138)

 

아리마의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여 가는 거 같습니다. 어느 날, 자기 앞을 지나가는 전철을 보았을 때는 갑자기 자기도 모르는 무언가와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카코에 의해 동반자살이 이루어지려 했을 때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한 그는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렇게 그 역시 고난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역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다가오는 전철을 보았을 때 앗, 전철이 온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다가온다. 이제 곧 내 앞을 맹렬한 속도로 지나갈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심장도 강하고 빨리 뛰기 시작하여 온몸의 피가 쏴 하는 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습니다. 전철은 바로 근처까지 왔습니다. 저는 눈을 꼭 감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전철이 지나가고, 차단기가 올라가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저는 옆에 있는 사람이 타고 있는 자전거 짐칸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랬던 것입니다. 다가오는 전철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나쳐 갈 때 까지의 시간 동안 제 안의 뭔가와 뭔가가 격렬하게 싸웠던 것 같습니다. (p220)

 

두 사람은 10년 동안의 공백을 서로 알아가고,

그 동안 그 공백이 메어지지 않아서 앙금으로 남아 있고,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열네 통의 편지로 채워갑니다.

그리고 채워짐과 동시에 서로 각자의 삶을 새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단순히 단편적인 주요 사건을 표현하자니 단순히 치정에 대한 이야기네 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직접 한 자 한 자 읽다보면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아키와 아리마가 서로 주고 받은 열네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문체 속에서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리고 문장이 상당히 섬세하고, 뱉어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속을 후벼 파기도 합니다.

어쩌면 소설 속의 내용 중에 일부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작가의 글에 힘없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만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 감동이 사그러지는 아쉬움을 달래려 이렇게 또 다시 흔적을 남깁니다.

'미야모토 테루', 저는 또 한 분의 소중한 인연을 만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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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김중혁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몇 번을 언급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그 전에는 '커트 보니것' 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작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관심으로 이어진다.


'커트 보니것'이라는 이름을 온라인서점에서 찾아보니 여러 권이 나왔다. 그 중에서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그의 회고록으로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회고록으로 살짝 워밍업을 해보고, 작품을 찾아나가도록 해야겠다.

우선 낯설은 작가이기에 책의 날개에 적혀 있는 작가 소개부터 차근차근 읽어본다.



<커트 보니것>


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1922년 11월 11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인 건축가 커트 보니것 시니어와 이디스 보니것 사이에서 태어났고, 2007년 4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블랙 유머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로, 리처드 브라우티건,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학과 미술에 재능이 뛰어난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가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유머감각을 키웠다. 청년기에는 코넬 대학, 테네시 대학 등을 오가며 공학자와 작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다 1943년 2차 대전 막바지에 징집된다.

전선에서 낙오하여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그곳에서는 히로시마 원폭에 버금가는 인류 최대의 학살극이 벌어진다. 연합군이 사흘 밤난으로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를 용광로로 만들고, 십삼만 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했던 이 체험을 통해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난다.


『나라 없는 사람』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소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 짧은 글 속에서는 인권, 반전, 환경, 유머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문체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내용은 진지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유머와 비유등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든다. 동시에 쉽지만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다. 독특한 문체다.

나는 이런 글이 너무나 좋다. 첫 몇 장을 읽자마자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 모습에는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커트 보니것은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냈다.


권력은 여전히 거칠고 난폭한 억측가들의 손에 있다. 그들은 지식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그 억측가들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값비싼 졸업장과 함께 모든 지식과 교양을 내팽개쳤다. 그중에는 심지어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의 졸업장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골적인 억측이 이렇게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부탁하건대 여러분은 그러지 말아달라. 하지만 우울한 사실이 있다. 만일 여러분이 계속 교육을 통해 얻은 광대한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때문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억측가들이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억측해보건대 열 배 정도는 될 것이다. (p87)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보다 신뢰도가 낮다는 정치인을 생각할 때 드는 생각이다. 

분명히 능력있고 자신의 본분을 아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일부 인물들은 도무지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행동을 한다.

누가 봐도 저건 아닌데 라고 생각되는 것을 서슴치 않고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은 옆에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아마 그들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의 위트와 통찰은 여러 군데에서 드러난다.


이 지구와 "빌어먹을 인간"을 창조한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의심이 든다면 조간신문을 읽어보라. 어떤 신문이든 상관없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


"우리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가지고 온갖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독성물질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죽이고 있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네. 우리가 미쳤다는 증거 아닌가? 내 생각에, 지국의 면역체계는 AIDS,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그러니까 그 멍청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 기억한?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구절은 식인 행위를 말하는 거라네. 잡아먹을 게 얼마나 많은가? 그래. 지구는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것 같아." (p119)


책의 중간 중간에는 이렇게 그가 남긴 삽화들도 등장한다. 이 삽화는 몇 개는 작은 액자를 해서 간직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커트 보니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휴머니스트적이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

책의 뒷 표지를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던 보니것이 약속을 깨뜨리게 해주셔서 - 스터즈 터클(작가, 방송인)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 <뉴욕타임즈> 북 리뷰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이 표현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에세이 하나에 작가 보니것에 매료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의 작품 중에 몇 번 들어 본 게 『제5도살장』인데 절판이 되어서 구하기가 힘이 든다. 늦지 않게 이 책이 재출간되거나 어디서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보니것의 한 마디로 마치겠다.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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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회사에 일이 많아져서 개인적인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경쓰는 것도 많아져서 인지 입 안에 생기는 아구창도 벌써 몇 달째 달고 사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5시간 정도만 자도 충분히 풀렸던 피로가 이제는 7시간을 자도 몸이 예전처럼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일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아쉬웠습니다. 어찌보면 고용이 불안한 지금 시기에는 사치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이럴 때 일수록 저의 긴장을 풀어주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게 해주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책이 다시 답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명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 효용이 있습니다.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도 있을 것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느끼는 가장 큰 효용은 삶의 위안을 준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읽은 김연수 작가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의미가 깊은 책입니다. 11편의 단편이 수록된 책인데, 아침 출근 전에 한 편을 읽기도 하고, 회사를 오고 가는 버스와 점심먹고 잠깐 시간나는 사이에 몇장 씩 읽어가면서 또 한 편을 읽었습니다. 졸린 눈을 감기싫어서 책을 잡고 있다가 손에서 떨어져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본 책은 그의 수필인『청춘의 문장들』뿐이었습니다. 사실 너무나 유명한 『청춘의 문장들』을 예전에 읽고 나서 감흥이 별로 없어서 그동안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지 않았죠. 최근에 서재에서 어떤 책을 다시 읽어볼까 고르는데 『청춘의 문장들』이 눈에 들었습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짧게 구성된 글들을 읽는데 이번에는 다가오는 문장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역시 같은 책이라도 읽는 이와 또 시간, 분위기에 따라서 다가오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연수 작가의 책들을 찾아 보았고, 그 중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소설 집을 선택했습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그렇게 제 손으로 들어왔습니다.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제목들을 한 번 열거해 보겠습니다.

벚꽃 새해

깊은 밤, 기린의 말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일기예보의 기법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동욱

우는 시늉을 하네

파주로

인구가 나가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이 책을 읽으면서 심적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김연수 작가의 글은 따뜻한 인간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내렸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의 말을 보니 이런 글귀가 적혀있네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 곳이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끝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여기 실린 소설들을 쓰는 2008년 여름부터 2013년 봄까지 5년 동안만은 It's OK. Baby, please don't cry. (작가의 말 中)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가는 데, 처음에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이야기 속의 중심 인물은 화자가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어떤 인물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많이 전개가 되었습니다. 잊지 못하는 옛 연인, 돌아가신 아버지, 실종된 어머니 등 단편마다 잊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을 보다 보면 입을 벌리고 눈을 깜박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애써 입을 꽉 다물고 참다보니 눈물이 가득 맺혀 저절로 떨어지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읽은 느낌을 다시 표현하자면 '애써 담담한 눈물을 참는 깊은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으로 실린 단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그렇게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에서 바다 보면서 3개월 남짓 살았어. 함석지붕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p89)


이 한 권의 책으로 김연수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으로 포함되었네요. 이제는 그의 전작을 찾아보고 한 권씩 찾아 읽는 새로운 재미가 생겼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을 덮으면서 그의 다른 단편집인 『세계의 끝 여자친구』도 이어서 구매했습니다. 올 해 제 독서의 큰 수확 중에 하나가 김연수 작가를 만나게 된게 아닐까 벌써부터 생각이 드네요. 

당분 간은 위로 받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을 거 같습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그런 책일지 아니면 김연수 작가의 새로운 색깔을 보여줄 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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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긴 호흡으로 읽는 장편보다는 하루에 30분이라도 들여서 한 편을 다 읽을 수 있는 단편을 선택하려고 한다. 집에 있는 단편집 중에 골라보니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민음사)이 눈에 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중에는 단연 <무진기행>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다음으로는 <서울 1964년 겨울>이다.

 

<무진기행>은 내용이 기억이 나는데, <서울 1964년 겨울>의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 예전에 <무진기행>은 읽으려고 이 책을 사서 많은 단편 중에 <무진기행>만 골라서 읽고 나머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기억 속에서도 자연스레 지워진 듯 하다.

 

어제 새벽 4시 반에 잠에서 깼다. 다시 눈을 붙일까 생각하다가 조금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방에 들어와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었다. 이 작품을 읽는데 조금은 졸려서 정신이 없었는데, 순식간에 긴장이 됐고 25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을 다 읽었을 때는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오늘 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승옥 작가의 단편은 <무진기행>에서 <서울 1964년 겨울>로 바뀌어 버렸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는 동시에 그림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 저녁에 포장 마차에서 세 남자가 각각 술을 마시고 있다. 아마도 붉은 색 계통의 포장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앞치마를 단단히 동여맨 사장님은 분주하게 안주를 만들고 있을 것이고, 수도가 없어서 큰 드럼통 같은 곳에 물을 기어와서 국물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세 사람은 각자 술을 마시고 있다. 아마도 각자 다른 사연으로 이렇게 술을 마시겠지. 누군가는 단순히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몸만 따뜻하게 하려고 올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깊은 고민 끝에 술이 아니면 해결이 안되어 왔을 수도 있다

 

작품 속에는 김씨 성을 가진 나와 안씨 성을 가진 대학원생과 힘이 빠진 아저씨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각자 마시다가 대화가 통한 나와 대학원생이 한 잔 더 하려고 나서는 순간 힘이 빠진 듯한 아저씨가 함께 하자는 제안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순간 20대 중반 수원역의 포장마차가 생각이 났다. 당시 친구들과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갈 때가 되면 무언가 살짝 아쉬운 감이 있어서 친한 친구 몇 명과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돌뼈나 굴 같은 것을 시켜서 먹곤 했다. 한 번은 친구와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데 옆에 계시던 한 아저씨가 어린 친구들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래도 기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술을 한 잔씩 따라 주시더니 우리가 먹은 술값을 계산하고 안주 하나를 더 주문해주셨다.

 

한 번은 우리보다 10살 정도 많아보이는 두 남자분들이 있었는데,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면서 서로 농담을 던지고 서로 한잔씩 따라주다 보니 이상하게 마치 일행처럼 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그 분들이 같이 한 잔 할 생각이 없냐고 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감자탕 집에 눌러 앉아 술을 먹은 기억도 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힘이 빠진 듯한 아저씨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시작된다. 그날은 아저씨의 아내가 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낸 날이다. 아저씨는 말한다. 아내의 병명은 급성뇌막염이었다고 한다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셩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기증을 하고 그는 4,000원을 받았다고 그리고 오늘 하루 그것을 다 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돈으로 다른 두 사람과 술을 마시고, 귤을 사면서 그 금액은 조금씩 줄어든다. 어쩌면 그 돈은 그 남자의 생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돈은 그들이 화재현장에서 불구경을 하면서 불 속으로 던져버리는데 이때 이미 남자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어가고, 그들은 여관방에 각자 방을 하나씩 잡아서 잠을 잔다.


짧은 글이지만, 그 어떤 장편보다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 왔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냥 이런 글을 써주신 김승옥 작가에게 감사할 뿐이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으면서 무언가 가슴 속에 응어리 진 감정 같은 것이 있고, 그런 것 때문에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진한 감동이 있는데, 부족한 표현력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내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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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지막에 읽은 책은 천명관의 『고래』다.

안타깝게 자주 참여하지는 못하는 책모임에 선정된 도서로 이미 책꽂이 한 켠에 천명관 작가의 다른 책들과 같이 꽂혀있는 『고래』를 다시 손에 잡았다. 고래를 한 번 읽었는데 언제 읽었나 살펴보니 2012년에 처음으로 읽은 책이었다. 읽기 전에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해보려 애썼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정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은 있는데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야기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천명관의 『고래』는 출간 당시에도 이전의 다른 작가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으로 문단에 주목을 받았다. 2012년에 개인적으로 남겨 둔 기록을 보니 그 해에 정유정의 『7년의 밤』도 읽었는데 그 두 책의 이야기 흡인력은 다른 책들을 압도한다라고 적혀있다. 즐겨듣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이 두 권을 엮어서 프로그램을 편성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2000년대의 대표적인 국내 소설로 평하고 있었다.


천명관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시나리오를 썼다. 다른 작가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인 마흔살에 등단한 그의 작품은 그동안 읽은 다른 국내 소설과는 분명 다른 점을 느낀다. 


문학동네소설상에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은희경의 평을 잠시 소개한다.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약간 거창하게 말한다면, 자신과는 소설관이 다른 심사위원의 동의까지 얻어냈다는 사실이 작가로서는 힘있는 출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은희경(소설가)


최근에 장편소설은 잘 읽지는 않았다. 가끔 한 번씩 소설 책을 읽으려고 몇 권을 손에 잡았었지만 중간에 다시 다른 책을 읽었다. 이런 책이 상당히 많았다. 한참 동안 다른 분야의 책을 읽었다. 그래서 다시 손에 잡은 『고래』의 압도적인 이야기에 고마울 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다른 작품이 있었다. 수많은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의 이야기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었다. 마술적 사실주의(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이런 기법이 천명관의 『고래』에서도 엿보인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수많은 남자들과 인연을 맺는 '고래'를 경외하는 금복, 금복이 코끼리 외양간에서 낳은 통뼈를 가지고 말을 하지 못하는 딸 춘희, 금복과 어떻게 인연이 이어지나 궁금하게 했던 너무나도 못생긴 추녀의 이야기, 추녀는 한 양반가의 반편이 아들로 부터 씨를 받고, 그녀에게 태어난 딸은 추녀가 꼬챙이로 눈을 지져 애꾸가 되고 벌을 키우는 이에게 팔아버리는데, 후에 벌을 데리고 나타나는 추녀의 딸의 이야기도 대단히 흥미롭다.


이제는 금복의 남자 흥미로운 남자 인연들을 살펴보자. 금복이 그녀가 사는 곳을 처음 떠날 대 만나게 되는 생선장수, 힘으로는 비할데 없지만 생각은 조금 부족한 걱정이, 한때 야쿠자일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6개의 손가락을 잘랐던 칼잡이, 그리고 금복의 어렸을 때 친구 약장수까지 등장인물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그들의 삶이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에 대한 구성과 함께 이야기 전체를 감싸는 커다란 줄거리인 벽돌로 연결되는 흐름도 흥미롭다. 북쪽의 나라를 다녀온 후 그쪽의 극장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남쪽에는 더 멋진 극장을 지어야한다는 지시로 만들기 시작한 극장 그리고 이를 위해 한 건축가가 찾아나선 벽돌 그리고 그 벽돌에 연결되는 춘희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 구성 역시 참신하기 그지 없다.


중간 중간에 작가가 말해주는 말들이 있다 . 바로 '~법칙' 이라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별도로 표시를 해두지 못해 누군가 정리해 놓은 것을 보니 참으로 다양하다.


관성의 법칙, 생식의 법칙, 화류계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거리의 법칙, 금복의 법칙, 무의식의 법칙, 습관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세상의 법칙, 이념의 법칙, 거지의 법칙, 흥행업의 법칙, 그라의 법칙, 진화의 법칙, 유언비어의 법칙, 만용의 법칙, 자본주의의 법칙, 알코올의 법칙, 플롯의 법칙, 감방의 법칙, 신념의 법칙, 토론의 법칙, 춘희의 법칙


이런 법칙들은 아마도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절묘하게 이름 지어진 이런 법칙이 튀어나올 때 마다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2015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었다. 2012년『고래』를 통해 천명관 작가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인연이 되어서 『고령화 가족』,『나의 삼촌 부르스 리』,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까지 그의 책들을 읽어나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천명관의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좋다. 때로는 너무나 긴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나는 기꺼이 천명관의 긴 작품에는 시간을 내어줄 것이다. 그의 새로운 장편이 2016년에는 출간되기를 그를 아끼는 독자로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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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주의자 선언 (The Individualist Manifesto)



# 하나


대학을 졸업했다.

취직을 했다.

한 달 한 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받으며 한 달 한 달을 살아간다.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세 아이가 생겼다.

아직도 내가 나를 잘 모르겠고, 세상을 잘 모르겠는데

어느덧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고,

남들 대학 갈때 가고, 남들 취직할 때 취직하고, 남들 결혼할 때 결혼하는 게 

모법답안이라면, 나름 대로 아직까지는 답안지를 잘 쓰고 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지만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길로 이어질 것이고, 여지껏 그렇게 살아왔지만,

여전히 잘못된 길인 것 같아서, 한발자국 내딛이면 금방이라도

움푹 주저앉게 될 것 같아서, 제 풀에 죽어서 못 견딜까봐 두렵기도 하다.


나는 누구보다 강하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휘어지지 못해 부러질까봐 불안하다. 



# 둘


아버지, 어머니의 지난 삶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는 올해 나이로 하면 64세, 어머니는 62세다.

지금 내 나이가 34살이다.

아버지가 34살, 어머니가 32살일 때 누나는 10살, 형은 7살, 나는 4살이었다.

내가 취직해서 좋다고 술마시고 돌아다닐 때인 28살.

아버지가 28살, 어머니가 26살일 때 누나는 4살이고, 형은 1살이었다.

삶의 무게가 다르다.


살던 시대가 달랐다 한들 30년 전의 아버지,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지금 나는 방 세개에 큰 자동차에 크게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 당시 아버지, 어머니는 작은 방 한칸에 부엌하나에서 

우리 셋을 키우셨다.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왔다. 어쩌면 그렇게 버텨왔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게 아프다.


나는 지금 책을 읽으면서

회사에 업무가 많아서 저녁 늦게 퇴근해서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고,

개인적인 여가생활을 갖지 못해서 지금의 삶을 계속해서 곱씹고

이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30년 전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 내 자신이 너무나 사치스럽고 부끄럽다.

그래서 그럴 때 마다 아프고 시리다.



# 셋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현재의 나에 대한 생각부터 갑자기 튀어나왔다.

여전히 흔들리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잘 몰라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다른 이의 글에 기대본다.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2부) 타인의 발견 (3부)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책의 구조는 개인-타인-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형식을 취한다.

개인주의자 선언이라 해서 나 혼자만 잘 살아볼거다라는 것은 아닐 거라 짐작은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책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문유석 판사는 우리 사회에서 지나친 것은 집단주의이고, 부족한 것은 개인주의라고 한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 밖에 없고, 그것은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근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p26)


나 역시 오늘부터 합리적 개인주의자 선언을 하는 바이다.



# 넷


사회에 나와 지금까지 겪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는 거다.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의 몫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직업병 때문일까. 어떤 때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도 권력자도 스타도 화려한 겉껍질 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가득했다. 건강 때문에 가족 때문에 자식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흔하디흔해 보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갖고 키우며 사는 일들이 실은 얼마나 전쟁같이 힘든 일인지...(p13)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갸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의 글이다. (p119)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p136)

 

사람은 태어날 때 부터 공감력의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감력 그리고 민감하게 느끼게 하는 감수성은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이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랬으면 좋겠다. 옆의 어떤 이가 너무나 아프고 지쳐있을 때 누군가 힘이 되어주고 같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힘이 들 때 누군가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내 가족들이 힘들고 아플 때 주변에 도와주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공감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세상이 살만하니까. 



# 다섯


진보, 보수, 좌파, 우파. 결국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 문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다층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귀한 것 같다. (p228)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인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p37)


악을 행하는 악마보다 선악 구분조차 없는 백지 상태의 야수가 더 무섭다. 자기 행동의 의미를 성찰할 줄 모르는 무지야말로 가장 위험한 야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야수를 문명의 굴레에서 풀어준 것은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이다. (p235)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치, 사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요소와 그 이면에 숨겨진 것들이 많아서 어떻게 해야 올바른 가치판단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회, 정치는 각각의 세부적인 요소로 들어갈 수록 복잡하고, 실질적인 사례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할 때 더욱더 힘들것이지만, 아직까지 그런 것은 모르겠고 내가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세상이 너무나 자본주의적으로 빠지지 않고, 조금은 더 인간적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위험에 빠졌을 때, 내가 없더라도 사회시스템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고, 한 번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소외되고 버림받는 사회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다루어주며, 조금은 더 공평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 역시 혼란스럽다. 어쩌면 글로는 이렇게 좋은 말을 뱉어내지만, 허위의식으로 가득차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것들이고, 그런 것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들이다.

내가 그렇게 실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 이상을 가끔씩 한 번쯤 들춰내고 조금이라도 그곳에 수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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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읽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메이드 인 공장』를 읽었으니 그의 책 중에 세 권을 읽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장편소설이고, 『메이드 인 공장』수필 혹은 견학기라고 해야할 거 같고, 이번에 읽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단편집이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재미있는 입담이 김중혁의 트레이드 마크를 였지만, 역시 그의 진가는 글 속에서 나온다.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이 좋은 것은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다.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는 않지만, 담백한 글 속에서 나름의 진지함을 유지하는 점은 매력적인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사람은 세상에 참 관심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관찰하는 시선이 상당히 날카롭고, 사람의 내면에 있는 세세한 감정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원초적인 감정을 부담없이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표현해낸다.


포르노 배우와 제작자, 실종된 연예인과 그녀를 찾는 학생 팬, 알콜중독자 남자와 그의 옛 여자친구, 지진 발생으로 인해 겪게되는 것들, 화가와 큐레이터, 정체모를 외계비행물체 출현, 차량에 먼저 몸을 부딪혀 돈을 타내는 보험사기단, 시계공학과 남자와 멀티미디어과 여자


이번 작품에 들어있는 여덟개의 단편에 수록된 등장인물 혹은 주요 단어들이다. 상당히 다양하다. 우리 주변에 한 명 정도 있을 것 같은 인물도 있고,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사건사고가 생각나게 하는 장면들도 눈에 보인다.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가 독특한 개성과 함께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의 '작가의 말'에 [이 사람들에게 고맙다]라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을 나열해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작가들의 가장 부러운 점이자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 그것을 직시하는 방식, 사람들의 행동에서 그 너머의 생각을 잡아내는 모습, 흙냄새를 맡고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움직이는 신체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 속에서도 근심, 걱정, 행복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감수성, 부끄럽고 은폐하고 싶은 내밀한 감정의 과감한 표현 등이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느껴진다.


어제는 늦은 저녁 퇴근 길에 어두운 조명 아래 노란 은행잎이 수없이 많이 떨어진 것을 보면서 나름 감상에 젖기도 했고, 자기 전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톡 쏘면서도 진한 향에 역시 맥주야 하며 혼자 감탄하기도 했다. 자기 전에 책을 조금 읽으려 했지만 눈이 감기고 잠깐 잠깐 나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잠에 스스로 못이겨 침대로 들어가는데 부드러운 극세사 이불의 포근한 촉감이 기분이 좋기도 했다.


이제는 이렇게 조금씩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조금 더 관찰하고 그때 느끼는 내 감각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기억하려고 애써야 겠다. 조금 더 많은 촉수를 세우고 더 많은 감각들을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고, 조금 더 감상에 빠져보려한다. 이러면 삶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이러면 나도 언젠가 짧은 글을 하나 쓸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웃음짓는다. 이제는 출근준비를 할 시간이다. 오늘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을 주신 누군가에게 감사하다. 아낌없이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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