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읽은 단편집 중에 몇 권을 뽑으라면 체호프의 『체호프 단편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마르셀 에메의 단편도 다음에는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단편집으로 뽑을 것 같다.
■ 당신은 한 달에 몇 일을 살 수 있을까요?
다섯 편의 단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소설은 『생존 시간 카드』 였다.
항간에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새로운 배급제에 관한 소문이다.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대처하고 노동계급의 수익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비생산적인 소비자들, 이를테면 노인, 퇴직자, 금리생활자, 실업자, 기타 다른 군입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라는 것이다. (P39)
당연한 얘기지만 그 법령의 취지는 쓸모없는 사람들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생존 시간을 줄이자는 것뿐이다. 말레프루아가 설명하기를, 쓸모없는 사람들은 한 달을 다 사는 게 아니라 그 무용성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해놓고 다달이 그 일수만큼만 살게 될 거라고 했다. 그들에게 발급될 생존 시간 카드는 벌써 인쇄되어 있는 듯하다. (P40)
자기 생존 시간 배급표를 팔겠다는 그의 제안은 나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식인귀나 사람을 공물로 받았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듬거리며 반대의 뜻을 밝히고 그의 배급표를 거절했다. 그 대신에 아무런 대가 없이 그에게 약간의 돈을 주었다. (중략) 나는 도저히 그를 설득할 수 없어서 결국 배급표 한 장을 받고야 말았다.
아주 큰 부자인 바데 씨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그는 6월 30일에서 7월 1일 사이에 무려 1천9백67일, 즉 5년하고도 4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P70)
지금껏 접한 어떤 소설에서도 접하지 못한 소재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이 소설을 소개하고 싶었다.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해서 정부에서는 사람들의 유용성에 따라서 한 달에 몇일을 살 수 있는지를 정해둔 생존시간카드를 배급한다. 어떤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사람들마다 생존시간 카드가 배급되고 작가인 소설 속의 화자는 한 달 중 15일 살 수 있는 생존카드를 받는다.
시작부터 불편하다. 여기서는 구분이 명확하다. 사람들의 유용성으로 생존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선정한 유용성의 기준으로 사람들이 서열화 되어지고, 구분되어진다.
그리고 생존카드는 거래가 되어지고, 형편이 어려운 노동계급들은 얼마 안되는 생존시간 조차 살기가 힘들어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카드를 판다. 그리고 구매자는 그만큼 한달 동안에 살 수 있는 시간이 연장된다.
소재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환상 소설 같지만, 작가는 분명히 무언가를 꼬집어서 비틀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마르셀 에메의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1940년대 프랑스이다. 그 당시의 프랑스의 어떤 모습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76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모습은 어떠한가? 라고 자문해 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생존 시간 카드라는 유형적인 것은 배급받지는 않았으나, 분명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서 그 카드를 무형으로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하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어떤 이가 만약 한 달 중 18일을 살 수 있다면, 그 달의 18일 자정이 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 달의 1일이 되면 전 달에 사라졌던 장소로 돌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라지는 순간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에 사라져버리고, 누군가 침실에서 사라진다.
다음 달의 1일이 되면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가고 있고, 누군가의 침실에서는 장소를 잘 못 맞춘 여러 명의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 프랑스 문학의 희귀한 보석, 마르셀 에메 Marcel Ayme
▲ 마르셀 에메 (1902년 3월 29일, 프랑스 - 1967년 10월 14일)
작가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실제로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큰 눈에 짙게 위로 솟은 눈썹, 눈썹과 조화를 이루는 듯한 귀가 눈에 띈다. 왼쪽 입고리가 살짝 올라가며 주름진 입가에는 장난기가 가득해 보인다.
내가 접한 그의 소설은 짧은 단편 5편이 수록된 이 한 권의 책에 불과하다.
하지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마르셀 에메 만의 독특한 색깔과 기발한 상상력이 눈에 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익살스럽지만 날카로운 일침도 놓치지 않는 모습 또한 인상 깊다.
왜 프랑스 문단에서 '희귀한 보석' 이라는 표현을 그에게 선사했는지 짧게나마 이해가 된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작가의 책을 읽었습니다. 미야모토 테루라는 일본작가의 『금수』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순전히 제가 신뢰하며 듣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소개되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소설과 비소설을 번갈아가며 소개하는데,
이동진이 직접 선정하는 소설은 아직까지 읽으면서 후회가 없었던 만큼 믿고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송태욱 씨의 역자 후기에도 이 책을 번역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이 『이동진의 빨간책방』 이라고 하니,
하마터면 만나지 못했을 작품을 만나게 해주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금수』 는,
한 때는 부부였지만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이혼하게 되고,
10년 후 우연찮게 한 케이블카에서 만난 아키와 아리마가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이야기입니다.
뜻하지 않는 사건이라 말한 것은 아키의 남편인 아리마가 어느날 한 여관에서 유카코라는 호스티스와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리마의 뜻이 아닌 유카코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으며, 이 사건으로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유카코라는 여자가 누구였는지도 모르는 채, 어떤 일이 벌어져 거기까지 오게 됐는지도 모르는 채 헤어지게 됩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둘에게도 시간이 흘러갑니다.
아키는 모짜르트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의 노부부와 아버지를 통해서 만나게 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선천성 소아마비인 아들 기요타카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아리마와 헤어진 후, 다시 남편에게 마음을 쏟지 못하고 남편과 거리는 멀어집니다. 동양학 조교수인 남편은 한 여제자와로 이어집니다.
아키는 아리마 그리고 새롭게 만난 남편 모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 그리고 몸이 불편한 아이를 처음에는 아리마 탓으로 돌리지만 결국은 자신의 업보라 여기고 초연히 받아들입니다.
저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기요타카는 나와 가쓰누마 소이치로 사이에 태어난 아이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기요타카 같은 아이도 낳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탓이다. 아리마 야스아키라는 남자 탓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기요타카라는 가여운 아이를 낳게 한 것이다. 저는 그때 아마 알전구의 희미한 빛 아래서 요괴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p160
내 아이는 왜 그런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왜 그 할머니에게는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었는가, 왜 그 사람은 흑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그 사람은 일본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뱀에게는 손발이 없는가, 왜 까마귀는 까맣고 백조는 하얀가, 왜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병에 시달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태어나는가...... 기요타카라는 인간을 낳은 어머니로서 저는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합리한 불공평이나 차별의 진정한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당신의 편지를 보면서 저는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 할머니가 말한 이야기가 일소에 부칠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혹시 진실이라고 한다면...... (p193)
아리마는 아키와 헤어진 후 끊임없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우연히 케이블카에서 만나게 된 것도 빚에 쫓겨 헤매이다가 거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싸구려 여관의 어둠 속에 홀로 앉아있고 고양이와 쥐를 보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고양이와 쥐라는 존재가 모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쳐한 처지는 지금의 쥐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이 아키와 유카코 그리고 다른 여자들에게는 고양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물 두 마리가 뒤엉켜 있는 걸 보니 죽이려는 자와 죽임을 당하려는 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다툼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허락한 사이의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고양이는 수십 번이나 쥐를 공중으로 던져 올렸고 쥐가 움직이지 않고 옆으로 쓰러지자 오른쪽으로 굴리고 왼쪽으로 굴리며 너무나도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제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고양이는 쥐의 옆구리를 물어뜯었습니다. 쥐의 몸은 살아 있는 채 조금씩 줄어 갔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히거나 발을 실룩거리고 있던 쥐가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고양이는 다다미 위에 떨어져 있는 쥐의 피를 핥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미 죽은 작은 동물을 계속해서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쥐의 뼈까지 먹어 치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뼈를 으깨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흘러나온 피를 남김없이 핥아먹은 후 앞발로 입 주위를 정성껏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만은 고양이의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쥐의 꼬리만이 다다미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제 안에 이 고양이를 죽여버리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영문을 알 수 없는 증오 같은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쳤던 것입니다. (p138)
아리마의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여 가는 거 같습니다. 어느 날, 자기 앞을 지나가는 전철을 보았을 때는 갑자기 자기도 모르는 무언가와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카코에 의해 동반자살이 이루어지려 했을 때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한 그는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렇게 그 역시 고난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역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다가오는 전철을 보았을 때 앗, 전철이 온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다가온다. 이제 곧 내 앞을 맹렬한 속도로 지나갈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심장도 강하고 빨리 뛰기 시작하여 온몸의 피가 쏴 하는 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습니다. 전철은 바로 근처까지 왔습니다. 저는 눈을 꼭 감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전철이 지나가고, 차단기가 올라가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저는 옆에 있는 사람이 타고 있는 자전거 짐칸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랬던 것입니다. 다가오는 전철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나쳐 갈 때 까지의 시간 동안 제 안의 뭔가와 뭔가가 격렬하게 싸웠던 것 같습니다. (p220)
두 사람은 10년 동안의 공백을 서로 알아가고,
그 동안 그 공백이 메어지지 않아서 앙금으로 남아 있고,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열네 통의 편지로 채워갑니다.
그리고 채워짐과 동시에 서로 각자의 삶을 새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단순히 단편적인 주요 사건을 표현하자니 단순히 치정에 대한 이야기네 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직접 한 자 한 자 읽다보면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아키와 아리마가 서로 주고 받은 열네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문체 속에서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리고 문장이 상당히 섬세하고, 뱉어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속을 후벼 파기도 합니다.
어쩌면 소설 속의 내용 중에 일부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작가의 글에 힘없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만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 감동이 사그러지는 아쉬움을 달래려 이렇게 또 다시 흔적을 남깁니다.
'미야모토 테루', 저는 또 한 분의 소중한 인연을 만난 것 같습니다.
"사람은 변하는 법이야. 시시각각 변해 가는 신기한 동물이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몸서리가 나는 듯한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p119)
당신은 겨울의 도호쿠를 보고 싶다며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다자와 호수에서 도와다로 가는 길에서는 세찬 눈이 내렸지요. 기억하고 있나요? 그래서 예정을 바꿔 뉴토 온천이라는 데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날 밤 조용히 내리는 눈에 귀를 기울이며 둘이서 그 고장의 뜨거운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당신을 마음속 깊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진작 저는 당신에게 여러 차례 안겼는데도 뉴토 온천의 조그만 여관의 이불 속에서 당신이라는 사람을 깊이 알았던 것입니다. (p123)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고 있는 그 길의 금빛 햇빛이 예전에 제 인생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쓸쓸하고 황량한 빛의 칼날이 되어 저의 지저분하고 때가 낀 마음을 찔렀습니다. (p134)
동물 두 마리가 뒤엉켜 있는 걸 보니 죽이려는 자와 죽임을 당하려는 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다툼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허락한 사이의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고양이는 수십 번이나 쥐를 공중으로 던져 올렸고 쥐가 움직이지 않고 옆으로 쓰러지자 오른쪽으로 굴리고 왼쪽으로 굴리며 너무나도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제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고양이는 쥐의 옆구리를 물어뜯었습니다. 쥐의 몸은 살아 있는 채 조금씩 줄어 갔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히거나 발을 실룩거리고 있던 쥐가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고양이는 다다미 위에 떨어져 있는 쥐의 피를 핥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미 죽은 작은 동물을 계속해서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쥐의 뼈까지 먹어 치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뼈를 으깨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흘러나온 피를 남김없이 핥아먹은 후 앞발로 입 주위를 정성껏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만은 고양이의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쥐의 꼬리만이 다다미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제 안에 이 고양이를 죽여버리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영문을 알 수 없는 증오 같은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쳤던 것입니다. (p138)
저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기요타카는 나와 가쓰누마 소이치로 사이에 태어난 아이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기요타카 같은 아이도 낳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탓이다. 아리마 야스아키라는 남자 탓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기요타카라는 가여운 아이를 낳게 한 것이다. 저는 그때 아마 알전구의 희미한 빛 아래서 요괴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p160)
그녀는 도무지 열네 살 소녀로는 보이지 않는 교태를 부리며 제게 볼을 바짝 대고 입술을 핥았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쓴 뒤 분명히 저는 이런 말을 덧붙였을 것입니다. 열네 살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남자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유카코라는 사람이 갖고 있던 하나의 업보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p164)
내 아이는 왜 그런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왜 그 할머니에게는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었는가, 왜 그 사람은 흑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그 사람은 일본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뱀에게는 손발이 없는가, 왜 까마귀는 까맣고 백조는 하얀가, 왜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병에 시달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태어나는가...... 기요타카라는 인간을 낳은 어머니로서 저는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합리한 불공평이나 차별의 진정한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당신의 편지를 보면서 저는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 할머니가 말한 이야기가 일소에 부칠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혹시 진실이라고 한다면...... (p193)
아리마는 10년 전
다가오는 전철을 보았을 때 앗, 전철이 온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다가온다. 이제 곧 내 앞을 맹렬한 속도로 지나갈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고 ㅏ동시에 심장도 강하고 빨리 뛰기 시작하여 온몸의 피가 쏴 하는 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습니다. 전철은 바로 근처까지 왔습니다. 저는 눈을 꼭 감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전철이 지나가고, 차단기가 올라가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저는 옆에 있는 사람이 타고 있는 자전거 짐칸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랬던 것입니다. 다가오는 전철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나쳐 갈 때 까지의 시간 동안 제 안의 뭔가와 뭔가가 격렬하게 싸웠던 것 같습니다. (p220)
죽어 가던 유카코에게는 어떤 과거의 영상이 비쳤을까요? 저는 그 신기한 사건이 저에게만 일어난 우발적인 현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카코 역시 같은 현상 속을 떠돌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죽음을 맞이할 때 각자가 한 행위를 보고 각자의 삶에 의한 고뇌나 안온을 이어받고, 그것만은 소실되지 않는 목숨이 되어 우주라는 끝없는 공간, 시작도 끝도 없는 시공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 아닐까? (p231)
저는 기요타카를 불구라면 불구인 채 가능한 한 정상적인 사람에 다가갈 수 있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을 열심히, 진지하게 살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요? 기요타카와 같은 아이를 가진 어머니로서 저는 단연코 허무나 체념의 세계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부디 지켜봐 주세요. 저는 반드시 기요타카를 남 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까지 키워 보일 테니까요. (p245)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김중혁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몇 번을 언급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그 전에는 '커트 보니것' 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작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관심으로 이어진다.
'커트 보니것'이라는 이름을 온라인서점에서 찾아보니 여러 권이 나왔다. 그 중에서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그의 회고록으로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회고록으로 살짝 워밍업을 해보고, 작품을 찾아나가도록 해야겠다.
우선 낯설은 작가이기에 책의 날개에 적혀 있는 작가 소개부터 차근차근 읽어본다.
<커트 보니것>
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1922년 11월 11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인 건축가 커트 보니것 시니어와 이디스 보니것 사이에서 태어났고, 2007년 4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블랙 유머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로, 리처드 브라우티건,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학과 미술에 재능이 뛰어난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가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유머감각을 키웠다. 청년기에는 코넬 대학, 테네시 대학 등을 오가며 공학자와 작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다 1943년 2차 대전 막바지에 징집된다.
전선에서 낙오하여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그곳에서는 히로시마 원폭에 버금가는 인류 최대의 학살극이 벌어진다. 연합군이 사흘 밤난으로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를 용광로로 만들고, 십삼만 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했던 이 체험을 통해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난다.
『나라 없는 사람』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소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 짧은 글 속에서는 인권, 반전, 환경, 유머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문체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내용은 진지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유머와 비유등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든다. 동시에 쉽지만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다. 독특한 문체다.
나는 이런 글이 너무나 좋다. 첫 몇 장을 읽자마자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 모습에는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커트 보니것은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냈다.
권력은 여전히 거칠고 난폭한 억측가들의 손에 있다. 그들은 지식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그 억측가들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값비싼 졸업장과 함께 모든 지식과 교양을 내팽개쳤다. 그중에는 심지어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의 졸업장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골적인 억측이 이렇게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부탁하건대 여러분은 그러지 말아달라. 하지만 우울한 사실이 있다. 만일 여러분이 계속 교육을 통해 얻은 광대한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때문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억측가들이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억측해보건대 열 배 정도는 될 것이다. (p87)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보다 신뢰도가 낮다는 정치인을 생각할 때 드는 생각이다.
분명히 능력있고 자신의 본분을 아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일부 인물들은 도무지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행동을 한다.
누가 봐도 저건 아닌데 라고 생각되는 것을 서슴치 않고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은 옆에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아마 그들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의 위트와 통찰은 여러 군데에서 드러난다.
이 지구와 "빌어먹을 인간"을 창조한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의심이 든다면 조간신문을 읽어보라. 어떤 신문이든 상관없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
"우리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가지고 온갖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독성물질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죽이고 있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네. 우리가 미쳤다는 증거 아닌가? 내 생각에, 지국의 면역체계는 AIDS,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그러니까 그 멍청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 기억한?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구절은 식인 행위를 말하는 거라네. 잡아먹을 게 얼마나 많은가? 그래. 지구는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것 같아." (p119)
책의 중간 중간에는 이렇게 그가 남긴 삽화들도 등장한다. 이 삽화는 몇 개는 작은 액자를 해서 간직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커트 보니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휴머니스트적이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
책의 뒷 표지를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던 보니것이 약속을 깨뜨리게 해주셔서 - 스터즈 터클(작가, 방송인)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 <뉴욕타임즈> 북 리뷰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이 표현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에세이 하나에 작가 보니것에 매료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의 작품 중에 몇 번 들어 본 게 『제5도살장』인데 절판이 되어서 구하기가 힘이 든다. 늦지 않게 이 책이 재출간되거나 어디서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보니것의 한 마디로 마치겠다.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p129)
전자 공동체에는 실체가 없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인간은 춤추는 동물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대문을 나서서 뭔가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다. 누군가 다른 이유를 대면 콧방귀를 뀌어라. (P66)
권력은 여전히 거칠고 난폭한 억측가들의 손에 있다. 그들은 지식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그 억측가들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값비싼 졸업장과 함께 모든 지식과 교양을 내팽개쳤다. 그중에는 심지어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의 졸업장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골적인 억측이 이렇게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부탁하건대 여러분은 그러지 말아달라. 하지만 우울한 사실이 있다. 만일 여러분이 계속 교육을 통해 얻은 광대한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때문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억측가들이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억측해보건대 열 배 정도는 될 것이다. (P87)
나에게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음악 외에도 내가 만났던 성인들로,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내가 말한 성인이란 부도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P106)
나는 그 남자에게, 만일 우리가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마인 양 여겨지면, 1차 대전(1914~1918)이 일어나기 한 참 전인 1898년에 마크 트웨인이 쓴 『신비한 이방인』을 읽어보라고 써보냈다. 그 소설에서 트웨인은 우리의 기준뿐 아니라 그 자신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킬 정도로 확실하게, 이 지구와 "빌어먹을 인간"을 창조한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의심이 든다면 조간신문을 읽어보라. 어떤 신문이든 상관 없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
하느님은 어떨까? 오늘날 그가 살아 있다면? 길 버먼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무신론자가 될 것이다.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가지고 온갖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독성물질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죽이고 있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네. 우리가 미쳤다는 증거 아닌가? 내 생각에, 지국의 면역체계는 AIDS,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그러니까 그 멍청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 기억한?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구절은 식인 행위를 말하는 거라네. 잡아먹을 게 얼마나 많은가? 그래. 지구는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것 같아." (P119)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지치고 뉴스가 너무 끔찍하면 유머는 효력을 잃게 된다. 마크 트웨인 같은 사람은 인생이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고 그 끔찍함을 농담과 웃음으로 희석시켰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내와 단짝 친구와 두 딸이 죽은 후였다. 나이가 들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세상을 뜬다.
나 역시 더이상 농담을 못할 것 같다. 농담은 더이상 만족스런 방어 메커니즘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웃기고, 어떤 사람은 아니다. 나도 한때는 웃겼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다. 너무 많은 충격과 실망을 겪은 탓에 이제 나는 더이상 유머로 방어를 할 수가 없다. 웃음으로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불쾌한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까다로운 사람이 돼버린 듯하다.
이런 일은 벌써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지 정말 모르겠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모든 걸 맡기고 내 몸과 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 보려 한다.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내 삶이나 내 글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을 통제한다고 느끼는데 나에겐 그런 느낌이 없다. 나에겐 그런 통제력이 없다. 그저 흐름에 맡길 뿐이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유머는 아스피린처럼 아픔을 달래준다. 앞으로 백년 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웃는 다면 아주 기쁠 것 같다. (P127)
행복할 때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P129)
최근에는 회사에 일이 많아져서 개인적인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경쓰는 것도 많아져서 인지 입 안에 생기는 아구창도 벌써 몇 달째 달고 사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5시간 정도만 자도 충분히 풀렸던 피로가 이제는 7시간을 자도 몸이 예전처럼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일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아쉬웠습니다. 어찌보면 고용이 불안한 지금 시기에는 사치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이럴 때 일수록 저의 긴장을 풀어주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게 해주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책이 다시 답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명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 효용이 있습니다.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도 있을 것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느끼는 가장 큰 효용은 삶의 위안을 준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읽은 김연수 작가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의미가 깊은 책입니다. 11편의 단편이 수록된 책인데, 아침 출근 전에 한 편을 읽기도 하고, 회사를 오고 가는 버스와 점심먹고 잠깐 시간나는 사이에 몇장 씩 읽어가면서 또 한 편을 읽었습니다. 졸린 눈을 감기싫어서 책을 잡고 있다가 손에서 떨어져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본 책은 그의 수필인『청춘의 문장들』뿐이었습니다. 사실 너무나 유명한 『청춘의 문장들』을 예전에 읽고 나서 감흥이 별로 없어서 그동안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지 않았죠. 최근에 서재에서 어떤 책을 다시 읽어볼까 고르는데 『청춘의 문장들』이 눈에 들었습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짧게 구성된 글들을 읽는데 이번에는 다가오는 문장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역시 같은 책이라도 읽는 이와 또 시간, 분위기에 따라서 다가오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연수 작가의 책들을 찾아 보았고, 그 중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소설 집을 선택했습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그렇게 제 손으로 들어왔습니다.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제목들을 한 번 열거해 보겠습니다.
벚꽃 새해
깊은 밤, 기린의 말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일기예보의 기법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동욱
우는 시늉을 하네
파주로
인구가 나가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이 책을 읽으면서 심적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김연수 작가의 글은 따뜻한 인간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내렸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의 말을 보니 이런 글귀가 적혀있네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 곳이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끝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여기 실린 소설들을 쓰는 2008년 여름부터 2013년 봄까지 5년 동안만은 It's OK. Baby, please don't cry. (작가의 말 中)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가는 데, 처음에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이야기 속의 중심 인물은 화자가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어떤 인물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많이 전개가 되었습니다. 잊지 못하는 옛 연인, 돌아가신 아버지, 실종된 어머니 등 단편마다 잊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을 보다 보면 입을 벌리고 눈을 깜박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애써 입을 꽉 다물고 참다보니 눈물이 가득 맺혀 저절로 떨어지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읽은 느낌을 다시 표현하자면 '애써 담담한 눈물을 참는 깊은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으로 실린 단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그렇게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에서 바다 보면서 3개월 남짓 살았어. 함석지붕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p89)
이 한 권의 책으로 김연수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으로 포함되었네요. 이제는 그의 전작을 찾아보고 한 권씩 찾아 읽는 새로운 재미가 생겼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을 덮으면서 그의 다른 단편집인 『세계의 끝 여자친구』도 이어서 구매했습니다. 올 해 제 독서의 큰 수확 중에 하나가 김연수 작가를 만나게 된게 아닐까 벌써부터 생각이 드네요.
당분 간은 위로 받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을 거 같습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그런 책일지 아니면 김연수 작가의 새로운 색깔을 보여줄 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긴 호흡으로 읽는 장편보다는 하루에 30분이라도 들여서 한 편을
다 읽을 수 있는 단편을 선택하려고 한다. 집에 있는 단편집 중에 골라보니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민음사)이 눈에 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중에는 단연 <무진기행>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다음으로는 <서울 1964년 겨울>이다.
<무진기행>은 내용이 기억이 나는데, <서울 1964년 겨울>의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 예전에 <무진기행>은
읽으려고 이 책을 사서 많은 단편 중에 <무진기행>만
골라서 읽고 나머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기억 속에서도 자연스레 지워진 듯 하다.
어제
새벽 4시 반에 잠에서 깼다. 다시 눈을 붙일까 생각하다가
조금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방에 들어와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었다. 이 작품을
읽는데 조금은 졸려서 정신이 없었는데, 순식간에 긴장이 됐고 25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을 다 읽었을 때는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오늘 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승옥 작가의 단편은 <무진기행>에서 <서울 1964년 겨울>로
바뀌어 버렸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는 동시에 그림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 저녁에 포장 마차에서 세 남자가 각각 술을 마시고 있다. 아마도 붉은 색 계통의 포장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앞치마를 단단히
동여맨 사장님은 분주하게 안주를 만들고 있을 것이고, 수도가 없어서 큰 드럼통 같은 곳에 물을 기어와서
국물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세 사람은 각자 술을 마시고 있다. 아마도 각자 다른 사연으로 이렇게 술을 마시겠지. 누군가는 단순히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몸만 따뜻하게 하려고 올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깊은 고민 끝에 술이 아니면
해결이 안되어 왔을 수도 있다.
작품
속에는 김씨 성을 가진나와 안씨 성을 가진 대학원생과 힘이 빠진 아저씨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각자 마시다가 대화가 통한 나와 대학원생이 한 잔 더 하려고 나서는 순간 힘이 빠진 듯한 아저씨가 함께 하자는 제안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순간 20대 중반 수원역의 포장마차가 생각이 났다. 당시 친구들과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갈 때가 되면 무언가 살짝 아쉬운 감이 있어서 친한 친구 몇명과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돌뼈나 굴 같은 것을 시켜서 먹곤 했다. 한 번은 친구와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데
옆에 계시던 한 아저씨가 어린 친구들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래도 기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술을 한 잔씩 따라 주시더니 우리가 먹은 술값을 계산하고
안주 하나를 더 주문해주셨다.
한
번은 우리보다 10살 정도 많아보이는 두 남자분들이 있었는데,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면서 서로 농담을 던지고 서로 한잔씩 따라주다 보니 이상하게 마치 일행처럼 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그 분들이 같이 한 잔 할 생각이 없냐고 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감자탕 집에 눌러 앉아 술을 먹은 기억도 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힘이 빠진 듯한 아저씨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시작된다. 그날은 아저씨의 아내가 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낸 날이다. 아저씨는
말한다. 아내의 병명은 급성뇌막염이었다고 한다.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셩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기증을 하고 그는 4,000원을 받았다고 그리고 오늘 하루 그것을 다 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돈으로 다른 두 사람과 술을 마시고, 귤을
사면서 그 금액은 조금씩 줄어든다. 어쩌면 그 돈은 그 남자의 생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돈은 그들이 화재현장에서 불구경을 하면서 불 속으로 던져버리는데 이때 이미 남자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어가고, 그들은 여관방에 각자
방을 하나씩 잡아서 잠을 잔다.
짧은 글이지만, 그 어떤 장편보다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 왔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냥 이런 글을 써주신 김승옥 작가에게 감사할 뿐이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으면서 무언가 가슴 속에 응어리 진 감정 같은 것이 있고, 그런 것 때문에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진한 감동이 있는데, 부족한 표현력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내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안타깝게 자주 참여하지는 못하는 책모임에 선정된 도서로 이미 책꽂이 한 켠에 천명관 작가의 다른 책들과 같이 꽂혀있는 『고래』를 다시 손에 잡았다. 고래를 한 번 읽었는데 언제 읽었나 살펴보니 2012년에 처음으로 읽은 책이었다. 읽기 전에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해보려 애썼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정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은 있는데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야기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천명관의 『고래』는 출간 당시에도 이전의 다른 작가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으로 문단에 주목을 받았다. 2012년에 개인적으로 남겨 둔 기록을 보니 그 해에 정유정의 『7년의 밤』도 읽었는데 그 두 책의 이야기 흡인력은 다른 책들을 압도한다라고 적혀있다. 즐겨듣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이 두 권을 엮어서 프로그램을 편성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2000년대의 대표적인 국내 소설로 평하고 있었다.
천명관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시나리오를 썼다. 다른 작가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인 마흔살에 등단한 그의 작품은 그동안 읽은 다른 국내 소설과는 분명 다른 점을 느낀다.
문학동네소설상에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은희경의 평을 잠시 소개한다.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약간 거창하게 말한다면, 자신과는 소설관이 다른 심사위원의 동의까지 얻어냈다는 사실이 작가로서는 힘있는 출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은희경(소설가)
최근에 장편소설은 잘 읽지는 않았다. 가끔 한 번씩 소설 책을 읽으려고 몇 권을 손에 잡았었지만 중간에 다시 다른 책을 읽었다. 이런 책이 상당히 많았다. 한참 동안 다른 분야의 책을 읽었다. 그래서 다시 손에 잡은 『고래』의 압도적인 이야기에 고마울 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다른 작품이 있었다. 수많은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의 이야기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었다. 마술적 사실주의(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이런 기법이 천명관의 『고래』에서도 엿보인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수많은 남자들과 인연을 맺는 '고래'를 경외하는 금복, 금복이 코끼리 외양간에서 낳은 통뼈를 가지고 말을 하지 못하는 딸 춘희, 금복과 어떻게 인연이 이어지나 궁금하게 했던 너무나도 못생긴 추녀의 이야기, 추녀는 한 양반가의 반편이 아들로 부터 씨를 받고, 그녀에게 태어난 딸은 추녀가 꼬챙이로 눈을 지져 애꾸가 되고 벌을 키우는 이에게 팔아버리는데, 후에 벌을 데리고 나타나는 추녀의 딸의 이야기도 대단히 흥미롭다.
이제는 금복의 남자 흥미로운 남자 인연들을 살펴보자. 금복이 그녀가 사는 곳을 처음 떠날 대 만나게 되는 생선장수, 힘으로는 비할데 없지만 생각은 조금 부족한 걱정이, 한때 야쿠자일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6개의 손가락을 잘랐던 칼잡이, 그리고 금복의 어렸을 때 친구 약장수까지 등장인물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그들의 삶이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에 대한 구성과 함께 이야기 전체를 감싸는 커다란 줄거리인 벽돌로 연결되는 흐름도 흥미롭다. 북쪽의 나라를 다녀온 후 그쪽의 극장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남쪽에는 더 멋진 극장을 지어야한다는 지시로 만들기 시작한 극장 그리고 이를 위해 한 건축가가 찾아나선 벽돌 그리고 그 벽돌에 연결되는 춘희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 구성 역시 참신하기 그지 없다.
중간 중간에 작가가 말해주는 말들이 있다 . 바로 '~법칙' 이라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별도로 표시를 해두지 못해 누군가 정리해 놓은 것을 보니 참으로 다양하다.
이런 법칙들은 아마도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절묘하게 이름 지어진 이런 법칙이 튀어나올 때 마다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2015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었다. 2012년『고래』를 통해 천명관 작가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인연이 되어서 『고령화 가족』,『나의 삼촌 부르스 리』,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까지 그의 책들을 읽어나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천명관의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좋다. 때로는 너무나 긴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나는 기꺼이 천명관의 긴 작품에는 시간을 내어줄 것이다. 그의 새로운 장편이 2016년에는 출간되기를 그를 아끼는 독자로서 기대해 본다.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현재의 나에 대한 생각부터 갑자기 튀어나왔다.
여전히 흔들리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잘 몰라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다른 이의 글에 기대본다.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2부) 타인의 발견 (3부)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책의 구조는 개인-타인-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형식을 취한다.
개인주의자 선언이라 해서 나 혼자만 잘 살아볼거다라는 것은 아닐 거라 짐작은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책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문유석 판사는 우리 사회에서 지나친 것은 집단주의이고, 부족한 것은 개인주의라고 한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 밖에 없고, 그것은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근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p26)
나 역시 오늘부터 합리적 개인주의자 선언을 하는 바이다.
# 넷
사회에 나와 지금까지 겪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는 거다.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의 몫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직업병 때문일까. 어떤 때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도 권력자도 스타도 화려한 겉껍질 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가득했다. 건강 때문에 가족 때문에 자식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흔하디흔해 보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갖고 키우며 사는 일들이 실은 얼마나 전쟁같이 힘든 일인지...(p13)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갸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의 글이다. (p119)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p136)
사람은 태어날 때 부터 공감력의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감력 그리고 민감하게 느끼게 하는 감수성은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이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랬으면 좋겠다. 옆의 어떤 이가 너무나 아프고 지쳐있을 때 누군가 힘이 되어주고 같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힘이 들 때 누군가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내 가족들이 힘들고 아플 때 주변에 도와주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공감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세상이 살만하니까.
# 다섯
진보, 보수, 좌파, 우파. 결국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 문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다층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귀한 것 같다. (p228)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인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p37)
악을 행하는 악마보다 선악 구분조차 없는 백지 상태의 야수가 더 무섭다. 자기 행동의 의미를 성찰할 줄 모르는 무지야말로 가장 위험한 야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야수를 문명의 굴레에서 풀어준 것은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이다. (p235)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치, 사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요소와 그 이면에 숨겨진 것들이 많아서 어떻게 해야 올바른 가치판단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회, 정치는 각각의 세부적인 요소로 들어갈 수록 복잡하고, 실질적인 사례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할 때 더욱더 힘들것이지만, 아직까지 그런 것은 모르겠고 내가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세상이 너무나 자본주의적으로 빠지지 않고, 조금은 더 인간적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위험에 빠졌을 때, 내가 없더라도 사회시스템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고, 한 번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소외되고 버림받는 사회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다루어주며, 조금은 더 공평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 역시 혼란스럽다. 어쩌면 글로는 이렇게 좋은 말을 뱉어내지만, 허위의식으로 가득차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것들이고, 그런 것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들이다.
내가 그렇게 실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 이상을 가끔씩 한 번쯤 들춰내고 조금이라도 그곳에 수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Book
서은국 교수 『행복의 기원』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후루이치 노리토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스티븐 핑거,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p9
아무리 객관적인 척 논리를 펴도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선호, 자기가 살아온 방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게다가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인간의 성격조차 타고난 요소, 즉 유전자의 영향이 상당하다고 말해준다. 그 바탕 위에 인간관계, 일, 독서 등을 통해 쌓아온 직간접 경험들이 결국 '나'라는 고유한 개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p11
곰곰이 생각해보니 알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분명히 내 일이 아닌데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들이 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 순간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책없이 줄줄 흐르는 순간들이 있다.
p12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온한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 같은 것인지. 우리 하나하나는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나와 아무 상관없어도 타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옆에서 나 혼자 행복한 일상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죄스럽고 마음 무거운 일인지
나 같이 이기적이고 무심한 사람조차 자꾸 접하다보니 결국은 깨닫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더라. 하물며 나보다 훨씬 따뜻한 가슴을 가진 많은 분이 이런 일들을 보고 듣는다면 어떻겠나. 내가 겪은 것들을 알려드리기라도 하고 싶다.
p13
사회에 나와 지금까지 겪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는 거다.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의 몫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직업병 때문일까. 어떤 때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도 권력자도 스타도 화려한 겉껍질 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가득했다. 건강 때문에 가족 때문에 자식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흔하디흔해 보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갖고 키우며 사는 일들이 실은 얼마나 전쟁같이 힘든 일인지....
p14
"네 능력은 뛰어난 게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p19
'내가 통제할 수 잇는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다. 내 공간을 침해 받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본능이고 솔직한 욕망이다. 누구는 세상으로부터 전면적인 인정, 사랑, 존경을 받고 싶어하고 누구는 세상에 전면적으로 헌신하고 싶어하지만 누군가는 광장 속에서는 살기 힘든 체질이기도 하다. 그걸 죽어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잇다. 그냥 레고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있는 거다.
p22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p23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p24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 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나는 우리 사회 내에서가 아니라 법학 서적 속에서 비로소 그 말의 참된 의미를 배웠다. 그 불온한 단어인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이 단어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 겨우 한 세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p26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은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p27
현대의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자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 전락하여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마저 저해할 뿐이다. 자기 이익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양보하고 타협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합리성이다. 이와 동전의 양면 처럼,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는 개인의 이익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도록 '반대 인센티브'를 적절히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합리성이기도 하다.
p31
한국 사회는 이런 사회다. 실제 하는 일, 봉급도 중요하지만 '남들 보기에 번듯한지' '어떤 급인지' 가 실체적인 중요성을 가진 사회인 거다.
p32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큰 의미 없는 인연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해 한 학번이라도 위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극존칭과 예우를 요구하며 군기를 잡는 시대착오적인 군대 문화가 대학사회에 만연하는 이유도 기성사회의 집단주의 문화를 흉내내고 서열주의를 내면화한 행태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이 아니라 소속 학교, 학과, 학번 등의 집단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위계질서에 개인이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문화가 젊은 세대까지 재생산되고 있다는 건 절망적인 일이다.
p36
학교, 직업, 외모, 사는 동네, 차종 등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는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문화, 입신양명이 최고의 효도이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 여기는 가치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남들과 다르게 비치는 것, 튀는 것에 대한 공포, 이 집단주의 문화로 인한 만성적인 긴장과 피로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않았다.
p37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인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p41
글이란 묘해서 어떤 목적이 앞서거나 읽는 이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앞서는 듯 보이는 글은 감흥을 주기 어렵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p44
성취, 성공에의 열망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간다.
p45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증후군이다. 스티브 잡스가 매혹적이라 하여 그의 괴팍함과 못된 점조차 찬양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정과 비판받아야 할 점은 냉정하게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대체로 성공에는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사회에는 그저 우연히 부모 잘 만나서 과분한 기회를 누리며 사는 이들도 많다.
p46
조지 오웰의 1984 에서 인구의 2퍼센트에 불과한 지배계급인 영사(영국 사회주의) 내부 당원들이 13퍼센트의 실무자 중간계급을 동원하여 85%의 노동자 계급을 사육하는 도움ㄹ처럼 지성적인 사고의 싹을 잘라내며 온갖 선전선동과 공포의 조작으로 통치하듯 말이다.
p50
중병에 걸리면 최고의 대학병원을 찾아 최신 의술에 의지하면서도 왜 행복에 대해서는 최고의 과학자들이 연구한 최신 연구 결과를 먼저 찾지 않는지다.
p52
서교수가 이야기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행복의 메커니즘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이다. 이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옛말의 지혜와 같은 이야기다. 아무리 대단한 성취나 환희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건 심오한 인생철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물체의 기본 메커니즘인 적응 때문이다. 한 번 맛있는 먹이를 먹었다고 영원히 동굴에 누워 그 즐거움만 만끽하다가는 굶어죽는다. 다시 사냥을 나가도록 등을 떠밀려면 지나간 쾌감을 잊고 새로운 쾌감을 좇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백억 원의 복권 당첨자 집단에 대한 추적 연구 결과 일 년 뒤에 이들의 행복감은 주변 이웃 수준으로 복귀했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행복 전략에 있어 큰 것 한 방 보다 다양하고 자잘한 즐거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심리학의 연구성과다.
p54
가성비 좋은 행복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직업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집착할 필요도 없다. 우선 자기 힘으로 생존하는 것이 생명체의 기본 사명이므로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자기가 선택가능한 직업 중 최선을 선택하여 생계를 유지하되, 직업은 직업일 뿐 자신의 전부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취미 활동, 봉사, 사회 참여 등 다양한 행복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춤 추는 것을 좋아한다고 반드시 백댄서가 되어 평생 춤만 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일하면서 동호회 활동으로 주말에 홍대 앞에 나가 춤을 춰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재능과 열망의 크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하면 그뿐이다. 이런 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면 행복할 기회가 늘어나고 소소한 행복의 플랜B, 플랜C를 계속 만들어갈 수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과학에 따라
p56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공감되는 얘기다. 맛있는 음식도 내가 원치 않을 때 강제로 먹으면 배탈이 나듯,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된느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 갑을관계, 경쟁관계, 상명하복관계, 나를 평가하고 지배하는 관계, 내가 일방적으로 순종하고 모셔야 하는 관계에 있는 인간들이 과연 나에게 유용한 생존의 도구이기는 할까? 생존의 위협에 가깝지 않을까?
p57
행복에 관한 과학의 연구 결과 중 가장 씁쓸한 진실은,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유전적인 외향성, 사회성이라는 점이다. 타고나길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 중독증 환자들이야말로 행복해지기 쉬운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다. 그러나 문명은 과학이 밝혀낸 자연의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p62
생물학적 수명과 사회학적 수명이 불일치하는 대책없는 고령화시대를 맞아 미래의 언젠가 무기력하게 방구석에서 종일 사극 재방송만 반복해서 보며 식구들에게 잔소리만 하게 되기 전에, 기력 있을 때 주변 정리하고 마지막 날까지 지구의 오지들을 걷는 여행을 떠나 길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계곡으로 떠나는 코끼리처럼, 이 얘기를 비장하게 했더니 마눌님이 가려면 혼자 가라고 그러시더라.
p95
사회 구성원들이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끊임없이 서로 대화한다면 더디더라도 옳은 방향을 행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
p104
'비동시성의 동시성'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전근대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공존하던 1930년대 독일 사회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특징이 같은 시대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내 대학 시절의 한국사회도 그랬다. 고도 성장기의 자본주의, 전체주의적인 군부독재, 전근대적인 가부장제 문화,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이념인 20세기 초반의 러시아혁명 이론부터 20세기 후반 유럽의 후기 마르크스 주의, 심지어 또다른 전체주의인 주체사상까지 혼재했던 것이다. 결핍되어 있던 것은 프랑스 혁명과 미국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그 토대인 합리적 개인주의였다. '근대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근대를 그냥 뛰어넘고 다음 시기로 갈 수 없는 것이었기에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가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p107
스쿠버다이빙 사진전을 여는 변호사, 합창하는 판사, 무협소설 작가인 검사 ...... 법조인이라는 직업은 나라는 존재의 일부에 불과하다. 법조 내에서 한 줄로 서서 경쟁하고 낙오할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 취미를 같이 하는 동호인들, 함께 봉사하는 이들, 작지만 다양한 여러 사회 내에서 누구든 필오한 존재, 인정받는 존재로 살 수 있다.
p114
결국 취업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자기통제형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이십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탈감과 불안감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고난을 '개인의 노력부족'으로 돌리며 자신은 그래도 노력하고 있기에 그들보다는 낫다고 구분짓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이십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그 누구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기도 하다.
p115
대학 서열에 따라 인간의 능력, 태도 자체에 우열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선택한다.
p117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답한다. 일본이 지금보다 더 심각한 격차사회, 계급사회가 되면 역설적으로 행복지수 자체는 올라갈 수도 있다. 일본 젊은이들은 고도 성장기의 버블이 다 꺼진 지금,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기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얘기다.
p119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의 글이다.
나를 포하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리 두터운 현재를 갖고 있지는 못하기에 서로 일깨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친밀한 세계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p136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 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p162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같은 진영 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부드러운 '다른' 목소리들이다. 작은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선거와 같은 큰 세력 다툼의 시기를 전후하여 집단 내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영웅은 이런사람들이 아닐까.
p166
경영자야말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 그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는 조직 내 관료주의의 벽을 부수는 능력, 그리고 더 중요한 능력이 있다. 사람들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는 능력이다.
p200
반대로 실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것은 무조건 옳다고 보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한다. 실은 그 반대가 맞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식재료도 자연 상태 그대로는 독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먹는 것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 인위적인 종자 개량을 통해 먹을 수 있게 만든 것들이다. 인류는 자연 상태의 폭력성을 문명화 과정을 통해 극복하여 현대적인 평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은 지금의 발전한 문명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에 따라 옳은 것은 더욱 북돋우고 그릇된 것은 제어해야 한다.
p207
하긴 정신연령이 낮은 나 역시 굳이 무슨 주의자인지 물으신다면 모든 집단주의를 혐오하는 '전투적 개인주의자'이며, 이념보다는 태도가 후진 사람, 그리고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을 더 견디기 힘들어한다.
p208
이념 문제가 아닌 것을 이념 문제회하는 강박증은 두 가지 점에서 위험하다. 첫째,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따지는 머리 아픈 과정을 '우리 편의 주장인지 적들의 주장인지'로 광속 대체하는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둘째, 삼인성호, 몇몇이 떠들어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 몇몇 소소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념 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다보면 마치 이 사회에 진짜 심각한 이념 대립이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이 생긴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인류는 속을 만큼 속았다.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하는 이유다.
p213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다. 눈먼 의리가 아니다.
p222
많은 한국 교민들이 흑인 거주지역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자녀의 아이비리그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돈이 벌리는 이유는 이곳이 경쟁 없는 독장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장사하려는 백인들은 없다. 이 지역에서 장사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흑인도 없다. 미국 전역에 널린 것이 타깃, 월마트 같은 대형 마트들이지만 이들은 거기까지 타고 갈 차가 없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슈퍼마켓에서는 대형마트들과의 경쟁 따위 의식할 필요 없고, 받고 싶은 만큼 값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빈민 집단거주지역에서는 술, 담배, 복권이 워낙 잘 팔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에서 주는 지원금만으로 살아가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집단거주 영세민 아파트의 슈퍼마켓은 의외로 이문이 쏠쏠하다고 한다.
p228
진보, 보수, 좌파, 우파. 결국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 문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다층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귀한 것 같다.
p230
인도네시아의 우익 세력인 '프레만'과 '판차실라 청년단'이 국가적 살인을 거들었다. 숙청은 이듬해인 1966년까지 이어졌고, 희생자만 최소 백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p235
악을 행하는 악마보다 선악 구분조차 없는 백지 상태의 야수가 더 무섭다. 자기 행동의 의미를 성찰할 줄 모르는 무지야말로 가장 위험한 야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야수를 문명의 굴레에서 풀어준 것은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이다.
p244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보적이고 자유를 희구하는 민중'의 이미지는 지식인들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자유, 가치상대주의, 다원주의 등의 서유럽적 가치는 엘리트, 중산층들의 선호이고, 서민들은 윤리적 보수주의, 종교적 원리주의, 배타적 민조주의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p246
대의제,법률보다 개정이 어려운 헌범, 권력 분립과 견제, 표현의 자유 보장.... 하지만 이런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폭넓ㅅ게 공유하는 것이 주요하다. 이를 내면화하려면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잘못된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
p269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물론 이런 가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현실에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자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장애와 도피심리로 몰아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영미식의 실용주의 가치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했다면 과감하게 면책한다. 결과가 제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 하는 사회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p275
슬로빅에 따르면 일반인이 체감하는 위험도는 양적지표보다는 결과의 끔찍함 정도, 자신의 지식 범위 밖에 있는 미지의 정도,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 수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고 한다. 치사율이 높다고 알려진 신종 전염병은 이 세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한다. 한국인이 미개해서 메르스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구조에 기인한 공포인 것이다.
김중혁 작가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읽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메이드 인 공장』를 읽었으니 그의 책 중에 세 권을 읽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장편소설이고, 『메이드 인 공장』수필 혹은 견학기라고 해야할 거 같고, 이번에 읽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단편집이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재미있는 입담이 김중혁의 트레이드 마크를 였지만, 역시 그의 진가는 글 속에서 나온다.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이 좋은 것은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다.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는 않지만, 담백한 글 속에서 나름의 진지함을 유지하는 점은 매력적인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사람은 세상에 참 관심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관찰하는 시선이 상당히 날카롭고, 사람의 내면에 있는 세세한 감정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원초적인 감정을 부담없이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표현해낸다.
포르노 배우와 제작자, 실종된 연예인과 그녀를 찾는 학생 팬, 알콜중독자 남자와 그의 옛 여자친구, 지진 발생으로 인해 겪게되는 것들, 화가와 큐레이터, 정체모를 외계비행물체 출현, 차량에 먼저 몸을 부딪혀 돈을 타내는 보험사기단, 시계공학과 남자와 멀티미디어과 여자
이번 작품에 들어있는 여덟개의 단편에 수록된 등장인물 혹은 주요 단어들이다. 상당히 다양하다. 우리 주변에 한 명 정도 있을 것 같은 인물도 있고,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사건사고가 생각나게 하는 장면들도 눈에 보인다.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가 독특한 개성과 함께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의 '작가의 말'에 [이 사람들에게 고맙다]라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을 나열해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작가들의 가장 부러운 점이자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 그것을 직시하는 방식, 사람들의 행동에서 그 너머의 생각을 잡아내는 모습, 흙냄새를 맡고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움직이는 신체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 속에서도 근심, 걱정, 행복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감수성, 부끄럽고 은폐하고 싶은 내밀한 감정의 과감한 표현 등이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느껴진다.
어제는 늦은 저녁 퇴근 길에 어두운 조명 아래 노란 은행잎이 수없이 많이 떨어진 것을 보면서 나름 감상에 젖기도 했고, 자기 전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톡 쏘면서도 진한 향에 역시 맥주야 하며 혼자 감탄하기도 했다. 자기 전에 책을 조금 읽으려 했지만 눈이 감기고 잠깐 잠깐 나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잠에 스스로 못이겨 침대로 들어가는데 부드러운 극세사 이불의 포근한 촉감이 기분이 좋기도 했다.
이제는 이렇게 조금씩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조금 더 관찰하고 그때 느끼는 내 감각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기억하려고 애써야 겠다. 조금 더 많은 촉수를 세우고 더 많은 감각들을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고, 조금 더 감상에 빠져보려한다. 이러면 삶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이러면 나도 언젠가 짧은 글을 하나 쓸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웃음짓는다. 이제는 출근준비를 할 시간이다. 오늘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을 주신 누군가에게 감사하다. 아낌없이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