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3년 전에 한 번 읽어본 책입니다. 소설은 한 번 읽고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그녀의 언니 '샬롯 브론테' 덕분에 다시 한 번 『폭풍의 언덕』을 잡게 되었네요. 지난 여름에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매력적인 인물인 제인 에어의 삶 속을 함께 거닐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고 자신의 진정한 내면에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사랑과 삶을 선택해나가는 모습에 빠져 있었지요. 당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의 삶을 알고 나면 『제인 에어』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알게 됩니다. 보통 한 작품을 읽으면 그 작가의 다른 책으로 뻗어 나가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렇다면 그녀의 동생은 어떤 작품을 썼을까가 궁금했습니다. 희미해진 기억을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폭풍의 언덕』으로 들어갔지요. 


『폭풍의 언덕』은 액자구조 입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것이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히스클리프에게 세를 얻어서 드러시크로스에 사는 '록우드' 라는 인물이 '넬리 딘' 이라는 하인에게 이야기를 듣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워더링 하이츠와 드러시크로스라는 두 공간적 배경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복수라는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 등장인물 관계도


언쇼 어른은 어느 날 리버풀에 다녀오면서 부모없이 떠돌던 한 남자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예전에 죽은 아들의 이름인 '히스클리프'라고 지어줍니다. 언쇼의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게 됩니다. 반면에 딸인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언쇼가 죽으면서 상황에 변하기 시작합니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학대하고 집안의 하인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캐서린은 린튼 집안의 에드거와 결혼하게 되죠.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납니다. 그러던 어느날 모든 것이 변한 히스클리프가 나타납니다.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죠.


■ 이야기 속의 시대는?


『폭풍의 언덕』을 지금의 시각으로 읽다 보면, 이해가 잘 안되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1847년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소설 속에서 상당히 불편했던 점은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의 아내가 된 후 워더링하이츠에 데리고 왔을 때의 모습, 이사벨라가 죽은 후 린튼이 아버지 히스클리프에게로 가는 순간, 캐서린(에드거의 딸)이 린튼과 결혼하자 히스클리프가 며느리를 데려가야 한다고 하는 장면입니다. 아내, 자식, 며느리가 되는 순간에 철저하게 위계가 생기며 모든 것이 남자의 권한으로 넘어옵니다. 그래서 그 사회적 틀에 의해서 히스클리프에게 억압되는 인물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를 보게 되면 결국 언쇼 집안과 린튼 집안의 재산을 모두 그가 차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상속'이라는 방법을 택합니다. 즉 자신의 아들인 린튼을 캐서린(에드거의 딸)과 결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드거가 사망했을 때 재산은 캐서린의 것이 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캐서린의 남편인 린튼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도 지금과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인물 관계도를 보면 캐서린(에드거의 딸)은 린튼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린튼, 히스클리프가 죽은 후에는 아마도 헤어튼과 결혼을 하게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를 보면 린튼은 캐서린의 이종사촌이고 헤어튼은 고종사촌입니다. 이건 뭐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는 왕족과 귀족들은 혈통을 유지한다는 명목과 상속과 같은 금전적 요소들 때문에 근친혼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합스부르크 가에서는 합스부르크 립(주걱턱이라 불리는 하악전돌증)과 같은 유전병도 등장을 한 것입니다. 


■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복수와 아동 학대

▲ 윌리엄 와일러 『폭풍의 언덕』, 1939


어쩌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과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비극의 씨앗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히스클리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집요합니다. 그가 원한을 품었던 이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까지 복수의 대상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자신의 아들까지 이용을 합니다. 이런 부분은 읽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힌들리가 죽은 후, 히스클리프는 여러 수단을 통해서 워더링하이츠를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을 철저하게 세뇌교육을 시킵니다. 헤어튼은 분명 여러 재능이 있지만, 육체적인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죠. 소설 속 이야기지만 가장 화났던 부분은 비록 사랑하지 않은 여자 사이에서 낳은 아이지만 자신의 아이를 철저하게 자신의 계획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린튼은 자신의 아버지의 행동, 목소리 하나하나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속의 악함을 드러내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히스클리프의 아들이긴 하구나 하면서 동정심이 확 떨어지기는 합니다.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에드거의 딸)을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기 위해 가둬두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캐서린이 소리지르고 화를 내자, 히스클리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며 캐서린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가 가장 속으로 화가 많이 났던 거 같습니다.


아마 히스클리프가 캐서린과의 사랑을 이루었다면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제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그가 있어서 『폭풍의 언덕』 이라는 소설 속으로는 깊이 빠져들었지만, 현실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폭풍의 언덕』


이 작품은 『모비딕』,『리어왕』 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힙니다. 그리고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싯 몸은 세계 10대 소설의 반열로 이 작품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감은 팽팽하게 유지됩니다. 가계도를 그리면서 까지 읽을 정도로 서로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갈등을 읽어내려고 했습니다. 히스클리프의 악마적인 모습에 치를 떨면서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 하지만, 그것이 다른 계기가 아니라 히스클리프의 죽음이 원인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남기는 합니다. 해피엔딩을 꿈꾸는 독자의 일 인이거든요.


         ▲ 1834년 브론테 자매의 남동생 브란웰이 그린 초상 (왼쪽부터 앤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샬롯 브론테, 가운데는 브란웰인데 그가 지운 것으로 보임)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 도 상당히 인상적이며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 국교회 목사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세 살때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는 언니들과 함께 비용이 싼 기숙학교에서 생활을 했는데 두 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 후 아버지는 살롯과 에밀리를 데리고 오지요. 1942년에는 언니 샬롯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어학을 배우고 같은 해 돌아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샬롯, 에밀리, 앤을 우리는 브론테 자매라고 합니다. 이들은 이례적으로 자매들 모두 문학적 성과를 얻어서 후대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발표한 다음 해인 1848년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시달리다가 폐병으로 세상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동생인 앤 역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언니인 샬롯 브론테도 1855년에 서른 아홉살의 나이에 임신한 상태에서 사망을 하게 됩니다. 그녀들은 모두 후대에 기억되는 훌륭한 작품을 남기지만, 정작 그 삶은 안타까움이 짙게 묻어납니다.





반응형


폴 칼라니티 라는 '유능한 의사' 가 있습니다. 그는 이제 곧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고 신경외과 의사로서 발돋움하는 일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언제나 다른 이들의 죽음을 지켜 보고,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을 책임져 주던 그 였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그는 천천히 죽음과의 만남을 준비합니다. 같은 의사였던 아내와 함께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신중한 고민을 합니다그리고 2세를 갖기로 하고 딸 아이를 출산합니다. 그는 투병 중에서도 몸이 허락할 때 까지 신경외과 의사로서 수술에 참여하고, 레지던트 생활을 마칩니다. 더 이상 의사로서의 역할이 힘들어지게 되었을 때는 평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가 남긴 글과 아내가 덧붙인 글이 모아져서 한 권의 책으로 남았습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 칼라니티의 유일한 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서른 여섯 살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삶을 정리하며 적어낸 글, 그는 과연 어떤 이유로 삶의 마지막 기록을 책으로 남기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짧은 생각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가 떠난 뒤 남게 되는 아내와 딸을 위해서 적어둔 마지막 편지일지도 모르겠네요.


▲ 폴 칼라니티와 그의 아내, 그리고 딸

 

삶과 죽음은 그 자체가 부조리합니다카뮈는 어린 아이들의 죽음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처럼 부조리한 게 없다고도 했습니다사람들이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예상할 수 없습니다갑자기 찾아옵니다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그래서 누군가는 그것이 공평하다고 하지요.

 

저는 만약~라면?’ 이라는 질문을 저에게 대입하는 것을 망설이는 편입니다입으로 꺼내는 순간글로 적어버리는 순간 무언가 제 삶에 영향을 미쳐버릴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그래서 좋지 않은 의미일 경우에는 잘 담지 않습니다그런데 조심스럽게 만약 제 남은 삶이 1년 이라면?’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제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백해집니다그리고 결국은 사람을 향하게 됩니다무엇보다 내 가족들이 나의 부재로 인해 겪게 될 여러 아픔을 떠올리게 됩니다그렇다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명확해지는 거 같습니다가족들이 겪게 될 아픔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고그들이 살아가면서 힘이 될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삶을 위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한 번쯤 제 인생을 처음부터 곱씹어 볼 거 같습니다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나로 인해 누군가 큰 상처와 아픔을 겪지 않았는지정말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는지깊은 슬픔에 눈물을 흘렸던 적은 없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서 한 번 더 되새기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위화의 <7과 같은 책을 읽으면서 죽음’ 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겪어야 할 경험이지만우리 주위에서 그 경험에 대해서 말해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그러기에 사람들은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두려워하고궁금해합니다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 의문점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게 됩니다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간직해 둡니다.


▲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 (1599~1652) 作


대신에 대단히 실용적인 호모사피언스들은 죽음을 통해서 삶을 돌아봅니다
서양화를 보다 보면 해골이 등장하는 그림을 종종 보게 됩니다그리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보다는 죽음을 통해서 삶을 바라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라는 말이 있습니다이는 다가오는 운명의 필연성에 긍정하고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만약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것입니다그래야지 다음 삶에도 이 순간이 반복 될 테니까요죽음은 부조리하기에 우리가 예측할 수 없습니다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판단은 어쩌면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책을 한 번 읽으면서 만약 내 삶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현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한 번 펼쳐 볼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반응형

"내일은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내일이 되면 갑자기 그는 내일도 같을 것이고

모레도, 다른 날들도 모두 같으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발견으로 그의 가슴은 녹아내리는 것이다.

(중략)

그런 생각들을 견디지 못해 사람은 자살을 하게 된다.

혹은 젊은 사람이라면 글을 쓴다"

 

- 알베르 카뮈 -

 

 

사람들은 자신 만의 삶을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카뮈가 말하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삶의 반복' 에 대처하는 나름의 처방을 가지고 있다.

만약,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반드시 찾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본래 외롭다고 하지만,

무언가로 자신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로 하여금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람들마다 받아들여지는 삶의 무게는 다르기에,

아쉽게도 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술에 빠져 들기도 하고,

누적되는 삶의 피로에 허우적되기도 한다.

 

다행히 나는 그 방법을 한 가지는 찾은 것 같다.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 '있을 수 없는 일을 상상할 수 있는 재미'

'한참 동안 마음 졸이다, 긴 한 숨을 내 쉴 수 있는 감정의 경험'

'혼자 한 없이 외로워져서 눈물을 흘리다 조그만 위로에 위로 받을 수 있는 약한 감정'

나에게 이런 삶의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는 것은 '소설', 바로 '이야기' 다.



 

소설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지만,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소설을 쓸 때 작가는 분명히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작품 속에 등장시킬 인물들에게 각자 어울리는 성격을 만들어주고,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숨은 요소들을 배치했을 것이다.

그런 작가들이 숨겨놓은 것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속에서 이야기의 재미 뿐만 아니라,

그렇게 숨겨진 보물을 하나씩 찾아내듯 '소설' 을 읽을 수 있다면,

작은 방에서 '책 한 권' 읽는 재미로 남 부럽지 않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 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2980.01.05 움베르트 에코


'소설' 에 대해서 그 기법과 형식들을 한 번 쯤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라면,

쉽게 몰입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러던 중에 '정여울' 작가의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최근에 『공부할 권리』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글을 이끌어 가는 감성에 매료되어서,

이 분의 책이라면 기꺼이 선택해도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여울의 문학멘토링』

제목이 '문학멘토링'이다. 딱딱하지 않다.

작가는 '문학'을 정말 좋아하고, 자기가 발견한 것들을

후배들에게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듯 하다.

문학의 미로를 헤치는 18개의 열쇠를 준비하고,

하나씩 독자들에게 설명해준다.

말하는 이도 즐겁고, 듣는 이도 즐거운 대화같이 들린다.

각각의 열쇠에 해당하는 소설의 한 부분을 소개시켜준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의 경우는 궁금해져서

별도의 목록으로 정리를 하기도 하고,

읽어 본 책의 구절이면, 입가에 미소가 생기면서 반가움이 앞선다.

 

정여울 작가가 소개해주는 문학의 미로를 헤치는 18개의 열쇠는

지금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열쇠이기에 잘 보관해 둔다.


01. 패러디 - 고전은 왜 끊임없이 패러디되는가?

02. 시점 - 여섯 살 옥희의 눈에 비친 세상

03. 의인화 - 인간의 탈을 쓴 동물

04. 은유 - 하늘의 별이 튀밥 같다고?

05. 상징 - 그들은 왜 걸핏하면 방앗간을 찾을까?

06. 아이러니 - 어쩐지 너무 운수가 좋다 했더니

07. 알레고리 - 소인국은 그저 소인국이 아니다

08. 트릭스터 - 방자, 골룸, 동키, 큐피드의 공통점은?

09. 안타고니스트 - 저 녀석만 없으면 주인공이 행복할 텐데

10. 시간 - 또 기억 상실증

11. 공간 - 그곳이 평사리여야만 하는 이유

12. 음식 - 어떻게 먹을 것인가, 누구에게 먹일 것인가?

13. 판타지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까닭은?

14. 트라우마 - 견딜 수 없는 슬픔의 역할

15. 통과의례 - 영웅은 왜 과도한 시련을 겪는가?

16. 정체성 - 위대한 '가출'의 주인공들

17. 대재앙 - 세상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18. 사랑 - 사랑의 혁명적 힘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라는 작품이다.

아직 초반부를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조금씩 주변을 둘러볼 예정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을 보고 있어서

전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지금은 제인 에어가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부터,

외숙모와 외사촌들에게 심한 구박을 받는 것 부터 나온다.

과연 제인 에어는 이런 통과의례를 잘 겪어낼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제인 에어의 시선을 통해서 바라보는 이야기를,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시선으로 돌려보기도 한다.

새롭다. 신선하다. 소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문학을 조금 더 파고 들어야 겠다.

갑자기 서재에 꽂혀 있는,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라는 책이 생각난다.

소설을 쓰는 법에 대해서 나온 책인데,

이 책을 만날 시기를 만났다.

앞에 몇 페이지만 들춰보고 고이 꽂혀있는 책인데

이제는 내가 조금 더 볼 수 있도록,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길 바란다.

 

 


 


반응형



"책을 한 권 출간 하고 싶습니다."  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저 입니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책의 맛을 알았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면서 책들을 꾸역꾸역 읽기도 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어려서부터 문학소년, 문학소녀로 초등학교, 중학교 부터 많은 책들을 읽어서 그들의 삶과 글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나도 조금만 더 일찍 책에 빠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약 이라는 것이 없지만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때부터라도 책을 읽고, 차근 차근 기록을 남겼으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작가' 라는 단어는 저한테는 조금 크게 다가옵니다. 때로는 '작가' 라는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서 제가 그들의 작품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비판적으로 읽어야할 필요성이 있을 때에도 제가 만든 그들의 권위에 스스로 무릎을 꿇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한 동경은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럴 때 위안이 되는 책들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바로 저와 같은 직장인들이 출간한 책들입니다. 전업작가가 아닌, 그들의 밥벌이는 따로 있는 사람들, 저와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책을 출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책의 내용과 함께 그 책들만의 독특한 개성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기 바쁩니다. 그리고 나도 마흔 살이 될 때는 한 권의 책을 출간해야지 하는 다짐을 다시 해보기도 합니다.


성수선 작가의 『밑줄 긋는 여자』에서 제가 하고 싶은 글쓰기의 한 단면을 보았습니다. CJ, LG, 삼성정밀화학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과 그녀가 읽은 책의 한 단락을 끈으로 이어주면서 자연스러운 독서에세이가 펼쳐집니다. 이 책의 매력은 성수선 작가가 해외영업을 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그녀가 직장생활 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적절하게 잡아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색하지 않게 책의 메세지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녀의 필력이 느껴집니다.


'나는 일상생활에 특별한 게 없어서 글을 쓸 내용이 별로 없어!'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들을 보면 그들의 삶은 무언가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아서 내심 질투와 시샘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수선 작가는 일상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자기만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서 제 메모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내 생활의 에피소드를 적어보았습니다.

'오늘은 가장 더운날, 그런데 에어컨 고장, 그리고 누진세는?' , '텃밭에 키우던 토마토 농사 접은 날' , '아이들과 함께 한 서해 갯벌 체험', '짭짤이 토마토와 어상천 수박과 같은 과일들' 이라는 단어들을 적어 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제 경험과 다른 분야를 자연스럽게 이어서 '생활의 쫄깃쫄깃함'을 적어 볼까 합니다.


생활의 쫄깃쫄깃함이 바쁘게 서두르는 출근길이 아니길 바라면서, 이제 씻고 출근해야 겠네요.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1999

『돈가스의 탄생』, 오카다 데쓰, 2006

『장미도둑』, 아사다 지로, 2002

『안토니 가우디』, 손세관, 2004

『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1996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럼』, 박민규, 2003

『괜찮다. 다 괜찮다.』 공지영, 지승호, 2008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2008

『군주론』, 마키아 벨리, 까치출판사, 2003

『나의 이력서』, 피터드러커, 2006

『딜리셔스 샌드위치』, 유병률, 2008

『남한산성』, 김훈, 2007

『달인』, 조지 레오나르드, 2007

『감독, 열정을 말하다』 지승호, 2006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최혁 2009

『엘레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1999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 센트 반 고흐, 2005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이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2003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이유명호, 2004

『불안』, 알랭 드 보통, 2005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에너 퀸들런, 2001

『책을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 2008

『데미안』,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0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2

『소설의 이론』, 게오르크 루카치, 문예출판사, 2007

『쓰바카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2008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 2003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2004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2003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2006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2000

『와인스캔들』, 박찬일, 2007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이원복, 2007

『한 손에 잡히는 와인』, 히로카네 겐시, 2001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2002

『소박한 밥상』, 헬렌 니어린, 2001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2002

『당신의 주말은 몇 개 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2004

『눈물의 편지』, 곤인을 기리는 사람들, 2000

『그리운 메이 아줌마』, 신시아 라일런트, 2005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2003

『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 펙, 2003

『5가지 사랑의 언어』, 게리 채프먼, 2003

『GIRL』, 오쿠다 히데오, 2006

『모모』, 미하엘 엔데, 2000

『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2002


반응형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로 작가 은희경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가던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접하고 나니,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녀가 점점 궁금해졌습니다. 


토요일 오후, 회사를 마치고 집 앞 도서관에 갔습니다. 가끔씩 어떤 책을 읽을지 정하지 않고, 도서관을 둘러보는데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역사' 쪽에서 책을 몇 권 선택하고, '영미문학' 쪽에서 책 한 권, 그리고 한국문학 쪽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은희경' 이라는 이름 석 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현대소설 시리즈에 있는 그녀의 작품 『빈처』 였습니다.

영어 제목은 『Poor Man's wife』 네요. 의자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응시하는 작가의 표정이 상당히 인상적인 표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책을 쇼파에 누워서 읽고 있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컴퓨터에서 만화를 보고 있고, 막내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아내는 주방에서 삼계탕을 끓인 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책을 조금씩 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단편 소설을 읽으면서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내 생각이 번뜩했고, 누워서 읽던 몸을 다시 바로 세웠습니다. 어쩌면 대단히 일상적인 부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부분을 건드려서 그런지 몰라도 상당히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설은 어느 날 내가 아내의 일기장을 보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6월 17일

나는 독신이다. 직장에 다니는데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 시 정도까지 근무한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이다.

이 시간에 난 읽고 쓰고 음악 듣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외출은 안 되지만.


나는 생각한다. 아니 두 아이의 엄마이고, 남편도 있는 사람이 독신이라니? 하지만 아내의 일기를 읽다 보면 알게 됩니다. 아내는 독신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남편은 매일 저녁 술에 취해 들어오고, 집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아내는 그런 자신을 독신으로 표현한 것이죠.


9월 16일

나는 왜 이렇게 쉬운 여자인가.

새벽에 파고 드는 그이를 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면서 사는 게 다 안쓰럽기만 하였다. 아침에 그이는 다정하다. 일찍 들어올게, 하더니 정말로 일찍 들어왔다. 나는 그만 감격해서, 저는 당신이 얼마든지 주무르고 어를 수 있는 여자여요, 하듯이 다소곳해져 갖고 그이를 맞았다. 그런데 그이는 다시 나간다. 나는 왜 이렇게 쉬운 여자인가. 그이에게 나는 왜 이렇게 하찮은가. 열한 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않는데 오늘만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난다기보다 모욕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렇다, 이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먼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오랜 만에 집에 빨리 들어온 소설 속의 나는 친구의 전화에 또 다시 술집으로 나갑니다. 아내는 남편이 빨리 들어왔다고 조금은 들떠 있습니다. 무엇을 해줄까 하는 생각뿐이죠. 그런데 남편은 다시 집을 나섭니다.


이런 아내는 남편을 보면 평소에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내는 아이를 낳기 이전의 모습은 많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에는 몸이 움직입니다. 힘이 들어도 자기 몸 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합니다.


아내는 그렇게 그녀의 담담한 삶의 일기를 적어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 역시 아내의 일기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내가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런 아내의 잠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죠. 많이 변한 아내의 모습이 보입니다. 


소설의 마지막입니다.


나는 손에 펴 들고 있던 그녀의 일기장을 가만히 덮어준다.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다.

비록 모양틀 안에서 똑같은 얼음으로 얼려진다 해도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


작품 속에는 나와 아내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남편과 아내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허구의 문학인 소설이지만, 허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저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거 같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제 생각, 이런 행복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 속에서 다른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하는 모습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평범' 이라는 단어로 말하지만, 그 평범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가족 안에서도 모든 걸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겠습니다. 아내의 마음과 생각을 조금 더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조금 더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많이 다릅니다. 그 다름을 존중하고, 그 다름을 조금 더 관심있게 바라봐야 겠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니까요.






반응형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국내소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국내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어가면서 좋아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정유정, 김훈, 조정래, 황석영, 한강, 김중혁, 박민규, 천명관, 박범신, 김훈, 최인호, 김연수, 공지영 작가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작품을 만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연이 안 닿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안타까웠던 인연 중에 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은희경' 작가입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지만 처음으로 작품을 만나게 되었네요.


은희경 작가는 얼마 전에 『중국식 룰렛』라는 소설집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만난 작품은 2006년 출간된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라는 작품입니다.  총 7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하루에 한 작품씩 읽었습니다. 단편 소설의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지게 되었지요.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작품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거 같습니다. 하나는 여자들을 소재로 하고 여자들의 심리를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은희경 작가의 표현력입니다. 처음 접하는 그녀의 글에 포스트잇으로 좋은 문구에 붙이기 바빴습니다.


오늘은 소설 속의 내용은 접어둘 생각입니다. 그것보다 '여자' 라는 단어에 대해서 남자의 입장에서 조금 생각해 봅니다.

제 주변의 여자들을 생각해봅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두 명은 당연히 엄마와 아내입니다. 과연 내가 그녀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들었습니다.


엄마는 그저 '엄마' 였습니다. 여자로서의 엄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생각을 해 본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라는 호칭을 얻기 전 부터 엄마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꿈꿨던 여자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이구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알게 됩니다. 엄마가 '엄마'라는 호칭을 얻으면서 '여자'로서 많은 것을 희생했겠구나! 가슴 속에 여전히 묵혀있는 아쉬움이 많겠구나!


오랫동안 만나오고 함께 살고 있는 아내를 과연 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자와 여자는 너무나 다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의 '사람' 이라는 단어는 아마 여자를 가리킬 것이라 추측해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 만의 생각과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 보면 남편과 있을 때는 행복해보이지만 실제 아내의 마음은 텅 비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걸 모릅니다. 소설 속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남자 분들은 여자의 마음을 배울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작가의 표현력이었습니다. 서사의 관점으로 소설을 읽는 편인데 은희경 작가의 소설 속에서는 중간 중간 눈에 드는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가족이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아프게 깨물면 아프게 물린다. 그렇다고 가볍게 물었다가는 자칫 서로를 놓칠 수도 있다. 너무 세게 물면 - 끊겨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듯이.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中, p34>


골목에서 한 떼의 술꾼들이 삶은 밤에서 나오는 밤벌레처럼 비틀거리며 기어나왔다. - <여름은 길지 않았다 中 , p241>


여대 앞 골목에서는 누군가 마대에서 담아와서 쏟아놓은 것처럼 발랄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51>


그때 그녀가 젓고 있던 커피가 작은 물살을 이룰 만큼 동요를 일으키며 좀 거칠다 싶게 문이 열렸다.

- <인 마이 라이프 中, p256>


이런 문장들을 만나면서, 혼자 상상을 합니다. 정말 삶은 밤의 밤벌레가 생각납니다. 그 벌레가 술 취한 사람이라 생각해 봅니다. 재미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마대 자루를 쏟아냅니다. 발랄한 젊은 이들이 서로 웃으면서 쏟아져 나오네요. 이래서 작가는 작가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오랜만에 저에게는 새로운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에 좋은 작품이 워낙 많으니, 당분간은 소설읽는 재미가 생겨나겠네요.

다음은 그녀의 대표작인 『새의 선물』 로 은희경 작가를 만나 볼 생각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반응형


한 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고픕니다. 이게 비소설을 읽다가 소설로 돌아오는 저의 주기입니다. 이야기가 고플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소설, 무엇을 읽을 지 망설일 때 찾게 되는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한 번 뒤적여 봅니다. 역시 예전에 사놓고 읽지 않은 게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제 주린 감성을 채워준 책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였습니다. 예전에 사 놓고는 그렇게 손에 안 잡히던 책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았나 봅니다. 이번에는 다르네요.


알베르 카뮈(1913 ~ 1960)의 책은 『이방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로 시작하는 『이방인』은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코트의 깃을 세우고 짧게 문 담배와 무언가를 살짝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잡힌 두 줄의 이마 주름의 사진을 보면 이 작가에게 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소설도 궁금하지만, 이름부터 작가스러운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집니다.




카뮈의 『페스트』는 그의 나이 35살(1947년 作)에 지은 작품입니다. 지금의 제 나이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그렇게 손에 안 잡히던 것이 잡혔나보네요 라고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어 봅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어느 한 마을에 페스트가 발생해서 사라지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우선 책의 뒷 표지에 적힌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 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 당국이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자 무방비 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의사로서 사명을 다하려는 리유와 부당한 죽음을 거부하려는 미지의인물 타루, 우연히 오랑에 체류 중이던 신문기자 랑베르 등은 공포와 불의가 절정에 달한 도시에서 페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이 재앙을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보고 신의 뜻에 따르자고 설교하는 신부 파늘루, 모두가 고통에 빠진 상황에서 오히려 세상에 소속감을 느끼는 코타르도 있다. 페스트는 쉽사리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보건대 사람들은 새로운 혈청의 실험 대상이었던 어린아이가 죽어 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


카뮈의 소설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두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카뮈는 살아 생전에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제 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경험했습니다. 바로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기존의 진리, 제도를 파괴하고 합리주의에 대한 한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와 삶의 태도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문이 생겨나게 됩니다. 카뮈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부조리',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으로 대답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세상을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와 다르게 비합리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는 의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곧 부조리로 인식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한 부조리에 대해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반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조리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해서 무의미한 삶이라고 느껴지더라도 진리를 바라며, 행복을 바라는 욕구를 가지고 나가라는 것이 카뮈의 행동적 휴머니즘입니다.


'행동적 휴머니즘'은 『페스트』에서도 등장인물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럼요" 그는 말했다. "아마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나는 필요한 정도의 자존심 밖에는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p170)


그래서 늦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비 속에서도, 매일같이 한밤중이면 승객 없는 전동차의 괴상한 행렬이 바다 위 저 중턱으로 덜거덕거리면서 지나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시민들도 마친내는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순찰대가 임해 도로에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흔히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파도치는 바다를 굽어보며 솟아 나온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전동차가 지나갈 때면 유람차 안에 꽃을 던지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전동차가 꽃과 시체를 싣고 여름밤 속을 더한층 심하게 흔들리며 달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p234)


등장인물 그 중에서도 의사인 리유는 의사라는 자신의 사명감과 다른 이유없이 자신 앞에 있는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도 타루는 보건대를 스스로 조직합니다. 그리고 페스트가 심해져 사람들이 장례 절차도 없이 땅에 묻히기 위해 수송되어 질 때 사람들은 전동차에 꽃을 던집니다. 먼저 떠나는 이에 대한 인간애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각자 나름대로 반항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알베르 카뮈 (1913~1960)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밝힌 작가 


- 1957년이 밝힌 노벨상 수상 사유



지금까지 제가 만난 두 작품 『이방인』, 『페스트』를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인간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번쯤은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깊이있게 파고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심연을 바라보기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가봐야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쯤 진지하게 나 자신을, 인간을 바라보고 싶은 분들에게 카뮈의 작품을 권합니다.






반응형

내 안의 악(惡)은 무엇일까?




온라인 서점에서 문자가 날라왔다. 예전에 예약했던 정유정 작가의 신작 『종의 기원』 이 도착한다고 한다.

보통 책이 출간되기 전에 사전 예약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정유정 작가이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영화로 치자면 누구나 기대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에 이어서 네 번째로 만나는 책이다. 

하나같이 마지막 장까지 스스로 호흡을 관리하면서 읽어야 할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했다.

어찌 그녀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토요일 새벽 3시다. 방금 책의 마지막을 덮은 다음에 서둘러 이렇게 글을 남긴다.

아직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뒷목의 근육이 뻣뻣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소설은 읽고 나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한기가 올라와서 긴 옷으로 서둘러 갈아입었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책을 접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에필로그, 작가의 말을 순서대로 읽었다.

작가의 말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있다.


책을 편 독자들에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는 하나 이야기 자체로서, 혹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부디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 (P383)


아주 힘들게 읽었다. 책의 소재 자체부터 너무나 자극적이다. 

작가 역시 이를 알았을 것이지만, 그렇게 깊숙히 밀고 가면서 진정으로 끄집어 내고 싶은 것이 있었나보다.

소재는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 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불편한 거는 그 살인에는 존속살인이 포함된다.


소설은 사이코패스인 유진의 시선과 아들이 사이코 패스인 걸 알고 살아왔던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서 전개된다.

정유정 작가의 특징이기도 한 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는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어쩌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해버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과감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의 입에는 오르기 조차 망설이는 주제이기에 어쩌면 많이 망설여졌을 테지만,

그러기에 더 과감한 표현이 이어졌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프로파일러 분에게 감사하다는 글을 보니.

유진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서 실제 일어난 사례도 많이 분석해본 듯 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예전에 있었던 존속살해 사회 기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과 몇 일 전에 강남역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살인이 벌어졌다. 

뉴스에는 듣기에도 무서울 정도의 살인 사건이 연일 보도되어 진다.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너무나 잔인하고, 이유가 없고, 반성도 없다. 

세상이 사는 게 점점 무서워지고 있다.


이 소설은 싸이코패스라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부터 인간의 근본적인 악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묻는다.

작가도 프로이트로부터 실마리를 악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P380)


나 역시 내면에는 일상 생활에서는 표출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욕망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상당히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위일 때가 있다.

입 밖으로 내밷기 힘들고 홀로 생각이 스쳐가기도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만이 알고 있기에 내뱉기 힘들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불편하지만 쏘아붙인다.

그래서 많이 불편하고 속이 메스껍기도 하다. 작가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즐겨달라고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했다. 하지만 역시 '정유정' 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유정의 새로운 스릴러를 읽는 내내 움크리고 있었고, 새벽이라 오롯이 들리는 내 숨소리에 긴장이 더했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후유증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반응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