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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려준 가장 큰 재산은 독서습관

어쨌든 우리 부부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수많은 책을 읽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듣고 자란 녀석은 글자를 깨우치자 우리가 읽어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도 많은 책을 읽었다. 그 아이가 중 고등학교 시절 성적은 완벽하지 못했는데 대학은 잘 간 이유가 바로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내 생각에 녀석은 대학교 가기 전까지 적어도 1,000권은 읽은 것 같다.

그 덕에 좋은 대학에 가긴 했지만 대학에서도 역시 학과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나를 닮았는지 학교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또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즐기면서 살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학에서 쫓겨나지 않는지 궁금하기까지 하지만, 내가 비슷한 과저을 거쳤기 때문에 그다지 흠잡지 않는다. 아니, 나의 경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난 아들에게 훈계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난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아들 역시 타인이지 나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아들은 그다지 찌들지 않은 고교 시절을 보내고도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에 가서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 녀석은 자신이 아는 것은 거의 책을 통해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독서습관 하나는 확실하게 심어준 것 같다. 무척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일곱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그 녀석에겐 미국이 고향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리를 하더라도 방학이 되면 미국으로 여행을 가 한 달 이상 머물다 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번잡스럽게 지내는 건 아니다. 여행계획 같은 것도 없다. 우리 셋 다 시끄러운 곳은 싦어하기 때문에 친구를 통해 조용한 지역의 잠시 비어 잇는 집을 빌려 주로 거기서 책을 읽으며 지낸다. 셋이 각각 도서관에서 빌려 오거나 산 책들을 읽고 지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 부부는 일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가끔은 외출을 하기도 한다. 놀이동산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고 바닷가나 호수를 찾는다. 하지만 그런 곳에 머무는 시간은 짧고, 외출의 마지막 코스는 꼭 서점이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우리 셋은 각자 관심 분야의 코너로 흩어져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아내는 음악과 문화에 관한 책, 아들은 어린이들이 읽는 책, 나는 생물학이나 자연과학, 심리학 등에 관한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내가 두 사람을 찾아내야 배도 채우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나다. 아내와 아이는 책을 집어들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끼니는 내가 챙겨야만 한다.

그리고 나올 때는 반드시 각자 몇 권씩의 책을 산다. 내가 제동을 걸어봐야 들은 척도 안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책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한다. 문제는 방학이 끝나가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생긴다. 짐을 쌀 때마다 책 때문에 가방이 부족해 늘 골칫거리다. 그때즘 되면 내가 대놓고 잔소리 좀 한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아마존이라는 인터넷 서점이 생겨서 그런 불편은 덜게 됐다. 미국 서점에서 직접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신청해놓고 돌아오면 책이 먼저 와 있곤 했다.

우리 집 거실은 한마디로 서재다. 아니 거실만이 아니다. 집 전체가 서점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하고 많은 수의 책이 있다. 대부분의 집 거실에 자리 잡고 있는 텔레비전은 없고 허리 높이로 벽을 따라 쭉 이어지게 책장을 만들어놓아 책들을 다 꽂아두고 있다. 거실뿐만 아니라 벽이 있는 곳은 다 책장을 만들어놓았다. 책꽂이로 집안의 빈 벽면을 다 채워버린 것이다. 거기다 책을 다 꽂고 그 위에는 꽃병이나 조각품 같은 것을 놓으면 삽시간에 최고의 실내장식이 된다.

책 읽기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어느 부모든 자시게게 책을 읽으라고 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런데 자신들은 거실에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라. 독후감을 써라" 하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을 때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것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부모들이 책을 읽으면 된다. 우리 부부가 가장 잘한 교육이 바로 그것인 것 같다.

우리는 아들에게 어떤 책을 꼭 읽으라고 특별히 권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 아기 때부터 다양한 책을 읽어주었고, 나이가 좀 들고 나서는 스스로 골라 읽었기 때문이다. 대신 어렸을 때 동화나 소설 외에 나의 전공에 가까운 자연과학 책들과 인문학, 사회과학 쪽 책들을 사서 책꽅이에 꽂아두긴 했다. 그 책을 읽고 안 읽고는 아들 마음이었다. 그런데 제 엄마를 닮아서인지 다양한 책을 읽는 걸 좋아해서 그 책들을 다 읽었다. 그리고 나는 한 권을 손에 들으면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을 못 읽는데, 아내와 아들은 읽던 책이 있어도 갑자기 관심 가는 책이 나타나면 새 책부터 읽곤 한다.

아기 바구니에 담겨 있을 때부터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 눈에 늘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아이도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생에 큰 자산이 되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아이에게 이미 엄청난 재산을 물려줬다고 자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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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줬지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지만, 서로 바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결혼한 지 9년째인 1989년에 아이를 낳았다. 내게 문제가 있어 아이를 못 낳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듣다가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겠는가?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기로 약속했고 실천했다. 그런데 내 어머니도 아내의 어머니도 안계시는 타국 땅에서 아무런 경험도 없이 아이를 기르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 부부는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서로 의논해가며 아이를 키워야 했다. 아내는 워낙 학구적인 사람이라 영어로 된 육아 관련 서적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아이가 백일도 되기 전의 일이다. 저녁때가 되었는데 애를 겨우 재우고는 둘이 소파에 그냥 늘어지고 말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얼마 후 깼는데 그때야 비로소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났다. 어른 둘이 아이 하나를 돌보느라 온종일 굶다니, 초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진을 빼는 상황이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서툴렀고, 잘하고 싶었던 만큼 힘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아내는 교회에서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거기서 알게 된 미국인 노부부가 우리 아이를 보러 오셨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재미있고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두분은 이제 겨우 백일 정도밖에 되지 안 된 아이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 해주시는 것이었다. 어제 동네 가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뉴스 시간에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말이다.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우리 부부에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좀 이상하게 보이나 보네. 아기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지, 아마? 하지만 그렇지 않아. 아기는 우리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고 있어. 그러니까 아기에게 "까꿍!" 이런 것만 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줘. 너희가 학교에서 겪었던 이야기, 읽은 책 이야기, 그냥 서로에게 하듯 해주렴. 그러면 아이는 다 듣고 자란단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렇게 하는거야."

할머니 말씀에 우리 부부는 큰 지혜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까지 우린 그저 아기가 울지 않게 하려고 먹이고 재우는 데만 온 신경을 썼다. 아직 아기가 아닌가. 게다가 잠이 들면 혹시 깰까 봐 까치발로 살살 다니고 그랬을 뿐이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아이 옆에 있는 동안 번갈아 그날 이었던 이야기를 해주고,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를 위한 책만이 아니라 우리가 읽는 전공 책이나 논문도 아이 옆에서 소리내어 읽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 하버드대학 기숙사 중 하나인 엘리엇하우스에서 사감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태어난 아기는 우리 아이가 유일했다. 병원에서 데려오는 날 기숙사 시계탑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앨런 하이머트 학장님의 배려였다. 기숙사 학생들에게도 아기는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였다. 우리가 아기를 안고 식당으로 내려가면 학생들이 전부 와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오늘 아침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무슨 기사가 났니?"라고 묻곤 했다. 그중 어떤 친구는 우리에게 "이 아기 표정을 보면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우리는 그게 우리가 아기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읽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축하며 살짝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가 두세 살이 되자 우리는 상상력을 키우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책들로 골라서 틈날 때마다 읽어주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몇 권을 읽어도 밤이 늦도록 아이가 잠이 들지 않아 곤란하기도 했다. 아이가 빨리 자야 우리도 일을 하는데 말이다.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여전히 말똥말똥한데 오히려 읽어주는 내가 잠이 오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두 권만 읽어줄게"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러면 아이가 "네 권!" 이라고 협상을 해와 세 권으로 조절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아마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 말쯤이었을 것이다. 그날 따라 많이 피곤했던지 내가 그만 책을 읽어주다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결에 누군가 책을 읽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데 실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었다. 하도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라 외워서 말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놀랍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스스로 책을 읽게 하는 것도 좋지만, 글을 모르는 아기 때는 물론이고 글을 알고 난 뒤에도 부모가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게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내 무덤을 스스로 판 것도 있긴 하다. 책을 읽어줄 때 덤덤하게 읽은 게 아니라 성대모사를 해가며 구연동화처럼 읽어 주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그렇게 읽어주지 않으면 "아빠, 그건 도널드 덕의 대사잖아? 도널드 덕처럼 말해야지"라며 제공을 걸었다. 피곤해서 대충 읽어주려고 해도 어림없었다. 

                                                                                                - 과학자의 서재 (p258~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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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오른쪽 위에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다.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중요한 것은 바로 삶인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진심으로 진정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삶의 조언을 얻기 위해 아낌없이 주고 열렬히 읽는 자에게는 무한한 것을 주는 것이 바로 책인 것이다.

책에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애써서 사람들에게 그 숨겨져있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기꺼이 찾으려고 하는 자에게는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깊이 숨겨놓지는 않는다. 나는 과연 이런 책에서 어떤 것들을 찾아내고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책 속에 나오는 질문 "왜 책을 읽는가?" 라는 질문을 책을 읽는 내내 혼자 머리속에 되뇌었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계속 생각하고 있다. 책에 관련된 책을 읽다보면 책을 읽는 이들은 아마도 무언가 공통적인 것을 책에서 찾아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바로 "왜 책을 읽는가?"라는 질문의 해답이 될 듯하다.

내 대답은 바로 "삶을 풍부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책" 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겨나는 듯하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만나고, 그 속에서 자연을 대하는 작가 김훈을 마주하게 되었다. 다음 날 출근 길에 평소와 다르게 붉게 해가 뜨는 모습이 보이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여러 사건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는 모습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라는 인간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고 이스라엘과 중동의 소식을 듣고, 아직도 십자군 전쟁은 끝나지 않았구나?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도 만들었다.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 금전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거나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글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 책 속에는 한 작가의 삶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으며, 깊은 고뇌가 들어가 있음은 읽는 자들이 미리 알고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이런 삶들이 나에게 말해 준다. 나는 단지 겸허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겸손하게 나와는 다르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공감하고 서로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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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책을 조금씩 많이 읽어가면서, 어느 순간 소설과 역사 위주의 편협한 내 독서 분야를 조금 더 넓혀야 겠다는 생 을 했다. 그러면서 어떤 분야가 좋을까 고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책들을 들춰봤다. 그러다가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인 <말하는 건축가> 가 생각이 났고 그 때의 감동이 새삼 다시 느껴지는 듯 했다. 관심 분야는 내가 많이 접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에 시작해서 찾던 중에 건축, 건물, 집, 도시 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항상 걸어다니는 거리, 거리의 가로수, 수 많은 건물들 처럼 나에게 밀접한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만난 첫번째 책이 알랭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 이고, 두번째가 바로 <제가.살.고.싶은. 집은......>이다. 두번째 책을 접하고 나서 확실히 건축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고, 너무나 잘 선택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건축가 이일훈과 건축주인 국어선생 송승훈의 이메일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책은 그 자체로 나와 같은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하나의 내공이 깊은 선생이 쓴 건축개론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집에 담아내려고 하는 것들을 표현하면서 끊임없이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면서 접근하는 인문학적인 접근 또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것을 알게 되니, 마치 흥부의 박을 연 것 같기도 하고,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을 짓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도 너무나 좋았고, 잔서완석루의 요소요소를 보여주는 사진도 빼놓을 수 없었다. 또한 건축가의 설계도 역시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였다.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다. 이를 위해 내 삶의 고정관념을 깨고 미리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고정관념은 "이제 지금부터 고정관념은 버리자" 라는 이런 구호가 아닌 지식과 실력으로 갖추어지면서 서서히 없어지는 것이기에 교만하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책과 서재를 좋아하다 보니, 책의 표지에도 나오듯이 서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또한 책상이 있는 2층 또한 내게 다가왔다. 툇마루 역시 너무나 좋은 공간인 듯 하다.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고, 바람이 통하는 곳이고, 잠시 누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인 그 곳에 나 역시 잠깐 눈을 감고 누워있고 싶었다.

 

이 집을 짓기위해 그리고 그 전부터, 건축주인 국어선생 송승훈씨는 건축을 너무나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것 같았다. 건축가와 의사소통하는데도 건축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거기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았고, 잘 몰라도 건축가와 소통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잔서완석루'라는 집이 만들어 지고, <제가.살.고.싶은 집은......> 이라는 책도 만들어 진 것 같다.

마치 인문학 서적을 한 권 읽은 기분도 들었고, 자신을 성찰하는 하나의 수필인 것도 같았고, 건축에 대한 책인 것도 같았던 매력적인 책이었다. 아마 이 책이 내가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오늘 아침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건축 관련 책을 찾아서 온라인 서점에 주문해서 지금 내 책상 위에 세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집을 순례하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다시, 집을 순례하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

이 책들에서는 어떤 것을 알게 될까? 무엇에 감동받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p76
깨진 질감의 벽돌은 스플릿블록split block (쪼갠 벽돌)으로, 아주 단단하며 질감이 좋습니다. 단 기존의 블록보다 비싸고 인건비가 더 들지만 매력적인 재료입니다.

p77
통녑적 생활방식을 바꿔볼 부분도 이리저리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p81
인생이 매끄럽게 높아지지 않고, 얼마만큼 노력하면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을 얻어 한 단계 올라서고, 그 상태에서 다시 얼마만큼 애쓰다 보면 다시 한 걸음 내딛게 되고 그런 것이니까, 당장 얼마만큼 힘썼다고 곧바로 그만큼 진보가 있는 게 아니니 지금의 더딘 진보와 치유의 속도에 기 꺾이지 말라는 뜻일까 혼자 짐작했습니다.

p82
자연빛이라 인공조명과는 또 다른 부드러운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른 자연빛이 들어와서 성당 안을 다채롭게 하겠지요.

p83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구호만으로 고정관념은 깨지지 않고 역량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p84
삶의 방식은 사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가까이 또는 너무 당연한 탓으로 그러하지요. 이미 많은 단서가 잡힌 것ㅂ니다. 안방이 의례적일 필요가 없고, 서재 중심이고, 식당을 따로 마련치 않을 가능성과 거실도 클 필요가 없다는 것만 해도 큰 진척입니다.

p86 <book 건축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건축물을 볼 때 '형태와 재료'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에 대해 모두 깊게 아쉬워하고 있더군요. 실제 그 건축물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게 될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고 모양에 더 많이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안타까웠겠지요.

p87 <이일훈의 건축, 숨겨진 재미를 찾아서 - http://www.edunity.net
건강한 집이란 바람 잘 통하고 빛이 잘 들고 소음이 없고 진동이 없는 집이라고 하셨지요. 마루가 있으면 여름이 끝내주리라 싶습니다. 겨울에도 깨금발로 이 방과 저 방 사이를 종종거리며 걷는 일이 재밌을 것 같습니다.

p96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 같은 말이 장소와 공간이 바뀌었을 때 더 큰 설득력을 갖는지요. 아마 그것이 장소와 공간에 내용이 더해질 때 갖는 힘이겠지요. 도면을 보고 이해는 하지만 현장을 보고 더 큰 감동응ㄹ 느끼는 것도 장소의 공간이 힘을 갖는 경우고, 노동 현장의 갈등을 풀려고 고위책임자가 현장을 가는 이유도 아마 장소의 힘이 말할 수 없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p98
어차피 동네가 그린벨트가 아닌 '관리 지역'이라서 야금야금 개발의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가깝게 있는 필지들이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작은 필지로 대지 분할을 시도하는 집들도 나올 수 있습니다. 도시화는 지가 상승과 함께 진행되므로 한 번 시작하면 속도가 빠릅니다. 더욱이 주변에 산이 좋아서 주택지로 선호되는 탓에 땅 구하려는 이는 많고 매물이 없다면 큰 땅들은 분할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예측보다는 좀 더 많은 집들이 주변에 들어설 수 있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p101 <book 건축, 우리의 자화상 - 인물과 사상사 2005>

p118
거친 벽은 지루하지 않을 거야, 세월에 덜 누추해지고 나이가 들어도 추해지지 않고 멋있을 거야, 건축가가 지었지만 시골 동네에 위화감을 만들지 않기에 의미 있을 거야, 인생이 본래 황량하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 나는 그 모양이 마음에 와 닿았을까, 싸게 짓는 집에서 당당하려면 거친 모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이일훈 선생의 글을 보았잖아.

p119
건축이 그 땅에 세워지면 그 땅에 축복일 수 있게 해야 한다.

p127
<재색불이>, <기찻길 옆 공부방>, <도피안사>에 쓰인 재료는 스플릿블록입니다. 보통의 소위 '브로꾸'라는 것을 아주 강하게 만들고 표면을 거칠게 깬 제품인데 질감이 참 좋습니다. 혼합하는 재료에 따라서 다양하진 않지만 질감, 표면 마감, 색상의 연출도 가능합니다. 혹자는 돌로 보기도 하고, 혹자는 좋아하지만 혹자는 싫어하기도 합니다.

p129
머리를 쓰는 사람은 몸 쓰는 일이 휴식이다.

p135
대지를 산 일은 아무 걱정이 없는데, 답으로 된 땅 100평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법무사에게 여락해서 어떤 쓰임으로 허가받았는지 알아보라고 하면서 만약 특용작물재배로 허가를 받았으면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게 웬 난리야 싶었지요. 알아보니까, 주말농장으로 허가받았다고 하더군요. 밭 갈고 씨 뿌려야겠습니다.

현행 법으로는 밭에 집을 지으면 불법이지만 대지에 텃밭을 일구는 것은 합법이다.

p140
봄은 볼 것이 많아 봄이라는데, 이 봄에 저는 될 수 있으면 덜 보려고 합니다. 눈을 뜨면 밖만 보이고 안이 잘 안 보이는지라, 봄에는 오히려 눈을 감는 것이 봄을 안으로 들이는 법이 아닐까 합니다.

p141
지난 한 주는 학교 끝나고 저녁때마다 집터에 올라가서 나무를 심었지요. 첫날은 회양목 다섯 그루로 시작해서 그 다음날에는 철쭉 열 그루로 늘리고, 그 다음에는 스무 그루를 심었지요. 회양목 서른 그루쯤, 철쭉 열댓 그루, 조팝나무 다섯 그루, 작은 정향나무 두 그루 심었지요.

p143
봄비가 오는 소리가 좋아서 바깥에서 듣다가 잠에 빠지면서도 듣고 싶어서 창을 약간 열 수가 없을 때, 아아 신음하겠고요. 여름에 비가 와서 후덥지근할 때 창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싶은데 그 창문으로 그리 세지 않는 비조차도 들이쳐서 답답할 때, 아아아 신음할 듯싶어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빛에 따라 책을 읽고 싶은데 빛이 얼마 없어서 전깃불을 너무 오래 틀어놓아서 눈이 아프면 아쉽겠지요.

p144
회양목, 철쭉, 조팝, 정향나무들이 서로 잘 어울리고, 축대의 경사면에 적당합니다. 조팝나무는 무리를 이루면 좋습니다. 봄에 흰꽃이 장관입니다. 작은 꽃 무리가 일품입니다. 회양목은 가끔 퇴비를 주어 줄기가 실해지면 나무 모양이 그럴 듯합니다. 절대 가지자르기 하지 마세요. 도시에선 군식해서 빡빡머리 가꾸듯이 한 것이 많은데, 회양목은 그냥 크게 자라면 무척 자연스러운 맛이 납니다. 좀 외롭고 성글고 뭔가 나무로서는 기운 없어보이지만 사철 푸른 성깔을 보여 주지요. 큰 줄기 빨리 볼 욕심에 퇴비 얘기를 했는데 거름 없어도 잘 사는 나무입니다. 철쭉은 흔해서 관심을 못 끌지만 방창하게 꽅 피울 때는 화려하다 못해 서러울 지경으로 색을 내지요. 철쭉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으면 봄의 기운이 마치 움직이는 듯하지요. 정향나무도 석축에서 잘 자랍니다.

p150
집을 지은 후에 토질이 나빠지는 것은 뻔한 일이니 미리 너무 많은 나무에게 정성을 들이지 마십시오. 조금 아끼고 계시다가 후년부터 듬뿍 정을 쏟으시길 바랍니다. 공사 뒤에는 대대적인 토양 교체와 토질을 살리는 거름주기와 이른바 땅 살리기를 해야합니다.

p156
'나눔문화'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사회단체입니다. 노동시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박노해 시인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누리집은 http:/www.nanum.com

p158
재료 자체에서 오는 감각만 따졌을 때 인공재인 철판은 반환경적이다. 그러나 철은 재생이 가능하므로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진짜 황토로 만든 집은 허물면 다시 흙이 되기에 친환경적이다. 그러나 물에 약한 황토집은 1년에 한 번씩 수리해줘야 하는데 이 작업이 번거로워서 황토에 인공 첨가물을 사용하기 쉽다. 그러면 황토는 호흡하는 기능이 사라지고 반환경적이 된다. 자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친환경, 반환경적인 측면을 갖게 된다.

 p164
건축가 김진애는 <이 집은 누구인가>(샘터사, 2006)에서 부억이 여러 사람이 오고가는 마당이 되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책에는 그밖에도 비가 오는 데 집안에 있으면서 바깥공기를 쐬며 비 맞지 않는 곳을 만들면 멋지다와 같이 쏙쏙 집어내서 적용할 거리가 있습니다. 잠자는 방은 꼭 클 필요가 없고 작아도 편안하다는 내용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p172
참 김중업 선생님께서 생전에 자주 하신 말씀이 집이란 '어드메 한 구석에 기둥을 부여잡고 울 수 잇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p192
<모형 속을 걷다>(이일훈, 솔, 2005) 이 책을 읽고 저는 건축가 이일훈을 찾아갔습니다. 장안동 동네 서점 책장 아래칸에서 찾았지요.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건축책인 줄 몰랐지요. 건축에서 전통을 계승한다고 할 때 형태를 따르기보다 공간 구성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깊게 와 닿았습니다. 건축가가 건축물을 설계하며 겪은 여러 일과 사색과 애환이 오밀조밀 담겨 있어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며 포장마차에서 듣는 인생 이야기 같습니다.

p223
 자석으로 사진을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하는 벽

p227
유행 따른 건축물은 유행이 지나면 초라해 보입니다. 유행에 초연한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도 의젓한데 그 단순함을 놓치다니 안타깝지요.

p236
황토벽돌로 만든 방은 벽에 못을 박으면 안 된다고 하셨지요. 흑벽돌이 못을 견고하게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요. 못 박을 자리를 미리 정해두고 거기에 벽돌 대신에 나무 토막을 넣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바닥에 황토를 쓰면 한지로 마감하고 콩기름 먹여야 하는데 그게 내구성이 없어 훼손되기 쉬워서 신경 쓰 일이 많도고도 알려주셨고요. 미화시키지 않고 선생님 판단을 얘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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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아내가 둘째 아들을 출산했다. 새벽2시경 산부인과에서 아내는 첫째 때와는 다르게 거친 숨소리와 비명 소리 가 들려왔다. 그런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오만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병원의 창문 밖으로 붉은 십자가가 보였다. 일부러 그곳에 세웠냐는 듯이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창문에 바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 홀로 기도드렸다. 아내가 건강하기를, 아이가 건강하기를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아 기도드렸다.
 
 솔직히 결혼을 하고 기독교를 믿는 처가의 영향으로 몇 번 교회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성적인 생각과 습관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기독교의 신앙을 믿지 못하고 있고, 교회도 잘 다니지 않는다. 그런 내가 그때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나 보다. 그만큼 천주교, 기독교는 지금 현재 보편적으로 우리 사회에 스며들었고, 많은 이들의 신앙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사회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다.
 
 150년 전, 조선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과히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주교가 처음에 조선에 들어왔을 때는 종교의 개념이 아닌 학문의 하나였다. 바로 서학, 서쪽에서 온 학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서학과 함께 천주교가 종교로서 사회에 퍼지면서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태워버리는 일들이 발생한다. 부모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인의예지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에게는 바로 그 정치이념, 왕권과 사대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수백년을 이어온 기득권 세력의 위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이러한 사상, 종교를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에 따르는 고통과 핍박을 피할 수 없었다. 조선의 천주교 도입 초반을 보여주는 '흑산'은 이 시대의 천주교인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정약용의 가족들이 있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황사영이 바로 그 박해의 폭풍 속에 있었다. 정약용은 이들 중에서는 천주교와는 그나마 가장 밀접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들의 말로는 편치 않았다. 황사영은 여섯 토막으로 정약종은 두 토막으로 처형되었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정약종과 황사영은 후에 성인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천주학에 깊이 빠져있었으며, 그 당시 기득권, 주류에서 소외되었던
 많은 백성들은 그들 개개인을 인정해주는 이 학문, 종교에 점점 더 관심이 높아져 갔으며, 그것은 신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에 반대에는 조정에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
 김훈의 역사소설은 칼의노래, 현의노래, 남한산성, 흑산처럼 당시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인간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준다. 역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묘사할 때도,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묘사는 화려하고 다양한 형용사와 부사는 들어가지 않는다. 단지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듯하는 문체는 그 어떤 꾸밈을 능가하고 눈 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듯 해서 읽는 내내 감탄하고, 글에 빠져들곤 한다.
 
포스트잇을 들고 책을 읽어가다 보니 어느덧 책의 옆에는 수십장의 포스트잇이 옆으로 드러났다. 이글들도 몇일 뒤에 기억 속에 사라질거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쉽다.
 
< "울음은 질겼다. 몸의 깊은 곳이 흔들리면서 울음이 퍼져 나왔다. 앞선 울음이 아직 울어지지 않은 울음을 이끌어냈고
잦아드는 울음이 한 굽이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울음은 추슬러지지 않았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하늘색과 물색이 같아서 배는 허공으로 뜬 듯했다.">

이런 글을 쓰는 그의 감성과 섬세함이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정약용의 가족들의 고향인 마재의 두물머리를 나타내는 글은 몇 번을 곱씹어서 읽었다.
  
황사영의 처가 동네 마재는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나온 북한강과 충주,여주,이천의 넓은 
들을 지나온 남한강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음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마재의 농경지는 물가에 바싹 닿아 있었다. 수면과 농경지가 턱이 지지않아서 아이들도 동이로 밭에 강물을 퍼 나를 수 있었다.  북한강 물은 차갑고 남한강 물은 따스해서 두물머리 마재에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었다.  해가 떠올라 안개가 걷히면 강은 돌연 빛났고 젖은 산봉우리에 윤기가 흘렀다.  하남 쪽 검단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산협을 굽이치며 다가오는 두 줄기 물길이 푸른 띠처럼 보였다.  서울 도성 쪽으로 향하는 큰 물은 산을 돌아나가면서 보이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저쪽 물길에 도성은 펼쳐져 있었다

특별한 미사여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묘사보다 뛰어나고 힘있게 다가온다.
이렇게 역사에 대해서 그동안 보편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다르게 접근하는 것에 마음에 들었고 오랜만에 김훈의 그 필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잘 다려진 한 첩의 보약을 먹은 듯이 든든하다.
  
이제 내가 보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신중하려고 한다. 아침 출근길의 싸늘함을 몸으로 기꺼이 맞으려 한다. 피곤해서 시려워 붉게  충혈된 눈을 느껴보려 한다. 이렇게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조금 더 느끼고 기꺼이 글로 뱉어보고 싶다.


p10
정약전은 육신으로 태어난 생명을 저주했지만 고통은 맹렬히도 생명을 증거하고 있었다.

p15
정약종은 위관의 심문에 이끌리지 않았다. 정약종은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스스로 진술했고, 그 이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매를 불렀고 다시 침묵으로 매에 대답했다.

p18
그 캄캄한 단절은 신의 부재 증명이었지만, 다시 캄캄하게 뒤집히는 고통이 생명을 증거하는 사태는 신의 존재 증명인 듯도 했다.

p43
길은 늘 앞으로 뻗어 있어서 지나온 길들은 쉽게 잊혔지만, 돌아올 때는 지나온 길이 앞으로 뻗었고, 갈 때 앞으로 뻗어 있던 길이 다시 잊혔다. 길은 늘 그 위를 걸음으로 디뎌서 가는 사람의 것이었고 가는 동안만의 것이어서 가고 나면 길의 기억은 가물거려서 돌이켜 생각하기 어려웠다.

p49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하늘색과 물색이 같아서 배는 허공으로 뜬 듯했다.

p60
마음이 세상의 근본이며, 세상의 동력이어서, 시간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 못하며, 마음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p62
황사영의 처가 동네 마재는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나온 북한강과 충주,여주,이천의 넓은 들을 지나온 남한강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음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마재의 농경지는 물가에 바싹 닿아 있었다. 수면과 농경지가 턱이 지지않아서 아이들도 동이로 밭에 강물을 퍼 나를 수 있었다. 북한강 물은 차갑고 남한강 물은 따스해서 두물머리 마재에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었다. 해가 떠올라 안개가 걷히면 강은 돌연 빛났고 젖은 산봉우리에 윤기가 흘렀다. 하남 쪽 검단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산협을 굽이치며 다가오는 두 줄기 물길이 푸른 띠처럼 보였다. 서울 도성 쪽으로 향하는 큰 물은 산을 돌아나가면서 보이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저쪽 물길에 도성은 펼쳐져 있었다.

p68
정약현은 책을 읽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았고, 붓을 들어서 글을 쓰는 일을 되도록 삼갔다. 정약현은 말을 많이 해서 남을 가르치지 않았고, 스스로 알게 되는 자득의 길을 인도했고, 인도에 따라오지 못하는 후학들은 거두지 않았다.

p73
박차돌의 아비는 솔가해서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었다. 마을은 오목하고 잘록했다. 산비탈로 둘러싸여서 마을 이름이 소쿠리마을이었다. 해가 일찍 저물었고 밤은 새카매서 눈이 멀 지경이었다.

p117
세상을 직접 대하라고 [소학]에서 배웠습니다.

p127
가마우지는 절벽 끝에서 물 위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수면 위로 내리꽂혔다. 가마우지는 물속으로 들어가서 먹이를 쫓았다. 물가에서 바라보던 창대는 숨을 헤아렸다. 창대가 깊은 숨을 열 번 들이쉬고 내쉬자, 가마우지는 물속에서 날아올랐다. 가마우지 주둥이에서 물고기가 퍼덕거렸다. 가마우지는 절벽 꼭대기에 내려앉아서 발로 물고기를 누르고 대가리부터 쪼아 먹었다. 물고기가 온몸을 뒤틀며 진저리를 쳤다.

p133
뼈는 돋아나지 않았다. 뼈는 붙지 않았고 움트지 않았다. 부러진 뼈는 너덜거리다가 떨어져나갔다. 떨어져나간 자리에서 피고름이 흘러서 감옥 바닥의 멍석을 적셨다. 피고름에 구더기가 슬었고 빈대가 꼬였다. 구더기가 파리가 되어서 상처의 진물을 빨았다.

p141
약종이 사학의 죄를 끌어안고 먼저 죽어서 약용은 풀려나기가 수월한 것이었다. 약용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약용은 자신이 약종의 죽음에 기대고 있음을 알았다.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알게 되었다. 정약전은 약용의 배교에 힘입어서 함께 풀려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약전도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알게 되었다. 정약전은 약종과 약용으로부터 비켜 서 있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죽은 약종과 황사영의 일을 평생 입에 담지 않았다. 그들은 형틀에서 헤어졌다. 정약종은 참수되었고 황사영은 능지처참이었다. 집행은 느리게 진행되었다. 정약종의 사체는 두 토막이었고 황사영은 여섯 토막이었다.

p143
강가 고을들의 수령과 찰방, 진장들은 관노들끼리 짝을 붙여서 노비의 자식을 생산해냈다. 대체로 임진강을 사이에 놓고 씨가 좋은 남종과 자리가 좋은 여종을 주고받거나 강남 쪽에서 길쌈 잘하는 여종은 강 북쪽 마을에서 참게 잘 잡는 남종과 바꾸는 방식이었다. 흥정이 쉽게 풀리지 않을 때는 나이 든 남종 한 명에 말 한 마리나 염소 두 마리를 얹어서 젊은 여종 한 명과 바꾸기도 했는데, 젊은 여종은 팔려오면 바로 교접을 붙여서 새끼를 베게 했다. 자식을 낳고 나서 젖이 잘 도는 여종이나 미색이 뛰어난 계집종은 늙은 남종 서넛과 맞바꾸었다. 젖 잘 나오는 여종은 팔려간 상전집 아이가 두 돌이 지나 젖을 때면 몸값이 반으로 떨어져서 전의 상전한테로 다시 팔려왔다.

p166
억지로 키우려고 공들이지 말고 스스로 되도록 공들여야 한다. 키워서 길러내는 것은 스스로 됨만 못하다.

p185
창대는 섬에서 태어나서, 서너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고요히 들여다보아서 사물의 속을 아는 자였다.

p196
바람이 불어서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 장팔수는 집 근처 야산을 돌면서 딸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는 어린 소나무를 뽑아버렸다. 소나무가 자라면 무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장팔수뿐 아니라, 다른 어부들도 뱃일이 없는 날에는 어린 소나무를 뿌리째 캐내서 아궁이에 던졌다. 사람들은 그 일을 서로 말하지 않으면서 다들 알고 있었다.

p200
목마른 자가 저절로 물을 찾듯이 정약종에게 새날은 저절로 스며들었다. 정약전이 멈칫거리면서 배교하고 세속으로 돌아갈 때도 정약종은 애초에 정약전에게서 인도받은 그 길을 끝까지 걸어서 서소문 사형장으로 갔다.

p208
백성을 꾸짖을 때는 앓는 아이에게 약을 먹이듯 해야 하며 백성을 교화할 때는 가는비에 옷이 젖듯이 해야 하며 꾸짖거나 가르치거나 간에 콩을 볶듯이 해서는 안된다.

p245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온 가니는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다가 반년이 가까우면 뒤집고, 뒤집어서 배를 밀고, 밀다가 기고, 기다가 앉고, 앉았다가 일어서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한 걸음씩 걸어갈 것이었다.

p281
흑산을 버리겠다는 장팔수 앞에서 흘린 것과 똑같은 눈물을, 창대는 흑산에 남겠다는 정약전 앞에서 흘렸다. 울음은 억눌려서 울어지지 않았다. 어깨고 고요히 흔들렸다.

p297
순매는 그 내장들을 들여다보면서 물고기 세상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낯선 곳이겠거니 여겼다. 한 줌의 내장과 한 뼘의 지느러미를 작동시켜서 바다를 건너가고, 잡아먹고 달아나고, 알을 낳고 정액을 뿌려서 번식하는 물고기들의 사는 짓거리가 순매는 눈물겨웠다.

p310
모든 간절한 것들은 몸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 때 황사영은 알았다.

p311
울은은 질겼다. 몸의 깊은 곳이 흔들리면서 울음이 퍼져 나왔다. 앞선 울음이 아직 울어지지 않은 울음을 이끌어냈고 잦아드는 울음이 한 굽이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울음은 추슬러지지 않았다.

p339
-창대야, 숭어 피부는 무늬는 왜 저러하냐?
-숭어가 헤엄쳐가면서 부딪친 물살의 무늬일 것입니다. 그 피부 밑의 살의 무늬와 결도 그와 같습니다.

p341
갈치는 큰 칼과 같다. 큰 놈의 길이는 아홉 자에 이른다. 아가리를 벌리면 날카로운 이빨이 줄지어 있다. 갈치는 서서 헤엄치고 서서 잔다. 갈치는 꼬리지느러미가 가늘어서 물을 휘젖지 못한다. 갈치의 등지느러미는 대가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이어져 있다. 갈치는 이 등지느러미와 몸통 전체를 물결처럼 움직여서 서서 이동하낟. 갈치는 아래턱이 위턱보다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이빨이 드러난다. 어부들이 물리기 쉽다. 물리면 독이 있다. 갈치는 온몸이 칼처럼 번쩍거리고 만지면 은빛 가루가 묻는다.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을 쉰다. 물고기 아가미는 빳빳한 참빛과 같다. 물고기는 입으로 들이마신 물을 아가미로 걸러내며 숨을 쉰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속에 잠겨서도 바다를 건너간다.

p381
물고기들은 작은 내장을 작동시켜서 원양을 건너갔고 섬으로 다가왔다. 물고기들은 몸으로 파도를 헤쳐나간 무늬를 푸른 등 위에 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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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기독교에 대한 신앙적인 차원이 아닌 '성경'이란 그 매개체에 접근해보고 싶어서이다. '성경' 자체가 인문학의 보고이자, 사람 사이의 갈등과 지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종교적인 입장이 아닌 인문학적인 접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 이야기는 마치 최근에 읽고 있는 신영복의 [강의]를 성경 버전으로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바로 성경구절과 함께 그것을 강독해주는 구조로 되어있고 그 설명 또한 나 처럼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저자인 김민웅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아~! 이 사람이었구나. 예전에 토론 프로그램에서 기독교 관련 이슈에 대해서 나왔을 때 본 분이다. 일부 기독교 관계자들은 교회속의 언어와 세상을 바라보면서 충돌하고 있었는데, 이 분이 기독교와 현재의 사회와의 관계 및 변화해야 할 점이라던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을 보고 눈여겨 본 적이 있었다.

역시 글을 읽다보니, 그 분이 옆에서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처럼 신앙적인 차원이 아닌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한 번쯤을 읽어볼 만한 괜찮은 책인 듯하다. 그러면서 그 속에 담긴 뜻도 한 번씩 곱씹어 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P18

하나님은 인간의 삶이 안정되었다고 여기고 그의 기운이 고이려 하는 때 일으켜 세우십니다. 안락하다고 그냥 주저앉으면 안정이 아니라 퇴보이고 무너짐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노쇠해지고 맙니다. 또한 창조적 긴장을 가져올 만한 도전을 피하고 생명력 넘치는 상상력을 상실한 습관적인 인생으로 후퇴하며 틀에 박힌 삶의 무미건조한 존재가 되어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P19

과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새롭게 눈뜨고 자신을 옥죄던 운명의 사슬을 푸는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이 자신이 그토록 구했던 답을 줄 때 가능해집니다. 생각이 제 아무리 많아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은 단 하나이며, 선택의 여지가 하늘의 별처럼 많아도 결국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현실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당장에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우선은 유리하게 보이더라도 잠시 뒤에 가장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고, 불리하게 여겨지는 지점도 알고 보면 유리한 고지로 가는 고갯마루일 수 있습니다.

 

P30

어딘가에 도착했다가 다시 떠돌고 장막을 세우는 일련의 과정은 소모적이거나 어리석거나 아니면 몰라서 방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정작 뿌리내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는 힘을 기르는 절차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헤매고 떠도는 모든 과정이 우리의 영적 성장사가 될 수 있습니다.

 

P35

우리 역사에는 화냥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고 함부로 자기의 몸을 파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원래는 환향녀가 변모한 발음이라고 하지요. 과거 몽골족이 지배했던 원나라에 공물로 바쳐졌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 환향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을 고향에서는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수치로 여겼고, 마을의 치욕으로 여겨 능멸하고 욕설을 해댔다고 합니다. 이처럼 암울한 역사의 상흔인 환향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었지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우리의 여인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위안부나 정신대로 빼앗긴 역사가 있습니다.

 

P40

어떤 곤경에도 다시 길을 가는 의지와 용기가 주어지기를 기원하는 사람은 약해 보여도 결국 가장 강한 자입니다. 암담하게만 보이는 운명을 극복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 희망은 무너지는 법이 없습니다.

 

P45

인생에는 아파봐야만 깨닫는 게 있고, 눈물 없이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픔과 눈물, 떠도는 시간들은 모두 소중하고 결과적으로 아름답습니다. 고난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마주하는 방법, 그것을 알아가는 믿음의 지혜가 소중합니다. 아브람에게도 유랑생활은 그런 믿음과 지혜, 능력을 기르는 귀한 시간들이었지요.

 

P51

사랑하는 관계에서 분쟁이 생겼을 때 진상을 일일이 밝히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큰 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진상을 밝히려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의 책임을 묻고 비난하게 됩니다. 물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진상을 규명해야 하고, 강자가 약자를 짓누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정의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로의 힘이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서로의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한 상황이라면 감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건 자칫 서로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P67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승자는 들뜰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면 제 자신이 잘났다는 헛된 자신감에 사로잡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남들을 우습게 알기 시작합니다.승리의 순간에 교만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참 어렵습니다. 원상회복을 이루었다고 해도 이 기회에 한몫 챙기고 싶은 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P96

우리는 누군가 깊은 슬픔에 빠져 있거나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내가 위로한다고 해서 과연 위로가 될까?” 하고 회의적인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한 번의 위로와 관심이 큰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슬퍼하고 낙심에 빠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마음을 나누면 그 영혼은 점차 안정되어갑니다. 따뜻한 눈길 한 번, 정성어린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어 사람을 일으킵니다.

 

P110

남자들이 성적 능력에 자신이 있으면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경향도 이러한 본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힘을 포악하게 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성범죄와 같은 사건들은 남성의 여성들에 대한 성적 유린과 폭력입니다. 전쟁이 일어나 집단 강간이 일어나곤 하는 일들도 모두 남성의 성적 능력이 폭력적으로 변한 결과입니다. 성이 생명의 능력이 아니라 죽음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남성의 생식력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태어나는 자손들이 모두 건강하다면 좋은 일입니다. 손상된 생식력으로 병약한 자손이 태어나는 것을 바랄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남성의 생명력이 올바로 쓰이지 않으면 많은 죄와 폭력이 생겨납니다.

 

P156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좌절하는 이유가 단지 우물을 빼앗겼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것은 닥친 현실일 뿐입니다 .우리가 정작 무너지게 되는 것은 우물을 새롭게 팔 의지를 일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이 의지만큼은 잃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면 됩니다. 누군가 우물을 메우면 다시 파면 되고, 그래도 빼앗고자 한다면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억울한 형편을 반드시 아실 거라 굳게 믿고 흔들림없이 다시 길을 떠나면 됩니다. 누구나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에 마련입니다. 정말 힘들게 노력해서 성취한 것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이 억울함을 풀지 못해서 사람이 변하면, 그건 자신의 인생과 존재가치를 폐허로 만드는 길입니다.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래 또 파나가면 되지했습니다. 우물을 다시 팔 수 있는 의지, 이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그 결과가 나에게 축복이 될 것을 믿는 사람은 이삭과 같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P157

때로 인생에서 우물을 빼앗겼다고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마십시오. 우물을 파려는 의지만 있으면 언젠가 마른 땅에서 물이 샘솟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막혀버린 줄 알았던 브엘세바의 우물이 터진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그렇게 다시 물이 솟는 감격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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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의 책 중에서 세번째 읽은 책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 난 후, 한 동안 넋을 잃은 후에 박민규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그의 책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 가고 있다. 같은 작가가 쓴 책이지만 각기 다른 매력이 충만한 책들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 권 한 권 읽어 내려갈수록 점점 더 그의 매력 아니 마력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그의 책은 때로는 가볍다고 생각되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글들을 읽다 보면 결코 가볍지 않아서 더욱 매력적이다. 그냥 겉으로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지만, 그 내면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나의 짐작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후배의 결혼식때문에 대구에 다녀오면서 기차 안에서 읽어내려간 이 책은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던져주었고, 답이 없는 나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거리를 다시 안겨주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에필로그를 읽었다.
그 내용 중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은 해체되었다. (중략)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야구'로부터, 우리가 분명 어떤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뭐랄까. 더 이상 치기 힘든 공을 치거나,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똥줄을 태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은 다들 잘 먹고 잘 산다. 다.'

이 중에서 <더 이상 치기 힘든 공을 치거나,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똥줄을 태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는 이 대목을 볼 때 마다, 어쩌면 이게 정말 행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항상 이런 말은 듣지 못했고, 단지 '불가능은 없다.', '최선의 노력으로 성과를 창출하자.' 뭐 이런 류의 성과 달성에 관련된 말만 듣고 살아왔다.

공부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 가라, 좋은 회사 취직해라, 돈 많이 벌어라..... 이런 말들이 난무하고 이런 저런 스펙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하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는 소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 한다. 과연 그런 길들을 걸어온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리고 어쩌면 이런 말들을 고지곧대로 충실히 따라온 나는 과연 행복한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사소한 한 줄의 글귀가 이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면 어때?
이야기속의 나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하루 평균 5시간을 수면을 취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직장을 잃고 이혼을 하고 잠을 잔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치유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장이라는 틀에 인생의 시간을 맞추어 놓고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간다. 잘 잤다는 기분보다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아니면 이제 일어나야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저절로 눈이 떠져 일어난다. 나도 언제 그냥 졸려서 자고 강박관념이 아닌 자연스레 햇빛을 맞으며 잠을 깨본적이 있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 속의 나와 조성훈은 서로 캐치볼을 한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허공을 올려다 보면서 캐치볼을 하면서 어느 순간 '무언가 거대하고 광활한 것이 내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하늘이었다. 바쁘게 사는 직장인들은 과연 언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감상에 젖어본적이 있는가? 비가 온다 짜증내지 않고 그로 인해 올라오는 흙냄새와 땅과 비가 서로 마주하는 그 상쾌한 소리에 함께 몸을 맡겨 본적이 있는가? 이런 사소하고 소중한 우리 주변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고,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는가? 이렇게 질문을 해본다.

내일 아침은 출근을 할 때,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소리를 들어보고 흙냄새를 맡아볼 것이다. 가을의 황금빛 벼을 바라볼 것이고 갖가지 모양을 한 구름들의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차를 타고 지나가지 않고, 내 발과 땅이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소리를 들어볼 것이고, 그러면서 움직이는 내 다리 근육의 움직임을 느껴볼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질 것이다. 결코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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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기를 권함]의 부제는 우리시대 한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이다. '간서치'는 지나치게 책을 읽는 데만 열중하거나 책만 읽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그만큼 책에 빠져들어 사는 이들을 가리킨다.

겉표지는 구스타프 아돌프 헤니히의 [독서하는 소녀]라는 작품이다. 책의 제목과 표지가 이렇게 조화로웠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읽다가 가끔씩 종이의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책냄새가 좋다. 단지 좋다라고 표현할 수 없는 내 표현력에 실망만 할 뿐이다.

요즘 가장 부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고등학교, 대학교 때부터 책에 빠져서 책을 읽어온 사람들이다. 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불과 올 해가 2년 밖에 되지 않고, 그 나이는 바로 서른살때였다. 그래서 중학교 때 [데미안]을 읽었다는 김무곤 작가 같은 사람을 이렇게 접하게 되면 너무나 부럽고 때로는 나도 빨리 읽어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읽어야 되는 책들이 너무나 많아서 조급하기도 하다. 그래서 속독을 하는 법을 공부해볼까? 라는 생각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헤어나오기 어려운 주제가 바로 '책에 관한 책'이다. 바로 이런 책을 말한다. 항상 다른 책 보자 하면서 서점에 가서 도서관에 가서 결국 뽑아오게 만드는 책들이다. 그리고 읽고 나면 그것봐! 하면서 그 속에 나와 있는 책들의 목록을 하나하나 적어간다. 이렇게 읽어야 할 책이 또 늘어난다. 어쩌지~! 좋은 책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나에게도 어느새 책읽기는 취미가 아니라 내 삶이요 생활이 되었다. 아직 내공이 깊지가 않아서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책들을 선택하고 읽어가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책 속에 토마스 아 켐피스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시간이 나면 들어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꽉찬 책꽂이를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고 뿌듯할 때가 있다. 누군가의 집에 가서 처음에 하는 일이 이 사람이 어떤 책을 읽나? 어떤 서재를 가지고 있나? 라는 궁금증이 항상 처음에 든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이 많이 있다. 분명 책읽기의 고수들을 보면 무언가 느껴지는게 있다. 아마 그것은 '책 읽는 사람은 곧 그 책이 된다'라는 말이 실제로 반영되진게 아닌가 싶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지혜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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