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갈수록 궁금한 게 많이 생긴다. 무엇인가 조금 알게 되면 반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무엇이 궁금하고, 내가 속해 있는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서 돌아가는지, 내가 먹고, 자고, 입고하는 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서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또 빠져나가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왜 이렇게 잔인한지, 운명은 존재하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신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삶이란 풀지 못하는 궁금함을 자기 나름대로 풀어나가면서 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과연 나는 어떤 사회 속에서 살고 있을까?

운명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태어난다. 누군가는 복지국가에서 따뜻한 부모 속에서 자라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태어나자 마자 먹을 것이 없는 빈곤한 국가에서 태어나서 가녀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지도 모른다. 이런 불합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세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 뜻대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올바른 삶일까, 아니면 자신은 위험하고 힘들더라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올바른 삶일까.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풀리지 않고 답이 없는 질문을 다시 해 본다.

얼마 전에 <제주4.3을 묻는 너에게>를 읽은 다음에 느낀 감정과 유사하다. 일부러 이런 작품을 찾아 읽은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 손에 잡히게 되었다. 이런 책들이 나를 선택해왔다. 기억하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 뒤돌아보라고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는 작가 한강이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던 분들과 유가족들을 인터뷰하고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들여 내놓은 작품이다. 작품을 쓰는 내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 슬픔은 책에 고스란히 닮겨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고스란히 가슴을 건드린다. 어떻게 이렇게 타자의 아픔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작가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된다.

 

작가는 인터뷰를 하면서 한 유가족에게 글로 써도 되냐고 물어 봤다. 유가족은 말한다.

 

p211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기에 나는 잘 모르는 사건이다. 반대로 불과 50년도 안 된 기간에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내가 알아야 하는 사건이다.

읽는 내내 많이 아팠다. 정말 '잘 써주셨다' 라고 말해드리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글로 풀어낼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슬픔, 분노, 아쉬움, 아픔, 안도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때로는 복합적으로 다가와서 눈이 아프기도 했고 숨을 잠시 멎어가며 한 문장을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기도 했다.

 

p51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작중 정대가 죽고 난 후 영혼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누가 자기를 죽인 것인지. 16살의 중학생이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빨갱이라고 신군부는 국민을 시민을 살상한다. 무장 군인들이 들어오고 탱크가 들어오고, 헬기까지 동원된다. 자신들의 권력쟁취를 위해서 어린 학생들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당시 광주시민이 40만명이었는데 군인들에게 지급된 총알이 80만발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했고 무서웠다.

 

잔인한 1980년 5월은 지나갔지만, 그 이후로는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철저하게 고문당하고 당국은 이들을 북한에 지원하는 빨갱이로 연결시키기 위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낸다. 인권이라는 건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이들은 우선 연행된 학생들과 시민들을 정신적으로 바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려 한다.

 

P118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쳐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죽,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어디 이뿐이랴. 이후 학생들과 시민들은 마치 가슴에 주홍글씨가 찍히듯이 그 이후 취업이나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고 사실 상 온전한 사회생활이 되지 않았으며 시도 때도 없는 경찰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 날의 끔찍한 기억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을 자더라도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경제적 정신적 고갈로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5월 광주에 진압을 시도하던 경찰들이 모두 잔인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들 역시 군대라는 조직에서 상부의 명령을 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다. 쉽지 않다. 상부가 명령을 내리고 책임을 진다. 라고 할 경우 아마 나 역시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중에서는 다친 학생들을 몰래 숨겨둔 공수부대, 발포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의도적으로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진압시 군가를 부를 때 눈물을 흘리며 두 입을 다문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잔인한 5월 광주에서 그나마 조금의 위로가 된 것은 이런 이들도 존재했다는 안도감일지 모른다.

 

다 읽고 나서 프레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생각났다. 나치의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잔인함과 신군부의 광주가 철저하게 겹쳐진다. 작가는 아쉬워하고 불안해한다. 사람에게는 이런 잔인한 유전자가 박혀있어 반복할 수 밖에 없을까. 개척시대의 원주민에 대한 무차별한 학살, 나치의 아우슈비츠, 난징대학살, 제주4.3, 5월 광주는 분명 같은 무엇인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 두려워한다.

 

우리는 분명 이런 일이 일어난 후 잊지 말고 반복하지 말자고 한다.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다같이 말한다. 하지만 그런 동의 속에서도 유사하게 사건은 다시 일어난다. 1980년의 5월의 광주는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도 발생해 버렸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에 대한 대답은 나 역시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 단지 5월 광주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킨 학생들의 가슴 속에 담겨있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한 아직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희망을 기대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P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상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반응형

'■ 책과 영화 > □ 소설,수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금  (0) 2014.06.17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0) 2014.06.16
내 심장을 쏴라  (1) 2014.05.08
달과 6펜스  (0) 2014.04.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0) 2014.03.31

 

 

# 이제는 뭐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직업의 선택은 삶을 살면서 결정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하루의 절 반 이상을 일터에서 보낸다.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도 직업에 따라서 변화되어 가기도 한다. 한 번 선택한 직업은 쉽게 바꾸지도 못한다. 감당해야 할 위험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선택인 직업을 과연 나는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가? 잠시 뒤돌아 본다.

 

5살 아들에게 가끔 물어본다. "나중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대답은 다양하게 나온다. '공룡, 선생님, 또봇, 풍선 ...'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고등학교 1학년인 나에게 물어본다. "너는 뭐가 되고 싶니?"  대답이 없다. 되고 싶은 게 뭔지를 모른다.


고등학교 1학년 말에 문과, 이과를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이과에 가야된다고 생각했다. 수능시험을 보았다. 이제 대학에 가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을까 하면서 관련된 과를 찾아보았을까? 특별히 하고 싶은게 없으니 가고 싶은 과도 정해진 게 없었다. 고3 담임선생님과의 상담도 학과 위주가 아닌 그 점수로 갈 수 있는 더 나은 학교를 찾는 것이었고, 그렇게 이과를 나온 나는 당연히 공대에 들어갔다.

대학교에 오니 고등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수업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친구들이랑 만나서 술먹고 노는게 전부였다. 마치 고등학교에서 저녁내내 공부했던 거에 대한 보상인 듯이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건설적인 대학생활 같은 건 없었다. 동아리방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술먹고 운동하는게 전부였다. 지금은 이런 생활도 그립지만...

 

군대에 갔다오고, 3학년 2학기, 4학년이 되니 이제는 걱정이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남들처럼 취업준비를 했다. 취뽀에 가입하고 이력서를 쓰고 채용 공고가 뜬 이른바 대기업에 원서를 쓰고 기다렸다. 회사에 취직해서 어떤 일을 해야 겠다는 목표는 없다. 그저 일단 대기업 취업이 목표였다.
그리고 입사를 하고 6년째를 보내고 있다.

 

아마 위의 글을 읽은 누군가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 이거 내 얘기 아니야."
뒤돌아보면 나는 분명히 열심히한거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그저 주위에 휩쓸려서 갈 뿐이지 나의 주체적인 선택은 배제된 것이다.
지금은 이런게 너무 아쉬워 이제부터라도 무엇인가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게 없을까 하고 찾아보려고 조금의 노력은 기울인다. 다시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가 않다.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아직까지도 막연하다. 하지만 지금 대답할 수 있는 정도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다." 라는 정도의 대답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누군가와 무엇인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게 나름 장하다.

 

#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학교와 교사들의 생활을 엿보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난 책이 있다.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이다. 가르치는 직업의 대표격인 교사는 모두들 학생의 입장에서 경험했고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로 뒤돌아보니 지금의 시선과 그때의 시선으로 본 학교, 교사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알게 되었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선생님들의 입장에 내가 직접 서보니 당황스럽고 화가 나기도 하고 가르치는 입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생겼다.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를 읽고 난 후의 생각을 표현하자면 '답답하다' 이다. 내가 몰랐던 문제들에 대해 가득 풀어버리고 떠나버린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단지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 교사, 학부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상황과 그 속에서 발생되는 교육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시련이 드러난다.

[학생과 교사]
고등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는 철저하게 입시위주로 재편되어간다. 입시를 포기한 학생들은 교사와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입시에 필요한 과목에 대한 교사와 관계를 유지할 뿐 기타 과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를 바란다. 학생과 교사는 암묵적으로 No Touch 를 원한다. 입시만이 아닌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는 교사들은 이런 환경에 대해 극복하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교사와 학생들과의 관계 설정의 범위 또한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특히 가정폭력, 성폭력 등과 같이 교사 역시 경험하지 못한 사항에 대해서 상담하는 경우에는 교사 역시 참담함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사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가를 통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아직까지는 교사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돌리는 듯 하다.


[교사와 교사]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경우 교사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는 동료교사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교무실에는 그런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매 년 학년이 바뀔 때가 되면 일부 교사들은 담임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담임을 맡는다는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인데 관계를 맺게 되면 일로 이어진다는 생각때문이다. 퇴근시간이 되면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교육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교사들은 때로는 자기가 기획한 수업방식을 도입하거나 현장학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동료교사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는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해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전적으로 그 교사가 책임을 지어야 한다. 결국 몇 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교사들이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교사들은 과도한 업무와 책임이 누적되어 버리고,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학교 내 동료교사가 아닌 정신과병원이라던가 전문상담기관에 방문해서 풀어야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들이 하는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에 관한 것과 학생들의 생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돌봄'으로 나뉘어진다. 둘 중 우선순위를 두기는 의미가 없겠지만 교사는 분명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교육' 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점점 '교육'에 대한 것은 자기네가 알아서 할테니 '돌봄'에 대해서만 신경써달라는 암묵적인 요구를 해온다. '교육'은 학원, 과외 등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으로 알아서 할테니 애들 사고나 치지 않게 잘 돌보라는 뜻이다. 학부모과의 관계 형성이 이렇게 되면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더라도 자녀가 학교내 사건에 휘말릴 경우에는 교사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으려고 한다.

'돌봄'이 주된 업무가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직장에 다니다보면 퇴근을 하게 되면 직장생활과 다른 나만의 생활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교사가 '돌봄'을 주된 업무로 하게 되면 하루 종일 학생들에게 신경써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저녁 늦게라도 학교로 뛰쳐 들어가야 한다. 내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 부분은 정말 힘든 부분이라 생각한다. 교사들도 가정이 있는데 이런 생활은 교육에 대한 부담감 이상이 될 것이다.


[교사와 교육시스템]
교사의 주된 업무는 '교육'이어야 한다. 하지만 교사가 자신의 과목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과 개발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교과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방학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할당된 과목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는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여러 업무는 처리하는데도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학생들과의 상담도 퇴근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루어질 수 있는게 현실이라고 한다.

 

상급기관, 학부모, 학생들은 이런 일들의 중심에 모두 교사를 두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교사를 추궁한다.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가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 된다.. 이럴 때 필요한게 시스템이다. 교사들이 모든 것을 처리하게 하는게 아니고 일부 업무는 시스템에 의해 처리되게 해야 한다. 앞서 학생과의 관계에서 이야기 했던 가정폭력, 성폭력 같은 경우에 교사들이 아닌 전문 상담 기관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과 입시는 항상 풀지 못한 숙제이지만, 교사가 어떤 창의적인 안건을 내어서 실행하다가 실패하거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그런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교사, 학생, 학부모가 두렵지 않은 학교를 위해서

 

두렵지 않은 학교를 위해서는 교사를 중심으로 한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관계자들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세 가지 수준에서 신뢰가 붕괴하였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신뢰, 타자에 대한 신뢰, 제도에 대한 신뢰'


이 책에서는 작가가 생각하는 남다른 해결책 같은 것은 없다. 단지 지금 현재 이런 현실이니 함께 공유하고 알고 있자라는 의도인 듯 하다. 모든 문제의 해결의 시작은 끊임없는 사실의 공유와 문제제기다. 그 끊임없음이 시작입니다. 관계의 회복은 신뢰의 회복이다.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는 자기 자리에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나 역시 할 말은 딱히 없다.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관심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말만 덧붙일 뿐이다.

단지 원하는 것은 지금 학생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니?' 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이 그것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15년 전에 꿈도 없이 원하는 것도 없이 대학을 선택하고, 6년 전에 꿈이 아닌 남들이 하기 때문에 하는 취직을 했던 내 자신이 아쉬워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꿈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p292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세 가지 수준에서 신뢰가 다 붕괴하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두 번째는 타자에 대한 신뢰, 세 번째는 제도에 대한 신뢰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으며, 자신이 속한 제도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만 자기 주변에 배치하려고 하며 모르는 세상과의 접촉을 될 수 있는 한 끊으려고 한다. 제도와 타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불신할 때, 안전을 위해서 자기가 자신을 감시하고 검열하는 자기 단속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개인들은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와 단절하여 고립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취향만 남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집착한다. 취향이 같거나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교'만 남게 되었다. 이 시대가 가진 취향과 사교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

반응형

'■ 책과 영화 > □ 인문, 역사,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피는 원래 쓰다  (1) 2014.08.01
여덟단어  (0) 2014.06.06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0) 2014.05.22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0) 2014.04.14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2/2)  (0) 2014.04.04

 

 

얼마 전 국사교과서 채택과 관련된 뉴스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보통 정규교육을 받은 이후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나라의 역사를 찾아보거나 배우지 않는다면, 일반 대중이 가지게 되는 역사 인식과 지식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국사교과서가 밑바탕이 됩니다. 그리고 일반 대중의 인식은 그대로 그 사회에 반영되며 그 기간이 비판없이 지속된다면 그것이 다시 역사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국사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 발생한 비극적이고 끔찍한 집단학살이 일어난 '제주4.3사건'에 대해서 얼마 전에 읽게 되었습니다.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해야할 사건이라고, 그런데 그 이름만 들어보았지 실제 어떤 일이었는지는 알지 못했고,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쉽게 다가오지 않는 사건이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한겨레출판의 <대한민국 잔혹사>에 요약된 글귀를 먼저 소개합니다.

 

1947년 제주도에서 열린 3.1절 행사에서 경찰이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4.3 사건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경찰 발포에 항의해 총파업을 벌이는데, 미군정은 이를 조사하면서 '경찰의 발포'보다는 '남로당의 선동'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1948년 4월 3일 350명의 무장대가 열두 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된다. 이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이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사건 발생 후 50여 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다가 2000년 1월 12일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2003년 10월 말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건과 관련해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 한겨레출판, <대한민국잔혹사>

 

1910년에 국권을 빼앗긴 후 35년 만에 맞은 해방은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자체적인 힘이 아닌 타의에 의한 해방이기에 우리 스스로 하나된 나라를 만들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1948년 4.3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도 우리의 이 역사적 모순이 하나의 큰 원인이었습니다.

 

p 64

미국과 소련이 개입한 가운데 통일국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분단국가로 갈 것인가를 두고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군정은 남한만이 단독선거인 5.10 선거 강행을 결정했고, 정국은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김구, 김규식 등 민족 지도자들도 단독선거 반대에 나섰다. 그러나 미군정 수뇌부는 당시 이 격동하는 냉전의 흐름 속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들고 나온 이승만을 선택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독 선거를 치러내는 것이었다.

 

결국 남쪽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북쪽 역시 9월 9일에 정부가 수립됩니다.

남한은 미군정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고, 미군정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일제시대의 경찰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역사의 뼈 아픈 장면입니다.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몸 담았던 이들을 신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철저하게 숙청하고 무엇보다도 과거청산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철저하게 청산되어야 할 일제시대의 경찰이 오히려 다시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하고, 수십년 간 그 권력은 공고히 다져져 맥을 이어갔습니다.

 

다시 총칼은 좌우대립, 색깔논쟁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을 향하게 됩니다.

<제주4.3을 묻는 너에게>를 읽으면서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고, 분노가 일어나고, 속이 메스껍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2003년 10월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서 내놓은 <제주4.3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를 근거로 작성한 이 책에서 당시 사람들의 증언은 글로 표현하기에도 너무나 끔찍하고 힘든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당시의 무차별한 학살과 끔찍한 고문에 대해서 책의 내용을 잠시 전합니다.

 

그 전에 그들이 이렇게 학살되고 끔찍한 고문이 자행된 이유는 그들을 좌익사상에 물든 빨갱이라고 단정지은 당시의 미군정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고한 민중들 당시 제주도민의 1/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한 많은 죽음이었습니다.

 

p118

네 남편이 산에 갔다. 동생이 갔다. 형이 갔다. 심지어는 사위가 산으로 갔다 해서 희생당했다. 도피자 가족 수용소가 있던 세화리에서는 젖먹이도 빨갱이라며 젖을 주지 못하도록 한 경우도 생겼으며, 도피자 형이 있다고 해서 한 초등학생을 수업 도중 데려다가 총을 쏘았다. 순간 담임선생은 모두 일어서게 해 묵념을 했다고 살아남은 자는 증언했다.

 

p166

그러한 토벌대의 잔혹한 학살 현장에 있었던 당시 서른 살의 엄마 양복천, 초등학교 2학년 열 살 아들이 그녀의 눈앞에서 속엣것 다 토해내며 죽어가는 것을 봐야만 했다. 총상 입어 우는 딸에게 울면 발각된다고 울지도 못하게 했다던 그녀. 양복천 할머니의 이야기다.

 

p175

토산리 창고 부근에서도 총살이 있었는데 사람들을 모아놓고 구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총살할 때 박수를 치라고 했습니다. 총살 때 아기가 폴폴 기어서 위로 올라가니까 아기에게도 총을 쏘았습니다.

 

p192

"올레 마당에 있는 큰 나무에 묶어서 엄마는 죽여버리고, 두 살 난 아기는 감나무 기둥에 묶어가지고 막 이렇게 죽여버리는 것을 똑똑히 봤다."고 했다.

 

이런 증언들은 바로 조사 당시에 증언자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리며 그래도 밝혀야 한다고 기억해야 한다고 뱉어낸 쓰라린 기억들이었습니다.

위의 증언들을 보면서 당시 상황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부녀자, 어린 아이들, 임산부들에게 행했던 끔찍한 일들은 차마 글로도 표현하기 어려워서 이 글에는 제외시켰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어떻게 이런 사건을 지금껏 알지 못하고 있었을까? 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주4.3은 2003년 위원회의 조사에 따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있었으며, 4.3평화공원조성사업이 진행되어 2008년 3월 28일에 개관하였습니다. 또한 2014년부터 4월 3일을 '4.3 희생자 추념일'로 하여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였습니다.

 

올해가 제주4.3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첫해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픈 기억을 온전히 기억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조사들을 끊임없이 진행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아픈 것을 기억해야하는 것의 중요성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반성하고 또 기억해야 함을 기억합니다.

 

p239

 

두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 가습병을 앓다 간 할머니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지. "오직 양심 하나 믿고 살았수다. 우리야 시대를 잘못 만나 이렇게 살았수다. 우리 자식들 세대는 절대 이런 일이 있어서 안됩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당신 자신이 그해 그날의 비극을, 상처를, 죄없는 모든 죄를 다 쓸어안고 가겠다는양, 살다가 갔다.

반응형

 

 

 

책인시공, 책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글이다.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편안하다. 이런 저런 분야의 책을 읽다가 이따금 한 번씩 이렇게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기분전환이 되고 내가 하는 책읽기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 볼 시간을 준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할 거 같은지 대략 짐작은 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다시 궁금해진다.


책을 읽고 나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고, 언제 어디서 책을 읽기를 즐기고 있을까? 


잠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 어떤 분야를 읽고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관심이 생기는 분야가 생기고 그 관심의 폭이 점점 넓어짐을 접하게 된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쓰는 자기개발서 같은 책을 읽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책 읽기를 위해서는 재미가 중요하기에 재미있다는 소설책을 찾아서 읽었다. 어느 순간 소설에 빠져들었고,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소설들, 바로 세계문학전집을 한 권씩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이다. 특히 소설 중에서 사회를 반영하는 내가 없었던 공간과 시간에 대해 알려주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는 한 때,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생각만 있었을 뿐, 별다른 관심을 갖거나 노력은 하지 않았었다.

지금도 역사는 항상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다. 올해 목표가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개괄하는 정도의 독서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구입하고 정리하려 하는데 몸이 안 따르고 다른데 자꾸 관심이 간다. 그래도 목표는 올해 조선시대 역사에 대해서 개괄해 보고자 하고, 항상 책이 나올 때마다 기다리는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의 책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려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고려시대도 한 번 도전해보아야 겠다. 일단 조선시대부터라도 제대로 읽어보자.


최근에 부쩍 관심이 가지고 있는 부분은 미술이다. 얼마 전에 동대문디자이플라자에서 진행중인 간송문화전에 다녀왔는데 고려청자의 신비한 색채와 신육복의 화첩과 추사 김정희의 서화 등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번이 직접 찾아서 간 두번째 전시작품관람이다. 앞으로 이런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보는 감동은 컴퓨터로 책으로 보는 그 이상의 아우라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책들과 다른 여러 책들을 찾아보고 읽는 중이다. 읽을 수록 재미있다. 아마도 이쪽은 더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

나중에는 고려청자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공부해보려 한다.


서양미술에는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계기로 고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갱과 흥미롭게 연관된 고흐를 알게되어 고갱, 고흐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이것을 기반으로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작품도 찾아보고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보려 한다. 나중에는 곰 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한 번 완독해야 겠다. 지금은 거의 사전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항상 기반이 되는 것은 인문/사회이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직접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다루게 되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자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위해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관심이 가는 분야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쉽지가 않다. 철학인데 그 진입장벽이 나에게 좀 높은 듯 하다. 최근에는 입문서 정도라고 하는 피노키오의 철학을 찾아 읽고 있는데 심오한 철학의 세계가 언제쯤 나를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걷기, 건축, 클래식, 글쓰기, 교육관련, 여행, 인테리어 등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고 한다. 

이런 관심이 불과 2~3년 만에 생긴 것이니 아마 2~3년에는 조금의 발전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길 바란다.



◆ 책 읽는 시간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점 한가지는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다는 점이다.

예전에 약속한 사람이 늦게 오면 전화를 몇 번 해보고, '어느까지 왔느냐?'고 확인하고 했는데, 이제는 덕분에 관대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방에는 적어도 2권 정도의 책과 볼펜 한자루는 항상 들어가 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나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게 불편하다. 눈의 피로도 심한거 같고 그게 오히려 나에게는 더 좋은 듯하다.


굳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을 꼽으라면 역시 세상이 조용한 새벽시간이다.

예전부터 나는 밤 늦게 자거나 시험기간에 밤을 지새우거나 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이들의 영향도 있지만 빨리 잠드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새벽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아무도 없는 듯이 조용한 새벽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점심시간의 20~30분 정도의 독서도 맥을 잘 이어주는 연결의 시간이 되어준다.



◆ 책 읽는 공간


어느 기사에선가 '남자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여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이 선호하는 공간에서 소진되었던 힘과 기운을 천천히 채워주워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일을 살게 해 준다.

아내는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내 방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그동안 방책을 세워야겠다.

쇼파에 앉아서 양 벽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을 바라보면 무언가 뿌듯하고, 여러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가 된다.

커피는 집에서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라 잔잔한 노래, 시원한 물 한 잔, 땅콩, 호두같은 것 한 접시, 볼펜 한 자루, 책 한 권이면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어린 두 아들을 위해서는 쉽게 즐길 수 없는 사치아닌 사치가 되긴 했으나 가끔 누려보기도 한다. 


지하철과 버스도 훌륭한 장소다.

아침에 버스 속에서 밤 사이 달콤하고 황홀한 꿈을 잇기 위한 유혹을 벗어난다면 훌륭한 장소가 된다.

항상 짓눌려 출근하는 서울 지하철이나 출근길 만원버스에는 다소 힘들기는 하겠지만 이동 중 대중교통은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된다.

책을 읽을 때 주변 사람들의 대화나 전화통화는 방해가 되지만 지하철, 버스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엔진소리, 정차소리, 사람들의 숨소리와 발걸음은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내어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와 좋아하는 공간, 시간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는 언제 어디서든 상관이 없는 듯 하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점점 다양한 분야로의 관심 확장과 끊임없는 호기심의 유지와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책 속 구절을 소개한다



P67

루치우스 세네카는 “인간은 항상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듯 행동한다.” 고 지적했지만 바쁜 시간 중에도 한가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짬을 내고 틈을 내고 멍하니 흘려보내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책을 읽을 시간을 얻을 수 있다.


P77

책은 영원히 남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펴낼 수 엇ㅂ는 것이다. 말처럼 내뱉고 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아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읽힐 것이라는 생각은 책을 쓰는 사람에게 책임감을 갖게 한다.


P78

청년이라면 자기 자신과 가족과 사회와 세계와 자연과 우주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던지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이냐에 앞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P82

장년의 독서는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에 머무를 수 없다. 장년의 독서는 그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체험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깊게 심화시켜 그 문제들에 대한 자기 나름의 체계적 답변을 마련하는 독서가 되어야 한다.


P84

청춘의 독서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한 불타는 독서라면, 중년의 독서는 내면적 성숙을 위한 고요한 독서가 될 것이다.


P87

공자나 아인슈타인 같은 지적 업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고, 그만큼 유명하게 되는 것도 삶의 보람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업적을 남기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유명하게 되는 것보다, 그런 목적 이전에 오로지 앎 자체, 진리 자체에 정열을 갖고 자신의 지적 세계를 가능한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능력, 분수, 처지에 따라 자신의 지적 세계를 넓혀간다면 그만큼 그의 세계는 확대되고 그만큼 그의 삶은 깊고, 그만큼 그의 삶은 풍부하게 된다. 설사 내일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송장이 되더라도 그 순간까지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알아가는 기쁨, 그 보람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91

독서의 근본적 목표는 인간의 변화에 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나 자신의 내적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바에야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뒤나 아무런 변화가 없이 똑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 것인가?


P126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서관이나 친구들을 통해 책을 빌려 보기도 하지만 언젠가 돌려줄 생각에 부담이 되고 책에 마음대로 줄을 긋거나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다른 데 쓸 돈을 아껴서 필요한 책과 읽고 싶은 책 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호기심이 또 다른 호기심을 낳고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꾸 책을 사게 된다. 한계를 모르는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독서열은 계속 책을 사들이게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한권 두권 늘어나는 책은 점점 서재의 수용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P137

안동에 가면 퇴계 이황이 글을 읽고 가르치던 도산서원이 있고 퇴계가 앉아서 글을 읽던 돗자리가 원형 그대로 깔려 있고 퇴계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광수나 이상이나 김수영의 서재는 아예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얼마 전에는 최남선이 살던 집이 완전 철거되면서 우리나라 근대 지성사와 문학사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버렸다.


P176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도 있다.


P179

“신촌 기차역에서 일산으로 가는 기차는 왕복 1시간 20분이 걸렸다. 캔커피 하나, 책 두 권을 들고 매주 기차역으로 간 적이 있었다. 역 근처 서점에서 신간 한 권, 잡지 한 권 사는 기분을 늘 상쾌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리기 싫어진다.”


P192

파리 만이 아니라 서울 거리에도 길을 걸어가면서 책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걸어가면서 책을 읽어도 넘어지거나 어디에 부딪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책의 여신이 책에 빠진 사람을 보호하는 모양이다.


P196

영국에서는 서점을 bookshop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bookstore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서점(書店)과 더불어 서관(書館), 서림(書林)등의 한자어가 함께 쓰였다. 당시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은 박문서관과 한남서림이었다. 서점, 서관, 서림 가운데 ‘책의 숲’이라는 뜻을 담은 서림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데 ‘책 파는 상점’을 뜻하는 서점이 점점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대현 서점들이 서점 대신 ‘글의 창고’라는 뜻을 담은 문고(文庫)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가장 눈에 띄는 보기다. 1970년대 서울에서 가장 컸던 서점은 종로서적이었다. 그것에서 종로3가 쪽으로 조금 떨어져 양우당이라는 서점도 있었고, 신문로 쪽에는 범한서적이라는 서점도 있었다. 범한서적이나 종로서적은 서점이면서 출판사도 겸하도 있었다. 그래서 서점이라는 칭호 대신 서적이라는 간판을 달았던 모양이다.


P198

<근대의 책 읽기>의 저자인 국문학자 천정환은 이렇게 토로했다.


서점에 가는 일이 두렵다. 서점에서 수많은 책 사이에 서 있는 일은 고통 그 자체이다. 서점에 가지 않은 얼마 동안 책들이 쏟아져나와 있다.  그 책들을 들추고 있노라면 내 게으름과 무식함이 발가벗는 것 같다.


P206

오늘날에도 센 강변에는 약 80여 개의 부키니스트 중고책 서점이 오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부키니스들의 초록색 철제상자는 파리 시 소유로, 파리 시가 심사를 거쳐 서적상에게 영구 임대한다. 그 대신 서적상은 책 판매수익의 5퍼센트를 파리 시에 납부해야 한다. 서적상이 사망하면 자동 상속은 안 되지만 가족들이 승계를 신청할 수 있다. 서적상들은 개인 연결망을 통해 장서가들이 사망하고 난 뒤 인수하거나 고물상을 통해 사들인 책을, 먼지를 털고 바라믕ㄹ 쏘인 다음 작가별로 시대별로 분류하여 초록상자 속에 진열한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 각 서적상들의 전공 분야를 알 수 있다. 정치가나 연예인 들의 전기물을 모아놓은 상자가 있는가 하면, 1차대전과 2차대전을 중심으로 전쟁에 관한 책을 모아놓은 상자도 있다. 그 밖에도 중고서적상의 취향에 따라 20세기 문학, 예술사, 종교사, 왕실의 역사, 파리 여행기나 관광안내, 영화 등 고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의 책들이 상자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다. 책 전체를 셀로판지로 싸고 오른쪽 위에 매직펜으로 가겨을 써놓기도 하며 때로 강변의 둑 위에 책을 올려놓기도 한다.


P233

책 속의 문장에 눈길이 닿으면 냉동되어 있던 생각의 얼음들이 녹아 따뜻해지면서 생각의 아지랑이를 무럭무럭 피어나게 한다.


도서관에는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표명하는 책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책들은 들리지 않는 소리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P236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도서관에 소장된 책의 입장이 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무덤이 되느냐 보물이 되느냐,

내가 말을 하느냐 침묵을 지키느냐는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친구여, 욕구 없이는 부디 들어오지 마라.


도서관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원전 280년경에 북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였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거대한 도서관 이야기다. 당시 지중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주의적 이상을 지식의 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건립한 이 도서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재에 있던 장서를 그대로 가져와 소장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책을 모아서 무려 70만 권의 장서를 소장한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이었다. 


아테네와 로마가 인문학의 중심이라면 알렉사드리아는 자연과학이 강했다. 아르키메데스와 유클리드가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들은 아마 이 도서관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런 유명한 학자들만이 아니라 클레오파트라도 그곳에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도서관은 여러 번에 걸친 전쟁으로 수난을 겪다가 기원전 48년 카이사르가 일으킨 전쟁의 와중에 불타 재가 되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2004년 그 자리에 다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1974년 유네스코가 인류문화의 상징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세계 최대의 도서관을 건립하자는 제아능ㄹ 한 지 30년이 지나, 드디어 그 도서관이 완공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도서관이 부활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에는 중동의 산유국들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도서관은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도서관의 서가에 처음 꽂힌 두 권의 책은 코란과 성서였다.


P241

도서관 서가의 수많은 책들은 19세기 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던 멜빌 듀이가 1876년에 창안한 십진분류법에 따라 총류, 철학사상, 사회과학, 자연과학, 어학, 문학, 예술, 역사 등으로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다.


P244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동과 서, 옛것과 새것을 두루 찾아 읽었으며 그것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 청년 시절을 보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립도서관의 참고 열람실에서 이루어진 책읽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목죄었지만 날마다 책을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뎌냈다. 훗날 시인이자 평론가가 된 장석주의 회고담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에게는 도서관이 대학이고 대학원이었다.


P263

모든 책은 의무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기로 되어 있어서 정식으로 출판된 책은 어떤 책이든 다 찾아볼 수 있다.


P267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저자들에게 수액을 전달하는 장소


P285

얼굴의 형태는 태어날 때 결정되지만 얼굴의 분위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따라 달라진다. 스무 살까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얼굴로 통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행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 조금씩 그 사람의 삶이 얼굴 표정 속에 반영된다. 인생을 피상적으로 함부로 막산 사람의 얼굴 표정과 진지하게 삶의 의미와 깊이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발자크의 말대로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 용모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반응형

 

 

 

 

◆ 익숙함의 다르게 보기

 

우리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일상은 반복되는 '날마다, 늘, 항상' 이라는 뜻입니다. 변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면 우리의 생각 역시 변화 없는 일상, 바로 '날마다, 늘, 항상'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세상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다른 무언가를 찾음으로써 발전하고 변화해 왔습니다. 당연함을, 익숙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가끔 한 번씩은 의도적으로 다르게 삐딱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든 제임스 다이슨은 '다른 환경, 낯선 환경, 새로운 환경' 에 대해서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거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책이 그 한 방법인 듯 합니다.

 

p94

날개 없는 선풍기가 있지요.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입니다. 이걸 최초로 만든 영국 발명가 제임스 다이슨은 자신의 작업실에 이런 글을 붙여 놓는다고 하지요.

'The first electronic fan was developed in 1882. All chop and no change for 127 years.'

'최초의 전기 선풍기는 1882년에 만들어졌으나 127년간 누구도 '촙촙' 소리를 내는 선풍기를 다르게 바꾸진 못했다.'는 뜻이지요.

 

 

◆ de + sign + er (상식파괴자)

 

'이노 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익숙함의 다르게 보기'를 이렇게 멋진 말로 표현합니다. de + sign + er

 

사람을 만나 보면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축적된 역량과 경험으로 충분한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자신만의 생각 바로 고정관념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모르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둘러쌓여 있을 겁니다. 단지 내가 둘려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서 탈피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감각과 이성을 갖추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p105

'이노 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입니다. '다르게 보는 걸 즐기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영어 단어 design조차 다르게 볼 줄 압니다. Design은 de와 sign의 조합이라는 것.  de는 '파괴하다(destruct)'의 접두어 de이고, sign은 도로의 교통표지나 비상구 표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의 상징, 즉 고정관념이나 통념이나 상식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de + sign은 '상식을 파괴한다'는 뜻을 지닌 것이지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뜻인 거지요. 그럼 디자이너, 즉 designer의 뜻은?

맞습니다. '상식 파괴자' 또는 '창조적인 사람' 입니다.

 

 

◆ designer(상식파괴자)의 도구는 Book

 

상식파괴자는 무엇으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작가는 그 무기로 Book 그 중에서도 인문학을 꼽습니다.

 

문학은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고, 역사는 '비판적 사고력', 철학은 '합리적 사고력'을 키워줍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문학에 매력을 많이 느낍니다.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표창원 소장의 프로파일링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는데, 프로파일링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배우지만,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문학 작품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범죄자이 심리를 잘 표현해 준다고 합니다.

 

문학 특히 소설은 허구라고 하지만, 그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직업, 행동양식, 생각패턴 등은 실제 누군가에게 존재하는 혹은 존재할 것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은 소설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저마다의 한 편의 영화를 머리속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 새로운 경험이 상식파괴자의 귀중한 자산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p144

인문학은 일반적으로 문사철로도 좁혀지지요. 문사철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고요. 문학은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고, 역사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주며, 철학은 '합리적 사고력'을 키워줍니다. 창조적 상상력, 비판적 사고력, 합리적 사고력을 통해 증진되고 완성되는 창의력, 진리, 자유, 정의, 평등, 사랑, 공정, 관용 등 위대한 가치는 인류의 창조적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하나로 응축하면 'Beauty'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 Just Do It! , Ready ~ Action!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신에게 매일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제발,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정말 간절합니다. 하지만 신은 답답한 나머지 한 마디 합니다. '제발, 복권을 사거라!'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바로 Action, 실행력입니다. 사람들은 분명히 어떤 것을 이루어낼 역량과 자질이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Choice를 잘하지 못하고 Action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 진리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시작이 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저 저지르고 보는 겁니다. 무책임하긴 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내용에 어울리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최종훈 교수의 인생교훈이 생각납니다.

 

 

 

지금 무엇인가를 망설인다면 Just Do It 하시기 바랍니다. Ready ~ Action!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조언을 저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아쉬움이 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은 이민규의 <실행이 답이다>가 이를 위해서 읽어볼만 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번 다시 들추어 보아야겠습니다.

 

p112

아인슈타인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박사님은 어떤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까?"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고 하는 군요.

"저는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호기심을 '실행에 옮기는' 능력이 뛰어날 뿐입니다."

 

◆ 온전한 내 삶을 살기

 

말은 좋지만 우리는 쉽게 Just Do It!, Action! 하지 못합니다. 혹여나 내가 하는 일이 잘 못 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난처해지지 않을까? 두려움에 망설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행복, 책에 나오는 '좋은 운명' 만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면서 행복하게 살 수 만은 없습니다. 좋은 운명 만을 영위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쓰라린 아픔에 목 메어 울어 보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에 한 숨 짓기도 하고, 복잡한 갈등 상황에서 혼자 깊이 고민해보기도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제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온전한 삶을 살 준비가 된다면, 그때는 기꺼이 Just Do It!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온전한 삶을 살 준비가 되었다면  Ready 되었네요. ~ 그저 Action이 남았을 뿐입니다.

 

p253

장영희 교수를 그리워하면서 그의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대학 2학년 때 스스로에게 했다는 다짐의 글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읽을 때마다 긍정의 힘과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구절이어서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미국인>은 앞부분에서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하는 문장이 있다. 나는 그 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할것이다, 라고."

 

 

오늘은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아쉬워서, 그동안 많이 망설여서, 그동안 많이 후회해서 이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반응형

 

소설가 정유정의 작품이다. 정유정의 이름 석자는 이제 이야기에 대한 신뢰를 나타낸다. 책이든 어떤 것이든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조건들을 따져 본다. 그럴 때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름 자체만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는 소설가 정유정이 그렇다.

 

베스트셀러, 남들이 많이 입는 옷, 쉽게 접하는 흔한 것들보다 우리는 나만의 독특함을 원한다. 넘쳐나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나의 취향을 찾아서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내고, 남들이 잘 입지 않는 브랜드를 탐하고, 항상 새로운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본질과 가치를 그 속에서 찾으려 한다. 나 역시 나만의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 남들이 많이 따르기에 나는 좀 거리끼는게 생기더라도 나 역시 좋아서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정유정의 소설이 그렇다.

 

<7년의 밤>, <28>, 그리고 접한 책이 <내 심장을 쏴라> 이다.

처음에 접한 책이 <7년의 밤> 이었다. 댐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어두운 분위기의 사건들과 치밀하고 치열하게 얽히는 사건의 얼개 속에서 헤어나오는 게 쉽지 않았고, 그 여운은 한 동안 지속되었었다.

아직까지도 <7년의 밤>은 나에게는 국내소설 중 가장 큰 보물로 뽑는다.

 

이번에는 그 전의 작품인 <내 심장을 쏴라> 이다.

예전에 정이현 작가가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그 속에서 사건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이야기거리를 찾는다고 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면, 그 살인사건의 당사자들 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영향을 받는 가족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기고 그것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의문의 사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건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얼개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내 심장을 쏴라> 도 신문의 사회면의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정신질환자 2명, 차량을 탈취해 탈출. 1명 검거 - 강원일보, 2004년 9월 18일자 사회면]

[시신 없는 정황상 자살, 자살 방조죄 성립될까? - 강원매일, 2004년 10월 18일자 사회면]

이 두 기사가 바로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분명 우리는 실제로 어떤 이유 때문에 그랬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상상과 이야기라는 게 있다. 그것을 통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의 탈출기를 그린 것이다. 수명과 승민 동갑내기 두 남자는 끊임없이 탈출에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한다. 두 인물의 배경인물로는 의사를 비롯해 동료환자 특히 재밌는 케릭터인 만식, 그리고 한이와 지은이, 그리고 병원 측인 최기훈, 점박이등이 등장하면서 정신병원의 모습을 묘사한다. 작가는 실제 정신병원을 방문하면서 그 배경을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라 하지만 읽을 수록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가 실제 있음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직업이나 장소에 대해 표현하기 위해 인터뷰 및 사전 조사등을 통해서 이야기에 철저히 녹아낸다는 점이다.

 

수명은 어머니의 죽음이후에 귓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 온다. 수명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수명은 귓속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집착하고 결국은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승민은 한 재벌의 혼외 자식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남기고 가고 이것을 계기로 해서 다른 배 다른 형제들과 갈등을 겪게 되고 강제로 정신병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점점 눈이 안보이기 시작한다. 수명은 그저 갇혔다는 생각 때문에 나가고 싶어하고 승민은 날고 싶다는 의지로 정신병원을 탈출하려고 한다.

 

p286

"날고 있는 동안 나는 온전히 나야. 어쩌다 태어난 누구누구의 혼외자도 아니고, 불의 충동에 시달리는 미치광이도 아닌, 그냥 나. 모든 족쇄로부터 풀려난 자유로운 존재, 바로 나."

"난 잘 모르겠다. 너로 존재하는 순간이 남은 인생과 맞바꿀 만큼 대단한 건지."

"넌 인생을 뭐라고 생각하는데? 삶은? 죽음은?"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수명과 승민이 탈출한 후, 승민이 떠나기전에 서로 대화를 나눈다

수명은 항상 얽매여서 살아왔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 속에서, 그리고 그로 인해 귓속의 누군가에게 얽매여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만의 무엇인가는 없었다.

 

수명은 특별히 병원을 나가서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이 없다. 그저 병원에 들어오면 병원밖으로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p291

꿈을 꿔요. 창문은 통로죠. 희망은 아편이고요."

"해석하면 이런 말이었다.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퇴원을 꿈꾸고, 퇴원하는 날부터 퇴원을 굼꿀 수 있는 병원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은 병원 규칙에 열심히 순응하는 것은 퇴원, 혹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갈망의 궁극에는 삶의 복원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그리하여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꿈꾸던 희망이 세상 속 진실보다 달콤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많이 아팠다. 나도 모르게 그냥 아팠다. 퇴원을 꿈꾸고 나갔으나 막상 나가고 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꿈꿀 수 있다는 것 조차 없다는 게 너무 아팠다. 우리는 무슨 문제가 발생하거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그 순간만을 생각한다. 이것만 해결되면, 지금 순간만 지나가면 모든 게 나아질 거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면 오히려 더 허무하고 더 안타깝고 아쉬울 수도 있는 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 버리고 주저앉는다.

 

방법은 없는 듯 하다. 그런 아쉬움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절망 속에서 다시금 뛰어 들고 다시금 판도라상자의 마지막 남은 희망에 기대 볼 뿐이다.

 

p327

"잘 가라고 안 해?"

승민이 물었다. 나는 조명탄을 꺼내 쥐고 절벽 끝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할게. 불빛을 보고 곧장 달려와."

승민은 손을 내밀었다. 머뭇머뭇 맞잡았다. 손을 떼자 손바닥에 승민의 시계가 놓여 있었다.

"이제 빼앗기지 마."

승민의 눈이 고글 속에서 웃고 있었다.

"네 시간은 네 거야.

 

승민은 그렇게 떠난다. "네 시간은 네 거야."라는 마지막을 말을 남기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비행을 한다. 이제는 수명도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까? 아니 그동안 얽매였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그 동안 가위의 공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이발도 몇 번이나 했다라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아프더라도 마주하기를 바란다.

항상 생각해오던 말이 있다. 이제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가르쳐주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 닥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이 닥친 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삶에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온전히 나와 마주할 수 있도록 내면의 탄탄한 근육을 만들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반응형

'■ 책과 영화 > □ 소설,수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0) 2014.06.16
소년이 온다  (0) 2014.05.30
달과 6펜스  (0) 2014.04.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0) 2014.03.31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1) 2014.03.31

2014년 4월 28일 ~ 30일 제주여행


수호(33), 지수(32), 재훈(5), 재인(3)


◆ 주요예약 현황 및 비용


항공, 렌트, 더 비비스 호텔 예약 : 삼성카드 여행센터

- 제주닷컴 유연순 (02-1688-8200)


1.  항공료

- (아시아나항공) : 527,200원

- 28일 07:45분 출발, 08:50분 도착

- 30일 17:45분 출발, 18:50분 도착


2. 렌트카 (064-743-1007)

- 147,420원

- K5 LPG

- 제주공항 4~5번 게이트 앞 횡단보도 건너 렌트카하우스 내 "월드렌트카"


3. 숙박

- (28일) 더 비비스제주 (064-739-4114) : 135,000원

- (29일) 제주올레리조트 (064-799-7770) : 210,000원


여행일정 및 식당


첫째날(28일)

▶ 집 - 김포공항 -  제주공항 - 천지연폭포 - 쇠소깍 - 더 비비스 제주


1) 제주공항 - 렌트카 받고 아침식사

                 - 만세해장국(해장국, 전복도가니탕, 꼬리곰탕)

2) 천지연폭포 - 입장료(성인:2,000원, 어린이:1,000원)

                    - 근처식당 (베지그랑 : 고등어,갈치 , 덕성원 :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중식당)

3) 더비비스 근처 20분정도 - 오르막가든(제주도 오겹살)


둘째날(29일)

▶  더 비비스 제주 - 협재해수욕장 - 한림공원 - 제주올레리조트


1) 협재해수욕장

2) 한림공원 - 입장료(일반:10,000원, 어린이:6,000원)

                 - 근처식당 (독개물항 : 오분작뚝배기, 갈치조림)

3) 제주올레리조트 - 옛날맛갈비(갈비정식, 냉면), 저녁에 회 한접시


셋째날(30일)

▶ 제주올레리조트 - 제주에코랜드 - 제주공항 - 김포공항

1) 제주에코랜드 - 입장료(성인:12,000원, 어린이:7,000원)

                     - 근처식당 (낭뜰에쉽팡 : 웰빙비빔밥과 기타)





반응형




새로운 인연을 맺다. 


이번에도 그동안 제목만 알고 있었던 책을 찾아 읽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에 몇 일 동안 푹 빠져 있었다. 글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잔잔하게 남아있다. 근래에 읽었던 책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힌다. 책을 읽자 마자 얼마 후 부터 '아! 드디어 만났구나' 하고 느끼는 보물들이 있는데 <달과 6펜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특히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건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하마터면 뒷부분을 먼저 읽어버릴 뻔했다. 

 

<달과 6펜스>는 등장인물 스트릭랜드를 통해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배경이 있는지 모르고 읽은 책이어서 즐거움은 배가 된다. 실제 인물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와 다른 장르와 연결해주는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에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를 자연스럽게 시에 대해 이야기듯이 <달과 6펜스> 역시 작품 속 스트릭랜드이자 실제 인물인 폴 고갱을 통해서 미술에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해준다.


예전부터 그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저 관련 책을 읽는 것으로는 흥미가 생기지 않아 쉽게 포기하곤 했다. 이번에는 뜻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책읽기를 마치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찾아 폴 고갱 이후 반 고흐를 만나게 해주었다. 이 소중한 인연이 차곡차곡 조금씩 쌓아지기를 내심 바랄 뿐이다.


이야기 속으로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을 증권 중개인 일을 하던 부유한 사십대 남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홀로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는 가난한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한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더크 스트로브는 그를 지원지만 스트릭랜드는 그에게 냉소적이었으며 그의 아내 블란치 마저 자살에 이르게 한다. 그는 오직 자신의 그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과는 다른 게 있는 듯 했다. 


그는 문명의 땅을 뒤로 하고 남태평양의 외딴 섬인 타히티로 떠난다. 타히티라는 원시의 섬에서 그가 생각하는 낙원을 만나고 그림에 열중하고 아타라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문등병에 걸리고 심지어 눈이 멀기까지 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의 집안에 신비로운 그림을 그린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폴 고갱의 삶을 그대로 재현해두고 있지는 않지만 거의 유사한 삶을 살았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한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을 표현해준다. 분명히 자신 밖에 모르는 차디찬 냉소가 깊게 베어나지만, 그 열정이라는게 자연스럽게 다른 부정적 요소를 가려준다. 나 엮시 읽는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일에 빠져든 그가 부럽기도 했다.


작가 서머싯 몸은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왜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고, 이야기의 중간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가 전환된다. 어쩌면 친절하지 않고 부연조차 없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툭 던져 놓으니 확실한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더 극적인 표현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묘미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손에서 놓지못하고 한 번에 읽은 기억이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1인칭 관찰자시점으로 내가 개츠비를 궁금해하고 서로 인연이 닿아가면서 그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가는 묘미가 있었다. <달과 6펜스> 역시 소설 속 작가인 내가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이야기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효과적인 것 같다.

어떤 이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절묘한 조화가 훌륭하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 정도를 찾을 수 있지는 못해서 아쉽다.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저도 모르게 손이 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책들은 읽고 나면 개운하게 숨을 내쉬며 책을 덮을 수 있다. 읽는 동안 긴장한 것을 놓는 숨이며 아쉬움의 표현이다.


폴 고갱의 작품 속으로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 고갱에 대해 표현한 부분을 찾아 보았다.


P551

타히티 섬에서 가져온 그의 작품들을 대했을 때 그의 옛 친구들조차 당황스러워 했다. 그 그림들은 너무 야만적이고 미개해보였다. 그것은 바로 고갱이 원하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야만적'인 색채와 소묘만이 타히티에 머물면서 감탄했던 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이들을 올바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중략)

그러나 고갱이 아주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낯설고 이국적인 것은 단지 작품의 주제만이 아니다. 그는 원주민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토착민 장인들의 수법을 연구하고 때로는 자신의 작품 속에 그들의 것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그린 원주민의 초상을 그러한 '원시'미술과 조화시키려 애썼다. 그래서 그는 형태의 윤곽을 단순화하고 넓은 색면에 강렬한 색채를 거침없이 구사했다.  세잔과 달리 그는 단순화된 형태와 색체의 구성으로  인해 혹시 그의 작품이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연의 아이들이 지닌 순수한 강렬함을 그리는 데 도음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수세기에 걸쳐 씨름해온 유럽 미술의 문제들을 기꺼이 무시해버렸다.


솔직하과 단순함을 이룩하려는 그의 목표가 항상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향한 그의 열의는 새로운 조화를 이룩하려는 세잔이나 새로움을 전달하려는 고흐의 열의만큼 여정적이고 진지한 것이었다.





 




반응형

'■ 책과 영화 > □ 소설,수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년이 온다  (0) 2014.05.30
내 심장을 쏴라  (1) 2014.05.08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0) 2014.03.31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1) 2014.03.31
봄의 말 中  (0) 2014.03.2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