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여덟 단어> 를 읽었다. 예전에 <책은 도끼다>를 인상깊게 읽어서 작가 박웅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여덟 단어>가 출간된지 어느 정도 시간이 되었지만 손에 쉽게 잡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한 번 읽어보라는 권유도 많았고, 독서할 목록을 만들때 찾는 여러 다른 블로그나 북관련 매체에서도 <여덟 단어>를 거듭 추천하고 있었다. 안 읽을 수가 없었다. 궁금하다. 그 여덟 단어가.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목차를 펼쳐보고 지금껏 읽은 내용들은 음미해본다.

 

<목차>

1강 - 자존(自尊) : 당신 안의 별을 찾으셨나요?

2강 - 본질(本質) :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3강 - 고전(古典)  : 그 견고한 영혼의 성

4강 - 견(見) : 이 단어의 대단함에 관하여

5강 - 현재(現在) : 개처럼 살자

6강 - 권위(權威) :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지 말자

7강 - 소통(疏通) :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힘

8강 - 인생(人生) :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처럼

 

작가는 인생을 대하는 우리 자세로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을 손꼽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내면적으로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본적으로 충실한 자아로서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 속에서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섰다면, 그때부터는 지금 당장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충실히 경험한다. 그렇게 자신을 세운다. 자아가 성숙하고 현재의 진리를 깨달으면서 타자를 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전, 견, 현재' 가 내 가슴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드는 듯 했다.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머리를 탁 치는 경우가 있다. 입에서 살짝 탄성을 자아내고, 고개를 혼자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한 번 글귀를 읽는다. 여러번 그런 경험을 했다. 특히 '고전' 부분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작가 박웅현은 죽기 직전에 차이코프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절정 부분을 듣고 싶다고 했다. 순간 반가웠다. 클래식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몇 달 전부터 그 곡을 습관처럼 듣고 절정 부분에서 혼자 눈을 감고 그 웅장함을 느껴본 적이 많았다. 아무것도 알지 모르는데 좋다. 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그가 소개하는 음악들을 하나하나 내 클래식 어플의 My 앨범에 추가시켜가면서 들어보면서 글을 읽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가야금 캐논,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소나타>을 들었다. 특히 그중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잔잔하면서도 차분하면서도 웅장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아직은 클래식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들으면 좋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 본질을 알기위해서 조금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p81

이처럼 지금 현재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시대 사람과의 본질적인 교감이 있다면 우리 인생은 더 풍요롭지 않을까요?

 

그렇다. 지금이 물질적으로는 과거보다는 분명 발전했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과연 그럴까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들이 남긴 책과 그림과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같이 살 수 있을 기회는 못 가졌지만 그 시대를 느끼지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고전' 편에서는 작품을 그대로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기쁨과 그 기쁨을 알고 난 후에 더 깊이 알려는 의지가 생겨나는 것을 배웠다면 '견(見)' 에서는 부족한 감수성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일상을 일상적이지 않게 바라보는 모습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은 그 자체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작가 박웅현을 이 시를 읽고 난 후 부터 좋아하던 간장 게장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안도현,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이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읽고 나서 많이 아프다. 사람들이 자주 먹는 게장을 시인은 그렇게 바라본다. 그냥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 감정을 파고드는 범위가 단지 주변사람에 그치는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다른 생명체와 사물에 까지 확장되어있다. 그냥 보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일까?  영화 <시>에서 김용탁 시인 역을 맡은 실제 김용택 시인은 작중 어머니들에게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p116

"여러분, 사과를 몇 번이나 봤어요? 백 번? 천 번? 백만 번? 여러분들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사과의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한 입 베어 물어도 보고, 사과의 스민 햇볕도 상상해보고, 그렇게 보는 게 진짜로 보는 거예요.

 

앞으로는 무엇인가를 볼 때, 좀 자세히 그리고 깊이 봐야겠다. 그래야 온전히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느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어린 아이들이 단어를 배울 때, 그림을 보고 '사과' 하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사과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기도 하고,  색과 향을 느끼고 달려있는 나무도 알아보면서 깊이 알아야 겠다.

 

'견(見)'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주제가 바로 '현재'다. '견(見)'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라면 '현재'는 지금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다. 그 온전히 살아냄은 박웅현의 개에 대한 철학이 무엇보다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p134

개들은 잘 때 죽은 듯 잡니다. 눈을 뜨면 해가 떠 있는 사실에 놀라요. 밥을 먹을 때에는 '세상에 나! 나에게 밥이 있다니!'하고 먹습니다. 산책을 나가면 온 세상을 가진 듯 뛰어다녀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자요. 그리고 다시 눈을 뜨죠. '우와, 해가 떠 있어!' 다시 놀라는 겁니다. 그 원형의 시간 속에서 행복을 보는 겁니다. 순간에 집중하면서 사는 개, 개처럼 살자. 'Seize the Moment, Carpe diem (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 의 박웅현 식 표현이자, 제 삶의 목표입니다.

 

길지 않은 책에 작가 박웅현은 많은 걸 담아주었다. 다 읽고 나서 존경하는 선생님, 선배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편안하면서도 묵직함이 다가왔다. 나는 작가 박웅현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책은 도끼다>는 나의 독서에 큰 변화를 준 선생님이었다면, <여덟 단어>는 인생에 있어서 생각하고 있었으나 어떤 것일까 명확히 잡히지 않았던 것들을 차근히 설명해주셨다. 이 한마디로 글을 마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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