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 그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모자를 삼킨 보아뱀' 인가요.

<어린왕자>에서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이 역시 쉽사리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저 그림을 보면 자연스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어린왕자> 속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각자 만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어떤 질문에는 분명히 답이 존재하고 그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갈등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획일적인 사고가 굳어집니다.


하나의 답만 있는 경우, 만약 그 답이 틀리면 그 답을 섬기고 따라가던 사람들이 모두 오류의 낭떠러지에 설 수도 있습니다. 이때 단 한 사람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면 함께 망하는 길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림에 대한 각자 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 나름의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이 그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듯이 우리는 질문을 이어가야 합니다. 





철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탈레스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철학의 개척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때까지는 "이 세계를 '누가' 만들었을까?" 하고 물었죠. 그런데 탈레스는 "이 세계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세계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답을 제우스나 하느님이라고 했죠. 그런데 '누가'가 아니라 '무엇'이라고 물으면 답이 달라지죠. 답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는 생각하는 방향과 대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의 발걸음들이 모여서 결국 '원자론'을 제안하는 것에 이릅니다. 현대물리학의 중요한 가설이기도 한 원자론이 바로 탈레스로부터 시작된 질문에서 나왔다는 점이 신기하지 않나요?


플라톤은 이러저러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를 물었고, 근대 철학을 정초한 데카르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가장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라고 물었죠. 칸트는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알 수 있는가?'를 물었고, 니체는 '선과 악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누가 만들었는가?'를 물었죠. 이런 질문들이 철학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 놓은 질문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철학에 대해서 관심이 조금 생겼는데,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 교양으로 <서양사상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 당시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계몽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수업을 잘 못 신청했구나.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여전히 어떤 사상가로 시작해보려는 시도는 하지만 앞에 몇 장 읽다 보면 '아직 힘들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집니다. 


아직은 철학책이 저에게는 히말라야 같은 높은 산입니다. 연습이 필요합니다. 근처의 낮은 산을 한 번 올라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철학에 입문하기 좋은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피노키오의 철학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입니다. 전체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철학자 위주로 설명하기 보다는 특정한 주제를 설명하면서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을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살짝 개괄하면서 다리 근육이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생기듯이 그렇게 책력이 조금씩 쌓이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지 한 번 해보자. '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쉽게 어떤 분야로 관심을 쏟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동시켜주는 책을 만나면 정말 행운입니다. 저는 그런 책을 'Trigger Book' 이라고 부릅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달과 6펜스>는 화가 고갱에 대한 소설인데, 책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고갱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고 그의 그림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는 <달과 6펜스> 처럼 다른 분야로의 Trigger는 아니지만 질문 속에서 철학으로 확장시켜주는 그런 책입니다.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하고, 프로이트의 의식, 무의식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이 됩니다. 과학적 명제로서 귀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플라톤의 이데아에 의문점을 남깁니다.


아직은 철학에 대해서는 감이 제대로 잡히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접근하고 알아갈지는 그저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렵게 얻은 것일 수록 더 오래 남고 소중하게 간직된다는 점을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했으니 저 역시 그 방법으로 시작해야 겠네요.
'어떻게 하면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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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임금 문


역사에는 만약은 없다고 한다. 만약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문종의 이른 죽음이...

우리는 흔히 문종하면 특별한 업적이 없고 병약한 조선의 임금으로 기억하기 쉽다. 사실 문종은 준비된 임금이었다. 세자 시절부터 이미 성군으로서의 충분한 자질을 길렀으며 세종 대 후반에는 실질적으로 임금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여러 치적들을 쌓아올렸다. 


안타깝게도 세종과 소헌왕후의 잇따른  국상으로 세자는 몸이 쇠약해졌다. 하지만 39살의 나이에 돌연 병사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종의 급작스러운 죽음에는 의문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당시 어의였던 '전순의'의 처방은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으며, 처방에 대한 의견은 당시 대신이었던 김종서 등과 의논하지 않고 수양대군과 의논하였다.

과연, 문종은 병에 의한 병사였는가? 아니면 동생 수양에 의한 타살인가? 의문이 남는다.


결국, 39살의 이른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종의 뒤를 이은 단종은 당시 12살이었다. 단종은 그저 어리고 힘없는 왕이었다. 그에게는 수렴청정을 할 대비조차 없었다. 그리고 권력의 야심을 가지고 있는 수양이 있었다. 믿을 수 있는 건 김종서 뿐이었다. 하지만, 김종서 또한 난을 막지는 못한다.


p178

세종이 사망하기 전 7년 간은 사실상 세자 향이 임금 역할을 대행한 셈이었다. 세종 대 후반의 여러 치적들, 즉 세종 26년의 전분6등, 연분 9등의 전세법 제정이나 27년의 <용비어천가>완성, 28년의 훈민정음 반포 등의 치적은 사실상 세종과 문종의 공동 작품이다. 세자는 신병이 있는 세종을 대신하여 건원릉에 행차해 별제를 거행하는 등 사실상 국왕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역사의 후퇴, 계유정난


조선의 2대왕인 태종과 계유정난의 주역인 수양대군은 많은 면에서 유사하지만 다르다

둘은 모두 적장자가 아니었습니다. 권력에 대한 야심은 있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왕권에는 오를 수 없는 인물들이었습니다. 태종이 1차, 2차 왕자의 난을 통해서 형제들을 숙청하고 당시 조정의 주역인 정도전마저 제거한다. 수양 역시 왕위에 오르면서 동복형제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을 죽인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은 부모도, 형제도, 자식조차 없나 보다.


태종은 즉위하고 나서 철저하게 왕권강화에 나서고 당시 주요세력이었던 공신들과 외척들을 철저하게 배쳑한다. 이는 개국 초기의 기반을 다졌고, 공신들의 나라에서 훗날 세종의 부흥기를 위한 초석을 마련합니다. 이렇게 다져놓은 기반은 불과 얼마만에 세조에 의해 공신들의 나라로 변모한다.


당시 상황을 보면 1만 명이 넘는 공신과 그 가족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심지어 공신들은 살인을 저질렀어도 사면되어지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관직은 공신과 관련된 자가 아니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쉽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정난으로 옛 동료들의 부인과, 딸, 심지어 어머니까지 공신들이 차지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P315

한명회는 이들 역사, 즉 무뢰배들과 함께 문을 지켜 섰다. <종각잡기>에는 이때 한명회가 <생살부>를 들고 있었다고 전한다. <살생부>라고도 불리는데 <살조>에 이름이 올랐으면 죽고, <생조>에 이름이 올랐으면 살아서 이 문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대신들의 목숨이 일개 궁지기에 달려 있는 상황이 되었다.


P321

수양 측은 이날 밤의 쿠데타를 단종1년(1453) 계유년에 발생했다는 이유로 계유정난이라고 불렀다. '정난'은 국가의 위태로운 난리를 평정했다는 뜻이다. 어차피 이긴 자가 붙이는 이름이었다.


p362

옛 동료들의 부인과 딸, 심지어 어머니까지 차지한 공신들의 행위에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는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학을 정면에서 부인한 행위였다. 성인을 추구하는 유학을 거론할 것도 없었다. 최소한의 인간적 양식만 있어도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체제를 거부하는 유학자들이 늘어갔다. 그러나 공신들은 이미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것이었다. 조선 중기 윤근수는 <월정만필?에서 "신숙주가 노산군(단종)의 왕비 송씨를 받으려 했다"고까지 적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때 국모로 모셨던 여인을 달라고 요청했다는 뜻이 된다.



사육신과 생육신


계유정난은 명분이 없는 왕위찬탈이다. 수양대군이 왕권을 차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단종의 복권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명분이 없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관직에 나서지 않는다. 역사와 관련된 드라마나 책을 읽다보면 항상 나오는 부분이 바로 명분쌓기다.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꾸며서라도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게 정치다. 세조가 수양대군이 왕권을 차지하고 나서 집권하는 과정이 모순될지라도 올바른 정치를 해나갔다면 아마도 사육신과 생육신이 이렇게 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쉬움에 더욱 사육신과 생육신을 기억하려고 애쓰는지 모른다.


사육신의 닩종 복위 운동 당시 모반 혐의로 처형되거나 목숨을 끊은 사람은 70여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6명을 특별히 '사육신'이라고 기리게 된 것은 이른바 '생육신'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겨지는 남효온이 <추강집>에 수록된 '육신전'에서 이들 여섯의 행적을 소상히 적어 후세에 남긴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사육신은 충절을 상징하는 인물로 숭배되었고, 사대부들은 그들의 신원을 조정에 요구하였다. 그 결과 성종 때에는 그들의 후손도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금고된 것을 풀어주었으며, 숙종 때인 1691년에는 사육신 6명의 관작을 회복시키고 민절서원을 지어 이들의 위패를 안치하였다.


생육신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은 사육신에 대비하여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았지만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던 사람들로,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이다. 사육신이 절개로 생명을 바친 데 대하여 이들은 살아 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 체, 또는 방성통곡하거나 두문불출하며, 단종을 추모하였다.

                                                                                                     - 두산 백과 -



동강은 단종을 기억하며 잔잔히 흐른다.



▲ 단종의 유배지 영월


어린 단종에 대해서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단종은 왕위계승을 둘러싼 권력투쟁속에서 고작 12살의 나이로 등극하였다. 12살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린 나이다. 심지어 그에게는 수렴첨정해 줄 대비조차 없었다. 피붙이라 할 수 있는 숙부들은 권력투쟁의 한 가운데 서있었고,  백종조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역시 단종 곁에는 없었다.


어쩌면 왕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을 맞이했다. 
단종의 죽음을 기억할지 모르는 동강은 오늘도 천천히 흐른다. 동강에는 아프고 잔잔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흐른다.


p370

신숙주는 "이유(금성대군)가 또 노산군을 끼고 난역을 일으키려 하였으니, 노산군도 편히 살게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단종의 사형을 선창했다. 정인지도 "노산군은 반역을 주도했으니 편안히 살게 할 수 없습니다." 라고 가세했다. 임금으로 섬겼던 인물을 죽이라고 주창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양녕, 효령대군이 가세했다. 세종가의 골육상쟁을 즐기던 두 대군은 "속히 법대로 처치하소서"라고 단종의 사형 주청에 가담했다. 세조3년(1457) 10월 21일 단종은 결국 천명을 보존하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나이 열일곱, 재위에 있은지 3년 2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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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의 사모뿔을 빌립시다."


수양대군이 해가 저물어 김종서의 집에 들려서 사모뿔을 빌리자 한다. 그리고 잠시 틈을 타 가동 임어을운이 감추었던 철퇴로 김종서의 머리를 내리쳤다. 


p319

향년 70세, 태종 5년 식년과에 합격해 진사로 벼슬에 나온지 48년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태종, 세종, 문종, 단종 네 임금을 섬긴 '훈로'가 비참한 생을 마친 것이었다.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며 북방을 개척한 대호, 아내의 장사도 다 치르지 못하고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평안도로 떠났던 인생이 이렇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김종서의 죽음은 그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종의 죽음이자 그가 섬겼던 세 임금, 즉 태종과 세종, 문종이 만들어놓은 정상적인 헌정질서의 죽음이었다. 


김종서는 문관이었지만 '대호'라고 불리워졌으며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조선의 북방강역을 넓힌 인물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에게 주어지는 역사편찬을 맡기도 한다. 그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마치지 못했으나 <세종실록>의 편찬에 앞장선다. 김종서는 향년 70세까지 관직에는 48년동안 있으면서 그야말로 조선의 숨겨진 기둥이었다. 몽골군 침입이 예상되어 북방으로 출전할때 그의 나이는 67세이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김종서, 북방강역을 넓히다. 4군 6진의 개척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4군 6진은 위의 지도에서 표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4군 6진의 개척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지도 모양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세종 때 북방 개척의 영웅은 국왕 세종과 문신 김종서, 무신 최윤덕과 이징옥 이 네 사람이었다. 

이 당시 북방 개척의 범위는 공형진이라는 부분까지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험진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공험진은 고려시대 윤관이 여진족을 무찌르고 개척한 9성 중 가장 북쪽에 위치했다. 윤관은 공험진의 선춘령에 '고려지경' 이라는 비를 세웠다. 고려의 땅이라는 경계비를 세운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우리의 땅이 공험진과 선춘령에 미친다고 생각해왔다. 문제는 공험진이 현재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공험진이 두만강 이북 700리에 위치해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조선 후기 일부 학자들과 일제 식민사학자, 그리고 중국은 동북공정의 근거로 길주 이남 함흥평야까지 축소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은 하륜에게, 세종은 김종서에게 이 비석을 찾아볼 것을 명했다. 이 비석이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면 공험진의 위치를 갖고 논쟁할필요도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비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인식의 시초는 조선 중·후기 한백겸(1552~1615)이 <동국지리지> 동계조에서 공험진이 두만강 북쪽 700리가 아니라 길주 남쪽에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한백겸 이전으로 돌아가면 조선의 강역은 두만강 북쪽 700리의 공험진까지가 된다.


동쪽은 큰 바다에 임하고, 남쪽 경계는 철령이며, 서쪽은 황해도와 평안도에 접했는데, 높은 봉오리가 백두산에서부터 기복하여 남쪽으로 철령까지 뻗쳐 1,000여 리에 걸쳐 있다. 북쪽은 야인(여진족)의 땅에 연하였는데, 남쪽 철령으로부터 북쪽 공험진에 이르기까지 1,700여 리이다.            - <<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이 문제는 현재도 대단히 예민한 문제이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간도는 지금 사람들에게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당연히 우리의 인식에서 배제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일제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민초들의 삶의 장이었다. 간도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북방개척, 김종서 개인에게는... 


북방개척은 분명 조선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김종서의 삶의 태도로 보아서는 그에게 조선의 일은 아마 그의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는 잃은 게 너무 많지 않나 생각해본다.


 당시 북방으로 나가는 장수들에게는 가족이 동행할 수 없었다. 만약 난이 일어날 경우 가족을 먼저 챙길 우려가 있어서 동행 자체를 금지한 것이었다. 김종서는 병약한 노모와 아내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두고 오랜 시간 동안 조선의 북방을 위해서 살아갔다.


김종서가 북방에 있을때 그의 노모가 죽게된다. 당시 사대부의 장례법은 3년 동안 부모의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100일 후에 다시 임소로 돌아가라는 영을 내린다. 북방을 맡길 사람은 김종서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웠으나 조선을 위해서는 한시라도 북방을 김종서 없이 비워둘 수 없었던 것이다.


4년 후, 김종서는 아내가 위독하여 그의 나이도 쉰여섯 살이 되어 세종20년(1438)에 사직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세종은 윤허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아내를 잠깐 위로하고 떠날 뿐이었다. 조선의 북방이 튼튼해질수록 아마 김종서의 마음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문인으로서의 김종서


아마 어떤 이는 김종서를 무인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보통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때 김종서하면 4군 6진, 북방개척이다. 하지만 김종서는 본래부터 문관출신이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영성균관사로서 성균관을 총괄했으며 <고려사>, <고려사절요>, 마치지 못한 <세종실록> 편찬을 주도했다.


p139

김종서가 유학자라는 김돈의 평가는 김종서의 인격에 대한 것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세종 또한 김종서를 유신으로 불렀다. 조선시대 유신이란 표현은 학문과 수양이 갖추어진 문신들에게만 사용하는 칭호였다.


p186

성균관은 지방 향시에 급제한 진사, 생원들이 대과를 보기 위해 숙식하며 공부하는 곳이었다. 정3품 대사성이 관할했으나 정1품 대신 중에서 영성균관사가 총괄했는데, 김종서를 영성균관사로 임명해달라는 청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예나 지금이나 현실 비판적인 법이다. 특히 선비를 자처하는 조선의 젊은 선비들이 공동 상언에서 김종서를 '태산북두'로 표현하며 영성균관사로 임명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은 김종서가 당시 젊은 선비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p198

세종은 김종서에게 <고려사>를 편찬토록 명한 것이다. <고려사> 편찬을 명령받은 김종서는 기존에 사용되어 왔던 날짜별 기술인 편년체는 고려시대 전체를 조망하고 평가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서 <사기>와 같이 기전체로 <고려사>를 편찬했다. 


또한 고려사의 중요 사항만 연대별로 정리하는 편년체 사서인 <고려사절요>를 편찬하여 뜻을 강조하는 기전체<고려사>와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를 보면서 많이 놀랐다. 첫번째는 문신이었지만 문무에서 모두 아주 탁월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세종은 김종서 이후의 북방관리자들에게 '북방에 관련된 일은 먼저 김종서와 논하라.' 고 할 정도로 북방의 전문가이자 대호라고 불리우는 무신이었다. 반면에 문신으로서도 당대의 최고의 지식인에게 주어지는 역사편찬을 맡고 흔들리지 않는 소신으로 국정을 주도했다. 그래서 훗날 계유정난을 일으키는 수양대군에게는 첫번째 제거대상이었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예전에 한 번 읽고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올해 한 번 조선시대에 대해서 알아보겠다고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한 번 읽은 책이지만 정리를 해두지 않으니 다시 읽는데도 마치 처음 읽는 듯 했다. 

지금까지는 김종서가 편찬한 기전체인 <고려사>처럼 사건 중심 역사를 알고 있다. 그래서 전체적인 시야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일단은 개별적인 사건 중심으로 한 번쯤 개괄하고 나중에 이들을 편년체 형식인 <고려사절요>처럼 하나씩 이어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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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오늘은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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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은 작년 말에 읽은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이후로 두 번째다.

보통은 이야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서사를 좋아한다. 보통 소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빠져버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정말 나에게 맞는 짝을 만났을 때이다. 그런 책들은 내일로 넘기기가 힘들다. 시간이 늦어도 읽어서 끝장을 봐야 한다. 


산문에서는 그런 종류의 감동은 덜하다. 그런데 산문집을 접하면서 산문 만의 매력을 새롭게 느껴가는 중이다. 서사와는 다른 간결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산문은 글쓰기 연습에도 훌륭한 선생님이 된다. 길지 않은 글에서 어떻게 도입부분을 표현했는지, 하고자 하는 말을 어떤 식으로 전개했는지, 글을 어떻게 마무리지었는지 살펴보기 좋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지금껏 거의 책을 내놓지 않은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 문화운동가이자 우리 시대 대표적 인문학자인 도정일의 글이다. 지금껏 신문 칼럼이나 대담 형식의 책에서만 잠깐 만날 수 있었던 분이기에 이 책은 더 반갑다. 어떤 인터뷰를 보니 이제는 좀 더 늦기 전에 그동안 미루어왔던 글을 정리해보려고 한다고 들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2006년 대학에서 퇴임했으나 2010년 다시 대학으로 복귀해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으로 학부 교양교육을 쇄신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궁금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무엇인지.


네이버의 기획물에 우리 시대의 멘토 '도정일'편에 소개된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인가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첫째는 '인간다움'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사랍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것에 따른 응답을 하고자 하는 사람, 인간성에 대해서 늘 생각하는 사람이 후마니타스죠.


둘째로는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문명을 만들어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어떤 문명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문명은 기술이나 과학만으로 만들 수 없거든요. 종교도 필요하고 예술도 필요한 거죠. 인간이 무엇을 위해 문명을 만들었을까? 현대문명은 무엇을 위해서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문명의 목적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문명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잘못된 것을 반성하며 문명의 방향이 옳게 갈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이 바로 후마니타스입니다. 요약하자면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문명을 만들고 성찰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죠.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크게 4부에 걸쳐서 91개의 산문이 실려있다. 91개의 산문에는 정말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밑줄지고 단락을 지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별도로 정리한 것만 해도 20장이 넘게 된다.

특히,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은 인문학에 관련된 주제, 독서와 도서관에 대한 생각,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 부분이었다.


인간의 삶이 우연성의 개입을 완벽하게 차단할 방법은 없다. 엉뚱한 때에 엉뚱한 곳에 잘못 배달된 소포처럼 시대를 잘못 만나고 장소를 잘못 만나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지 모른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태어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결정한 사항도, 선택한 사안도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 때문에 삶에 대한 나의 책임, 당신의 책임, 우리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탄생은 내가 결정한 바 없고 선택한 바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탄생 이후의 우리 삶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이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생각하는 게 인문학적 사유의 첫번째 과제라는 말의 의미다. 물론 그 과제에 포함되는 것이 어찌 운의 문제뿐이겠는가마는             -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


아무도 정답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인문학적 기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다른 사람 아닌 '내'가 내 손으로 찾아야 한다. 그 질문들에 '나만이' 응답할 수 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지고 조선 팔도에 아무리 문자를 날려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고 찾을 수 없다. 기성의 해답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질문의 위대한 중요성이다. 왜 응답해야 하는가? 인간에 대한 기본 질문에 내가 어떤 식으로건 나의 해답을 내놓지 않으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를 당당히 말할 수 없고 내 존재의 정당성("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과 내 삶의 문법("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기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는 동물이며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확보하고자 하는 동물이다. 이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 조건이다.       -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이런 글들이 산문 곳곳에 흩어져 있다. 같은 글이더라도 소설처럼 배경을 묘사하고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많은 부분을 소요하는 것 대신에 이런 농축되고 함축적인 표현들이 산문에는 가득하다. 책을 읽을 때는 생각보다는 읽는 거 위주였던 거 같다. 읽은 것을 정리할 때는 생각이 많이 뒤따랐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산문 한 편을 읽고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그 주제에 대해서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위의 내용처럼 쉽사리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삶을 살면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답을 찾을 수 없는 궁금증일지도 모른다.

위에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에서도 표현했듯이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간다. 어떤 이는 평생 건강하고 넉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어떤 이는 평생 불행에 불행이 겹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선하게 살아오던 사람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태어날때 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무차별하게 죽는다.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선악의 심판이 없는 듯 하다. 궁금하다. 과연 운명이란 것이 존재한가? 라는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대답없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인문학을, 철학을 더 공부해볼 시기인 듯도 하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지만 결코 쓰잘데없지 않다. 그저 너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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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마다 알고 있습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라, 꽃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내밀라.

몸을 던지고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 헤르만 헤세(1877~1962) '봄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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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나무


나이 든 나무는

바람에 너무 많이 흔들려보아서

덜 흔들린다.


- 장태평(1949~) '나이 든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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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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