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5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흐는 "과거에 대한 무지가 현재의 이해 부족을 초래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과거 공권력의 잘못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기에 오늘날 이 잘못이 되풀이 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P17

한 나라의 문명 수준은 불법 행위와 부정의가 발생했을 때 이를 교정할 수 있는 제도적, 법적 장치의 완비 여부,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공감의 정도와 수준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는 사회적 고통에 공감하는 정도는 대중의 집단 기억, 역사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역사의식과 공감은 시민사회의 문화적, 정신적 기반이다.


1. E.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이없는 대화라고 했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 내가 해야할 이야기를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어야 한다. 과연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진 몇 백년 전이 아닌 불과 몇 십년 전인 부모님, 조부모님의 시대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에 자문을 해본다.


2. 우리는 보통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생활을 한다. 이는 다른 말로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어느 순간 나를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온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대항할 것 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대항한다면 이길 수 있는가.


3. 나는 그저 지시를 받았고 공식적으로 업무를 처리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이에게는 큰 상처를 받고 때로는 삶을 좌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해야할 일이다.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특수한 조직형태인 군에 소속되어 있다면 과연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경우, 상관의 명령에 반하는 행동이 얼마나 가능할까?



피고(아이히만)가 존재하던 때 나치 법률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라 국가의 공식 행위이므로 (......) 복종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습니다.                           

-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의 변호인


스스로 가슴에 못 박는 소리지만 난 철저히 '상명하복' 원칙을 지켰고 조직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         

- 고문기술자 이근안


대대장은 총살 집행할 권한이 없고, 연대장도 군법 권한으로는 총살 집행을 지휘할 권한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 상부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한 것뿐이고 본인은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 한국전쟁 때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 가해 부대 대대장 한동석


◆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

1951년 육군 11사단 9연대가 '견벽청야(방비를 철저히 하고 곡식을 모조리 거두어들인다)작전'에 따라 공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경남 거창군 신원면 지역의 민간인 700여 명을 모두 모아 마을 뒤 산골짜기에서 학살했다. 같은 해에 국회조사단이 파견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조사 자체를 무산시키려 했다. 이후 들끓는 여론에 밀려 관계자 세 명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등 사법처리르 함으로써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는데, 몇 개월 후 이들은 모두 사면받고 복권되었다. 유족들은 다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주민들이 나서서 유골을 모아 위령비를 세우고 묻었으나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을 금하고, 묘지도 개장령에 따라 다시 파헤쳤다. 또 박정희 정권은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의 주민 성분 조사에 참여했던 신원면장 박영복을 타살하고 유족들과 유족회 간부 열여덟 명을 반국가단체 조직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1988년이 되어서야 희생자 위령 궐기대회를 열고 위령비를 다시 세울 수 있었고, 1996년에 비로소 명예 회복에 대한 특별조치법이 통과되었다.


◆ 국민보도연맹

1945년 6월 5일 이승만 정권이 대국민 사상 통제를 목적으로 조직한 반공단체, 좌익 세력 색출 및 통제와 회유를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역적 할당제를 비롯해 지나친 실적주의가 횡행하여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단체에 등록되는 폐해가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정부와 경찰은 국민보도연행원과 형무소 재소자들을 무차별 검속, 즉결 처분했고, 이는 한국 전쟁 중 최초의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 여순 반란 사건

1948년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에 반대하는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14연대를 급파했다. 이에 10월 10일 14연대 소속 지창수, 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친일파 처단, 조국통일 등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곧 여수 시내를 장악하고, 여수, 순천을 순식간에 휩쓴 뒤 곧바로 광양, 곡성, 구례, 벌교, 고흥 등 전라남도 동부 5개 지방을 장악해나갔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2500여 명의 군인 및 민간인이 숨졌다. 잔류 반란군은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본격적인 유격전을 전개했지만 1950년 2월 대부분 소탕되었으며 호남지구에 내려졌던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좌익계와 광복군계를 포함한 모든 반이승만 성향의 군인들이 제거되었다.


◆ 제주 4.3 사건

1947년 제주도에서 열린 3.1절 행사에서 경찰이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4.3 사건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경찰 발포에 항의해 총파업을 벌이는데, 미군정은 이를 조사하면서 '경찰의 발포'보다는 '남로당의 선동'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1948년 4월 3일 350명의 무장대가 열두 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된다. 이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이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사건 발생 후 50여 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다가 2000년 1월 12일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2003년 10월 말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건과 관련해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도예종 등이 기소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구속 기소된 23명 중 8명에게는 사형을, 나머지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되었다. 2005년 12월 27일 재판부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소를 받아들였으며 2007년 1월 23일 피고인 8명의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 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서울지방법원은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배척하면서 시국 사건 사상 최대의 배상액인 637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국가가 무고한 국민을 죽인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인권 탄압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 대구 10.1 사건

해방 이후 미군정은 한국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친일파 출신들을 경찰로 임용하며 일제시대 방식 그대로 농민들의 쌀을 공출해갔다. 특히 대구, 경북 지역에서는 해방 이후 30만 명의 귀환동포가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하면서 쌀 수요가 늘고 모리배들의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쌀값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6년 5월 콜레라가 유행하여 굶주림은 더 심했고, 미군정은 전염을 막는다며 차량은 물론 사람도 시 경계를 넘지 못하게 교통을 차단했다. 결국 9월부터 대구 시민들은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노동자들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벌인 9월 총파업에 맞추어 파업에 돌입했다. 10월 1일 항의하던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총격을 가한 것이 직접적 발단이 되어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공산주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정치 영역에서 좌파 정치 세력이 크게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 노근리 사건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노근리의 경부선 철로 주변에 피신하고 있던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미군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300여명이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미군은 노근리 부근의 미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 명령에 따라 무차별 사격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 민주단 정권 때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하면서 이 사건은 외부에 드러났다. 미군은 소청을 기각했지만, 1994년 4월 대책위원회 정은용이 유족들의 비극을 담은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소설을 출간하면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9년 말 유족들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2000년 1월 9일 미군은 전문가 등을 파견하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유족들에 대한 보상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후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사업이 추진되었다.


◆ 실미도 사건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 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하는 이른바 1.21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에 따라 대북 특수공작을 목적으로 실미도 부대가 창설되었다. 이들은 3년 4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과 열악한 보급, 보수 미지급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뎌내며 북파공작원으로 훈련받았다. 그러던 중 국제적인 긴장 완화와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더 이상 이들의 존재가 불필요해지자 정부는 이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불만을 품은 공작원 스물네 명이 1971년 8월 23일 기간병 열여덟 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하여 서울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군경과 교전이 벌어져 경찰, 민간인, 공작원 등 스물여덟 명이 사망하고, 이후 생존 공작원 네 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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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나무, 이팝나무, 소나무, 오리나무, 아까시나무, 자작나무, 동백나무, 조팝나무, 느티나무, 등나무, 생강나무, 밤나무, 명자나무, 회양목, 모과나무, 노간주나무, 라일락, 대나무, 서어나무, 은행나무, 사위질빵, 개나리, 전나무, 자귀나무, 회화나무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 하나의 소주제를 이끄는 나무들이다. 이름을 알고 있는 나무도 있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무도 상당수다.

비록 이름은 알고 있지만 겨울에 잎이 떨어지고 꽃이 없으면 흔하디 흔한 은행나무, 벚나무 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 전에도 몰랐으나 그때는 모른다는 것 조차 생각을 하지 않은 무관심의 단계였다. 바로 하나의 행복을 모르고 살아왔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를 읽고 난 후, 과연 내 주변에는 어떤 나무가 있을까? 궁금했다.

우선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도 여러 나무가 있지만 이름표를 붙여 놓은 것 외에는 어떤 나무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름표를 하나하나 찾아보고 적어놓았다. 아파트를 나서면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나무는 섬잣나무이다. 이름을 알고 나서 검색을 해보았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서 자라는 잣나무라고 한다. 섬에서 자라는 잣나무라 해서 섬잣나무라고 한 것이다. 재미있다. 조금 지나다보면 큰 나무가 보인다. 소나무인가? 내 눈에는 침엽수는 다 소나무처럼 보인다. 아 이것도 잣나무였다. 이름은 스트로브잣나무 였다. 그리고 단지내 도로 양옆에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나뭇잎이 없으니 은행나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제는 출근을 해서 회사에 있는 나무들을 보았다. 출근길 인도 옆에는 이게 나무인가라고 생각이 들곤 하는 회양목이 길게 심어져있다. 회양목을 지나서 보면 벚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다. 역시 잎과 꽃이 없는 벚나무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한 번에 눈이 가는 멋들어지고 큰 나무가 서있다. 낙랑장송이라고 한다. 그리고 군데군데 모르는 나무들이 숨어있다. 산딸나무, 앵도나무, 꽃댕강나무, 매자나무라고 씌여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주에 광교산에 잠깐 올랐었는데, 거기서 눈에 띈 나무가 하나 있었다. 바로 굴참나무였다. 나뭇잎은 다 떨어졋지만 굳건하고 강인하게 서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나무껍질이 두텁다는 점이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굴참나무를 찾아보았다. 아~! 역시 두꺼운 나무껍질이 코르크질로 되어 있어 와인의 코르크병마개로 상요되고, 잘게 부수어 코르크판을 만들기도 한단다. 예전에는 이것으로 지붕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야 알았다. 도토리가 참나무의 열매라는 사실을 ......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나무였다. 그런데 이제는 각각의 개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각자의 개성들이 눈에 들어와서 보는 재미가 있다. 그 재미에 더불어 나무마다 간직한 특징이나 사연을 알면 어느새 나무에 빠져들게 된다.


나무와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사진을 찍고 싶으면서도 어렵고 아쉬운 게 대나무 꽃이라고 한다.

대나무 꽃은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육십 년에서 백이십  사이에 단 한 번 피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들은 살면서 수십번 많게는 수천번을 꽃 피우는 데 대나무는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즉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땅속에 숨은 줄기까지 모두 죽어버린다고 한다. 대나무의 꽃은 삶을 내놓아야 피울 수있는 그런 아픔의 꽃이다. 그래서 꼭 한 번 찍고 싶고, 그 것이 마지막이기에 아쉬운 것이다.


은행나무의 경우는 몇천 년씩 사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어딘가에는 원시인이 찍어놓은 도끼 자국도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혹시 유럽여행을 하면서 은행나무를 본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은행나무는 동양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가을에 한국을 여행오면 은행나무를 인상깊게 본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그런 사람들 사이의 인기와는 반대로 그 근처에는 다른 나무들이나 풀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은행나무가 땅 속의 영양분을 독식하고 넓게 뻗은 가지로 해를 전부가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 암꽃은 근처에 있는 수나무가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만 자손을 볼 수 있는데 만일 근처에 수나무가 없다면 이 은행나무는 몇 백년이고 수정 한 번 못 해본 채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


나무들이 간직하고 있는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되면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관심 속에서 나무들이 행하는 여러 현상들을 살펴보면 사람이 배워야 할 게 참 많구나! 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두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는 해거리이고 나머지 하나는 연리지이다.


해거리는 나무가 열매 맺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열매를 맺지 않고 해를 거른다는 뜻이다. 어느 해에 열매를 너무 많이 맺고 나면, 다음 해 가을에는 어김없이 빈 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열매 맺는 데만 온 힘을 다 쏟으면 나무는 자생력이 사라지고 점차 기력을 다하게 되고 결국 죽게 된다.

나무는 때가 되면 자신이 쉬어야 함을 알면 옆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휴식을 취할 줄 안다. 그리고 일 년 간의 긴 휴식이 지나면 나무는 그 어느때보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를 설명하는 한 단어로 '일중독'이라 하는데 어쩌면 우리가 나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쉴 때는 쉬고 내실을 기를 줄 아는 자세,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판단하고 묵묵히 그저 제자리를 지켜나가는 자세를 말이다.


연리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자연이라는 게 참으로 신비하다.

▲ 경주 감은사지 느티나무 (연리지)


서로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라고 부르는데, 두 나무의 뿌리가 이어지면 연리근, 서로의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나무들은 서로 연리를 하는 것일까?


두 나무가 너무 가까이서 계속 자라도 보면 두 나무 중 한 그루는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다. 한 나무가 자랄 영양분과 햇볕을 두 나무가 서로 나눠야 하기에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하나는 죽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두 나무가 동시에 죽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는 현명해서 누군가가 죽기전에 서로 의기투합을 한다. 바로 연리를 한다. 연리를 하게 되면 혼자였을 때보다 훨씬 거대한 나무로 자라난다. 

그리고 신기한 특징은 나무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개별적인 특징은 그대로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 한 나무는 흰색 꽃을 피웠고, 다른 나무는 붉은 색 꽃을 피웠다면 한 몸이 되어서도 그 특징은 이어간다는 점이다.


무엇인가를 차지하기 위해서 협력하기보다는 서로 다투고 싸우는 모습, 결혼을 해서 배우자에게 자기방식만을 고집하는 모습, 차이를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모습들은 연리지 나무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모습이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를 읽다보면 나무도 하나의 생명체라는 점을 알게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나 간과해오면서 살아왔다. 수 천년을 살 수 있다는 은행나무는 서울 시내에서는 불과 몇 십년이면 수명을 다한다고 한다. 

개발을 위해 무분별하게 벌목을 하고, 나무의 상태를 알지 못한채 그저 영양제를 꽂아주고 벌레를 없애준다고 농약을 뿌려 결국 땅 속에서 뿌리가 썩어내려가게 만드는 모습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흔하다. 인간 중심의 환경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어쩌면 이 땅의 주인이 사람이 아닌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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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산을 좋아합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점점 산에 가고 싶어하고 가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무릎관절이 많이 좋지 않으셔서 한약, 양약도 먹어보고 하였는데 쉽게 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치료약은 산에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산에 오르시면서 무릎 근처의 근육을 강화시켜주었는지 모르겠으나 등산을 한 이후부터는 신기하게 그동안 아파왔던 무릎이 괜찮아지셨습니다.

사람들의 몸에는 산, 바다 등과 같은 자연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 속의 콘크리트와 각종 석유 화학 제품 속에서 살아가지만 어쩌면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건강이 좋지 않을 수록 그래서 자연스레 산과 바다로 자연 속으로 우리의 몸이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귀소본능처럼 자연으로 돌아가 치유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생명, 환경,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때로는 알고 있지 못하던 사실을 알게 되고 때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만행에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반대편에서 자연을 살리려는 노력에 희망을 걸어보게도 합니다. 그렇게 자연 속에는 궁금증을 담은 이야기, 아픔에 대한 이야기, 희망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이제 하나씩 그 이야기의 장이 펼쳐집니다.


이 책에서는 크게 여섯가지 이야기 속에 67가지 개별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연의 놀라운 발견', '진화의 수수께끼', '동물도 사람처럼 느낀다.', '사람이 바꾸는 자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미래', '이야기를 품은 우리나라의 숲'이 여섯가지 큰 이야기입니다.


모기는 왜 배터지게 피를 빨까?

술 찾는 초파리, 꽁초줍는 참새

마다가스카르 동물 표류기

늑대는 왜 개가 되었나?

개는 하품한다. 고로 공감한다.


소주제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의 제목 몇가지입니다. 제목에 대한 궁금증 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을 선택할 가치는 있어보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자연의 일상적인 일인데 너무나 신기합니다.

과연 모기는 왜 배터지게 피를 빨까요?



프랑스 곤충학자들은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얼룩날개모기가 흡혈 도중 꽁무니로 신선한 혈액이 들어있는 액체를 배출하는 현상을 적회선 촬용을 이용해 분석했다. 그랬더니 온혈동물의 피를 빨면서 급상승하던 체온은 꽁무니에 붉은 액체방울을 매달면서 2도가량 떨어졌다. 대조적으로 설탕물을 섭취하도록 한 모기한테서는 이런 체온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마신 피를 배설할 만큼 체온조절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변온동물인 모기가 항온동물의 '뜨거운'피를 마시는 것은 치명적 고온 스트레스를 부를 가능성이 있다. 모기 숙주의 체온은 최고 40도에 이른다. 이런 고온상태에서는 곤충의 생리기능이 일부 마비될 수 있다. 특히 흡혈곤충은 열로 먹이를 찾기 때문에, 높은 체온을 유지하면 먹이로 착각한 다른 흡혈곤충의 공격을 부를 위험도 있다.


그렇다면 초파리는 왜 술을 찾고 참새는 꽁초를 주을 까요?


참새와 되새류는 진드기의 감염을 줄이기 위해 담배꽁초를 둥지 재료로 쓴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그러면 꽁초 속에 니코틴이 진드기를 쫓아준다. 놀랍게도 이런 행동은 곤충 가운데도 널리 퍼져있다. 초파리는 기생 말벌을 아주 무서워한다. 자기 새끼가 말벌의 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에머리 대학 과학자들은 초파리가 주변에 기생 말벌이 얼씬거리는 경우 고농도의 알코올이 있는 곳에 알을 낳는데, 이것이 자식의 안녕을 위한 행동임을 밝혔다. 기생 말벌은 알코올을 싫어하지만 초파리 애벌레는 발효가 진행되는 썩은 과일에서 자라기 때문에 알코올에 잘 견딘다. 따라서 기생 말벌의 습격에 노출된 초파리 알이라도 알코올 농도가 높은 곳이라면 무사히 자라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스토리가 숨어져 있습니다. 이런 스토리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바꾸는 자연'이라는 소주제 속에는 샥스핀의 저주, 고래사냥 잔혹사 같은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지막 장은 '이야기를 품은 우리나라의 숲'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부분이었다. 내가 특별히 산을 좋아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모르는 유전자가 내 몸속에서 꿈틀거린 듯 하다. 하나하나 모두 의미있고 나중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 소주제를 모두 소개할까 한다.


양떼가 만든 지리산 바래봉 산철쭉 군락

대나무의 역설, 부산 기장 아홉산숲

지뢰밭이 지킨 평화의 숲, 철원 소이산

보부상 노래 깃듯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황무지를 숲으로 가꾸다. 대관령 특수조림지

540여 년 지켜온 숲의 바다 광릉숲

물길 바람길 다스리는 나무 병품 마을숲

천년숲 제주 비자림, 인간의 보살핌은 약일까 독일까

죽은 왕들이 노니는 종묘숲

300년간 모래바람 막아준 해안솔밭, 관매도 솔숲


이 숲들은 자연의 있는 그대로가 보존되어 있는 곳도 있고, 사람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잘 관리되어 자연환경을 극복한 경우도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관심도 건강한 숲을 위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항상 그 관심의 정도가 문제이지요.


숲은 나무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여기서도 저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나무는 수많은 나무 종류들에 대해서 통칭하는 단어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그저 '사람'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무엇인가 서운하고 아쉬울거 같습니다. 저에게는 나름의 이름이 있으니까요.
김춘수의 시 '꽃'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과연 산에 가서 나무를 보면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을까? 라는 자문을 해보았습니다. 답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어쩌면 하나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습니다. 은행나무도 그저 은행잎이 달렸을 때 알게 됩니다. 벚꽃나무도 그저 봄에 휘날리는 벚꽃을 봐야지 알 수 있습니다. 동백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 알고있는 나무 종류도 몇가지가 되지 않더군요. 이제는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람, 인간이지만 그렇게 불리어지기 보다는 제 이름이 좋은 듯이 하나의 몸짓에 지나기 보다는 꽃이되고 싶듯이 그렇게 저도 나무들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가려고 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길을 걸으면서 나무들의 이름을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역사, 전쟁, 인권 관련된 책을 자주 읽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기분전환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나무에 대해서 조금 알기 위해 책을 한 권 찾았습니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입니다. 기대되네요.
오늘은 주말인데도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습니다. 가까운 광교산에 잠깐 올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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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을 넘기기가 아쉽고 아까웠다.

고미카와 준페이의 <인간의 조건> 마지막 여섯 번째 책을 아껴가면서 읽었다. 대하소설이지만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서 한 번 읽다보면 금방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남은 페이지 수가 줄어들수록 안타까웠다. 다른 책들은 읽다보면 얼마나 더 읽으면 다 읽겠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된다. 이 책은 그 반대다. 책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서 아쉬움으로 한장 한장 넘긴다.


<인간의 조건>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단연 인상적이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 내 인생의 책을 뽑는다면 아마 이 책에서 삶의 변곡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자신에게서 받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자기 만의 대답은 있어야한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여기서 첫번째 생각이라는 단어가 바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끊임없는 자기 질문이다. 그런 질문과 생각이 없다면 결국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이 변해가게 된다. 불확실한 환경과 개인적인 생각, 관점과 다른 방향으로 세상이 변해가도 삶을 이끄는 축은 흔들리지 않는, 아니 흔들리더라도 결국 다시 자신만의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개인마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은 가치관 바로, 그들의 삶을 이끄는 삶의 축인 셈이다.


때로는 자신의 살고자 하는 방향과 다르게 삶이 흘러갈지 모른다. 때로는 자신의 사상과 신념과 배치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로는 자신이 믿는 무엇인가에게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는, 생각과 배치되는, 살고자하는 방향과 다르게 흐르는 어떤 무엇과 끊임없이 맞서야 하는게 우리의 삶일지 모른다.


우리는 보통 '행복한 삶'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행복을 사람들마다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그 행복이라는 감정과 시간은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 행복은 그저 온전히 자기 스스로 즐기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과 삶의 축이 흔들리는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는 작든 크든 삶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갈등과 일상이 행복이라는 감정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과 맞설 수 있고 즐길 수 있는게 아마 더 중요한 듯 하다.


누군가 나에게  "주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조건들을 지켜나가면서 살아야 해." 라고 말해 줄 수 있다. 이게 6권이나 되는 이 책의 짧은 줄임이다. 이런 줄임으로는 알 수 없다. 그 감정을 그 여운을...... 분명히 말하려고 하는 점은 동일하나 책을 읽어가면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갈등 속에서 주인공 가지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서 나 역시 어떤 판단과 결정의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나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질문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가지와 같은 갈등이라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과연 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순간적인 상황에 나 역시 죽을 듯이 힘들지만, 자신의 삶의 축인 인간다움으로 가지는 주변인을 보살피는데 내가 만약 그런 순간이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간단히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해본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가지는 제2차세계대전이면서 대동아전쟁 당시에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군수회사에 취직을 한다. 가지는 일본의 전쟁에 대해서 반대하고 군국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비판을 지니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자국과의 이념과도 갈등을 이룬다.  하지만 당시 군대에 가지않는 소집면제 특권을 받기 위해 노무관리자의 역할로 만주에 있는 라오후링 광업소로 아내 미치코와 간다. 당시 그 광업소의 일본이 잡아온 중국인 포로들의 대우에 대해 가지는 분노하고 어떤 사건으로 인해 관리자들과 갈등이 생기고 결국은 가지는 군에 징집되게 된다. 징집된 이후에도 가지에는 군대라는 조직의 불합리와 항상 맞선다. 후임병이지만 고참병과 간부와도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다움에 배치되는 점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대항한다. 그러한 도중에 일본은 패망하고 전쟁이 벌어졌던 그곳에서 미치코를 향해 간다. 그런 도중에 소련군, 일본인, 만주인과 많은 갈등에 접하게 되는데, 매번 가지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결국은 소련군에 의해 포로가 되고 그곳에서 그가 믿는 사회주의에 대한 또 다른 실망을 갖기도 한다. 다시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고 미치코를 향해간다.


전쟁이 끝나고 미치코를 향해서 만주로 가면서 가지는 많은 일본병사와 당시 만주에 사는 일본인을 만난다. 때로는 그들과 같이 소련군과 만주인을 피해도망가는데 굶주림에 지친 이들은 누군가는 자신의 아내를, 누군가는 부모를, 자식을 버리고 홀로 삶을 위해 발을 서두른다.


과연 삶의 기로에 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연히 지금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라고 반문하겠지만 극한에서도 당당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주인공 가지는 라오후링 수용소에서 노무관리자로 일할 때 중국인 포로의 인간다운 삶을 조금이라도 보장해주기 위해서 광산 소장과 다른 이들과 갈등을 겪고 심지어 무력을 사용하는 군인과도 마찰을 일으킨다. 아내인 미치코와 그저 조용히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항상 결국은 남을 위한 결정을 내린다.


가끔 뉴스기사를 보면 지하철승차하는 곳에 모르는 사람이 떨어졌는데 망설임 없이 들어가서 구해주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재 속에서 모르는 사람을 구조하고 때로는 삶을 마치기도 한다. 일제시대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이런 선택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사랑하는 부모님, 아내, 자식이 있는데 타인을 위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할 것인가?


앞으로 삶의 이정표, 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은 이러한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기본 방향에 대해서 이 책에서 배웠다. 나 역시 그 인간의 조건을 끝까지 지키며 살려고 한다.


옮긴이 김대환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을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인간다운 인간을 보기 힘든 사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살 수 없는 사회,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지배당하고 핍박받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또 우리 자식에게는 적어도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도리를 지키며 인간답게 살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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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하루 하루 더 살아갈수록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기보다는 쌓여가기만 합니다.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갈수록 의문이 풀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치 다이달로스가 크노소스 궁전의 지하에 만들어놓은 미로 속을 아리아드네의 실 없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너무나도 무심하게 세상을 살아간 게 아닐까하는 자책 아닌 자책도 해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미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 미움이나 증오가 생기는 이유는 그만큼 좋아했기에, 사랑했기에 믿었기에 그 반감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그 기저에는 사랑이라는 것, 바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담겨있습니다. 이에 반해 무관심은 너무나 무섭습니다.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되는 그런게 때로는 더 무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가 아니면 어떤 내가 알지 못하는 시스템에 의해서 무관심이 남모르게 조장되고 있는게 아닌지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빅브라더가 남모르게 우리의 선택을 조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과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요인들은 어떤게 있을까. 라는 의문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중에 하나는 이 속세의 세상을 사는데 빠질 수 없는 돈, 바로 경제에 대한 관심으로 어떠한 요소들이 경제에 영향을 주고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무관심해지기 쉬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그런 관심에 대한 개론서의 역할을 합니다. 저 역시 이 책을 계기로 사회학에 대해 관심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목은 <세상물정의 사회학>, 부제는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입니다.

세상물정, 세속,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맞닥드리게 되는 주제입니다. 피하려해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이게 되고 모순이 생기는 그런 곳이 바로 세속이며, 그래서 더욱 알아야 하는 것이 세상물정인 듯 합니다.


상식, 명품, 프랜차이즈, 해외여행, 열광, 언론, 기억, 불안, 종교, 이웃, 성공, 명예, 수치심, 취미, 섹스, 남자, 자살, 노동, 게으름, 인정, 개인, 가족, 집, 성숙, 죽음, 이 단어들이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입니다. 대부분이 일상에 관련이 있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그 속에는 저희가 알지 못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어쩌면 저만 모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노트북으로 정리를 하는데 18장이나 되는 많은 분량을 적었습니다. 그만큼 생각해볼만한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조금 더 제가 더 많은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정리를 해나가야할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해서 47권의 책들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 책들을 읽으면 사회학에 대한 틀을 잡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도 가지게 하고 저 같이 지금까지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개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상식

p27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은 힘이 세다. 상식은 분명 양적 다수에 근거한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상식을 잘 이용하는 사람은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쉽다. 자신의 생각을 시대의 상식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장악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이 만든 생각을 세상의 보편적 상식으로 만들 수 있는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면, 시중에 떠도는 상식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둔한 사람은 힘으로 지배하지만, 교묘한 사람은 상식을 이용해 사람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p29

상식에는 없는 올바름을 갖추고도, 양식은 상식과의 경쟁에서 대체 왜 늘 지고 마는 것일까? 이유는 상식과 양식의 말투 차이에 있다. 상식은 상냥하고 어루만져 주는 어투를 사용하지만, 양식은 공식적이고 엄격하고 훈계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상식이 나를 무조건 이해해 주는 연인 행세를 한다면, 양식은 냉정한 심사위원과도 같다.


상식의 힘은 상식을 넘어섭니다. 예전부터 왕이 배라고 한다면, 백성들은 배가 다니는 바다, 바로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의 불규칙성과 높낮음의 변화가 바로 민심의 변화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날카로운 지적이 아닙니다. 그저 삶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마치 아내나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과 갈등이 있을 때 이성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아내나 여자친구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듯이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올바름은 진정한 올바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은 제가 다른 경험으로 깨달은 소중한 경험입니다.  



성장

p128

개인적 성공은 소유한 승용차의 크기와 은행 잔고로 측정될 수 있겠지만, 사회의 성공 여부는 공감이 제도화된 복지의 크기와 넓이로 가늠할 수 있다. 하늘이 혹은 계급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만 성공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동정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독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회가 홀로 성공하는 게 더 좋다. 성공의 단위는 하늘이 돕는 개인뿐이라는 오래된 사유의 관습과 이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지국가와 만날 수 있다.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기 계발서가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어떤 기사에서 인문학을 배우는 한 학생이 한 말을 적어두었습니다.

인터뷰 질문은 이런 저런 사회적 활동이 많은 그 사람에게 "다른 평범한 젊은이처럼 돈 많이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느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의 답이 무엇인가 울림이 있었고 경종이 있었습니다.

대답은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집을 사드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부모님이 갑자기 길에 쓰러졌을 때 '누군가 구해주겠지'라는 믿을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였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회, 안전한 사회는 단지 희망사항일까.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그런 날은 머나먼 미래의 일인지, 아니면 과거의 우리의 모습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현재인데 지금은 아니네요.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딸은 둔 저희 누나가 저에게 요새 초등학교 문제를 하나 냈습니다.

문제 : 길을 가는데 누군가가 짐이 무거우니 저기까지만 들어다 줄래? 라고 요청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분명히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답은 "네 도와드릴게요. 라고 친절하게 대답한 후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준다." 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조카들의 답안은 다릅니다.
"네, 제가 그 짐 들어드릴 수 있는 어른을 모시고 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라고 대답한다. 가 답이라고 합니다.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인정

p205

투쟁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싸움을 즐기는 싸움꾼이 아니다. 투쟁하는 사람은 보다 많은 여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돼지와 같은 조재도 아니고, 돈을 받고 영혼을 저당 잡힌 채 왜 사워야 하는지 이유조차 알려 하지 않는 '용역'도 아니다. 싸워야만 하는 유전자를 내재한 싸움꾼도 아닌 정신대 할머니들이,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긴 철거민들이, 폭력과 고문에 항의하는 인권운동가들이, 등록금에 절망한 대학생들이 왜 길거리에서 그리고 크레인 위에서 투장하는 궁금할 때,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책이 악셀호네트의 1992년 출간된 <인정투쟁>이다.


p207

인간은 배부르면 만족하는 돼지가 아니다. 아무리 위장이 꽉 차있어도, 자기 존업이라는 그릇이 비어 있다면 인간은 만족할 수 없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개인의 욕구는 자기의 밥그릇에 보다 많은 음식을 채워 넣고 싶은 물욕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인정에 대한 절실함은 보다 많은 돈도 넘치는 권력이 아니라, 자기 존엄이라는 스스로 부여한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각종 시위현장을 보여줄 때,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식의 하나였습니다.. 뉴스 앵커의 "오늘 어디에서 누가 어떤 시위를 했습니다.." 라는 멘트 하나로 그 시위는 우리 사회에 인식될 뿐입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면 그저 그렇게 인식할게 아닌거 같습니다. 모든 것들이 그렇겠지만, 우리에게 별 것 아닌 기사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자신의 삶을 걸고 나서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타인이 죽을 것 같이 아픈 것보다 살짝 긁히고 까진 부분에 대해서 더 아파하는 존재가 우리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은 다른 이들에게는 타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아픔이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무엇인가 불편합니다. 그 불편함을 조금 줄이기 위해서라도 타자를 위해 한 번더 생각해보고 그들의 자기 존엄에는 상처를 남기지 않는게 중요한 듯 합니다.

정말 말이 쉽고, 글이 쉽습니다. 저 역시 그저 이렇게 밷어놓기만 하는게 부끄럽습니다. 위선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조금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에 적어봅니다.


성숙

p234

칸트는 계몽이란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인간'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칸트는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완성 가능성을 배움에서 찾았다. 그래서 배움에 대해 남다른 기대를 걸었다. 부모님은 배움을 통해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하여 입신양명하는 일에만 마음을 쓰고"있을 뿐이며, 국가의 통치자는 배움을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한갓 도구" 정도로 생각하지만, 철학자의 눈에는 배움 속에서 인간이 야만에서 벗어나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이 보였다.


p245

성장했지만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배운 지식을 사용해 금융 사기를 친다. 배우지 못한 장발장은 고작 촛대나 훔칠 뿐이지만, 배웠지만 성숙하지 못한 인간은 못배웠지만 성실한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예전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다보면 마을에 어떤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 마을에 하나 있는 학교의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주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은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배운 사람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선생님이 말해 달라 거듭 요청을 합니다.


위의 선생님들은 지금 이 시대의 여러 분야의 배운 사람들을 뜻합니다. 어떤 배운 사람들은 그 배움을 성숙이 아닌 단순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성장을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사용하는 배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비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 파장은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결국 사회에서는 고리가 약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그 고리가 약한 부분은 상당 수가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범인들입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살짝 들추어서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더 궁금해집니다. 살짝 들추어진 곳에서는 앞의 조금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 뒷부분은 앞으로의 제 자세와 관심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사회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자." 이것만은 가져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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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 그 다음은?

'원자력 안전신화' 언제까지 속고만 살 것인가. 우리에겐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방사능과 핵사고 위험 앞에서 언제까지 두려워만 할 것인가

우리에겐 안전과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한국은 탈핵은 가능하며, 세계가 이미 그 길로 가고 있다.


<한국탈핵>의 앞 표지의 상단에 위 글귀가 적혀있다. 

저자인 김익중 교수는 동국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2009년 경주환경운동연합을 통하여 반핵운동에 입문하였다. 경주에 있는 중저준위 방폐장에서 방사능이 누출될 것으로 판단하고 지역에서 방폐장 공사 중지 운동을 해오다,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계기로 전반적인 반핵운동으로 방향을 전향하였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처럼 원자력발전소 사고 확률 0%를 위해서는 탈핵, 즉 핵발전소를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국내의 원전비리 등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원전관련 사고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원자력발전이라는 정보는 그 단어 밖에 알지 못하는 말 그대로 무지 그 자체였다. 원전에 대해서 찬성 혹은 반대의견을 내거나 다른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단순한 지식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한국탈핵>은 그런 면에서 이해를 도와주고 탈핵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탈핵>을 통해서 어떤 의견을 내놓기위해서 원자력 발전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회의가 많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첫번째 이유는 바로 너무 위험하다는 점이다. 몇 백만 분의 일의 확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소한 확률이 발생했으며 그 피해는 지금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을 죽게 만들었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탈핵을 할 필요는 있다고 판단된다.

원전의 고준위핵폐기물은 수십년을 사용하고 그 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수십년이 걸리고 냉각된 후에는 수십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되어야한다고 한다. 이것은 현 세대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라고 생각한다. 그 많은 자원을 불과 수백년 아니 수십년 동안 고갈에 이를 정도로 소비하고 이제는 그것으로 모잘라서 폐기물까지 보관하게 한다. 그것도 확실히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더 우려된다.


분명 계속 건설을 하고 유지하는 이유도 분명이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고 정치적인 요소도 많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탈핵 선언과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줄이고 재생가능발전쪽으로 선회하는 정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전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안다. 후쿠시마 핵사고 같은 일이 절대로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그러한 불씨조차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 후쿠시마 핵사고

2011년 3월 11일은 전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날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원전을 관리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일본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세계 최초로 네 개의 원전이 한꺼번에 터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 사고를 통해서 핵사고가 발생하면 적절한 대응방법이 없다는 인상을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남겨주었다.


◆ 핵사고의 개요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동북부 지방에서 진도9.0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지진에 이어 40분 정도 후에는 약 15미터의 거대한 쓰나미가 그 지역을 강타하여 거의 2만 명의 사망 및 실종자를 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3월 12일부터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후쿠시마 1호기로 시작하여 3호기, 2호기, 그리고 4호기까지 폭발한 것이다.

지진, 혹은 쓰나미로 인한 '원자로의 온도 상승'은

1) 핵연료봉이 녹는 '노심용융' 
: 노심은 원자로 용기 내에 핵연료가 장착된 부분

2) 용융된 핵연료가 원자로를 뚫고 밖으로 흘러내리는 '멜트스루'

3) 녹아버린 핵연료가 땅을 파고 내려가는 '차이나 신드롬' 진행중


◆ 사고 수습

전문가들은 100년 정도를 예상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녹아버린 핵연료의 상태를 알기 위해 투입한 일본, 미국의 로봇은 원자로 근처에서 높은 열과 방사능으로 바로 고장나버렸다. 지금 이 '녹아버린 핵연료'는 그 양이 얼마인지, 온도가 얼마인지, 색깔은 어떤지,. 방사능이 얼마나 나오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국의 스리마일 사고 당시에는 핵연료를 치우는 데 총 11년이 걸렸지만, 스리마일은 노심용융이 일부만 일어났고 멜트스루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비교하기 어렵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소련정부는 사고 원자로를 납과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수백명의 헬기 조종사들을 동원하여 처음에는 납덩어리를 떨어뜨렸고, 나중에는 콘크리트를 떨어뜨렸다. 결국 60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여 핵발전소 전체를 덮어서 석관을 만들었다. 당시 동원된 작업자들은 3년동안 100mSv(밀리시버트)라는 엄청난 양의 피폭을 당했다.

27년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노후되어 방사능을 막아내지 못하는 체르노빌 덮개 위에 새로 덮을 깨끗한 덮개를 만들고있다.



현재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체르노빌 방식으로 덮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은 나중에 '녹아버린 핵연료'를 모두 안전하게 꺼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가능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 오염수문제

사고가 발생한 후 2년 6개월 동안 일본은 후쿠시마에서 오염수는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해왔으나 2013년 6월 경에 후쿠시마에서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일본은 하루에 약 300톤 정도의 오염수가 태평양에 들어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세 개의 원자로에 노심용융과 멜트스루가 일어났다. 녹아내린 노심을 식히기 위해서는 물을 지속적으로 부어야 하고, 이 물은 전체가 회수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원전 근처를 흐르고 있던 지하수 또한 녹아버린 핵연료와 접속하게 되어 고농도로 오염되고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을 완전히 둘러싸는 냉동방벽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으나 효과를 발휘하려면 사고 원전 주변 뿐 아니라 원전의 아래쪽까지 막아야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체르노빌 당시에는 원전의 아래쪽으로 굴을 파 들어가서 콘크리트로 원전의 아래쪽을 막았다고 한다.


◆ 사체 수습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 및 실종자 수가 거의 2만 명에 육박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20킬로미터 이내 지역의  시신 수습에 비상이 걸렸다. 사고 난 지 두 달 정도 지나서야 겨우 사체 수습을 하러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수습은 2011년 11월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2011년 3월 11일에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여름이 다 지나고 11월이 되어서야 수습을 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 사고의 규모

일본정부는 핵사고 일어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후쿠시마 핵사고가 체르노빌보다 작은 규모라고 주장했으나 2011년 5월이 되어서야 겨우 5등급으로 인정하더니 7월에는 체르노빌과 같은 7등급이라고 인정하였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사고의 규모는 체르노빌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체르노빌은 원자로 한 개가 폭발한 사고이다. 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준위핵폐기물도 없었다. 반면에 후쿠시마는 원자로만 해도 세 개의 노심이 완전히 녹아내려갔다. 또한 손상된 핵연료의 양으로 비교하면 후쿠시마의 사고 규모는 체르노빌의 7배 정도 되는 것은 틀림없다.



핵사고의 원인과 국내외 원자력발전 현황

◆ 핵사고의 원인

핵발전소의 국가별 개수를 살펴보면, 핵사고가 발생한 미국, 소련, 일본에는 핵발저소 개수가 모두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핵사고는 앞으로도 확률대로 일어날 것이다. 즉, 다음 핵 사고 역시 원전 개수가 많은 나라에서 일어날 것이다.



핵사고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되는 다른 요인은 바로 노후 원전이다.

후쿠시마에는 총 10개의 원전이 일렬 횡대로 늘어서 있었다. 지진과 쓰나미의 충격은 거의 같았을 터인데, 이중에서 1,2,3,4 호기만 사고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히 30년이 넘은 원전은 모두 폭발하였고, 30년이 되지 않은 원전은 하나도 폭발하지 않았다. 


원전도 사실 부품 수가 200만~300만 개가 되는 기계이다. 특별한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 만든 보통 기계일 뿐이다. 원전 역시 지속적으로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원전 고장 및 사고 횟수는 670회가 넘는다. 


◆ 한국 원전의 현황

정부는 앞으로 11년 후인 2024년이 되면 총 42개의 원전을 운영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총 42개로서 현재 32개의 원전을 운영중인 러시아보다 10개가 더 많아지며, 정부가 텔레비전에 광고한 대로 세계 3위의 원자력 대국이 될 것이다. 이는 핵사고 확률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땅 넓이에 대비하여 가장 많은 원전을 가지고 있는 원전밀집도 1위 국가이다. 그만큼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의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핵 사고 이후 외국의 정책 변화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타이완 등의 나라들이 탈핵을 결정했으며 중국의 경우 후쿠시마 이후 1년 동안 원전 건설을 잠정적으로 중단하였다.

영국은 신규 원전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러시아는 핵사고 이후 수명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한국은 아직 원전을 계속해서 짓고 있다. 점점 우리나라는 핵사고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유난히 원전비리가 많다. 불량품, 중고품, 검증서 위조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부품 등이 납품되었다. 그리고 한국수력원자력 전임 사장, 지식경제부 차관과 장관까지 비리에 연루되었다. 이런 비리는 핵사고의 확률을 특별히 더 높인다.





▼ 원자력발전이 과연 저렴한가?

정부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면서 내놓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렴한 발전단가이다.



하지만 필자는 정부가 발표한 원전의 발전단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원전의 발전단가가 어떻게 계산되었는지 공개된 적이 없다.

그동안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 쪽에서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정부는 제시한 적이 없다.

2) 2011년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원자력의 발전 단가에서 중요한 비용인 사고 발생 위험 비용, 원전해체 및 환경복구 비용, 그리고 사용후핵연료 처분 비용등이 제대로 산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 방사능과 건강, 그리고 피폭경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에서 핵물질은 약 10킬로그램 정도 사용되었지만, 핵발전소에서 사용되는 핵물질은 약 100톤에 가까이 된다. 핵발전소가 사고가 일어나면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주변 환경으로 퍼지게 된다. 이 방사능은 여러 경로로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오게 되며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 

방사능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인체에서 발생할 수 잇는 모든 질병 발생이 가능하다.


자주 발생하는 질병들은 암, 유전병, 심장병의 3대 질환이다. 유전병은 붙임, 유산, 선천성 기형, 지능 저하 등의 생식 계통의 질환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백내장, 신장병, 폐질환, 폐렴, 중추신경계 질환 등이 흔히 발생하는 병으로 알려져있다.


◆ 피폭 경로

1) 외부피폭

- 방사능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지 않고 방사선만 우리 몸을 통과하는 것이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핵사고 당시 많은 양의 방사능이 주변으로 퍼졌는데 이를 직접 목격하거나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피폭되는 경로이다. 박사능에 오염된 땅 위에서 사람이 생활하면 오염된 땅에서 나오는 방사능에 의해서 필폭이 된다.

2)내부피폭

- 방사능에 오염된 비를 맞을 경우 피부에 묻은 방사능 물질 중 일부는 피부를 통해서 흡수된다.

3)호흡기를 통한 피폭

- 공기 중에 방사능 물질이 섞여 있는데, 호흡을 통해서 이 물질들이 우리 몸에 들어오고, 폐를 통해 흡수가 된다면 방사능 물질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4) 음식을 통한 내부피폭

- 가장 중요한 피폭 경로인데, 방사능 물질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으면 이 음식 속에 들어 있는 방사능 물질이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핵사고에 의해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들은 약 200여종인데, 이들 방사능 물질이 어떤 경로로든지 음식을 오염시키면, 이 음식을 통하여 인체가 피폭된다.




▼ 영원한 숙제, 핵폐기물

핵발전을 하면 핵폐기물들이 양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준위핵폐기물과 중저준위핵폐기물이라는 두 가지로만 분류하고 있는데 고준위핵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만을 일컫는다.


핵반응로(원자로)에는 핵연료가 장전되어 있다. 약 3.5미터 정도 길이의 핵연료봉 안에 분필조각처럼 생긴 우라늄 펠릿이 들어있다. 핵연료가 한 번 장착되면 약 4년 반 동안 핵반응을 일으키고 이 때 발생하는 열로 물을 끓이고 이때 발생한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것이 핵발전의 원리이다.


1년 반 만에 원자로 내의 핵연료 중 1/3을 교체하게 되는데, 핵연료 입장에서는 한 번 원자로에 들어가면 4년 반 후에 나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핵반응을 끝내고 원자로 밖에 나온 핵연료는 아직도 핵반응이 완전히 멈춘 것이 아니라서 엄청난 양의 열을 내뿜는다. 따라서 이를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라고 불리는 물통에 집어 넣어 찬물을 순환시켜야 하는데 그 기간은 최소 10년 이상 길게는 수십년이 걸린다.

그리고 이렇게 다 식은 핵연료는 적어도 10만년 이상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 고준위 핵폐기장

충분히 식힌 고준위핵폐기물은 10만년 이상 100만년까지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아직 인간이 이렇게 10만년 이상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고준위핵페기장을 건설중인 핀란드에서는 세계의 저명한 언어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모여서 십만 년 후의 인류에게 '이곳이 고준위핵폐기물을 저장한 곳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표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한다고 한다. 10만년 후에 인간 언어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림으로 설명을 해야할 것이라고 한느데, 이 그림은 또 어떤 방법으로 10만년 동안 표시할 것인지 알 수 없다.


국내의 경우

월성원전을 제외한 우리나의 모든 원전은 가압형 경수로이다. 영광, 울진, 고리 등지의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은 모두 발전소 내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 보관하고 있다.

이 수조는 더 이상의 공간이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해야 하지만 아직 기술이 없으니 임시저장소를 늘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사업은 다시 말해서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소를 짓기 위한 사업이라고 보면 된다.




▲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



▲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 수조의 물이 푸른색을 띠는 것은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붕소 등의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이미지는 책의 내용과 상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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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선생이다> 라는 소중한 책을 만났다. 

지난해인 2013년에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던 책이다 .그만큼 내용면에서는 여러 독자들에 의해 증명이 된 셈이다. 작년 말에 구매하고 조금씩 한 편 한 편 읽다가 덮어두었었는데 다시 읽고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그 끌림이 처음에 접했을 때 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 끌림은 바로 글 속에서 보이는 '통찰력'이다. 내가 원하는 글쓰기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사회적, 역사적사건과 이슈가 연결되는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일상 속을 파헤치는 통찰력있는 글쓰기' 이다.

저자인 문학평론가인 고려대 불문과 교수인 황현산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소함에서 그 의미를 발견해낸다. 하지만 이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쓴소리도 아낌이 없다.


용산참사, 4대강 개발, 강정해군기지 건설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과 일제 강점기 및 군사독재 시절의 아픈 기억 속에서 잊지말아야 할 점들에 대해서 넌지시 우리에게 알려준다. 

또한, 문학평론가이기에 시, 소설 등과 같은 예술에 대해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언어'에 대한 깊은 관심도 보여준다.


<밤은 선생이다.>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동시에 나로서는 가늠하기 힘든 깊은 성찰이 글 속에서 베어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소주제인 [협객은 날아가고 벼는 익는다]에는 '늙은 농부는 벼 크는 소리가 들린다는데, 그러고 보면 농부야말로 눈먼 무사 따위에 비할 수 없는 강호의 협객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야 말로 마치 강호의 협객처럼 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쓰는 소재와 구성의 다양함은 물론 짧은 글 임에도 불구하고 길고도 강한 여운을 남겨준다.


많은 글귀에 별표와 네모 상자를 해두고 줄을 그었다. 그 중에 의미있게 다가온 몇 구절을 적어본다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가름된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귀를 만날 때면 내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된다.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는 어구는 그야말로 내 가슴을 후벼파는 기분이었다. 평생 한 번 살기에 의미가 있는 우리의 삶에서 세상과 사람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동시에 사소한 관심과 경험을 소중히하는 것에서 그 무관심을 극복하며 삶을 풍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에게 질문해본다. '내가 지닌 현재의 폭은 얼마나 넓은가?' 

대답하기 어렵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조금씩 더 삶을 알아가면서 사소함에서 그 의미를 찾고 조금씩  현재의 폭을 넓히고 싶을 뿐이다. 현재의 폭이 넓어지면 언젠가는 통찰력 또한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폭력에 대한 관심> p115

이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을 일반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쳐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스는 것이 폭력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160킬로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윤리는 기억이다> p204

시는 기억술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 시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왕성했던 생명과 순결했던 마은을, 좌절과 패배와 분노의 감정을, 마음이 고양된 순간에 품었던 희망을, 내내 기억하고 현재의 순간에 용솟음쳐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 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


<당신의 사소한 사정> p176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잇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고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밀한 시간> p280

"핸드폰을 24시간 들고 다닌다는 것은 누가 자기를 부르든 24시간 대기하고 있겠다는 말이 아닌가. 옛날 노비의 신분이었던 사람들이야 주인이 부르면 지체없이 달려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대기를 해야 하는 팔자였지만, 이 민주주의 시대에 자진해서 노비가 되려 하다니 이해할 수 없구나."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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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들을 보면 보통 가장자리 위 아래쪽이 접혀 있다.

접혀있는 부분이 많고 적음에 따라 내가 몇 번에 걸쳐서 그 책들을 읽어내려갔는지 알 수가 있다.

책의 아랫 부분은 책을 읽다가 중간에 멈추고 다음에 읽어야 할 때 접어둔다. 여기까지 읽었다는 표식이다.

반대로 윗부분은 읽다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해 접은 부분이다. 보통은 연필이나 볼펜으로 표시를 해두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 표시해두는 방법이다.


<롤리타>의 경우에는 아랫 부분이 여러 군데 접혀 있다. 길게는 100여 페이지에서 짧게는 2,3장에 이르기까지 접혀있는 폭도 가지각색이다. 이 의미는 읽는데 어떤 상황때문에 계속 끊겼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아주 조금 시간이 있어도 그것을 읽기 위해 책을 펼쳤다는 표시이다.


문학동네에서 내놓은 <롤리타>는 작년 초부터 읽기를 망설였던 책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눈에는 자주 띄었지만 왠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아마 눈에 잘 띈 것은 책 표지 디자인부터 눈길을 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표지는 문학동네에서 네이버를 통해 해당 표지 이벤트를 진행해서 선정된 것으로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제목과 '한 남자와 소녀와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짐작하고 있던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처음에 어느 정도 읽어내려갔는데 불편했다. 최근에 국내에서도 자주 불거지는 아동성폭력에 대한 뉴스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고 머릿속에 잠시 박범신의 <은교>도 스쳐 지나갔다.

과연 문학은 어떤 소재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재의 제약이 없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해보았다. 


이런 논란은 책이 출간될 때 부터 불거졌다. 1955년 유럽과 미국에서는 <롤리타>에 대해서 '판매금지'조치가 이루어졌고 송아성애자의 판타지를 그린 포르노그래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불과 3년 후인 1958년 뉴욕에서 출간되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영어소설로 꼽힐 정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타임, 르몽드, 모던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소설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게 되었다.


<롤리타>가 이런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은 내용보다는 글 속에 표현되는 은유와 비유의 향연 속에 빠지는 매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자극적인 소재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은유와 상징 속에서 헤매는 내 모습이었다. 헤맸다는 것은 우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심리와 자극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경외감과 함께 때로는 너무나 많은 은유, 비유, 상징 속에서 지쳐 짧고 사실적인 표현이 있는 글들을 읽고 쉽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롤리타>는 처음 문장부터 아주 훌륭하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읽은 글들 중에서 가장 멋진 도입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이런 책은 정말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으나 내 영어실력이 아쉬울 뿐이다. 나중에 한 번은 사전을 찾아보고 한 번쯤 시도는 해보고 싶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롤리타>를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이 난 것이 있다.
위에도 이미 이야기했지만, 소재의 자유로움 속에서 느껴지는 다소의 불편함과 은유와 상징으로 언어의 무한함을 느끼게 해주는 표현력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예술작품에 대해 내려지는 심의에 관해서이다.


이미 앞의 두 사항에 대해서는 설명했고 심의에 관련된 내용은 <롤리타>와는 어쩌면 다소 연관성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읽는 내내 심의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떠올랐다.


작년에 읽은 책 중에 만화책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보지 말아야 할 성애장면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2013년 7월 25일에 간행물윤리 심의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로 결정되었다.


여기서 성애장면이라는 것은 아주 일부 나와있으며 내용의 전개상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최근에 TV에 등장하는 걸그룹들보다 덜 야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들이 자살한 아버지를 대신해 고백해내는 아버지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삶은 스페인내전을 겪고 아나키스트로서 삶을 살고자 했으나 결국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살게되는 개인의 삶이자 역사를 보여주는 이 만화를 단지 몇 장면에 불과한 것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낙인찍어버렸다. 결국 나중에 심의에 통과했으나 다른 훌륭한 문학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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