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교수의 책으로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을 읽고 나서, 이번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게 되었다.
서로 다른 세 책은 저자의 하나의 생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사실 중복이 되는 내용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또한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강조하고 싶은 것을 제시하고 나서, 관련된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살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번 책은 제목 그대로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 대해서 논하는 책인데 주제 자체가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것이기에 실제로 어떻게 하면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갈증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번 쯤 지금 사는 삶을 관심있게 살펴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나 역시 그동안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이 내가 걷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 확인해보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기 위한 생각과 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수 없이 다짐하고, 아침마다 앞으로의 길을 상기시키고,
이렇게 틈이 날때 마다 글을 반복적으로 남기면서 그 전환점에 다가가기를 희망한다.
#1. 나는 나를 장례지냈다.
장자의 제물론 편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승 남백자기에게 안성자유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안성자유가 어느 날 자기 스승을 보니 앉은뱅이 책상에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예전과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선생님 모습이 예전과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다르냐고 스승이 물으니, 제자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모습이 꼭 실연당한 사람 같습니다."
우리가 실연을 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일단 어깨가 축 쳐지죠. 짝을 잃은 사람은 불 꺼진 재나 마른 나무처럼 풀기가 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다 타고난 재는 불이 꺼진 후 겨우 형태만 남아 있다가 손만 대면 으스러지지요. 안성자유가 봤을 때 예전의 스승은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온전한 자기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까 실연당한 살마처럼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려 있었던 것이지요. 이 말에 스승 남백자기가 제자를 칭찬하면서 말합니다.
"안성자유야, 너 참 똑똑해졌구나,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그러고는 분명한 어조로 결론을 맺듯이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를 장례지냈다.
'나는 나를 장례지냈다' 라고 합니다.
스승은 그 동안의 자신의 모습을 장례 지냅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육체를 포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바로,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 삶의 자세, 정신적인 측면에서 과거와 단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언가 잘못된 삶의 자세를 조금씩 고쳐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새로 태어나듯이, 마치 빅뱅이 일어나듯이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조금씩 개선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게으름과 간절함의 부족 때문인지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장자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 역시 스스로 장례를 지내야 했습니다.
어쩌면 스승 백남자기 처럼 완전하게 스스로를 죽이지는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분명한 느낌은 받았습니다. 분명 이전과는 달라질 겁니다.
서른 여섯 살의 이 날은 분명 제 삶의 중요한 한 지점이 될 것입니다.
#2.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한 인간으로 잘 살고 있는지, 독립적 주체로 제대로 서 있는지, 누군가의 대행자가 아니라 '나'로 살고 있는지,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는지,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높이에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 확인하면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꿈이 없는 삶은 빈껍데기입니다.
일상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일상에 매몰되는 순간, 생각이 멈춰버립니다.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생각에 대한 생각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생각에 대한 생각'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조금 더 효율적일 수 있는지?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내 삶과 내 가족과 타인들의 삶에 영향이 어떻게 미치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생각을 할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입니다.
그 생각 중에서 몇 가지 질문을 우선 순위로 두고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 될 거 같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이 두 질문을 글로 적고 있는데 가슴이 너무나도 두근거립니다.
평범한 두 질문일지 모르지만, 분명 이 질문을 매일매일 곱씹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제 조금 더 저와의 대화 시간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이 변환점의 시기라는 게 계속해서 느껴집니다.
이 가슴 뛰는 시기를 절대 아깝게 놓치지는 않겠습니다.
P242
장자의 제물론 편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노옵니다.
스승 남백자기에게 안성자유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안성자유가 어느 날 자기 스승을 보니 앚은뱅이 책상에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예전과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선생님 모습이 예전과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다르냐고 스승이 물으니, 제자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모습이 꼭 실연당한 사람 같습니다."
우리가 실연을 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일단 어깨가 축 처지죠. 짝을 잃은 사람은 불 꺼진 재나 마른 나무처럼 풀기가 없이 무너져내립니다. 다 타고난 재는 불이 꺼진 후 겨우 형태만 남아 있다가 손만 대면 으스러지지요. 안성자유가 봤을 때 예전의 스승은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온전한 자기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까 실연당한 살마처럼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려 있었던 것이지요. 이 말에 스승 남백자기가 제자를 칭찬하면서 말합니다.
"안성자유야, 너 참 똑똑해졌구나.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그러고는 분명한 어조로 결론을 맺듯이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를 장례 지냈다.
P67
자기가 처한 조건 속에서 일상의 잡다함이나 자질 구레함 속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결정하고 지배할 더 높고 큰 단계에서의 결정을 감행할 수 있는 높이가 바로 철학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73
전략적인 사고란 이미 만들어진 판 안에서 다른 것들에 대응하는 형태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판 자체를 새로 짜는 일이죠. 판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판을 새로 짜는 일에 대한 사고가 바로 전략적인 사고입니다. 전략적으로 형성된 판 안에서 다른 여러 가지 종속적인 변수들을 다루면서 하는 행동들을 전솔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킬 것이냐 말 것이냐, 전쟁을 일으켜서 국제 질서나 주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새로운 구도로 끌고 갈것이냐를 생각한다면 전략적인 사고일 테고, 전쟁이 벌어진 상황 안에서 상대방에 어떻게 대응하며 어떻게 공격할 것이냐, 어떻게 방어할 것이냐 혹은 병력을 어떻게 전개시킬 것이냐 하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이는 전술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술은 전략의 제약 속에서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전술이 전략 보다 높거나 넓을 수는 없습니다. 전술가가 전략가를 이길 수는 없죠. 대개의 전술가들은 전략가들이 펼쳐놓은 판 위에서 놀 뿐 입니다. 따라서 전술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으면 자신이 전략가의 손바닥 안에서 있을 뿐이라는 사실조차도 알아채기 힘들어져버립니다.
P76
철학적인 높이로 상승한 단계의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바로 전면적인 부정을 이야기합니다. 전면적인 부정은 새로운 생성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생성이라는 것은 바로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하지 못하는 한 항상 종속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종속적인 삶을 사는 한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스스로의 삶을 꾸리거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효과적으로 관리해나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P93
"[장자]를 감명 깊게 읽었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장자]에 감명을 받고 나서 기껏 한다는 생각이 장자처럼 살아보는 일인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장자는 절대 누구처럼 산 사람이 아니네."
P92
문제는 그들이 사용했던 시선의 높이에 동참하는 능력을 배양해서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철학이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삶의 겪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철학이지, 철학적으로 해결된 문제의 결과들을 답습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특히 철학 수입국인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예민한 경각심을 가지고 숙고해야할 주제입니다.
P121
무엇인가 새로 만들면서 이루는 일정한 범위를 '장르'라고 합니다. 선진국은 바로 이 '장르'를 만듭니다. 저는 어떤 나라가 문화적인가 아닌가 하는 점은 바로 장르를 만들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한다고 봅니다. 장르를 만드는 나라는 문화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장르를 만들지 못하고 수입하는 나라는 아직 문화적이지 않습니다. 장르를 만들면 그 장르가 새로운 산업이 되어서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고, 경제적인 성취가 힘을 형성하여 앞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르-선도력-선진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장르를 개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꿈' 입니다. 고유한 장르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그 사회의 선진성 여부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각자 개인들은 꿈이 있느냐 없느냐로 독립적이냐 아니냐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고유한 자신으로 고품격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고 싶다면 바로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꿈이 있는 사람은 선도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꿈이 없는 살마은 종속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또 물어보십시오. "나에게는 어떤 꿈이 있는가?"
ㅇㄹ
P125
대답에서는 지식이나 이론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뱉어내는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원래 모습'은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과거입니다. 그래서 대답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주로 과거를 따지는 일에 더 몰두합니다. 또 '원래 모습'을 중시하다 보니 그것을 강력한 기준으로 사용하여, 그 '원래 모습'에 맞으면 참으로 분류하고 맞지 않으면 거짓으로 분류합니다. 당연히 진위가 가장 중요해지지요. 그래서 질문보다 대답을 위주로 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논의가 주로 과거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어버리거나 진위 논쟁으로 빠져버립니다.
하지만 질문은 이와 다릅니다. 질문이 일어나려면 우선 궁금증과 호기심이 작동해야만 합니다.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지요. 자신에게만 있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 이것을 질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합니다.
P153
철학은 이미 있는 철학적 지식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적 이론이 생산될 때 사용되었던 그 높이의 시선에 함께 서보는 일입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고도의 지성적 시선으로 사유 활동을 한다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해놓은 철학적 사유 활동의 결과들을 단순히 습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배우는 이유는 단지 그 과정을 통해서 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존재하는 철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철학으로 아른 것은 마치 박물고나에 가서 유물들 하나하나를 보고 감탄하는 것에 멈추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지성적 수준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물들 하나하나를 보고 감탄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넘어서서 그 유물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인간의 동선, 문화적 흐름 등을 읽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죠.
P159
철학을 공부하는 일은 누군가의 전도사가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탈레스나 베이컨의 예에서 보았듯이 철학자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정해진 것들과 결별하는 독립적인 자세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철학은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일이고, 문명의 깃발이 되는 일이고, 인간에게 새 빛을 끌어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은 앞선 것을 숙지하는 일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구체적 현실로서의 시대라는 터전에서 독립적인 사유를 발동시킴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시선을 한 곳으로 고정해버리고 제한해버리는 확정적인 이론보다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시대의 구체성에 집중할 때, 시선은 비로소 앞을 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앞선 철학자들은 모두 다 이렇게 했습니다.
P171
사실상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 일의 가능성이나 불가능성을 분석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분석을 할 때 사용되는 논리나 근거는 어디서 온 것인가요? 지금 이미 있는 것들입니까? 아니면 지금은 없지만 다가올 것들입니까? 분명히 이미 있는 것들을 사용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미 있는 논리로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따지거나 분석하면 결과가 정확하게 나올까요? 현재의 틀로 미래를 재단하면 미래가 제대로 열릴까요? 그래서 꿈을 꾸는 사람이 현재의 문법에 갇혀 있으면 꿈은 항상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꿈꾸는 일을 차라리 멈춰버리는 얌전한 사람이 되어버리죠. 안전을 추구하기만 하고, 낙오되지 않으려고만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꿈은 불가능의 냄새가 더 강하게 나야 진정한 꿈일 가능성이 큽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꿈입니다. 가능해 보인느 것은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괜찮은 계획일 뿐입니다.
P173
어느 조직이든지 그 조직이 붕괴하기 전에는 공통의 조짐이 나타납니다. 바로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서 비판하고 평가하는 등의 비평만 하는 일이 점점 일상화 되는 것입니다. 바로 구성원들의 이탈 현상입니다. 구성원들이 참여자나 행위자로 혹은 책임자로 존재하지 않고 제3자처럼 존재합니다. 구성원들이 구경꾼으로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구성원들 가운데 점점 비평가와 분석가가 많아진다면 이는 매우 좋지 않은 조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에서든지 일류 비평가들과 일류 분석가들이 넘쳐납니다. 제3자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지요. 꿈과 자신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책임성 있는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평이나 분석에 빠지는 제3자적 태도로만 존재하는 삶은 주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데에는 취약하기 마련입니다.
P174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한 인간으로 잘 살고 있는지, 독립적 주체로 제대로 서 있는지, 누군가의 대행자가 아니라 '나'로 살고 있는지,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는지,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높이에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 확인하면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꿈이 없는 삶은 빈껍데기입니다.
P187
소피아라는 것은 로고스적인 지적 훈련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생각의 힘,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지요.
P191
'독립'은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불편해지면서 거기로부터 벗어나려고 용기를 발휘하여 얻은 선물입니다. 여기서 불편해진다는 것은 이미 있는 기존의 생각들이 더 이상 나의 삶이나 새로운 문명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과 회의가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철학적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고독을 자초하는 시도를 해야만 합니다.
P196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일들은 이렇게 등장합니다. 이는 독립적 의사 결정이기도 합니다. 창조란 새로운 흐름을 포착한 상태에서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하여 극한으로 몰입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기존 체제에 갇혀서 그 구조를 계속 반복하거나 재생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기존 체제 안에 새로움이 나타나도 그것을 새로움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죠.
P212
관찰을 유지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집요함이고 몰입입니다. 인생의 다양한 방면에서의 승패는 자신을 이 몰입의 단계까지 집요하게 끌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휘하여 진실하게 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집요한 관찰을 통해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몰입한다는 것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아주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음을 증명합니다.
P215
독립적 주체로 선다고 했을 때 그 독립은 강제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해야만 합니다. 고독도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즉 기존의 지식과 이론에 근거해서 대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낯설어지는 실험을 감행한다는 뜻입니다. 철학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P221
버드런트 러셀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지적 모험심은 어른보다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훨씬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고, 가상 놀이와 공상의 시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나이가 들면서 그것이 희귀해지는 까닭은 모든 교육 과정이 그것을 말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고는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것, 파괴적이고 가공할 만한 것이다. 사고는 특권과 기성제도와 편안한 습관을 무자비하게 다룬다. 사고는 무정부적이고 법률로 제어할 수 없으며 권위를 중시하지 않고 여러 세계를 거치면서 정교화된 지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고는 지옥을 들여다보고 지옥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사고는 인간을 깊이를 알 수 없는 침묵에 둘러싸여 있는 희미한 알갱이로 본다. 그러나 사고는 마치 자신이 만물의 영장인 듯이 확고하고 당당하게 처신한다. 사고는 거대하고 재빠르고 자유로우며, 세계를 비추는 빛이며, 인간의 가장 큰 자랑 거리다.
P224
나의 생각이 합리적인가 아닌가를 따진다고 할 때, 그 합리성을 증명하는 근거들은 이미 있는 것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의 합리성을 검증하려는 태도가 이미 있는 체제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게도 합니다. 왜 생각이 꼭 합리적이어야만 하나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 기존에 있는 모든 합리성으로부터 이탈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입니다. 왜 우리가 하는 생각들이 항상 합리성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나요?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가 날 수도 있고 거칠 수도 있습니다. 모가 나고 거친 그 길을 왜 가면 안 되는 것일까요? 왜 그 길이 내 길이면 안 되는 것인가요?
합리성에 집착하기보다는 꿈을 꾸십시오. 꿈은 언제나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미 있는 관점들로 명료하게 해석되어 합리적으로 보이거나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착실한 계획일 뿐이지요. 꿈은 생래적으로 거칠고 비합리적이며 돌출적입니다.
P225
탁월함을 추구하고 소피아를 추구하는 철학적 인간은 자신을 기존에 있는 것으로부터 격리시켜 고독하게 놓아둡니다. 그러면 그는 어느 순간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단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기존의 해석 방식을 수요하기보다 새로운 방식을 만들려는 용기를 발휘한다면 합리성 여부를 지나치게 따질 필요가 없겠죠. 그보다는 이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훨씬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상 어느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과하게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비합리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한테 등장하는 새로운 생각을 기존에 있는 합리적 조건 속에서 해석하려고만 하는 것은 너무 점잖 떠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제가 러셀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철학적 사고는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것, 파괴적이고 가공할 만한 것이라는 그의 웅변을 말입니다. 철학적 사고는 특권과 기성제도와 편안한 습관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차분한 균형 상태를 즐기기보다는 아주 불안한 불균형을 과감하게 맞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 불균형을 생산해야 합니다.
P238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일은 이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 들어야만 가능해집니다. 이것을 저는 '지적인 부지런함'이라고 표현합니다.
계속 강조하듯이 대답에만 빠지는 일도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품고 있는 지식과 이론을 요구에 따라 그냥 뱉어내기만 하는 일은 편하지요. 이에 비해 질문은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새로 등장하는 조짐이나 신호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로 즉각 반응하는 일도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좋다' 거나 '나쁘다'라는 판단은 이미 내면화된 가치관을 근거로 해서 거기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만 따지는 일입니다. 이때는 숙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미 있는 가치관이 등장하여 즉각적인 판단을 해주지 않습니까? 편리하지요. 하지만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편한 길을 애써 피하고, 그 조짐이 의미와 방향에 대해서 부단히 숙고합니다. 힘들고 불안하지요. 이 힘들고 불안한 내면을 극복하고 계속 질문을 해대는 일은 지적으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못합니다.
P242
장자의 제물론 편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노옵니다.
스승 남백자기에게 안성자유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안성자유가 어느 날 자기 스승을 보니 앚은뱅이 책상에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예전과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선생님 모습이 예전과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다르냐고 스승이 물으니, 제자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모습이 꼭 실연당한 사람 같습니다."
우리가 실연을 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일단 어깨가 축 처지죠. 짝을 잃은 사람은 불 꺼진 재나 마른 나무처럼 풀기가 없이 무너져내립니다. 다 타고난 재는 불이 꺼진 후 겨우 형태만 남아 있다가 손만 대면 으스러지지요. 안성자유가 봤을 때 예전의 스승은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온전한 자기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까 실연당한 살마처럼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려 있었던 것이지요. 이 말에 스승 남백자기가 제자를 칭찬하면서 말합니다.
"안성자유야, 너 참 똑똑해졌구나.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그러고는 분명한 어조로 결론을 맺듯이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를 장례 지냈다.
P248
'종속적 주체'와 '능동적 주체'를 말한 서양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떠오릅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근대 사회는 주로 종속적 주체들로 구성되었지만,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능동적 주체들로 구성된 삶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푸코는 근대적인 인간을 왜 종속적인 주체라고 했을까요? 여기서 먼저 '주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활동을 하거나 판단을 한 때 자기 자신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이때 자기가 주도적인 결정과 행동을 한다고 여기는 자의식이 있는 상태의 사람을 주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나라고 하는 자아의식이 보통은 자기로부터 생산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보편적인 생각을 각자 내면화해서 그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거든요. 우리는 자신이 활동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판단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주체이지만, 그 주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이 자신에 의해서 형성되지 않고 외부에 존재하는 보편적 의식을 내면화한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종속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속적 주체는 비록 주체는 주체이지만 아직 피지배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지요.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독립성을 갖춘 주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종속적 주체는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나 이념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이지,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독립적으로 건설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푸코는 이러한 종속적 주체성을 벗어나서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능동적 주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기만이 자신의 주인이 된 주체를 말합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판단과 행위가 모두 자기의 결정으로부터 나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주체, 이 사람이 능동적 주체입니다. 종속적 주체는 내면화된 이념이나 가치가 주인이 되어 있기에 그것들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해져서 대답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능동적 주체는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근본적인 토대인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능동적 주체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로 등장합니다.
P261
태연자약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태연자약에서 자약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로만 되어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태연은 아주 크고 넓고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태연한 사람은 자약하고, 자약한 사람은 아주 태연하지요. 태연자약은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자신만의 흐름이나 결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모습입니다. 태연자약한 후타바야마의 '기세 없는 기세'에 눌려서 상대가 자멸하는 것이나, 나무 닭의 '온전한 덕'에 눌려 다른 닭들이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도망가버리는 것은 매우 닮아 있습니다.
P271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선례'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것이 큰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선례가 없거나 지시 내용이 없으면 무엇인가를 자발적으로 하는 힘이 약해져버렸습니다. 저도 직장에서 무슨 일을 시도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선례'와 '형평성' 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놈의 '선례'와 '형평성'만 찾다가 모두 함께 말라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선례를 찾기만 하지 선례를 세우려는 도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면 자기는 기존 논리를 넘어서서 창조하고 기존 논리를 압도하는 사람으로 서지 못하고, 계속 분석하고 비판하고 해석하는 사람으로만 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술 영역에서도 비판과 해석만이 넘치고 창의적 도전이 취약한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P298
행위 다음의 절차를 궁금해하기보다는 직접 무엇인가를 하십시오. 실행하지 않고 궁리만 하다가는 어느 순간, 저 멀리 뒤처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P302
혁명이 완수되지 못하는 이유는 혁명을 하려는 사람이 먼저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즉 혁명을 하려는 사람이 먼저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 그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성숙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입니다.
P309
순자 - 권학 편에 나오는 글을 보겠습니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나고
선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바람과 비는 거기에서 저절로 생겨납니다. 우리는 그져 흙을 쌓아 산을 이루기만 하면 됩니다. 많이 쌓으면 큰 산을 이루고, 적게 쌓으면 작은 산을 이룹니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는 일은 하지 않고 비와 바람을 얻기만 기대하면 안 되지요.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마치 행운이나 선물처럼 비와 바람이 거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람과 비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저 흙을 쌓고 산을 이루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한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선물이나 행운처럼 물고기들이 생겨납니다. 이렇듯 탁월함을 추구하고 덕을 이루면 마치 행운이나 선물처럼 신명한 통찰력이 생기고 성인의 마음이 따라서 갖춰지게 되지요. 우리가 학문을 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일을 진실하고도 성실하게 해나가면 통찰력이나 성인 수준의 마음을 갖는 행운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中
예전부터 책을 읽어오면서 제가 가지고 싶은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통찰력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통찰력은 무슨 사건이 발생하거나,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뒤에 숨어 있는 배경이나 현상들을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주관적 근거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부터 가지고 싶은 게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통찰력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바로 '예술적인', '문화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문학과 글을 찾아서 읽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하고, 누군가의 그림에 감탄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시선과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힘, 감동할 줄 아는 감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을 하나만 더 보태겠습니다. '철학적인' 사람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변함 없어보이는 일상 속에서 다름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이 아닌 생각의 기준으로 새롭게 정의를 할 수 있는 사람,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해결해야 할 일들이 생겼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려고 합니다. 당연히 쉽지 않겠죠.
다른 사람들이 가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고되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계단은 넘어가야 합니다. 아마도 계단을 딛고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히 다를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천이라는 유명세에 힘입어, 그에 맞춘 마케팅의 결과로 한 동안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를 점유하고 있는 책이 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KBS제작팀이 구성한 『명견만리』라는 책이다. 책을 덮고 있는 띠지 치고는 조금 두꺼운 곳에 문재인 대통령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개인도 국가도 만 리까지는 아니어도 10년, 20년, 30년은 내다보며 세상의 변화에 대비할 때입니다.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공감하기 위해 일독을 권합니다." - 문재인 대통령
어떻게 보면 매년 초에 등장하는 '올 해에 주목해야할 ○○' 같은 책 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예전에 KBS에서 해당 기획을 다룰 때 몇 번 관심있게 본 기억이 있었고, 이번 구성이 최근에 한 번쯤은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할 것들을 한 번쯤 상기시키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한 권씩 찾아서 읽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항상 기대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잘 정리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모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전달하는 부분이 있는가, 앞으로의 내 삶에 적용해 볼 만한 것들이 있는가, 종합적 사고력, 통찰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 등이다.
그래서 오늘 리뷰에서는 책의 목차를 바탕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내 삶에 한 부분으로 체화시켜야할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려 한다.
[1부 - 정치]
지난 겨울 역사적인 촛불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계속되었다. 그 역사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을 향했다. 한 번 밖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 때는 나름의 생각과 소신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한 번이라도 가지 않았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내가 만약 80년대 광주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는데, 작금의 시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가수 전인권의 '행진'을 외치며 걸어가던 사람들의 모습은 눈에 선명하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서두르지 않는 선진국들의 모습에서는 분명 배울 점이 있다. 정치인들의 임기 내에 공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때문에, 국회의권 재선을 위해 다음 선거 전에 무언가라도 하나는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 때문에 우리는 항상 정책의 지속성이 떨어진다. 장기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장기적인 시선으로 가져가야한다.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어떤 방향을 향하는지가 중요한 법이다. 삶에서도 평생의 계획이 있고, 올 해의 계획이 있고, 더 잘게 쪼개 오늘의 계획이 있게 된다. 평생의 계획을 위해서 해야할 것들에 대해서는 방향을 항상 점검해가며 잘게 쪼개진 계획들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위해 부가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을 챙겨야 할 것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건강, 만족감을 얻는 취미생활, 아이들의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가정교육 측면에서의 일관성 등이 지금 내가 방향을 잡아야하는 장기적인 관점이 아닐까
1장. 당신은 합의의 기술을 가졌는가?
-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갈등비용, 우리는 선과 악의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매년 국민투포는 네 차례, 지자체 주민투표는 20여 차례나 실시하는 스위스, 심지어 2027년에 결정될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해 2015년부터 12년 동안 매년 50회씩 토론회를 연다. 다수의 힘으로 미래를 바꾸기 위한 합의의 기술. 업청난 규모의 갈등비용을 치르지 않으려면 이 기술을 배워야 한다.
2장. 이제 정치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예측하지 마라
- 계몽과 대의의 시대를 넘어, 무섭게 폭발하는 참여의 열망
→ 패권주의와 인종차별을 내세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젊은이들의 미래를 뺏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영국 브렉시트, 과연 시민이 어리석은 것일까. 그러나 부패한 절대권력인 대통령을 평화롭게 시위로 끌어내린 것도 결국은 시민의 힘. 세계 곳곳에서 점점 강렬해지는 정치 참여의 열망. 기성 정치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도래하고 있다.
[2부 - 생애]
나는 직장인이다. 지금 내가 회사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잠깐 생각해본다. 주요 보직장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나이는 주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다. 40대들이 업무를 리딩한다. 그리고 50대 후반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60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부장님들의 자녀들은 아직도 중학생, 고등학생인 경우도 있다. 때로는 초등학생 이하인 경우도 있다. 만약 퇴직을 해야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지금 아이들을 키우는 30대 중반의 입장에서 15년,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해보니 벌써부터 갑갑하고 초조하다.
금전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다. 나는 평생 동안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만족감과 사회에 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이 어쩌면 나이가 들어갈 수록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이 나는 부분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부분은 분명히 기억하려고 한다. 앞으로 나에게 발생할 일들이 나도 모르게 갑자기 내 삶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대비없이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가족의 삶을 지킬 수 있는 것,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은 멈추지 않아야 겠다.
3장. 120세 쇼크, 새로운 생애지도가 필요하다
- 서드에이지, 제3섹터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생애기
→ 100명 중 40명이 100세 이상 사는 삶을 축복이 아니라고 답했다. 100명 중 60명은 80~89세까지만 살고 싶다고 답할 정도다. 그러나 이미 일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연령대가 92세를 돌파한 지금. 120세 시대는 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생애주기를 유년기, 성인기, 노년기로 나눌 것이 아니라 4등분하라.
4장. 셀프부양 시대, 우리는 준비할 수 있는가
-한국형 복지국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여든의 할아버지, 장애 아이들을 가르치는 체육 선생님도 할아버지. 이 동네에 사는 대학생들은 어르신들에게서 반찬을 얻어가는 게 일상,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 '셀프부양' 시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3부 - 직업]
덕후의 힘을 믿는다. 덕후라는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해서 무언가 성과를 달성하는 사람'
최근에 『영어책 한 권 외워 봤니?』의 저자 김민식PD 가 어느 팟캐스트에 나왔었는데, 이 분은 PD라는 직업을 하면서 좋아하는 일에 대대해서는 정말 아주 깊게 파고든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책을 낼 정도까지 되는 것이다. 취미가 직업의 수준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하나의 분야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 직업을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른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자신과 맞는 부분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집중하고 무언가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을까. 나는 삶이 미적이었으면 좋겠다. 소설을 읽고, 시를 느낄 줄 알며, 좋은 음악을 찾아서 듣고, 아름다움을 그릴 줄도, 볼 줄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싶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 갈 수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이 있는가? 앞으로 조금 더 확장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가 있는지를 계속 파악하자.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내가 그것을 잡기 위해서 최소한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있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찾아보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겸손하되, 놓치지는 말아야 겠다.
5장. 자신이 경영하는 사업, 그 자부심을 넘치게
- 660만 골목사장의 인생을 바꾸지 않으면 성장은 없다.
→ 자영업업은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사장님'이라는 호칭 속에 담겨 있던 커다란 자부심. 하지만 '골목 사장님'으로 불리는 지금의 자영업자들은 어떠한가. '창업의 정신'이 사라진 나라는 언제나 파멸을 맞았다.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6장. 정답사회의 한계, 덕후들이 바꾼다.
- 정해진 일자리가 아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전혀 다른 선택
→ 수학은 못하는데 복잡한 컴퓨터 게임은 잘 만드는 사람. 종이비행기만 2만 번 접다 이색스포츠 컨설팅 회사를 차린 사람. 헬리콥터를 너무 좋아하다 세계 최고의 드론 회사를 만든 사람. 죽어라 공부해서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꿈꾸는 만큼 성장하는 직업을 갖는 시대로 가자.
[4부 - 탐구]
얼마 전 부터 서재에 있던 한 권 책을 다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생각의 탄생』 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생각의 도구는 '관찰','형상화','추상화','패턴인식','패턴형성','유추','몸으로 생각하기','감정이입','차원적사고','모형만들기','놀이','변형','통합' 이다. 나는 여기서 탐구를 생각이라고 간주한다. 지금 현재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본능이 아닐까. 그렇다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방법을 찾는 과정이 생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생각해보세요' 하면 그것보다 난해한 것이 또 없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어떻게 탐구해야 할까? 지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부터 시작해보자. 아니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좋다. 많은 방법으로 시도해보자. 위에서는 13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아는 것에 제한된다. 스스로 제한되지 않도록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배우라. 목적을 위해서 생각을 하고 생각을 위해 방법을 생각하고 방법을 배우기 위해 다른 것들을 찾아보자. 그렇게 하니씩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자. 그러면 되지 않을까.
7장. 호기심 격차 시대가 열렸다.
-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능력을 보호하라.
→ 그 대학의 연구실에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없다. 실험에 필요한 장비는 연구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손수 제작하여 사용한다. 이 모든 것이 단 하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능력, 호기심이다. 이 대학에서만 여섯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8장. 4차 산업혁명은 어떤 인재를 원하나
- 1에서 2가 아니라,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힘
→ 세계 최대 인터넷 화상통신 스카이프, 해외 송금 서비스의 혁신 트랜스퍼와이즈, 전 세계를 주름잡는 스타트업들이다. 이들이 탄생한 곳은 남한의 절반 크기에 , 서울 인구의 8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 한때 대부분의 집에 전화기도 없을 만큼 가난했던 이 나라가 어떻게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 가까이에 있는 것을 취해 그 근원까지 파악한다는 뜻으로, 가까이에 있는 사물이 학문의 근원이 되거나 또는 모든 일이 순조로워짐을 뜻하는 말
명찰추호(明察秋毫)
- 눈이 밝고 날카로워 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까지 빈틈없이 살핌을 비유한 말
알묘조장(揠苗助長)
- 전국시대 송나라 때 어떤 사람이, 벼이삭이 너무 더디게 자라는 것이 싫어서, 조금씩 손으로 이삭을 위로 당겨 놓고, 집에 가서 자랑스런 말로 "오늘 내가 벼가 자라도록 도와줬어!"라 큰 소리치는 것을 아들이 듣고 그곳에 가보니 벼이삭이 전부 죽어버렸다.
- 일을 급하게 이루려고 하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치다
배수거신(杯水車薪)
- 한 잔 물로 수레에 실린 나무에 붙은 불을 끄겠다는 것
-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하거나 감당하려한다는 것
맹자의 이 말은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심득, 즉 마음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일단 깨달은 바가 있어야 그것을 견지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진정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것을 실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자기 수련에는 갖가지 도전이 내포되어 있으며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학문에 대해 스스로 깨달은 후에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훌륭한 학생이 되기 위한 조건]
첫째, 높은 수준의 본보기를 찾을 것, 스승에게 기준을 낮춰달라고 요구하지 말 것
둘째, 온 마음을 기울여 공부할 것
셋째, 초심을 잃지 않을 것
넷째, 진심으로 가르침을 청할 것
"훌륭한 목수는 서툰 목수를 위해 먹줄을 바꾸거나 버리지 않고, 후예는 서툰 사수를 위해 활을 당기는 정도를 바꾸지 않는다. 군자가 다른 사람을 가르침은 마치 사수가 손으로 활을 팽팽히 잡아당기지만 화살은 쏘지 않은 채 생생하게 활을 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군자가 정도의 가운데 서 있으면 능력 있는 자가 그를 따라 배우기 마련이다."
[교육의 방법]
첫째,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사람을 교화하는 방법입니다. 학생이 어떤 쪽에 의문을 갖고 있는지 살펴서 시간과 장소와 사례에 맞게 가르치는 것이지요.
둘째, 덕을 이루어주는 방법입니다.
셋째, 재능을 끝까지 길러주는 방법입니다.
넷째, 물음에 답해주는 방법입니다.
다섯째, 여운을 남겨 스스로 느끼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논어』 「술이」 에서 공자는 "마음속으로 애태우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고, 애써 더듬거리며 말하지 않으면 틔워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가르쳐주고, 어떻게든 말로 표현하려고 해야 깨우쳐준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깨우쳐주길 바란다면 먼저 자기가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해하고는 싶은데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고는 싶은 말하지 못할 때, 그때 깨우쳐줘야 가장 효과적입니다. '때맞춰 내리는 비'는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학생 역시 스승의 가르침에 호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 맹자 교양 강의 中, 푸페이룽 지음/돌베개 -
# 돌베개 출판사에서 출간된 『맹자 교양 강의』를 읽고 있습니다. 추천사를 보면 故신영복 선생님의 글귀가 눈에 띄네요. 이 책이 무엇보다 신뢰가 가는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이 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라는 책 이후에 출판사에서 후속 기획으로 만든 책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초반 부를 읽고 있는데 다른 고전 책들 보다는 확실하게 읽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가슴으로 와 닿는게 쉬운만큼 적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앞 부분을 읽고 있는데 벌써부터 느낌이 좋습니다. 우선 좋은 글귀가 있어서 먼저 이렇게 남깁니다.
교육에 대해서 논하는 장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조금 발췌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저는 맹자가 말하는 훌륭한 스승이자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언제나 사람은 스승이자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첫번째는 실력, 즉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역량,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행동과 말의 일치이자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력과 인성이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당연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제가 누군가의 제자가 된다면 그때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우선 높은 수준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누군가에게 배운다기 보다는 내가 그 배움을 토대로 스스로 무언가를 해 나간다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스승의 장점은 그대로 수용하고, 스승에게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 부분을 내가 채울 수 있는지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운이 좋아 본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 행운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은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보지는 못했기에 부족하지만 그런 기회를 한 번쯤은 만나 보기를 희망합니다.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런 관계였으면 더 좋겠네요.
중국작가 위화의 책을 찾았습니다.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책이 있더군요. 제목은 『살아간다는 것은』 입니다. 한 참 동안 의자에 앉아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겁니다.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데, 분명히 내가 들어본 내용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서재에 꽂혀 있는 위화의 『인생』이라는 책을 꺼내서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중고서점에서 새롭게 찾은 『살아간다는 것은』은 『인생』과 같은 책이었습니다. 처음에 『살아간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인생』으로 제목을 바꾸어 출간되었네요.
소설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한 번 읽으면 다시 읽지 않는 편 인데 이런 우연이 찾아왔으니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그 소설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예전에 읽은 기억들이 저 깊은 내면의 서랍 속에서 고개를 듭니다. 복귀라는 노인의 일생을 다룬 내용인데, 그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소설 속의 내용 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소설 속의 간단한 내용은 예전에 적어둔 『인생』의 감상평(http://zorbanoverman.tistory.com/472)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 일상에 맞추어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 때는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가 힘듭니다. 예전부터 무언가를 진지하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마다 그런 방법은 다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조용히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깊이 생각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민이 있거나, 생각이 깊어지거나, 한 동안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지냈다고 생각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손이 갑니다. 몸이 아프면 열을 내면서 신호를 보내듯이, 마음이 아프면 저에게 이렇게 글을 써 보라고 나름의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책 제목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말하는 걸까요?',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돌아오는 내일 아침에는 또 무엇을 해야할까요?'
한 사람의 삶은 수 없이 많은 변수에 의해서 바뀌어 갑니다. 어떤 변수는 스스로 통제가 가능하고, 어떤 변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변수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은 다른 결을 가지게 되고, 서로 다른 색과 향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는 전제 자체가 통제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겠네요. 단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내 삶에 파고들더라도 그 변수에 무너지지 않도록 어떤 대비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매 겨울 마다 어떤 감기 바이러스가 유행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독감 백신 주사를 접종하듯이 통제가 힘들어 보이는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로 조금씩 끌여들여야 할 거 같습니다.
이제는 통제 가능한 변수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부터 어른들이 수 없이 질문해 왔던 '꿈이 뭐니?' 와 같은 질문을 다시 듣는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과연 그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하면서 통계와 평균에 나를 포함시키면서 면죄부를 받으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복귀'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 인해 어머니, 아내, 아들, 딸, 사위, 외손자가 먼저 삶을 떠났지만, 먼저 떠난 이들을 그의 손으로 묻어 줄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거의 도살 직전에 있던 늙은 소를 데리고 오면서 자기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자신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아내 옆에 묻어줄 거라는 기대가 있기에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언제될 지 모르는 그의 마지막을 위해 베개 밑에 돈을 조금 놓아둡니다. 자기를 거두어 줄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인 것이죠.
아직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정말로 무엇인지? 꿈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저로서, 일을 하면서의 제 모습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사소하지만 하나씩 적어두고, 실현해 나가는 것이 지금부터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영원회귀'가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자신이 살았던 삶을 반복해서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영원히 반복되는 삶이고, 제가 사는 지금의 삶이 영원히 반복되는 삶을 만들어 갈 첫 번째 삶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 삶들을 곱씹고 회상하며 한 번 더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회상이 흐뭇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직 희미하고 확실히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시간을 내고 수 없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언젠가는 제 스스로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에 대한 물음에 조심스럽지만 나름의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첫째, 자신의 시각적, 청각적, 기타 감각적 이미지를 인식해보라. 방금 열쇠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 마음의 눈으로 보라. 읽고 있는 소설을 마치 영화로 보는 것처럼, 아니면 그것을 라디오로 듣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려보라. 바나나, 눈, 고양이를 상상할 때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심지어 맛까지 보려고 노력해보라.
둘째,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마음껏 해보라. 만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면 그것이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머릿속으로 다시 쓰고 다시 '보라'. 만일 소리를 이미지 형태로 사고하고 싶다면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협주곡의 선율뿐 아니라 화성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거나 들으려고 해야 한다.
셋째, 예술을 하라. 그러나 음악이나 춤, 회화나 요리에 관한 것을 '배우기만' 하지 말라. 직접 그리고, 작곡하고 시를 쓰고, 음식을 만들어보라. 그러는 가운데 이미지가 저절로 떠오른다. 아마도 당신은 색으로 사고하지 않고서는 그림의 색을 고르지 못할 것이며, 소리로 혹은 소리에 관해 사고하지 않고는 피아노 건반 위의 선율을 짚어낼 수 없을 것이다. 닭고기와 어울리는 맛에 관해 사고하지 않고는 닭고기 요리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행위들을 하기 전에 과정을 먼저 상상하고 그 과정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라.
마지막으로 내면의 눈, 귀, 코, 촉감과 몸감각을 사용할 구실과 기회를 만들라. 다른 시람을 시켜서 수학과 과학문제를 구술로 내게 하고, 연극대본을 읽으면서 다른 목소리를 듣고 다른 표정을 보라.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고 상상하는 일에 집중하라. 다른 기술도 그렇지만 이것을 일관성 있고 끊임없이 연습할 때, 보다 강력한 이미지를 보다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 『생각의 탄생』 中 -
[생각 정리]
최근에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이슈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과 토의를 한 다음에 시스템으로 해결 방안을 프로세스로 정립하는 일이다. 사람들과 토의를 하는 시간에는 어떤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사람들 마다 생각하는 문제점과 이슈들, 그리고 나름 생각하고 있는 방안들이 구름처럼 떠 다닐 뿐이다. 이제는 그렇게 산재되어 있는 정보들을 모으고, 사람들과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도출한다. 그리고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정립한다.
이 프로세스는 사람의 눈에 보여야 한다. 바로 시각화해야 한다. 형상화되지 않은 것들을 모아서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복잡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도록 심플하게 하지만 정보는 부족하지 않게 표현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와 이슈에 대해서 명확히 파악해야 하며,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에 대해서 납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시각적으로 한 눈에 표현해야 한다.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정보의 요약이 필요할 것이며, 요약된 부분을 시각적으로 잘 배치하고 연결하고 구분해주어야 한다. 이럴 때는 배치가 필요하고 나름의 그림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해 왔었다. 그런데 방법적인 측면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힌트를 얻었다. 내가 그림을 배우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내가 머릿 속에서 상상을 한다면, 그 상상을 그대로 종이 위에 그려놓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의 핵심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머릿 속의 구름처럼 떠돌던 생각들이 명확하게 시각화되지 않을까. 그것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데도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생각을 가능하면 빨리 행동으로 옮겨 보자. 아직 행동의 단계는 아니지만, 드로잉 기초 책을 한 권을 주문했다. 어느 순간 내 머릿 속의 그림이 종이 위에 펼쳐질 날을 기대해 본다. 이것도 그 동안 시도했던 수 많은 것 중에 하나로 남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라질 것이다. 이제는 무언가 나만의 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 제조공정에는 상취품목, 부품, 자재명세서, 사용량, 최종 품목, 중간 조립품, 구매부품, 제품생산 공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재명세서(BOM)는 모든 품목에 대해 상위 품목과 부품의 관계와 사용량, 단위 등을 표시한 리스트이다.
Cp(공정능력지수)
- 공정변동에 대한 규격변동의 양적인 표현을 나타낸 지표이다.
Cpk(치우침이 보정된 공정능력지수)
- 공정평균의 위치를 반영해 공정능력이 산포의 중심에서 벗어난 정도를 나타낸 지표이다.
GEM(Generic Equipment Model)
- 모든 반도체장비가 SECS 프로토콜에 의해 통신을 하지만, 그 동작 방식이나 사용하는 메시지가 모두 다르다면 정말로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SEMI에서는 장비의 동작에 대한 시나리오와 용어로 이때 사용되는 메시지를 묶어서 장비 구동에 관한 표준을 마련했는데, 이 표준이 E30 생산설비 통신과 제어를 위한 핵심 모델(Generic Model for Communications and Control of Manufacturing Equipment)이고, 이를 간단히 줄여서 GEM이라고 부른다.
SEM(Specific Equipment Model)
- GEM을 통해 일반적인 장비의 동작 규약을 정하고는 있지만 GEM만으로 반도체생산에 투입되는 모든 장비의 사양을 규정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특히 다른 공정 장비와 비교할 때 작업 자체가 색다른 반송장비나 스토커 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런 이유로 특별한 장비에 적용되는 사양은 따로 SEM(Speciific Equipment Model) 사양을 정해서 관리하고 있다.
SECS-1(SEMI Equipment Communications Standard 1)
- 반도체 처리 장비와 호스트 간의 메시지 교환에 적합한 통신 인터페이스를 정의한 것이다.
ST(Standard Time)
- 문제 발생 ㅇ벗이 정상적인 작업속도로 설비나 작업자에 의해 부품, 완제품을 생산하는 데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말하며, 사이클타임(Cycle Time)은 어떤 제품을 한 번 생산하고 동일제품을 두 번 생산할 때 주기이다.
T/T(Tact Time)
- 제품 한 개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준 시간. 만약 설비가 1시간에 3,600개의 생산을 하면 Tack Time 은 1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