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문학상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습니다. 작년에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올해도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도박가들은 무라카미 하루키, 파올로 코엘료, 밀란 쿤데라, 응구기 와 티옹오, 조이스 캐롤 오츠 등을 손꼽았었죠. 그런데 노벨문학상 당일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의외의 인물에 놀라워하는 동시에 작년과는 다르게 그래도 받을 만한 작가가 받았구나 하는 공감대가 생겨난 거 같습니다. 그 만큼 가즈오 이시구로는 조금씩 독자들과 작가들 사이에서 살며시 그러나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과 함께 그의 작품들이 하나 둘 베스트셀러로 올라서기 시작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부분의 책들을 출판한 민음사는 아마도 환호를 지르며 회식 자리를 가지지 않았을까요. ^^
반갑게도 최근에 하나 둘 생겨나는 중고서점들에서도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은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역시 타오를 때 한 번에 타오르는 대한민국입니다. 다행히 제 책꽂이에는 그의 책이 두 권이나 꽂혀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가 제 이름을 새긴 책도장까지 박혀서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3년 전인가 민음사 북클럽 회원으로 등록을 할 때 책을 선정할 수 있어서 선택한 책들이었습니다. 읽지 않고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지금을 기다렸나 봅니다. 역시 책은 나와 인연이 다을 때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봅니다.
3년 동안 간직만 해 두었던 책을 작가의 수상 소식과 함께 한 달이 안 되어서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권위'에 대한 내면의 복종이었을까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기 전에 읽었더라면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 같은 부분이 하나 하나 다 의미가 있어보이는 느낌을 받으면서 읽었습니다. 역시 노벨상을 받을 만 하구나. 역시 노벨상을 받는 작가의 작품은 다르구나. 어쩔 수 없는 편견에 빠지고, 권위의 늪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의 작품은 상당히 인상 깊었으니까요.
그 중 오늘은 그의 대표작이자 제 서재에 있는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나를 보내지 마』를 소개드립니다.
회사에서 누군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그래서 내용을 잠깐 설명해 줬죠.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어, 그거 영화로 나온 얘기 아니야?" 이 책이 영국에서 출간된 시기는 2005년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시기는 2009년 이었네요. 그리고 영화가 국내에 개봉한 시기는 2011년 이네요. 조금 늦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에서 태어나 4살에 영국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성장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영국에서 출간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타임>은 이 작품을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돌아왔습니다. 이제야 소설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지금까지 읽어왔던 소설과는 다릅니다. 소설의 소재 자체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낯설지는 않습니다. 이미 여러 경로로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봄직한 이야기거든요.
소설은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서 복제된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한 줄로 표현하면 마치 공상과학과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수 도 있겠네요. 하지만 너무나도 인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로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였다고 생각됩니다.
작품 속의 화자였던 캐시와 그의 친구인 토미와 루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배경은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입니다. 기숙학교에서는 분기 별로 교환회가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학생들이 만들어온 유화, 소묘, 도예품, 시 등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잘 만들어진 것들은 '마담'이라는 어떤 인물에 의해서 학교 밖으로 나가게 되죠.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들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일반 사람들처럼 담담하게 표현해나갑니다. 마치 실제 캐시, 토미, 루스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죠. 하지만 중간 중간에 그들이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암시하는, 아니면 더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헤일셤의 학생들은 암묵적 동의하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p114) 연못가에서 대화를 나눈 지 1~2주 후에 루시 선생님의 영어 수업 시간에 일어난 사건의 예를 들 수 있다. 어떤 시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 어쩌다가 2차 대전 때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마자애 하나가 수용소를 둘러싼 담장에 전류가 흐르고 있었는지 묻자, 누군가가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은 정말이지 기묘한 느낌일 것이라고, 언제라도 담장에 손만 대면 자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심각한 의도에서 한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그 말을 상당히 재미있게 생각했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일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간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모두들 전류가 흐르는 담장을 만지는 흉내를 내며 소리를 질러 댔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줄곧 루시 선생님을 관찰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아주 잠깐 어떤 희미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을 추스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헤일셤의 담장에 전기선이 둘러져 있지 않은 건 다행이지. 그랬다면 때때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어조는 아주 나직했고, 아이들은 줄곧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므로, 그 말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을 거야."라는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가 어디서 벌어진 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그 점을 묻지 않았다. 우리는 시에 대한 토론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학교를 나온 후에 간병인이 되고 기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진정으로 사랑을 한다면 기증을 3년 유예 시킬 수 있다는 소문' 에 의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렇게 캐미와 토미는 그 유예를 시켜준다는 '마담'이라는 조재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마담과 그들이 헤일셤에 있었을 때 교장선생님으로 있던 에밀리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일반인을 구분할지 모르겠으나 일반인을 위해서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복제인간 중에서도 아주 혜택을 받아오며 성장해왔습니다. 에밀리 선생님과 마담이라 불리던 사람이 복제 인간의 휴머니즘과 그들도 역시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며 만든 학교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들이 어린 시절 교환회에 제출했던 작품들은 에밀리 선생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제 인간들이 단순히 장기를 주기위한 그런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헤일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은 마치 가축이 사육이 되듯이 그렇게 복제인간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난 캐시의 시각으로 이야기는 진행되며, 마지막에 에밀리 선생님과 마담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가 하나 둘 드러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닝데일 사건을 통해서 그들의 노력은 흔적을 감추게되죠.
(p361) "줄곧 말씀하시는 모닝데일 사건이라는 게 뭔가요. 에밀리 선생님? 그것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알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음 너희가 그 사건을 알아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사건은 상당히 재능을 갖고 자기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가던 제임스 모닝데일이라는 과학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벽지에서 자기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지. 그런 곳에서라면 관심이 덜 쏠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가 하려던 건 좀 더 강화된 특질을 가진 아이를 얻는 거였어. 지성이나 운동 능력 같은 면에서 우수한 아이 말이야. 물론 이제까지도 그 비슷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모닝데일이란 사람은 이전의 이런 연구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밀어붙였지. 그러다가 법의 범위를 넘어서고 말았단다. 물론 그건 우리의 경우와는 상관이 없지. 조금 전에 말한대로 그건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그게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냈지 . 그 사건은 사람들에게 줄곧 가지고 있던 공포를 환기시켰단다. 너희 같은 학생들을 만들어 내는 기증 프로그램에 대한 공포 말이다. 혹시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의 후손이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게된다며? 그들이 우리 일반인보다 우수하다는 게 증명된다면? 오, 안 돼, 그 생각은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어. 그들은 뒷걸음질 쳤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간과 장기기증을 위한 인간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탁월하게 휴머니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처럼,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반대로, 다들 그들의 운명을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묘한 경계와 긴장감을 작가는 마치 줄타기를 하듯이 작품의 마지막까지 끌고 나갑니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암시하게 만드는 사소한 에피소드를 숨겨두고, 따뜻한 인간애의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다시 그의 작품의 제목으로 돌아갑니다.
Never Let Me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