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항상 가슴 속에 새기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생각이란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목표로 대신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신중하거나 급한 선택이 필요한 순간을 맞게 된다. 이런 때에 자신만의 가치관, 목표가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순간을 아무런 판단의
기준없이 선택하게 되면 다시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위대한 선은 최고의 목표"라고 했다. 여기서 선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최고의 목표'는 목표 그 자체가 또 다른 목표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최고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최고의 목표가 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철학적으로는 아직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서 그 '최고의
목표'를 궁극적인 삶의 방향을 인도하는 무엇인가로 인식하려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최고의 목표는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최고의
목표'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같은 노력이라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나 역시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최고의
목표'를 찾게 된다면 아마 삶의 근본적인 것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을 찾기 위해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에 불을 지펴 준 책이 한 권이 있다. 바로 작년 4월에 출간된 <엘론 머스크의 대담한 도전> 이다. 이미 많은 기업체의 권장도서로 올라가 있으며,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인 '엘론
머스크'에 대한 책이다.
엘론 머스크의 '최고의 목표'를
바탕으로 한 도전과 혁신은 자동차, 우주산업 뿐만 아니라 꿈과 목표를 찾아 헤매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큰 자극으로 다가온다.
그럼, 엘론 머스크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잠시 뒤 따라 가보자.
엘론 머스크는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인터넷이 세상을휩쓸기 전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빠져들었고 독서광답게 초등학교 시절에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씩책을 읽었다.
열 살이 되던 해, 머스크는 그동안 모아둔 용돈과 아버지가 보태준
돈으로 첫 컴퓨터를 구입하고, 혼자서 프로그램 안내서를 독학하여 마스터한다. 벌써부터 싹이 트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머스크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응용물리학과 재료과학 박사과정을 시작했는데 입학한 지 이틀만에 그만두고, 동생인 킴벌 머스크와 인터넷 지도 및 주소 등에 대한 소프트웨어 회사
'Zip2'를 창업합니다.그리고 4년 후 컴팩에 3억 7,000만 달러(약 4000억원)으로 넘기면서 발판을 마련한다. 곧바로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엑스닷컴(X.com)을 설립하고 맥스 레브친의 '컴피니티(Confinity)'와 합병을해서 인터넷 전자상거래 결제서비스 화사인 '페이팔(Paypal)'을 만든다.
페이팔은 후에 주요 사용자이던 이베이(eBay)에 15억달러(1조6,000억원)에 매입되고, 그때 머스크는 1억 7,000만 달러(약1,8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쥐게 된다.
이러한 개인적인 역량과 실리콘밸리의 환경 속에서 머스크는 그의 꿈을 향한 발판을 마련한다.
엘론머스크는 어느 순간 자신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식량난, 물 부족 사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지구에서 몇 십 억명이나 되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그의 답은 '지구 이외의 행성에 사는 것' 이었다.
그것은 그의 '최고의 목표'가 되었고 그의 대담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SpaceX
페이팔 매각에 따라 자금을 확보한 머스크는 2002년 항공우주회사 'SpaceX' 를 설립한다. 우주산업은 막대한 투자자금과 실패할 확률이 높아서 기업들에게는 섣불리 도전하기 힘든 고위험 사업이었지만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다
.
우주 산업에 도전한 머스크는 무수한 실패를 맞닥뜨린다. 처음 제작한
팰컨1호는 3차례나 발사에 실패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냈으며, 사람들도 민간기업에게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그들은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6년 만인
2008년 9월 28일 처음으로 발사를 성공시키는
쾌거를 이루어 낸다. 그 때까지 실패비용과 연구개발비에 투입된 자금만
1억 달러(약1,100억원)에 달했다.
SpaceX는 처음 도전에 나설 때부터 팰컨1호만의 성공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 그들은 기존의 로켓제작회사가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한 기씩 제작해오던 방식을 깨뜨리며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어 나갔다. 우선 최대한
설계를 간단히 해서 설계를 표준화하고 부품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프로젝트방식으로 굳어졌던
방법을 과감이 허물어 버리면서 비용을 줄이며 품질을 향상 시킬 수 있었다.
머스크는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한다. 로켓 제작에
투입하는 비용 중 약 4분의 3이 1단 로켓에 들어가는데, 아시다시피
1단 로켓은 처음에 분리되는 것으로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는 1단 로켓이 분리되고 나서 다시 발사대로 돌아오면 그 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을 재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2013년 6월 실험에서는 지상에서 325미터까지 상승한 후 본래 지점까지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초기부터 수많은 실패를 겪어 왔지만, 그들은 매번 문제점을 해결해
나갔고 로켓제작 및 발사 비용을 기존에 NASA가 들였던 비용의
1/10 수준으로 낮추었다.
"문제가 뭔지는 개의치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다."
TESLA
2004년에는 전기자동차에 대한 꿈을 가지고 가지고 있던 머스크는
스타라우벨과 에버하드를 만나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머스크는 기존에 에버하드가 설립한 테슬라에
출자를 하고 이사회의 의장이 된다
"전기자동차를 조금이라도 일찍 보급해 배기가스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인류의 생명을 늘리는 데 있어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면서 화성 이주를 실현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이었다.
시장에서는 뛰어난 기술이 있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사업모델과 그에 따른 마케팅 등이 뒤따라야 한다. 기술만을 내세우는 기업들이 고배를 마신 것은 기업사에 흔히 존재한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테슬라는 기술력 뿐만 아니라 그들 만의 독특한 전략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보통 전기자동차 시범을 보이는 것들은 경차와 같은 소형차를 중심으로 개발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머스크는 1단계로 10만
달러 가량의 고급스포츠카를 처음에 출시하고, 2단계로 5만
달러 가량의 세단 시리즈 그리고 3단계로 약 2만 달러 가량의
대중차를 개발하는 전체적인 로드맵을 그렸다. 처음부터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전기자동차에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중의 하나는 전기충전시스템에 관련된 것이다. 머스크는
단순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의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고속 충전소 '슈퍼차저 스테이션' 고안해냈다. 전기자동차용 고속 충전소를 설치함으로써 평생 무료 충전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전기는 머스크한 출자한 회사인 솔라시티가 설치한 태양광
패널로부터 만들어지게 된다.
슈퍼차저 스테이션에서 충전하는 방식은 무료이지만 몇 시간이 소요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외에 일정 요금을 받고 배터리 팩을 교환하는 방식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
스페이스엑스, 테슬라의 행보는 여전히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머스크가 다음에 또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른다. 그의 최고의 목표는 '화성으로 이주하는 것'이었므로 어쩌면 화성에 건물을 짓는 신개념의 건축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곳의 환경에 맞는 식품 및 식량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들이 그의 목표와 이어질 때는 새로운 연관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가 만약 처음에 단순히 '최고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면 아마 자동차를 만드는 것에서 그쳤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무언가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능성이라는 것은 그 다음에 생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나는 어떻게 '최고의 목표'를 찾을 수 있을까?
엘론 머스크와 같은 목표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내 삶을 이끌어가고 어둠 속의 북극성과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직은 너무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희미한 빛이 느껴진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를 가져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 속에서 실패를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행동이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목표라도 의미가 사라진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에 다시 가능성을 말해보려 한다.
올해 독서의 방향은 현재의 트렌드와 기술, 경제에 관련된 부분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집중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처음에 선택한 책이 삼성경제연구소의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이다. 마지막 장을 덮은 다음에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머리 속에 생각의 체계가 잡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며, 체계적인 사고와 전략적인 접근을 위한 생각의 틀 연습이라는 측면에서도 나에게는 훌륭한 책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책을 전부 다 읽고 나서 생각한 첫 번째 생각은, 내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플랫폼의 개념을 적용할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플랫폼은 그 배경에는 분명한 전략이 있어야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서 그 속에서 자체적인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자발적인 생태계를 만들어가면서 진화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갖가지 습관들이 모이면서 나에 대한 플랫폼이 자발적으로 생기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분명 사람이기 때문에 나태함과 자기와의 타협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분명히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가 자발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체계를 가진 내 습관들이 개인적인 관리를 통해서 노력에 상응하는 그리고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방법론에 대해서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 지식 네트워크 생성하기 - 예전부터 개인적인 지식들이 쌓이고 쌓여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분명히 파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단계에서는 서로 융합작용이 없기에 서로 떨어져 있고 그 영향력을 개인도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떤 지식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지식들이 융합되고 통합되면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된다. 지금은 일단 그 재료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 양질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자. 어떤 분야에 대해서 개괄할 수 있는 입문서와 같은 책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초로 확장한다. 그리고 지식을 어떤 체계로 표현할 수 있는 연습이 중요하다. 표, 그림과 같이 보여줄 수 있게 하고, 글을 보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단한 방식으로 표현된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연습을 해야 겠다.
-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거나 업무상에 정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말로 풀어내기 보다 어떻게 하면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정리의 기술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야 할 것이다.
- 지식통합관리틀을 만들어 내자. 책을 보면 목차가 있고 색인이 있다. 그리고 지식이 서로 어떻게 연결이 되고 그 뿌리는 어떻게 되는지 추적성을 나타낼 수 있는 링크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연대기 별, 사건 별 정리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분야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알아낸다.
잠깐 개인적인 생각에 대해서 한 번 풀어놓아 봤다. 책 내용과는 어떻게 보면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플랫폼이라는 틀 속에서 생각이 틀을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플랫폼에 관련해서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풀어낸다는 점이다. Google, Facebook, Amazon, Apple, TED, 키바, 스퀘어, 하버드, MS, Y콤비네이터, 리앤펑, 쿼키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같은 산업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수익모델 혹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고 기업의 성패도 결정이 된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것을 배우거나, 자신에게 맞는 플랫폼에 대해서 찾을 때 가장 먼저 하고 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하려고 하는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내려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 정의에 따라 길이 달라지는 것이다.
과연 나는 책을 많이 읽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가? - 돈을 벌려고, 지식에 대한 궁금증으로, 그냥 습관으로 -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이것에 대한 나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지금은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이 그 대답은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올 해는 나에 대한 플랫폼에 대해서 한 번 만들어보고,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한 것을 찾아보고, 플랫폼의 개념을 조직 내에서 어떻게 가져갈 수 있는지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봐야 겠다.
p22
플랫폼은 다소 추장적으로 표현하면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공통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반 모듈'이다. 보다 구체적이고 간단하게는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하는 토대'로 정의할 수 있다. 플랫폼을 '토대'라는 다소 추상적인 말로 정의한 이유는 보다 큰 가치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플랫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이나 부품 같은 유형물도,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기술 같은 무형물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모두 플랫폼이 될 수 있다.
p24 기업생태계는 특정 상품이 만들어져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소비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주요 참여자가 모인 시스템이다
p25 플랫폼은 구체적으로 기업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첫째, 플랫폼은 기업생태계의 성장성을 결정한다. 단기간에 적은 자원을 투입하고도 다양한 상품이 생산되어 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게 해준다. 둘째, 플랫폼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업생태계를 창조하기도 한다. 플랫폼을 설계하여 제공하는 기업에는 플랫폼 자체가 새로운 사업이 되며, 그 플랫폼을 활용하는 기업에는 그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신사업을 펼칠 기회가 주어진다. 플랫폼이라는 토대에 대앙햔 참여자가 모이다 보면 전혀 새로운 사업모델이 등장하는 것이다.
p34
시장에 한번 안착한 플랫폼은 일정 기간 성장을 보장받는다. 한번 특정 플랫폼에 참여한 이용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아이폰 이용자가 안드로이드폰으로 이동하거나 반대로 안드로이드폰 이용자가 아이폰으로 이동하면 기존에 쓰던 앱과 정보는 대부분 잃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전환비용 탓에 이용자는 기존의 플랫폼에 묶이게 되고, 기존 플랫폼 기업은 추가투자 없이도 개발자와 이용자를 유지하게 된다. 즉, 잠금효과(lock-in effect)혹은 고착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반 제품이나 서비스에서도 잠금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플랫폼의 경우에는 참여자가 많고 다양해 잠금효과가 더욱 커진다.
p35
네트워크 효과란 어떤 이용자가 네트워크에서 얻는 가치가 그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이용자의 수에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네트워크'는 전화와 같은 정보 통신 네트워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스마트폰 이용자 그룹처럼 물리적 링크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유사한 특성을 갖는 가상적 네트워크도 포함한다. 플랫폼에서의 네트워크 효과란 한쪽 참여자가 플랫폼에서 얻는 가치가 다른 쪽 참여자 수에 따라 증가하고 그 반대 방향도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p36 하이테크 제품이 시장에 보급될 때 초기시장과 주류시장 사이에 대단절, 이른바 '캐즘(chasm)'이 있다고 한다. 플랫폼 사업의 경우 닭과 달걀의 문제로 인해 일반적인 제품이나 서비스 보다 캐즘의 폭이 한층 넓다.
p37
플랫폼 강화를 위해 해결해야 하는 대표적 장애물이 '레몬시장 문제'다.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판매자는 차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반면 구매자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차와 다르게 중고차는 겉만 봐서는 성능을 알 수 없고 직접 사용해봐야 알 수 있는 경험재다. 따라서 구매자들은 외관이 멀쩡하더라도 실제 성능이 좋지 않은 차(레몬:겉은 번짖르르하지만 실속이 없는 물건)일 가능성을 고려해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성능이 좋은 차를 낮은 가격에 팔려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러므로 성능이 우수한 차들은 매물로 나오지 않게 된다. 결국 저급한 품질의 자동차만 매물로 나와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레몬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p38
플랫폼 기업은 지속적인 성장과 활성화를 위해 참여자를 어떻게 선별할 것인지, 참여자들의 활동을 촉진하고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플랫폼과 참여자가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이 단계에서 고민해야 한다.
p40
플랫폼 사업에서는 가격에 관한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나 가격부과 대상과 가격수준을 유연하게 설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격을 부과할지, 비용을 지불할 제3의 참여자는 없는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수익화 과정에서 플랫폼 생태계에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매년 연말이 되면 각종 시상식이 진행되고, 올해에는 어떤 것들이 시청자, 소비자, 국민들에게 이슈가 되었고 한 해의 트렌드를 이끌어 갔는지 소개하는 방송, 기사, 보고서들이 나온다.
한 해가 마감되는 12월이 되면 그 해에 진행되던 많은 파편적인 것들이 하나의 큰 흐름(Trend)의 시작이 된 것이 있고, 그 경향에 편승한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흐름이 언제까지 진행될 것인지, 일시적인 현상인지, 앞으로 또 다른 흐름의 시작을 예비하는 것인지 어렴풋하게 드러나게 된다. 물론 나와 같은 범인은 그 흐름을 쫓기 바쁘고 그것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일상적인 세상을 살아간다. 역사 책을 읽다보면 조선후기에 동아시아에서는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또한 우리 산하에서도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과 같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 당시를 보면 노비제도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구습에 얽매여 암묵적으로 그 제도가 일정기간 유지되어 진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토지조사사업은 당시 법에 무지했던 농민들과 화전민들의 땅을 빼앗는 구실로 이용되었다. 여기에는 분명 총칼이 뒷 배경에 있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말이 길었던 것은 우리 자신은 스스로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우리의 시대적(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상황은 하나의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흐름을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그 흐름을 선도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 흐름에 나도 모르게 편승하게 된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가 어떤 흐름 위에 있는지는 한 번은 알아보는게 좋을 듯 하다. 내가 흐름에서 득을 취하지는 못할지언정, 흐름에 무지해 손해는 보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이다. 분명 수많은 흐름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 알 수 있는 정도는 올해부터는 알아볼 노력을 조금 기울여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 몇 년간 출간되고 있는 《트렌드코리아 2015》 를 2014년을 보내고 2015년을 준비하며 한 번 읽어본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들,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책은 2014년의 소비트렌드를 회고하고 2015년의 소비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블로그에는 2015년 소비트렌드 10가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1. 햄릿증후군 (Can't make up my mind)
▷ 신상품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새로운 정보가 넘쳐나며, 데이터 스모그에 휩싸여 점점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면서 결정장애 증후군이 나타나게 됨. 이러한 경향은 의사결정에 지친 소비자들을 도와주는 큐레이션 서비스, 개인 컨설팅 서비스가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
▶ 사례
# 미국의 경우, FANNCY, WANELO, WISH, FAB, SVPPLY 등 큐레이션 커머스가 성장 중 # 우리나라 소셜 커머스 Big3인 위메프, 쿠팡, 티켓몬스터도 큐레이션 서비스를 통한 고객 맞춤형 전략으로 오픈마켓을 추격중 # 앱 '포크'는 개인의 취향에 맞는 음식점을 추천 # 앱 '오마이비어'는 한국에 유통되는 맥주 190종에 대한 향, 도수 등 맥주 맛을 세분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적합한 맥주 추천 # 추천 + 서브스크립션 서비스 (선정된 상품을 구독자에게 배달까지) - '바이박스' 는 클러치, 액세서리, 스카프에 이르는 패션소품들로 구성된 세트를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구성 - '샐러리맨 박스'는 남녀를 구분해 휴대용 세제, 핫팩, 숙취해소제 등 생활 제품들을 성별에 맞게 분류해 선별 - '헤이브레드'는 서울 유명 제과점과 제휴해 매일 아침 빵을 집으로 배달 - 'W박스' 는 고가의 명품 화장품 미니어쳐를 큐레이팅 해줌 - '푸드플랩'은 수입과자를 배송해줌 - '노블박스'는 큐레이팅된 추천 도서와 스페셜에디션 선물을 보내줌
#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맞춤 추천 - '왓챠'는 이미 본 영화의 평가를 통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추천 - '라프텔'은 동일 방식으로 만화를 추천 - '스마트초이스'는 스마트폰 이용 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요금제 추천 - '식신 핫플레이스','피켓'은 위치를 기반으로 맛집 추천 - '펀드슈퍼마켓'은 자신이 가입한 펀드규모, 운용기간, 위험성향, 운용사 등의 정보를 입력하면 알맞은 펀드를 추천해줌
2. 감각의 향연 (Orchestra of all the sensed)
▷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점차 다양한 감각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함 모든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을 동원해서 세밀한 접근이 필요해지고 있다.
▶ 사례
# 감각의 신세계 : 후각과 촉각의 부상 - 고급리조트, 호텔, 항공사등은 소비자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향기를 이용 - 미국의 육가공업체 오스카메이어는 베이컨 냄새를 풍기는 앱 공개 - 모바일 게임업체 팝토피아가 게임을 하는 동안 팝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앱 공개 - 소규모잡지 <SCENT>는 특정 냄새를 테마로 잡지 발행, 읽을 거리 포함 종이에 진짜 냄새를 담아냄 - LG전자의 2014년형 휘센 에어컨은 에어컨 바람이 불때 아로마 향을 전달하는 기능 적용 - 하이트진로는 꽃향기가 나는 프리미엄 에일 맥주 '퀸즈에일'을 소개 -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의 경우 후면 케이스에 가죽 느낌의 스티치 마감을 통해 좋은 반응을 얻음 - 폭스바겐 페이톤의 뒷자석은 독일의 척추건강협회로부터 최초로 공식인증을 받음 - 볼보 S80 T6 이크제큐티브 모델은 통풍 시트 적용 - 렉서스와 뉴제너레이션GS는 세계 각국의 소비자의 체형 분석을 통해 엉덩이 위치, 시트위치, 스티어링휠의 위치와 각도 조정하는 기술 구현
# 감각의 세밀화 : 시각, 청각, 미각의 진화 - 디저트는 보고 먹고 즐기는 문화상품으로 변모하고 있음 : 피에르에르메(프랑스 대표 고급 제과 브랜드), 제니베이커리('마약쿠키'라는 별칭을 가진 홍콩 쿠키) : 베니에로(뉴욕3대 치즈케이크), 레이디엠(40년 전통의 미국 수제케이크 브랜드), 로이스(일본 생초콜릿 브랜드) : 가렛팝콘(미국 시카고 명물 팝콘 브랜드), 웨즐스프레즐(미국 대표 프레즐 브랜드), 빌스(호주 핫케이크 브랜드) - TV의 경우 초고화질 (UHD)가 강세를 보임 - 사운드바 매출 증대 (긴 막대 형태의 기기 하나에 다양한 음역을 재생하는 스피커 배치, 부피와 가격의 부담은 줄이고 성능을 높임) - Portable 음향기기의 고급화 : '박태환 헤드폰'으로 알려진 '닥터드레'를 시작으로 고급 음향기기 소비자가 늘어남 : 소니의 고음질 음원 재생기기 NWZ-ZX1은 판매 시작 5분만에 예약 종료 : 300만원에 달하는 아이리버의 제품도 매출이 두 배 이상 상승
# 감각의 공감각화 : 오감 만족을 요구하는 시대 - 알록달록 색깔의 레인부츠로 유명한 락피쉬는 시각적 아름다움에 후각을 더함 : 고무 냄새가 나던 기존의 레인부츠 대신 소재에 은은한 로즈향을 더함 - 기아자동차는 2013년 10월, 브랜드를 상징하는 '기아 향'을 공개하고 전국의 매장, 차 실내에 적용 - 가상현실을 이용한 디지털 쇼룸 : 런던 피카딜리의 아우디 매장은 대형 스크린에서 터치패드를 이용해 원하는 사양, 색상등을 골라 바로 적용 가능 : 제일기획과 삼성전자가 공동개발한 센터스테이지는 85인치 초고화질 display에 주방가전 27개를 실제처럼 경허해볼 수 있게 함
3. 옴니채널 전쟁 (Ultimate 'omni-channel' wars) ▷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쇼핑을 즐기는 shopper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여러 유통채널이 상호 간에 확장되고 결합되며 '옴니채널'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따라 유통업체들은 채널 간 연속성 강화를 위해 통합채널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소비자에게 끊김없는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에 모바일 앱 기술을 접목하거나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 사례
# 전략1 : 통합적 구매채널 연동 - 미국의 '존 루이스 백화점'은 매장 곳곳에 Interactive Screen 을 설치하여 방문객이 제품정보 검색, 온라인 주문가능케 함 - 미국의 '메이시백화점'은 매장 재고가 없으면 자사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하고 매장에서 찾아가는 search and send 프로그램 운영 - 교보문고의 경우는 '바로드림'서비스를 오래전 부터 시행해오고 있음 - 롯데닷컴의 '스마트픽2.0' 역시 고객들이 온라인을 쇼핑한 뒤 매장에 직접가서 입어보고 제품을 찾아가는 서비스
# 전략2 : 오프라인 매장의 모바일 솔루션 도입 - 아마존의 경우 고객의 쇼핑과정을 최소화시켜주는 'Dash' 서비스 선보임 : 예를 들어 늘 쓰던 아기 기저귀가 다 떨어졌을 경우, 기저귀 바코드에 Dash를 갖다 대기만 해도 자신의 아마존 계정에 연동되어 자동구매, 결제 및 배송까지 이루어지는 시스템, 음성인식도 가능 - 쇼윈도에 NFC(New Field Communication)칩을 부착해 스마트폰을 가까이 되면 해당 홈페이지로 연결 - 월마트의 모바일앱 'Instore mode'를 설치한 고객은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면 매장 내 Promotion 및 신제품 정보를 받음 - 메이시백화점은 벤처기업 숍킥과 연계하여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지점에 애플의 아이비콘을 이용한 '숍비콘' 서비스 시작 : 블루투스 통신망을 이용하여 스마트폰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로 고객의 위치를 파악해 근처 매장의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해당 방문자가 오래 머무른 매장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구매 성향 파악 후 맞춤형 상품 추천 - 현대백화점의 경우 NFC 기술을 통해 고객이 스마트폰을 와인병에 대면 생산국, 와이너리, 빈티지 등 다양한 제품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와인 정보 안내 시스템'을 운영 - 롯데백화점은 QR코드와 NFC 태그를 활용한 가상 매장인 '모바일 스토어'를 운영 - 신세계백화점은 전자지갑 'S월렛'을 이용해 고객의 스마트폰에 백화점 사은품을 증정
# 전략3 : 지불 결제 수단의 결합 - 옴니채널의 발전은 핀테크(Financial + Technology) 등 모바일 은행 계정 및 지불 수단의 발전과 더불어 활성화 -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내놓은 'Alipay'는 온라인 지갑에 미리 돈을 충전한 뒤 간편하게 결제하는 선불 전자결제 서비스로 현재 사용자가 8억명에 달함 - 온라인 간편결제의 선두주자 미국 이베이의 Paypal은 현재 1억 4,800만명의 글로벌 가입자를 확보 - 구글은 메일 계정만 개설하면 이용이 가능한 가상결제 시스템인 '구글 월렛' 구축 - 영국의 세계적 슈퍼마켓 체인 테스코와 프랑스 최대 유통업체 오샹도 '디지털 월렛' 앱을 통해 모바일 결제 확대에 주력
# 전략4 : 빅데이터와의 공생 - 월마트 온라인몰이 개발한 검색 엔진 '폴라리스'는 소비자가 SNS에서 사용하는 말의 빈도와 관계를 분석해 적합한 제품을 제공 - 아마존은 고객의 제품 구매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미래 구매행위를 예측하고 고객별로 최적화된 마케팅 제공 - 오프라인에서의 다양한 정보 수집 및 활용 : 매장에서 고객의 수와 동선을 파악하는 풋 트래픽(쇼핑 동선) 분석 전문 스타트업인 유클리드는 와이파이 신호를 이용해 온라인 기술과 오프라인 매장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함
4. 증거중독 (Now, show me the evidence)
▷ '햄릿증후군'에 걸린 소비자들에게 결정의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은 확실한 증거뿐이다. 이제 막연하고 감성적인 광고문구가 아닌 객관화된 데이터가 소비자의 결정에 확신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군대 내 가혹행위 등 국민들의 불신은 늘어만 가고 고발형태의 소비자 정보 프로그램은 의심에 불을 지피고 있다. 파워블로그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무기로 돈을 챙기는 등 사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신뢰가 부족해진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확신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갈구한다.
▶ 사례
- 아이폰6플러스 같은 경우 2014년 9월 출시 후 사흘 만에 1,000만 대가 팔려나갔지만 잘 구부러진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퍼져나갔다. 이 사태는 미국의 권위있는 소비자 정보지인 <컨슈머리포트>에 의해 가까스로 진화되었다. - 국내과자의 과대포장, 과도한 질소 충전에 대한 이슈로 '외국과자 구입 인증샷 올리기', '내수용, 수출용 과장 양 비교 사진'들이 SNS에 빠르게 확산됨 - 2014년 9월 28일에는 제과업체의 과대포장에 일침을 가하고자 대학생들이 봉지 과자로 배를 만들어 한강을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임 - 화장품 성분 분석 앱인 '화해'는 각종 화장품에 들어있는 성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줌 - 매일유업의 '앱솔루트'는 자사 홈페이지에 업계 최초로 분유의 30여 가지 전체 원료 뿐만 아니라 유아식 제품에 사용되는 모든 원료의 원사지를 100% 공개하고 있음 -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은 소비자의 건강한 식생활과 식품 안전을 위해 전 품목에 영양 표시제를 도입 - 시각화 제품의 대표 아이템인 착즙 주스의 인기로 강남일대에 '주스바'가 새로운 아이템으로 부상 : '에너지키친'은 주스만 전문으로 하는 주스바 : '머시'는 배달 전문점 형태의 주스바, '블루프린트'는 테이크아웃 중심의 주스바 - 속이 보여서 제품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루 포장'이 인기를 얻음 - 롯데건설은 에너지 사용량을 쉽게 확인하고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유도하는 에너지 모니터링 시스템인 '터치스위치'를 소개 - LG전자는 초경량 노트북 '그램'을 출시하면서 매장에 저울을 옆에 두고 소비자가 직접 무게를 측정해볼 수 있도록 함 - 삼성전자는 매장에 진열된 자사의 일체형 PC '아티브 원7'의 뒷면을 열어 부품 하나하나의 제원을 수치와 함께 설명해주는 라벨을 붙임 - 출시예정인 스마트컵 '베슬'은 전용컵에 음료를 따르면 종류와 성분, 칼로리까지 구체적으로 분석해줌
5. 꼬리, 몸통을 흔들다 (Tail, wagging the dog)
▷ 지엽적인 것들이 본질에 앞서고 본품이 사은품을 갖기 위한 수단이 되고, 밑반찬 하나로 단골식당이 바뀌며, 부수적인 서비스라고 생각되던 것들이 제품과 결합해 새로운 제품군을 생성한다. 상품 간의 차별점이 사라지고 품질과 가격 경쟁이 극도로 치달으면서, '덤'의 지위가 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으로 하여금 '수익 중심형 사고'에서 '소비자 지향적인 사고'로 변화하게 한다.
▶ 사례
- 카카오빵은 그 안에 있는 스티커 수집에 빠진 사람들이 늘면서 일평균 15만개 이상 팔렸다. 7월에만 220만개, 9월까지 930만개가 팔림 - 일정금액을 구매시 비누나 세제를 주던 백화점에선, 멀버리와 코치 같은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으로 탄생한 한정판 소품을 제공 - 일부 잡지의 경우 1만원 이하의 잡지 구매시, 10만원 이상의 수분 에센스 혹은 클러치 백을 증정한다 - 2014년 6월, 맥도날드 각 매장 앞에는 어린이용 상품으로 구성된 '해피밀 세트'의 증정품인 '슈퍼마리오' 피규오를 받기 위해 어른들까지 몰리면서 행사가 조기 마감됨 - 카누 커피는 아메리카노 한 상자를 구입하면 스테인리스 텀블러(커피값보다 비쌈)를 증정 - 잡화 브랜드 '론니 슈즈'는 신발 한 켤레를 사면 오른쪽 신발 한 쪽은 하나 더 주는 '세 짝을 주는 신발' 컨셉으로 인기를 얻음 - 중소형 아파트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수십억원 대의 대형 주상복합에서 제공하던 호텔식 서비스 도입 : 삼성물산의 래미안강동팰리스는 99%가 중소형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지만 우아한 호텔식 서비스를 도입하여 분양에 성공 : 두산중공업이 2014년 상반기 공급한 '트리마제' 아파트는 조식서비스, 발렛파킹, 포터 서비스등의 서비스 제공 - '블루밍가든'은 식전 빵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워낙 인기가 많아 별도로 구매하고자 문의하는 고객이 많음 - 글로벌 의료기기회사 '오므론'은 주력 상품인 혈압계를 정밀하게 잘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혈압 데이터를 의료기관에 자동 전송해 전문가의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 - 위니아 만도는 2012년 딤채 김치냉장고를 구매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김장김치를 제공, 이 김치가 입소문 나면서 쇼핑몰, 홈쇼핑등을 통해서 판매됨
6. 일상을 자랑질하다 (Showing off everyday, in a classy way)
▷ 소셜미디어의 시대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를 인식을 하고 주변의 평판에 의해 자존감을 느끼는 '타아도취'의 SNS 세상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촬영하는 셀피들에게 '타인지향적 나르시시즘'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자 타인에게 말을 커는 커뮤니케이션의 일부가 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단지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더 멋지게 자랑할 수 있게 이미지를, 이야기를 채워주는 라이프스타일을 팔아야 된다.
영국의 옥스포드 사전은 2013년 셀카놀이, 즉 셀피(selfie)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셀피란 '스마트폰, 웹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직접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 사람 혹은 그 사진'을 뜻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 독립적이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변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을 모방하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고 했다.
▶ 사례 - '셀카봉'은 전년 대비 판매량이 열 배 이상 급증하며 필수 아이템으로 등극 - 전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3억 5,000만 장의 셀피가 SNS에 오른다. - 최근에는 위시리스트보다는 '경험해야 할 것'으로 채워진 버킷리스트가 뜨고 있다. : 가봐야 할 여행지, 공연, 캠핑, 쇼핑, 봉사, 락페스티발 등 - 감성잡지 <킨포트>, <어라운드>, <페이퍼>는 아날로그 색감을 바탕으로 생활 속 힐링을 테마로 한다. - '인스타그램'은 감각적인 편집도구를 통해 셀피족들의 큰 인기를 얻음 - 셀피들의 추구하는 콘셉트는 '자연스러움'이다. 치밀하게 세팅한 사진도 궁극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 웨딩 스튜디오 사진 대신 스냅 사진을 찍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으며 일반 커플들의 데이트 스냅사진까지 등장함 - 20~30대 여성들은 홈파티를 위해 키친 용품 및 브랜드 식기를 구매함
7. 치고 빠지기 (Hit and run)
▷ 치고 빠지는 현상은 네가지로 요약 된다. 1)연애는 설렘만 쏙 빼서 즐김, 2)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회성 사교 모임이 늘어남, 3)상품과 브랜드는 써보고 결정, 4)짧고 강한 콘텐츠가 살아남음 이러한 현상의 배경은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확대와 정답이 아니면 선택을 주저하는 세대적 특성, 개인적 가치가 중시되는 문화와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기인한다. 기업들은 이런 선택과 비선택 사이에서의 간극을 어떻게 이어줄 수 있는 찾아야할 것이다.
▶ 사례 - '썸'은 '썸씽 something'의 준말로 최근 드라마, 가요, 웹툰, 광고 등 대중문화를 사로잡는 트렌드다. - tvN의 <김지윤의 달콤한 19>와 <로맨스가 더 필요해>, Trend E의 <오늘 밤 어때>, MBC의 <연애고시> 까지 연애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제작됨 - JTBC의 <마녀사냥>은 그린라이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연애 코칭 프로그램의 대명사가 됨 - 스마트폰 앱 '텍스트앳 Text-at'은 모바일 메시지를 바탕으로 연애감정 정도를 분석해주는 앱이다. : 1년 만에 가입 회원 수를 60만 명을 돌파했다. - 소셜다이닝 social dining이 늘어나고 있다. : SNS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식사를 즐기며 인간관계를 맺는 활동이다. : 2012년 처음으로 소셜 다이닝 서비스를 시작한 '집밥'의 경우 개설 이후 2,800여개의 모임이 이루어짐, 방문자는 700만명을 넘어서고 있음 : 현재 '집밥', '톡파티','위즈돔','온오프믹스' 등 열 개 이상의 소셜다이닝 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있음 - 현재 이용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텀블러, 핀터레스트 등의 SNS는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아이디만 있으면 손쉽게 가입이 가능 - 가입/탈퇴가 자유롭고 쉽다. - 취미생활에서도 짧게 즐기는 '원데이 클래스'가 늘고 있다. : 맥주 만들기, 비누만들기, 캘리그라피 등 - 비데, 정수기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유아용품, 운동기구, 아웃도어 장비에서 보청기까지 거의 모든 제품의 렌탈이 가능 - 서울의 주요 상권마다 게릴라처럼 옮겨 다닌 팝업스토어들이 증가하고 있음 - '써카 Circa'는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뉴스 서비스로 2013년 구글과 애플에 의해 '최고의 뉴스 앱'으로 선정됨 : 뉴스를 생산하지 않고 대신 뉴스를 잘게 쪼개서 다시 조립한다. - 모바일 환경에서의 텍스트를 접한 독자들이 증가하면서 국내 소설의 경우 분량이 250쪽을 넘는 신간의 출판 부수는 2010년부터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250쪽 미만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다.
8. 럭셔리의 끝, 평범 (End of luxury: just normal)
▷ 진정한 럭셔리한 아에템은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평범함 속의 여유'로 바뀌고 있다. 소비의 가치를 높이는 힘이 값비싼 물건에서 편안한 시간과 행복한 경험으로 이행하고 있다. 브랜드가 아닌 경험을 통한 사치, 취향으로 경쟁하고 절제미에서 베어나오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승부수를 띄우는 '평범한 럭셔리'는 현대 과시 소비의 터닝포인트가 되고 있다.
▶ 사례
- 이제는 '소길댁'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가수 이효리는 2014년 5월 블로그를 개설, 평균 10만 명 이상이 방문하며 그녀의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평범한 일상을 부러워한다. - 진정한 럭셔리한 아이템은 소위 '명품'에서 '여유'로 옮겨가고 있다.
# 놈코어 스타일 (normcore style)
- 2014년 위키피디아에 공식 등재 - 평범(normal) + 단호/철저(hardcore) 가 결합한 신조어로 일부러 소박하고 평범한 것을 택함으로써 오히려 더 스타일리시하고 클함을 드러내는 패션을 말함 - 트렌디한 것을 따르지 않는 트렌드로 모노톤 셔츠, 데님, 스니커즈와 같은 지극히 노멀한 아이템으로 튀지 않게 자연스러움을 살린다. - 스티브 잡스의 검은색 하프터틀넥 셔츠와 물빠진 청바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 같은 검정 셔츠를 100벌 이상 보유했으며 모두 일본의 명품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 제품임 - 가구도 심플로 무장함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대중적인 중저가 브랜드와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 모두 심플한 모더니즘이 강세를 나타냄 - 2014년 여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투명 물병 '마이보틀' 역시 단순함으로 허를 찌른 케이스다 - 위버럭셔리(uber-luxury) 브랜드들은 유행에 동요하지 않음 : 일반 명품보다 수십 배 이상 비싼 초고가 명품을 말함 : 이태리 수공예 가중브랜드 발렉스트라는 최상의 가죽을 쓰고 수준 높은 마감처리를 하지만 로고는 드러내지 않음
# 킨포크 라이프 (Kinfolk) - '가깝고 친한 관계의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가족 또는 지인들과 함께 소박한 집밥을 나눠먹는 데서 출발 '일상'을 주제로 감성 잡지라는 영역을 확대시킨 킨포크는 스타일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하나의 정신이 됨 - 미국에서는 어렵지 않은 킨포크 라이프 (자연과 호흡하는 삶, 전원생활, 오두막집 등)은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누리기 힘든 것이 대부분이다. 평범함을 강조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역설적으로 호사스러운 것으로 변화됨 - 일본의 경우 1970년대 (긴자, 신주쿠), 1980년대 (시부야, 아오야마)가 부촌이었지만 최근에는 도쿄의 다이칸야마와 가루이자와로 이동하고 있다 : 이 지역은 부촌이라는 점과 '녹음이 짙은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음 - 롯데백화점에서는 킨포크 관련 강좌가 늘림 : '베란다 채소밭 가꾸기', 가족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가족과 함께 만드는 추억', '건강한 집밥 만들기' - 밥벌이의 고단함, 불의의 사고에 대한 불안감,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 도심 속 분주한 일상에 찌든 이들에게 킨포크 라이프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으로 동경의 대상이 됨
9. 우리 할머니가 달라졌어요 (Elegant urban-granny)
▷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나 이전 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제적, 문화적 향유를 누렸던 세대가 손자를 보기 시작했다. 며느리와는 거리를 두고 딸과는 독립을 추구하는 이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고 한다. 또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초등 의무교육 혜택, 중학교 입시 폐지 1세대, 고교 평준화 1세대를 보내면서 평등 의식을 주입받았고 대학시절에는 미니스커트, 장발, 청바지, 고고장, 음악다방 등 새로운 문화를 향유한 세대이며 동시에 군사독제와 현대사의 격동을 체화하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자의식이 강하고 생활을 개척하는데도 적극적인 세대이다.
▶ 사례 - 건강관리에 관심이 높고 여행과 운동 등 취미활동을 즐기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 손주를 돌봐야 하는 할머니들은 육아를 도맡고 있어 유아용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름 - 자녀의 육아보다는 부부중심의 노후의 삶을 영위하려고 함 : 부부 만의 취미생활, 부부동반 여행 등 제 2의 신혼 생활을 보낸다. : 대척점으로 미련없이 관계를 정리하는 부부도 생겨남
- 시니어 제품은 초기에는 요양, 의료 서비스가 주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비만, 피부 관리부터 여성 질환 예방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해주는 5060 전용 토탈 에스테틱숍도 호황을 누림 - 디럭스 유모차 브랜드인 리안은 유모차 광고 모델로 중견 탤런트 선우용여를 기용, 이렇듯 할머니들이 육아용품 시장의 중심에 서면서 '손주 비즈니스'라는 경제용어 까지 등장함 - 50대 이상 여성을 위한 화장품 브랜드 '바이탈 레이디언스'의 경우 미국 화장품 시장 최초로 60대 모델을 전격 기용함 - 2013년 GS숍이 시니어들을 위한 전문 온라인 쇼핑몰인 '오아후'를 오픈 : 인터넷 사용이 서툰 이들을 위해 전화 상담, 전화 주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함 - 시니어 여성들의 의식 전환으로 50대 이상 독신을 위한 중매 컨설팅 회사들이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음 - 반려동물로서 애완동물을 분양하는 5060세대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성장
10. 숨은 골목 찾기 (Playing in hidden alleys)
▷ 골목길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낙후되고 촌스럽던 과거의 이미지를 벗고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획일'보다는 '다양'에 가치를 두는 젊은 소비자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첨단 위치기반서비스기술이 발달하면서 외진 곳도 쉽게 찾아 갈 수 있게 되었다. 개성있는 골목길은 SNS를 통해 대중들에게 퍼져나가고 골목길의 부활은 하나의 트렌드로 잡아가고 있다.
▶ 사례
-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예술촌 : 철공, 기계, 철재공장들 속에서 독립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골목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예술가들이 하나씩 점포를 만듬 - 서울 청파동 '만화의 거리' - 제주 저지예술인 마을 - 전남 구례 '예술인 마을' - 경남 하동군 악양면의 경우 골목길 전체가 갤러리가 됨 : 파손된 벽위에 하동의 대표 작물인 차를 소재로 한 그림을 채움 - 강원도 정선군의 폐광촌 골목길도 벽화 갤러리로 이방인과 지역민을 잇고 있음 -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 옆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 인천의 '숭의 문화 마을' : 기능을 상실했던 전통 시장이 예술, 문화장터로 바뀌고 몇몇 목공예 장인이 생계를 잇던 골목은 목공예 거리가 됨 - 서울 이태원 뒷골목의 경리단길 : 개성넘치는 소규모 가게와 식당들이 있음 - 경북궁 서쪽에 위치한 '서촌' : 개발이 제한된 보존 지역으로 골목 사이사이에 오래된 한옥과 대문등 서울 옛 정치가 남아 있음 - 서울 중계동의 '백사 마을' : 1960~1970년대 서민들의 애환을 간직한 공간 - 인천의 '배다리 마을' : 1970~1980년대를 연상케하는 골목길 사이로 현대식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어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룸 - 서울 성신여대입구역 7번 출구 부근의 '집단 점성가촌' : '미아리 점집'이라고 불리던 이 골목을 관광상품으로 선정하며 테마길로 지원할 예정임 - 서울 성내2동과 천호 3동의 '강품 만화거리' - 인천 송월동의 '동화마을' 개장 : 언덕을 따라 열 개의 테마길을 주제로 구성 동화를 테마로 한 그림과 조형물이 조성됨
중세사회의 교회계급, 영주/군사계급, 농민이 있었다. 농민들은 각종 세금과 11조 부담했다.
11세기 십자군 원정 이후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정기시가 생기며 시장을 중심으로 한 화폐경제로 변모된다. 상업의 활성화는 도시의 성장을 가져왔으며 상인들은 자신들의 단결과 확장을 위해 길드, 한자등을 조직하며 그들의 발언권과 세력을 높여갔다.
상업이 발전하면서 일상의 관행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세 초기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는 교회에 의해 벌을 받아야 하는 행위였으나 이러한 교리는 사라지고 신념, 법등도 상업의 발전에 발맞추어 변해갔다. 영주의 토지에 얽매여서 농사를 지어야만 했던 농민들도 당시 개척지의 증가와 14세기 흑사병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노동자의 지위는 강력해졌으며 그들은 기존의 억압된 환경에서 그들의 지위를 회복하는데 힘을 사용했다.
길드의 구성원들은 도시에서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인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길드는 후에 큰 길드가 작은 길드를 지배하고 장인들이 큰 길드의 직공으로 들어가는 등 길드제도가 변화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프롤레타리아로 등장하기시작한다.
상인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이제 그들은 장사를 위해 안정과 질서를 원했다. 기존의 봉건영주들의 힘이 셀 때는 영주들 간의 경쟁이나 다른 여러 요소들에 의해 제약을 받고 각종 세금의 영향을 받았다. 이제는 전체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앙권력이 그들에게 필요했고 상인들의 자본력과 국왕은 동맹을 통해 기존 영주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또한 당시 전체토지의 1/3이상을 차지했던 교회의 특권을 해체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이는 종교개혁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16~17세기에는 상업의 중심이 기존의 베네치아와 같은 상업의 중심지에서 대서양을 중심으로 진출이 가능한 나라로 바뀌어 나갔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그 중심이 되었고 서인도회사, 동인도회사, 아프리카와 같은 회사들이 등장한다. 스페인의 경우는 페루, 멕시코에서 금광, 은광을 발견함으로써 유럽에는 상업의 발달과 금,은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체적인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물가상승은 토지소유자나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는 제조업자들에게는 이익을 가져왔으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는 실질적인 압박으로 다가왔다. 임금의 상승은 물가상승에 맞추어 올라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상업은 발전되고 기존의 가내수공업의 형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뉴버리의 잭이라는 사람은 16세기 자신의 공장에 200개의 방직기와 600명의 성인남녀와 어린이를 고용하여 일을 했다. 점점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은 사라지고 중간상인과 기업가에 종속되어 임금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 국가의 부의 척도는 금과 은이었다. 그래서 각국은 자국의 금,은이 유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각종 법안과 규제를 만들었다. 보조금과 각종 지원금 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식민지에서 각종 원자재를 들여오고 그들 나라에서는 영주국과 동일한 산업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만들어진 물건을 다시 되 팔면서 그들의 부가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지 않게 하였다. 동시에 상인계급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은 동일시 되어 갔고 무역에 관련된 일이 국가의 주업무가 되어 갔다.
1776년은 미국의 독립 선언, 즉 영국의 중상주의적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발의 해인 동시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세상에 나온 해였다. 이 책에서는 중상주의의 제한, 규제, 금지에 대한 각종 제도에 대해 비판했으며 모든 제도를 없애면서 자연스러운 거래가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 후반에 제1신분이며 2신분이었던 성직자와 귀족이 각각 13만명, 14만명이었다. 민중은 제3신분으로 2500만명의 프랑스 국민 중 95%를 차지했다. 이들 중에서도 약 25만명의 상층 중간 계급인 부르주아지는 제3신분의 나머지의 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나머지 2200만명의 농민들은 각종 세금을 납부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적이지 않은 사회에서의 봉건적 법률을 폐기하려 했고 그들의 힘은 증대해지기 시작했고 종교개혁, 영국혁명, 프랑스혁명의 큰 배경에 힘입어 18세기 후반에는 봉건질서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제 대신 이윤창출의 목적으로 상품의 자유교환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체제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체제로 향한 길을 개척하는 과정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과정이다. 교회는 근면, 검소를 강조하고 이전처럼 이윤 추구를 막지 않았다. 또한 초기 상업 축적 자본과 무산노동계급이 결합되면서 자본주의는 다시 상업자본에 다시 부를 축적시켰다.
18세기 말에는 신작물재배, 증기기관의 발명, 운하 및 도로 건설등 농업, 공업, 수송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자본주의의 발전에 부추긴다. 자본가들은 점점 기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많은 노동력을 사려고 했다. 여성, 아동등이 저임금으로 무분별하게 이용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기존의 길드 형태를 노동조합으로 발전 시키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하는 애덤 스미스의 교의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또한 맑스와 같이 전혀 다른 노선으로 향한 이들도 생겨났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착취된다고 생각했으며 엥겔스와 함께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특징을 지적한다. 부는 소수에 집중, 소수의 대생산자가 다수의 소생산자를 눌러 부수고, 기계 사용이 확대되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린다. 또한 자본주의의 풀리지 않는 숙제인 공황이 주기적으로 일어난 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들은 근본적으로 사유재산을 폐지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해방하는 투쟁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자본주의도 힘을 더해 간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에는 트러스트가 독일에서는 카르텔이 산업을 장악한다. 그리고 과잉생산된 상품을 팔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 들고 그들에게 원자재를 들여와 다시 상품을 그들에게 판다. 유럽 국가들은 채 20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술 몇 병과 천을 가지고 영토를 넘기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아프리카 전역을 합병, 분할한다.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 중세사회에는 교회계급, 영주와 군사계급 그리고 일하는 농민들이 있었다. 전체 영지 중에 1/3은 영주에 속해있는 직영지였으며 농민들은 자신들의 보유지 뿐만 아니라 영주의 직영지 노동도 해야 했다. 그리고 교회에는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내야 했다.
상인이 나타나다.
# 11세기 십자군 원정에 의해 상업은 크게 발전했고 12세기에는 서유럽에 변화가 일었다. 중세 초기는 지역의 농산물을 취급하던 소규모 주시였다면 대상인들이 동방,서방,북방,남방에 들어오는 해외 상품을 팔았던 대규모 정기시가 생겨났다. 상업이 발전함에 따라 화폐가 사용되어 지고 중세 초기의 자급자족하던 장원의 자연경제는 세계의 화폐경제로 변모했다.
도시를 가다
# 상업 증대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도시의 성장이다. 상인들은 장사 확장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도시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길드’ 또는 ‘한자’라고 불린 조합으로 뭉쳤다. 상인들은 점점 도시에서 발언권이 세졌고 그들의 관리가 되었다.
낡은 것을 대체한 새로운 관념
# 중세 초기에 교회는 돈을 빌려 쓰는 대가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을 중대한 범죄로 여겼다. 당시 교회의 말은 곧 법이었다. 하지만 고리대금에 대한 교리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일상의 상업 관행”이 등장했다. 신념, 법, 공통의 생활 양식, 인간 관계 등이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면서 수정됐다.
농민이 속박을 부수다
# 시장이 성장하고 농민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과 영주가 가져가는 부분을 제외한 곡물은 모두 팔 수 있었고 그 대가로 화폐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개척지가 많이 생겨나면서 각종 부과금이 면제되는 곳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14세기에는 흑사병으로 전체 인구의 약1/3의 줄어들었다. 노동력은 부족하게 됐고 노동자의 지위는 강력해졌다. 서유럽 전역에서 잇달아 일어난 반란에서 농민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획득하거나 유지할 수 없었던 양보를 폭력으로 얻어 내는 데 그 힘을 사용했다.
외지인은 일할 수 없다.
# 특정 도시에서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수공업자 길드라는 조합을 결성했다. 그들은 도시에서 자기 직업을 계속 독점하기 위해 싸웠고 외부 사람이 그들의시장에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길드 중에 큰 길드의 조합원들은 자기 길드를 지배하고 시 정부까지 배타적으로 지배하게 되고 실질적으로 도시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길드 제도는 붕괴되고 장인들과 직인들의 조합원에 포함되지 못한 노동력 뿐인 이들인 근대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하게 된다.
국왕이 납시오
# 중세 말인 15세기 무렵이면 국민이 탄생한다. 중간 계급들은 그들의 장사를 위해 질서와 안정을 원했다. 여러 곳의 영주들의 갈등은 상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오기 때문에 강력한 중앙 권력이 필요했다. 도시와 봉건영주가 서로 갈등이 생길때 국왕은 도시의 동맹자가 되었고 그 대가로 국왕에게 이런 저런 대출을 해주었다. 그리고 커지는 왕국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조언과 원조를 부르주아지에게 의존했다. 재판관, 장관 공무원들은 부르주아지 출신이었다. 또한 교회는 또 다른 봉건 영주로서 전체 토지의 1/3을 차지했기에, 신흥 중간계급은 교회의 특권을 무너뜨려야 했다. 그리고 그 투쟁은 종교개혁이라는 가면을 쓰게 되었다.
부자는
# 상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금과 은이 필요했고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의 발견은 또 다시 상업을 한 층 발전시켰다. 콜럼버스는 15세기 사람들에게는 인도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실패했다면 멕시코, 페루의 광산에서 스페인으로 은이 흘러가던 16세기에는 그 진가가 인정되었다.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가 이동되었다. 기존의 베네치아와 같은 상업으로 연결돼 있던 도시에서 대서양이 새로운 대로가 되었기에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의 상업이 두드러졌다. 16~17세기에 서인도회사, 동인도회, 동부지중해, 아프리카와 같은 회사가 생겨났다.
가난한 사람, 거지, 도둑
# 멕시코와 페루에서 발견된 금,은은 유럽으로 흘러들어오고 엄청난 물가 상승을 일으켰다. 물가상승은 토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상인들의 이익을 가져왔지만 임금 노동자는 고통을 받았다. 임금의 인상은 물가인상을 따라오지 못했다. 즉,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압박으로 다가 왔다. 그리고 이에 따라 토지는 돈을 노리고 매매하는 투기꾼의 투기 대상이 됐다.
일 손 구함 - 두 살짜리도 괜찮음
# 노동자가 한 가지 특수한 작업만 되풀이해 그 작업에 숙달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생산에 속도가 붙었다. 뉴버리의 잭이라는 인물은 기존과 다르게 200개나 되는 방직기를 설치한 자기 소유의 건물에서 약 600명의 성인 남녀와 어린이에게 일을 시켰다. 이때는 16세기 초로 300년 후 공장 제도의 예고편이었다.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중세의 독립 수공업자들은 차츰 사라져가고, 그 대신 자본가이자 상인이자 중간상인인 기업가가 등장하고 이에 종속된 임금 노동자가 나타났다
황금, 위대함, 영광
# 한 나라의 부는 금, 은의 양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금, 은을 해외로 반출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제정였다. 그리고 자국 산업 보호 및 육성을 위해 독점권이나 숙련노동자 대우정책등을 펼쳤다. 식민지의 경우에는 종주국의 공업과 경쟁할 수 있는 어떠한 공업에도 진출하는 것을 막았으며 식민지에서는 모자, 모직물, 철제품 제조를 금지했다. 식민지는 원자재를 만들고 종주국으로 보내고 종주국에서 만든 상품을 다시 수입해야 했다. 국가와 상인계급의 이익은 동일시되어 갔고 무역과 무역과 관계되는 모든 일을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주업무가 되었다.
우리를 내버려 둬라
1776년은 미국인에게는 독립 선언, 즉 영국의 중상주의적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란의 해였다. 그리고 경제학적으로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해였다. 그 책은 중상주의의 3R정책인 제한, 규제, 금지에 대한 반란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혜를 주는 것이든 금지하는 것이든 모든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면, 알기 쉽고 단순하며 자연스런 자유의 제도가 저절로 확립된다는 것이 퍼져 나갔다.
옛 질서는 변했다
성직자와 귀족은 특권 계급으로 각기 제1신분, 제2신분이라고 불렸다. 성직자의 수는 13만명, 귀족은 약 13만명이었다. 민중은 비특권 계급으로 제3신분으로 불렸고 2500만명의 프랑스 국민 중 95%이상을 차지했다. 그들 중에서도 약 25만 명의 상층 중간 계급인 부르주아지는 제3신분의 나머지 사람들보아 부유했다. 땅에서 일하는 농민은 약 2200만명이었다. 이들이 국가에는 시금을 성직자에게는 십일조를, 귀족에게는 봉건 부담금을 납부했다. 부르주아지는 저술가, 교사, 판사, 제조업자, 은행가 등 이미 돈을 가지고 있는 계급이었다. 그들은 봉건적이지 않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봉건적 법률을 폐기하려 하였다. 중간 계급의 힘은 점점 증대해 고된 투쟁을 전개하며 세 차례 결정적인 전투를 치렀다. 종교개혁, 영국혁명, 프랑스혁명이었다. 18세기말에는 그들의 힘은 봉건 질서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해졌고 부르주아지는 봉건제 대신 이윤창출의 목적으로 하는 상품의 자유 교환에 기초한 전혀 다른 사회 체제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바로 자본주의다.
돈은 어떻게 생겨났나
노동자는 토지나 도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에만, 즉 생산수단과 분리될 때에만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 생산수단을 빼앗겼기 때문에 노동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로 향한 길을 개척하는 과정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과정이다. 상인, 제조업자, 은행가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성직자의 종교적 가르침도 변화가 필요했다. 교회는 근면, 검소를 강조하게 되었고 이윤 추구를 이전처럼 막지 않았다. 초기 상업 축적 자본과 무산 노동 계급이 결합되면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고 이것은 다시 부의 축적에 이바지 했다.
공업, 농업, 수송의 혁명
18세기 말에 증기기관이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고 농업기술과 도구 역시 발달하였다. 그리고 철도와 증기선도 등장했다.
그대들이 뿌린 씨를 다른 사람이 거둔다네
자본가들은 인간의 안녕보다는 기계의 안녕에 더 관심을 가졌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많은 노동력을 사려고많 했다. 여성, 아동의 노동력도 무분별하게 이용되었다. 산업은 탄광 지역 근처로 옮겨갔고 농촌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산업에서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노동자들의 단체는 기존의 길드형태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조합으로 발전했다.
누구의 자연법칙인가?
고전학파의 창시자라고 부를 수 있는 애덤 스미스의 교의와 리카도, 맬서스, 제임스 밀, 매컬록, 존 스튜어트 밀 같은 고전 경제학자는 서로 같은 의견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일반적은 원리는 일치했다. 19세기 후반에는 고전경제학이 영향력을 잃기 시작하고 보호무역을 강력히 옹호한 리스트와 같은 고전학파의 무오류성을 믿지 않은 사람들의 수가 늘어 났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맑스는 노예 사회와 봉건 사회에서 노동자가 착취당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노동자가 착취된다고 생각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파멸을 부르는 자본주의 생산체제라며 그 특징을 지적했다.
부는 소수의 손에 집중, 소수의 대생산자가 다수의 소생산자를 눌러 부수고, 기계 사용이 확대되면서 더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린다. 그렇게 대중의 빈곤은 심화되고 해결되지 않는 공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을 하였으며 근본적으로 사유 재산을 폐지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해방하는 투쟁을 이어 나간다.
할 수만 있다면 합병할 텐데
19세기 후반에는 미국에서는 트러스트의 시대였고 독일에서는 카르텔의 시대였다. 대기업은 소기업을 합병하면서 거대해졌고 독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과 더불어 새로운 힘인 신용 제도가 본격적인 무대의 장에 등장했고 신용은 자본의 집중을 돕는 특수한 도구가 되었다.
거대해진 자본주의에서 문제는 과잉 상품의 딜레마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은 식민지였다. 1870년 이후 영국,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은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 들었고 미국은 1890년대에 동참한다. 이들은 식민지에서 원자재를 들여와서 가공후 다시 식민지에 되팔며 잉여생산을 소비했다. 그리고 유럽국가들은 술 몇병과 천 등으로 영토를 넘기는 조약에 서명하게 된다. 그리고 20년이 채 되지 않아 중앙 아프리카 전체는 합병되고 분할되어 갔다
1.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 중세 사회는 기도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 교회 계급과 군사 계급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이뤄졌다.
- 서부, 중부 유럽의 농토는 대부분 '장원'이라는 지역들로 나뉘어 있다
- 땅은 방목지, 목초지, 삼림, 황무지, 경작지로 되어 있었고 방목지, 목초지, 삼림, 황무지는 공동으로 사용했으며, 경작지는 두 부분으로 나뉨, 한 부분은 보통 전체 영지의 1/3을 차지 하며 영주에게 속한 '직영지' 였으며 다른 부분은 토지에서 실제로 노동하는 농민들이 보유했다.
- 장원 제도의 주요한 특징이 있다.
: 첫째, 경작지를 두 부분으로 나눠서 한 부분은 영주 자신이 보유해 영주만을 위해 경작했고, 다른 부분은 여러 농민들에게 분배됐다.
: 둘째, 토지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밀집된 경구가 아니라 흩어져 있는 지조로 경작됐다는 것
: 셋째, 농노가 단지 자신의 보유지만이 아니라 영주의 직영지에서도 노동을 했다.
- 항상 영주의 직영지를 먼저 갈고, 씨 뿌리고 먼저 보호해야 했다.
- 봉건 시대에는 토지만이 거의 모든 필요한 재화를 생산했고, 그래서 사실상 토지만이 부의 열쇠였다. 부의 척도는 단 한 가지, 즉 보유한 토지의 양으로 결정됐다.
군역의 대가로 토지를 보유한 제후와 귀족들은 다시 비슷한 조건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토지를 하사했다.
- 교회에는 진보적이고 생기가 있었지만 다른 일면도 가지고 있었다. 성직자의 결혼을 금지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단지 교회 토지를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또 교회는 '십일조'로 재산을 늘렸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의 소득에 대한 10퍼센트의 세금이었다. 한 유명한 역사가는 그것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십일조는 오늘날의 어떤 세금보다도 훨씬 더 부담이 큰 토지세, 소득세, 사망세로 이루어졌다"
- "봉건제는 최후의 수단으로, 흔히 환상에 불과한 보호의 대가로 유한 계급들이 노동하는 계급들을 쥐락펴락하게 하고, 경작자들이 아니라 정복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토지를 주는 조직에 토대를 두었다.
2. 상인이 나타나다.
- 봉건사회 초기에는 장원 촌락은 그 자체로 거의 완벽했다. 장원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고 소비했다. 단지 약간의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지역 차원에 한정된 '국지적 시장'이 있었다.
- 시장을 더 확대하지 못하게 한 또 다른 장애물은 열악한 도로 조건이었으며, 두 부류의 강도 때문이었다. 하나는 보통의 강도, 다른 하나는 상인을 멈춰 세우고 열악한 도로를 지나는 대가로 통행세를 징수한 봉건 영주였다.
- 하지만 상거래는 계속 증가했다. 11세기 십자군 원정에 의해 상업은 크게 발전했고, 12세기에는 서유럽에 변화가 일었다.
- 십자군 운동의 진정한 힘과 그것을 이끈 활력은 특정 집단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에 주로 바탕을 둔다.
첫째, 교회였다. 물론 종교적 동기가 분명했지만 교회는 세력 확장을 원했고, 기독교 세계가 넓어질수록 교회의 권력과 부는 커졌다.
둘째, 아시아의 이슬람 세력권과 매우 가까이 있었고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둔 비잔틴 제국과 비잔틴 교회(그리스정교회)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십자군을 세력 확장의 기회를 여겼던 한편, 그리스 정교회는 자기 영토에 이슬람 교도들이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단으로 보았다.
셋째, 전리품을 원했거나 빚을 진 귀족과 기사, 유산이 적거나, 전혀 없었던 젊은 자제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십자군이 토지와 부를 얻을 기회라 생각했다.
넷째, 이탈리아 도시들인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였다.
콘스탄티노플은 얼마동안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기 때문에 동방의 향료, 비단, 모슬린, 약재, 양탄자는유리한 처지에 있던 베네치아 사람들이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는 주로 무역 도시였기 때문에 소아시아 연안 도시들과 무역할 수 있는 특권을 원했다. 이탈리아의 무역도시들은 십자군을 상업상의 이익을 얻을 기회로 여겼다.
- 11세기와 12세기의 남방의 지중해에서 무역이 부활했다면, 북방의 바다에서는 무역의 가능성이 크게 열리고 있었다. 브루게에서는 유럽과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세계가 접촉했다. 북방의 상품을 운반하는 상인들은 알프스를 넘어온 남방의 상인들과 샹파뉴 평야에서 만났다. 이 곳의 많은 도시들에서 대규모 정기시가 열렸다.
- 예전에는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못하고 꾸준한 상품 수요가 없어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상설 시장이 열릴 수 없었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의 정기시는 안정된 상설 교역으로 가는 일보 전진이었다. 과거에는 주시만으로도 간단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주시로는 늘어나는 교역 기회를 붙잡을 수 없었다.프랑스의 푸아가 그런 지역이었는데 왕에게 1년에 두 차례의 정기시 설립을 요청했다.
- 중세 초기의 주시는 소규모였고, 대부분이 농산물인 지역 상품을 취급했다. 반면에, 정기시는 대규모였으며 알려진 모든 세계에서 들어오는 도매 상품을 취급했다. 정기시는 소규모 떠돌이 행상인과 지방의 장인과는 구별되는 대상인들이 동방과 서방, 북방과 남방에서 들어오는 해외 상품을 사고 팔았던 유통 중심지였다.
- 당시 영주는 방방곡의 상인들이 정기시에 오라고 초청했으며 상인들이 정기시에 들어오고 떠날 때 경호를 제공했으며 정기시에 가는 도중에 정례적으로 요구했던 부과금과 통행세를 면제했다. 이는 정기시에서 장사하는 사인들은 영주에게 특권의 대가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들어오고 떠날 때와 물건을 창고에 보관할 대 세금이 있었고, 판매세와 접포세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 정기시는 매우 커서 자체적으로 치안대와 특별 경비대, 재판소를 두었다.
- 정기시는 상업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행해진 금융 거래 때문에도 중요했다. 정기시의 중심에 있었던 환전상의 건물 안뜰에서는 갖가지 주화의 무게를 달고 평가하고 교환했다. 또 대출을 교섭하고, 묵은 빚을 갚고, 신용장을 갱신하고, 환어음을 자유롭게 유통했다. 당시의 은행가들은 이 곳에서 광범한 금융 거래를 했다.
이런 사실은, 경제 생활이 거의 화폐 사용 없이 이루어진 구래의 자연 경제가 상업이 발전함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하다.
- 화폐가 도입되면 이제 단일한 거래가 이중의 거래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시간과 노력은 절약됐다. 이렇듯 화폐 사용은 상품 교환을 더 쉽게 함으로써 상업을 촉진했다. 상업 발전은 다시 화폐 거래를 확대하는 반작용을 한다. 12세기 이후로 시장 없는 경제는 많은 시장이 있는 경제로 변모했다. 그리고 상업이 발전하면서, 중세 초기의 자급자족하는 장원의 자연 경제는 상업이 팽창하는 세계의 화폐 경제로 변모했다.
3. 도시로 가다.
- 상업 증대의 가장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도시의 성장이었다.
- 상업이 급속하게 확대되는 곳에서 도시가 성장한다고 한다면, 중세에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에서 성장하는 도시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곳이 도시가 제일 먼저 성장한 곳이었다.
p44
두 도로가 만나는 곳이나 가 어귀 또는 땅의 경사가 적당한 곳에서 도시가 성장하고 수가 늘어났다. 그런 곳이 상인들이 찾던 장소였다. 게다가 그런 곳에는 보통 대성당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성시"라 불린 요새화한 곳이 있었다. 오랜 여행 중에 휴식을 취하거나, 얼어붙은 강이 녹기를 기다리거나, 진흙 길을 다시 지날 수 있기를 기다리는 떠돌이 상인들은 자연히, 둘러쌓인 요새의 벽 근처나 대성당의 그늘에서 멈추었다. 점점 더 많은 상인들이 이런 곳에 모여들면서 "성곽 밖", 즉 '바깥쪽 성시'가 생겨났다. 오래지 않아 '성곽 밖'이 구래의 '성시'바체보다 더 중요해졌다. 얼마 안 가서 '성곽 밖' 의 상인들은 보호를 위해 그들의 도시 주위에 방어벽을 쌓았는데, 그것은 아메리카 식민 개척자들의 말뚝 울타리와 비슷했다. 그러자 '성시'의 벽은 불필요해져서 허물어뜨렸다. 옛 '성시'가 밖으로 확대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곽 밖'에 흡수됐다. 사람들은 옛 장원의 촌락을 떠나 활독적이며 성장하는 이 도시들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상업이 확대되면서 일자리도 많아졌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갔다.
- 상인들은 주시와 정기시에서 교역을 할 때 자신들의 증대된 재력으로 흥정을 더 잘 하기 위해 뭉쳤다. 이제 자신들의 방식을 속박하는 봉건적 제약에 부딪힌 상인들은 장사 확장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도시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길드' 또는 '한자'라고 불린 조합으로 뭉쳤다. 상인들은 싸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었던 곳에서는 만족했다. 그러나 상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곳에서는 싸웠다.
- 일분 봉건 주교와 영주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감지할 만큼 눈치가 빨랐던 사람들은 일어나고 있던 일을 최대한 이용해서 결국은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일조차 언제나 타협을 통해 평화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역사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과 부유한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하려 한다.
-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의 도시 공화국들처럼 어떤 도시들은 완전히 독립적인 도시가 됐다. 자유 코뮌들의 경우에는 독립의 정도가 다양했다. 봉건 영주에게서 간신히 몇 가지 특권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는 영주의 지배를 받는 도시들도 있었다. 그러나 ㅗㄷ시의 권리가 어떠했든지 간에, 도시의 주민들은 도시의 권리를 확인하는 특허장을 가지려고 했다. 특허장은 영주나 영주의 대리인들이 도시의 권리를 망각하는 경우에 분쟁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
- 도시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상인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도시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었고, 상인들의 길드나 한자는 온갖 특권을 획득했다. 흔히 상인 길드는 도시의 도매업을 독접했다. 만약 여러분이 상인 길드의 조합원이 아니라면 교역을 할 때 불리했을 것이다.
- 게임의 모든 단계에서 길드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길드는 배타적인 독점을 통해 시장을 지배했다.
- 길드 상인들은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누가 도시의 관리가 돼야 할지에 관해 발언권이 셌다. 어떤 곳에서는 관리들이 상인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상인 자신이 관리가 됐다. 그리고 몇몇 곳에서는 길드의 조합원만이 도시 정부의 관리가 될 수 있다고 법으로 명시했다.
- 상인과 도시가 획득한 권리는 상업이 부의 원천으로서 더욱 중요해졌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도시 상인의 지위는 화폐 재산이 토지 재산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더욱 중요했음을 보여 준다.
4. 낡은 것을 대체한 새로운 관념
- 돈을 빌려 쓰는 대가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을 중대한 범죄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중세 초기에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을 금지했다. 그렇게 한 권력은 교회였다. 기독교 세계 전역에서 교회라는 권력의 말은 곧 법이었다.
- 상업이 소규모였고 이윤을 위해 돈을 투자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봉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돈을 빌리고자 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돈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돈을 빌리고자 했을 것이다..그런 상황에서는 도와 주는 사람이 그의 불행에서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세의 관념이었다.
- 성직자들은 돈은 아무 것도 낳지 못하며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자를 받는 것은 분명이 잘못된 일이었다. 이것이 교회가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말한 것과 교회가 행한 것은 달랐다. 주교와 왕은 이자를 받는 것에 격노해 그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그들은 그 법을 맨 먼저 어긴 사람들에 속했다. 그들 자신이 이자를 붙여 돈을 빌리고 빌려 주었다. 다른 고리대금업자들을 탄압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위험이 컸기 때문에 보통 고율의 이자를 요구한 소규모 대금업자였던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자로서 미움받고 박해받고 어디서나 경멸당했다. 반면,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어마어마한 사업을 벌인 대규모 대금업자들이었다. 그리고 흔히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을 때, 채무자들을 정신적 형벌로 위협해 이자를 징수한 사람은 교황 자신이었다.
- 점차 고리대금에 관한 교리는 사라지고, "일상의 상업 관행"이 등장했다. 신념, 법, 공통의 생활 양식, 인간 관계, 이 모든 것이 사회가 새로운 발전 단계에 접어들면서 수정됐다.
5. 농민이 속박을 부수다.
- 시장이 성장했다. 그래서 농민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과 영주가 가져가는 부분을 제외한 곡물은 모두 팔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농민은 화폐를 얻을 수 있었다. 농민은 아직 화폐 사용에 완전히 익숙하지는 못했지만 점점 더 익숙해졌고, 그래의 사회 구조에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계급의 사람들, 즉 상인이 나타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인은 번영하고 있었고, 근처에 있는 상인들의 도시는 자기와 같은 농노들도 가끔 돌아다니며 꽤 괜찮게 살기도 하는 굉장한 곳이었다. 이제 이처럼 변해 가는 세계에서 농노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기회가 찾아왔다. 이제 농노가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곡물을 지배한다면, 영주에 대한 부역의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는 야각ㄴ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만약 영주가 농노의 부담을 가볍게 해 주지 않으면, 그 때는 도시나 개척지로 달아날 수 잇었다.개척지에서는 자기와 같은 농노들이 숲을 개간하고 있었고, 성가신 부과금이 면제되는 땅뙈기를 그 댁가로 받고 있었다.
- 14세기 유럽에서는, 20세기의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 도구를 사용해 4년여에 걸쳐 조직적인 살육이 자행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 수의 갑절이 넘는 사람이 흑사병을 절멸했다.
- 죽은 사람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살아 남은 사람의 노동이 더 커다란 가치를 지니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의 대가로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받을 수 있었다. 토지는 여전히 재앙을 겪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러나 토지는 생산성이 잇을 때만 가치가 있었고,. 토지를 생산적으로 만드는 필수 요인은 노동이었다. 노동의 공급이 감소하면서 노동의 상대적 수요가 증가했다. 농민의 노동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가치가 있었다.
- 14세기의 농민 반란은 달랐다. 노동의 부족 때문에 농업 노동자의 지위는 강력햊ㅆ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서유럽 전역에서 잇달아 일어난 반란에서 농민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획득하거나 유지할 수 없었던 양보를 폭력으로 얻어 내는 데 그 힘을 사용했다.
6. 외지인은 일할 수 없다.
- 전에는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내 수요를 위해 필요한 물품을 생산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외부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 물품을 생산했다. 자재와 작업 도구를 소유하고 완제품을 판매하는 직업적인 장인들이 물품을 만들었다. 이 장인들은 그들보다 먼저 단체를 결성한 상인들을 본따서 길드를 조직했다. 특정 도시에서 똑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수공업자 길드라고 불린 동업자 조합을 결성했다.
- 길드 조합원들이 자기들이 담당하는 공업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 단결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길드 조합원들은 도시에서 자기 직업을 계속 독점하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외부 사람이 그들의 시장에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 길드는 조합원의 작업의 질에 관심을 가졌다. 길드는 모든 조합원은 도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규칙을 강요함으로써 조합원이 자기 일을 잘 알도록 했다. 게다가 길드는 조합원의 작업을 엄격히 감독함으로써 손님이 질 낮은 제품을 구입하지 않도록 보증했다. 길드에서는 규칙과 규제가 있었고 이런 규정을 어기면 무거운 벌을 내렸다.
- 길드 제도의 근본 특징 두 가지는 장인들이 서로 평등했다는 것과 노동자들이 쉽게 장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길드 제도의 전성기였던 13~14세기에는 대체로 그랬다. 그 뒤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어떤 장인들은 번창해서 더 큰 세력을 얻었고, 작은 길드의 장인들은 큰 길드를 지배하는 장인들을 위해 임금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자체 상품을 거래하는 수공업자 길드가 도시 상업을 독접했던 초기의 상인 길드를 대체했다. 그러나 일부 길드 상인은 상업 일반에 손을 떼고 특정 품목 하나만 취급함으로써, 사라지기는 커녕 거대 상인 길드로 번창했다.
- 큰 길드의 조합원들은 자기 길드를 지배하다가 곧 시 정부까지 배타적으로 지배하게 됐다. 그들은 도시를 사실상 지배하게 됐다. 거의 모든 곳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사람들은 대개 시의원과 동일시 됐다.
- 길드 제도가 붕괴하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장인과 직인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원래 도제-직인-장인이 통례였다. 이제 그것은 도제 - 직인으로 변했다.
- 장인들과 직인들의 조합원들,, 여기에 속하지 못한 노동자들..가진 것이라곤 노동력뿐이었고 살기 위해서는 고용주와 유리한 시장조건에 의존해야 하는 근대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한다.
- 봉건 영주에게서 도시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서는 상인, 장인, 노동자 할 것 없이 부유하거나 가난한 도시민이 힘을 모았다. 그러나 승리의 열매는 상층 계급들에게 돌아갔다.하급 계층에게는 단지 주인만 교체됐다는 것을 깨달았다.14세기 후반에는 이런 강력한 지배자들에 대한 소규모 장인들의 원한과 질투가 결합되면서 계급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 길드는 점점 힘이 약해지고.. 후에 도시는 다시 외부의 지배 즉, 군주, 제후의 지배를 받게된다.
7. 국왕이 납시오!
- 중세말인 15세기 무렵이면 국민이 탄생한다. 국민의 구분이 뚜렷해진다. 국민 문학이 생겨난다. 공업에 대한 국가 규제가 지역적 규제를 대신한다. 국법과 국어, 심지어 국교가 나타난다. .. 그들은 나라 전체의 군주인 국왕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 도로에서 강도와 통행세를 없애야 한다고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상품이나 돈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혼란과 불안정은 장사에 해롭다. 중간 계급은 질서와 안정을 원했다.
- 봉건 영주들 간의 투쟁은 누가 이기든지 지역 주민들에게는 흔히 재앙이었다. 사업에 필요한 도로를 따라 여러 곳에 서로 다른 봉건 영주들이 버티고 있었던 것은 상업을 어렵게 만들었다. 중앙의 권위로서 국민 국가가 필요했다. 봉건적 혼란을 탈피하고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최고 권력이 필요했다. 바야흐로 강력한 중앙 권력이 등장할 때가 무르익었다.
- 도시가 봉건 영주에 맞서 싸울 때 국왕은 도시의 강력한 동맹자였다. 봉건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모두 왕권을 강화시켰다. 도시주민들은 국왕이 도와 준 대가로 흔쾌이 돈을 빌려 줌으로써 국왕을 도왔다. 이것은 중요했다. 돈이 있으면 국왕은 봉신들의 군사적 도움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국왕은 충성에 의존하지 않고 급료를 지급한 훈련된 군대를 고용할 수 있었다.
= 돈 있는 사람들은 즐겁게 돈을 내놓았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들은 국왕에게 이런 저런 대출을 해 준 것은 그 대가로 명백한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 국왕은 필요한 화폐를 부르주아지에게서 얻었고, 커지고 있는 왕국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조언과 원조를 갈수록 부르지아지에게 의존했다. 국왕의 재판관, 장관, 공무원을 부르지아지 출신이었다.
- 교회는 엄청나게 부유했다. 교회ㅡㄴ 모든 토지의 1/3에서 1/2가량을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에도 교회는 정부에 세금을 내려 하지 ㅇ낳았다. 국왕은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미 엄청나게 부유한데도 계속 부유해지기만 하는 교회가 세금을 많이 냄으로써 국가의 운영비를 보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517년 마루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의 교회 문에 '95개 조'를 붙임.
- 교회는 쓸모가 줄어들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이미 권력을 잃었을 것이다. 사실 교회는 전에는 교회가 교육을 완전히 지배했지만, 이제는 상인들이 설립한 독립 학교가 개교했다. 전에는 교회법이 최고였지만, 이제는 상없회의 필요에 적합한 옛 로마법이 부활했다. 예전에는 교회만이 국사의 운영을 도울 수 있는 교육받은 사람을 배출했지만, 이제 상업 실무로 훈련 받았고, 나라의 상공업에 필요한 바를 아는 새로운 계급의 사람들에게 군주는 의지할 수 있었다.
- 교회는 그 자신이 봉건 영주로서 토지의 1.3을 소유했으며 교회재산의 대부분을 나라 밖으로 유출했다. 신흥 중간계급은 각 나라에서 봉건제를 쓸어버리기 전에 그 핵심 조직, 즉 교회를 공격해야만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 투쟁은 죵교의 가면을 썼다. 종교개혁이라고
8. 부자는...
- 주화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주화 속에 들어 있는 금이나 은의 양을 줄이는 것을 뜻한다. 한 개의 주화에 들어 있던 은을 쓸모 없거나 질 낮은 금속을 섞어서 두 개의 주화에 들어가도록 나누면 국왕은 한 개의 주화 대신 두 개의 주화를 가질 수 있었다. 주화의 가치가 더 작다는 것은 같은 주화로 전보다 더 적은 물건을 사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물가가 오르는 것이다.
- 국왕들은 주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자신들이 직접 이익을 얻는 다는 것만 보았다. 화폐의 가치가 급격하게 변하면 상업이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물가가 오르면 가난한 사람들과 고정적인 수입을 가진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 - 상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금과 은이 매우 필요했던 이 시기에, 상업의 발전 자체가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발견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 발견은 거꾸로 상업을 더 한층 발전시켰다. 400년 이상 지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콜럼버스 발견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15세기 사람들에게 콜럼버스는 인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멕시코와 페루의 광산에서 스페인으로 은이 흘러들어가던 16세기에 와서야 콜럼버스 '발견'의 진가가 인정됐다'
- 동방으로 가는 옛 통로를 터키인들이 점령했다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엄청난 가격을 매기는 것도 이제 주요하지 않았다. 희망봉을 거쳐 동방으로 가는 통로를 발견했기 때문에 터키의 호의에 기댈 필요가 없어진 상인들은 베네치아의 독점을 깨뜨렸다.
- 이제 상업의 흐름은 변화했다. 전에는 베네치아와 남부 독일의 도시가 지리적 위치 때문에 그보다 서쪽에 있는 여러 나라보다 유리했지만, 이제는 대서양 연안의 나라들이 유리했다. 베네치아와 상업으로 연결돼 있던 도시들은 이제 상업의 중심에서 떨어져 나갔다. 대서양이 새로운 대로가 됐으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의 상업이 두드러졌다.
-16세기와 17세기에 설립된 회사들 중 몇몇 회사의 이름은 그 회사들이 무역이나 식민지 사업 또는 이 두가지를 동시에 수행했던 곳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일곱 개의 '동인도'회사가 있었고, 그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회사였다. 네 개의 '서인도'회사가 있었고, 그것들은 네덜란드, 프ㅏ랑스, 스웨덴, 덴마크에서 설립했다. '동부지중해'회사와 '아프리카'회사도 인기가 있었다.
9. 가난한 사람, 거지, 도둑
-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상인들이 상업으로 거대한 재산을 쌓는 동안, 스페인 사람들은 그들의 국고에 화폐를 늘릴 수 있는 더 간단한 방법을 발견했다. 스페인 탐험가들은 무역 이익을 가져다 줄 인도 항로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우연히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다. 멕시코와 페루에는 매우 귀중한 금, 은 광산이 있었다. 그것은 약탈하면 그만이었다.
- 이렇게 많은 은이 유럽에 흘러 들어오자 엄청난 물가 상승이 생겼다.
- 당시 농민은 지주 계급이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지대 때문에 물가가 비싸다고 비난한 반면, 기사는 터무니없는 농산물 가격 때문에 지대가 비싸다고 주장했다
- 이러한 물가 상승의 결과 이익을 얻은 사람은 상인들이었다. 그들의 지출은 늘어났지만 사업에서 얻는 수익은 더 크게 증가했다. 이익을 얻은 또 다른 집단은 생산비는 고정돼 있지만 생산물 가격이 상승한 사람들이었다. 즉 과거에 정한 지대로 토지를 오랫동안 빌리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버터, 밀, 보리따위를 크게 오른 가격에 팔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 이와 반대로, 임금 노동자는 고통을 받았다. 물가 사승의 시대는 거의 언제나 임금 상승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임금은 물가처럼 상승하지 않았다. 즉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압박으로 다가왔다.
-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다른 종류의 엔클로저(울타리 치기)가 있었다. 그것은 양을 치기 위한 엔클로저였다. 양털 값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영주들은 농경지였던 자신들의 토지를 양 치는 목장으로 바꿈으로써 더 큰 화폐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다. 이 때문에 그 토지에서 살아온 농민들은 직업과 생계를 잃었다.
- 가혹한 지대 징수가 있었다.
- 이 시대에 일어난 한 가지 중요한 변화에 주목하라. 토지는 토지에 투여한 노동량 때문에 중요해진다는 낡은 개념은 사라졌다. 상공업의 발달과 가격 혁명은 화폐를 인간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제는 토지가 소득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일반 재산을 다루듯이 토지를 다루는 법을 알게 됐다. 토지는 돈을 노리고 매매하는 투기꾼들의 투기 대상이 됐다.
10. 일손 구함 - 두 살짜리도 괜찮음
- 어떤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면 작업을 나누어 시킬 수 있다. 각각의 노동자가 한 가지 특수한 작업만 되풀이해 그 작업에 숙달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따라서 생산에 속도가 붙는다. 팽창하는 시장에 필요한 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야 했다. 진취적인 중간상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 뉴버리의 잭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수공 기술자에게 원자재를 주고 그들이 각자 자기 집에서 일하게 한 대다수의 다른 중간상인들과 달리, 그는 200개나 되는 방직기를 설치한 자기 소유의 건물에서 약 600명의 성인 남녀와 어린이에게 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때는 16세기 초였다. 그것은 300년 후 공장 제도의 예고편이었다.
-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중세의 독립 수공업자들은 차츰 사라져가고, 그 대신 자본가이자 상인이자 중간상인인 기업가에 갈수록 종속된 임금 노동자가 나타났다.
당시 조사ㅓ대상 129가구 가운데 96가구에서 16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일하고 있었다. 심지어 2살짜리도 있었다.
11. 황금, 위대함, 영광
- 한 나라에 금, 은이 많을 수록 그 나라는 더욱 부유해진다는 이론을 각국 정부가 믿는다면 그 다음에 취할 조치는 분명하다. 국민들이 금과 은을 해외로 반출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제정하라. 각국 정보는 잇달아 그러한 조치를 취했고, 이제 "금, 은 수출 금지법"은 흔한 것이 됐다.
- 무역수지 흑자에 관한 개념
- 무역수지 흑자를 위해서는 값비싼 상품을 수출하고 필요한 것만 수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액을 금, 은으로 받는 것이다. 이것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업을 장려하는 것을 뜻한다. 공산품은 농산품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외국 시장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 자국의 공업을 발전시킬 방법을 생각해낸다. 각국 정부는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보조금과 높은 관세를 동원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직종이나 새로운 방법을 소개할 수 있는 외국의 숙련 노동자들이 국내에 정착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 어떤 나라에서는 발명가에게 독점권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새롭고 더 좋은 방법을 발명함으로써 국내 산업 육성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기도 했다.
- 식민지가 종주국의 공업과 경쟁할 수 있는 어떠한 공업에도 진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식민지에서는 모자, 모직물, 철제품을 제조하는 것이 금지했다. 이런 것들을 만드는 원자재는 모두 아메리카에도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는 이런 원자재를 영국으로 보내고 영국에서 만든 제품을 다시 사야 했다.
- 영국은 아메리카뿐 아니라 모든 식민지에 이런 태도를 취했다. 예컨대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아일랜드인들이 자국의 양털로 모직ㅇ물을 만들자 아일랜드의 모직물 공업을 억누르는 법률이 통과됐다. 그렇다면 아일랜드인들이 원자재인 양털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었는가? 아니다. 아일랜드의 양털은 반드시 영국에만 팔아야 했고, 영국은 양모를 쓸 수 있는 만큼 다 쓰고 나머지는 다시 수출했다. 이처럼 가격조정은 아일랜드에서는 불가능했다.
- 국가의 이익과 상인계급의 이익을 동일시한 것도 당연했다. 따라서 무역과, 무역과 관계있는 모든 것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이 국가의 주업무가 됐다.
12. 우리를 내버려 둬라!
- 1776년은 반란의 해였다. 그것은 기억할 만한 해였다. 미국인에게는 독립 선언, 즉 영국의 중상주의적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란의 해였다.
- 모든 나라의 경제 학자들에게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해였는데, 그 책은 중상주의의 3R정책, 즉 , 제한, 규제, 금지(restriction, regulation, restraint)에 대한 반란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자유방임은 구르네이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의 구호가 됐다. 그들은 경제학자들 가운데 최초의 '학파'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학파의 회원들은 제한의 철폐, 자유 무역, 자유방임을 요구하느 책과 논설을 썼다.
- 고도 기술, 시간 절약, 일반적인 효율과 그 밖의 다른 이유로 분업이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켰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에 우리가 동의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그것이 자유 무역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분업이 시장의 크기에 따라 경정되기 때문이라고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분업을 생겨나게 한 것이 교환의 힘이므로, 분업의 범위는 항상 그 힘의 크기, 즉 시장의 크기가 결정한다. 시장이 매우 작을 때는, 자신의 노동 생산물 가운데 자기 소비를 넘어서는 모든 잉여 부분을 교환하게 하는 추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만약 생산성 증대가 분업을 통해 일어나고, 분업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 된다면, 시장이 커질수록 분업은 고도화되고 생산성 증가도 두드러질 것이다. 즉, 나라의 부가 증대할 것이다. 따라서 자유 무역이 이루어진다면 시장 가능한 확대될 것이고, 분업도 가능한 한 고도화 할 것이며, 생산성도 최대한 증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무역은 바람직하다.
- 그러므로 특혜를 주는 것이든 금지하는 것이든 모든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면, 알기 쉽고 단순하며 자연스런 자유의 제도가 저절로 확립된다. 모든 사람은 정의의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한은 자기 방식으로 자기의 이익을 완전히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고, 자기 공업과 자본으로 다른 사람이나 법인과 경쟁할 수 있다.
13. 옛 질서는 변했다.
- 성직자와 귀족은 특권 계급이었다. 그들은 각기 1신분과 제2신분이라고 불렸다. 성직자의 수는 약13만명, 귀족은 약 14만명이었다. 비록 그들이 특권 계급이었지만, 모두 부유했거나 모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민중은 비특권 계급들이었다. 그들을 제3신분이라고 불렀다. 2500만명의 프랑스 국민 가운데 그들은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특권 계급 사람들 사이에 부와 생활 양식의 차이가 있었듯이, 비특권 계급들 사이에도 그런 차이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 약 25만 명의 상층 중간 계급인 부르주아지는 제3신분의 나머지 사람들보다 부유했다. 여러 도시에 사는 장인들이 또 하나의 집단이었다. 그들의 수는 약 250만명이엇따. 그 나머지는 모두 땅에서 일하는 농ㄴ민이었다. 약 2200만명 이었다. 그들은 국가에는 세금을, 성직자에게는 십일조를, 귀족에게는 봉건 부담금을 납부했다.
- 농민은 수입 가운데 정확히 얼마만큼 세금으로 납부했을까? 그 대답을 들으면 여러분은 놀랄 것이다. 미루어 계산하면 자그마치 수입의 80% 를 각종 징세관에게 납부했던 듯 하다. 나머지 20%로 자기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했다. 농민이 불평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흉작 때 농민이 굶어 죽은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 시절 수많은 농민이 먹을 것을 찾아 거지가 돼 길거리를 떠돌아다닌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 부르주아지는 누구였을까?
그들은 저술가, 의사, 교사, 변호사, 판사, 공무원, 즉 교육받은 계급이었다. 또한 그들은 상인, 제조업자, 은행가, 즉 이미 돈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돈을 갈망한느 계급이었다.다른 무엇보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실제로는 더이상 봉건적이지 않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봉건적 법률을 폐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꽉 끼는 봉건적 복식을 벗어버리고 헐렁헐렁한 자본주의 이투로 바꿔 입을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경제의 영역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중농주의자들과 애덤 스미스의 저작에 표현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사회 여역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볼테르, 디드로 등 백과전서파의 저작에 표현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공업에서 자유방임은 종교와 과학에서 "이성의 지배"와 짝을 이루었다.
- 부르주아지는 토지를 거의 소유하지 않았지만, 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구가에 돈을 빌려 주었고 그 돈을 돌려받고 싶었다. 그들은 정부가 공적 자금을 우둔하고 소모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반드시 파산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정부 업무에 대해 잘 알 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저축을 염려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권력을 원했다. 그들이 재산을 가졌다. 그들은 특권을 원했다. 그들은 정부에 빌려 준 돈을 확실히 상환 받고 싶었다. 이런 사항들을 확실히 하기 위해 정부참여권을 스스로 쟁취해야 했다.
- 봉건사회는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안에서 중간 계급 집단이 생겨났다. 중간 계급의 힘은 여러 해에 걸쳐서 점점 더 증대했다. 그들은 봉건제에 맞서 길고도 고된 투쟁을 전개했고, 특히 세 차례 결정적인 전투를 치렀다. 첫째는 종교개혁, 둘째는 영국 혁명, 셋째는 프랑승 혁명이었다. 18세기 말 그들은 마침내 낡은 봉건 질서를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해졌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제 대신, 이윤 창출의 제1의 목적으로 하는 상품의 자유 교환에 기초한 전혀 다른 사회 체제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우리는 그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14. 돈은 어떻게 생겨났나?
- 이윤을 낳는 혹은 기대되는 사업이나 거래에 돈을 쓸 때 그 돈은 자본이 된다. 사용을 목적으로 사기위해 파는 것과 이윤을 목적으로 팔기 위해 사는 것은 차이가 있다.
- 진정한 자본주의 생산 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 유입이 새로 필요했다. 그러한 필요를 충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였다. 칼맑스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의 발견, 원주민 말살과 노예화와 광산에 매장, 동인도에 대한 정복과 약탈의 시작, 아프리카를 상업적인 흑인 사냥터로 만든 것은 자본주의 생산 시대의 장밋빛 여명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런 목가적인 소행들이 시초 축적의 주된 동력이 되었다."
- 이러한 상업, 즉 정복,해적질, 약탈, 수탈은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것들은 막대한 이윤, 엄청난 액수의 화폐를 가져다 줌으로써 자본의 공급을 늘렸다.
- 노동자는 토지나 도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에만, 즉 그러한 생산수단과 분리될 때에만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 노동자는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에,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구입할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한다. 생산수단을 빼앗겼기 때문에 노동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노동자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것인 일할 수 잇는 능력, 즉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 자본주의 체제로 향한 길을 개척하는 과정은 다름 아닌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사회적 생존 수단과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 변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 생산자를 임금 노동자로 변형하는 과저잉다. 직접 생산자, 즉 노동자가 더 이상 토지에 속하지 않게 되고, 더 이상 타인의 노예나 농노나 채무 예속민이 아니게 되면 그가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몸 뿐이다.
- 18세기와 19세기 초반에 다시 엔클로저가 잇어났다. 이 때의 엔클로저는 규모가 컸기 때문에 임금을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토지 없는 불행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토지를 가진 노동자는 이제 토지 없는 노동자가 돼 임금 노동자로서 공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됐다.
- 이 토지가 소수 대농들의 손에 들어가면, 소농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바뀌는 결과가 생겨날 것임이 틀림 없다. 도시와 메뉴팩처링는 성장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와 메뉴팩쳐로 내몰 것이기 때문이다.
- 상인, 제조업자, 은행가가 지배하는 세계는 성직자와 전사가 지배하던 세계와는 다른 종교적 가르침이 필요했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이 노동의 목적인 사회에서 교회는 폭리를 취하는 자들을 비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윤을 얻는 것이 노동의 일차적인 목적이 된 사회에서 교회는 곡조를 바꿔야 했다.
- 청교도의 경우는
"만약 하느님이 어떤 방법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데도, 여러분이 이방법을 거부하고 이익이 적은 방법을 택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명 가운데 하나를 거스르는 것이며, 하느님의 종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하느님이 요구하 실 때 하느님을 위해 그 은총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감리교는.
"사람들이 근면하고 검소해지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을 얻고 저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저축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상 부자가 된느 것이다.
- 칼뱅파(장로교)
"사업으로 얻는 소득이 토지 소유로 얻는 소득보다 많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상인의 이윤이 그 자신의 근면과 부지런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이란 말인가?"
- 초기의 상업에서 시작된 자본 축적과 무산 노동 계급의 존재가 결합함으로써 공업 자본주의가 시작됐다. 공장 제도 자체가 더 많은 부의 축적에 이바지 했다. 저축하고 저축을 재투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된다고 믿으면서 자란 이 새로운 부의 소유자들은 자본을 공장에 재투자했다. 근대 체제는 그런 식으로 탄생했다.
15. 공업, 농업, 수송의 혁명
- 1776년 3월 11일자 <버밍엄 가젯>은 와트씨가 새로운 원리에 따라 제작된 증기기관을 가동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1800년에는 30개 탄갱, 22개 동광, 28개 제철소, 17개 양조장, 84개 면방적 공장에서 증기관을 사용했을 정도로 영국인들에게 와트씨의 "발명품의 중요성과 유용성"은 너무나 분명했다.
- 순무 작물이 도입되면서 그동안 휴경지로 묵혀두던 땅에 사용
- 농업 기술과 과학과 도구의 이 모든 주목할 만한 개선을 대규모로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 엔클로저 운동 덕분이었다. 그것은 구래의 개방 경지 제도, 즉 모든 사람을 위한 공유지 제도에서는 불가능했다.
- 18세기에는 도로 건설 기술이 개선되고, 운하 건설이 시작되었다. 19세기 초에는 머캐덤 도로(밤자갈을 펴고 다져 만든 길)가 출현했고 철도와 증기선도 등장했다.
16. 그대들이 뿌린 씨를 다른 사람이 거둔다네
- 자본가들은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일손'과 기계를 구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점에서는 구별했다. 기계는 경비 지출을 뜻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인간의 안녕보다 기계의 안녕에 더 관심을 가졌다.
자본가들은 최소한의 임금만 지급했다. 그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되도록 많은 노동력을 사려고 했다. 여성과 어린이가 고용됐고 흔히 남자는 집에서 놀았다. 처음에 공장주들은 빈민구제위원회에서 구호 대상 아동들을 노동자로 데려다 썼다. 그러나 나중에는 노동자인 부모의 벌이가 가족을 부양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도 공장과 광산에 들어가야 했다.
- 산업은 탄광 지역 근처로 옮겨갔다. 그리하여 전혀 중요하지 않은 고장이 하룻밤 사이에 소도시가 됐고, 좀더 오래된 소도시들은 대도시가 됐다. 1770년에 영국의 농촌 인구는 총인구의 40퍼센트였다. 1841년에 농촌인구는 26퍼센트로 줄었다.
- 오늘날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이 언제나 존재했던 것처럼 믿기 쉽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에서나 유럽 나라들에서나 보통 선거권은 순조롭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투쟁의 결과였다. 영국 노동자 계급은 차티스트 운동에 참여했다.
- 노동조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래의 직인 조합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노동자 조직의 가장 초기 형태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산업에서 자본의 중요성이 엄청나게 커지자 노동자들의 단체는 길드 형태에서 노동조합으로, 즉 스스로의 힘에 의존해 더 나은 조건을 얻고 노동자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한 업종에서 조직되는 노동자 조직체인 오늘날의 노동조합으로 발전했다.
- 영국에서 처음 일어난 산업혁명은 다른 나라로 확산됐다. 그것은 지금도 일부 나라들로 확산되는 중이다. 그리고 조건이나 부자들의 태도, 또는 통치 집단이 제정한 개혁 법안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영국식 모델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나 노동조합에 맞서는 전쟁이 벌어졌다.
17. 누구의 '자연 법칙'인가?
- 이미 여러분은 고전학파의 창시자라고 부를 수 있는 애덤 스미스의 몇 가지 교의를 알고 있다. 그 밖에 리카도, 맬서스, 제임스 밀, 매컬록, 시니어, 존 스튜어트 밀이 저명한 고정 경제학자들이었다. 그들이 모두 애덤 스미스와 같은 의견을 가졌던 것도, 그들끼리 서로 같은 의견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몇 가지 근본적인 일반 원리에 관해서는 모두 일치했다.
- 예컨대, 성가신 양심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룰지도 모르는 욕심 많은 돈벌레의 주문에 부합하는 완벽한 처방전이 여기 있다. "개인은 누구나 자기가 지배하는 자본을 가장 유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 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가 염두에 두는 것은 진정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에 관해 연구하면 자연히, 더 정확히 말해 필연적으로,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택하게 된다.
- 맬서스에 따르면 노동자 계급이 가난한 이유는 이윤이 너무 높기 때문이 아니라, 인구가 식ㄹ퍙보다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이다. 재난과 질병 말고도 인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은 도덕적 자제라고 했다. 즉 빨리 결혼해서 애를 많이 낳지 말라는 것이었다.
- 애덤 스미스 이후 가장 중요한 고전 경제학자는 데이빗 리카도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1817년에 출판한 책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가 경제학을 과학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 리카도는 노동자가 단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만큼의 임금만 받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동의 자연 가격은 ......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식료품과 필수품과 편의의 가격에 달려 있다. 반면, 식료품과 필수품의 가격이 오르면 노동의 자연 가격도 오른다. 그것들의 가격이 내리면 노동의 자연 가격도 내린다.
- 애덤 스미스와 그 추종자들의 자유 무역 교의에 맞서 보호무역을 강력히 옹호한 리스트는 고전학파의 무오류성을 믿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런 사람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19세기 초반에 그토록 인기 있었고, 그토록 강력했던 고전 경제학은 19세기 후반에는 조금씩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 무렵, 고전 학파가 설명한 원리를 일부 받아들들였으며넛도, 전혀 다른 길을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낸 사람이 등장해 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칼 맑스 였다.
18.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칼 맑스도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처지를 개선하고 싶어했다. 그도 계획되는 사회를 원했다. 그도 모든 사람이 생산수단을 공유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맑스는 어떠한 이상향도 계획하지 않았다. 실제로 맑스는 미래 사회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맑스는 과거 사회에 굉장한 관심이 있었다. 현재 사회가 도래하기 전의 과거 사회는 어떻게 생겨났고 발전했고 쇠퇴했는가? 맑스는 현재 사회에도 굉장한 관심이 있었다. 맑스는 미래 사회를 위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현재 사회 속에서 찾아 내려 했다. 그러나 맑스는 미래 경제 체제를 연구하는 데는 시간을 거의 소비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는 현재의 경제 체제를 연구하는 데 모든 시간을 바쳤다. 그는 무엇이 당시 자신이 살고있던 자본주의 사회의 수레바퀴를 움직이게 하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저작은 <자본-자본주의 생산에 관한 비판적 분석>이었다.
- 맑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노예 사회와 봉건 사회에서 노동자가 착취당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노동자가 착취당한다고 말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는 숨겨져 있고 은폐돼 있다고 맑스는 말했다. 그는 잉여가치설로 착취를 들춰 냄으로써 착취를 은폐하고 있는 장막을 찢어 버렸다.
- 모든 상품은 노동 생산물이다. 따라서 상품에 구현된 노동의 양이 가치, 즉 상품이 교환되는 비율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노동량은 노동이 지속되는 정도인 노동시간으로 측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물건의 가치 크기를 경정하는 것은 그것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의 양 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과 그 밖의 다른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의 비율에 따라 한 상품의 가치와 그 다른 상품의 가치의 비율이 정해진다.
-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노동자는 자유인이다. 임금 노동자는 노예제에서 처럼 주인에게 속해 있지도 않고 농노제에서처럼 토지에 얽매여있지도 않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을 고용하는 사람에게 고용됨으로써만 먹고 살 수 있다. 물론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자본가에 파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상품인 일할 능력, 즉 노동력을 판매한다.
- 맑스의 잉여가치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어떻게 착취되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해결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팔기위한 재화의 생산, 즉 상품 생산과 관계가 있다. 어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 노동자는 생산수단(토지,도구, 공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는 살기 위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상품, 즉 노동을 팔아야 한다. 노동자가 지니고 있는 노동력의 가치는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총액이다. 노동력의 경우에 그 가치는 노동자의 생계에 필요한 재화의 총액이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오직 노동자의 생계에 필요한 재화의 총액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이 총액을 하루 중 일부 노동 시간만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는 일부 시간 동안만 자신을 위해 일한다. 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것과 노동자가 생산하는 상품의 가치 사이의 차이가 잉여가치다.
잉여가치는 사용자, 즉 생산수단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잉여가치는 이윤, 이자, 지대 즉 유산 계급의 수입 원천이다.
잉여가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 착취의 척도다.
- 맑스와 엥겔스에게 특히 거슬린 것은 "부르주아의 동정과 지갑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는 지배 계급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1879년 11월에 베벨과 립크네히트 등 독일의 다른 급진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점을 분명히 밝혔다. "거의 40년간 우리는 계급 투쟁이 역사의 직접적인 추진력이라고 강조했으며, 특히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재이 근대 사회 혁명의 위대한 지렛대임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운동에서 이러한 계급 투쟁을 제거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협력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터내셔널이 결성됐을 때 우리는 전투 구호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정식화했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계급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들은 너무 무지해서 자신들을 해방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인도적인 부르주아와 쁘띠 부르주아가 위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협력할 수 없습니다.
- 일찍이 1848년에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고, 그것의 파멸을 부르는 자본주의 생산 체제 자체 내의 특징을 지적했다.
부는 갈수록 소수의 손에 집중된다.
소수의 대생산자가 다수의 소생산자를 눌러 부순다.
기계 사용이 확대하면서 더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산업 예비군"이 창조된다.
대중의 빈곤이 심화한다.
갈수록 파괴적인 시스템 고장 - 공황이 주기적으로 되풀이해 일어난다.
- 무엇을 위해 스스로 훈련할까?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을 위해서? 물론 그렇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투쟁을 위해서도 훈련한다. 사유 재산을 폐지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완전히 해방하는 투쟁이 그것이다. 자본주의의 모든 해악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맑스와 엥겔스의 핵심적인 강력적 목표는 착취의 토대인 사유재산의 폐지였다.
19. 할 수만 있다면 행성도 합병할 텐데...
- 영국의 제조업자들은 산업혁명을 제일 먼저 시작한 데서 득을 봤다. 19세기 전반기에 영국의 고민은 제조한 상품을 어디에 판매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알려진 모든 세계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충족할 만큼 빨리 생산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영국이 주창한 자유 무역 정책을 미국은 결코 '채택하지'않았는데, 알다시피 미국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보호무역이 실시됐다. 미국의 관세 장벽은 남북전쟁 후에 더욱 높아졌다. 러시아에서는 1877년에 일반적인 보호 관세가 시행됐다. 이제 영국 제조업자들은 더 이상 마음껏 활약할 수 없었다. 그들은 관세 장벽을 뛰어넘느라고 애를 먹었다. 이제 영국의 최대 고객들은 더는 영국 상품을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상품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었다. 관세 장벽 뒤에서 '유아기'의 산업은 급속하게 '거대'산업으로 변하고 있었다.
- 1870년 이후 시기는 미국에서는 '트러스트'의 시대였고 독일에서는 '카르텔'의 시대였다. 경쟁은 독점으로 대체됐다. 거물들은 조무래기들을 사업에서 몰아냈다. 대기업은 소기업을 찌그러뜨리거나 합병함으로써 거대해졌다. 어디서나 성장, 합병, 집중이 있었다. 거대 산업이 형성되고 있었고, 독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트러스트의 첫 "아메리칸 뷰티"는 석유에서 피어났다. 1904년에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내 정제 등유의 86퍼센트 이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석유 부문에서 일어났던 일은 강철, 설탕, 위스키, 석탄 등의 분야에서도 일어났다. 경쟁의 혼돈을 독점의 질서로 바꾸려 했던 곳 어디에서나 트러스트가 형성됐다.
- 트러스트는 "가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수정"할 수 있었다. 다른 대규모 조직도 그랬다. 트러스트는 미국적인 것이었다. 기업 연합, 기업 합동, 제휴, 카르텔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했던 다른 형태의 독점체였다. 카르텔은 독일에서 가장 흔했다. "카르텔이라는 용어는 같은 사업 분야의 기업가 들 사에 맺은 협약을 바탕을 둔 제휴를 말하는데, 기업가들이 법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시장에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서로 연합하는 것이다.
- 자본주의 생산과 더불어 전혀 새로운 힘, 즉 신용 제도가 무대에 등장한다. 이것 자체가 경쟁이란느 전투에서 새롭고 강력한 무기일 뿐 아니라, 많든 적든 사회의 표면에 흩어져 있는 가처분 화폐를 끌여들여 개별적이거나 연합한 자본가들의 손안에 쥐어 주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신용은 자본의 집중을 돕는 특수한 도구다.
- 산업은 주로 신용 대출로 운영됐고, 그래서 신용 제도를 지배한 금융업자들은 권좌에 앉아 있었다. 대기업가든 소기업가든, 독점 자본가든, 기업가는 자기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화폐가 필요하면 공손하게 은행가를 찾아야 했다.
화폐는 어디에서나 필요했고 국가의 화폐는 은행가의 그고 안에 있었다.
- 1911년 뉴저지 주지 우드로 윌슨은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에서 거대한 독점은 금융 독점이다. 그것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오랜 다양성과 자유와 개인의 발전하는 에너지는 생존할 수 없다. 산업 대국을 지배하는 것은 그 나라의 신용 제도다. 우리의 신용제도는 집중돼 있다. 따라서 국민의 성장과 우리의 모든 활동은 소수의 사람들이 좌우하고 있따.
- 이 소수의 사람들, 즉 금융가들은 흔히 산업 독점체의 우두머리들이기도 했다. '임원 겸직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금융계의 중요 인물들이 'ㅣ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즉 그들의 은행이 거액을 투자해 큰 트러스트나 거대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 우리 금융 과두제에서 지배적인 인물은 투자은행가다. 연합은행, 신탁회사, 생명보험회사는 투자은행가의 도구다. 투자은행가가 지배하는 철도 회사, 공기업, 산업 기업은 그 부하들이다. 이 은행가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중개인일 뿐인데도 주인처럼 산업계를 주무른다. 그래서 그들의 참여나 승인이 없다면 실제로 어떠한 큰 사업도 성공적으로 착수할 수 없다. 물론 이 은행가들은 유능하고 재산도 많다. 그러나 그들이 사업을 지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초인적인 력이나 거대한 재산이다. 아니다. 그들이 가진 힘의 열쇠는 결합, 즉 철저하고 폭넓은 집중이다.
- 과잉 상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던 산업가들에게 스텐리는 해결책을 암시하고 있었다. 식민지가 해답이었다.
다른 산업국가의 산업가들도 같은 시기에 같은 문제에 대해 같은 답을 발견했다. 1870년 이후 영국,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은 과잉 상품을 위한 시장, 즉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차례는 1898년에 왔다. 식민지는 과잉 상품을 위한 시장에 돼 준다는 점 말고도 또 다른 쓸모가 있었다. 대량 생산에는 막대한 원자재가 필요했다. 어디서나 독점 자본가들은 고무, 석유, 기름, 질산염, 설탕, 면화, 광물 등의 원자재가 필요했다. 산업가들은 필수적인 원자재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필수적인 원자재 산지를 소유하거나 지배하고 싶었다.
- 원자재 산지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제국주의를 성립시킨 둘째 요인이다. 제국주의를 초래한 셋째 요인이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적당한 시장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또 하나의 잉여였다. 그것은 과잉자본이었다.
- 직접 투자로 얻는 이윤 외에도, 차관의 대부분을 종주국에서 소비하도록 규정했다. 그래서 영국은 아르헨티나에 철도 건설 차관을 제공했을 때, 대부분의 철도 레일이나 차량 등을 영국에서 구입하게 함으로써 제조업자들에게 이익을 안겨 주었다. 이처럼 과잉 자본의 수출은 결국 과잉 상품의 수출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투자가와 제조업자는 모두 식민지를 지배하거나 조종하는 정책에 협력하는 것이 공동의 이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근대를 금융자본의 시대라고 할 정도다. 막대한 자본을 지배하는 금융과 이윤을 얻기 위해 그 자본을 활용하는 산업이 결합해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한다.
- 거의 모든 경우에 무역업자나 자본가 회사들은 대리인을 보내거나 탐험가들과 협동하면서 유럽국가들이 아프리카 영토를 분할하고 합병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를 취했다. 탐험가나 대리인이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내륙에 침투해 추장이나 왕에게 천이나 알코올을 선물하면서 소위 합작 회사의 조약에 서명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였다. 서명을 마친 아프리카의 통치자들은 그 조약에 따라 몇 야드의 천이나 몇 병의 술을 받고 모든 영토를 주식회사에 양도했다. 유럽 국가들의 중앙 아프리카 속령은 거의 모두 그러한 권리 증서에 의거하고 잇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포르투갈, 이탈리아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20년이 채 못 돼 중앙 아프리카 전체를 분할하고 합병햇다.
20. 가장 약한 고리
- 경제학자들은 무엇이 자본주의 체제를 움직이게 만드는지에 의견을 일치하지만, 무엇이 그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지에 관해서는 결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 약 90년 전에 토머스 칼라일은 자본주의 체제가 직면한 공황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묘사했다. "방적 셔츠는 어떤 쓸모가 있는가? 한편에는 팔리지 않는 셔츠가 수백만 벌 씩이나 걸려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그것을 살 능력이 전혀 없는 근면하고 헐벗은 사람이 수백만이나 있다. 셔츠는 사람의 몸을 감쌀 때 쓸모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쓸모가 없고 참을 수 없는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21. 그들은 단물을 포기할 것인가?
- 정부가 국민 경제를 계획하면 소수의 손에 결정권을 집중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추구한다. 수많으 개인의 판단과 결정이 기업을 이끌면서 국민 전체의 기술, 정보, 지식을 활용할 때 경제와사회는 최고로 발전한다. 소수 집단은 결코 모든 국민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지도하고 촉진하는 데 필요한 지혜, 선견지명, 통찰력을 지닐 수 없다.
- 이탈리아와 독일이 특히 그랬다. 이런 나라의 자본가들은 자기네 권력을 위협하는 혁명적인 노동자 계급의 저항에 직면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무솔리니의 검은 셔츠단과 히틀러의 갈색 셔츠단이 장차 자신들을 지원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 보답으로 돈과 원조를 제공했다. 그 지원이란 조직 노동자 계급 운동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나라의 지도자들은 약속을 이행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은 이렇듯 반혁명적인 운동이었다. 기존 질서 - 자본가의 권력과 특권-는 안전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일상은 반복되는 '날마다, 늘, 항상' 이라는 뜻입니다. 변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면 우리의 생각 역시 변화 없는 일상, 바로 '날마다, 늘, 항상'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세상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다른 무언가를 찾음으로써 발전하고 변화해 왔습니다. 당연함을, 익숙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가끔 한 번씩은 의도적으로 다르게 삐딱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든 제임스 다이슨은 '다른 환경, 낯선 환경, 새로운 환경' 에 대해서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거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책이 그 한 방법인 듯 합니다.
p94
날개 없는 선풍기가 있지요.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입니다. 이걸 최초로 만든 영국 발명가 제임스 다이슨은 자신의 작업실에 이런 글을 붙여 놓는다고 하지요.
'The first electronic fan was developed in 1882. All chop and no change for 127 years.'
'최초의 전기 선풍기는 1882년에 만들어졌으나 127년간 누구도 '촙촙' 소리를 내는 선풍기를 다르게 바꾸진 못했다.'는 뜻이지요.
◆ de + sign + er (상식파괴자)
'이노 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익숙함의 다르게 보기'를 이렇게 멋진 말로 표현합니다. de + sign + er
사람을 만나 보면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축적된 역량과 경험으로 충분한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자신만의 생각 바로 고정관념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모르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둘러쌓여 있을 겁니다. 단지 내가 둘려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서 탈피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감각과 이성을 갖추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p105
'이노 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입니다. '다르게 보는 걸 즐기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영어 단어 design조차 다르게 볼 줄 압니다. Design은 de와 sign의 조합이라는 것. de는 '파괴하다(destruct)'의 접두어 de이고, sign은 도로의 교통표지나 비상구 표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의 상징, 즉 고정관념이나 통념이나 상식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de + sign은 '상식을 파괴한다'는 뜻을 지닌 것이지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뜻인 거지요. 그럼 디자이너, 즉 designer의 뜻은?
맞습니다. '상식 파괴자' 또는 '창조적인 사람' 입니다.
◆ designer(상식파괴자)의 도구는 Book
상식파괴자는 무엇으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작가는 그 무기로 Book 그 중에서도 인문학을 꼽습니다.
문학은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고, 역사는 '비판적 사고력', 철학은 '합리적 사고력'을 키워줍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문학에 매력을 많이 느낍니다.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표창원 소장의 프로파일링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는데, 프로파일링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배우지만,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문학 작품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범죄자이 심리를 잘 표현해 준다고 합니다.
문학 특히 소설은 허구라고 하지만, 그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직업, 행동양식, 생각패턴 등은 실제 누군가에게 존재하는 혹은 존재할 것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은 소설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저마다의 한 편의 영화를 머리속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 새로운 경험이 상식파괴자의 귀중한 자산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p144
인문학은 일반적으로 문사철로도 좁혀지지요. 문사철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고요. 문학은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고, 역사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주며, 철학은 '합리적 사고력'을 키워줍니다. 창조적 상상력, 비판적 사고력, 합리적 사고력을 통해 증진되고 완성되는 창의력, 진리, 자유, 정의, 평등, 사랑, 공정, 관용 등 위대한 가치는 인류의 창조적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하나로 응축하면 'Beauty'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 Just Do It! , Ready ~ Action!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신에게 매일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제발,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정말 간절합니다. 하지만 신은 답답한 나머지 한 마디 합니다. '제발, 복권을 사거라!'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바로 Action, 실행력입니다. 사람들은 분명히 어떤 것을 이루어낼 역량과 자질이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Choice를 잘하지 못하고 Action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 진리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시작이 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저 저지르고 보는 겁니다. 무책임하긴 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내용에 어울리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최종훈 교수의 인생교훈이 생각납니다.
지금 무엇인가를 망설인다면 Just Do It 하시기 바랍니다. Ready ~ Action!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조언을 저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아쉬움이 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은 이민규의 <실행이 답이다>가 이를 위해서 읽어볼만 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번 다시 들추어 보아야겠습니다.
p112
아인슈타인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박사님은 어떤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까?"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고 하는 군요.
"저는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호기심을 '실행에 옮기는' 능력이 뛰어날 뿐입니다."
◆ 온전한 내 삶을 살기
말은 좋지만 우리는 쉽게 Just Do It!, Action! 하지 못합니다. 혹여나 내가 하는 일이 잘 못 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난처해지지 않을까? 두려움에 망설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행복, 책에 나오는 '좋은 운명' 만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면서 행복하게 살 수 만은 없습니다. 좋은 운명 만을 영위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쓰라린 아픔에 목 메어 울어 보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에 한 숨 짓기도 하고, 복잡한 갈등 상황에서 혼자 깊이 고민해보기도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제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온전한 삶을 살 준비가 된다면, 그때는 기꺼이 Just Do It!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온전한 삶을 살 준비가 되었다면 Ready 되었네요. ~ 그저 Action이 남았을 뿐입니다.
p253
장영희 교수를 그리워하면서 그의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대학 2학년 때 스스로에게 했다는 다짐의 글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읽을 때마다 긍정의 힘과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구절이어서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미국인>은 앞부분에서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하는 문장이 있다. 나는 그 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할것이다, 라고."
오늘은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아쉬워서, 그동안 많이 망설여서, 그동안 많이 후회해서 이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책의 위에 쓰여진 '구본형의 자기경영 1954-2013' 이다.
구본형은 변화경영전문가로 저서와 인터넷 매체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그는 위의 부제가 의미하듯이 2013년에 폐암으로 삶을 정리하였다.
이 책은 구본형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구본형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남긴 604편의 원고 가운데 대표작 60편을 선별하여 제자들이 묶은 것이다. 원고 속에는 그가 삶을 대하는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
책에 대한 편견을 가져서는 안되지만 언젠가부터는 자기계발서는 잘 읽지 않는 경향이 생긴 듯 하다. 그의 책은 많은 부분이 자기계발에 관련된 것이라 잠시 읽기를 망설이기는 했다. 하지만 컬럼 하나를 읽어보니 자기계발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수필과 같은 느낄이 들어서 그 망설임은 해소 되었다.
(논외로 '자기계발' 이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 한다. 나쁜 말이 아님은 확실하지만 무언가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 단어이다. 무엇인가 상업적인 느낌이 들고 경쟁해야 할 것 같고 따뜻하기 보다는 냉정할 것 같은 단어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이라는 표현이 싫다. )
컬럼들을 읽어내려가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하나하나 표시해두고 정리해두었다. 시간 날 때 한 번씩 보려고 한다. 삶에 대한 방향성을 잘 모르거나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일 때 조금은 생각을 거리를 던져주기를 바랄 뿐이다.
책이라는 것은 똑같을지라도 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는 유치란 글귀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는 큰 요동일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요새 복잡한 감정을 살짝 잔잔하게 만들어준 그런 책이었다.
혼자 조용히 정리해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익숙함 속의 낯설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환절기 출근 시간의 싸늘함을 살짝 올라오는 닭살로 느껴본다. 단순히 걷지 말고 엄지발가락이 밀고 다시 발바닥을 땅에 닿게 하는 그 은근한 압력을 느껴본다. 평소에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고 익숙한 길이라도 거기에 서있는 나무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 나무는 어떤 나무인지 한 번 쯤 확인해보는 것이다. 주위의 자연과 환경을 몸으로 느끼고 내 신체의 부분부분의 움직임에 주목해보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한 여자의 동반자로서, 자녀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한다. 무엇보다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계속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추억임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 생각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집중하고 사소하고 소중한 습관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러한 습관들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를 예전에 만났다면 단순한 자기계발이었을 것이지만, 지금 만났기에 '치유'의 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복잡했던 머리가 다소 정리된 기분이다. 차분해지자.
P33
질문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익숙해 신기할 것이 없는 것을 낯설게 보는 훈련으로부터 온다. 나는 이것을 '시인의 시선'이라고 부른다. 수십 번 수백 번 보았지만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들에 우리는 둘러싸여 산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 제대로 보는 순간 우리는 느닷없이 재미있는 세상으로 인도된다.
P36
나이 들어 깨달은 것은 삶이란 눈물, 콧물, 웃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자각이다. 아주 가까이서 그놈을 지켜보고 만져보고 말 시켜보고 핥아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듯이 아주 낯선 얼굴로, 오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쳐다보아야 한다. 낯선 여인이 신비하듯, 낯선 삶이 흥미진진하다.
P54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작가 카잔차키스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조르바는 살구나무 묘목을 심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가 왜 묘목을 심고 있느내고 물었다. 노인이 대답한다.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삽니다."
그러자 조르바가 말한다.
"나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삽니다."
P97
하루에 두 시간은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일에 써야 한다. 두 시간 이상 투입할 수 있으면 더 좋다. 그러나 그 이하로 줄이면 곤란하다. 시작해서 6개월 이내에 스스로 변화를 감지하고 확신을 가지려면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은 써야 한다.
P134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 있는데 1년에 한 번은 가족 모두와 함께 꽤 긴 여행을 다녀온다.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그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다른 비용은 모두 검소하게 쓰지만 가족 여행은 꼭 한다. 가족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많은 기쁨을 공유할 때, 서로를 위한 기쁨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지론은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게 되면, 가족 여행조차 함께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나는 십여 년 정도는 기쁨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쁨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늘 돈과 시간의 덫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멋진 것을 위해 조금씩 돈을 모아가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영화도 같이 보고, 음악도 함께 하고, 먼저 서로 잘 놀아 기쁨을 나누면 웃음이 많아진다. 웃음이 많은 곳, 그곳이 가장 좋은 휴식처다.
P177
어느 날, 중요한 각성이 찾아왔는데, 직장에서의 생활이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간단한 사실이 그것이다. 이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 삶의 3분의 2가 속절없이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이 전율하듯 온몸을 타고 흘렀다.
P208
나는 나를 탐구한다. 나는 매일의 사건들을 애지중지한다. 그래서 이렇게 보고 저렇게도 보면서 나와 나의 삶을 탐구한다. 나를 내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재미있다. 제3의 관찰자가 되어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슬픔과 고독조차도 풍요로운 은총으로 선물처럼 내 생활 속에 쏟아져 들어오고, 불쾌한 일과 황당한 사건조차 웃음의 소스가 된다.
유머란 나와 나에게 닥친 사건을 분리시켜 인지함으로써 웃어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유머를 즐기는 사람이다. 삶에 대해 웃어주자. 웃음으로 나를 탐구하자.
<30대 10년 동안
해야 할 7가지>
1.철학사를 뒤적여 가장 매력적인 철학자 한 ‘분’을 골라라. 그 ‘분’에 관한 두 권을 정독해 그 ‘놈’으로
만들어라. 철학은 땅으로 내려와야 하고, 좋은 스승은 반드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함께할 수 있다. (철학과 윤리)
2.회사 명함 말고, 3년 뒤의 개인 명함을 만들어라. 우리는 이것을 꿈의 명함이라 부른다. 서른이 끝나기 전에 이 꿈을
성취하라. (꿈과 비전)
3.일주일에 두 번은 네 시간만 자라. 그리해 그대의
‘뼈가 아직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 (시간)
4.차 한 대를 사서 적어도 5년 전에는 바꾸지
마라. 10년을 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똥차가 바로
지금의 당신이다. 투자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늘어나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이다. (투자)
5.주식 세 가지를 골라 계속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고 예측해보라. 돈을 걸든 걸지 않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예측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연습이라는 점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
6.10년 뒤에 살 집을 모색해 두어라. 실제로 돌아다니며 적어도 50개 동네와 200채의 집을 가보고 두세 군데를 찍어라.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은
적극적인 기다림이다. (구체적인 장기적 목표)
7.취미 하나를 가져라. 유행과 관계없이 가장 자기다운
취미를 하나를 골라 일주일에 두 번은 즐기도록 하라. (활력을 얻는 소스)
<40대에 10년
동안 해야 할 7가지>
1.자신의 철학을 가다듬어라. 차용한 철학으로는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길을 갈 수 없다.
2.사표를 써라. 직장에서 중역이 되든 나와서 창업을
하든 일단 사표는 써야 한다. 떠남이 목표일 때가 있다. 이때가
그 때다. 떠나지 못하면 모욕을 당할 것이다. 조직의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라.
3.하루의 시간을 완전히 개편하라. 새벽에 일어나고
일찍 자라. 일주일이면 새벽에 일어나도록 바이오 클록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습관이 되려면 반드시 일찍 자야 한다.
4.하루에 두 시간은 자신의 전문성을 위해 투자하라.
R&D없이 어제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상한 논리다.
5.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어라. 아내와 남편에게 가장 매력적인 애인이 되어라. 밖에서 성공하고 안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가정을
얻는 것보다 좋은 투자는 없다.
6.오랫동안 마음에 그리던 집을 사라. 거기서 깨어나고
생각하고 즐기고 잠드는 아름다운 공간을 가족에게 선물하라.
7.취미 속에서 평생 직업의 힌트와 싹을 키워라.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만이 ‘굿 투 그레이트’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끊임없는 실험과 학습이 이 시기의 키워드다.
<50대 10년 동안
해야 할 7가지>
1.자신의 철학을 이웃과 조직에 나누어주어라. 철학이란
삶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다.
2.나의 인생에 감동한 세 명에서 다섯 명의 후배를 만들어라.
실천과 모범이야말로 강력한 설득력이다.
3.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로부터 하루를 시작하라. 만일
저녁에도 그 일을 하지 못했다면 그 일을 마치고 자라. 최고의 수면제다.
4.하루에 한 번 작은 즐거운 일 하나를 만들어라. 언제
어디서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있게 마련이다. 편지, 꽃, 전화, 만남, 선물, 이메일 등. 이 방법을 터득하면,
자신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 하나를 얻은 것이다.
5.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산에 가라. 이날은 꼭
배우자와 진한 사랑을 나누면 좋다. 산을 통해 자연을 만나고 그 정기를 받는 것은 한국에서 태어난 혜택이다.
6.자신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라. 인생이 다 지난
다음에 쓰면 뭘 하겠는가. 쓰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반성이
따르고, 더 좋은 일이 발견될 것이다. 50은 바로 그런
일들을 찾아 빠짐없이 유유히 즐기는 때다.
7.한 달에 한 번은 가장 좋을 때 한국의 산하를 구석구석 뒤지고, 1년에 한 번은 다른 나라를 돌아보고, 매일 30분 이상씩 천천히 걷는 거리의 산책을 즐겨라. 인생은 길과 거리에
수많은 교훈을 남겨둔다.
공부는 끝이 없다고 합니다. 책의 겉표지에에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부하는 인간, 호모아카데미쿠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고시원, 각자의 집, 회사에서 다들 공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왜 공부를 끊임없이 하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지 평생하는 공부를 의미있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근본적인 질문과 그에 따른 자기 성찰이 한 번 쯤은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아무런 목적 의식없이 부모의 강요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삶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입시만을 위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3년 동안 아침부터 자율학습에 정규 수업, 저녁 보충 수업, 야간 자율 학습을 거쳐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해서 어떤 학과를 가야하는지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수능시험 점수에 맞춰서 갈 수 있는 학교에 갔습니다. 학과보다는 좋은 학교를 가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학과에는 상관없이 좋은 학교 보내는 것만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그 당시의 학생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가시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보지는 않았기에 그 당시의 시간이 저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무엇인가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 더 행복하고 뒤를 돌아 보았을 때 그럴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후회를 남기고 싶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덜 후회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봅니다. 저의 두 아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강요가 아닌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는 공부를 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끊임없이 고민해봐야 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약간의 힌트를 얻은 느낌입니다.
이 책은 이미 큰 화제를 이루었던 KBS 1TV의 기획방송 <공부하는 인간>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공부하는 인간>은 각 문화권마다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공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여러 사례와 실험을 통해서 각 문화권의 공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몇 차례 언급한 교육열이 높은 나라 우리나라 한국, 표준과 평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 일본, 우리나라에 구구단이 아닌 십구단으로 유명한 암기의 나라 인도가 동양 문화권으로 등장합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은 대입 시험에 유일하게 철학이 포함된 나라 프랑스, 전 세계인구의 0.2%밖에 되지 않지만 노벨상의 23%를 차지하는 민족인 유대인의 교육 방식을 소개합니다.
동양권과 서양권의 학생들의 공부의 목적은 차이점을 보입니다. 동양의 학생들에게 왜 공부를 하고 성공하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그들은 "그동안 보살펴준 부모와 가족들에게 보답하고, 자신들의 나라에 이바지하고 싶다." 라고 표현합니다. 반면에, 서양 학생들은 "자신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위해서 공부를 합니다." 라는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p290
'집단,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은 남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타인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해도 이를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표현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교만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타인과의 조화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 사회에서는 개인의 만족과 행복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자신을 무조건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높다. 그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공부방식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암기하는 동양, 질문하는 서양' 입니다.
암기와 질문 서로 다른 방식을 중요시 한 공부의 방식은 그들 문화권에서 오래동안 자리잡혀온 전통의 다르기에 자연스럽게 생격났습니다.
296
유교 문화권에서 지식은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지식, 세상에 있는 지식을 최대한 습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개인적인 견해로 사물을 바라보거나 질문을 하기보다는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암기했죠. 그런 학습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전투 능력'과 '논쟁 능력'을 남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삼을 만큼 질문을 매개로 한 토론과 논쟁의 공부 방식을 지향했다. 지식은 세상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을 했고, 이를 찾는 것이 공부의 목표였던 것이다.
동양, 서양의 어떤 방식이 '더 좋다. 좋지 않다.' 그런 개념의 접근이 아닙니다. 이런 접근 역시 절충과 타협을 중요시하는 동양문화의 영향 탓일 수도 있겠지만, 서로의 방식을 어느 정도 융합하고 개인 별, 집단 별로 특성에 따라 선택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인간> 이 책 역시 처음의 접근 이유는 바로 유대인들의 공부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저는 '암기하는 동양'의 문화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장단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단기간의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단연 암기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으로 부터의 주입식 교육 역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지식 습득에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동양, 서양 이렇게 구분이 가능하지만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기준으로 명확히 나눌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양 쪽에 대해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고 왜? 라는 의문으로 주저없이 질문하는 방식으로 맹목적이 아닌 사고하는 공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머리속에만 기억하는 공부가 아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자극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방법일 것입니다.
사고하라! 토론하라! 그리고 질문하고 분석하라!"
MIT 미디어랩의 한 한생이 한 말을 마지막으로 공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겠다.
"저 혼자 일방적으로 배우고 소유한 지식은 결국 제 것이 되지 못해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자기 것이 디죠. 이것은 어떤 학자가 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푸른 유리를 푸르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유리가 여러 가지 색을 통과시킬 때 다른 색은 전부 흡수하고 푸른색만 내뱉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유리가 푸르다고 한느 것이죠. 지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자기가 진짜 갖고 있고 이해한 지식은 우리가 흡수하고 소비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를 투과시켜서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어떤 것이 내 자녀들이 받기를 원하는 교육인가? 마지막으로 다시 질문해 본다.
- 중국의 수험생들이다. 우리나라 역시 고3수험생들이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 잘못된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마음 편하지 않은 사진이다.
- 토론식 수업의 상징이자 대명사가 된 '하크니스 테이블' :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상대의 얼굴을 보며 토론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질문과 의견, 아이디어가 동등하게 오갈 수 있다.
- 해리포터에도 등장한 옥스퍼드 대학교의 식당이다.
옥스퍼드대는 매일 저녁 모든 학생들이 함께 모여 식사는 것이 원칙이다. 그 이유는 나와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과 지적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옆에 앉은 학생이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경제학이나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96
니스벳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이유를 몇 가지 거론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동양인은 서양인과 달리 개인을 넘어 가족, 사회, 국가를 위해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103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동, 서양의 자기소개 방식이 다른 이유는 그들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양 문화는 '개인, 독립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기소개를 할 때도 '나는 성실하다','나는 음악을 좋아한다'와 같이 자신의 성격이나 행동 위주로 설명하고, 동양 문화는 '집단,관계성' 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학교에 다니고, 가족은 몇 명이고, 친구나 가족들과의 관계가 어떠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같은 사회적 관계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려 한다고 했다.
106
공부의 목적 또한 개인을 넘어 가족, 공동체로 확장된다. 동양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학업성취를 이루는 이유는 공동체를 위한 공부의 목적이 아주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08
IQ보다 자제력이 두 배 더 학업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지금 당장 자신의 욕구를 참으면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강한 동기부여를 받아 자제력을 보인 학생이 머리가 똑똑한 학생보다 우수한 성적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강한 동기를 가진 학생일수록 일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며, 좌절을 잘 견디고, 스트레스에 성숙하게 대처하기 때문이다.
113
특히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노력에 대한 신념은 이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중국은 개인이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요, 개인적 또는 환경적인 장애가 있어서도 아니며, 오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116
브라이언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처럼 학생들을 수준별로 나누지 않고 모두 같은 교실에서 동등한 수업을 하는 것이 곧 동양인들이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보다 노력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증거라고 했다.
서양인들은 이처럼 지적 성취가 노력과 의지에 달렸다기보다는 타고난 재능,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양인들보다 노력을 게을리할 수 밖에 없고, 당연히 학업성취 면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9
미국 버클리대학교 수학과 앨런 쇤펠트 교수는 "성공은 보통 사람이 30초 만에 포기하는 것을 22분간 붙잡고 늘어질 수 있는 끈기와 지구력, 그리고 의지의 산물" 이라고 했다. 이 말은 어떤 목표를 이루는 데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보다 그 일에 접근하는 태도, 즉 노력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력이 어떤 경쟁에서 성공을 결정짓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동양인들이 갖고 있는 노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공부를 열심히,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134
서양인은 긍정적인 피드백에, 동양인은 부정적인 피드백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이네 교수는 이런 동/서양의 극명한 차이가 두 문화가 갖고 있는 '능력에 대한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137
동양인은 비판이나 지적을 불쾌하게 여기는 서양인과 달리 이를 수용하는 데 익숙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더 향상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즉, 동양인들은 긍정적인 피드백보다 부정적인 피드백에 강한 동기부여를 받기 때문에 성적이 나빠도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그만큼 높은 학업성취를 이룬다는 것이다.
140
"우리나라는 남들보다 잘하면 위너, 못하면 루저예요."
즉, 동양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표준에 한 번 탈락하면 영원한 실패자로 낙인찍힌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표준, 평균에 속하기 위해 애를 썼다. 동양인들이 이처럼 표준, 평균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는 것은 동양인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44
동양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체면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내가 못하는 부분, 즉 단점에 더 치중하고 단점이 될 수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죠. 동양인들에게 단점이 되는 곳은 더 노력해서 향상시켜야 할 부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동양인들은 성적이 좋을 때보다 나쁠 때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잘하는 과목보다 못하는 과목에 집중해서 성적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45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다.
"천재와 일반인의 차이는 학문에 대한 태도에 있다. 일반인은 자신의 출세와 의식주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공부하지만, 천재는 학문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기에 공부한다."
147
"제게 공부한 세상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저 사실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실들이 서로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 알게 되는 작업이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하려 해도 공부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게 해주니까요."
148
그들은 공부도 여타 다른 일들처럼 흥미와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이 이룬 학업성취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고 여긴다.
163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역대 노벨상 중 23%를 휩쓴 그 기적적인 성취에 감탄하게 된다.
172
<구약성서>에 의하면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고, 그 이후 이 솔로몬의 성전은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20년에 동방박사로부터 유대의 왕이 될 예수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그 아기 예수를 죽이라 명한 헤롯왕(기원전 73 ~ 기원전 4)이 이 성전을 재건했지만, 예수가 죽은 뒤 로마 제국에 의해 다시 성전을 비롯해 예루살렘이 파괴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무려 11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이 도륙을 당하니, 기록에 따르면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제국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피가 강을 이루어 목까지 차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비국을 지켜번 성전의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188
유럽에 기독교 문명이 뿌리를 내리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유대인은 예수를 살해한 사악한 민족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하게 되었고, 그 죄목 아래 유대인들은 수많은 비난과 박해에 시달렸다. 당시 유럽인들이 갖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 벌어진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슬람교도들의 지배 아래 있던 예루살렘을 정복한 십자군은 자신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이슬람교도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가장 먼저 학살했다. 그것도 모든 유대인들을 죽였으니,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반 유대인 정서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다.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유대인 600만 명이 나치의 손에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대학살이 벌어질 때도 유럽인들은 이를 외면했다. 구원, 사랑, 관용, 평화 등을 중시하는 기독교 정신을 지향했던 유럽인들이 이런 나치의 만행을 묵과한 것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던 반유대인 정서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히틀러와 몇몇 나치주의자의 선동만으로만 보지 않는다. 유럽에 팽배했던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1
"유대인들이 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배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1948년까지 국가가 없었으며 여러나라에서 추방당햇죠. 이때 이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식과 기술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필요한 생존 도구였습니다. 교육을 받으면 지식과 기술은 자기 것이 되고, 이것은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자산이니까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투자를 한 것입니다.
192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난을 당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추방을 당했고 홀로코스트를 당하기도 했죠. 유대인에게는 교육만이 새로운 곳에 재정착해서 발전,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나라처럼 졸업장, 성적표와 같은 학력을 증명하는 문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이마저도 유명무실해졌을 때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단순히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최악의 상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 쌓기 교육과 창의성 교육에 몰두한다.
199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떤 내용은 암기한 뒤 2시간을 자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2배나 기억하는 양이 많고, 8시간을 자면 잠을 자지 않는 경우보다 5배 이상 많은 양의 기억이 유지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자녀에게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라고 강요한 부모들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었을 때일수록 자녀가 충분히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당장은 불안하겠지만 잠을 자는 동안 뇌가 활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상태로 재정비되므로 그것이 자녀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200
동양인과 유대인의 공부는 서로 유사한 듯해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두 집단 모두 자녀교육에는 헌신적이지미나 동양인들은 강력한 통제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정하고 이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도록 지시하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의 교육을 한다. 반면 유대인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지시하기보다는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애초에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은 지시하지 않는다.
202
릴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릴리가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또한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매일 거르지 않고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릴리와 함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느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릴리의 부모는 릴리가 어릴 때는 잠들기 전에 꼭 책을 읽어주었고, 오랜 기간 릴리의 학습을 직접 지도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권장하고 아이가 질문할 때 마다 열심히 응대를 해주었다. 또한 릴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었으며, 릴리와 함께 휴일을 보내고, 여행이나 현장학습을 갔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부모가 공부를 중시하고 높은 교육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일방적으로 자녀가 이루엉야 할 목표를 세워두고 학원 수업, 과외 등을 시키며 공부를 강요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부모들보다 교육열이 더 뜨거운지도 모른다.
227
"수업 중에 생긴 의문은 바로바로 질문하고 토론해야 해요. 뒤로 미루면 이 의문을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질문은 전후 맥락, 상황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뒤로 미루면 자기가 왜 그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고, 선생님도 학생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어요. 또 질문이 떠오를 때 바로 묻지 않으면 이 의문이 계속 머리에 남아 수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날 때 곧바로 해야 해요. '이건 좀 바보같은 질문인가?'라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이 떠오르면 그냥 하는 거지, 거기에 의미나 목적은 중요하지 않아요."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이아야말로 이사라엘 유대인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계획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 문화의 일부라고 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아주 얼리 때부터 부모나 교사에게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합니다. '진실ㄹ의 향한 질문'과 '가르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유대인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죠. 그래서 유대인은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합니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윗세대, 권위자, 지식인에게 도전하고 논쟁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지식 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논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주입식, 단순 암기식 교육이 잘 통하지 않죠.
231
우리가 만난 릴리의 아버지도 유대인 공부방식의 근원을 유대교라고 보았다. 그는 공부에 있어 '왜?'라고 질문하는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설ㄹ령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일리가 있더라도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왜?' 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세상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왜?' 라고 질문하며 사고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상상력과 탐구심이 곧 '왜?'라는 질문에서 비롯되고, 이것이 창의적인 생각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공부 철학은 유대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유대교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직접 탐구하면서 '왜?'라고 생각하고, 문제에 직접 맞닥뜨려 학습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유대교입니다."
232
서기 500년 쓰여진 <탈무드>는 총63권에 이르는 방대한 유대교 율법서로, 오랜 세월 <토라>를 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라서 <탈무드>는 일종의 '<토라>해석집'인 셈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모든 내용이 토론과 논쟁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특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41
인도인들이 소를 숭배하는 것도 사라스바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목생활을 했던 고대 인도인들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식량원이었고, 고기뿐만 아니라 배설물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귀한 존재였다. 고대 인도 사회의 흰두교는 제사를 중시했는데, 이 때 최고의 제물로 쓰인 동물이 바로 소 였다.
제사장 자리를 독점하던 브라만들은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많은 소를 제물로 바쳤다. 어느 동물보다 소가 필요했던 인도 사람들은 이런 브라만들에게 불만을 품었다. 여기에 때마침 살생을 금기하는 불교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에 힌두교의 브라만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종교생활에서 살생 금기를 하나의 실천 계율로 택했고, 암소를 성스러운 영물로 신격화하여 함부로 살생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248
고대 브라만들은 자신들의 완벽한 가치를 담은 베다 경전을 '반복해서 소리 내어 외우는'방식으로 학습했다. 이러한 고대 브라만의 전통적인 학습 방식이 지금의 인도 교육에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현재 인도 교육의 핵심은 '암송과 암기'다. 우리는 인도의 여러 학교를 통해 인도 사회가 고대 브라만의 학습방식에 기반을 둔 암송과 암기의 공부를 지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250
"암기 이전에 이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일단 암기하려는 내용을 이해해야 해요. 이해하지 못하면 암기의 효과도 떨어집니다."
"외워서 암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뜻조차 모르면서 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255
일본은 개인이 공동체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가족을 비롯한 어떤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즉, 일본인들은 집단에 동조하고 타인과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성향으로 인해 그만큼 집단과의 친밀도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선배, 윗사람에게 무리한 부탁을 할 수 있고, 반대로 부모나 선배, 윗사람도 자신이나 후배, 부하직원에게 무리한 요구나 지시를 할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은 개인과 집단의 완벽한 융합을 지향하는 사회이다 보니 수직적 상호의존관계, 즉 '아마에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가미카제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고군 함대가 일본 규슈 섬 남쪽을 침입하려 할 때 이들의 상륙을 막은 태풍에서 비롯된 말이다. 일본인들은 예상치 않은 태풍이 몽고군의 침입을 저지하는 것을 보고 이 바람을 '가미카제(신이 일으킨 바람)' 라 불렀고, 필리핀에 상륙한 연합군을 공격할 특공대에 이 이름을 붙였다.
256
일본은 가미카제 특공대에게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고 강조하면서 젊은이들을 선동했고, 아마에 심리에 의한 강한 집단의식을 가진 일본 젊은이들은 머지않아 맞이할 죽음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공격에 나섰다. 또한 가미카제 출격을 거부하는 사람은 천황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반역자로 취급받으며 가장 먼저 출정 대상자로 뽑혀 나갔다.
일본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활약으로 연합군의 30척 이상의 군함과 350척의 전함에 피해를 입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평균연령 20세의 젊은이 5,000여 명이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2,483대의 전투가기가 투입된 가미카제 공격에 성공한 전투기는 244대뿐이고 연합군의 항공모함은 침몰시키지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공격이었다고 볼 수 없다.
258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잘 알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트는 선생님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을 이끌어줄 수 있는 좋은 두구가 되죠. 왜냐하면 노트 필기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니까요. 대부분의 경우 노트를 보면 아이들이 어떤 점이 부족한지,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줘야 하는 선생님에게도 노트는 매우 중요하죠."
일본 학생들이 필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열심히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노트가 과거에 내가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공부했으며, 또 어떤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등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철저하게 자기가 보기 좋도록 정리해놓기 때문에 원하는 내용이나 중요한 내용을 바로 찾을 수 있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여 필기를 함으로써 배운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일본 학생들은 노트 필기에 공을 들였다.
264
일본인들에게 노트는 곧 그들이 지향하는 공부 스타일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집약체이자, 주어진 지식을 최대한 빨리 익히고 습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도구다. 그러므로 일본 사회에서 기록 문화, 필기 문화가 발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265
일본의 집착 문화를 가장 잘 엿볼 있는 것은 '마니아 문화'와 '오타쿠 문화'다. 많은 사람들이 '마니아'와 '오타쿠'를 같은 말로 착각하는데, 둘은 의미가 다르다.
마니아가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대상에 순수한 호기심을 갖고 파고드는 수집가적 기질이 강한 사람이라면, '당신, 댁'이라는 뜻을 가진 오타쿠는 이보다 한 단 계 더 나아가 그 대상을 완벽하게 알기위해 관련 사항까지 모조리 연구, 마니아의 전문가적인 시각을 초월하여 비평가적인 시각까지 지닌 사람을 이른다.
마니아와 오타쿠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 사회에서 마니아와 오타쿠, 특히 오타쿠를 보는 시선이 결코 곱지 않지만, 자신들이 심취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을 능가하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마니아와 오타쿠들은 한편으론 일본 사회가 발전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도 많다.
마니아와 오타쿠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아낌없이 투자하는 대상은 실로 다양하다. 컴퓨터, 게임, 애완동물, 자동차, 전쟁용품, 히트상품, 문신, 가라오케, 스티커, 콘서트, 불꽃놀이, 티셔츠, 미니스커트, 인형, 맥주, 우표, 나비, 점술, 뷰티 등 마니아와 오타쿠들의 관심 대상에는 한계가 없다.
일본의 명문대에서도 마니아와 오타쿠 문화를 엿볼 수 잇는 동아리들이 많다. 도쿄대에는 오리가미를 연구하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오리가미 동아리'를 비롯해 전국의 우동가게에서 파는 우동을 비롯해 편의점에서 파는 야키우동을 모두 시식 후 비교, 분석하는 것은 물론 학교 축제 때 직접 개발한 야키우동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우동부', 대회 출전을 목표로 로봇을 제작하고 공부하는 '로보테크',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포뮬러팩토리', 일본의 신화, 신사, 사원등을 연구하는 '신사,신도 연구회' 등이 있다.
267
일본의 집착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장인을 존경하는 전통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설사 비천한 직업일지라도 조상이나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그 일에 치열하게 몰두하고 기량을 연마하는 장인정신을 높이 사는 전통이 있다. 일본인들이 2대, 3대, 4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것도 이러한 전통때문이다.
특유의 집착문화로 인해 경이로운 필기 문화를 이루어낸 일본,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일본의 필기 문화는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필기식 공부는 스스로 답을 찾지 않고 주어진 지식을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수동적인 학습자세를 형성함으로써 일본인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억제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271
프랑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입시험 때 철학 시험을 보는 나라로, 바칼로레아를 보는 사람은 누구든 철학 시험을 봐야 한다. 그러다보니 프랑스의 고3수험생들은 철학 시험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문제는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은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은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명백한 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의 경계를 규정할 수 있는가?','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락되는가?' 와 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어떤 텍스트를 일방적으로 외워서는 답할 수 없다. 따라서 철학 시험에 대비하려면 많은 사람들고 ㅏ다양한 주제를 갖고 끊임없이 토론하며 사고으 ㅣ폭을 넓혀야 한다. 피에르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토론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니 피에르에게 이 노천카페는 바칼로레아의 '철학시험'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공부방이었던 셈이다.
273
이 학교 철학 선생님을 찾아 수업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처음 생각에 머물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철학은 자신의 생각에만 갇히지 않고 그 생각을 넘어서도록 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죠. 즉, 철학은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한 학문이기 때문에 결과보다 논증이 더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다' 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죠."
275
프랑스의 고3 철학 수업은 학생들을 세뇌시키는 목적이 아닙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모두 같은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대답이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일관된 '예' 나 '아니오'가 아니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278
지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공부'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생각의 교류를 통해 사고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철학이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왜 프랑스 교육의 본질이 철학 교육이고, 프랑스인들이 철학 교육을 중시하는지 잘 알 수 있다.
279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과 교류하는 방법을 익히고, 이런 방법으로 모든 것을 배워나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프랑스 교육과 이스라엘 유대인의 교육은 서로 닮은 듯하지만 다르다. 프랑스의 교육도, 이스라엘의 교육도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갖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학습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프랑스 교육이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적극적인 '협력'의 공부라면 이스라엘의 교육은 진실을 향한 '도전'의 공부다.
281
사람과 사람의 만남, 생각과 생각의 만남, 즉 성공적인 교류를 지향하는 공부방식이 오늘날의 프랑스를 만들었다. 서로 의견을 소통하지 않고 더 나은 사고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인들은 지금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문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수준 높은 교류의 공부는 '살롱 문화'와 관련이 깊다. 흔히 살롱하면 술집, 다방등을 떠올리는데, 프랑스 문화에서 살롱은 단순한 사교장이나 오락장이 아니다. 프랑스인들에게 살롱은 사교의 장이자 대화의 장, 지적 토론의 장, 계층과 계층 간의 이해의 장이었다.
살롱은 남녀노소,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다. 정치가, 귀족, 성직자, 학자, 작가, 시인, 예술가, 관리, 법률가, 상인, 학생, 군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로에 출입했는데, 대부분은 교양과 재치를 겸비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살롱에 들어오면 신분이나 지위,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한 관계 속에 누구나 자유롭게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살롱의 운영자가 대부분 여성이었기 때문에 대화와 토론의 주제가 여주인의 취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었다. 살롱은 원래 무료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프랑스 여성들이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적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해 탄생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창기의 살롱은 매우 여성적인 성격을 띠엇다. 주로 중세 무용담이 섞인 연애담, 달콤한 소설, 문학작품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점차 철학을 비롯해 정치, 사회 등 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벌어지면서 지성인들의 지적 교류의 장으로 변모했다.
살롱은 18세기 계몽사상을 비롯한 새로운 사상이 태어나는 산실이자 이를 전파하는 중개소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형성하는 분수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살롱은 프랑스 문화사와 지성사,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이 크다.
살롱은 성별이나 지위, 출신성분보다는 '재치, 언어 구사력, 바른 예절'을 미덕으로 삼는 비공식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모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생각과 사상을 교환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선, 표정, 억양, 음색 등을 다양하고 실감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건전하고 자유롭게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더 효과적으로 상대와 지적 교류를 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공간 덕분에 프랑스는 화려한 토론 문화를 꽃 피울수 있었다. 이는 프랑스가 다른 서양 문화권의 나라들보다 수준 높은 교류의 공부가 발달한 근원이 되었다.
290
'집단,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은 남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타인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해도 이를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표현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교만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타인과의 조화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 사회에서는 개인의 만족과 행복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자신을 무조건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높다. 그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티븐 하이네 교수가 동,서양인들을 대상으로 긍정적, 부정적 피드백에 따른 동기부여 실험을 했을 당시, 동양인들은 저조한 성적의 원인을 자신의 노력과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서양인들을 시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291
릴리의 아버지는 항상 딸이 끊임없이 질문을 하도록 이끌었다. 릴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왜요?'라고 반문하는 게임을 즐겼는데, 이는 릴리의 아버지가 딸에게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었다.
게임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릴리가 어떤 사안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물으면 아버지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면 릴리는 이 대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왜요?'라고 물었다. 릴리는 아버지가 그녀의 물음에 짜증을 낼 정도로 이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릴리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면 금방 잊어버리고, 세상을 알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 탐구심이 사라진다. 고 생각했다. 그는 유대 문화가 사물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것에서 번성했다고 믿고 있다.
295
배움을 무엇보다 중시한 유교는 지식에 대한 시각도 남달랐다. 지식이 세상 밖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자신보다 먼저 공부해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이를테면 스승이 가르치는 지식을 최대한 많이 습득하도록 장려했지만, 가르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의문을 제기하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즉, 동양의 유고 문화는 잘모로는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을 벌이기보다 이것을 이해할 때까지 자신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96
유교 문화권에서 지식은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지식, 세상에 있는 지식을 최대한 습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개인적인 견해로 사물을 바라보거나 질문을 하기보다는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암기했죠. 그런 학습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전투 능력'과 '논쟁 능력'을 남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삼을 만큼 질문을 매개로 한 토론과 논쟁의 공부 방식을 지향했다. 지식은 세상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을 했고, 이를 찾는 것이 공부의 목표였던 것이다. 다시 스티븐 하이네 교수의 설명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대표적인 학자인 소크라테스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을 한 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한 것이었죠. 소크라테스가 이런 교육방식을 택했던 이유는 학생들 안에 이미 지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98
동양 사회에서 '나'라는 자아는 사회적 맥락 속에 놓여 있는,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동양인들은 개인을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적고, 그만큼 개인의 가치에도 주목하지 않는다. 때문에 개인의 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식도 자기 내부가 아니라 세상 밖에 존재한다고 믿고, 이 지식을 최대한 많이 습득함으로써 더 나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꾀했다.
반면 '개인, 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 문화는 모든 사고, 행위의 기준이 자기 내부에 있다. 개인의 정체성도 동양처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 감정, 성격, 특기, 취미 등 개인의 본질적인 특성에 근거해 인식한다. 서양 문화에서 '나'는 다른 모든 존재로부터 구별되는 최소의 독립적인 단위이자 모든 것의 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성취, 성공의 목적이 개인의 만족, 행복, 발전 등에 있고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선 순위를 자기 자신에게 둔다. 설령 그 사람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301
동양 문화는 어떤 대상을 이해하려 할 때 관찰 대상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 한다. 즉, 동양 문화는 '1인칭'이 아닌 '2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이렇듯 관찰 대상과 자아가 합일 상태가 '되는 것'을 지향하는 동양 문화는 자연계의 작은 부분을 통해 온 우주의 이치와 진리를 엿볼 수 있다는 독특한 우주관을 갖고 있다. 이는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 있고 전체 안에 부분이 들어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동양 사회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유교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라고 강조하고, 온 우주의 진리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어떤 대상과 자아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상태'인 물아일체를 지향하는 동양 문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의 온 우주의 이치와 진리를 담고 있는 하나의 소우주이기 때문이다. 동양 문화가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갈고닦는 수행을 통해 진리 탐구를 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명 서양 문화는 어떤 대상을 이해하려 할 때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접근하다. 서양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관찰하는 사람, 즉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서양 문화에서는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수많은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관찰하고 발견한 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반박하는 토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양 문화가 토론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고, 토론과 논쟁을 많이 할수록 진리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상과 하나가 됨으로써 이해하려는 동양 문화와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이해하려는 서양 문화는 진리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낳았다. 이런 차이는 전혀 다른 공부방식을 지향하게 만들었으니 ,결국 동-서양의 공부방식은 두 사회의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311
동양 사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중국 사회는 문화적 동질성이 높고, 90% 이상이 같은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긴밀한 상호 협조가 필요한 벼농사를 지었다. 때문에 사회적 결속력이 강하고, 공동체와 조화롭게 지내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이런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다른 사람과의 불협화음을 없애고 서로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반면 서양 사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사회는 주로 소규모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공동체와 얼마나 잘 지내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해안가 근처에 위치하여 다른 종족이나 문화와 접하고 갈등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중요한 만큼 이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론과 논쟁이 발달했다. 자신의 생각이 진실이 되게 하려면 자신의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과 논쟁을 벌여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314
동양 문화권에서 성장한 학생들과 서양 문화권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동일한 문제를 주고 한 번은 말을 하면서 풀게 하고, 또 한 번은 침묵하며 풀게 했다. 그 결과 동양 학생들은 말을 하면서 문제를 풀 때보다 아무 말 없이 풀 때 좋은 결과가 나왔고 서양 학생들은 정반대였다. 동양인들에게는 말이 사고력을 저해하는 작용을 했고, 서양인에게는 말이 사고력을 촉진하는 작용을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언어가 동양 문화권에서는 단순한 의미 전달을 위한 수단인 반면 서양 문화권에서는 생각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서양인들은 동양인들과 달리 사고 작용과 언어 작용이 동시에 일어난다. 즉, 서양인들에게 사고는 곧 언어인 셈이다.
316
따라서 어떤 공부방식이 옳다 그르다는 논할 수 없고, 각각 경쟁력과 한계를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동양의 암기를 통한 공부는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높은 학업성취를 이룰 수 있지만, 비판적 사고 없이 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에 창의성이나 상상력 등이 결여되기 쉽다. 반면 서양의 질문을 통한 공부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토론과 논쟁을 벌이기 때문에 창의성, 상상력 등을 향상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암기의 공부만큼 빠른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한 가지 공부방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에 맞도록 공부방식에 변화를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리 장점이 많은 공부방식이라도 상황이나 환경에 맞지 않으면 좋은 공부법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의 공부방식이 여러모로 적절한지 파악한 다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공부해야 만족할 만한 학업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323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토론식 수업은 일명 '하크니스 테이블'이라고 불리는 큰 원형 탁자에서 이루어진다. 하크니스 테이블은 미국의 석유재벌이자 자선 사업가인 에드워드 하크니스의 이름 딴 명칭으로 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원래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수업방식은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1931년 에드워드 하크니스가 이 학교에 찾아와 새로운 방식의 교육방법을 고안하면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학교 관계자들은 여러 아이디어를 냈고, 그 가운데 뽑힌 것이 큰 원형 탁자에서 교사와 12명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수업을 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식이 채택된 이유는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상대의 얼굴을 보며 토론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질문과 의견, 아이디어가 동등하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하크니스는 약속대로 거액의 돈을 기부했다.
드라마틴하게 수업방식을 바꾼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지금까지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덕분에 평범한 학교에서 세계 최고의 명문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이 학교의 수업방식을 도입하면서 하크니스 테이블은 토론식 수업의 상징이자 대명사가 되었다.
326
"하크니스 토론을 하려면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해요. 준비를 하지 않으면 수업시간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나는 이 텍스트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의견을 내놓을게 없다고 하면 수업이 진전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이 전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수업 시간에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하면서 각자의 호기심을 풀고 만족감을 느낍니다."
"사고하라! 토론하라! 그리고 질문하고 분석하라!"
"한국식 교육이 확실히 효율적이긴 해요. 선생님이 앞에서 무조건 설명을 해주시니까 지식 습득도 훨씬 빠르고, 노트에 받아 적기만 하면 나중에 집에 가서 혼자 공부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배움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자기 스스로 단계를 밟아가면서 여기서는 10분간 고민을 하고, 또 여기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질문을 해서 도움을 받는 과정들을 거쳐야 그 지식이 진짜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같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 방식으로 습득한 지식이 오래 기억되고 저의 일부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옥스포드 대학..
"저는 면접을 여러 차례 보았어요. 저는 정치학, 경제학, 철학을 전공하려 했고, 각 전공마다 면접이 있었으니까요. 정치학과 경제학 면접은 특별한 게 없었는데, 철학 면접은 흥미롭고 좀 어려웠죠. 총 두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하나는 '영국에는 7명당 1대 꼴로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윤리적 관점에서 옳지 않다고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였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을 복제할 수 있다면 하겠는가?' 였습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제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고, 면접관들은 수시로 제 주장을 반박하는 질문을 했죠. 그래서 제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하려고 노력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의 어원인 '유니버시타스(universitas)'의 의미가 '배우고 가르치는 자들의 모임'
337
개인교습 방식은 질문을 매개로 토론과 논쟁을 벌여 답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진리를 깨우치게 한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에서 기인하며. 옥스퍼드대에는 창립 때부터 교수와 학생 사이의 토론 문화, 발표 문화가 있었고, 그것이 수세기를 거쳐 지금의 개인 교습을 ㅗ발전해왔다. 그는 이런 특별한 공부방식을 통해 옥스퍼드대가 세계 최고의 지성을 길러내는 대학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341
옥스퍼드대는 매일 저녁 모든 학생들이 함께 모여 식사는 것이 원칙이다. 그 이유는 나와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과 지적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옆에 앉은 학생이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경제학이나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350
MIT 미디어랩
"독자적으로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생각을 교환하며 발전시키죠. 생각을 교환하고 피드백을 받지 않고서는 어려워요 우리 팀 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팀과의 교류가 없었다면 우리 팀 프로젝트의 반 이상은 시작도 못했을 겁니다."
"저 혼자 일방적으로 배우고 소유한 지식은 결국 제 것이 되지 못해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자기 것이 디죠. 이것은 어떤 학자가 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푸른 유리를 푸르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유리가 여러 가지 색을 통과시킬 때 다른 색은 전부 흡수하고 푸른색만 내뱉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유리가 푸르다고 한느 것이죠. 지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자기가 진짜 갖고 있고 이해한 지식은 우리가 흡수하고 소비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를 투과시켜서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355
옥스포드 대학 학장
"사회의 진보는 사상을 가진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그 사상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발전해갑니다. 저는 사고, 학업활동, 학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두뇌에 쌓이는 개인적인 지식은 쉽게 휘발되지만, 여러 사람의 두뇌가 생산하는 사고, 사상은 공유할수록 고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습 형태란 일정 부분 개인적으로 학습하면서 그런 개인이 모여 그들이 성취한 것을 토론하는 활동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대학은 학생들이 각자 배운 것을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직급은 대리다. 회사 생활 5년차에 접어 들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매년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직 개편과 새로운 부서장들을 경험하고, 프로젝트 단위의 업무를 할 때는 각 프로젝트의 리더와 단위 모듈의 리더들과 함께 일을 해 나간다. 그러면서 짧다면 짧은 5년의 시간동안 여러 관리자들을 만나왔다. 자연스럽게 경험한 리더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들의 장단점에 대해서 곱씹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이끄는 힘]의 책을 읽으면서 내 경험과 비교해보면서 읽다보니 단순해 보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현실에 효과적으로 적용되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며, 아직 직급이 낮아서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후배들에 대해서 내가 어떤 선배의 모습, 멘토의 모습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크게 7챕터로 나눈다. 1.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 2. 시간 관리 3. 코칭과 피드백 4. 승계 계획과 위임 5. 평가와 일치 6. 역할 모델로서의 리더 7. 최대 역량 발휘하기
실제로 내가 경험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제시되어진 방법론과 함께 생각해 보려 한다.
[사례1] 몇 년 전에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속칭 '칼퇴'라 하여 '저녁이 있는 삶'의 여유를 즐기며 살아갔다. 하지만 이때 나는 다른 때보다 더 심각한 고민과 갈등이 생겼다. 새로운 업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단순한 업무이고 한 참 업무를 배울 시기에 시간을 허비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당시 나의 결정은 부서장을 찾아가서 다른 업무로 업무 전환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 그 당시 내가 필요했던 것은 두 가지 였던 것 같다. 바로 비전과 자존감이었다. 이 일을 계속하면 바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비전의 부재에서 가져오는 것이었고, 단순한 업무는 내 능력이 이것 밖에 안되나 하는 자존감의 상처의 문제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문제는 개인적의 내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면 리더의 비전제시와 코칭에 있어서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례2]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리더들에게는 배울 점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내가 접한 리더들의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을까?
1) 업무적인 역량이 탁월했다. 2) 내가 실수하는 부분에서 내 탓이 아닌 리더의 범위내에서 해결을 한다. 3) 인간적인 부분 - 가정,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해준다. 4) 리더가 보여주는 솔선수범이 있다. - 강요가 아닌 그들이 보여주는 자신감과 근면함 5) 나에게 어느 정도의 업무 권한을 주고 처리하게 해주는 것이 좋았다. 6)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 칭찬 7) 업무에 대한 각종 보상에 인색하지 않는다.
▷ 한 리더가 위의 모든 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접한 리더들의 모습에서 내가 자극받을 수 있었던 점이다. 그 중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업무 권한을 주고 나를 믿어주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통제 가능한 업무를 가지고 있을 때 만족감이 높다고 한다. 이로써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역할 모델로서의 리더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 조직원들에게 말로는 이런 저런 좋은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리더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정말 치명적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사람들을 지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경험이 증명해주는 듯 하다.
불과 몇 명 안되는 조직이라 하더라도 리더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며, 업무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 때 리더는 그 전의 개별적인 조직원이었을 때 요구되어졌던 것 외에 새로운 많은 것들이 요구되어진다. 조직원일 때,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었으나 리더가 되어서는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리더에게 필요한 업무적인 역량과 리더로서의 덕목이 있는 것이다.
책에서 정리한 정리한 질문 목록과 액션플랜은 리더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좋은 방법론인 듯하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면 업무적으로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리더로서의 덕목이다. 리더로서 후배들과 조직원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부재하면 신뢰를 받지 못한다. "진정성" 어렵지만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 1.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
일상 업무의 압박으로 리더가 조직원들에게 비전을 적절하게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부하직원들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알려주지 못하면 동기 부여에 실패하고, 결국 핵심 인재를 잃게 될 것이다.
# 명확한 비전은 세웠는가? # 비전 달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 비전에 대해 조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가?
☞ 액션 플랜 - 조직이나 부서의 명확한 비전을 서너 문장으로 작성하라. - 비전을 달성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우선사항 3~5개를 나열하라. 현재 위치에서 성공하려면 '핵심 우선사항'은 반드시 해야 하고 뛰어난 결과를 내야 하는 업무여야 한다. 만약 3~5개로 좁히기 어렵다면 '1,2,3군' 분류 작업을 실시하라. -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이 충분히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지 자문해 보라. 더불어 구성원과 주요 관계자들이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에 대해 충분히 의사소통했는지 돌아보라. 또 구성원들이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을 잘 이해하고,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면담을 하라. -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에 대해 정기적으로 의사소통하고 반복적으로 설명하라. 또 비전을 논의하기 위한 행사와 장소를 마련하라. 여기서 질의응답의 기횔를 만들어라. - 회사 밖에서 경영진과 만나 비전과 우선사항에 대해 토론하라. 특히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이 현재의 경쟁 환경, 변하는 세상에 적합한지 생각해보라.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을 갱신하라. 회사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고위 경영전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끄는 데 효과적이다.
◆ 2. 시간 관리
리더는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은 물론 부하직원들의 업무 시간 분배가 비전 달성을 위한 핵심 우선 사항에 부합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 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자각하고 있는가?
# 그 방법이 핵심 우선사항에 일치하는가?
☞ 액션 플랜 - 2주 동안 자신의 시간 사용을 분석하고, 핵심 카테고리로 분류하라. - 분류한 내용이 핵심 우선사항 3~5개와 일치하는지 비교하라. 일치하는 목록과 그렇지 않은 목록을 작성하라. 일치하지 않는 목록은 각기 2군과 3군으로 분류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지, 아예 그만둘지 결정하라. - 일치하지 않는 사항을 다루기 위한 행동 강령을 세워라.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업무는 위임하라. 그리고 핵심 우선 사항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부탁받을 때는 거절하겠다고 결심하라.
- 몇 개월 후 앞의 세 단계를 반복하라. 그러면 자신이 핵심 우선사항에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 평가하라. - 부하직원들에게도 이 과정을 함께할 것을 권장하라.
- 비전을 달성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우선사항 3~5개를 나열하라. 현재 위치에서 성공하려면 '핵심 우선사항'은 반드시 해야 하고 뛰어난 결과를 내야 하는 업무여야 한다. 만약 3~5개로 좁히기 어렵다면 '1,2,3군' 분류 작업을 실시하라. -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이 충분히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지 자문해 보라. 더불어 구성원과 주요 관계자들이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에 대해 충분히 의사소통했는지 돌아보라. 또 구성원들이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을 잘 이해하고,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면담을 하라. -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에 대해 정기적으로 의사소통하고 반복적으로 설명하라. 또 비전을 논의하기 위한 행사와 장소를 마련하라. 여기서 질의응답의 기횔를 만들어라. - 회사 밖에서 경영진과 만나 비전과 우선사항에 대해 토론하라. 특히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이 현재의 경쟁 환경, 변하는 세상에 적합한지 생각해보라.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을 갱신하라. 회사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고위 경영전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끄는 데 효과적이다.
◆ 3. 코칭과 피드백
리더들은 종종 직원들을 적절하게 코칭하지 못하고 연말 평가를 내린다. 이런 방식은 충격과 불쾌감을 야기할 뿐, 인재를 효과적으로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리더는 직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조언과 피드백을 받는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리더는 아무리 유능해도 독선에 빠지게 된다.
# 나는 직원들을 코칭하고 적극적으로 계발하는가?
# 내 피드백은 구체적이고, 시기적절하고, 행동에 옮길 만한 내용인가?
# 나는 직원들에게서 현실적인 피드백을 얻고 있는가?
# 내가 듣고 싶어하지 않을 비판도 할 수 있는 조언자가 주위에 있는가?
☞ 액션 플랜
- 직속 부하직원 개개인의 강점 3~5개를 구체적으로 적어라. 또 업무와 경력 향상을 위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기술이나 업무 두세 개를 적어라. 시간을 내서 직원들의 업무를 직접 관찰하고, 분석의 토대가 되는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 적어도 연말 평가를 하기 6개월 전에는 부하직원 개개인과 이야기를 나누어라. 그 때 당신이 관찰한 결과를 알려주고, 개선의 필요성과 기회를 늘릴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고민하라. - 당신의 강점과 약점을 현실적으로 적어 목록을 만들어라. 이 강점과 약점에 대해 명확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직원의 이름을 최소 5명 적고, 그들을 만나서 당신이 개선할 수 있는 업무나 기술 한두가지에 대해 조언해달라고 요청하라. 마지막으로 도움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라. - 당신의 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계획을 작성하라. 직속 상사나 믿을 만한 동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다. 상황과 직급에 따라 외부 코치를 고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 4. 승계 계획과 위임
리더가 적극적으로 승계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필요한 만큼 업무를 위임하지 못하고 그 결과 의사결정의 병목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핵심 인재들에게 적극적으로 업무 훈련을 시키지 않거나 도전 과제를 안겨주지 않으면, 그들이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
# 요직에 대한 승계 계획을 세워두었는가?
# 나를 대신할 승계자 후보를 생각해두고 있는가? # 그렇지 않다면 왜 못하고 있는가? # 나는 업무를 충분히 위임하고 있는가? # 내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병목 혹은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 액션 플랜
- 당신의 부서나 조직에 필요한 승계 계획 직원 목록을 작성하라. 여기에 당신을 대신할 잠재 승계자가 적어도 두세 명 포함되어야 한다. - 잠재 승계자들이 개선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이들이 훗날 맡게될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어보라. 구체적인 계발 계획을 세우고 다듬어라. - 위임하려는 핵심 업무에 대해서는 직원 목록을 토대로 구체적인 후보와 연결시켜보라. 그리고 업무를 배정하라. - 회사에 중요한 순서를 바탕으로 위임할 업무를 분류하라. 분류 결과를 토대로 어떤 업무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달성되어야 하고 어떤 업무는 '그럭저럭' 달성되어도 되는지 파악하라. 그리고 당신이 어떤 수준의 업무까지 개입할지 생각해보라. 단 '개입'은 직접적인 간섭이 아닌 코칭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업무의 중요성에 따라 정당한 경우에만 코칭을 넘어 직접적인 간섭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이 간섭해도 되는 부분을 파악'하는 데 노력하라. - 다른 리더들도 각자의 부하직원에 대해 동일한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라.
◆ 5. 평가와 일치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므로 리더는 회사와 팀의 비전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비즈니스를 변화에 일치하도록 조율해야 한다.
# 우리 조직의 구조는 비전과 핵심 우선사항에 여전히 일치하는가? # 조직을 백지에 다시 설계한다면, 인적 자원, 핵심 업무, 조직 구조, 조직문화, 리더십 스타일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왜 그런 변화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가?
# 나와 조직에 이 '백지 활동'을 독려하고 있는가?
☞ 액션 플랜
- '백지 활동'의 대상이 될 핵심 사업부문이나 부서를 파아가하라. 승계 계획 직원 목록을 토대로 소규모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라. 최소한 두세 개 사업부문이나 영역에서 전문가들을 데려오는 것이 좋다. 테스크포스 팀에 구체적인 과제를 맡기고, 성역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라. 그리고 그들의 조언을 모두 수용할 수 없더라도,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일부는 반드시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려라. - 적절한 시간을 정하라. 태스크포스 업무가 근무시간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라. 그들의 분석이나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거릴르 두겠지만, 언제든 당신에게 질문하거나 조언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주어라. - 결과에 대한 보고를 받아라. 또한 사후 모임을 통해 당신과 태스크포스 팀이 이를 계기로 배운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 태스크포스 팀의 조언 가운데 적용할 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으로 수립하라.
◆ 6. 역할모델로서의 리더
리더는 모든 구성원들의 관찰 대상이다. 리더의 행동은 리더의 믿음과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직원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그러므로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면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어라.
# 나는 타인의 역할모델이 되는가?
# 내 행동과 말은 일치하는가? # 압박을 받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 내 행동은 내가 말하는 가치관과 일치하는가?
☞ 액션 플랜
- 당신이,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전달한다고 생각하는 주요 메시지 두세 개를 적어보라. 당신의 행동을 직접 관찰하는 부하직원이나 자문역에게 조언을 구해 다음 질문의 답을 찾아라. '당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실제로 전달하는 메시지에 '괴리'가 있지는 않은가?' - 부하직원에 대해서도 동일한 활동을 실행하게 하라.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와 부하직원의 행동에 어떤 괴리가 있는가? 필요한 경우, 신중하게 질문을 던지고 분석하라. - 업무 중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후회할 만한 행동을 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라. 그 스트레스가 초래한 문제 한두 가지를 적어보라. 그 문제가 당신의 업무와 아무 상관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라. 또다시 같은 상황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다른 행동을 취할 것인가? 이 활동을 통해 배운 교훈 한두 가지를 적어보라.
◆ 7. 최대 역량 발휘하기 리더십에 정답은 없다. 성공한 리더는 회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개성에 맞는 리더십 스타일을 계발한다. 자신에게 맞는 리더십 스타일만이 최대 역량을 발휘하고 오래 지속된다.
# 나의 강점, 약점, 열정에 맞는 길을 가고 있는가? # 그렇지 않다면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 # 나만의 업무 스타일을 계발했는가? #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표현하고, 자신감 있게 처신하는가? # 구성원들이 솔직한 의견을 야기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가?
☞ 액션 플랜
- 현재의 업무, 목표와 관련해 자신의 최대 강점과 약점을 각각 세 개씩 적어보라. 이때 '현실'을 확실히 반영하기 위해 상사, 동료, 부하직원, 코치, 또는 자문역에게 조언을 구하라. -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세워라. 여기에는 업무 분담, 조직 내 피드백 구하기, 외부 코치 영입 등이 포함될 수 있다. - 부하직원들도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행동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격려하라. 부하직원을 코칭하는 시간에 행동계획에 대해 논의하라. - 당신이 최선을 다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느끼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어떤 상황이겠는가? 그 상황을 구성한 요소는 무엇인가? 어떤 업무를 하고 있었는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었는가? 당신의 성과를 향상시킨 다른 요인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당신의 열정, 가치관 등 최고의 성과를 끌어내는 요인과 관련해 어떤 교훈을 배웠는가? - 다른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어떻게 동기 부여를 했는가? 당신의 리더십 스타일을 어떠했는가? 그 밖에 어떤 다른 요인 덕분에 상대방의 능력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었는가? 이 상황을 돌아보며 자신의 철학, 가치관, 동기 부여 방식 등에 대해 어떤 교훈을 배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