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까톡~!' 이 왔다.

"여보, 책 주문할 때  박혜란의《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도 같이 해줘."

어떤 책인지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이 올려 놓은 서평을 하나씩 찾아 읽어보고, 내가 주로 이용하는 '요술램프'에 들어가서 목차도 하나씩 살펴보았다. 그 중 눈에 띄는 세 가지가 있었다.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라는 부제, 세 아들이 모두 서울대학교를 나왔고, 그 아들 중 한 명이 40대의 <꽃보다 청춘>의 한 멤버이자 우리에게는 '달팽이'로 유명한 이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양가 부모님들이 유난스럽다고 하는 다섯 살, 세 살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딸을 낳으려고 셋째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의 기대는 없지 않았다. 이게 확률상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추석을 지낸 다음 날에 성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궁금해서 아침부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자 마자 울먹인다. "아들이래~ 엉". 나는 괜찮다고 아기만 건강하면 된다고 했다. 자기도 아는데 자꾸 눈물이 난단다.


다음 날 아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신은 아들 셋을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만 준대. 신에게 선택받은 거야."

"딸들은 툭하면 삐지고 말 안하고 아들들이 차라리 나아~!"

"지금 둘도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셋째는 또 어떨지 너무 궁금하네."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담은《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 이렇게 우리 손에 왔다.

이 책은 사람들이 수식어로 많이 사용하는 '아들 셋을 서울대학교에 보낸 육아법', '이적처럼 아이를 창의력있게 가르치는 법' 에 대한 책은 아니다. 저자인 박혜란이 세 아들들을 키워오면서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먼저 경험을 한 선배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는 형식이며, 세상 부모들이 다 그렇듯이 은근히 아니 대놓고 자식자랑을 하는 그런 책이다. 


엄마가 하루 종일 붙어서 아이를 키운다고 아이들이 모두 문제 없이 크는 건 아니다.

엄마가 취업을 했건 안 했건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안정되어야 한다.


이제 청소해 놨으니까 어지르지 말아야 돼!

이 명령처럼 아이와 엄마를

다 구속하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이 명령이 지켜진다면 곧 아이들의 자유를 빼앗는 꼴이고

만약 안 지켜진다면 

엄마의 짜증이 촉발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명령이다.

비싼 새 옷을 사 입혀 놀이터에 내보내고서는

절대로 더럽히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화는 반드시 말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부모 자식 간의 대화에서 말보다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바로 스킨십인 것 같다.

스킨십처럼 친밀한 대화가 또 어디 있으랴.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놀 수 있는 기간은 대단히 짧다.

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사실 아이들과의 놀이는 끝나고 만다.

그 후에 아이들이 뭘 하며 보내는지 나도 잘 모른다.


아이는 자기가 흥미를 가지면 저절로 배우게 되어 있다.

그걸 엄마의 흥미나 욕심에 맞추어 억지로 가르치려 든다면

역효과만 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중심을 잃는 것이다.


아이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때까지

무엇보다 부모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아이의 작은 몸짓,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보다 

아무 말 없이 틈만 나면 책을 펼치는 엄마에게서

아이들은 지적 자극을 받는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늘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이 문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웬일인지 상당히 생각이 깊은 것 같은 어른들도

부지불식간에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엄마가 없으면 라면 한 끼도 못 끓여 먹는다거나, 엄마가 올 때까지 고스란히

굶는 아이들 때문에 꼼짝달싹 못한다고 넋두리하는 주부가 있다면,

자신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무능력자로 만든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 뒤에

소유욕과 명예욕이 숨어 있지는 않은가. 무엇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을까.


세상에 답이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다.

부모들이 각자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양육에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분명 어떤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부모들은 여러 모로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얼마전에 첫째가 둘째가 다투는데, 형(5살)이 동생(3살)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혼을 낸다. 

순간 깜짝 놀랐다. 내가 첫째에게 했던 그대로 동생에게 하는 것이다. "동생한테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하니 "아빠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라고 한다. "아빠도 다음부터는 그렇게 안 할게, 동생한테 그러면 안돼"라는 말로 마무리 했다. 그런데 이게 나한테는 좀 크게 다가왔다. 정말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고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과 표정과 말투를 그대로 따라한다. 아직 가치판단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 기준은 부모인 듯 하다. 내가 기준을 잘 잡아야 한다. 아직까지도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많이 미숙한데 아이들은 그런 나를 따라온다. 실로 책임이 막중하다.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해본다. 너무 잘해주기만 하면 버릇이 나빠지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너무 틀에 얽매이게 하면 표현을 잘 하지 못할까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몇 가지는 항상 염두해 둘 생각이다.


아이들과 이렇게 교감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기에 그 시간 동안 많은 대화와 스킨십을 통해서 서로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과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닌 그들이 타고난 성향을 이해하면서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 너무 힘들 때는 아빠에게 다가올 수 있게 그 배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글이 쉽고 말은 쉽다. 


우리 막내, 건강하게 내년에 만나자. 사랑한다. 형들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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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줬지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지만, 서로 바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결혼한 지 9년째인 1989년에 아이를 낳았다. 내게 문제가 있어 아이를 못 낳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듣다가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겠는가?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기로 약속했고 실천했다. 그런데 내 어머니도 아내의 어머니도 안계시는 타국 땅에서 아무런 경험도 없이 아이를 기르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 부부는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서로 의논해가며 아이를 키워야 했다. 아내는 워낙 학구적인 사람이라 영어로 된 육아 관련 서적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아이가 백일도 되기 전의 일이다. 저녁때가 되었는데 애를 겨우 재우고는 둘이 소파에 그냥 늘어지고 말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얼마 후 깼는데 그때야 비로소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났다. 어른 둘이 아이 하나를 돌보느라 온종일 굶다니, 초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진을 빼는 상황이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서툴렀고, 잘하고 싶었던 만큼 힘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아내는 교회에서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거기서 알게 된 미국인 노부부가 우리 아이를 보러 오셨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재미있고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두분은 이제 겨우 백일 정도밖에 되지 안 된 아이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 해주시는 것이었다. 어제 동네 가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뉴스 시간에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말이다.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우리 부부에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좀 이상하게 보이나 보네. 아기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지, 아마? 하지만 그렇지 않아. 아기는 우리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고 있어. 그러니까 아기에게 "까꿍!" 이런 것만 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줘. 너희가 학교에서 겪었던 이야기, 읽은 책 이야기, 그냥 서로에게 하듯 해주렴. 그러면 아이는 다 듣고 자란단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렇게 하는거야."

할머니 말씀에 우리 부부는 큰 지혜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까지 우린 그저 아기가 울지 않게 하려고 먹이고 재우는 데만 온 신경을 썼다. 아직 아기가 아닌가. 게다가 잠이 들면 혹시 깰까 봐 까치발로 살살 다니고 그랬을 뿐이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아이 옆에 있는 동안 번갈아 그날 이었던 이야기를 해주고,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를 위한 책만이 아니라 우리가 읽는 전공 책이나 논문도 아이 옆에서 소리내어 읽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 하버드대학 기숙사 중 하나인 엘리엇하우스에서 사감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태어난 아기는 우리 아이가 유일했다. 병원에서 데려오는 날 기숙사 시계탑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앨런 하이머트 학장님의 배려였다. 기숙사 학생들에게도 아기는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였다. 우리가 아기를 안고 식당으로 내려가면 학생들이 전부 와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오늘 아침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무슨 기사가 났니?"라고 묻곤 했다. 그중 어떤 친구는 우리에게 "이 아기 표정을 보면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우리는 그게 우리가 아기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읽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축하며 살짝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가 두세 살이 되자 우리는 상상력을 키우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책들로 골라서 틈날 때마다 읽어주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몇 권을 읽어도 밤이 늦도록 아이가 잠이 들지 않아 곤란하기도 했다. 아이가 빨리 자야 우리도 일을 하는데 말이다.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여전히 말똥말똥한데 오히려 읽어주는 내가 잠이 오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두 권만 읽어줄게"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러면 아이가 "네 권!" 이라고 협상을 해와 세 권으로 조절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아마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 말쯤이었을 것이다. 그날 따라 많이 피곤했던지 내가 그만 책을 읽어주다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결에 누군가 책을 읽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데 실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었다. 하도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라 외워서 말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놀랍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스스로 책을 읽게 하는 것도 좋지만, 글을 모르는 아기 때는 물론이고 글을 알고 난 뒤에도 부모가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게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내 무덤을 스스로 판 것도 있긴 하다. 책을 읽어줄 때 덤덤하게 읽은 게 아니라 성대모사를 해가며 구연동화처럼 읽어 주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그렇게 읽어주지 않으면 "아빠, 그건 도널드 덕의 대사잖아? 도널드 덕처럼 말해야지"라며 제공을 걸었다. 피곤해서 대충 읽어주려고 해도 어림없었다. 

                                                                                                - 과학자의 서재 (p258~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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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엄마의 처음 놀이는 '눈 맞추기 eye-contact'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는 눈 맞추기 이외에도 엄마의 목소리, 냄새, 그리고 움직임에 계속 반응한다. 엄마는 아이가 경험하는 세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특유의 말투로 아이를 자극한다. 인종과 문화에 관계없이 모든 엄마들은 말꼬리를 올린다. 이 특이한 현상을 발닥심리학에서는 아기의 특이한 말투를 흉내 낸다는 의미로 '아기 말투 baby talk'또는 엄마만이 사용하는 특별한 말투라고 '엄마 말투 motherese'라고 정의한다. 이 모든 인종의 엄마들이 사용하는 특이한 말투의 기능은 도대체 무엇일까?

'정서조율 affect attunement'이다. 서로 유사한 방식의 말투를 이용해 서로의 정서를 맞춰나가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은 서로가 사용하는 몸짓과 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엄마의 길게 늘어지며 꼬리가 올라가는 소리는 아이 자신이 내는 소리와 아주 유사하다. 아이는 자신의 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 자신과 꼭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확인한다. 누군가 나와 동일한 정서를 갖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인간의 의사소통이 발달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다.

                                                                                             - 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정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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