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자기혁명 (p304)

 

글쓰기의 방법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시선을 고정하고 응시하여 나만의 색깔로 대상을 분해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시인과 작가의 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의 글이 더 가슴에 와닿기도 한다. 철학자의 시선은 대상을 분해할 뿐 아니라 그 너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는 먼저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충분히 숙고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단 '나는 ......' 이라고 무조건 시작해놓고 보는 습관이다. 무언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떠밀려 글의 주제와 줄거리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반드시 기승전결의 얼개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고 시작해야 한다. 글을 쓰기 전에 '시선'을 먼저 가다듬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어떤 형식으로 쓸 것인지를 생각해 결정한다. 나의 시선이 분해한 프리즘의 색깔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은 기교다. 언어를 다루는 능력, 즉 기교를 어떻게 익힐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모든 예술행위가 그렇듯 모방에서 출발할 수 있다. 미래의 대가는 현재 대가의 작품을 모사함으로써 공부를 시작한다. 화가는 아그리파를 데생함으로써 내딛고, 음악가는 베토벤을 들으면서 꿈을 키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모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생각하기와 말하기가 다르듯, 읽기와 쓰기는 다르다. 해석과 창작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쓰는 연습으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좋은 글이 아닌 잘 씌어진 글을 필사하는 것이다. 글이 내공을 담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글쓰기 연습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을 다루는 능력이지 작가의 영감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학적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즉 소설가, 카피라이터, 에세이스트 등을 꿈꾼다면 문학가의 글이 좋다. 이를테면 오정희 선생의 단편 같은 것 말이다. 오정희의 단편은 실로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능력이 극점에 달해 있다. 적절한 템포, 절제, 무형의 것을 묘사하는 구성과 묘사력은 단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황석영의 글은 이야기 능력이지 필사의 대상은 아니다.

 반면 칼럼니스트가 되고자 하거나 타인을 설득하고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좋은 칼럼을 골라 필사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 과거 <이규태 코너>를 필사한 적이 있는데, 요즘의 글쓰기 트렌드와는 좀 어긋나는 면이 없지 않다. 필자의 글이 무겁고 현학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필사를 할 때는 열 번 이상 반복해서 그대로 베껴써야 한다. 키보드를 이용해도 좋고 연필을 쥐어도 좋다. 앞으로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글을 쓸 작정이라면 굳이 연필을 잡지 않아도 된다. 특정 글을 이렇게 열 번 이상 반복해서 쓰면 어느 순간 대상의 문제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이때 글을 써보면 그 문체가 내 글에서 배어나오고, 어느 순간에는 그의 어법이나 문장을 흉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 순서는 개작이다. 소위 청출어람의 단계인 셈이다. 필사의 대상으로 삼은 글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 고쳐 써보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고쳐 쓴 글이 원작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고쳐 쓰는 것이다. 특히 불필요한 문장이나 단어를 삭제하고 글을 축약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실제로 글을 써보면 대개는 중언부언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래서, 따라서 등의 남발은 앞선 문맥을 지키려는 일종의 콤플렉스다. 이런 말들은 가능한 한 생략하고 적절하지 않은 문장이나 단어를 삭제한 다음, 그 자리에 나의 글을 가필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반복하다보면 글의 맛을 알게 되고 글과 말의 차이를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내가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필사하고 다음에는 축약과 삭제와 가필을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쓰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세 개의 글이 나란히 놓이게 된다. 필사한 글, 내가 고쳐쓴 글, 내가 새로 쓴 글, 이 가운데 내가 새로 쓴 글이 가장 훌륭하거나 최소한 그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글을 다루는 훈련은 얼추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진짜 마지막 단계는 통합이다. 나의 프리즘에 비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을 선정하고 그 맥락을 머릿속으로 그림으로써 주장을 더욱 선명히 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이때 약간의 기교는 필요하다. 글을 쓸 때는 초두효과, 최신효과 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글쓰기에서 가장 유효한 수단은 초두효과다. 인용문, 사례 등을 글의 앞에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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