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들과 세종문화예술회관의 '훈베르트바서 전시회' 를 다녀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들은 잠깐 보자마자 재미없다고 나가자 한다. 하지만 6살 징징거리는 아들을 안아주고 달래면서 서둘러 작품들을 감상 아닌 훑어 보고 나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겨우 화가의 이름을 알았던 것이 놀라울 만큼, 그의 작품들 속에 매료되었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아쉬운 마음에 엽서 두 장을 구입하고, 아들과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찾아보기 시작했다.
훈베르트바서의 원래 이름은 프리드리히 슈토바서 였다. 자연을 사랑했던 그는 후에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 이라는 뜻의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로 스스로 개명을 했다. 그는 1928년 12월 1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그 이듬해 장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한다. 그 후에는 유대인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 당시 어머니가 유대인이었다면, 어떤 시기를 겪게 될 것인지 아마도 짐작할 것이다. 1938년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합병되고 할머니와 이모집으로 강제 이주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탄압으로 외할머니와 친척 69명이 몰살당한다. 그와 그의 어머니 역시 유대인 구역인 게토로 강제이주된다. 다행스럽게도 삶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그는 왕성한 예술활동을 하고, 2000년 2월 19일 태평양을 향하던 배 위에서 심장마비로 삶을 정리한다. 그는 유언에 따라 현재 뉴질랜드의 그의 마당 튤립나무 아래에 잠들게 되었다.
훈베르트바서는 그의 이름이 내포하고 있듯이 자연을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리고 직선을 자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으며 곡선을 강조했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대로 작품을 만들어왔으며, 삶 역시 그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인간을 보호하는 층은 5개의 층이라고 생각했다.
첫째, '진짜 피부'
둘째, '입고 있는 의복'
셋째, '살고 있는 집'
넷째, '사회'
다섯째, '지구 즉, 환경'
이 중, 나에게 특히나 인상을 남겼던 것은, '살고 있는 집' 이었다. 그의 작품 모형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집도 있구나' 하며 홀로 감탄했기 때문이다. 지붕에는 잔디와 나무로 뒤덮여있다. 지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바닥이 될 수도 있다. 그의 건축에서도 곡선이 자유로이 흐르고 있으며, 그의 이름답게 자연의 냄새가 짙게 베어 난다. 최근에 집을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전시회를 보고난 그 다음 주말에 화원에 가서 조그마한 나무를 하나 사고, 다른 화분도 몇 개를 구입을 했다. 나무라 해도 화분에 담겨있는 나무이긴 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주거공간인 아파트에 나 역시 살고 있으면서 훈베르트바서의 집들 만큼의 자연은 곁에 두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위안을 갖고 싶었나보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런 관련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 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곳에 이런 글이 있어서 스캔해서 벽에 붙여두기도 했다.
식물의 나뭇잎 뒷면 혹은 어린 줄기 위에 존재하며,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구멍들을 '기공' 이라 부른다. 식물은 기공을 통하여 광합성에 필요한 탄산가스를 흡입하고 광합성의 결과 발생한 산소를 방출한다. 그뿐 아니라 식물은 뿌리에서 빨아올린 물을 기공을 통하여 수증기 상태로 배출하는데, 식물학자들은 이를 증산작용이라고 부른다. 식물학계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성년이 된 보통 크기의 나무 한 그루는 여름철 하루 동안에 수 톤의 물을 배출한다. 나무가 아닌 해바라기 한 그루도 여름철 하루 동안 약1킬로그램의 물을 수증기 형태로 배출한다고 하니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놀라운 양이다.
이처럼 식물은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려 증산작용을 통해 공기속으로 방출하는데, 땅속에 스며든 빗물을 순환시켜 그것이 다시 비가 되어 내리게 하는 것이다. 비가 많이 와서 당속에 물이 많으면 식물은 기공을 크게 열어 더 많은 수분을 증산하고, 땅이 건조하면 기공을 작게 하여 증산하는 물의 양을 줄인다 .식물이 물을 증산하는 과정에는 물의 기화열이 필요하고, 이 열을 주위에서 흡수해야 한다. 숲이 있는 곳이 여름철에 시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윤석철, 『삶의 정도』 中 -
그의 건축이 나는 특히나 인상이 깊었으나, 그의 그림도 한 번 보고가야 하지 않을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회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은 '창의성', '창조성' 이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생기고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자기 만의 무언가' 가 아닐까. 이게 단어만 달라졌지 얘전에 개성을 강조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훈베르트바서에게는 그것이 있다. 이제는 그의 작품을 보게 되면, 이게 훈베르트바서 작품이구나. 그의 곡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그냥 곡선이 아니다. 그에게는 그렇게 그리게 만들었던 그만의 사상이 있었고, 그의 내면에서 부터 삶으로 까지 퍼져있는 증거들이 넘쳐났다.
훈베르트바서는 1993년에 '자연과의 평화조약'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그의 자연주의사상을 재확인했다.
1. 자연과의 소통
- 우리는 자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자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2. 자연의 영역 환원
- 우리는 열린 하늘 아래 수평한 모든 것을 자연에 속한 것이라는 원리에 따라 인간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파괴했던 자연의 영역을 돌려주어야 한다.
3. 자연에 대한 관용
- 자연발생적인 식생에 대한 관용
4. 자연과의 재결합
- 인류의 창조와 자연의 창조는 재결합되어야 한다. 이들의 분리는 자연과 인간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5. 자연과의 조화
- 자연의 법칙에 조화되는 삶
6. 자연의 재생
- 우리는 단순히 자연의 손님일 뿐이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해온 가장 위험한 기생자이다. 인간은 자연이 재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태적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7. 자연의 순환
- 인간사회는 다시 쓰레기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쓰레기를 존중하고 재활용하는 사람만이 죽음을 삶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환을 존중하고 생명이 재생하여 지구에서 계속 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괜히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담아두었다. 훈베르트바서는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건축을 하기도 하였으며, 직접 옷과 신발을 만들기도 했다. 우표를 디자인하기도 하고 심지어 차량용 번호판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삶이었던 것 같다. 그가 자연을 사랑하며, 그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들어간다. 직접 거름 변기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핵무기와 해양오염 및 고래포획 등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도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훈베르트 바서는 나에게는 너무나 멋스러웠다. 멋스러움과 자신의 생각을 삶으로 살았던 사람,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 그 강은 아마도 계속 흐르지 않을까.
가슴 따갑게 다가왔다. 그의 생각대로 살 수 있는 그의 재능과 용기, 세상과 사회의 틀 속에서 주조되어 살게되는 삶이 아닌 그 만의 삶. 한 명을 더 만났나 보다.
- 참고 -
1. 세종문화예술회관 - 훈베르트바서 전시회
2. (Book) 훈베르트바서 - 다섯 개의 피부를 지닌 화가왕 (피에르 레스타니, TAS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