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문제 삼는 상황은 바로 이것이다. "타국에서 발생한 재앙을 구경하는 것은 지난 1세기하고도 반세기 동안 오늘날의 언론인과 같다고 알려진 전문적인 직업여행자들이 촘촘하게 쌓아 올린 본질적으로 현대적인 경험이다. 오늘날 우리는 거실에서도 전쟁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 이른바 '뉴스'는 비참한 모습을 시청자들의 눈에 내던져 동정심이나 격분, 그도 아니면 찬성 같은 반응을 자아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분쟁과 폭력을 대서특필하기 마련이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인간의 죽음은 산 자들이 거실에서 누리는 최대의 사치 중 하나이다. 죽음이 매일매일 재생산되어 과잉축적이 빚어지는 전쟁조차도 미디어를 통해 중계되면 스펙터클이 된다. 미디어를 통해 중계되는 죽음이 본질적으로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믿고 있기에, 우리는 죽음의 축적을 보고도 무덤덤하다. 그게 관음증이다. 관음증적 응시는 응시의 대상과 자신과의 연루를 알지 못한다. 텔레비전을 통해 죽음을 보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는 이렇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 있다. 나는 아직 죽지 않는다."
- 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 中 -
뉴스에서는 연일 사건 사고가 보도된다.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테러,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폭행, 살인도 벌어진다. 뿐만 아니라 한 때는 연인이고, 친구였던 사람에 의해서도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이런 수많은 사건 사고에 대해서 우리는 더이상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분명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어떤 죽음보다도 살짝 까진 내 손이 더 심각하게 다가올 뿐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우리의 모습을 작가 노명우는 '관음증'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소개한다.
텔레비전은 보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에는 이런 내면의 소리가 있을 거라 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 있다. 나는 아직 죽지 않는다."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해낼 힘과 의지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내면의 소리를 잠자코 듣고만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관음증을 벗어나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졌던 그 죽은 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입장이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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