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부모님의 하나 둘 늘어나는 주름에 변화를 실감합니다.
하지만 공간 속의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넓게는 지금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 아시아라는 대륙,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좁게는 집 앞의 거리를 거닐며, 출퇴근 길의 도로를 이용하고, 집 안의 작은 서재와 침실에 이르기까지,
1초, 2초 시간이 끊임없이 지나가듯, 우리도 끊임없이 어떤 공간 속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 속의 삶에 익숙한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10년 후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하루를 24칸으로 나눈 다이어리에 일정을 체크하고, 일을 하면서도 업무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합니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삶을 사는 우리는 공간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할까요?
별다른 생각없이 지나던 길을 다니고, 타던 버스를 타고, 익숙한 풍경을 지나서 집과 회사를 오갑니다.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는 별 다른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주 동안에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정착할 공간을 찾으려고 이곳 저곳을 알아보았지요.
저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수많은 네모진 박스의 한 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합니다.
주변에 쇼핑몰이 가깝고, 공원이 있으며, 학군이 좋고,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통도 편리하다고 추천하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반면에 중심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주거용으로 지어진 곳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시설을 이용하려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곳입니다.
그 접근성이라는 요소가 네모난 콘크리트 아파트의 작은 한 칸을,
평범한 직장인이 20~30년에 걸쳐서도 사기 힘든 공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와 도시와 동네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참여시 '어디에 사는 누구'라는 자기 소개가 그걸 말해준다. 이방인은 자리만 바꾸지 않고 자신의 특성까지 바꾼다. 공간은 인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인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공간과 분리된 채 자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본질을 획득" 한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144)
사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간은 공평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가지만, 공간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사람들마다 지금 현재도 각기 다른 공간에 있지요.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에서 인상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화가 나혜석에 대한 부분입니다.
제가 사는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 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 거리의 중심에는 나혜석의 동상이 있지요.
하지만 그녀가 화가였다는 사실 말고는 알고 있는 사실이 없었습니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로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공(空)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사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의해 희생된 자 이었더니라" - 나혜석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171)
화가인 나혜석은 일제강점기의 신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프랑스 파리에도 다녀옵니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를 경험하고, 그 공간에 매료되었나 봅니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는 프랑스의 문화예술인 뿐 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 제럴드 등이 머물렀던 공간입니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 나혜석이 있었네요.
이런 그녀가 프랑스 파리라는 공간 속에서 계속 살아갔다면 분명 다른 삶을 살았겠지요.
공간은 이렇게 사람들을 다르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공간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공간을 받아들여야겠지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똑같이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 공간 속에서 얼마나 자기가 느끼고, 그 공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느냐가 중요하지요.
보잘 것 없는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함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위대함 속에서 보잘 것 없음을 찾아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화려한 것들 속에 숨어 있는 허풍과 허세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스쳐지나가는 작고 무가치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눈도 가지고 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43)
저도 무언가 새로운 시야를 얻고 싶습니다.
낭만의 도시 프랑스도 가보고,
드높은 마천루를 자랑하는 뉴욕 거리도 걸어보고 싶습니다.
원시림이 살아 있는 아마존 유역도 가보고 싶고,
고대 도시의 흔적을 찾아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를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들 비슷할 겁니다. 시간이 없죠.
시간이 많으시다구요, 그럼 그 때는 돈이라는 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사는 이곳에서라도 새로운 시야를 얻어보는 수 밖에요.
저는 예전에 그냥 지나가면서 간판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메모장에 다 적어 보았습니다.
가로수가 어떤 나무인지도 알아보려고 했는데,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은 나무가 대부분이어서 알지 못했지요.
그러던 중에 일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집 근처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 거리다가 발견한 거 같습니다.
그 책은 앞서도 몇 번 언급했던 정수복 작가의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라는 책입니다.
우연히 만난 작가이고, 스쳐 지나가면서 고른 책이었는데,
알고 보니 제 서가에도 이 분의 책이 한 권 꽂혀 있네요.
바로 책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적은 『책인시공』이라는 책입니다.
이 분의 책들을 보니 '공간' 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라는 책의 뒤에 보면 아주 소중한 정보가 있습니다.
저는 이걸 노트에도 적어두고, 별도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도시를 걷는 16가지 방법> 이라는 글입니다.
각각의 방법을 소개하고, 조금 상세하게 방법을 기술해 놓았지요.
상세한 내용을 일상에서 꼭 한 번 활용해봤으면 좋겠네요. 책 한 번 꼭 읽어보세요.
여기서는 짧게 16가지 방법을 소개드립니다.
1. 도시 전체를 보여주는 큰 지도를 벽에 붙이고 매일 다닌 지역을 표시한다.
2. 편안한 보폭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천천히 걷는다.
3. 도로, 자동차와 사람들의 흐름, 가로수, 건물, 상점, 간판, 신호등, 진열창 등을 찬찬히 자세하게 바라본다.
4. 밖에서 보는 건물과 들어가 본 건물은 다르다.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모조리 다 들어가본다.
5.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먹고 마시고 무엇 하나라도 산다.
6. 안 가본 구역, 낯설고 잘 모르는 동네를 일부러 찾아다닌다.
7. 도시의 역사, 문화에 대한 책, 여행기, 안내 책자 등을 다양하게 읽는다.
8. 책에서 알게 된 장소를 방문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9. 때로 함께 걸을 친구를 만들어 방문한 동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걷는다. 같이 걷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것이 보인다.
10. 지름길, 정해진 길, 상투적인 행로가 아니라 자기만의 다양한 우회로를 만든다.
11. 박물관, 미술관, 식당, 영화관 등을 갈 때 그 장소만이 아니라 그 주변을 걸으며 동네 분위기를 파악하고 인접한 다른 지역과의 이음새에 주의를 기울인다.
12. 마음이 가는 장소나 재미있는 동네는 여러 번 방문한다.
13. 방문하여 걸어본 동네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사진을 찍어 노트에 메모를 남긴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본 것, 한 것, 느낀 것,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다.
14. 지금 살면서 걷고 있는 도시를 자신이 잘 아는 다른 도시와 비교해 본다.
15. 자신이 쓴 도시에 대한 기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
16. 걷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작은 일에 참여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습니다. 그런 여름도 비가 내리고 다음 날은 어김없이 사라집니다.
8월의 막바지가 되면서 끝나지 않을 듯한 더위도 꼬리를 살살 내립니다.
대신에 하늘은 점점 더 드높아지고 있고, 어스름한 저녁이 조금씩 빨리 찾아오네요.
걷기 좋은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어디 한 번 걸어보시죠.
이제는 새로운 것이 보이겠죠?
(p23)
신문 칼럼을 쓰는 사회학자 세 사람의 견해를 들어보자. 먼저 송호근은 "문장은 감성의 높이와 과다를 조절하는 비행체다. 가끔은 높게 날고, 가끔은 급강하해야 할 때도 있다. 호흡조절도, 리듬과 가락도, 정서의 표출도, 이미지의 창출도 모두 문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썼다. 김호기는 "일반 시민을 독자"로 상정하고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간결한 문체로 글을 쓰는" 대중적 글쓰기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고 김동춘은 "학자들도 때로는 언론인과 문인의 능력을 겸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24)
지적 교류와 감정적 교류가 함께 이루어지는 관계야말로 진정 깊이 있는 인간관계이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관계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것이든, 아니면 단순히 스치는 만남이든, 나는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지적 교류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하는 감정적 교류에도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p43)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그냥 흘려보내는 작은 풍경들을 찾아내고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미세한 풍경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발견의 나날이다. 그들의 일상에는 권태가 없다.
보잘것없는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함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위대함 속에서 보잘것없음을 찾아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화려한 것들 속에 숨어 있는 허풍과 허세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스쳐지나가는 작고 무가치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눈도 가지고 있다.
(p67)
파리의 연인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상대방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사랑이라는 것이 두 사람이 하나의 존재로 결합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잃지 않는다. 아니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물건은 자기가 챙긴다. 그러나 서울의 연인들은 두 사람이 완전한 하나가 되어 자아를 잃어버린 상태가 되기를 바라는 듯 서로의 물건을 상대방에게 믿고 맡겨 버린다.
(p70)
도시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의 형태와 색채는 일상의 미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아름다운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 가로수와 공원, 자동차와 광장 등 수많은 공간과 사물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색채의 조합을 통해 고유한 분위기를 만든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라는 노랫말을 현실로 만들려면 작은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p102)
북촌이 관광지화되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산책은 한가한 장소에서 여유롭게 이루어져야 사유를 동반한다. 요즈음 나는 둘째, 넷째 월요일 오후에 서촌으로 산책을 간다. 국립중앙도서관이 휴관하는 날이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삼아 궁궐 북쪽에 위치한 북촌이 양반들이 사는 지역이었다면 궁궐 서편의 서촌은 중인이나 예인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궁을 나온 나이든 상궁들도 살았다고 한다.
(p116)
파리에 비해 서울 시내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탄 사람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이다. 그는 1896년 미국 체류를 마치고 귀국할 때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와서 서울 거리에서 타고 다녔다. 그때 자전거는 첨단의 교통수단이었다. 함께 독립협회 운동을 하던 윤치호가 서재필에게 자전거 타기를 배운 다음 미국에 자전거를 주문해서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p132)
게오르크 짐멜은 이방인을 두고 전체를 조망하는 '조감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알프레드 슈츠는 이방인을 '또다른 잣대를 사용하는 자'들이라고 보았으며, 로버트 파크는 이방인을 '탁 트인 시야와 예리한 지성. 그리고 좀더 초연하고 합리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p137)
이방인은 '사회이론가'적 성향을 갖는다. 사회학이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상식적 이해를 넘어서 사회가 유지되고 변동하는 방식에 대한 객관적, 심층적, 체계적 이해라면 사회학자는 이방인의 시선을 가질 때 사회를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가까움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끼는 이방인의 존재 조건이야말로 사회이론가가 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p138)
사회학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계'를 낯설게 보는 능력을 개발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학자는 '직업적인 이방인'이다. 유대인 가운데 이론가, 특히 사회이론가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오랜 기간 동안 이방인의 관점을 지니고 살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뒤르켕, 짐멜, 비트겐슈타인,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조르주 귀르비치, 레몽 아롱, 루이스 코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어빙 고프먼, 지그문트 바우만,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은 모두 유대인 출신이다.
(p140)
걷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다.
그가 정말 걷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말싸움을 벌이지 않고,
자신의 불은을 한탄하지 않고,
자신의 세속적 가치를 올리기 위해
뒤돌아서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다면.
- 자크 레다
(p144)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와 도시와 동네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참여시 '어디에 사는 누구' 라는 자기소개가 그걸 말해준다. 이방인은 자리만 바꾸지 않고 자신의 특성까지 바꾼다. 공간은 인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인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공간과 분리된 채 자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본질을 획득" 한다.
(p145)
이방인이 이방의 도시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한몸이 되어야 한다. 도시공간 속을 구획하고 이어주는 대로와 골목길, 건축물과 상점 들, 수많은 자극과 소음, 색깔과 움직임, 특정한 분위기와 흔적들, 수많은 기억과 체취, 예기치 않은 타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도시공간 속을 걸으며 이방인은 자신의 몸에 공간의 기억을 아로새긴다. 도시를 걸으며 손과 발, 눈과 귀, 피부와 코로 도시의 풍경, 소리, 냄새, 질감, 굴곡, 요철, 리듬, 온도와 습기를 감지한다. 서리의 신호등과 횡단보도, 자동차의 흐름과 엔진 소리, 소음과 휘발유 냄새, 타인의 시선과 얼굴 표정, 몸동작, 옷차림, 건물의 외양과 진열창에 전시된 물건들에 대한 감각정보를 입력한다. 도시를 걷는 일은 지도라는 추상적 개념을 감각을 통해 구체적 실체로 변형시키는 작업이다.
(p152)
우리나라의 경우 1900년에 경인선이 개통되고 1905년에는 경부선과 경의선이 개통됨으로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미곡, 어류, 목재 등 주요 상품이 철도를 통해 운송되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물길을 이용해 상업활동을 하던 강상과 육로를 활용하던 보부상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몰락했다. 철도 개통 이후 영등포, 대전, 조치원, 천안, 김천, 이리, 송정리, 나주, 사리원, 신갈 등은 상업이 급속히 발달했다. 한반도 전역에 철도망이 깔리면서 1920년대는 일본인과 조선인 상류층을 위한 관광산업이 생겨났다. 철도의 개통이 일으킨 변화 또한 사회학의 공간적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보기가 아닐 수 없다.
(p158)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은 서울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서울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수백 개의 각기 다른 동네의 집합이고 연대다. 각기 다른 동네의 분화와 집합은 서울의 다채로운 지형과 함께 천문학적인 수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길을 만든다. 어느 누구도 다 걸어볼 수 없는 서울의 미로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서울을 만날 것이다."
(p159)
인사동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진 도시계획가 김진애는 전국을 일주하면서 22개의 동네에 대한 탐사기록을 남겼다. 서울에서는 인사동, 정동, 동대문시장, 청담동, 홍대 앞, 대학로, 미사리 카페촌, 성수동, 세운상가, 한강,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앞 광장을 답사했고 부산에서는 남포동, 민락동, 광복로, 구덕로, 영도다리, 용두산,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을 답사하며 그 공간들이 갖는 장소적 의미를 분석하며 살고 싶은 도시, 정붙일 동네 만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p161)
공간의 정치경제학자 조명래는 같은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공간 속에서 사람은 공간 형성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공간을 구성하는 객체이기도 하다. 공간은 사람의 의지와 행위로 형성된 것이지만 그 자체 안에 의미, 틀, 색상, 이미지, 시간의 요소를 갖춘 구성물로 기능하면서 그 틀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행동거지와 의식을 틀 지운다."
(p168)
프랑스가 좋아 프랑스 사람이 되어 프랑스에 살다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 묻힌 미국 출신 여성작가 거트루드 스타인도 파리 곳곳을 깊게 느끼며 걸었다. 뤽상부르 공원 가까이에 위치한 플뢰리스 거리에 있던 그녀의 집 살롱에는 피카소, 마티스, 헤밍웨이 등의 화가와 작가들이 모여 삶과 예술을 이야기했다. 파리를 걸으며 풍경을 음미할 줄 알았던 그녀는 『파리 프랑스』에서 "1910년에서 1930년 사이에 파리는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든 것에 천천히 적응한다. 그래서 결국 언젠가는 완전히 바뀌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다."라고 썼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파리가 사람을 "흥분시키면서도 평화로운"도시라고 썼다.
(p169)
1920년대에 들어서 식민지 도시 경성이나 식민지 본국의 도쿄를 거닐던 조선의 신여성들도 변장을 하고 궁성을 빠져나와 도시의 모든 것에 황홀해하는 왕자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작가, 화가, 무용가가 되었다. 그들은 근대 도시를 걸으며 자유를 느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고 영감을 받았으며 그것을 작품 속에 표현했다. 그들도 조르주 상드나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기분 나는 대로 도시를 걸으며 도시의 풍경에 매료되고 우연히 다가오는 볼거리들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자신을 바쳤을 것이다. 물고기가 바다를 헤매고 새가 하늘을 날듯이 도시를 걸었을 것이다. 무용가 최승희와 화가 나혜석은 식민지 시대에 경성과 도쿄는 물론 파리를 걸었던 신여성들이었다. 아직 여성의 삶을 옥죄는 관습의 굴레가 강하게 작동하던 조선의 여성들 가운데 식민지 치하에서 신식 교육을 받은 그들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p169)
완벽한 산보객은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엇이든 열광적으로 관찰한는 사람이다. 그는 길거리에서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군중 속에 묻혀 있는 익명의 개인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을 관찰하는 세상의 살아 있는 중심이다.
(p170)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로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공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사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의해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 나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