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로 서점가는 그야말로 문재인 열풍이 시작되었다. 매 대선마다 그러했지만 이번은 조금 더 특별하다. 그 동안의 대선과는 조금 다른 대선이었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후 진행된 조기 대선이었고, 새롭게 진보진영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운명』은 참여정부를 마치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한 이후인 2011년에 출간된 책인데, 이번에 대통령이 된 후에 다시 한 번 조명받게 되었다.


나 역시 평소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것들과 주변에서 듣는 정치 이야기만 알았지 실제로 새로운 대통령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뒤늦게 책을 들춰본다. 책 표지의 왼쪽 날개에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개이다.


문재인


대한민국의 법조인, 시민운동가, 정치인.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제적되었고, 1980년에는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동의대 방화사건 등 1980, 1990년대 시국 사건 대부분을 맡아 변론했다.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경남 민변 대표, 노동자를 위한 연대 대표, 「한겨레」 창간위원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었고 줄곧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건강이 나빠져 사직했다가 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달려와 변호인단을 꾸렸다. 2005년 다시 청와대로 들어와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 변호인을 맡았고 서거 이후에는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다.

노무현 재단 상임이사, 운영위원장, 아름다운 봉하 재단 감사를 맡았으며 노무현 대통령 기념사업이 가야 할 방향에 관심을 쏟았다.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범야권 단일후보로,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그 이후에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서 야권을 이끌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섰고, 마침내 2017년 5월 9일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9년 5월 23일 나는 그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해는 내가 입사한 해이다. 그리고 5월 23일이 토요일인데 주말 근무를 하러 선릉역에 있는 회사로 향했다. 그 날 방송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들려 왔다. 같이 일하는 선배들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잠시 멍했던 것 같다. 그 중에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장을 직접 찾으신 분도 계셨다. 솔직히 그때까지는 정치라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이 오직 취업에만 신경쓰고, 그 후 입사 후에는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바빴었다.


그리고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어이없이 여전히 나는 정치라는 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으며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느껴지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에는 정말 '이게 나라인가?'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광화문 광장에도 홀로 찾은 적이 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오천만 인구의 대표자는 그만한 역량과 품격 그리고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항상 힘을 가진 이들은 그들의 힘을 남용하는 것이 아닌 항상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은 내가 짧은 회사 생활에서 겪은 경험들과 가족을 구성하며 살아가면서 느낀 생각이다. 가정, 회사도 그런데 국가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을 철저히 장악하고, 검찰을 마치 자신들의 권력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며, 국정원을 마치 개인 사조직처럼 운영했다. 그리고 그들의 도덕성은 과연 어떠한가? 솔직히 그들은 아마도 도덕성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故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삶을 정리한 것은 도덕성과 다른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를 지지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버리라' 고 했으며, 모든 것은 자기가 짊어지고 가려고 했다.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과 언론을 통해서 들었을 때, 실제 정부부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는 정도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한쪽이 권위였다면 다른 한 쪽은 탈권위였다. 누군가는 막아두고 숨겼지만 누군가는 열어두고 개방하고 공유했다.



새롭게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처음에는 정치인의 길을 걸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어쩌면 故 노무현 대통령께서 스스로 삶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지금 부산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그는 운명처럼 정치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운명처럼 선배이자 동지와 함께 했던 길을 이제 그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걷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故노무현 대통령의 8주기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그렇다 한 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와 빛을 모두 안고 그리고 모두 버리고 그만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대통령이 필요하다. 은퇴 후에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그가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고마울 것 같다.


책의 오른쪽 날개에 있는 도종환 시인의 시로 글을 마친다.



멀리 가는 물


- 도종환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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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5.18 기념사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오늘 5.18 민주화운동 37주년을 맞아, 5.18 묘역에 서니 감회가 매우 깊습니다. 37년 전 그 날의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광주 영령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월 광주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오늘을 살고 계시는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월 광주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께 각별한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슬 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5.18 때 구속된 일이 있었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 큰 부채감이었습니다.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준 힘이 됐습니다.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 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정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함성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는 치열한 열정과 하나 된 마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합니다.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광주 영령들이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성숙한 민주주의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는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울 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헬기 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왜곡을 막겠습니다. 전남도청 복원 문제는 광주시와 협의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 할 민주주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될 것입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려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님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 민주화운도으이 정신, 그 자체입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을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습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받쳤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해직되고 투옥당했습니다.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참이 거짓을 이기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광주시민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주십시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 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 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5.18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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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 제 두 어깨는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고, 제 가슴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숱한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대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나라입니다. 또 많은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는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함께 선거를 치른 후보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을 뒤로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몇 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겪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앞에서도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승화시켜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위대함입니다.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골고른 지지로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가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 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권력기관도 무소불위 권력행사를 하지 못하게 견제장치를 만들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안보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도 워싱턴에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국방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 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란 낱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졌습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돼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이 되겠습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던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7년 5월 10일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길에 함께 해주십시오. 저의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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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름 석 자 '손석희' 그대로 언론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손석희 라는 말에는 신뢰라는 단어가 실과 바늘처럼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그리고 1956년 생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동안을 유지하는 '손석희', 어찌 그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예전부터 그와 관련된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언론비평과 인물비평에 탁월한 '강준만' 교수의 『손석희 현상』 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는 언론인 '손석희'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아마 12년 정도 전인 걸로 기억한다. 그가 내가 다니는 대학에 특강을 온적이 있었다. 장소 자체가 많은 인원을 채울 수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학생들이 계단에도 모두 앉고,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서서 그의 특강을 들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그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었다. 그 때의 특강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한 기억이 하나가 있다. 누군가 질문을 했다. "혹시 나중에 정치 쪽으로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 때 그의 대답은 "자신은 정치라는 것이 언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희미해지는 옛 기억이라 이런 말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예전에 홍준표 의원이 손석희 앵커에게 정치를 할 거냐고 묻는 질문에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 라고 재치있게 대답한 것과 비슷한 말이 아니었을까.




2013년, 손석희는 JTBC 보도총괄 사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며 종편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당시에 수 많은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그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으며, 왜 그가 그곳을 향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과연 그가 삼성과 관련된 보도를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주목했다. 그리고 손석희는 <JTBC 뉴스룸> 을 통해서 다시 앵커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뉴스는 달랐다. 아마도 그가 지금까지 언론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생각했던 많은 점들을 그곳에 녹여놓은 게 아닐까.


박성호 : 그래서 텔레비전 뉴스가 시청자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군요.


손석희 : 네, 텔레비전 뉴스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제가 요즘 뉴스를 분석적으로 보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건 있을 것 같아요.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스토리만 있고 히스토리가 없고 텍스트는 있는데 콘텍스트는 없고. 그게 가장 뼈아픈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계속 쫓아가면서 현상에 대해 보도는 하지만 그에 대해서 콘텍스트를 시청자들이 모르고 히스토리를 알 수가 없다면 시청자가 그 뉴스에 대해 깊이 알기도 어렵고 평가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는 여전히 백화점식 보도, 1분 30초짜리 보도거든요. 거기에 무슨 히스토리가 있고 콘텍스트가 살아남겠어요? 스토리와 텍스트만 살아남는 것이지. 현재 텔레비전 뉴스는 낮에 다 본 걸 화면과 기자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것뿐이잖아요. 볼 필요가 없어진단 이야기지요. 더군다나 젊은 세대들이 TV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자기가 선택한 뉴스도 아니고, 자기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콘텍스트나 히스토리에 대해서도 인터넷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서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 그냥 1분 30초 동안 보도해주는 것에 대해서 무슨 매력을 느끼겠어요. 안 느끼지. 그럼 안 보는 겁니다. 그런 데서 오는 약점 아닐까요? 


- <손석희 현상> 中, p116 - 


손석희는 2015년 9월 21일 서울 동대문플라자에서 열린 중앙 미디어네트워크 창립 50부년을 기념하는 '중앙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행한 '뉴스룸의 변화' 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도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미디어 시장에서 언론사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정보 가운데서 중요한 정보를 고르고 이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석희는 어젠다 키핑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로 '소비자'를 꼽았다. 초기에 뉴스 소비자들은 단순히 '뉴스를 보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보를 제공하는 존재'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화두를 던지면 시청자들은 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네트워킹을 하게 된다"며 "이것이 JTBC 뉴스룸이 지향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지루하다는 인식도 있어서 반성하고 있다. 물론 손해 보는 상황도 발생한다. 시장에서 손해는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젠다 키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빨리 바뀐다고 해도 저널리즘이 미래적 가치로 지켜야 할 것이 어젠다 키핑"이라고 말했다.


- <손석희 현상> 中, p190 - 

그는 지금의 뉴스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세상은 변해가고, 수 많은 매체의 등장과 변화를 통해 뉴스 소비자들의 소비방식은 변해가는데 뉴스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토리에서 히스토리로,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로,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기사가 아닌 지속적인 화두제시로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된 방식의 뉴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대중에게 통했다.

나 역시 <JTBC 뉴스룸> 2부에 시작하는 앵커브리핑을 따로 모아서 보기도 했으며, 엔딩곡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는 딱딱한 뉴스에 사람 냄새를 진하게 묻어나게 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인터뷰에서 쉽게 보기 힘든 유명인들도 그에게 선뜻 시간을 내주며 팬이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차가운 시선으로 뉴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사람에게는 지극히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이기에 인터뷰를 꺼리는 사람들, 그리고 뉴스를 외면했던 이들이 그가 진행하는 뉴스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가 진행하는 앵커브리핑에서 몇 번이나 울컥했나 모른다.



작년 11월 어느 날의 앵커 브리핑이다.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단원고 기억교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멈춰야 했던 그 교실이 안산 교육청 건물로 임시 이전해

문을 열었습니다.

교실엔 오늘도 수업이 진행되는 양 온기가 느껴지고 책상위엔 소소한 낙서의 흔적이 남아있군요.

또래 친구들은 작년에 수능을 보았을 테고 재수를 한 친구들은 며칠 전 수능을 마쳤을 테지요.

그리고 ... 김관홍 잠수사.

세월호의 민간잠수사였다가 몸과 마음을 다쳤고 지금은 저세상으로 가버린 사람.

차가운 바지선 위에서 담요 한 장에 의지해 잠을 잤고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아이들을 두 팔로 끌어안고 나왔던 사람.

잠수사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은

"뒷일을 부탁합니다" 였습니다.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는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변호인이 이야기한 '여성의 사생활' ...

우리는 그것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사사로운 모든 관계를 끊고, 가족을 만나지 않고, 1분 1초도 쉬지 않고 일한다 했지만...

오히려 개인의 사생활과 사사로운 친분관계, 이것은 대통령이라고 해도 결코 예외가 아닌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행복한 대통령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17살의 아이들이 기울어져가는 그 배에서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있어야 했던 그 시간에,

비록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강변이 나왔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했어야만 했던 

그곳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었는지를 궁금해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잊지 않으려 오늘도 질문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뒷일을 부탁'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삼십대 중반의 나이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이제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다니는 회사에 선배 뿐만 아니라 후배도 하나 둘씩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연 나는 아이들과 후배에게 어떤 아빠, 선배인지 모르겠으나, 

항상 누군가를 보고 나도 조금씩 닮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사회에서 그런 분이 이제는 한 명은 분명히 생겼다는 것에 대해 고맙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굳은, 곧은 의지와 변함없는 신념,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항상 중립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 자세,

집요하고 불합리한 것에 대해서 냉정해 보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도 따뜻해보이는 모습.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한 번 나도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20년 뒤, 30년 뒤의 나는 과연 어떠할까. 조금씩 이렇게 배우다 보면,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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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 아래에 적혀있는 문구다. 이렇게 국가에 대한 글귀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우선 나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자. 국가란 지금까지 나에게 무엇이었는가? 지금까지 국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니 국가는 나에게 '공기' 같은 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공기라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지 않았다. 공기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니 어떤 생각을 할 여지 자체가 없었다. 국가도 그랬나 보다. 삽십 여 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직접적으로 국가의 공권력에 피해를 입거나 반대로 무언가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살아왔다. 


노자의 도덕경 中 훌륭한 지도자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다.


(제17장)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


신의가 모자라면

불신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훌륭한 지도자는]말을 삼가고 아낍니다.

[지도자가] 할 일을 다하여 모든 일 잘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 저절로 된 것이라" 고.


내가 국가를 공기로 생각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국가의 지도자들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여서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라서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정치에 대한 외면과 나와 직접적이지 않은 부분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장 좋지 못한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는 아니였나 보다. 그런데 작년부터 불거져서 결국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를 접하고 나서는 도덕경에 언급된 가장 좋지 못한 지도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잘 모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가는 나라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에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정치에 별 다른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역사적인 현장에 한 번은 몸을 담고 싶어 홀로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었다. 그리고 이후 벌어지는 어이없는 말 바꾸기와 지도자의 품격은 겉 모습 꾸미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듯한 모습에 부끄러웠다. 저런 사람이 나라의 수장으로 국민들을 이끈다고?


그리고 다시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를 접했다. 2년 전에 읽고 고이 간직하고 있던 책인데, 세태에 걸맞게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유시민 작가에게 그저 고마웠다. 한 권의 책으로 이런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다. 분명 이 책은 쉬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 만의 독자를 생각하는 글쓰기가 다시 한 번 돋보인다. 


지금까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순간 순간의 분노와 잘 모르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무언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특히 일곱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막연했던 국가에 대한 개념이 내 머릿 속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 국가가 지금에 이르게 된 과정은 수 많은 역사의 연속선 상에 서 있는 것이었다.


1. 국가를 보는 세가지 입장 (국가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2. 국가는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플라톤, 맹자, 칼 포퍼)

3.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피히테, 르낭, 톨스토이)

4. 국가 변혁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마르크스, 톨스토이, 칼 포퍼, 하이에크)

5. 진정한 진보 정치란 무엇인가? (베블런, 김상봉, 이남곡, 아리스토텔레스)

6. 국가가 이상으로 삼아야 할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니버, 마르크스)

7. 정치인에게 필요한 윤리는 무엇인가? (칸트, 베버, 베른슈타인)


특히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는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과연 어떤 방법이 맞는 것일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기각을 했다면 헙법재판소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고 다음 대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민주시민으로서 마땅한 것인지, 아니면 폭력행사를 동원해서라도 무너진 자존심과 국가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지 지금도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p146

혁명의 가능성을 현실로 전환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어떨 때 민중은 폭력으로 국가를 전복하고 사회의 기본 질서를 바꾸는 사회혁명에 나서게 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라스키의 대답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복종하는 데 너무나 잘 길들여져 있다. 따라서 다수 대중이 정상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국가의 중대한 질병에 걸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이 일어나는 첫 번째 조건은 사회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고, 그 사실을 민중이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는데 특정한 사람들이 반칙으로 부를 축적하고 부당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믿을 때, 정의가 짓밟히고 불의가 횡행하는 세상이 확 뒤집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 혁명의 첫 번째 조건이 갖추어진다. 


혁명이 일어나는 두 번째 조건은 민중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비록 사회에 큰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확신이 널리 퍼져 있을 경우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혁명의 역사에서 거듭 확인된 바 있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을 연구한 학자들은 민중이 폭력행사에 들어가기 전에 끈질기게 개혁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주목한다. 사람들이 지배자의 성의를 더는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폭력사태가 찾아온다.


혁명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마지막 조건은,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폭력이 아닌 다른 모든 수단을 남김없이 행사했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되는 것이다. 이 조건은 특히 입헌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민주주의 국가에는 국가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사회의 기본 질서와 국가운영 방식에 대해서 정부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시민을 설득하여 지지를 얻음으로써 국가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정부의 임기가 제한되어 있ㄷ으며 정부를 합법적으로 교체하는 데 적용하는 상세한 법규가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 수단인 폭력행사가 대중의 승인을 받으려면, 폭력에 기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행동방안이 다 사용되었으며, 다른 방법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다 충족되면 조만간 사회혁명이라는 열병이 국가를 엄습한다.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생각해볼 만 하다. 나에게는 부자들은 '보수' 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주변의 어른들은  부유하지 않음에도 압도적으로 '보수' 성향인 분들이 많이 있다는 부분이 언제나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젊은 시절 진보의 기수였던 사람들의 보수로의 선회 또한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p193

유한계급은 부유하기 때문에 혁신을 거부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해서 보수적이다.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며 상당한 정신적 노력을 요구한다. 변화된 환경이 무엇인지, 나의 정신적 태도는 어떠한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데 대한 본능적 저항감을 극복하려면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한다. 지배적 생활 양식에 순종하면서 일상적 생존투쟁을 견뎌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 과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인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에서 주로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이 형성되고 표출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고령층이 청년들보다 더 보수적인 현상도 마찬가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기존의 제도와 사유습성에 노출된 기간이 짧으며 지적 활동이 상대적으로 왕성하다. 기존의 사유습성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풍부하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기존의 사유습성은 더욱 강력한 지속성을 지니며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는 부족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필연이다. 역사의 중대한 고비마다 청년층이 낡은 제도와 지배적 사유습성, 전통적 생활양식에 반기를 드는 주체로 나선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모든 사회에서 청년은 진보적이며 노인은 보수적이다. 고령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앞으로 선거가 열 흘 정도가 남아 있다. 선거 전에 이 책을 만난 것은 나 자신에게는 행운이다. 이제는 자랑할 만한 대통령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칼 포퍼의 말 처럼 '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의 회피가 더 중요하다' 라는 말을 따르기에는 너무 아쉽다. 이제는 조금씩 세상과 정치라는 것에 눈길이 간다. 하지만 그래도 국가라는 것이 공기처럼 그저 곁에 머무른다는 것만을 알아 챌 수 있을 정도 였으면 한다. 그러면 노자가 말한 훌륭한 지도자가 우리에게도 생기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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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들과 세종문화예술회관의 '훈베르트바서 전시회' 를 다녀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들은 잠깐 보자마자 재미없다고 나가자 한다. 하지만 6살 징징거리는 아들을 안아주고 달래면서 서둘러 작품들을 감상 아닌 훑어 보고 나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겨우 화가의 이름을 알았던 것이 놀라울 만큼, 그의 작품들 속에 매료되었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아쉬운 마음에 엽서 두 장을 구입하고, 아들과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찾아보기 시작했다. 

 

 

훈베르트바서의 원래 이름은 프리드리히 슈토바서 였다. 자연을 사랑했던 그는 후에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 이라는 뜻의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로 스스로 개명을 했다. 그는 1928년 12월 1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그 이듬해 장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한다. 그 후에는 유대인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 당시 어머니가 유대인이었다면, 어떤 시기를 겪게 될 것인지 아마도 짐작할 것이다. 1938년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합병되고 할머니와 이모집으로 강제 이주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탄압으로 외할머니와 친척 69명이 몰살당한다. 그와 그의 어머니 역시 유대인 구역인 게토로 강제이주된다. 다행스럽게도 삶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그는 왕성한 예술활동을 하고, 2000년 2월 19일 태평양을 향하던 배 위에서 심장마비로 삶을 정리한다. 그는 유언에 따라 현재 뉴질랜드의 그의 마당 튤립나무 아래에 잠들게 되었다.

 
훈베르트바서는 그의 이름이 내포하고 있듯이 자연을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리고 직선을 자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으며 곡선을 강조했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대로 작품을 만들어왔으며, 삶 역시 그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인간을 보호하는 층은 5개의 층이라고 생각했다. 
 
첫째, '진짜 피부'
둘째, '입고 있는 의복'
셋째, '살고 있는 집'
넷째, '사회'
다섯째, '지구 즉, 환경'
 
이 중, 나에게 특히나 인상을 남겼던 것은, '살고 있는 집' 이었다. 그의 작품 모형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집도 있구나' 하며 홀로 감탄했기 때문이다. 지붕에는 잔디와 나무로 뒤덮여있다. 지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바닥이 될 수도 있다. 그의 건축에서도 곡선이 자유로이 흐르고 있으며, 그의 이름답게 자연의 냄새가 짙게 베어 난다. 최근에 집을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전시회를 보고난 그 다음 주말에 화원에 가서 조그마한 나무를 하나 사고, 다른 화분도 몇 개를 구입을 했다. 나무라 해도 화분에 담겨있는 나무이긴 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주거공간인 아파트에 나 역시 살고 있으면서 훈베르트바서의 집들 만큼의 자연은 곁에 두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위안을 갖고 싶었나보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런 관련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 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곳에 이런 글이 있어서 스캔해서 벽에 붙여두기도 했다.
 
식물의 나뭇잎 뒷면 혹은 어린 줄기 위에 존재하며,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구멍들을 '기공' 이라 부른다. 식물은 기공을 통하여 광합성에 필요한 탄산가스를 흡입하고 광합성의 결과 발생한 산소를 방출한다. 그뿐 아니라 식물은 뿌리에서 빨아올린 물을 기공을 통하여 수증기 상태로 배출하는데, 식물학자들은 이를 증산작용이라고 부른다. 식물학계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성년이 된 보통 크기의 나무 한 그루는 여름철 하루 동안에 수 톤의 물을 배출한다. 나무가 아닌 해바라기 한 그루도 여름철 하루 동안 약1킬로그램의 물을 수증기 형태로 배출한다고 하니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놀라운 양이다.

이처럼 식물은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려 증산작용을 통해 공기속으로 방출하는데, 땅속에 스며든 빗물을 순환시켜 그것이 다시 비가 되어 내리게 하는 것이다. 비가 많이 와서 당속에 물이 많으면 식물은 기공을 크게 열어 더 많은 수분을 증산하고, 땅이 건조하면 기공을 작게 하여 증산하는 물의 양을 줄인다 .식물이 물을 증산하는 과정에는 물의 기화열이 필요하고, 이 열을 주위에서 흡수해야 한다. 숲이 있는 곳이 여름철에 시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윤석철, 『삶의 정도』 中 -
 
그의 건축이 나는 특히나 인상이 깊었으나, 그의 그림도 한 번 보고가야 하지 않을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회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은 '창의성', '창조성' 이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생기고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자기 만의 무언가' 가 아닐까. 이게 단어만 달라졌지 얘전에 개성을 강조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훈베르트바서에게는 그것이 있다. 이제는 그의 작품을 보게 되면, 이게 훈베르트바서 작품이구나. 그의 곡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그냥 곡선이 아니다. 그에게는 그렇게 그리게 만들었던 그만의 사상이 있었고, 그의 내면에서 부터 삶으로 까지 퍼져있는 증거들이 넘쳐났다.
 

 

 

 

 

 

훈베르트바서는 1993년에 '자연과의 평화조약'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그의 자연주의사상을 재확인했다.
 
1.  자연과의 소통
- 우리는 자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자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2. 자연의 영역 환원
- 우리는 열린 하늘 아래 수평한 모든 것을 자연에 속한 것이라는 원리에 따라 인간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파괴했던 자연의 영역을 돌려주어야 한다.
3. 자연에 대한 관용
- 자연발생적인 식생에 대한 관용
4. 자연과의 재결합
- 인류의 창조와 자연의 창조는 재결합되어야 한다. 이들의 분리는 자연과 인간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5. 자연과의 조화
- 자연의 법칙에 조화되는 삶
6. 자연의 재생
- 우리는 단순히 자연의 손님일 뿐이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해온 가장 위험한 기생자이다. 인간은 자연이 재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태적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7. 자연의 순환
- 인간사회는 다시 쓰레기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쓰레기를 존중하고 재활용하는 사람만이 죽음을 삶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환을 존중하고 생명이 재생하여 지구에서 계속 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괜히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담아두었다. 훈베르트바서는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건축을 하기도 하였으며, 직접 옷과 신발을 만들기도 했다. 우표를 디자인하기도 하고 심지어 차량용 번호판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삶이었던 것 같다. 그가 자연을 사랑하며, 그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들어간다. 직접 거름 변기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핵무기와 해양오염 및 고래포획 등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도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훈베르트 바서는 나에게는 너무나 멋스러웠다. 멋스러움과 자신의 생각을 삶으로 살았던 사람,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 그 강은 아마도 계속 흐르지 않을까.
 
가슴 따갑게 다가왔다. 그의 생각대로 살 수 있는 그의 재능과 용기, 세상과 사회의 틀 속에서 주조되어 살게되는 삶이 아닌 그 만의 삶. 한 명을 더 만났나 보다.
 
 
- 참고 -
1. 세종문화예술회관 - 훈베르트바서 전시회
2.  (Book) 훈베르트바서 - 다섯 개의 피부를 지닌 화가왕  (피에르 레스타니,  TASCHEN)
3. 위키백과 - 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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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삶이란 무엇인가요?

답이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또 다시 물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수 없이 생각해봤지만,

한 번도 제대로 답해보지 못한 질문이기도 하다.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는,

그가 살아오고 돌아보았을 때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한 책인 듯 하다.


그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요?" 의 

'무엇'을 '목적함수'라 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의

'어떻게'를 '수단매체' 라는 말로 제시한다.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사는 한 번 뿐인 삶,

좀 제대로 살아보려고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고,

나에게 맞을 것 같은 이야기는

흡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 를 살며시 탐해 본다.

전적으로 현재의 내 관점대로 받아들여보자.



시작은 항상 '나' 부터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나도 모르게 내가 색안경을 낀 채 보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한 번의 개인적 성공으로 모든 것을 그것으로 귀결시키려고 하지 않는가? 나의 한계를 아는가? 나의 가능성을 아는가?



# 수단매체


#1. 언어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 라고 했다. 우리의 언어, 즉 말과 글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으로부터 나온다. 이때 우리의 생각과 상상이 우리의 세계이다. 만약 우리가 알고 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과연 알고 있다라고 할 수 있는가? 스스로 알지 몰라도 우리는 그런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언어의 한계를 더 확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과 그 동안 알고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이면을 살펴보는 것이다. 단순히 '꽃이 피었다' 라는 것과 어떤 색, 향기, 그 때의 날씨, 흙의 상태 등까지 바라볼 수 있다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재료는 마련도니 것이다. 그리고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조금 더 자세하게, 조금 더 깊이 있게 말과 글을 조탁해 나간다면 조금이나마 그 한계를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2. 사회적 수단 매체


기업과 같은 직장이나 국가나 국제기구 같은 거대 조직만이 사회인 것은 아니다. 부부 두 사람이 모이면 가정이 되고, 가정은 작은 사회라 할 수 있다. 가정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사회적 도구'는 신뢰이다. 부부 사이에 신뢰가 무너지면 그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투명성이 필요하다. 투명성을 거부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명성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요 조건의 하나이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더 있다. 자기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질이 그것이다. 자기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자를 보호하고,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양보 혹은 희생할 수 있는 이런 자질을 자기희생이라고 부르자. 이것은 사회의 지도자가 될 사람에게 특히 필요한 자질이다. 이렇게 볼 때 신뢰성, 투명성, 자기희생 능력 이 세 가지 개념은 한 사회가 건강하게 단결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수단매체가 된다.

-  『삶의 정도』 中 발췌 - 


이 부분은 최근에 직간접적으로 깨닫고 있는 부분이다. 우선 가깝게는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경험하고 있으며, 작년 가을부터 우리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결국 탄핵이 결정된 박근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위의 글귀들이 따갑게 각인되는 듯 하다.


위의 세 가지 개념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내가 최근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신뢰와 자기희생이다. 이유는 이 두 가지는 지켜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는 어느 날 소나기가 내리듯이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신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긴 시간 동안 서로 부딪혀가면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중심은 역시나 사람과의 관계이다. 이런 신뢰가 쌓이고 나서 어떤 일이 진행이 되어야 비로소 만족스러운 결과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힘든 것, '자기 희생' 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갖게 되는 이익과 혜택을 포기하는 것이다. 눈 앞에서 내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명백한 결과가 드러난다. '자기 희생'은 특히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할 경우에 더 큰 고민에 휩싸이게 만든다. 분명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하게 되면, 나는 그 일에서 해방된다. 하지만 모두들 하지 않을 경우에는 모두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내가 한다면 다른 사람은 나로 인해 혜택을 받게 된다. 이러한 순간적인 일들이 수 없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이 선택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그 어려운 신뢰가 쌓여 나간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모습,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를 지키는 모습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균형잡힌 삶. 올바르게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 삶의 목적함수를 향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 목적함수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무엇'을 위한 것이냐?


올 해 초 계획을 세웠던 부분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본다. 개인, 가정, 업(業)에 대해서 나누어서 목표를 잡았다. 


개인으로 분류한 부분에는 저녁10시 수면-새벽4시 기상, 운동, 책, 글쓰기, 영어 공부, 15년 이후 계획 구상하기. 

가정 부분에는 금전 관리, 아이들에게 더 신경쓰기, 요리 배우기, 집안 개선활동, 가족과의 여행

업에 대한 부분에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Technology  영역과  Business 영역으로 분류해서 조금 더 학습한다고 적어놓았다.


다시 질문한다. 그러니까 올해 내가 잡은 목표는 무엇을 위한 목표이냐? 왜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영어공부를 해야 하느냐? 무엇 때문에 요리를 배우고 아이들에게 더 신경쓰고 금전을 관리하느냐? 조금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자.


일단 아직 젊은 나이인데 조금씩 여기저기 신호가 오는 것 같다. 그 동안 운동과는 담을 쌓고, 식습관 조차 좋지 않아서 나온 일이다. 건강은 모든 것이 기본이다. 기본이 무너지면 결국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그래서 운동은 전체적은 기본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는 것은 내가 장기적으로 문화, 예술에 관련된 일을 조금이라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된 출판물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가끔씩 어딘가에 내 글을 싣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독서, 미술,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예술 영역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영어는 최근에 다른 이들의 글을 보니 참신한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넘쳐 났다. 그 친구들은 미국의 신문 기사와 웹사이트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있었다. 이렇게 양질의 정보를 우선적으로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영어를 배우려는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자주 가지 않는 해외여행, 출장이지만 갈 때 마다 간단한 일상 회화 정도는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과 언젠가 여행을 갈 때 아빠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도 싶기에 영어를 배우려는 것이다.


금전관리, 아이들에 대한 관심 등은 말 그대로 가정이 나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아내, 아이들 그리고 내가 집 밖에서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받았을 때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동물들이 아기들의 상처를 혀로 핥아 주듯이 가정에서는 다시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양식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하는 업(業)에 8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내가 하는 업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기간은 1,2년 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까지 충분히 배워야 할 것도 많이 있고, 충분히 흥미를 느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다시 5년, 5년 조금 더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조금 더 큰 그림을 바라 볼 수 있기를 원한다.



다시 돌아가자. 지금의 내 '목적함수'는 무엇인가?

누구나 그러할 거라 생각하지만


'삶(개인과 가정)의 안정' + '변화의 즐거움' + '문화예술과 지식의 기쁨' + '업(業) 에 대한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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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damental (육체적 건강함)


우선 내가 정한 목적함수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목적함수이지만, 이렇게 간단한 것도 제대로 한 번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당연한 것이 많다. 그것을 깨닫는 주체들에 따라 다가오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언가 내가 정리한 것에 대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나름 만족스럽다. 


분명, 저 '목적함수'를 통해서 나아가는 길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가치처럼 보이기도 하고, 분명히 하나가 무너지면 마치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도 있고, 하나가 이루어지면 반대로 다른 하나가 소홀해질 수도 있는 요소들이 서로 얽혀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나만의 목적함수를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자세하게 스케치하자. 서로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최대한 섬세해지자.하지만 예민해져서는 안 된다. 조금 더 명철해지되 냉정하지 않도록, 항상 가슴 만은 따뜻하게 할 수 있도록 하자.


'삶의 정도'는 아직 모르겠다.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바른 길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노력하는 자가 방황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나는 계속 방황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정도(正道)'는 아니더라도 내가 감사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마운 책이었다. 나에게 생각의 물꼬를 터 준 윤석철 교수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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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을 읽고 나서는 평소에 서평을 쓰는 형식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그 속에 의미있는 글귀를 한 두 문장씩 적어놓는 것은 왠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대신 '과연 나는?' 이라는 질문이 수 없이 떠올랐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보기로 했다.


최근 3년 정도 지금도 여전히 그 연장선 상에서 나는 강박관념에 쌓여있는 느낌이다. 책을 읽어야만 한다. 나는 성장해야 한다. 나는 모든 면에서 빈틈이 보여서는 안 된다. 나는 상처받지도 않는다. 남에게 상처주지도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 나는 모든 면에서 나아 보여야 했고, 나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만 보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엄격한 기준에 무언가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면 스스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너무나 그것에 신경쓰였고,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에 신경이 과민하게 쓰였던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과 배우고 싶은 갈증,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 직장 생활에서 무언가 이루고 싶은 욕망과 내 일을 찾아서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나'라는 한 몸에서 서로 뒤엉켜 있다. 이런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에 교통 통제가 중요하다. 한 쪽 부분에 매몰되다 보면 분명히 다른 부분이 소홀해진다. 어딘가 소홀해지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기를 원하는 나에게는 그것이 아픔이고 쓰라림이다. 그래서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톱니바퀴가 하나만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상처하나 없는 톱니바퀴 조차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무엇이 긴 호흡으로 보았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스트레스 해소' 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서 현명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두 가지다. '명상'과 '운동'이다.  이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땀을 내는 운동일 것이다. 나는 유난히 정적인 생활을 하다보니 운동량이 부족하다. 그리고 운동을 지금껏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에 그것에 대한 기쁨과 쾌감을 알지 못한다. 운동을 하자. 그리고 무엇이든지 효과를 얻어내려면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하루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자. 때로는 그냥 걸어보고 또 뛰어보고 해서 내 몸과 친해지자.


다음은 '명상'이다. 스스로 조용히 새벽과 저녁에 차분하게 마음을 달래고 싶다. 무언가를 시작을 하고 마무리를 지을 때 차분히 머리를 비우고 하루에 대해서 조용히 정리하고 싶다. 쓰라렸던 가슴도 달래주고, 복잡했던 머리도 차분하게 감싸주자.


운동. 명상.  

중요한 것은 내가 아직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씩 차분하게 배우자.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습관을 만들자.

습관. 습관으로 만들자. 몸에 체화되는 그 순간 내 것이 되는 것이다.


...


책의 작가인 채사장은 문학, 기독교, 불교, 철학, 과학, 이상, 현실, 삶, 죽음, 나, 초월 이라는 계단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자신에게 불편했다던 것을 하나씩 찾아서 이어갔다. 그 불편한 것들은 그가 이전에 이해한 다른 분야와는 변증법적으로 어울려 새로운 정(正)을 만들었다. 그 역시 표현으로는 계단으로서 한 계단을 오르고 그 다음으로 오르는 것으로 표현을 했지만, 아마도 그 역시 마치 복잡계처럼 서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여기저기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생각의 결과 끝에 나름 대로 그의 머릿속에서 나름의 체계가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직 무언가 새로운 창조물이 나오기에는 내 머릿 속에서 서로 융합할 재료는 부족하다. 그리고 아직 불편한 것에 새롭게 발을 내딜 용기 또한 부족하다. 어쩌면 이번에 운동, 명상이 그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또 다시 글로만 머문다면 오늘 여기까지 적어온 것은 또한 허공에 버려지는 것일 뿐이다. 아무런 의미없이 글 연습만 하는 것이다. 


'부디 용기를 내달라' 내 자신에게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17년 2월 5일 오후 11시 33분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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