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름 석 자 '손석희' 그대로 언론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손석희 라는 말에는 신뢰라는 단어가 실과 바늘처럼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그리고 1956년 생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동안을 유지하는 '손석희', 어찌 그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예전부터 그와 관련된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언론비평과 인물비평에 탁월한 '강준만' 교수의 『손석희 현상』 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는 언론인 '손석희'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아마 12년 정도 전인 걸로 기억한다. 그가 내가 다니는 대학에 특강을 온적이 있었다. 장소 자체가 많은 인원을 채울 수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학생들이 계단에도 모두 앉고,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서서 그의 특강을 들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그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었다. 그 때의 특강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한 기억이 하나가 있다. 누군가 질문을 했다. "혹시 나중에 정치 쪽으로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 때 그의 대답은 "자신은 정치라는 것이 언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희미해지는 옛 기억이라 이런 말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예전에 홍준표 의원이 손석희 앵커에게 정치를 할 거냐고 묻는 질문에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 라고 재치있게 대답한 것과 비슷한 말이 아니었을까.
2013년, 손석희는 JTBC 보도총괄 사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며 종편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당시에 수 많은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그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으며, 왜 그가 그곳을 향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과연 그가 삼성과 관련된 보도를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주목했다. 그리고 손석희는 <JTBC 뉴스룸> 을 통해서 다시 앵커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뉴스는 달랐다. 아마도 그가 지금까지 언론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생각했던 많은 점들을 그곳에 녹여놓은 게 아닐까.
박성호 : 그래서 텔레비전 뉴스가 시청자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군요.
손석희 : 네, 텔레비전 뉴스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제가 요즘 뉴스를 분석적으로 보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건 있을 것 같아요.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스토리만 있고 히스토리가 없고 텍스트는 있는데 콘텍스트는 없고. 그게 가장 뼈아픈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계속 쫓아가면서 현상에 대해 보도는 하지만 그에 대해서 콘텍스트를 시청자들이 모르고 히스토리를 알 수가 없다면 시청자가 그 뉴스에 대해 깊이 알기도 어렵고 평가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는 여전히 백화점식 보도, 1분 30초짜리 보도거든요. 거기에 무슨 히스토리가 있고 콘텍스트가 살아남겠어요? 스토리와 텍스트만 살아남는 것이지. 현재 텔레비전 뉴스는 낮에 다 본 걸 화면과 기자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것뿐이잖아요. 볼 필요가 없어진단 이야기지요. 더군다나 젊은 세대들이 TV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자기가 선택한 뉴스도 아니고, 자기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콘텍스트나 히스토리에 대해서도 인터넷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서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 그냥 1분 30초 동안 보도해주는 것에 대해서 무슨 매력을 느끼겠어요. 안 느끼지. 그럼 안 보는 겁니다. 그런 데서 오는 약점 아닐까요?
- <손석희 현상> 中, p116 -
손석희는 2015년 9월 21일 서울 동대문플라자에서 열린 중앙 미디어네트워크 창립 50부년을 기념하는 '중앙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행한 '뉴스룸의 변화' 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도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미디어 시장에서 언론사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정보 가운데서 중요한 정보를 고르고 이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석희는 어젠다 키핑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로 '소비자'를 꼽았다. 초기에 뉴스 소비자들은 단순히 '뉴스를 보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보를 제공하는 존재'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화두를 던지면 시청자들은 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네트워킹을 하게 된다"며 "이것이 JTBC 뉴스룸이 지향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지루하다는 인식도 있어서 반성하고 있다. 물론 손해 보는 상황도 발생한다. 시장에서 손해는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젠다 키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빨리 바뀐다고 해도 저널리즘이 미래적 가치로 지켜야 할 것이 어젠다 키핑"이라고 말했다.
- <손석희 현상> 中, p190 -
그는 지금의 뉴스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세상은 변해가고, 수 많은 매체의 등장과 변화를 통해 뉴스 소비자들의 소비방식은 변해가는데 뉴스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토리에서 히스토리로,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로,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기사가 아닌 지속적인 화두제시로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된 방식의 뉴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대중에게 통했다.
나 역시 <JTBC 뉴스룸> 2부에 시작하는 앵커브리핑을 따로 모아서 보기도 했으며, 엔딩곡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는 딱딱한 뉴스에 사람 냄새를 진하게 묻어나게 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인터뷰에서 쉽게 보기 힘든 유명인들도 그에게 선뜻 시간을 내주며 팬이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차가운 시선으로 뉴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사람에게는 지극히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이기에 인터뷰를 꺼리는 사람들, 그리고 뉴스를 외면했던 이들이 그가 진행하는 뉴스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가 진행하는 앵커브리핑에서 몇 번이나 울컥했나 모른다.
작년 11월 어느 날의 앵커 브리핑이다.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단원고 기억교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멈춰야 했던 그 교실이 안산 교육청 건물로 임시 이전해
문을 열었습니다.
교실엔 오늘도 수업이 진행되는 양 온기가 느껴지고 책상위엔 소소한 낙서의 흔적이 남아있군요.
또래 친구들은 작년에 수능을 보았을 테고 재수를 한 친구들은 며칠 전 수능을 마쳤을 테지요.
그리고 ... 김관홍 잠수사.
세월호의 민간잠수사였다가 몸과 마음을 다쳤고 지금은 저세상으로 가버린 사람.
차가운 바지선 위에서 담요 한 장에 의지해 잠을 잤고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아이들을 두 팔로 끌어안고 나왔던 사람.
잠수사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은
"뒷일을 부탁합니다" 였습니다.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는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변호인이 이야기한 '여성의 사생활' ...
우리는 그것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사사로운 모든 관계를 끊고, 가족을 만나지 않고, 1분 1초도 쉬지 않고 일한다 했지만...
오히려 개인의 사생활과 사사로운 친분관계, 이것은 대통령이라고 해도 결코 예외가 아닌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행복한 대통령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17살의 아이들이 기울어져가는 그 배에서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있어야 했던 그 시간에,
비록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강변이 나왔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했어야만 했던
그곳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었는지를 궁금해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잊지 않으려 오늘도 질문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뒷일을 부탁'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삼십대 중반의 나이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이제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다니는 회사에 선배 뿐만 아니라 후배도 하나 둘씩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연 나는 아이들과 후배에게 어떤 아빠, 선배인지 모르겠으나,
항상 누군가를 보고 나도 조금씩 닮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사회에서 그런 분이 이제는 한 명은 분명히 생겼다는 것에 대해 고맙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굳은, 곧은 의지와 변함없는 신념,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항상 중립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 자세,
집요하고 불합리한 것에 대해서 냉정해 보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도 따뜻해보이는 모습.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한 번 나도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20년 뒤, 30년 뒤의 나는 과연 어떠할까. 조금씩 이렇게 배우다 보면,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P116
박성호: 텔레비전 뉴스의 위기라고들 말합니다. SNS 와 비교하면 속보성도 떨어지고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이슈를 다루는 기동성도 떨어지고요.
손석희 : 기본적으로 텔레비전이 옛날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간 째는 지났잖아요. 뉴미디어가 출현하면서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고, 과거로부터 모든 뉴미디어가 출현하면 기존 미디어들은 일정 부분 타격을 입었던 게 사실이고요. 심지어는 망한다고까지 했죠.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영화가 모두 망할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만들어낸 게 70mm 대형 영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였고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죠. 그런데 방송 중에서도 가장 올드 미디어인 라디오 같은 경우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생각해보자고요. 라디오가 갖는 특성을 살려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죠. 텔레비전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변한 게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변화가 없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박성호 : 그래서 텔레비전 뉴스가 시청자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군요.
손석희 : 네, 텔레비전 뉴스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제가 요즘 뉴스를 분석적으로 보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건 있을 것 같아요.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스토리만 있고 히스토리가 없고 텍스트는 있는데 콘텍스트는 없고. 그게 가장 뼈아픈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계속 쫓아가면서 현상에 대해 보도는 하지만 그에 대해서 콘텍스트를 시청자들이 모르고 히스토리를 알 수가 없다면 시청자가 그 뉴스에 대해 깊이 알기도 어렵고 평가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는 여전히 백화점식 보도, 1분 30초짜리 보도거든요. 거기에 무슨 히스토리가 있고 콘텍스트가 살아남겠어요? 스토리와 텍스트만 살아남는 것이지. 현재 텔레비전 뉴스는 낮에 다 본 걸 화면과 기자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것뿐이잖아요. 볼 필요가 없어진단 이야기지요. 더군다나 젊은 세대들이 TV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자기가 선택한 뉴스도 아니고, 자기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콘텍스트나 히스토리에 대해서도 인터넷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서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 그냥 1분 30초 동안 보도해주는 것에 대해서 무슨 매력을 느끼겠어요. 안 느끼지. 그럼 안 보는 겁니다. 그런 데서 오는 약점 아닐까요?
박성호 : 방법이 없을까요?
손석희 : 인터넷을 보자고요. 인터넷도 가만히 보면 때로는 스토리와 텍스트만 남아 있을 때도 있어요. 한 가지 예를 들면 내가 출연자와 논쟁적인 인터뷰를 했을 때 그걸 직접 들은 사람과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한 사람은 반응이 하늘과 땅 차이죠. 인터넷을 보고 반응하는 사람은 오해를 한다고요. 그렇잖아요? 뉴미디어라는 인터넷도 그 정도의 약점은 있어요. 그리고 히스토리로 찾아보려면 한참 뒤져봐야 하는 것이죠. 그 기기 device에 약한 사람은 접근하기도 어렵고. 내가 보기엔 그런 부분을 현재 텔레비전 뉴스는 낮에 다 본걸 화면과 기자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것 뿐이잖아요. 볼 필요가 없어진 단 이야기지요. 텔레비전에서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텔레비전은 큰 조직을 갖고 있고 취재 인원도 많은 뿐더러 다양한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잖아요.
박성호 : 방송 뉴스의 내용 면에서 봐도 시청자들이 알고 싶은 걸 다룬다기 보다 뉴스 공급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뉴스들을 실어 나른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손석희 : 그건 예전하고 똑같아요. 출입처 제도라는 취재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니까. 각 부장들이 출입처의 기자들을 관장하니 편집 회의에 아이템을 낼 때도 출입처 기준으로 반영이 되고, 아주 원론적인 문제이면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백화점식 나열 뉴스를 깨려면 출입처를 허물어뜨려야 하는데, 그걸 깰 수 있을지...
박성호 : 제가 1년간 영국에서 모니터를 해보니 'BBC 뉴스는 맥락을 제공하는 뉴스' 였습니다. 교수님도 우리 뉴스에 콘텍스트가 없다고 하셨는데, 뉴스의 내용 면에서는 어떤 걸 지향해야 할까요?
손석희 : 난 인터넷 댓글 뉴스를 보면 답이 상당 부분 나와 잇다고 봐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인터넷 뉴스에서 댓글 많은 뉴스는 원칙적으로 편집자들이 임의로 뽑은 주요 뉴스가 아니라 댓글 많은 뉴스가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뉴스에는 물론 쓸데 없는 정크 인포메이션도 있어요. 연예 관련 소식이 많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굉장히 논쟁적인 뉴스들이 올라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나는 그런 것들도 텔레비전 뉴스에서 응용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 서른 몇 개의 아이템을 낼 게 아니라 아이템 수를 대폭 줄이더라도 우리가 어떤 부분이 논쟁적이고 댓글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니 그 부분에 좀더 많은 취재 인력과 편집시간을 배당해주면 그게 나은 것 아닌가요? 그건 뉴스의 본령에도 맞아요. 우리가 이야기한 콘텍스트든 스토리든 모두 담을 수 있다고요. 또 시장성에도 맞아요.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보이니까 그게 요즘 대중들의 욕구잖아요. 내가 뉴스를 봐도 20분, 30분 넘어가면 별로 볼 게 없어요. 뉴스 소비하는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생각들일 겁니다. 그 뒤의 뉴스는 다른 프로그램에서 다뤄도 되는 부분이죠. 굳이 왜 하려고 하냐고요. 왜 1분 30초식 서른 몇 개를 고집하느냐 말입니다.
박성호 : 더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죠. 형식과 내용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기자 리포트의 스토리텔링 방식, 기사 작성의 관습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손석희 : 그게 여태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요. 미안한 이야기인데, 제가 입사했을 때랑 지금의 리포트 기사 스타일이 차이가 없어요. 한 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하자면, 제가 태풍 올라오고 삼풍백화점 무너지고 할 때처럼 뉴스 특보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 느꼈던 게 뭐냐 하면 이런 겁니다. 한강변에 기자가 나가 있다고 쳐봐요. 그럼 하루 종일 한강 수위 센티미터 숫자만 바뀌고 문장이 똑같아요. 앵커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들으면 외워요. 그 친구가 말한 걸 다 외운다고요. 시간대별로 한강 수위가 몇 미터 몇십 센티미터인지만 바뀌었어요. 그것만 갈아 끼우는 겁니다. 취재를 그것만 하는 거죠.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그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굉장히 많은 취재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잔 나가서 중계차 타고 센티미터만 보고 있다고요. 거기에서 무슨 새로운 뉴스가 나오겠어요. 시청자들은 하루 종일 똑같은 이야기만 듣고 있는 거죠. 의미가 없어요. 기자의 방송 능력도 안 늘고요. 한편으론 기자들의 방송 능력도 가둬둔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시스템의 문제인 것 같아요. 생각해봐요. 매일같이 출입처에서 나오는 자료 보고 그 바탕 위에서 보강 취재하는 데 익숙해지면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너무 심하게 이야기해서 미안한데, 그런 데 익숙해진 기자의 경우 자율적 취재 기능이 상당 부분 떨어져 있다고 봐요.
p 73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건 모두 '선택'인 거죠. 실수란 선택을 잘못 한 것이고요. 그럼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못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해야죠. 전 그래서 제가 간 길에 대해 실수란 표현을 잘 쓰지 않아요. 일종의 자기 합리화인데, 제 자신을 평가하는 덴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p 78
방송을 시민사회에 돌려주자. 가칭 '방송의회'를 구성하자. 방송위원회 위원과 공영방송사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방송의회에 넘겨주자. 행여 돈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방송의회를 구성하는 방송 의원은 교통비조차 받지 않는 완전 무보수 명예직이다. 방송 의원들은 방송위원회 위원 및 방송사 사장 등을 선출하는 투표권만 행사하면 된다. 선출 후 중대 사안에 국한하여 결정을 내리는 추가 투표도 있을 수 있겠다.
방송 의원 규모는 사회 각계를 대표하고 외부 압력과 로비를 거의 무의미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게끔 수천 명으로 하자. 선출은 완전 자유경쟁 공모제로 하자. 후보자들은 수천 명의 방송 의원 앞에서 자신의 비전과 소견을 역설해 본격적인 검증을 받도록 하자. 공정성 안전 장치도 그런 검증 과정을 통해 마련하도록 하자.
기존 시스템과 비교하여 방송의회에 문제가 없을 리 없다. 적잖은 부작용도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권의 정략적 갈라먹기 싸움에 늘 이전투구로 전락하곤 하는 공정성 갈등을 유발하는 기존 방식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선출만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일 뿐 방송이 국가 체계상의 한 부분으로 가능하게끔 하는 기존 시스템은 그대로 가져가는 만큼 '독립'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방송의회는 한국 시민사회의 수준을 반영할 것이다 .그 수준이 낮아 문제가 되는 건 감수하자. 지금 우리가 현 시스템에 대해 분노하는 건 그것이 한국 사회 전반의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방송의회 구성은 기존 법과 제도를 상당 부분 바꿔야 하는 일인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 검토해보되 그 취지와 의미만큼은 지금 당장 받아들이자. 방송계를 눈만 뜨면 싸움질하기에 바쁜 정치권의 대리 전쟁터로 만들거나 볼모로 잡아두는 건 우리 모두의 자학이다. 다른 정부 유관 기관들도 이런 인사 방식을 원용하자.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의 중립적 영역을 넓혀가지 않는 한 한국은 내부 당파 싸움에 역량을 소진시켜 주저앉고 말 것이다.
p 91
"미국에 있을 때 <손석희의 미국탐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당시 전직 방송기자 출신인 시민운동가를 만났는데, '왜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기자는 양쪽 입장의 균형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한쪽의 입장을 견지하고 싶은 때가 많았다.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하는 것은 내가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다.' 저 역시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방송인으로 있는 한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p 104
정관용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신념이 과도하게 넘친다"고 개탄한다. "그런데 모두 당파적 신념들이어서 문제이다. 의심의 자세가 부족하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먼저 묻고 가른 다음 같은 쪽이면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주장을 펴든 일단 맹신한다. 왜 그런지, 맞는지 틀린지조차 따지지 않는다. 반대로 다른 편이 펴는 주장이나 행동은 일단 부정하고 본다. 그의 주장과 행동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 헤아리지 않는다. 그의 논리가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판단한다. 이것이 '편'의 논리, 진영 논리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한국 사회에서 '신념'이나 '확신'이란 말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것도 문제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절엔 확신은 물론 '광신'마저 투쟁의 동력으로 필요했고 긍정 평가할 수 있었겠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선, 게다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선, 그 어느 쪽을 막론하고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확신이다. 확신은 나의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잔인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p 117
네, 텔레비전 뉴스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제가 요즘 뉴스를 분석적으로 보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건 있을 것 같아요.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스토리만 있고 히스토리가 없고 텍스트는 있는데 콘텍스트는 없고, 그게 가장 뼈아픈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계속 쫓아가면서 현상에 대해 보도는 하지만 그에 대해 콘텍스트는 시청자들이 모르고 히스토리를 알 수가 없다면 시청자가 그 뉴스에 대해 깊이 알기도 어렵고 평가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는 여전히 백화점식 보도, 1분 30초짜리 보도거든요. 저기에 무슨 히스토리가 있고 콘텍스트가 살아남겠어요? 스토리와 텍스트만 살아남는 것이지. 현재 텔레비전 뉴스는 낮에 다 본 걸 화면과 기자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것뿐이잖아요. 볼 필요가 없어진단 이야기지요. 더군다가 젊은 세대들이 tv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자기가 선택한 뉴스도 아니고, 자기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콘텍스트나 히스토리에 대해서도 인터넷 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서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럼 그냥 1분 30초 동안 보도해주는 것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겠어요. 안 느끼지. 그럼 안 보는 겁니다. 그런 데서 오는 약점 아닐까요?
P 124
기본적으로 뉴스 앵커 때 하고 비슷한 입장이긴 한데, 나는 내 의견은 그렇게 내밀지 않아요. 내가 예전에 타사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 만나서 이야기 들어보면 새벽 3~4시에 나온대요. '아니 왜 그렇게 일찍 나오냐' 고 했더니, 나와서 오프닝과 클로징을 서야 한다고 해요. MBC도 아침 8시 라디오 진행하는 뉴스 앵커들이 일찍 나와서 오프닝, 클로징 멘트 멋있게 준비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그랬어요. '그러면 죽습니다. 사람이 좀 자야지' 난 일찍 안 나와요. 방송 45분 전에 나와요. 그 기본적인 이유는 그런 데다 시간이나 정력을 쓸 게 아니고 인터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한마디라도 더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예요. 내가 클로징 멘트를 못하고 끝내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광고 끝나고 타이틀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1분이라도 좋은 질문에 쓰는 게 낫지, 내가 뭐 나서서 내 말을 전해준다는 것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나라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어쩔 수 없이 균형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콘텐츠로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어떤 진행자의 주관이나 콘텐츠와 상관없는 스타일에 있어서 차별화시키려는 노력은 내가 좀 해보진 않은 것 같아요.
P 134
왜 JTBC 일까? JTBC가 개국 당시부터 손석희 영입에 공을 들인 것은 방송가에서 나름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도 영입 제안은 어래전부터 받았고, 고민도 오래 했다고 말했다. "언론이라는 게 사회통합 기능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걸 한번 실천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딱 JTBC만이 최적의 여건이라고 얘기할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도전해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P 135
2013년 5월 13일 손석희 JTBC 신임 보도담당 사장으로서 첫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보도국 기자들과의 첫 회의에서 "균형, 공정, 품위, 팩트를 4대 가치로 한 방송 뉴스를 만들겠다" 고 밝혔다.
P 190
손석희는 2015년 9월 21일 서울 동대문플라자에서 열린 중앙 미디어네트워크 창립 50부년을 기념하는 '중앙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행한 '뉴스룸의 변화' 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도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미디어 시장에서 언론사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정보 가운데서 중요한 정보를 고르고 이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석희는 어젠다 키핑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로 '소비자'를 꼽았다. 초기에 뉴스 소비자들은 단순히 '뉴스를 보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보를 제공하는 존재'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화두를 던지면 시청자들은 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네트워킹을 하게 된다"며 "이것이 JTBC 뉴스룸이 지향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지루하다는 인식도 있어서 반성하고 있다. 물론 손해 보는 상황도 발생한다. 시장에서 손해는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젠다 키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빨리 바뀐다고 해도 저널리즘이 미래적 가치로 지켜야 할 것이 어젠다 키핑"이라고 말했다.
P 203
전근대, 근대, 탈근대적 요소가 동시에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대해 말했듯이, 1970년대 의식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과 2010년대를 같이 살아가야 하는 건 웃기는 일인 동시에 피곤한 일인 것 같다.
P 243
손석희의 저널리즘적 의미는 이론과 실천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괴리를 돌파해냈다는 점에도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저널리즘 학자가 강단에서 저널리즘의 바람직한 방향과 내용에 대해 말하기는 쉽다. 그 누구도 실천을 요구하지 않는 학자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실천은 전혀 다른 세계다. 그런데 손석희는 그 두 세계를 연결하는 데에 적잖은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랴.
P 278
의제설정 권한은 언론의 존재 근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언론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의제설정을 어떻게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언론의 영향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선 캠페인을 분석한 저서를 여러 권 낸 바 있는 정치 전문 저널리스트인 시어도어 화이는 언론의 의제설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에서 언론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공중 토론의 의제를 제공하며, 이 대단한 정치적 힘은 어떤 법률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는다. 언론은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생각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독재자, 성직자, 정당, 정당 총재에게나 부여될 수 있는 권한이다."
언론이 특정 이슈들을 강조하거나 부각함으로써 수용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이슈들을 중요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효과 또는 기능을 가리켜 '의제설정 기능'이라고 한다. 즉, 언론이 수용자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도록' 하기 보다는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끈 다는 것이다.
P 280
진보 진영은 보수 언론을 바보로 안다. 보수 언론은 늘 '진보 죽이기'를 절대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는 식의 발상을 한다. 미련한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장사를 할 수 있을까? 보수 언론엔 이념과 노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업적 생존과 성장'이라는 걸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대학 신입생들이 1학년 1학기에 읽는 언론학 개론서만 보아도 훤히 알 수 있는 사실을 그들은 애써 외면한 채 보수 언론의 비판을 무조건 자기 면죄부로 삼으려 들다가 골병이 들고 말았다. 보수 언론이 이들을 골탕 먹이는 건 간단하다. 옳건 그르건 민심을 좀 꿰뚫어보는 주장을 해대면 뭐든지 보수 언론의 반대로 하겠다는 사람들이 갈 길은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보수 언론에 대해 '프레임' 이라는 어려운 말까지 써가면서 제법 고급스럽게 분석하는 이도 많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본말전도의 위험이 있다. 아니 '위험'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이다.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보도와 논평의 틀을 말한다.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이 선택하는 프레임을 떠올리면 되겠다. 똑같은 풍경이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프레임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사진이 갖는 의미는 각기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똑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임은 보수 언론은 물론 진보 언론에도 존재한다. 문제는 힘의 격차다. 진보는 늘 보수의 프레임이 어떻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보수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강자는 약자의 프레임에 시비를 걸지 않는 법이다. 진보가 보수의 프레임을 잘 살펴보면서 휘말려들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진보는 그 필요성을 오 남용해왔다. 과대평가의 수준을 넘어 뻥튀기라고나 할까? 진보 진영의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알고 답을 안에서 찾으려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보수 프레임 탓으로 돌린다. 이점에서 나는 프레임 이론이 한국의 진보 진영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진보의 악습 중의 하나인 '남탓'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프레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인 '뉴스 가치'의 문제다. 시장에서 어떤 뉴스가 더 잘 팔릴까? 보수 언론도 진보적 뉴스가 잘 팔리는 상황이면 진보적 뉴스를 생산하게 되어 있다. 이게 이념에 앞서는 시장의 철칙이다. 보수 언론은 이처럼 유동적이고 신축적인데, 왜 진보 진영은 보수 언론을 불변의 법칙과 같은 틀로 이해하고 재단하는가?
이젠 '보수 프레임' 탓 그만하고, "장사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싸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배를 채우려 드는 하이에나 근성"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일부 극우파는 그런 근성의 발휘를 가리켜 '언론의 난'이라고 하지만, 그게 '난'이라면 그들이 숭배하는 미국은 '언론의 난'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나라라는 건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니 극우파 이야기 할 것 없다. 나의 평소 지론이지만,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의 머리를 과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 실속 없는 오만은 버리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