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문장을 처음 발견했을 때 홀로 탄성을 질렀다. 그 이후로 머리 속에 각인되어 항상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어떤 행동을 하기 앞서 다시 한 번 되뇌이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머리 속에 각인된 문장 속을 채워주는 새로운 물음을 만났다.
바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하는데, 그 때 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가?
혹시나 믿고 있던 내 생각이 주체적인 내 생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가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똘레랑스에 대해서 인상깊게 읽은 다음에 만난 그의 두번째 책이도 하다.
과연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p24
네 경로(독서, 토론, 직접견문, 성찰)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인 반면,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이지 않다. 독서와 토론, 직접견문과 성찰은 내가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이지만, 제도교육과 미디어에서 나는 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객체이며 대상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과거에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제도교육이 보편화되었고 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의 의식세계는 빈 채로 남아 있지 않고 채워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법의 차이가 아니고 주체적이냐의 잣대가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혹여나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서 바람직하고 주체적인 자의식을 만들어 낸다면 그 역시 좋다고 생각된다. 매체와 방법은 분명 위에 제시한 것 외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위에 언급된 구분은 어느 정도 개인적으로 공감이 된다.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접했을 때를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생각해본다면 한 마디로 '노력없이 그저 받아들인다' 라고 설명하고 싶다.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분명 미디어와 제도교육도 긍정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노력없이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고 뇌리에 박히게 만들어버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익숙해진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할 줄 모른다.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는 것에 서툴기에 누군가 문제를 만들고 거기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답만을 쫓는다.
P192
20대에 반나치 투쟁에 참여했다고 붙잡혀 수용소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일흔 살을 앞두고 끝내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이 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내가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떠한지,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모른채 세상에 무심함을 가지고 산다는 게 얼마나 나를 위험한 존재로 만드는지 모른다. 의문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을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 어떤 것도 우리가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다른 누군가의 생각의 결과물이다. 그 생각의 결과물에 우리도 과감히 우리의 생각을, 의문을, 질문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 언급된 주체적으로 얻게 된 생각의 경로인 독서,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이중 독서는 어느 정도 실천에 옮기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조금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토론은 최근에 기회가 되어서 몇 번 할 수 있었는데 내 생각이 얼마나 고정되어 있었고,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람들마다 의견이 얼마나 다른지 이렇게 글로는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실제 경험에서 오는 자극과 충격은 상당하다. 나머지는 직접 견문과 성찰인데 예전부터 고민해오던 부분이다. 하지만 시간의 부족이라는 핑계로 모면해버린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한 고민의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한 번 읊게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p23
지배세력의 기획에 의한 일방적 세뇌와 주입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독서와 토론, 직접적인 견문이 꼭 필요하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생각하는 동물인 나는 지금 갖고 있는 내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은 태어났을 때엔 분명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지배할 내 생각은 어떤 경로로 내 것이 되었을까? 이 물음은 실로 엄중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질문이 요구하는, 각자가 겪은 사회화 과정에 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훈련이 안되어 있다.
p24
위의 네 경로(독서, 토론, 직접견문, 성찰)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인 반면,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이지 않다. 독서와 토론, 직접 견문과 성찰은 내가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이지만, 제도교육과 미디어에서 나는 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객체이며 대상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과거에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제도교육이 보편화되었고 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의 의식세계는 빈 채로 남아 있지 않고 채워진다. 나는 유소년 시절에 할머니 할아버지 뻘 되는 분들이 "나는 무식해, 아무것도 몰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종종 들었다. 오늘날엔 그런 분을 만날 수 없다.
국가권력이 장악한 제도교육과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미디어에 의해 넘칠 정도로 채워지는 의식세계는, 특히 한국처럼 제도교육이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스스로 책을 읽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지배세력이 요구한 것만으로 채우게 된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지 못했지만 지배세력이 요구한 내용으로 채우지도 않았다. 설령 채웠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이뤄지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지배세력에 대한 복종의 자발성에서 과거에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보다 오늘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더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p42
생각과 논리를 요구해서는 일등부터 꼴찌까지 정확히 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p43
한국에서 남다른 교육자본을 형성하여 사회 상층을 차지한 사람들은 인간과 사회를 보는 눈뜨기라는 점에서 볼 때, 올바른 생각, 풍요로우면서도 정교한 생각을 검증받은 게 아니다.오로지 암기와 문제풀이를 잘해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관해 질문을 던질 줄 모르고 오직 객관적 사실에 대한 암기에서 뛰어나다는 점은 그들이 기존 체제를 지키는 가치관과 이념으로 무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들의 지배를 받는 사회구성원들에게 비판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의 의식세계에는 지배세력이 기획, 의도하여 암기하도록 한, 세뇌시킨 것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회의하지 않고 고집하기 때문에 지배세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 관철되는 것이다. 이것이 '미친 교육'의 실상이다. 즉,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과 논리가 없어 지배세력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구성원을 양산하는..
p45
학생들을 등수로 줄 세우는 대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글쓰기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 이전에 독서와 글쓰기가 사라진 중고등학교의 '미친 교육'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뜨는 만큼 자아의 세계가 확장된다.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에 관해 자기 생각과 논리를 갖게 해야 한다. 학생들은 사물과 현상에 관해 자기 생각과 논리를 펼 때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p50
학벌체제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평생 교육을 멀리 하게 한다. 만 18세에 인생의 서열이 거의 정해졌기 때문에 그 이후에 공부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구성원은 일생 동안 기껏해야 두 번 공부한다. 대학입시를 위해 한 번, 임용이나 취직하기 위해 한 번, 남과 벌이는 경쟁에서 이기려고 두 번 긴장할 뿐, 자기성숙을 위한 모색과 긴장은 거의 죽은 사회다. 대학 도서관마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생이 아니라 고시생들로 넘쳐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자기 서열을 뛰어넘는 길이 고시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시 공부를 하거나 토익이나 취직 공부를 할 뿐 인문학적 기초나 사회문화적 소양을 갖추려 하지 않는다.
p52
어떤 사회에서나 엘리트층은 형성되게 마련이다. 중요한 점은 그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있는가에 있다. 한국의 엘리트층이 엘리트로서 가져야 할 능력도 부족하고, 사회적 책임의식도 없다는 것은 온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광란 상태의 교육현실을 외면하는 것 만으로도 알 수 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이 없다는 것을 '스카이' 대학 당국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미국 대학에서 한국 출신 유학생들이 질문을 제기할 줄 모르고 토론할 줄도 모른다는 얘기를 나보다 더 자주 들었을 것이다. 그런 결과를 낳은 게 인문사회과학을 반학문으로 만든 탓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터인데, 그렇게 만든 주범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이점을 모르고 있다면 엘리트로서 능력이 없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고, 알고 있다면 사회적 책임이 없다는 비판 정도가 아니라 파렴치한 기득권 수혜자라는 말을 들어야 마땅할 것이다.
p54
이 땅에 근대식 학교로, 관립 소학교는 1894년에, 관립 중학교는 1900년에 처음 세워졌다. 조선이 망해갈 즈음이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근대식 학교를 정형화한 지배세력은 군국주의 일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러면 군국주의 일본이 왜 이 땅에 학교를 세웠을까? 조선 사람을 위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군국주의 일본이 이 땅에 학교를 세운 목적은 첫째, 조선 사람에게 황국신민이 되어 일본 왕에게 자발적으로 충성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다녔던 국민학교의 '국민'은 본디 '일제 천황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국민'을 말했다. 일제는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불령선인이라 했고 '비국민'이라고 불렀다. 이 땅의 근대식 학교는 애당초 조선 사람의 정체성을 스스로 배반하고 일본 사람이 되도록 하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의 장이었다.
둘째 목적은 전시 동원 체제에 맞춰 일찍부터 총알받이로 만들려는 군사교육 훈련장이 필요해서였다. 첫째 목적이 의식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면, 둘째 목적은 몸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몸의 통제가 의식을 통제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미셸 푸코가 강조한 바 있다. 마지막 셋째 목적은 식민지 중하급 관리자, 즉, 식민지 관리를 위한 마름 양성에 있었다. 당시 피지배자인 조선사람들은 첫째, 둘째 목적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면서 주목하지 않았고 주로 셋째 목적에 주목했다.
계층상승의 기회가 학교에 있었다. 식민지 중하급 관리자가 되어 이른바 출세를 하려면 당연히 군국주의 일본이 요구한 첫째와 둘째 목적에 충실히 따라야만 했다. 일제 강점기에 '출세한' 사람 대부분이 일제부역자가 되었던 것은 출세하려면 박정희처럼 몸과 정신이 모두 일본이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p57
학교의 자율화를 말하려면 먼저 학교의 주체가 누구인지 말해야 한다. 학교자율화란 곧 그 주체의 자율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세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학교의 주인인가, 아니면 교장이나 이사장, 또는 그들을 관리, 감독하는 교육감이 학교의 주인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에 따라 학교자율화의 속내를 알 수 있는데, 우리는 모두 이미 답을 잘 알고 있다. 학교의 주인은 교육의 세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아니가 교장, 이사장이며 교육감이라는 사실을 .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학교자율화란 '교장-이사장-교육감 마음대로' 라고 '정언'해야 마땅하다. 교사회, 학생회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아 학교 운영과 관련된 모든 결정에서 학생과 교사는 소외되어 있고 학부모회는 대부분 교장의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교장에 따라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우리 학교의 현실이다. 우리 학교는 민주공화국의 학교가 아니다.
p60
우리가 학교에서 제일 먼저 듣는 말은 '차렷!, '열중 쉬어!'라는 군대식 명령어다. 우리가 학교에서 제일 먼저 학습하는 것은 국어와 수학이 아니다. '앞으로 나란히!'라는 군대식 명령어에 따른 줄서기다. 즉 타율적 질서의식을 몸에 익힌다. 월요일 아침마다 병사들처럼 줄을 서서 교장이라는 이름의 부대장에게서 '기초질서를 잘 지켜라!', '국가에 충성하가' 등의 내용을 주입 받고 일주일을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면 교복을 입어야 하고 교문에서 두발단속, 복장단속을 받아야 한다. 질서가 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양 배운다. 이 질서의식에는 자율성이 배제돼 있다. 강제성이 있거나 남이 볼 때에만 지킨다. 질서를 강조하지 않고 줄 서기도 하지 안흔ㄴ 다른 나라 교실보다 질서를 강조하는 한국의 교실이 무질서한 이유는 자율성이 배제된 교육탓이다.
봉건사회에서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졌던 신분 '질서'는 인류 역사상 인간에게 강제된 질서 중에서 가장 무섭고도 강고한 것이었다. 왕의 자식은 왕자이고, 귀족의 자식은 귀족이며, 노예의 자식은 노예이다. 서자의 자식은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 그 신분질서 이념은 봉건시대에 왕훙장상과 성직자들의 지배를 원활하게 했던 강력한 지배이념이었다. 기존 질서와 체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구성원을 길러낸다는 점에서 오늘날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질서교육은 과거의 신분 이데올로기를 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정의 요구는 내면화된 질서이념에 의해 배척되고, 근대 민주공화국의 원칙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p61
봉건사회의 신분질서 이념을 자유와 평등 이념으로 무너뜨리고 태어난 것이 근대공화국이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의 학교에서 자유와 평등을 강조해야 할까, 아니면 질서를 강조해야 할까. 질서를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학교는 일제 강점기 때처럼 지배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노예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p62
유럽 나라들이 대학교육을 무상 또는 준 무상으로 한 때가 1인당 국민소득 수준 1만 달러 이전이었음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의 물적 토대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대학에 가길 강요할 뿐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구성원들 각자에게 부담시킨다. 그뿐인가. 서열화된 대학체제에서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사교육의 창궐을 불러왔고, 구성원들은 매년 20조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지불하고 있다. 사회가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필요 이상으로 지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입학률이 세계 1위로 80퍼센트를 넘는 것도 대학에 가지 않으면 사람 대접 받기 어려운 사회를 반영하는데 그렇게 높은 대학입학률을 보이는 한국과 기껏해야 20~30%에 지나지 않는 나라들 중 어느 쪽에서 무상교육이 실시되는 게 순리에 맞을까? 그런데 무상교육제도가 아직 먼 꿈으로 남아 있는 까닭은 국가보안법이 상징하는 으ㅏㄴ보의식을 통하여 무상교육제도를 불온한 사상의 요구인 양 의식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p65
언론을 가리켜 공기, 즉 공적 그릇이라고 부른다. 공익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방송과 신문은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하수인이나 나팔수 노릇을 해왔다. 그러다 권위주의 정권이 물러가고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물신주의에 포섭되는 사회구성원들을 길러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조중동' 같은 족벌언론은 '공적 그릇'이어야 하는 신문을 자신들이 누리는 신문권력과 족벌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치사회 환경을 만들기 위한 무기로 변질시킨 사악한 사익추구 집단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익성이란 이른바 필수 '공익'사업장의 직권중재 제도나 '필수업무'강제제도처럼 노동자들의 '공공성'요구를 탄압하려고 동원될 때만 그 의미를 가질 쭌이다.
p72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만큼 사회진보를 도모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은 지배세력이 주입한,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p73
한국은 일제 강점, 분단, 전쟁과 독재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 지배세력에 의한 의식 주입과 세뇌가 전일적이며 격심하게 이루어졌다.
기득권세력은 기득권세력에 맞는 의식을 가진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기든권 세력이 갖도록 욕한 의식을 갖고 있다.
p78
자식 교육 문제는 사회 연대와 공공성을 주창하는 활동가들에게 현장의 일상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정의 일상을 강요했고, 그것은 적잖은 활동가들에게 점차 소시민의 길을 걷게 함으로써 역량을 약화시키거나 현장을 떠나도록 작용했다. 교육문제는 더 이상 교육운동 진영에만 맡길 수 없는 모든 운동 진영의 과제가 되었다. 모든 운동 진영은 조직 차원에서 탈학교 운동을, 그 당연한 귀결인 '우리학교 만들기'운동을 펼쳐야 한다. 그를 통하여 제도교육에 충격을 주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역에 기반을 두는 우리 학교 만들기 운동은 각 지역의 교육운동 진영을 물론, 노동운동, 농민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정당운동, 언론운동 등 모든 운동 진영이 결집하는 지역 연대의 출발점이며 거점이 될 것이다.
P92
선거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분석과 비평이 끝나면서 후보들이 내건 공약들은 차차 잊혀진다. 공약(公約)은 기득권세력을 위한 것이면 어김없이 실현되고, 서민 대중을 위한 것이면 공약(空約)으로 끝난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상위 2퍼센트 부유층이 내는 종합부동산세를 감면하고, 소득세, 재산세 등 직접세를 내리고 부유층의 대물림 구조를 위한 국제중을 설립한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지지율은 높은 고지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게다가 사람들은 얼마나 잘 잊던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학 등록금 반값'공약을 기억하는 대학생과 학부모는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한나라당을 찍을 것이다. 세월은 변해도 일단 형성된 의식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두 '당하고 싸울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
P103
"우리는 이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린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였다. "신은 우리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킬 수 없다."
P105
인류가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최첨단의 문명을 자랑하는 시기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분명한 것은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 또한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인간에게서 탐욕이 사라질 수 없다면 인간의 자연 파괴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성찰 이성으로 자연 파괴를 제어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인간의 전쟁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인간의 도구 이성이 성찰 이성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전쟁을 벌이기 전의 인간의 모습이 어땠는지 되돌아보면 어떨까.
P116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게 형성된다. 동물을 조련하듯 당근과 채찍으로, 성적과 등수 올리기 경쟁이 채찍이라면, '대한민국 1펀센트' '부자 아빠'에 대한 선망과 성공한 연예인이 거머쥔 부에 대한 동경은 '99퍼센트의 사람들' 에게 던져지는 당근이다. 그 가능성은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확률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서민이 로또에 명운 걸듯이, 그리고 잠자리에 들때마다 모두 '자기만' 1등에 당첨되는 꿈을 꾸듯이, 모두 성공 예감으로 뜀박질하도록 내모는 것이 제도교육과 대중매체가 맡은 일이다.
P124
마름의 속성은 '자발적 복종'에 있다. 16세기에 열여덟 젊은 나이에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쓴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P157
프랑스 사회구성원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주거공간을 적어도 9평방미터(약3평)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에 관해 알게 되었다. 특히 미성년자들에게는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하는 조항이었다. 이 조항은 "주민이 1만 명 이상인 지자체는 전체 주택의 20퍼센트를 저임대료주택으로 지어야 한다" 는 조항과 함께 프랑스 주택정책의 골간이었다. 프랑스에서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55퍼센트 정도로 한국과 비슷하다. 우리와 달리 전세제도가 없어서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은 사글세를 사는데 그 중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저임대료 공공주택에 살고 나머지는 시장에 나온 셋집을 구해야 한다. 그들 중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주는 혜택이 주거수당이다. 이 주거수당 덕에 나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P159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다."
P161
부유층들이 자기들의 리그 안에서 대물림 지배구조를 탄탄히 할 때, 점차 줄어드는 중산층과 그 이하의 계층에서는 피나는 생존 싸움이 벌어진다. 존재미학과 자아실현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P163
우리 사회는 '분배'를 제도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은 채, 시혜, 온정, 선행의 '나눔'에만 호소하려고 한다.
P164
나눔 캠페인은 한국사회에서 찾기 어려운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도 연관된다. 아무리 나눔을 강조하지만 분배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나눔을 요구하는 것은 노브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회에서 나눔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본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진다'는 뜻인데, 역사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귀족은 스스로 의무를 지지 않으면 지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배하기 위해 의무를 져왔을 뿐이다. 그게 역사의 진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이나 사회상층의 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민중의 비판적 안목과 견제 능력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우리처럼 사회환원 의식을 기대할 수 없는데다가 국민이 제도교육을 통해 비판의식을 기르지 못하는 곳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나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제도에 없는 사회적 연대에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P166
사회공공성과 시민복지가 실현되는 유럽 사회의 서민들은 경험을 통해 '서민인 내가 100유로를 더 낼 때 고소득층은 천 유로, 만 유로를 더 낼 것이며 그 재원의 일부가 나에게 돌아오므로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한국의 서민층은 사회공공성과 사회안전망 혜택의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조세는 그저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한다. 조세에 있어서 서민층이나 부유층이 한 편에 서게 되는 배경이고, 한국의 기득권층이 사회공공성 실현과 사회안전망 확충에 반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P167
유럽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개인주의자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 무상교육제도나 보편의료제공제도와 같은 사회안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주의자라는 점에서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65퍼센트가 이렇게 말한다.
"내 소득의 일부를 떼어내 나보다 가난한 사람의 교육비, 의료비, 주택보조비, 연금 등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오늘 우리 사회의 부유층, 지배층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연대의식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부유층과 지배층은 본디 뻔뻔하게 태어났나? 그렇지는 않다. 연대를 하지 않아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어도 지배할 수 있으니 계속 뻔뻔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없어 견제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P170
계층간 연대의 실현이란 소득이 많은 사회구성원이 세금을 더 내 소득이 낮은 집안의 자녀들의 교육자본 형성 비용을 부담해 주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횡적 연대라고 부른다. 그와 동시에 오늘의 경제활동 인구가 낸 세금으로 오늘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자본 형성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세대간 연대이며 종적 연대라고 부를 수 있다. 이와 같은 횡적, 종적 연대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무상교육제도는 가난한 서민들에게도 교육받을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더해 교육과정에 있는 어린 사회구성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연대의식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 또한 중요하다. 학생들 자신이 사회적 연대의 구체적 실현인 무상교육제도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대의식을 가지게 된다.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며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로 주장하는 게 아니라 제도와 사회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것이다.
P182
서민 대중의 무지와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다.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유행처럼 자리잡고 있다. 정치가 혐오스러우니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에는 '백로야, 까마귀한테 가까이 가지 마라'는 식으로, 혐오스러움에 물들지도 않겠다는 뜻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정치 혐오는 실상 혐오스런 정치를 계속 혐오스런 상태로 있게 하는 강력한 정치적 힘이다.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로 혐오스러운 정치를 바꾸지 안흔ㄴ다면 누가 바꿀까.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남이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정치 혐오나 탈정치는 이 간단명료한 명제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주체적 시민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P183
18세기 볼테르는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런 일이지만,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라는 말로 근대 시민의 자격 요건을 제시하였다.
P192
20대에 반타치 투쟁에 참여했다고 붙잡혀 수용소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일흔 살을 앞두고 끝내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P207
사람에게는 이기적 선택을 하도록 하는 동물적 본능이 있다. 존재 또는 처지가 의식을 규정하는 일차적 이유다. 그러나 지배세력은 제도교육과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사회구성원들에게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갖도록 꾀한다. 그래야 원활한 지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도 사회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을 위한 의식이라고 굳게 믿게 만든다. 이러한 의식들은 '나'라는 이기적이고 개별적인 여과망을 통해 저장된다. 그러나 여과망이 있다고 해서 철저히 개인적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여과망 자체가 국가나 사회의 의도에 따라 조작되거나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육이나 사회적 통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P214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명제에 나는 그렇게 한참을 에둘러 도달했다. 실존에 눈떴다. 오랜 방황 끝에, 실존은 존재의 본질적 이유에 앞서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나, 곧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존재의 이유를,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실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의의이며 이유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인간답지 않게 하는 모든 것은 인간 존재의 이유와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고 훼손하는 것이다. 생명 활동의 동기를 실존에서 부여받은 실존주의자에게 있어 반생명적인 것과의 대치는 피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고유한 영역을 보존하면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반인간적인 것, 비인간적이게 하는 것들과 싸우고 저항하는 실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자에게 있어 휴머니즘은 필요조건이며 동시에 권리이다.
P215
실존적 고민은 비로소 이 땅의 배반과 증오, 그리고 절망의 역사 속 인간을 사랑하게 했다.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억압하는 것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삶은 내가 선택해야 할 당연한 것이 되었다. 내가 선택한 바 없을 뿐더러 외려 부정하고 싶었던 이 땅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했다. 이 땅은 나에게 실존적 고민의 한가운데서 선택한 시지프스의 바위였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 홍세화가 이 당시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저자 홍세화는 1972년 대학교 재학 시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다가 1977-1979년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했습니다.. 1979년 다니던 무역지사의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합니다.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2002년에 귀국하게 됩니다.
이 책은 저자 홍세화가 당시 택시운전을 하게 된 계기와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은 경험과 생각 등을 엮어낸 수필입니다. 망명 생활 동안의 그의 내면적인 고뇌가 드러나며 그 속에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똘레랑스] 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똘레랑스]란 무엇일까요? 저자 홍세화가 왜 그토록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부러워했을까요?
p349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입니다. 흔히 말하듯 한국 사회가 '정(情)'이 흐르는 사회라면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정'의 뜻을 다른 나라 말로 옮기기 쉽지 않듯이,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한마디의 우리말로 옮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의 사회적 의미는 애매한 반면, 똘레랑스의 사회적 의미는 명확하답니다. 우리의 '정'은 감성의 표현인 것에 비하여 똘레랑스는 이성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입니다.' 프랑스 사전에는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 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그가 부러워하고 원했던 사회는 바로 차이를 인정하는 똘레랑스의 프랑스 문화였습니다. 차이를 '틀리다'의 개념이 아닌 서로 '다르다'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우리나라가 군사정권의 시대였기에 그 갈증은 목이 타들어가도록 심했을 것입니다.
20~30년이 지난 우리 사회는 그 차이를 여전히 '틀리다'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틀리다'라는 것은 사람들이 없애거나 고쳐야할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갈등은 이렇게 시작하는 법입니다. 의견과 사상의 차이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이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 의견과 사상이 문제의 대상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틀림'의 대상으로 올려놓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그 '틀림'이라는 이식으로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장과 사상의 논쟁의 시시비비는 따질지 몰라도 그것으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똘레랑스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p138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 주의 주장 또는 사상을 일단 그의 것으로 존중하여 받아들인 다음, 논쟁을 하여 설득하려고 노력하는데 비하여 우리는 나의 잣대로 상대를 보고 그 잣대에 어긋나면 바로 미워하고 증오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는 독자는 곧 이해하게 되겠지만 그 같은 독선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뼈져리게 느끼고 있던 나조차 그 함정에 빠져 베르트랑을 미워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베르트랑과 나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한다.
이렇게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선, 즉 설득하는 사회에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축출하지 않으며 깔보지 않는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않고 대신 까페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말이 많고 말의 수사법이 중요시 했다."
우리는 정(情)이 통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은 어쩌면 우리들이 속한 집단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정이 타인과 타집단에 관통한다면 그것이 감성의 똘레랑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근현대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차이라는 것은 '틀림'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왔고 어쩌면 내면 깊숙히 무의식 속에 아로 새겨져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잃거나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역사는 자연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나와 우리를 위해 타인과 타집단을 인정하지 않게된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그런 아로 새겨진 가슴 아픈 인식을 조금씩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우리 사회로 똘레랑스가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가슴의 생채기가 조금씩 치료되고 사회의 상처가 아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