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제목 참 길고 독특하다.

이 책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도 잘 알려지고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이 많이 있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집에도 책꽂이를 뒤적여 보면 그의 작품 <상실의 시대>가 꽂혀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서재에는 그의 책이 <상실의 시대>,<1Q84 1,2,3 권><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렇게 5권이 있다. <상실의 시대>는 예전에 누나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것 같다. 그 책이 돌고 돌아 어느 덧 내 방 서재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나 역시 이 책이 워낙 유명해서 몇 번이고 읽어보려 시도했지만 여러 번 실패하고 여전히 지금도 읽지 못하고 있다. 아마 저런 류의 책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책은 워낙 많은 팬을 가지고 있기에 책이 나오면 벌써 서평들이 수 십, 수 백개가 금새 쌓인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 나는 이 책이 내가 접한 하루키의 두번째 책이다. <!Q84> 이후 두번째 작품이다. 그러기에 하루키가 어떤 작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1Q84>와 비교했을 때 유사한 점이 많이 보였다.


하루키의 취향을 잘은 모르겠으나 음악이 나오고, 성적인 장면이 등장하고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와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방식 같은 것이 내가 읽은 두 작품에서 비슷한 형식을 보이는 것 같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읽으면서 1Q84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는 독자가 스스로 호흡을 끊지 못하도록 강한 구성력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나 역시 이 책을 잡자마자 읽어버렸다. 그 궁금증을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쓰쿠루의 친구들이 왜 그와 갑자기 연락을 끊었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한 장 한 장 넘겼다.  이게 그의 힘이다.


지난 번에 라디오에서 하루키의 첫 문장은 사람을 궁금하게 만든다. 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몇 권 안되는 하루키의 책의 첫 문장을 살펴 보았다.


<상실의 시대>

그때 서른일곱 살이던 나는 보잉 747기의 한 좌석에 앉아 있었다.


<1Q84>

택시 라디오에서는 FM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곡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책을 읽을 때 처음 시작부터 나로 하여금 어떤 실마리를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로 하여금 이 길, 저 길을 한 번씩 살펴보라는 듯이 기회를 주는 듯 하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나의 지난 생채기를 다시 돌아본다.


누군가 만약 나에게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 다면..


이제 상처 입기 쉬운 순진한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자립한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해


이 대목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왠지 이 구절이 나에게 들어왔다.

하루키의 글이 재미있어진다. 왠지 그의 책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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