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듣는 순간부터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의 책으로 1956년에 발표되어 60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책이며,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아무리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더라도 나에게는 생소한 책이었다. 제목부터 낯설고 아이러니 했다.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감정이 오가는 대로 느끼고 교감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랑에 기술이라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궁금했다. 최근에는 메신저를 분석해서 대화 상대 간의 일종의 '썸'을 타는지 알아보는 어플리케이션도 있다고 하니 그런 종류일까? 60년 전이니 그럴리는 만무하다. 아니면 여전히 연애의 기술에 많이 쓰이는 밀당의 기술을 말하려고 하나, 아니면 제대로 사랑 한 번 못해본 이들에게 권하는 글로 배우는 사랑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책을 펼쳐드는 순간 나의 모든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철학을 논하는 책이었으며, 사랑은 우리의 삶과 긴밀히 닿아있는 끈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상적인 구절에 줄을 그어가며 읽다가 어느 순간 그만 두었다. 줄을 친 부분이 더 많은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읽어볼 방법 밖에 없다. 그만큼 인상적인 책이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1)사랑은 기술인가? 2)사랑의 이론 3)사랑의 붕괴 4)사랑의 실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랑을 논하는 지금의 내가 하는 사랑은 어떠한가? 라는 자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1) 사랑의 기술


『사랑의 기술』에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학, 공학기술 혹은 음악, 미술과 같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론적인 측면과 실천(실습)적인 측면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를 더하면 그러한 기술 숙달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왜 사랑이 필요한가? 에서 부터 시작해본다. 사람들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자신의 분리되어 있는 실존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 불안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p24) 인간에게는 이성이 부여되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는 생명'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동포를,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미래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분리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자신의 생명이 덧없이 짧으며,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고 원하지 않아도 죽게 되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보다 먼저 또는 그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의 인식, 자신의 고독과 자신의 분리에 대한 인식, 자연 및 사회의 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인식, 이러한 모든 인식은 인간의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은 이 감옥으로부터 풀려나서 밖으로 나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들과, 또한 외부 세계와 결합하지 않는 한 미쳐버릴 것이다.


2) 사랑의 이론


하지만 그렇게 갈구하는 사랑이 모두 사랑은 아니다. 사랑에도 만족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 것이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받는다는 수동적인 개념이 아닌 먼저 준다는 능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외에도 언제나 모든 사랑의 형태에 공통된 기본적 요소가 있는데 바로 보호, 책임, 존경, 지식 등이 필요하다. (보호)는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책임)은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응답할'수 있고 '응답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된 부분은 '존경'이다.

(p44) 만일 사랑의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은 아니다. 존경은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이와 같이 존경은 착취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식)은 존경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공허할 뿐이다. 그래서 사랑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 따른다. 기본적인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다면 단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여러 관점의 사랑을 소개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인 '모성애(母性愛)'와 '부성애(父性愛)',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형제애(兄弟愛)',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성애(性愛)',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自己愛)'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관점에서의 사랑을 논하고 있다. 이중에서 잠깐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자기애'이다.

(p88) 자기애에 대한 이러한 사상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다음과 같은 말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대는 모든 사람을 그대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할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한, 그대는 정녕 그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면, 그대는 그들을 한 인간으로 사랑할 것이고 이 사람은 신인 동시에 인간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도 사랑하는 위대하고 올바른 사람이다."


3) 사랑의 붕괴


'사랑의 붕괴'는 원래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라는 소제목이다.

에리히 프롬은 근대자본주의가 사랑의 붕괴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는 듯 하다.

(p119)근대 자본주의는 원활하게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사람들, 더욱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 그 취미가 표준화되고 쉽게 영향받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근대 자본주의는 권위나 원리, 또는 양심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즐거이 명령에 따르고 그들에게 기대되는 일을 하고 마찰 없이 사회 기구에 순응하는 사람들, 폭력 없이 관리되고 지도자 없이 인도 되고 목적 없이 - 좋은 것을 만들어내고 계속 움직이고 기능을 다하고 곧바로 나간다는 목적 이외에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사랑의 붕괴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버이상에서 애착을 느끼고 어른이 되서도 아버지 또는 어머니에게 느꼈던 감정, 기대, 공포를 그대로 애인에게 전가하는 모습, 어떤 이에 대한 우상숭배적 사랑, 영화나 잡지 등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사랑에서 느끼는 감상적 사랑,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회상으로 이어가는 사랑의 추상화, 이러한 신경증적인 사랑의 다른 형태인 자기 자신의 결함을 감추고 사랑하는 사람의 결점이나 결함에 관여하려는 투사적 매커니즘을 가진 사랑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러한 사랑의 붕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안타까움, 두려움으로, 심하게는 공포로 바꾸어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의 붕괴를 겪는 이는 아마 모를 듯 하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는지 모르겠다.


4) 사랑의 실천


마지막으로 사랑의 실천편이다. 사실 이 부분이 살짝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좀더 참신하거나 사랑에 대한 것이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사랑을 삶으로 바꾼다면 '사랑의 실천' 부분도 그지없이 좋을 뿐이다.


우선 사랑의 실천에서 필요한 세가지를 먼저 언급하고 들어가보자. 바로 훈련, 정신집중, 인내이다. (훈련) 현대인의 경우 일을 떠나서는 훈련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일을 떠나서는 일에 대한 훈련에 대한 보상을 얻으려는 듯 최대한 긴장을 풀고 게을러지거나 빈둥거리기를 원한다. 사랑에도 훈련을 할 시간을 내어줄 필요가 있다. (정신집중) 사람들은 한 번에 여러가지를 하려 하고 명상이나 조용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도 많이 존재한다. (p152)정신 집중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독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사실상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은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사랑의 능력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인내) 현대인들은 시간에 대한 조바심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억지로 하려고 하면 되지 않는다. 이를 알지 못한다면 사실상 정신집중도 또한 사랑의 기술도 배우지 못한다. (p150)현대인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할 때에는 무엇인가를, 곧 시간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해서 얻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지 못한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 말고는.



수 없이 줄을 치며 읽다가 줄을 치기를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조금의 시간을 보내놓고 다시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나면 다시 기뻐하고, 문장의 단락을 만들고 별표를 치고 모서리를 접었다. 그렇게 이 책을 읽었다. 오랜 만에 개인적으로 너무 좋은 책을 만나서 정리하다보니 평소보다 문장이 길어지고 호흡이 길어졌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게 개인적인 사랑의 표현일텐데. 이 책은 살면서 몇 번이고 읽어볼 책이다. 항상 이런 책을 만나면 조금만 더 빨리 만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래도 만나긴 했네하는 안도감이 겹쳐흐른다. 고마운 책을 만났다. 에리히 프롬의 글의 배경에 흐르는 듯한 두 단어, '실존'과 '사랑'은 살면서 절대 놓치지 않겠음을 스스로 기약하며 그의 다른 저작들을 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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