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이 소설은 2010년 10월 27일에 시작하여 같은 해 12월 26일에 끝난 작품이다. 정확히 두 달 만에 쓴 장편소설이다.

두 달 동안 나는 계속 항암치료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손톱 한 개와 발톱 두 개가 빠졌다. 아직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원고지에 만년필로 소설을 쓰는 수작업을 고집하기 때문에,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와 손가락에 끼우고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매일같이 작업실에 출근해서 집필하였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었는지 나로서도 불가사의하다.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경외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만큼 창작욕에 허기가 진 느낌이었고 몸은 고통스러웠으나 열정은 전에 없이 불타올라 두 달 동안 줄곧 하루하루가 '고통의 축제'였다.


소설 속 이야기


토요일 아침 K는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분명히 토요일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 알람소리가 울린다. K는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날 아침 K는 거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아내, 딸, 스킨(그는 V라는 스킨을 쓰는데 그날 아침 서랍에는 Y라는 스킨이 있다.), 강아지도 어제까지의 익숙했던 것과는 다른 무엇인가 였다.


K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중요한 휴대폰도 어제 이후로 보이지 않는다. K는 잠시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기억에 공백시간이 있음을 알아낸다. 그 공백시간과 낯섦이 어떤 이유에 생겼을까? K는 하나하나 곱씹는다. 친구인 정신과의사 H(금요일 술을 같이 먹은 친구)의 조언에 따라 낯섦을 벗어나기 위해 몇 년만에 누나를 찾기도 한다. 


이렇게 주위의 낯섦을 경험하면서 K생각한다. 무엇인가 제3의 절대자나 빅브라더가 그를 조정하려고 한다. 그의 주변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K가 알던 이들이 아닌 다른 낯섦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K는 생각한다. 다른 이들이 낯선 이유는 반대로 내가 내가 아닌 것이 아닌가? 내가 어제의 K가 아닌 다른 K가 아닌가? 의심해본다. 그러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누나를 만난 후, 그는 또다른 자신이 있음을 생각하고, 찾아나선다. 그곳에서 그는 K1을 본다. 그와 동시에 K는 K2가 된다. K1은 K2 자신과 동일한 인물이었다. 같은 얼굴, 목소리, 필체에 K2는 놀란다. 하지만 직업, 성격, 말투는 서로 다르다. K1도 얼마 전에 자기 주변에 대한 낯섦을 느끼고 집을 나와서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K2와 주변 환경만 다를 뿐 같은 상황인 듯 하다.


이렇게 낯섦을 느끼고 그 낯섦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내려고 동분서주하고  예전의 익숙함을 찾으려는 토요일, 일요일 지나가고 월요일이 된다. 월요일 아침에 씻고 스킨을 본다. 이번에는 V도 아닌 Y도 아닌 D다. 아직 낯섦이 이어진다. 그리고 출근길에 이르고 지하철 에스칼레이터에서 지난 주말에 보아오던 자신이 만났던 이상한 이들, 마치 그를 감시하려고 했던 이들이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듯이 영화의 몸신처럼 하나 둘씩 나타난다. K는 낯섦과 익숙함을 느낀다.


지하철역에서 한 여자 아이가 세일러문 복장을 하고 있고 그 봉을 지하철에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것을 주으러 간다. 열차는 들어오기 시작한다. K는 세일러문의 손을 잡고 올리려 한다. 잘되지 않는다. 열차가 다가온다. 기진하여 더 이상 체력이 없다. 어느 순간 손게 갑자기 힘이 더해진다. 레인저인 K1이 K2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마침내 하나의 '나'로 합체한다.


마지막 장 (P378)

나는 곧 '나'가 되었으며, K1과 K2는 합체하여 온전한 하나의 'K'가 되었다. 온전한 K는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의 알파, K를 낳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들이 태어나기 전의 태초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맨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으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오직 말씀만이 존재하던 카오스의 신세기이자, 오메가의 천국이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이야기의 구성은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이렇게 3일 동안의 가간을 설정해서 진행이 된다. 금요일 저녁 친구인 H와 술을 먹고 공백이 생긴 그 시간을 찾아나서면서 이야기는 진행은 된다. 낯섦이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반복되지만 어느 순간 그 낯섦이 익숙함이 된다. 하루 하루가 지나갈때 화장실에 가는 것, 면도를 하는 것 등의 전개방식을 그대로 표현한다. 마치 토, 일, 월요일의 시작이 반복됨을 말하듯이 이야기 구조도 처음에는 동일하다. 동일하지만 스킨이 다르고, 무엇인가는 조금씩 다르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표현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은 소설 속에 특별한 이름이 없다. 단지 K,H,JS,MS,아내,장인 이렇게 표현될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주도하는 K외에는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은 일방적으로 제3자의 눈으로 K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주도한다. 어쩌면 K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이야기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닌 주변인인 듯 하다. 아니 어쩌면 K 역시 본질은 아닌 듯하다. K가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은 결국 마지막 장 K1과 K2가 K가 되는 그 시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단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어쩌면 이것들을 통해서 작가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나이지만 두 모순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 한 인간 속에 존재하는 선과 악인 지킬박사와 하이드, 자신이 또다른 자신과 직면하게 되는 도플갱어, 나는 목표지점을 향해 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원을 그리고 있는 링반데룽


◇ 뫼비우스의 띠

독일의 수학자 A.F. 뫼비우스가 처음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뫼비우스의 띠라고 불리는 기하학적 모형좁고 긴 직사각형의 종이를 180도로 한 번 꼬아 끝을 연결하면 동일한 위상에 기하학적 성질을 가진 곡면의 형태가 완성된다이 띠에는 여러 특성이 있다띠 안쪽에서 선을 칠해 나가면 안쪽은 전부 칠해지지만 바깥쪽은 칠해지지 않는 양측곡면과 띠의 바깥쪽에서 칠해나가면 아쪽까지 모두 칠해지는 단측곡면의 두 모순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뫼비우스의 띠는 안쪽과 바깥쪽의 구별이 없으며 좌우의 방향을 정할 수 없는 단일경계를 갖추고 있고 시작도 끝도 없는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 지킬박사와 하이드

한 인간 속에 선의 화신 지킬박사와 악의 화신 하이드가 동시에 존재하는 스티븐스의 소설악한 본성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여 악의 화신으로 만들 수 있고선한 본성을 더 순수한 선으로 만들 수 있는 야물을 발명한 지킬박사는 금지된 반사회적 쾌락을 취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고 살인을 저지른다마침내는 약물을 복용하지 않아도 하이드로 변신하는 비극적인 이 작품처럼 레인저는 ’ 속에 들어 있는 하이드의 형상이며, K2는 속에 깃들어 있는 지킬의 형상인가아니다레인저가 자신의 말대로 불운한 인생을 살아온 범죄자라 할지라도 악의 상징인 하이드로 지칭할 수는 없으며, k2가 지금껏 단 한 번의 경범죄조차 저지르지 않은 무죄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선의 상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왜냐하면 레인저는 곧 K2이며, K2는 곧 레인저이기 때문이다.


◇ 도플갱어 (doppelganger)

독일어로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분열된 또다른 자기 자신의 생령을 보는 심령현상을 말한다타인은 볼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하나의 ’, 그렇다면 K2는 지금 또 하나의 자기 자신과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영혼이 영과 혼으로 나누어져 있다면레인저의 분신복제이자 영인 K2는 지금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는 원형질의 혼인 레인저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 링반데룽

악천후로 인해 시야가 불분명한 경우에 제대로 목표 지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원을 그리고 같은 곳을 되풀이해서 돌고 잇는 환상방황 같은 것이었까뫼비우스의 띠를 기어가는 개미처럼 안쪽에서 출발하였으나 바깥쪽을 통과하여 다시 안쪽으로 단측곡면의 행진을 계속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 속의 한 찰나였을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굉장히 흥미롭게 읽혀진다. 그리고 무엇인가 판타지적이고 환상적이다. 하지만 그 속에 인간에 대한 고민이 무수히 녹아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란 싶지 않다.

이 책을 읽어내려갔고 이렇게 정리했지만 나 역시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다시 한 번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이 서서히 종착점에 다다름을 느끼면서 글을 써내려간 이의 정신 속에서 나오는 글에는 무엇인가 더 의미 심장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한 번 작가 최인호의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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