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그래픽 노블을 한 편 읽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읽어오던 그런 만화책과는 사뭇 다르다.
300쪽에 달하는 분량, 만화치고는 너무나 많은 글, 두꺼운 하드커버에 빨강, 검정, 회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책 표지에 냉소적이면서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듯한 쥐 두 마리가 등장하는 책이다. 그리고 다루는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들의 모습과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지를 보여준 끔찍한 아우슈비츠에 관한 내용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아트 슈피겔만(Art Spielgelman)의 『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계속 맴돌았다. 하나는 책의 형식적인 측면과 그래픽 노블이라는 점, 역시 만화치고는 글의 양이 상당했던 스페인내전을 다룬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이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은 작가 자신이 겪은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을 읽고 한 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인간이란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쥐』는 『이것이 인간인가』의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내용의 유사성과 느껴지는 잔혹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나역시 그런 인간이라는 불안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쥐』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이 실제 아우슈비츠를 경험하고 살아나온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여기서 독특한 점은 유태인들은 '쥐'라는 동물로 표현하고 있으며, 독일군들은 고양이,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돼지로 표현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작가는 왜 유태인을 쥐로 묘사했던 것일까? 책의 중간에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안타까운 글이 있다.
아우슈비츠에 관련해서는 책 뿐만 아니라 많은 영상들을 접할 수 있는데, 많이 접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접할 때 마다 너무 끔찍하고 무섭고 두렵고 안타깝다. 어떻게 신문기사에 저렇게 끔찍하게 기사가 올라올 수 있는가.
그리고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게 아닌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통해서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수많은 고민에 빠뜨려 버린다.
민주적인 선거로 뽑힌 히틀러에 의해서 어쩌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공장이 만들어 진다. 히틀러가 유태인 뿐만 아니라 나치스와 히틀러에 반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어떻게 수십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죽일 수가 있었을까? 단지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는 점, 아니면 당시 대공황에 빠져있던 상황에 유태인들의 자본을 빼앗기 위해서인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이것은 설명할 수 없다.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 들어온 포로들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된다.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육체적으로 일할 힘이 없으면 바로 그들에게 심판당한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스실에는 별도의 금니용해실이라는 곳도 있다. 그들의 목숨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이들이 이빨에 붙어있는 금딱지를 얻어내려고 금니용해실을 만들었다. 정말 끔찍하고 역겹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장면이 두 부분이 있다.
하나는 인터뷰의 대상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의 창고에는 쌓여만 갈 뿐 버리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들과 길을 걸어가면서 버려진 전기줄을 마치 횡재를 한 듯이 줍는 모습이었다. 왜 아버지는 그런 습관이 몸에 베었을까?
아우슈비츠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다. 하루에 한조각 나오는 빵도 만약을 대비해서 반을 잘라서 보관해둔다. 그곳에서는 어떤 물건이라도 소중하다. 철사 한 조각, 버려진 끈 등 모든 것이 그들의 생사를 갈라 놓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트 슈피겔만은 작품 속에서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싫어하지만, 그가 그 장면을 삽입했던 것으로도 그 역시 아버지의 그 습관에 대해서 뼈저리게 아파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한 장면은 포로수용소에 일반 포로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독일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포로들 중에 한 사람이이었다. 조금의 혜택을 받고 이들은 나치스 보다 더 심하게 동료들을 대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그들 역시 가스실로 간다는 점이다. 사람은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동물이다. 모든 상황에 이런 사람들은 꼭 존재한다. 예전에 소작농을 괴롭히던 사람은 마름들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누구보다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이들은 일본인이 아닌 같은 조선인이었다. 이럴 때마다 가끔씩 나에게 묻는다, 실제 상황이 닥치는 과연 나는 어떨까? 하지만 확실한 자신감이 없기에 나 자신에게 묻는 것 조차 두려울 때도 많이 있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라서 어쩌면 더 강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등장인물들이 사람이 아니기에 좀 덜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그린게 더 순화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 쥐, 돼지는 원래 그렇게 사람처럼 잔인하지 않으니까.
책을 읽고 나니 사람이 무서워진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불안하다.
▲ 조그만 화차에 수백명을 억지로 집어넣는다. 대부분 그곳에서 압사, 질식사로 사망한다.
▲ 포로 수용소의 배식장면이다. 작업을 마치고 옷에 이가 있으면 배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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