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터 궁금하고 불안했던 게 있었다. 우리가 잠을 자게 되면 자는 동안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데 과연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는가, 내 정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만약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을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들도 내가 궁금했던 걸 답해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잠'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정신과, 뇌과학, 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미지의 세계가 잠에 존재한다. 


데이비드 랜들의 『잠의 사생활』은 잠에 대해서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작가 데이비드 랜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몽류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고, 수면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결국 만족스러운 처방을 받지 못했고, 여전히 수면 문제에 대해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데이비드 랜들 자신이 '잠'에 대해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그동안 다른 책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잠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와 설명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잠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지극한 영향을 미치고 잠을 통해서 삶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1. 나는 어젯밤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2. 사라진 두 번째 잠

3. 침대를 따로 쓰는 게 좋을까?

4. 아기와 부모가 모두 편하게 잠을 자려면

5. 꿈의 의미

6. 잠은 마음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

7. 'Z' 무기

8. 잠결에 저지른 살인

9. 승패를 좌우하는 것

10. 잠자다가 숨이 막힐 때

11. 불면증의 역설

12. 온전한 잠에 이르는 길

13. 편안한 밤이 되길


이 책의 목차다. 책을 고를 때 목차를 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런 목차라면 충분히 구매할 마음이 생긴다. 제목 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처음 접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을 것 같다고 짐작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과 평소에 잘 모르고 있었던 부분에 대한 지식 측면에서 좋았던 부분을 잠시 소개한다.


인공조명이 발명되기 이전의 문학작품이나 많은 자료들을 보면 첫번째 잠과 두번째 잠이라는 것이 많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사람들은 첫번째 잠과 두번째 잠 사이에 한 시간 정도 깨어있어서 무언가를 하고 다시 잠에 빠진다. 그런데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것으로는 두 가지 잠 사이의 시간 동안 실험 참여자의 뇌는 프로락틴 호르몬을 다량 분비했다고 한다. 프로락틴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고, 오르가즘 이후에 찾아오는 편안한 느낌하고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두 가지 잠 사이의 시간을 명상에 빠진 시간과 비슷하다고 묘사했다.(p37)


연구자들은 잠시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략 90분마다 다섯 단계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첫번째 단계는 아주 가벼운 잠에 빠진 상태로, 잠에서 깨어나면 잠을 잤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다.

두번째 단계는 특유의 수면 뇌파가 나타나는데, 이 뇌파는 한 번에 겨우 몇 초만 지속된다. 전체 수면 사이클에서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에는 자다가 깰 경우 자신이 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단계는 뇌가 의식에서 멀리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경유하는 정류장에 해당한다.

세 번째 단계와 네 번째 단계는 깊은 수면에 해당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델타파라는 파장이 길고 리드미컬한 뇌파가 나온다. 

네 번째 단계는 이때 나오는 뇌파의 속도 때문에 흔히 느린 파형 수면(서파 수면)이라 부른다. 느린 파형 수면은 가장 깊은 수면으로, 뇌가 의식적 사고에서 가장 멀리 여행한 단계에 해당한다. 네 번째 단계에서 잠이 깬 사람은 방향 감각이 없고, 기본적인 질문에 제대로 담을 하지 못하며, 도로 자고 싶은 생각 외에는 딴 생각이 없다. 연구자들은 이 상태를 '잠에 취한 상태'라 부른다.

마지막 단계는 렘 수면으로, 안구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단계에서 뇌는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꿈은 대부분 이 단계에서 일어난다. (p20)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보았던 부분은 잠의 신비로운 힘이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거나 시간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심지어 밤을 새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잠이라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람들이 이런 수면 방식으로 진화한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어느 정도 내 궁금증에 대한 정보는 주고 있다. 바로 잠을 통해 우리 몸이 치유되고, 잠을 통해 우리의 기억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공 조명은 우리 몸을 계속 깨어 있게 하고, 세포들의 정리와 재건처럼 잠잘 때 일어나는 야간 보수 유지 작업을 뒤로 미루라는 신호를 내보낸다. 인공 조명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우리 몸은 잠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분비하지 않을 수도 있다.(p46)


한 밤중에 밖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밝은 곳에서 사는 여성은 해가 진 후 어두운 곳에서 사는 같은 나이의 여성에 비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73%가 더 높았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암 발병률 증가는 우리 몸에서 에스트로겐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멜라토닌 분비가 낮아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p47)


폴 매카트니는 여자 친구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어떤 멜로디가 떠올랐다. 그는 곧장 가까이 있던 피아노로 달려가 그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이곡이 나중에 큰히트를 친 '예스터데이'였다. 매카트니는 훗날 전기 작가에게 "그것은 그냥 그대로 떠올랐어요. 완벽하게요. 나도 믿을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p135)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그 정보는 뇌에서 해마라는 부위를 통해 흘러 간다. 이 모든 정보를 장기 기억에 저장하는 것은 비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보가 필요해 그것을 찾으려고 할 때 뇌의 작업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뇌는 보관할 것과 버릴 것을 선별하며, 다음 날 새로 들어올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잊어버린다. 마음의 서류함을 정리하고 조직하는 과정은 렘 수면 동안에 일어날 수 있는데, 꿈의 무작위성은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창조적 천재성은 뇌가 매일 밤 어수선한 잡동사니를 정리할 때 일어나는 일이 단순히 과장된 형태로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정보만 남았을 때, 우리 마음은 이전에 볼수 없었던 연관 관계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p138)


우리의 몸과 정신은 깨어있을 때 오감을 통해서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들어오는 정보를 그저 쌓아놓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수면 상태에 빠지면 오감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최대한 차단하면서 손상되었던 세포나 신체적인 부분을 복구하고, 쌓아두었던 정보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분류하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이런 시간이 아주 부족하게 되면 육체적으로 회복되지 않고, 쌓아둔 정보에서 어떤 정보를 찾아야할 지 갈피를 잡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나한테 잠 좀 편히 자라고 하셨다. 잠을 자는 걸 보면 뒹굴뒹굴 방 전체를 굴러다니고, 잠옷을 입고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게 아니라 그냥 어딘가 누워있다가 자곤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잠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심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데서나 눈만 감으면 몇 분안에 잘 수 있는 불면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운을 가졌다. 


『잠의 사생활』을 읽으면서도 그리고 최근에 몸소 경험한 것으로 봤을 때 '잠'이라는 것은 양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질적으로 충분한 수면이 우선되어야 한다. 살면서 깨어있는 시간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하고, 깨어있지 않은 시간의 중요성은 간과하면서 살아왔다.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무시하면서 살아왔던 거 같다. 

나에게 잘 맞는 '잠', 건강하게 효과적으로 잘 수 있는 법을 찾아보고 금전적인 투자도 충분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이제 잠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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