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한 삶에 대한 기록, <토너>

 

‘묵묵하다’ 라는 단어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고 사전에서 다시 찾아보았다. 이 작품을 읽고 머릿속에서 맴돌던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 읽던 책들과 반응되는 감각기관이 다른지 평소와 다르게 읽는 내내 차분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작가인 ‘존 윌리엄스’는 1922년 생으로 작가인 동시에 덴버대학교에서 30년 간 문예창작을 가르친 교수였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생전에 총4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1994년에 세상과의 인연을 접는다. 그의 작품 중 『스토너』는 196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한 동안 독자들에게 잊혀졌다가 최근 유럽에서 재조명 받기 시작하며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인 스토너는 농업을 배우기 위해 미주리대학에 입학했지만, 문학수업에 매료되어 영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영문학 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진지한 애정을 가진 교수가 된다. 아내 이디스와 우연히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딸 그레이스를 얻게 된다. 하지만 사랑보다는 억압적인 분위기의 집에서 탈출이 우선이었던 이디스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딸 또한 비극의 씨앗을 이어받아 어머니를 떠나기 위한 수단으로 임신을 택하게 된다. 스토너는 한때 대학의 강사였던 캐서린 드린스콜과 진지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동료교수 로맥스와 학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상황 속에서 그는 묵묵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은퇴를 몇 년 앞둔 시점에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그 동안의 삶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스토너의 삶을 곱씹어 보면 많은 부분에 조용한 비극들이 숨어있음을 알게 된다. 아마 어떤 이들은 이 중 하나를 겪는다면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실패와 갈등을 내포한 비극을 삶의 자연스런 한 부분인 양 조용히 담담하게 겪어낸다. 그의 무심한 듯한 담담함 속에서 독자들은 다른 소설에서 느껴지는 극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감동과는 사뭇 다른 깊이 있고 울림이 있는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 말미에는 스토너가 스스로에게 세 번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에 대한 마지막 물음에 대한 답의 일부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p390)

그는 인생의 매 순간을 타인의 삶의 잣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애정과 의미를 두고 살아왔다. 어렴풋이 떠올렸던 실패도 삶의 바다 속으로 들어오는 작은 물줄기로 차분히 받아낸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죽어갔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삶을 정리하면서 하기에는 아까운 이 물음에 스스로의 삶으로 묵묵히 답해야 하지 않을까. 사전에서 찾은 묵묵하다의 뜻은 말없이 잠잠하다였다. 말없이 잠잠히 이렇게 하루를 살아낸다. 하루를 살아간다.

 

이 책을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일상에 전복되어 자신을 잃지 않았나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밀어 본다. 스토너의 내밀한 고민과 상처들이 독자들의 감춰진 갈등과 생채기를 드러내어 자신들의 삶을 반추해 볼 시간을 내어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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