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0권, 드디어 무언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앞 편에서 나뉘어져서 등장하고 설명되어졌던 주요등장인물들이 바야흐로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양반들만의 세상이 아닌 모두의 세상을 위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운부대사, 풍열, 옥여, 여환, 길산, 법주, 이경순, 우대용, 강선흥, 황회, 시동, 설유징, 전생이 등등 지금까지 등장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인물들이 드디어 서로가 서로를 이어서 드디어 이야기의 마무리를 향하여 나아간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전에 일어났었던 살주계와 검계의 활동에 대한 반성을 하며 새로운 방안들을 생각한다. 살주계, 검계는 단순히 주인 양반들을 해하는 것 외에 일반 백성들에게 어떠한 의미는 부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미륵사상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우선적으로 교화하려고 한다. 이와 동시에 각자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맡은 자리에서 그들의 책임을 다하기로 맹세를 한다.

특히, 10권에서는 여환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여환은 토포 때 어미와 동생을 잃은 원향이를 정성으로 보살피고, 그녀를 거둘려고 한다. 그는 일반 백성들의 품으로 들어가 미륵의 사상을 알리며, 병든 자들을 치료를 해주면서 점점 더 그 영향을 넓혀간다.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시동이의 이야기도 사뭇 흥미롭다. 검계에 참여할 사람을 모으고, 한양성내의 상황을 살피는 이야기 또한 읽는 재미가 있다.

이제 11권, 12권 두 권이 남았다. 10권에서 앞으로 맞이할 절정에 대하여 배경을 만들어 두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는 마감동과 최현기의 대결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언가 충격있는 영향력있는 내  가슴과 머리를 치는 부분은 없어서 아쉬움을 읽는 내내 가지고 있다.

마지막 남은 두 권이 거침없이 나를 흔들어주었으면 한다.

p160
정묘 사월 초닷새 구월산 오진암에서 함께 회합한 사람들은, 뜻을 같이하여 썩은 나라를 뒤엎고 백성들의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죽기를 각오하고 맹세하며, 성사되기까지 서로의 나누어 맡은 일을 힘써 행하고 도우며 한시도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미륵의 도솔타천을 실현할 것을 결코 잊지 않으리니 천지신명은 이를 굽어살피사 도와주시며 등돌리는 자 천벌을 내리시라. 

p208
캄캄한 가운데 차츰 마당이며 삽짝이며 먼산의 거뭇한 모양이 눈에 익어왔다. 풀벌레가 울고 들녁에서는 요란한 개구리 울음 가운데서 맹꽁이들이 사이사이마다 장단을 넣고 있는 듯하였다. 벗겨지는 구름 사이로 한두 점씩 별이 가물거렸다. 매꽁이는 흉황에 굶어죽은 어린것들처럼 울다가는 그치고 그쳤다가는 다시 생각난 듯이 울었다.

p303
고된 일을 하고 나니 밥은 입안에서 오래 머물지를 못하였고 고봉으로 먹고 나니 온몸이 녹적지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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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9편은 지금까지 읽어왔던 그 앞편의 내용과는 다르게 좀 더 빠른 호흡으로 내용이 진행되었다. 
8편까지 각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평범하게 살지 못하고 화적이 되었는지 묘사하는 것과 그들이 행하는 활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8편 후반부터 최형기를 주요등장인물로 하여 본격적인 토포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9편의 마지막에는 토포를 시행하는 최형기와 구월산 두령 마감동 간의 대결이 이루어진다. 정말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실제로 눈으로 책을 읽지만 그 눈밭의 두 사람이 서있는 모습이 머리 속에 너무나 뚜렷하게 그려졌다. 사실 8편까지 오면서 살짝 지친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바로 마감동을 주요무대로 올린 후 전개하는 9권에서 그간의 지친감을 싹 해소하여 주었다. 마치 삼국지에서 영웅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형기와 마감동의 검 대결을 묘사하는 부분은 너무나 생생한 묘사를 보여주어서 읽는 내내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토포를 시작하면서 탑고개, 구월산등의 유민들과 백성들이 처참하게 살해되는 모습이 보여진다. 그들은 결코 그렇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본보기로 처해지는 희생양들이었다.

항상 희생양은 이렇듯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에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힘에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그러한 방법들은 바로 불법이 되어버리고 역적이 되어버린다. 

갑자기 쌍용차해고노동자에 대한 생각이 난다. 쌍용차노동자 해고 이후 약 2년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 혹은 기타 이유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고공 농성, 시위, 그리고 자살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희생함으로써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 토포되는 활빈당의 모습이 단지 과거 역사,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인가,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마감동이 최형기에게 한 말을 적으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그러면 내 말을 듣겠느냐. 이미 이 나라는 근본부터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사민이 있다 하나 글 읽고 벼슬하거나 전장이 많고 권력 있는 자들만이 나라의 주인이요, 나머지 백성들은 낳고 살고 죽기가 금수보다도 못하다. 임진난리 때에도 병자난리 때에도 약한 백성들에게는 야차와 같이 굴던 것들이 바깥 도적들에게는 기도 못 펴고 꿈쩍도 못하면서 온 나라를 내주고 말았다. 그러고도 이제껏 조정의 귀하고 높은 자리는 저희끼리 다투어 들어앉고 내려오고 하면서, 입으로만 백성이요 실상은 대롱을 꽂아 고혈을 빠는 먹이로 여길 뿐이다. 어찌 하늘이라 편안하게 머리를 쳐들어 살아갈 수 있으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그대가 몇품 벼슬을 지내는가? 고작해야 병수사자리라도 기다리고 있는가? 그 칼을 뽑아 너를 보낸자들에게로 돌려라. 네 등뒤에는 팔도의 촌촌마다 피눈물로 포한 맺힌 황민의 믿음이 있다. 이 땅에서 살다 죽어진 수도 없는 백성들의 원혼이 있다. 자, 나와 함께 먼저 해서감영을 들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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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처음에 읽은 책은 장길산8권 이다.
대하소설 장길산 세트를 사놓고 지금 너무나 오래 읽고 있다. 그래서 올해 초반에 나머지 4권을 모두 읽어나갈 생각이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 내용이 재미가 있는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크게 임팩트가 오지는 않는다.

이전에 읽었던 대하소설이 태백산맥과 한강이었는데, 내 사사로운 판단으로는 그 때 만큼의 감동은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남은 4권이 더 궁금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감동을 얻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대하소설이고, 역시 황석영이라는 생각은 책을 읽어내려가면서도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장길산 8권을 읽어내려가면서 앞 부분은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고, 뒤쪽에는 그래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아마도 주요 등장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초반부에는 흥미를 덜 끌었던 같다. 살주계와 검계에 대한 이야기와 산지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앞 부분을 장식했다. 여기서는 바로 산지니라는 인물이 조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냥 묵묵히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겪는 어쩔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벌어지는 일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다시 주요 등장인물들 바로 구월산의 녹림당들이 등장하면서 다시금 쏠쏠한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여러 꾀로 유사과의 집을 장악하고 재물을 탈취하는 장면 속에서 그 아이디어에 혼자 웃기도 했다.

8권에서는 이 소설의 등장 시대를 소개하는 구절이 몇 번 나온다. 바로 산지니를 붕당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데 사용했다는 점이다. 바로 숙종시대 때, 너무나 심했던 붕당정치에 대해서 배경을 설명해준다. 또한, 왕이 장씨 성을 가진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바로 그 장씨가 장희빈이고 왕이 숙종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대하소설은 워낙 긴 호흡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이렇게 한 권에 대한 글을 쓰기가 싶지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짧게나마 글을 남기는 것이 장길산을 읽어나가면서 다시금 그 시대의 우리 바로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쯤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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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특별한 글은 남기지 않았다. 내용 자체도 방대하고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쉽사리 한 권씩 읽고 적어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과 한강도 그렇게 긴 호흡으로 읽어내려갔다. 그 책들을 읽은지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등장인물들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하소설 [장길산]은 역사적지식, 간단한 줄거리, 등장인물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소설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옮겨다니는 곳으로 나도 한 번 따라 가보려 한다. 고등학교 때 지리 수업부터 이 쪽에는 약했는데, 이제 이 길을 따라다니면 조금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도 조금 해본다. 책을 읽어 가면서 조그마한 수첩(나만의 명칭 : Miracle Note)에  이런 저런 나만의 카드작업을 해놓고 이렇게 글을 쓸 때 조금씩 참고를 한다.

 이미 장길산 1,2 권은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읽어버렸기에 추후에 정리하는 방향으로 해야겠다.

 장길산3권의 내용은 전체 12권 중의 3번째인 만큼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왠지 이들이 나중에 다같이 구월산의 패거리로 들어가지 않나 하는 지레짐작을 해본다. 이야기는 크게 두 흐름을 타고 진행된다. 길산이 구월산에서 풍열과 삶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 후 금강산에 있는 운부대사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의 흐름은 길산과 인연을 맺었지만 길산이 처형된 줄 알고 제 발로 안성 사당패에 들어간 묘옥이 여러 사건을 거쳐 안성에서 한양의 송파나루 근처에 터를 잡아 주막을 차리게된 배경과 그러면서 만난 인연들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앞으로 진행될 대서사시에 인물들이 하나씩 하나씩 서로서로 인연을 맺어간다.

 잠시 3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가보자.
<길산> 봉순과 혼인을 맺고, 운부대사를 만나기 위해 금강산으로 떠남
<봉순> 길산과 혼인은 하였으나, 홀로 사랑을 하는 아픔을 지녔다. 그녀 역시 묘옥과 길산과의 사이를 알고 있다.
<갑송> 길산과 같은 날에 도화와 함께 혼인을 맺음
<도화> 갑송 몰래 다른 남자와 통함
<묘옥> 안성 사당패에서 직접 들어가 사당노릇을 하고 이경순과 여러 사건을 거친 후, 송파나루에 주막을 연다.
<백선, 홍련> 묘옥과 함께 있던 안성 사당들
<최만상, 정학> 정학이 최만상의 처남사이이다. 정학은 힘이 장사다. 길산과 해주에서 만남
<이경순> 사당 묘옥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주 이도장, 자기를 잘 구워서 양인이지만 여주에 힘이 있음
<유필준> 철없는 양반 아들, 안성 사당패가 유필준의 집에서 재물 강탈, 이야기의 흐름을 제공
<고달근> 안성사당패 모가비(사당패 우두머리)
<도장댁> 이경순의 아내, 이경순과 함께 도망가다 죽음.
<전생이> 이경순 아래에서 자기를 굽는 이, 총포도 잘 만듬
<황회> 사당패 모가비 (어디지?)
<복만> 솔부리 왕초
<정원태> 예전 사당패 모가비였지만 절에서 중노릇을 함
<끝춘이> 길산의 봇짐을 훔쳐감
<오공랑=말득> 끝춘의 올아비, 표창, 빠른발

이야기의 두 줄기는 길산과 묘옥이 거취를 옮기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 전개된다. 우리 나라 지리도 익힐 겸해서 어떻게 그들이 이동했는지 살펴보자. 나름 이렇게 보니 재미도 있다.

우선 길산의 이동경로이다.

길산은 산채가 있는 구월산에서 현재 황해도 수도인 해주를 통해 토강, 평산, 금성을 거쳐서 금강산의 관문인 단발령에 이른다. 해주 근처에서 끝춘, 말득, 최만상, 정학과 인연을 맺으면서 운부도사를 만나기 위해 금강산으로 향한다.

이번엔 묘옥의 이동경로다.

 묘옥은 고달근이 모가비로 있는 안성사당패에 두 발로 걸어들어가 사당노릇을 한다. 이경순이 묘옥을 너무 끔찍히 여겨 마음을 돌리려고 안성사당패의 사당길에도 따라 다닌다. 이때 유필준이라는 양반의 아들과 시비가 붙고 이로 인해 여러 사건이 발생하여 묘옥은 붙잡히는데~, 여기서 이경순이 묘옥을 데리고 그가 살고 있는 여주로 도망을 간다. 여주에 온 묘옥은 다시 도망을 가게되는데 여주에서 남한강 지류를 따라 송파나루로 가게된다.

 이렇게 길산과 묘옥은 그들의 삶에 따라 옮겨 다닌다.  지도에 도로번호도 써있는 걸 보니 이상하지만 보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할 뿐이다. 이렇게 길을 따라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지도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니 나름 공부가 되겠다. 그럼 여기에 박차를 가해서 지리 공부 좀 하고 가자.

 우선 송파나루는 서울과 광주를 잇는 중요한 나루로 조선시대 10대 상설 시장 중의 하나였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와 자동차 발달로 쇠퇴하고 1960년대 말 강남지역 개발이 시작되면서 샛강이 매립되고 교량이 세워지면서 나루터의 기능이 사라졌다. 

 책에서 설명하는 안성에 대해서 살펴보면...
 안성(安城)은 삼남의 육로가 합치는 지점에 있는 대도회요, 위로는 수원, 과천에 닿고, 아래로는 천안, 청주에 통하며 서쫌으로 해로가 뚫렸는데 아산 앞바다를 거쳐 물길이 진위, 양성, 평택, 안성에 닿으니 사통팔달이다. 동으로는 남한강 지류가 광주를 지나 여주를 거쳐 충주, 청풍,단양에 까지 닿으니 실로 삼남과 경기의 장꾼들이라면 안성을 제 집 드나들듯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안성의 동촌은 연일 각처에서 모인 장사치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데, 한양의 거간꾼들도 들끓었다.

 아직 할 말은 많은데, 글을 길어져 장길산4 에 이어서 해야겠다. 장길산이 등장하던 시대는 숙종인데 이 때의 정치,경제 상황을 살펴보면서 장길산이 활동하던 시대도 한 번 쭉 훑어보아야 겠다.

 그럼 장길산4 빨리 읽어야 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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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가슴에 묻어? 못 묻어. 콘크리트를 콸콸 쏟아붓고, 그 위에 철물을 부어 굳혀도 안 묻혀. 묻어도, 묻어도, 바락바락 기어 나오는 게 자식이야. 미안해서 못 묻고, 불쌍해서 못 묻고, 원통해서 못 묻어."

p110
"천지야, 속에 담고 살지 마. 너는 항상 그랬어.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잘해도 싫어요, 소리는 못했어. 만약에 지금 싫은데도 계속하고 있는 일 있으면, 당장 멈춰. 너 아주 귀한 애야. 알았지?"

p114
"괜히 애써 무겁게 살지마. 산다는 거 자체가 이미 무거운 거야. 똥폼 잡고 인생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들, 아직 인생 맛 제대로 못봐서 그래. 제대로 봐봐. 웃음밖에 안 나와 ......"

p148
"그러게 말이다. 너, 죽지 마라. 언젠가는 죽기 싫어도 죽어. 일부러 앞당기지 마.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  더 아프게 하는 거야. 죽어서 해결될 일 아무것도 없어. 묻어둘수는 있겠지.근데 그거, 해결되는 거 아냐. 냄새가 진동하거든.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 거야. 생명 다할 때까지 살아."

p160
"어찌된 게 요즘 애들은 단체전은 없고 개인전만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혼자 다 하려니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겠어요."

p195
"...... 그리고 미라야, 분명히 말하지만 천지는 멍청한 게 아니라 착한 거야. 착한 애는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꼭 가지고 놀려는 것들이 생겨서 문제지. 자기 맘에 들면 착한거고, 안들면 멍청한 건가? ......"





"잘못했어요."

"알아."
"저는요, 천지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럼 그냥 '나 너랑 안 놀아.'하면 됐잖아."
"불쌍해서 어떻게 그래요....."
"너 말 참 우아하게 한다. 불쌍해서 못 했다고? 말은 못 하면서 행동은 어떻게 했니? 천지가 떠날 정도로 지독하게? 그냥 조금 더 가지고 놀고 싶었어요. 그게 네 진심 아냐?"

나는 과연 지금껏 살아오면서 우아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가? 잠시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을 한 적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의 등장인물 중 미라는 과연 미라의 그런 방관자적인 모습이 천지를 아프게 할지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사람은 무쇠처럼 강한 존재인 동시에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이다.

어떤 이에게는 단지 스쳐지나가는 말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정말 아릴 정도의 고통을 줄 수 도 있다.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제목 만으로 선택한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천지가 죽는다. 무언가 가벼운 주제가 아니구나 바로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 도가니를 읽을 때 안개가 배경으로 나왔을 때 느꼈던 기분이랑 비슷하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인 천지의 자살은 지금 세대를 살고 있는 어떤 이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과 얼마 전에도 한 학생이 왕따로 인해 자살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면서 고통 속에서 여전히 아파하는 이들은 너무나 많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왕따의 대상은 정말 무언가 크게 잘못하거나 그래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미소처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조건에 처해있고, 거기에는 분명한 가해자 대상이 있으며 이들과 함께 주변의 동조자와 방관자가 주변을 채운다.

나는 과거에 가해자, 동조자, 방관자 였던 적이 없었을까? 자신있게 없었다. 라고는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택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고통의 결과로 결정한 것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내가 한 말이 타인의 가슴에 꽂히는 화살이 되지 않는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고, 그 화살은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창비의 청소년문학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정말 지금 학교생활을 하는 이들이 한 번 읽어보고, 자신은 어떤 대상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말 무엇보다도 아프게 하는 입으로 나오는 그 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항상 다시 되새겨보아야 한다.

그래야 내 앞에 있는 당신이 아프지 않고, 내가 아프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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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지난주 코엑스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창비의 [창작과 비평]을 정기구독하게 되었다. 정기구독을 하면 창작과 비평 뿐 아니라 창비에서 출판된 책을 한 권 준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분좋은 것은 구독 기간 중에 창비에서 간행된 책이 무조건 50% 라는 사실이다. 그 때, 한 권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날 때면 나는 항상 감사한다. 지금까지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을 보고 읽어도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의 차이는 바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한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위의 그림처럼 겉표지는 다들 웃는 모습의 일러스트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이 그림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저렇게 다들 웃고 있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표지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들은 책 내용 속에 등장하는 소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반대인 다수에 의해서 침혜되는 소수의 권리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 책의 이야기는 진행되어 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의 내용을 기반으로 내용이 전개되다 보니 조금 더 흥미롭게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고 읽는 내내 이상하게 내 자신이 부끄럽고 그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 역시 인권침해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침해되는 소수의 사례는 어떠한 경우가 있는가? 나 역시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대상들을 잠깐 소개하려 한다.

[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 표지 처럼 밝지만은 않은 주제들이다. 각각의 소주제들 안에서도 여러가지 생각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 그냥 읽어내려가면서 무언가 나를 건드린 내용에 대해 잠깐 정리해보려 한다.

사람잡는 우생학 히틀러는 영화[300]의 스파르타인들이 꿈꾸었던 '우월하고 건강한 인종의 지배'를 과학적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건강한 아이들에게 제3제국의 미래가 있다고 믿었던 히틀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아이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만이 아리아인의 승리를 위한 필수적 요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찌 의사들에게 치료 불가능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모두 안락사시키도록 지시했고, 1939년부터 이들에 대한 등록이 시작되었다. 1940년에서 1941년까지 약 5천~ 2만 5천명의 독일인 장애아들이 살해되었고, 최소한 27만 5천명의 성인이 같은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말이 안락사지 대부분은 가스에 의해 살해되었고, 더 효율적인 살해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박스 안에 집어넣고 폭탄을 터뜨리는 참혹한 학살이 자행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27만 5천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도 점령지구 내에서 훨씬 잔혹하게 살해된 비독일인 장애인들을 제외한 순수 독일인만의 수치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적장애인만 살해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차 대전에 종군하여 부상을 입은 장애인들도 희생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전쟁 수행에 비생산적인 사람은 모두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장애에 대한 각종 편견에 맞서 켐프가 쟁취하려고 했던 것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정상이라는 인식이었습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은 언제나 장애인이 정상인에 비해 뭔가 '비정상적'이며 '불완전'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상적이고 완전한 상태를 먼저 정의한 후,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모두 비정상으로 정의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장애인을 드는 것이지요. 에범 켐프를 비롯한 장애인 운동가들은 장애인도 정상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도 최대한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정상 또는 비정상이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결국 그 대상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개입된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불타오르는 나무 위에 흑인젊은이가 목매달려 있고, 그 주변에 백인 군중들이 모여 있는 사진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1930년대의 린치 장면입니다. 죽어가는 흑인남성은 불에 타서 옷이 그슬리고 온몸은 상처투성이며 얼굴은 피가 철철 흐르는 상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백인 남성, 여성, 어린아이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넘쳐흐릅니다 .플래시가 터진 사진 프레임 안에는 기껏 수십명이 있을 뿐이지만, 어둠 속에 보이는 보자들의 그림자로 미루어 볼 때 훨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르완다 제노싸이드에 대해 흔히 90만명이 사망한 하나의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오해합니다. 하지만 제노싸이드는 하나의 사건이 아닙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르완다 제노싸이드는 한 명이 죽은 살인사건이 90만개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고, 죽음을 맞이한 상황도 모두 다르며, 지역에 따라 학살의 모습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제시한 것은 위의 여러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 중 장애인과 인종갈등에 관련된 몇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 책의 표지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사람은 한 명, 한 명 모두 하나의 우주이다. 세상의 어떤 일 보다 내 생각이 존재하고 사유할 수 있는 내가 존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나의 상실은 바로 모든 것의 끝이요. 우주의 소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감히 누가 그러한 우주를 마음대로 건드린단 말인가! 정말 무섭다. 이런 일을 바로 다수라고 불리우는 평범한 나같은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다. 소름끼친다.

 우리 인간들은 DNA가 99.95%가 동일하고 단, 0.05% 만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이 0.05% 라는 이 사소함이 99.95%를 과감히 배척하고 차별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단 말인가! 얼마 전, 신문에 'SKIN'이라는 책 소개를 보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역사가 바뀌었고 인종간의 살육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피부색은 단지 햇빛에 노출될 경우 피부를 보호하기위해 멜라닌 양이 서로 다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 라고 생각하고, 서로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한 사람이 모두 하나의 우주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직도 인권은 이 시간에도 유린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우선 사람은 살고 보아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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